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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돈을 많이 벌면 A급 용역 깡패를 사서 마음 편하게 시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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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진은 1997년 규율만 강조하는 학교당국에 반발하여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관두고, 이태 뒤 1999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최연소 합격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진학한다. 이러한 김현진의 “다른” 선택은 그 자체로 언론의 주목을 받아 씨네21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에게서 칼럼 연재 청탁을 받게 된다. 그는 한겨레신문을 택했고, 그렇게 연재한 글을 모아 “씨네키드 현진이가 본 컬트무비 같은 세상”이라는 부제의 『네 멋대로 해라』라는 책을 1999년 출간한다. 공교육 공간에서 부대끼는 아이들 중 한 사람으로 아프게 혹은 당차게 살아낸 그의 경험을 잘 담아낸 이 책은 당시 큰 주목을 받아, 그 책에 대한 인쇄로 영상원도 졸업하고, 생활비도 할 수 있었다. 그 책은 지금까지 여전히 팔리고 총 20쇄를 찍었다 한다.

 

 당찬 여자애에서 이제 서른 살 여인이 된 김현진은 밝다. 작년 12월 출간한 『뜨겁게 안녕』에서 담담히 적었듯이 그는 남창동, 옥수동 등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된 곳에서만 살아야 했다. 가난해서다. 도시의 남루한 거리에서 이주 노동자, 윤락 여성, 노숙인, 담배 피우는 청소년, 살인이라도 날만큼 싸우는 남녀를 이웃으로 두고, 진짜 돈이 없어서 굶어야 하는 그 상황에 마음까지 가난해지는 것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끄덕일 만큼 당연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않았고,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에 비굴하게 굴지도 않는다.  환하게 웃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헤아리고 돕는다. 그가 쓰는 글은 참으로 다행스럽게 주인을 많이 닮아 밝고 유쾌한 문장 속에 삶의 부조리함, 비통함, 짜증과 분노가 그려져 있다. 우리의 언니 김현진은 밝고 당차지만, 그가 살아왔던 30년 동안의 삶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서러움, 여자라서, 학생이라서 받아야 했던 무시, 돈이 없어 참 불편하고 짜증나는 상황들이 녹아 있기 때문에. 이 어여쁜 김현진은 오늘도 125cc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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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겸 칼럼니스트 김현진.『뜨겁게 안녕』에서 언급된, 그가 자주 가는 술집 16mm에서 그와 만났다. 

          

 

고종석


 저널리스트 고종석 씨로부터 “나이 차가 이만큼 크지 않았다면, 질투심 때문에 글을 읽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편애를 받고 계시는 걸로 유명합니다. 또 실제로 고종석 씨께서 작가 님을 양딸로 삼으시기도 했구요. 두 분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아버지는 저 말고도 몇 명의 수양 딸과 아들들이 계신답니다. 그러나 제가 먼저 입양한 언니도 파양하라며 난리를 피우고 훌륭한 청년들만 보면 탐을 내시기 바람에 제가 “아버지는 정조가 너무 없다”며 늘 항의하고는 있습니다만, 젊은 벗들을 가까이 하려는 고종석 아버지의 젊은 마음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늘 저지하려는 저의 시도는 무색해진답니다. 사실은 이 부녀관계는 술로 맺은 관계겠지요. 정확히 말한다면 알코올 중독자 간의 교감 이랄까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술주정뱅이 부녀 같다고 할까. 술에서 깨면 부끄러워지고, 부끄러워지면 또 술을 마시고…….. 그런 부끄러움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고종석 선생님께서 육체의 DNA는 달라도 문화적 DNA는 같다고 말씀하시겠지요. 저도 그렇게 느낍니다.

 

 

『뜨겁게 안녕』을 보면 이십 대에 뜨거운 피 때문에, 낮에도 밤에도 계속 술을 마시며 술에 취한 채로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사실입니까? 김현진 작가님에게 술은 무엇입니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적, 나의 원수, 나의 재난, 내 영혼, 나의 심장... 언젠가 나를 죽일 사랑.

 

가난

 

작가 님에 대해서 얘기할 때 “가난”은 빠지지 않는 단어입니다. 가난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이며,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그게 언제부터 꼭 그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이야기가 왜 나올까 생각해 보면, 성격이 뭔가 대담한 데가 있어서 그러는데 보통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주눅 들고 침울하다’, 그런 사회적 오해가 있고 또 자본주의가 그렇게 조장을 하지요. 못 가진 놈들은 찍 소리 하지 말고 살라고. 저도 뭐 사생활 노출증이 있는 게 아니니까 못 가진 이야기나 이웃들 이야기를 쓰는 게 그다지 즐겁지는 않지만, 저와 비슷하거나 못 한 형편의 친구들이 돈 없어도 뭐 차 끌거나 샴페인 마시고 오페라 못 봐도, 스쿠터 타고 다니면서 김치에 막걸리 먹고 언론사 시사회 가고 공공도서관에 발품 팔고 다니면서 즐겁게 살 수 있다, 그런 희망을 주고 같이 힘내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런 수식어가 워낙 많이 따라붙지 않나 싶습니다.

 

 가난이란 불행이라기보다는 불편한 것인데, 우리 인생에 조금의 불편함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불과 50, 60년 전만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다 부자입니다. 아무도 안 가난해요. 전후에 아무것도 없던 폐허에서 우리 모두 이렇게 문명을 누리고 살고 있는데 지금 정말 소외된 계층은 물론 있지만, 그런 옛날 기준으로 볼 때 상대적 가난과 상대적 상실감을 느끼고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가난은 진짜 가난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식 키우고 교육시켜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홀몸인 저와 또 다르겠지요. 저야 저랑 어머니만 어떻게 하면 되니까요. 그렇지만 지금 가난이라는 말은 약간 잘못 쓰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대적 가난이나 박탈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매일 각오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매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소비자본주의의 폐해가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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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김현진          우: 저널리스트 고종석

 

나눔과 연대

 

작가님이 가난하신데, 인세의 절반을 이웃과 나누고 계십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세는 원래 10프로를 기부하다가 책이 안 팔리니까 너무 낯이 안 나서 절반으로 올렸습니다. 누가 김현진이 아직 돈 맛을 못 봐서 그런다고도 하던데(^^) 그 돈은 원래 제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간단하고, 제 첫 번째 책을 독자들이 많이 사랑해 주셔서 고학생활을 잘 해 냈으니 사회에 뭔가 돌려 드려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그렇게 못 하고 있지만 100퍼센트 기부를 할 수 있는 입장이 되고 싶습니다.

 

연애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김현진의 B급 연애 탈출기』를 내시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연애를 하시는 듯 합니다. 연애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뭐 문란하다, 자유롭다, 이렇게 볼 수도 있겠고 일반적인 한국 또래 여자들보다는 연애 경험이 많은 것도 있고, 찍은 남자랑은 잘 되는 편인데 제가 육식동물 계통이라 그런지 그 집단에서 가장 수줍고 가장 얌전하고, 그런 개체를 내 걸로 안 만들면 못 견디는 체질이랄까^^ 는 농담이고요, 이리저리 재고 앞으로 어떻게 될까 생각하고 차분하고 착실하게 연애하는 체질이 아니라 그냥 좋으면 앞뒤 안 보는 타입이라 좀 부담스러운 타입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끝이 안 좋게 끝난 연애들을, 번번이, 믿었어요. 이번에는 진짜 사랑일 거라고, 이번에는 진짜 ‘그 사람’일 거라고, 남들이 별로라고 쯧쯧 혀를 차는 사람을 만나서 지옥으로 롤러코스터를 타도 헤어지기 전까지는, 롤러코스터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늘 믿었어요. 이 사람이다, 라고. 아직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욕심

 

작가로서의 명성에 대한 욕심, 더 나은 집에 살고 싶다는 욕심. 더 예쁘고 매력적인 여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순수한 욕심이 있을 거 같습니다. 작가님의 욕심은 무엇인가요?

 

돈을 많이 벌면 A급 용역 깡패를 사서 이를테면 명동 마리 같은 곳에 마음 편하게 시위하러 가고 싶습니다 ^^ 장기농성 하시는 재능투쟁 같은 곳에도 좀 깔아드리고... ^^

 

희망

 

작가 님을 살게 만드는 희망은 무엇인가요?

 

사실 아직은 계속 방황하고 있습니다. 여자 나이 서른 하나면 충분히 어른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최근에도 상당히 힘들어하고 있었어요. 자살까지 결심했을 때 제 책을 보고 많이 위로가 되어서 지금은 원하던 직업을 갖고 씩씩하게 살고 있다는 독자 분의 메일을 받았을 때 내가 변변하지 못한 글씨 쓰는 재주로 과분한 복을 받았구나, 그렇게 세상에 돌려 드려야 한다, 돌려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합니다.

 

가치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할 때, 그 사람이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정을 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작가 님께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는 감수성이랄까 뭐 그런 게 일단 지는 편에 붙고 보는 것 같습니다 ^^ 돈보다는 내가 살아 있었다, 살아 있다, 그런 쪽에 마음이 먼저 가고, 성서에 나오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는, 이라는 예수님에 대한 예언처럼 상한 갈대를 세우고 등불에 기름을 보충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 방법은 아직까지 잘 찾지 못했습니다. 꼭 찾고 싶습니다.

 

취약점

 

고양이, 하루키, 술 등 작가 님을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것이 있는지요. 이 아이들이 판단을 흐리게 하는 주범이기 때문에, 이것을 취약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알코올 의존증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술이 저의 가장 큰 사랑이자 가장 큰 원수이죠.

 

백치미 있는 남자에게도 상당히 약합니다.

 

모든 종류의 강아지에게 완전 무장해제가 됩니다. 요즘은 고양이파가 대세인 것 같은데, 저는 아무리 물려도 강아지가 너무 좋아요. 강아지들이 저를 친구 개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개 주인분들이 많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저희 집에도 유기견이 한 때 여섯 마리 정도까지 보호하다가 지금은 12살 먹은 유기견을 소중한 가족으로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어떤 곳입니까.

 

집주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틀에 한 번 잔소리를 해서 미칠 것 같은 월셋방이죠.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지만,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뜨겁게 안녕글 김현진 | 다산책방

『뜨겁게 안녕』은 이제 막 서른 이후의 삶에 접어든 저자가 써내려간 ‘서울살이’의 회고록이자 비망록이다. 여기에는 저자의 개인적 삶이 가장 뜨겁게, 그리고 가장 리얼하게 담겨 있지만, 동시에 서울이라는 도시의 소외된 거리와 시대의 풍경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철거촌과 비개발지역, 서울의 소외된 곳을 옮겨다니며 살아온 삶은 비속하고 하찮고 시시하고 애절한 기억들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정겹고 그립고 끝도 없이 사랑스럽기도 하다. 그 기억의 순간을 새겨놓은 곳들이 재개발의 삽질에 밀려 죄다 사라져버리기 전에..


호랑이 자취 쫓다 동물의 뼈와 마주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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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박수용 피디 10문 10답 3부작 중 1편입니다.

박수용 피디 10문 10답 2편 보기

박수용 피디 10문 10답 3편 보기

 

 

자연은 바다나 산 또는 곰이나 풀, 꽃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自然’이라는 말 그대로,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이를 테면 새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고, 먹고 자고, 그리고 언젠가는 죽는 것과 같은 것. 바람이 불면 스러지고, 비를 맞으면 몸이 젖는 것, 어미는 자신의 아기를 보살피는 같은 것. 그러므로 자연은 내 안에서 찾을 수 있고, 네 안에도 있고, 너와 나 사이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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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용 피디는 자연을 백두산 호랑이에게서 만난다. 20년간을 신실하게 ‘자연 관찰자’로서의 본분에 충실했기 때문에 백두산 호랑이로 만난 그의 자연은 크면서도 작고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마치 베토벤이 죽기 전 완성한 ‘B 장조 대푸가’처럼…. 언제 어디서라도 호랑이를 만나기 위해 부족함이 없도록 다져진 듯한 다부진 체격과 형형한 눈빛을 사진 속 그에게서 느끼며, 결심 하나를 한다. 그래, 천천히 그러나 긴 세월 동안 하나에 몰입을 해보자. 그 몰입의 시간 동안, 그리고 몰입을 통해 알게 된 무엇 속에서 순정한 자연을 알아 보자.
 
  편집자 주: 분량이 긴 관계로, 박수용 피디의 10문 10답은 3회에 걸쳐 게재됩니다.



자연

 

“20년 이상 자연 관찰자로서, 자연을 기록해오셨습니다.

 자연은 피디님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얼마 전 서울대 국문과 교수였던 김윤식 선생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분은 박경리의 ‘토지’를 최참판댁 당주와 이동진의 대화로 풀이했습니다.


“독립운동 하러 가는 것은 군왕을 위해서냐?”
“아닙니다”
“백성을 위해서냐?”
“아닙니다”
“그러면 누굴 위해 독립운동 하러 가느냐?”
“이 산천山川을 위해서 갑니다.”



이것이 ‘토지’의 주제입니다. 이 작품을 자세히 읽어보면 뻐꾸기 울음이 여섯 번 나옵니다. 또 주인공이 만주 벌판에서 괴로울 때마다 최참판댁 담을 타고 피어나는 능소화를 떠올립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이병주의 ‘지리산’은 오래 가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생명은 상당히 길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데올로기는 바뀌지만 산천은 변함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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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태어나 삶을 마감할 때까지 의지하는 흐름은 두 가지입니다. 한평생 경쟁하고 현실을 개척하며 생활하는 짧은 흐름, 그리고 그 짧은 흐름들이 세월과 자연을 가로지르며 이어져서 생겨나는 긴 흐름. 시장이나 그 시장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는 짧은 흐름입니다. 늘 바뀌고 시대마다 변하죠. 하나의 짧은 흐름 속에서 아무리 높이 올라갔던 사람이라도 긴 흐름을 느끼고 그 흐름을 걸어갔던 사람이 아니면 우리는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고관대작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피나는 이전투구를 했겠지만 우리는 그 중 몇몇만 기억할 뿐입니다. 염상섭은 ‘취우’라는 소설에서 ‘6.25도 지나가는 소나기에 불과하다. 햇빛이 나면 금방 말라버리고 물방울 떨어진 흔적만 좀 남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내전과 외침, 세계대전들... 그동안 지구상에서는 수도 없는 소낙비와 폭풍우가 내리쳤지 않습니까? 한줄기 비가 그치면 새로운 비가 내릴 뿐 자연과 세월이라는 긴 흐름은 항상 우리 곁에서 천천히 흘러갑니다.

개체는 이승에서의 삶이 유한합니다. 그래서 개체는 개체를 낳고 교육시켜서 하나의 종種을 형성합니다. 개체의 유한한 삶을 종이라는 형태로 연장하는 거죠. 그러나 종들도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공룡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종들이 나타나죠. 이렇게 수많은 종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자연입니다. 자연은 종보다도 훨씬 오래 갑니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우주라고도 말할 수 있는 자연을 통해서 존속하는 겁니다.

제게 자연은 이런 긴 흐름입니다. 자연에 들어가면 수많은 생명들의 순환과 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인간들의 생로병사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이어지는 강물을 굽어보는 듯한 간접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강물의 순환이 생활이라는 시장과 이데올로기의 짧은 흐름에 매몰될 때마다 나를 꺼내 길고 유유한 흐름에 실어줍니다. 개체의 유한성과 종족의 연속성, 그리고 자연의 무한성을 가끔은 한번쯤 둘러보며 살게 합니다. 다들 아는 이것을 자연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자연의 가르침

 


“‘자연’이 피디님에게 가르쳐준 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어렸을 땐 시골에 5일마다 장이 섰습니다. 오일장 한 귀퉁이엔 꼭 우시장이 있었지요. 우시장에선 토끼도 팔고 강아지도 팔지만 역시 주인공은 덩치 큰 소였죠. 저는 소를 몰았습니다. 소장수들에겐 우시장에서 산 소나 팔지 못한 소를 다음 오일장으로 몰고 갈 소몰이꾼이 필요했습니다. 오후 다섯 시쯤 장이 파하면 저는 다른 소몰이꾼들과 함께 소를 몰고 내일 오일장이 서는 곳으로 출발합니다. 백리길 이백리길을 밤새 걸어서 다음 오일장에 도착하면 새벽 4시쯤 됩니다. 소장수들은 허연 김이 올라오는, 소죽 끓이는 가게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요. 새벽 미명 때문인지, 올라오는 김 때문인지, 아니면 피곤 때문인지 흐릿해지는 눈을 비비며 소를 넘겨주면 그들은 먼저 소에게 따뜻한 쇠죽을 먹입니다. 배가 홀쭉한 소는 가격을 잘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곤 우리에게 소몰이 값을 쳐주지요. 백리길을 몰아주면 큰 소 한 마리에 50원, 새끼 딸린 소는 15원을 더 받았습니다. 그렇게 합천장에서 산 소를 고령장으로 고령장에서 못판 소를 거창장으로 거창장에서 다시 산 소를 무주장으로 소백산맥을 넘나들며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7년 동안 5일장을 떠돌았습니다.

우시장이 새벽에 시끌벅적하게 시작되어 오후 늦게 한산해질 때까지는 자유시간입니다. 저는 국수 한 그릇이나 풀빵 몇 개로 아침을 때우고 시장 한 귀퉁이에서 잠이 듭니다. 어느 날은 노점 국수 할머니의 치마폭에서, 어느 날은 풀빵 가게 모서리에서 잠이 듭니다. 자주 가는 풀빵집 주인에게는 제 또래의 딸이 있었는데, 그 여자 아이는 저에게 친절해서 자기 방 한 귀퉁이에서 잠을 자게 해주곤 했지요.

오후에 깨어나면 늦은 점심을 먹고 우시장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시장에선 돈이 오갑니다. 온갖 악다구니와 싸움박질과 욕설도 오갑니다. 먹고 살기 위해 모두들 분주합니다. 이런 우시장을 둘러보다 오후 네다섯 시가 되면 다시 내일의 오일장으로 출발합니다. 가끔은 일행 없이 저 혼자 출발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가는 오일장이라면 혼자 가지 않지만, 한번이라도 가본 장이라면 다음번엔 저 혼자서 갈 수 있어야 했습니다. 백리의 산길을 홀로 간다는 건 소년에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요. 달밤에 소백산맥을, 소년이 혼자 두세 마리의 소와 함께 걷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많은 밤에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 기억할 수 없어도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전 슬픔이나 애수 없이 또렷이 기억합니다. 어른 소몰이꾼들이 같이 가기라도 하면 어린 아이가 기특하다고 저를 얌전한 소의 등에 태워 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런 소몰이꾼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지요. 유행가를 한곡씩 불러가며 무료한 걸음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올리면 그 시절의 저를 상상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두세 시간이면 끝이 납니다. 우린 밤새 묵묵히 걷습니다. 물소리, 바람소리, 그 바람에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 밤부엉이 소리, 산기슭을 돌아다니는 알 수 없는 발자국 소리... 온갖 자연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추운 겨울날 달이라도 뜨면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새하얀 눈밭 위로 바위 그림자, 나무 그림자, 산 그림자들이 지나갑니다. 그러다 얼룩얼룩 그림자 진 눈밭 위로 낮에 본 시장의 모습들이 불현듯 반사되어 빙빙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돈이 오가는 것이 보이고, 온갖 악다구니와 싸움박질과 욕설이 오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러다 다시 자연의 소리와 모습으로 되돌아옵니다. 이렇게 새벽까지 끊임없이 걷습니다. 묵묵히 말입니다. 그러다 문득 어떤 긴 흐름을 느낍니다. 고개를 돌리면 내 옆에서 나와 함께 시간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린 맘에도 낮에 봤던 것들이 어딘가 짧다는 걸 느낍니다. 낮과 밤이 상반된 시간처럼 느껴졌어요, 짧은 흐름과 긴 흐름으로. 낮에는 시장을 보고 밤에는 자연을 보았던 겁니다. 그때부터 난 시장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언젠가 겨울날 새벽엔 소를 몰고 길을 걷는데 경운기 한 대가 지나갔어요. 그리고 경운기에 실린 사과 궤짝에서 사과가 하나둘씩 떨어지는 거예요. 떨어진 사과 알들 옆으로 참새와 까마귀와 청설모가 모여 들었습니다. 그 새벽에 새들과 청설모는 신나고 바빴지요. 저도 성한 걸로 두어 알 주워서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저에게 언제나 친절했던 풀빵집 소녀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어떤 땐 차바퀴에 깔려서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져 죽은 개구리와 뱀, 까치도 보았지요. 동료 까치들은 죽은 까치 주변을 배회하며 풀섶의 지푸라기들을 모아 주검 위에 덮어주곤 했지요. 전 세상에 시장의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풀과 나무와 까치의 일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말입니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마치 시장의 일만 중요하고 시장의 일만 있는 것처럼 빙빙 돌아가고 있지만 사실 자연의 일도 있다는 걸 말입니다. 숲을 걸을 때면 주변의 생명들이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해당하는 규칙에 대해서 들려주었어요. 이를테면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잠이 오면 자야하고, 한번 태어나면 예외 없이 한번 죽는다는 사실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면서 저라는 개체의 규칙과 인간이라는 종족의 규칙과 자연의 규칙을 구분하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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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제 몸속으로 들어온 자연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그런 큰 흐름과 규칙을 저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지금도 호랑이의 자취를 쫓다 숲속에 뒹구는 동물의 뼈를 마주치면 그 생명이 살아생전 내쉬었던 숨결이 다가옵니다. 그 뼈가 살아생전 지녔을 투쟁과 감성의 흔적을 마음속 깊이 느낍니다. 제 미래의 모습이 그 뼈에 투영되며 자연 속에서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똑같다는 동병상련의 감성이 살아납니다. 들꽃을 보면 그 이름이 궁금하기보단 이 꽃이 지고 있고 또 어딘가에선 피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걸 느끼고, 낙엽이 떨어지면 낙엽이 떨어지는 걸 느낍니다.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죠.

사람들은 개체, 즉 자신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이 포함된 종족, 인류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살아있는 모든 종들로 구성된 자연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세계들은 독립적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서로 융합되어 있습니다만, 점점 자신만을 생각하고 살아가며 다른 세계와 교감을 끊어버리는 개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교감을 위해 모두 은자隱者가 되자는 것은 아닙니다. 시장과 이데올로기를 사소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은 경쟁이 치열합니다. 생활을 해내기 위해선 그 경쟁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너머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종내엔 같은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래서 모든 생명에게 측은지심을 느끼게 하는 큰 흐름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끔씩이라도 느끼며 살자는 것입니다. 그 흐름을 느끼면 개체는 다른 개체와 편안하고 인간은 자연과 교감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 세월이 그것을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이 글은 정혜윤 PD님이 저를 인터뷰한 내용의 일부를 제가 첨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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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박수용 저 | 김영사

저자는 시베리아에 살면 시베리아호랑이, 한반도에 살면 한반도호랑이 혹은 백두산호랑이라 불리는 우수리와 만주, 한반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호랑이들을 밀착 취재해 왔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만난 '블러디 메리'라는 16세기 영국 여왕의 별명(사냥할 때 주변을 온통 피투성이로 만든다고 해선 붙여진 이름)을 이름으로 살아가는 암호랑이 3대 가족의 삶과 죽음, 생존을 향한 강렬한 투쟁을 직접 보고 관찰한 기록이다...

 


본 기사는 박수용 피디 10문 10답 3부작 중 1편입니다.

박수용 피디 10문 10답 2편 보기

박수용 피디 10문 10답 3편 보기


 

한국 호랑이가 다른 호랑이보다 매력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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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박수용 피디 10문 10답 3부작 중 2편입니다.

박수용 피디 10문 10답 1편 보기

박수용 피디 10문 10답 3편 보기





시베리아 호랑이

 

“시베리아 호랑이는 어떤 존재입니까? 그들의 어떤 점이 피디님을 사로잡았나요?

 

 

지구상에는 다섯 종류의 호랑이가 살고 있습니다. 벵골호랑이, 인도차이나호랑이, 수마트라호랑이, 남중국호랑이, 그리고 시베리아호랑이. 이 가운데 시베리아호랑이를 제외하면 모두 열대지방에 서식합니다. 반면 시베리아호랑이는 만주와 연해주(우수리), 그리고 한반도에 삽니다. 이 호랑이들은 과거 장백산맥을 타고 만주에서 백두산으로, 두만강을 넘어 우수리에서 함경산맥으로 넘나들며 살았습니다. 만주호랑이가 한반도로 넘어오면 한국호랑이, 한국호랑이가 우수리로 넘어가면 우수리호랑이가 되었던 거죠. 이들은 모두 ‘Panthera tigris altaica’라는 학명을 가진, 같은 호랑이 아종입니다.

시베리아호랑이는 열대지방에 사는 호랑이와는 무척 다릅니다. 우선 열대지방은 기후조건이 좋고 먹잇감이 풍부해서 같은 면적이라도 훨씬 많은 호랑이가 서식할 수 있습니다. 현재 열대지방 호랑이가 10,000마리 가까이 살아 있는 데 반해 시베리아호랑이는 고작 350여 마리만이 남아 있습니다.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가는 시베리아호랑이는 열대지방 호랑이에 비해 체구가 30퍼센트 이상 크고, 돌아다니는 영역은 벵골호랑이보다 100배나 넓습니다. 인도의 벵골호랑이 한 마리가 차지하는 영역은 보통 20㎢이지만 시베리아 수호랑이의 경우 그 영역이 2,000㎢가 넘습니다. 3개도 4개군에 걸쳐있는 지리산 국립공원의 면적이 472㎢인 것을 생각하면 그 영역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베리아호랑이가 인간에게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는 습성은 마치 열대지방 호랑이와는 딴 동물인 양 전혀 다릅니다. 열대지방 호랑이는 자신을 인간에게 쉽게 노출시킵니다. 인도에서는 관광버스 안에서 야생호랑이를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호랑이들이 사람이 다니는 대로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며 길가 그늘 밑에서 태연히 낮잠을 잡니다. 관찰자가 지프로 접근하면 마주 다가와 지프의 냄새를 맡고 오줌을 갈기는 놈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베리아호랑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신중하고 조심스럽습니다. 사람에게 노출되는 것을 극히 싫어하고 사람이 만든 구조물이나 물건도 철저하게 피해 다닙니다. 인간의 눈을 피해 광활한 산맥을 은밀히 누비며 살아가다보니 산중에서 그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시베리아호랑이만 연구하는 학자들도 평생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합니다. 그래서 시베리아호랑이의 생태는 밝혀진 부분보다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습니다. 특히 새끼와 함께 지내는 암호랑이나 새끼와 아비의 관계 등 가족의 형성과 해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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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희소성과 은밀함으로 인해 시베리아호랑이는 세계의 많은 자연 다큐멘터리스트들에겐 하나의 로망입니다. 히말라야의 많은 고봉들이 프로 등산가들에게 로망이듯이 말입니다. 자연 다큐의 세계에선 시베리아호랑이가 정신력과 인내력을 재는 척도였던 거죠. 20년 전 제가 처음 시베리아호랑이에 도전했을 때, 야생에서 촬영된 시베리아호랑이 영상은 세계에서 3분뿐이었습니다. 그것도 올가미에 걸린 호랑이를 생포해 목에 무선전파발신기를 달고 방사하는 장면을 BBC가 헬기에서 촬영한 것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야생의 시베리아호랑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BBC,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서구의 자연다큐멘터리 선진제작사들이 매년 수백만 달러짜리 프로젝트들을 진행시켰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있었죠.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연에서 조직력과 자본력으로 승부하는 사람들이지 정신력과 인내력으로 승부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요. 동물의 왕국이라는 TV프로그램에 왜 아프리카의 사자나 인도의 벵골호랑이, 북극의 흰곰이나 남극의 펭귄들이 많이 나오는지 아십니까? 위도 상 열대나 극지방에는 오래 전부터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아 동물들이 사람을 보고도 위협을 느끼지 않고 잘 도주하지 않습니다. 전문용어로 ‘도주거리가 짧다’고 표현하죠. 게다가 기후적 특성상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열대나 극지방의 동물들은 누구나 쉽게 촬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얼마나 잘 촬영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죠. 관광객이 핸드폰으로 촬영하는 것과 헐리우드용 경비행기에 스테디캠을 달아서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래서 조직력과 자본력, 좋은 장비를 가진 자연 다큐 선진제작사들이 열대지방과 극지방에서 큰 효율성을 발휘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은 시베리아호랑이에겐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과 조직력, 장비를 가져와도 시베리아호랑이가 나타나지 않는 한 무용지물이니까요. 제가 처음 시베리아호랑이에 도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호랑이를 찾기 위해 일 년 넘게 산맥을 떠돌았지만 가끔 호랑이의 흔적만 보일 뿐 호랑이는 코빼기조차 볼 수 없었어요. 그래서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습니다. 바로 나무 위나 땅속에 작은 비트(은신처)를 만들고 호랑이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죠. 이 방법은 광활한 오지에서 극한의 기후를 견디며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는 정신력과 인내력이 있을 때만 유효한 방법이었습니다.

물론 아무 곳에서나 무작정 기다릴 순 없죠. 그래서 여름 6개월 동안은 산맥을 떠돌며 호랑이가 출몰할 만한 장소를 물색합니다. 그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장소에 비트를 만듭니다. 나머지 겨울 6개월은 그 비트 속에 들어가 호랑이가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처음에는 나 자신도 이런 방식으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방식을 통해 저는 20년 가까이 시베리아호랑이를 1,000시간 넘게 영상으로 기록하였고 육안으로 목격한 것은 그 서너 배가 넘습니다. 전 세계의 나머지 시베리아호랑이 영상을 다 합쳐도 아직 1시간가량밖에 안되는데 말이죠.

처음 제가 시베리아호랑이에 끌렸던 이유는 이처럼 시베리아호랑이가 난이도 높은 도전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시베리아호랑이를 직접 만나게 되면서부터 그 이유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시베리아호랑이 자체의 매력에 빠져든 거죠. 야생의 시베리아호랑이는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하는, 생명체로서의 매력이 있습니다. 선조들이 괜히 영물이라고 한 게 아닙니다. 자신의 기척을 감추는 은밀함 외에도, 상황을 파악하고 물러설 때와 나설 때를 아는 현명함, 일단 나서면 결말을 짓고 마는 대담함은 신비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교감

 

“시베리아호랑이와 교감하셨습니까? 기억나는 교감의 순간을 알려주세요.”

 

 

호랑이의 흔적을 찾아 산속을 전전할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숲을 헤매다 개울 하나를 건넜습니다. 개울을 건너자 굵직굵직한 잣나무들의 숲이 펼쳐졌어요. 오솔길 옆 너럭바위에 배낭을 내리고 피곤한 몸을 맥없이 걸쳤습니다. 인적 없는 오지에 개울물 소리와 새소리가 조용히 들려왔습니다. 이따금씩 신선한 바람도 불어왔지요. 그 바람을 타고 흘러온 잣향이 향기로웠습니다. 그때였어요. 5-6미터 앞의 아름드리 잣나무 둥치 뒤에서 보름달 같이 둥그스름한 무언가가 스르르 밀려나왔습니다. 멍한 내 시야에 털북숭이 얼굴 하나가 들어오더니 또렷해졌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불타는 듯 깊었습니다. 호랑이였어요.

머리가 무척 크고 갈기도 성성하니 풍채가 우람했습니다. 저는 직감적으로 그 지역에서 가장 큰 숫호랑이, 왕대王大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왕대의 눈빛은 무심한 듯 이글거렸어요. 그 눈빛의 기운이 초여름 바람의 고요한 살랑임과 그 살랑임에 실린 잣나무의 진한 향기와 이에 아랑곳없이 차분한 개울물 소리에 실려 저에게로 왔습니다. 뚫을 듯 나에게 집중된 눈빛은 들킨 자의 눈빛이 아니라 확인하는 자의 눈빛이었습니다. 그 눈빛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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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직이지 마라. 그러면 괜찮다.’

저의 뇌리에 이 두 마디가 전해졌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아니, 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손만 까딱해도 덤벼들 것 같았지요.

왕대가 잣나무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습니다. 육중한 전신의 웅자雄姿가 드러났습니다. 그 웅자를 조용히 움직이며 왕대는 오솔길까지 사선으로 걸었습니다. 몸통은 비스듬히 오솔길을 향했지만 시선은 한시도 저에게서 떼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오솔길로 접어들었어요. 그러자 왕대는 저에게 다시 한번 말을 걸어왔습니다. 양쪽 입술을 들어 올려 살짝 씰룩였습니다. 굵은 송곳니가 슬쩍 내비쳤습니다.


  ‘나는 간다. 내가 뒤돌아보지 않는다고 허튼 짓 하지마라.’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암묵의 경고였습니다. 그 씰룩임이 내 몸에 남아있던 기운을 마저 앗아가 버렸어요. 바늘에 찔리듯 온몸이 찌릿찌릿하며 심리적 마비현상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왕대는 나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앞만 보며 잣나무 우거진 오솔길을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바람은 살랑였고 그 바람에 잣향기가 흩날렸으며 개울물소리는 한결 같았습니다. 그렇게 길게 뻗은 오솔길로 천천히 사라졌습니다. 무시당한 기분이랄까? 나는 갑자기 초라해졌습니다. 왕대의 시선이 거두어진 순간부터 나 자신은 이미 초라해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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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없는 숲, 문명 속에서 인간은 다른 생물들 위에 신처럼 군림합니다. 그러나 인간을 충분히 상대하며 심지어 죽일 수도 있는 존재가 있는 숲으로 들어서는 순간, 인간은 왜소해집니다. 호랑이가 오갔을 오솔길을 홀로 걷다 보면 서늘하고 날 선 기운이 느껴집니다. 가랑잎 구르는 소리에도 우뚝 멈춰 서 좌우를 두리번거리고, 황량한 겨울바람이 산비탈을 쓸어 올리기라도 하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인간은 이렇게 왜소해질 때 비로소 자연과 더 깊이 대화하고 세월을 더 넓게 보게 됩니다. 인생이라든지 생명이라든지 삶과 죽음 같은 자연 속에 떠다니는 어떤 감성들, 세월을 가로지르는 긴 흐름들을 느낍니다. 숲 속의 호랑이는 인간을 자연과 세월 앞에서 겸손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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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박수용 저 | 김영사

저자는 시베리아에 살면 시베리아호랑이, 한반도에 살면 한반도호랑이 혹은 백두산호랑이라 불리는 우수리와 만주, 한반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호랑이들을 밀착 취재해 왔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만난 '블러디 메리'라는 16세기 영국 여왕의 별명(사냥할 때 주변을 온통 피투성이로 만든다고 해선 붙여진 이름)을 이름으로 살아가는 암호랑이 3대 가족의 삶과 죽음, 생존을 향한 강렬한 투쟁을 직접 보고 관찰한 기록이다...

 



 

본 기사는 박수용 피디 10문 10답 3부작 중 2편입니다.

박수용 피디 10문 10답 1편 보기

박수용 피디 10문 10답 3편 보기

 

러시아 인종차별 단체와 총격전, 한국 상관에 보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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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박수용 피디 10문 10답 3부작 중 마지막 3편입니다.

박수용 피디 10문 10답 1편 보기

박수용 피디 10문 10답 2편 보기



관찰의 어려움

 

“시베리아호랑이를 관찰하셨던 과정 속에서 피디님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

 

 

마을의 베이스캠프에서 지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러시아 피의 민족단Russian Bloody Party’ 단원 다섯 명이 쳐들어와 총으로 위협하며 우리의 돈과 귀국을 요구했습니다. 피의 민족단은 미국의 KKK단 같은 인종차별주의자 단체로, 특히 동양인을 싫어합니다.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생활하다보니 우리 소문이 멀리까지 난 모양이었습니다.

말을 안 듣자 그들은 다짜고짜 우리를 피투성이가 되도록 린치를 가했습니다. 한명이 몰래 빠져나가 그 지역 산지기 대장에게 알렸습니다. 산지기 대장이 마을사람들과 함께 우리를 구출하러 왔습니다. 베이스캠프 앞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총알이 핑핑 주변을 스쳐지나갔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마을 외곽에서 해안을 지키기 위해 주둔해 있던 군부대가 출동했습니다. 피의 민족단 두 명은 체포되고 세 명은 도망갔습니다. 도망가면서 우리 일행 중 한 명을 납치해 갔습니다.

저는 급히 80km 떨어진 읍내의 전화국으로 달려갔습니다. 한국 본사로 여러 번 전화를 넣었지만 매번 중간에서 끊겼습니다. 연해주 산골의 전화는 수화기를 돌리는 수동식인데다 두 곳의 기지국을 거쳐야만 겨우 해외와 연결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본사와 연락이 돼 높은 분에게 급히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높은 분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 회의 중이니까 나중에 다시 전화해”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혹시 영화 ‘람보’를 보셨나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모두 마친 람보는 돌아와 상관들을 향해 마구 기관총을 쏩니다. 왜 그랬을까요? 전 그가 다시 마주한 세상에 대해 고독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높은 분이 전화를 끊었을 때 저는 저 세상에서 오는 고독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마치 우물 속에 갇혀 와글거리는 올챙이 떼 같았습니다. 그 우물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인 줄 알고 그곳에서 전력을 다해 이전투구 하는 그들이 올챙이들보다 못해 보였습니다. 올챙이는 때가 되면 개구리가 되어 우물 밖으로 기어나갑니다. 하지만 그들은 개구리가 되어 우물 밖으로 나가 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우물이 다인 줄 압니다. 이 세상은 그런 우물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모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자연이라는 것도요.

그들은 자신의 우물 속에서 대장 올챙이에게 잘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듯합니다. 대장 올챙이가 이끄는 길이 올바르든 그르든 상관치 않고 진급이나 봉급 같이 개체의 이득을 취하는 것만을 우선시합니다. 당연히 산속의 일은 중요하지 않게 느껴질 것입니다. 저 세상이 가져오는 이런 고독을 저는 많은 사건을 통해 여러 차례 느꼈습니다. 그런 후 6개월의 긴 겨울 잠복생활로 들어가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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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오지의 땅속 잠복지에서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찬바람과 싸우며 야생호랑이를 기다리다 보면 호랑이 코빼기 한 번 못보고 주먹밥만 동이 나기 일쑤입니다. 그러던 차에 3개월 만에 후배가 보급품을 지고 첩첩산중을 넘어 도착했습니다. 오랜 잠복 끝에 보급품을 지고 온 후배를 만나면 마음이 찡합니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합니다. 눈을 마주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습니다. 말도 몇 마디 주고받지 못합니다. 말소리에 배인 울음을 들킬 것 같기 때문입니다. 행여나 호랑이가 볼 새라 얼른 보급품을 받아 넣고 다 쓴 배터리와 모아둔 배설물을 챙겨주고는 3개월 후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집니다.

다시 혼자 남습니다. 기분이 울적합니다. 끝없는 사막 혹은 심연과도 같은 잠복지에서 갑자기 고독이 밀물처럼 밀려듭니다. 나를 둘러싼 한 평의 공간이 나를 폐소공포증에 걸린 사람처럼 덜덜 떨게 만듭니다. 그런 절망상태로 밤까지 누워 있습니다. 눈을 감아도 감지 않은 듯 의식이 또렷합니다. 나갈 수만 있다면 바다 속에라도 뛰어들어 엉엉 울고 싶습니다. 얼어붙은 잠복지에서 나를 더 얼어붙게 만드는 것은 절대온도나 맹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홀로 있다는 고독감이었습니다. 고독을 이기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과 호랑이를 기다리고 싶은 열망 사이에서 나는 갈팡질팡했습니다. 이 고독이 무엇을 위한 고독이며 누구를 위한 고독인지, 잠복지를 뛰쳐나가 세상으로 나가면 저 세상의 고독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나는 생각하고 달래며 나 자신을 추스릅니다.

다음날, 눈이 내립니다. 아침부터 쉼 없이 눈이 내립니다. 이런 폭설 속에서 작은 이 공간이라도 없다면 살아남기 힘들 거라고, 폭설이 그치고 다시 몇 번의 폭설이 내리고 나면 마을로 내려가 따뜻한 난로 옆에 몸을 누이고 깊은 잠에 빠져들 거라고 나를 세뇌시킵니다. 폭설이 나를 고독으로부터 건져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잠복지의 안락함에 빠져듭니다.

산속에 머물면서 견디기 힘든 것은 홀로 있다는 자연의 고독입니다. 자연의 고독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사람들이 사는, 저 세상에서 오는 고독입니다. 하지만 저 세상의 고독을 자연의 고독이 치유해 줍니다. 사람은 호랑이처럼 홀로 사는 동물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자연의 고독이 깨닫게 해줍니다. 누군가 말을 주고받을 사람이, 교감할 사람이 내 옆에 단 한 명이라도 있기만 하다면, 그 사람이 내가 가장 싫어하고 추악하게 생각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게끔 만들어 줍니다.


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디님을 계속 자연 속에서 버틸 수 있게 한 것은 무엇에의 의지였습니까?”

 

 

자연에서 오래 지내다보니 저는 시간을 긴 단위로 느낍니다. 계절을 느끼고 다음 해를 미리 느낍니다. 자연의 생명들을 투과해가는 시간을 통해 10년 후의 제 모습을 느끼고, 결국 세월에 투영된 제 죽음의 모습까지 미리 느낍니다. 그러자 허무가 찾아왔습니다.

“결국 모든 생명은 죽는 것인데...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참 무서운 느낌이었어요. 제 살아생전에 취한 모든 이득, 그리고 사고와 행동이 결국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이 허무한 생각에 제 삶의 활력을 잃어버릴 때조차 있었습니다. 내 생애에 비해 그 흐름이 너무나 긴, 그래서 생겨나는 허무를 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짧다면 짧은 이 세상에서의 하루하루 생활로 극복했습니다. 부업을 해서 카메라를 마련하고 이런 저런 잡일을 하면서 제작비도 보충하고 그러면서 점점 자연이니 세월이니 허무를 부추기는 긴 흐름의 느낌, 살아있는 생명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그 본질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죠.

그러자 새로운 장벽이 기다리는 거예요. 본질적인 허무를 잊기 위해 긴 흐름을 버리니까 이제는 눈앞의 이해관계,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라는 개체의 삶과 이득에 나의 삶이 국한되는 겁니다. 그리고 나와 유사한 이해관계에 놓인 사람들과 이합집산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겁니다. 그러자 질투가 생기고 모함이 생기고 급기야는 내 이득을 획득하고 보전하며 불리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제가 평소 달라붙지 않던 시장과 이데올로기를 방패로 사용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장과 이데올로기라는 짧은 흐름이 가져오는 함정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개체가 빠질 수밖에 없는 너무나 치명적인 함정. 이것은 긴 흐름을 인식함으로써 생겨나는 허무보다도 더 치명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우주의 어디쯤 있는지를 알고, 그래서 우주라는 것의 깊고 넓음이 자신을 티끌처럼 왜소하게 만들어버리는 공포를 느끼는 우주인은 그 공포를 정신의 힘으로 다독거려 결국 체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우주의 어디에 있는지도, 아니 자신이 우주 속에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눈앞의 잔물결에만 시선을 두는 사람은 긴 흐름이 가져오는 허무를 망각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더 이상 어떤 객관적인 삶의 기준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퇴양난이었습니다. 긴 흐름에 몸을 실을 수도 짧은 흐름에 몸을 실을 수도 없었습니다. 죽음이 가져오는 허무에도, 삶이 가져오는 생활에도 온전히 몸을 실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짧은 흐름에 몸을 싣고 긴 흐름을 잊지 않는 방법을 취했습니다. 처음에는 물과 기름처럼 짧고 긴 흐름이 잘 섞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짧은 흐름과 긴 흐름을 섞는 방법이 경묘해졌습니다. 평소에는 개체의 생활이라는 짧은 흐름에 충실하다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기로에 서면 모든 개체에게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긴 흐름을 기준 삼았습니다.이것이 삶의 본질을 죽음이라는 허무에 빠트리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이면서도 하루하루의 생활을 열심히 해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제야 제 마음의 많은 번민과 갈등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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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가 존재의 조건인 것처럼 죽음은 삶을 삶답게 하는 전제입니다. 죽음이 없다면 삶은 어떤 평이하고 지루한 상태의 연속으로, 그 참다운 의미를 잃고 말 것입니다. 삶은 죽음 때문에 유한하지만, 또한 그 죽음으로 인해 무한에 비견되는 의미를 되찾게 됩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느끼려는 의지가 제게 자연 속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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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박수용 저 | 김영사

저자는 시베리아에 살면 시베리아호랑이, 한반도에 살면 한반도호랑이 혹은 백두산호랑이라 불리는 우수리와 만주, 한반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호랑이들을 밀착 취재해 왔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만난 '블러디 메리'라는 16세기 영국 여왕의 별명(사냥할 때 주변을 온통 피투성이로 만든다고 해선 붙여진 이름)을 이름으로 살아가는 암호랑이 3대 가족의 삶과 죽음, 생존을 향한 강렬한 투쟁을 직접 보고 관찰한 기록이다...

 



정철 “문재인을 도울 수 있어 고마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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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개새끼입니다』을 출간한 정철은 1985년 MBC 애드컴에서 카피라이터를 시작하여 하이트 맥주, 기아자동차, 이랜드, 삼양라면, 프렌치카페 등의 카피를 히트시킨 우리나라 대표 카피라이터다. 언젠가부터 그의 이름은  ‘촛불 카피라이터’, ‘노무현 카피라이터’라는 수식어와 함께 쓰여지더니,  2012년 현재 그의 이름 앞에는 ‘국민이 광고주’라는 말이 있다.

 
그의 책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것은, 글의 아름다움이다. 버트런트 러셀처럼, 피터 싱어처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하나 하나 따져가며 힘있게 몰고 가는 글이 있는 가하면, 그의 카피처럼 어떤 상황들이 단 한마디 문장에 녹여져있기도 하다. 길이로 따지자면 대척점에 있을 이 두 가지 경우의 글은, 모두 똑 같이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하게 만든다.

 

무엇이 감탄하게 만드는가. 결국, 글로 표현해내고자 하는 대상에 대하여 얼마큼 관찰했는가, 그리고 옳다고 믿는가, 애정을 갖고 있는가이다. 그 마음이 진실하게 다가오면, 설사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하여 반대 의견을 갖고 있거나 관심이 없어도 우선은 그가 하는 말을 한번쯤 들어보고자 애쓰게 된다. 그런 점에서 카피라이터 정철이 그간 해왔던 일련의 작업들은 매우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부산 사상구에 있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부산

 

요즘 부산에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부산이라는 도시, 그리고 부산 사람 어떻습니까?

 

 

부산에 있다기보다는 사상에 있습니다. 사상구가 문재인 후보가 출마한 지역이라 거의 그곳에 있습니다. 낙동강가에 있어 바다를 볼 수 없는 곳이지요. 부산에 내려온 지 두 달이 훨씬 넘었는데 얼마 전 영도에 강연이 있어 거기 가다가 택시 차창 밖으로 언뜻 본 바다가 제가 본 전부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부산 하면 바다를 떠올리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대신 우럭매운탕이나 가자미쑥국을 떠올릴 것입니다. ^^*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 사물이나 현상을 보는 눈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 성급한 일반화는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배웁니다. 부산 사람.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하루하루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 그렇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는 사람. 그런 사람들입니다. 조금 무뚝뚝하다지만 그것이 다른 지역과 확연한 차이가 날 정도는 아닌 듯합니다.


바람이 다르다

 

문재인 후보 선거 구호가 “바람이 다르다”입니다. 이 카피는 어떻게 나왔나요?

 

 

여기에서 바람은 두 가지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wind라는 뜻의 바람. 지난 20년 동안 부산은 막대기도 한나라당 달고 출마하면 당선된다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조금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20년 동안 부산은 조금도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했다는 공감대가 바람을 만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바람의 강도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바람의 방향도 다르다는 뜻입니다. 낙동강에서 불기 시작해 남동풍이 되어 수도권으로 분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는 hope라는 뜻의 바람. 부산 시민들의 바람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부자들 세금 깎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 일자리가 더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 99%가 잘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지역주의에 기댄 정당은 혼내줘야 한다는 바람. 이런 바람(hope)들이 바람(wind)이 되어 불기 시작했으니, 그 중심에 문재인이 있으니 바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왜?

 

왜 부산까지 내려가 문재인 후보를 위해 일을 하고 있습니까?

 

 

저도 바람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지난 4년 대한민국을 후퇴시킨 이 정권은 더 이상 연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줄 사람이 바로 문재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이 살아온 인생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곳이 부산이든 광주든 제주든 기꺼이 내려갔을 것입니다. 내게 그를 도울 기회가 주어졌다는 게 오히려 고마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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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

 

카피라이터는 현대 사회가 낳은 철학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표현해내야 하는 대상을 관찰하고, 그 본질을 성찰해야 한다는 점에서요.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에 대하여 얘기해주세요.

 

 

철학자라는 말은 과분합니다. 다만 대상을 관찰하고 본질을 성찰한다는 말에는 거의 동의합니다. 카피라이터는 말과 글을 잘 가지고 노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기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서 공감을 얻어내고 또 그 사람을 설득하려면 기술보다는 가슴을 카피에 담아야 하니까요. 따라서 카피라이터는 사람을 관찰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을 관찰하는 눈이 따뜻할수록, 관찰의 시간이 길고 깊을수록 가슴을 울리는 좋은 카피를 만들어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촌철살인

 

어떤 상황을 한 문장으로 딱 들어맞게 표현해낸 것을 보면 쾌감을 느낍니다. 이러한 촌철살인의 능력은 어떻게 기르셨나요?

 

 

역시 관찰과 발견입니다. 깊은 관찰, 꼼꼼한 관찰이 두루뭉수리한 답이 아니라 핵심을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 군더더기를 걷어내는 노력이 더해져야지요. 모든 카피라이터들은 간결한 카피를 찾아내기 위해 카피를 쓰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자신이 쓴 카피를 다시 읽으며 걷어내는 훈련이 잘 되어 있습니다. 쓴다. 그 다음은 지운다. 이 과정을 거치며 촌철살인이라고 칭해지는 한 줄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이는 어느 정도 훈련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을 기르는 일은 정해진 훈련만으로는 조금 부족할지 모릅니다. 늘 말과 글을 가지고 노는 게 중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는 일이 즐거워야 할 것입니다.




 

겉에서 보여지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돈을 위해서 일련의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인상입니다. 돈은 어떻게 버시는지요.

 

 

돈을 위해 일합니다.^^* 카피라이터니까 카피를 써서 돈을 법니다. 책이 팔리면 받는 인세도 꽤 됩니다. 거기에 원고청탁이나 강연요청이 오면 그것도 돈이 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삽니다. 겉에서 보이는 모습이 그렇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착시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경우에 따라 돈을 받지 않고 카피 쓰고 강연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건 돈을 버는 일보다 사람을 버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 나름의 조그마한 재능기부 같은 의미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재능기부 하고 사는 사람들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노무현

 

왜 전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십니까?

 

 

지난 2002년 대통령선거. 광주경선. 노무현 후보가 1등 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날 저는 인터넷으로 광주경선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누구를 꼭 응원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노무현이 1등을 하는 순간 제가 울고 있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저 사람은 나랑 아무 관계가 없는데 내가 울다니. 왜 울지? 이 눈물이 뭐지? 얼마 후 나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노무현 후보가 내게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노무현은 그날 내게 이렇게 묻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너 지금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거니? 그 질문은 나를 많이 변화시켰습니다. 그 질문은 정글 같은 전쟁터에서 늘 이기기 위해 살아온 내게 아픈 매였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노무현의 질문에 부끄럽지 않은 대답을 하며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국 내가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세상을 바꿨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바꿨기 때문입니다. 고마움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리움입니다.


얼마큼

 

전 노무현 대통령을 얼마큼 좋아하십니까?

 

 

노무현의 친구인 문재인이 운명처럼 받아 든 정치라는 결단을 돕기 위해 부산에 내려와 석 달을 고스란히 투자할 만큼 좋아합니다. 노무현의 친구에게까지 모든 걸 투자할 만큼 노무현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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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 『나는 개새끼입니다』를 어떤 마음으로 출간하셨습니까, 그리고 또 책을 내실 건가요? 내실 거라면 어떤 책을 내실 건가요?

 

 

책의 서문에 밝혔지만 이 정권에 돌멩이를 드는 마음으로 이 책을 냈습니다. 나 자신에게 돌멩이를 드는 마음으로 이 책을 냈습니다. 청춘들이 이 책을 읽고 투표장으로 달려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정치적인 메시지를 강하게 담은 책은 다시는 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냈습니다. 이런 책이 나올 필요 없는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냈습니다. 물론 책을 또 쓸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에 나올 책은 많이 따뜻한 책일 것입니다. 풍경화 같은. 수채화 같은. 세상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는 그런 책.





 

인간 ‘정철’의 꿈은 무엇입니까?

 

 

사람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 이야기를 한다면 글입니다. 오래도록 글을 쓰며 살 수 있었으면 하는 게 꿈입니다. 그리고 책입니다. 1년에 한 권씩은 책을 쓸 수 있었으면 하는 게 꿈입니다. 물론 글도 책도 변함없이 사람 사는 세상에 시선이 맞춰져 있었으면 하는 게 제 욕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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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새끼입니다정철 저 | 리더스북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사회적 모순과 몰지각한 권력에 대한 유쾌한 저항을 담은 책이다. 국민이 광고주인 카피라이터로 알려진 정철은 “아니오! 라고 말하지 않는 청춘은 죽은 청춘이다!”라고 말하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모든 부조리와 모순들을 카피라이터 특유의 절제된 언어로 하나씩 비판한다. 4대강 사업, FTA, 돈봉투, 반값 등록금 등 정치이슈부터 20대 취업난, 노후 복지, 교육과 의료 문제에 이르기까지, 2012년을 살아가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재해석하고, 그에 합당한 국민적 태도를 유쾌하게 풀어놓았다.

 




“우리가 힘 모으면 아파트 집값 확실히 떨어집니다” - 이원재 한겨레 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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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을 아는가? 195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20세기 지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영국의 철학자이자 언어학자, 사회학자이다. 『행복의 정복』, 『인간과 그밖의 것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러셀 서양철학사』와 같은 책들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단기간 가장 많이 읽힌 러셀의 책은 『행복의 정복』이다. 개그맨 김제동 씨가 어떤 인터뷰에서 이 책을 추천한 덕분에 러셀의 지적 매력을 경험한 한국 독자가 그만큼 많아진 것. 오늘 채널예스에서 10문 10답을 통해 여러분에게 소개하려는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의 책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을 읽으며 필자는 버트란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떠올렸다. 물론 책 속에 담긴 내용 때문이 아니다.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은 삼성, 현대와 같은 대기업은 계속 돈을 버는데 반해,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는 현실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경제교양서이다. 그렇다면 두 권의 책은 어떤 유사점이 있는가?

자신의 주장을 풀어나가는 방식과 그 설득 안에 담긴 열정이다. 러셀은 『행복의 정복』에서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순진하면서도 단순한 물음에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모든 경우들을 하나씩 언급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드디어 행복하게 되는 방법을 ‘정복’해낸다. 이 과정에서 묘하게도 느껴지는 것은 버셀의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다.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은 어떤가? 대기업이 성장하면 시민들의 삶도 함께 성장하리라는 믿음을 순창고추장, 현대중공업 등의 사례를 통해 깨끗하게 깨뜨린다. 또 그간 경제학이 발전해올 수 있었던 중요한 전제였던 “인간은 이기적 존재”가 근거 없는 넌센스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렇게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우리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경제적 환경과 프레임을 분석해내지만, 저자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경쟁하면 이기고 협력하면 진다는 이상한 경제를 넘는 것, 즉 선한 사람이 성공하는 경제이다.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저자의 이러한 마음은 뜨겁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위대한 이상주의자들의 마음은 뜨거웠다는 것이 선대가 남긴, 그리고 여전히 유효한 교훈 중의 하나인 것을.


각성

 

우리들은 지금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이 지배하는 곳에서 살고 있구나, 라고 각성했던 계기가 있었습니까?

 

저는 서울이 고향입니다. 지금도 어릴 적 살던 그 동네에 삽니다. 우리 아이와는 초등학교 선후배 사이입니다. 어느 날 문득 동네 한 바퀴를 돌아봤습니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으면서요. 물론 기억 속 동네의 대부분 사라졌더군요. 자주 가던 레코드점도 없었습니다. 가게 자리에는 빌딩이 들어섰고요. 두부공장도 문방구도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릴 적 자주 들러 책을 사던 동네 책방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밀고 서점에 들어섰지요. 그랬더니 놀랍게도 예전의 책방 주인 아저씨, 그 책 좋아하던 사람이,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던 것처럼 그 자리에 서 있더군요.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오랜만이네.” 주인 아저씨가 저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 것이지요.

참 이상한 경험이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생각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경제구나. 같은 자리에서 20년 책방을 하고 있는 사람이 왜 이상한 것이지?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것 아닌가?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이 나라가 이상한 게 아닐까? 어릴 적 우리 마을 공동체의 모습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그 경제가 이상한 것이 아닐까?

이상한 경제현상을 들이대자면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기업은 점점 커지는데 개인은 점점 가난해지는 부자 기업, 가난한 국민의 경제에 살고 있습니다. 수출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지만 일자리는 늘지 않는 경제를 만들어 왔습니다. 두부 한 모를 사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대형마트로 달려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제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일을 생업 삼아 평생 할 수 있는 자유가 사라진 것, 그게 가장 이상한 일 아닐까요?


불안

 

책을 다 읽고 느낀 첫 번째 감정은 불안이었습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뭔가 잘못 되었으며, 그래서 바뀌어야 한다는 당위에서 야기되는 그런 불안함 말입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안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칫하면 내가 루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입니다. 이것은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입니다. 지금 더 벌고 더 빼앗아서 쌓아두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존본능에 입각한 탐욕을 불러오는 불안입니다. 절망적 불안이지요.

다른 하나는 세상이 이대로 가면 모두 루저가 된다는 불안입니다. 이것은 사실 영혼을 일깨우는 불안입니다. 잘못된 세상을 지금 다 같이 바꾸자는 에너지를 불러오는 불안입니다. 희망찬 불안이지요.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당위, 그것은 가슴 뛰는 일입니다. 그런 불안은 즐기세요.


무엇이?

 

작가 님께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경제 상식의 많은 부분이 사실 이상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대표적인 예를 한 가지를 말씀해주셔서 독자의 이해를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기심을 줄이고 이타적이 되려고 노력해라. 친구들과는 사이 좋게 지내고 맛있는 것은 나누어 먹어라. 잘못을 했다면 먼저 사과해라.’ 그런데 경제에 대해서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경쟁이 좋은 것이고 협력이 나쁜 것이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이므로, 나도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장사를 하다 보면 속이고 편법을 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심지어 경제학자들은 이야기하지요. 이기적으로 행동하다 보면 시장원리에 따라 모두가 잘 살게 된다고요.

왜 경제에서는 협력하면 안 되나요? 모두가 의논해서 빚 내서 아파트 사대는 일을 중지하면 안 되나요? 그러면 집값이 자연스레 떨어질 텐데요. 모두가 윤리적으로 영업을 하면, 모든 기업의 영업비용이 줄어들게 될 텐데요. 모두가 행복한 게임이지요.


왜?

 

왜 기존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이기심을 추구하는 이기적 존재로 전제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갔을까요?

 

대단한 철학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개인주의적 합리성은 경제학의 가정일 뿐입니다. 결론이 아닙니다. 왜 그렇게 가정했느냐고요? 그냥 그렇게 하는 편이 수치화하고 이론화하기 쉬우니까요. 극단적으로 이기적이지도 않고 완전히 이타적인 것도 아닌, 애매한 인간의 선택을 이론화하기는 어렵지요.

처음에는 이렇게 편의상 가정했던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가정을 따라서 행동해야 하는 것처럼 가르친 게 경제학의 실수입니다.


인간의 본성

 

소장님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게십니까? 이기심보다 이타심이 클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린애 같은 질문이네요. 저 사람 착한 사람이야, 나쁜 사람이야? 이런 종류의 질문이지요. 당연히 인간은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합니다. 또 많은 경우 그 사이에 있는 ‘상호적’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환경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지요. 인간이 이타적인 선택을 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정책과 제도의 역할입니다. 지금은 이기심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사회 제도가 짜여져 있지요.


착한 기업과 좋은 경영

 

착한 기업은 무엇이고 좋은 경영은 무엇입니까?

 

‘빵굼터’라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사용하던 우리 동네 빵집이 어느 날 간판을 바꿨습니다. 빵집 주인 아저씨 본인이 작명한 브랜드로요. 프랜차이즈에서 탈퇴한 것이지요.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빵을 직접 굽고 싶은데, 보내주는 빵을 팔라고 해서요.”

허름한 그 빵집 바로 옆에는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던킨도너츠가 들어선 상태였습니다. 자기만의 빵을 직접 구워서 동네 주민들의 선택을 받겠다는 결기가 느껴졌습니다. 돈 때문이라면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들어가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지 모르지요.

우리 동네 커피전문점 한 군데는 사회복지법인에서 투자해 운영합니다. 가출한 청소년들이 커피점을 직접 운영하게 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 청소년들이 고객과 대화하는 법을 익히고 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 손바닥만한 커피점은 스타벅스와 카페베네 같은 영리 커피전문점 사이에 우뚝 서 있습니다. 돈 때문이라면, 시간제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겠지요.

돈 때문에 대형 프랜차이즈에 들어가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게 좋은 경영이라는 생각입니다. 돈 때문에 경영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경영하는 것. 돈 때문에 경영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경영하는 것. 고객과 지역사회를 위해 경영하는 것. 돈은 그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 그게 좋은 경영이고, 좋은 경영을 하는 기업이 착한 기업입니다.


경쟁력

 

착한 기업, 그리고 좋은 경영은 실제로 경쟁력이 있습니까? 좋은 경영을 하는 착한 기업의 비중이 50%가 되었다고 했을 때,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착하게 살아서 성공하겠느냐는 질문을 늘 받게 되지요. 저는 이렇게 대답할래요. 어차피 성공은 어렵습니다. 악하게 해도 실패할 수 있고, 착하게 해도 성공할 수 있겠지요.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겠고요. 불확실성의 영역입니다.

확실한 것은 이겁니다. 성공했을 때, 그것이 어떤 성공이었느냐. 착한 성공이 더 끌리지 않으세요? 착한 기업의 비중이 50%가 되면, 착한 성공을 하는 사람이 훨씬 더 늘어나는 멋진 나라가 되겠지요.

경쟁력이라… 굳이 구차하게 예를 들자면 사례는 많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뒤 유럽에서는 대부분 금융사가 위기를 맞은 가운데 협동조합 은행만 튼튼합니다. 한국에서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성공이냐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니까요.


실행

 

이 책을 읽고 느낀 두 번째 감정은 ‘그래서 어떻게 하지?’ 입니다. 착한 경제를 실현시키기 위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네 독립 브랜드 빵집에서 빵을 사세요. 친환경 유기농 제품이나 사회적기업 제품을 사세요. 생활협동조합에서 쇼핑을 하시고요. 종이를 덜 쓰시고요. 신용카드를 자제하십시오.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시고요. 지역 사회단체가 있다면 적극 참여해 활동하십시오. 부정부패나 노동자 안전 문제나 환경파괴 같은 문제에 연루되었던 기업 제품이라면, 한번 더 생각해 보고 구매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꼭 투표하세요. 착한 경제를 지지하는 후보에게요.


조언

 

올해는 대선이 있습니다. 착한 경제에 대한 촉과 실행 의지가 있는 대통령 후보를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알려주시면 큰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착한 경제의 중심 축은 시민사회가 될 것입니다. 사회적기업도 협동조합도 시민사회단체들이 주도해서 만들어내야 합니다. 시민사회단체, NGO들의 이야기를 잘 청취하고 대화할 수 있는 후보인지를 가려보는 것은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주변의 경제학자들이 낡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도 좋은 기준입니다. 국가 개입을 반대하고, 시민단체를 싫어하며, 시장과 대기업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외치는 경제학자들은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대통령 후보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꿈꾸는 세상

 

책을 읽다 보면 소장 님이 꿈꾸는 세상이 있으실 거 같습니다. 소장님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입니까? 그 세상을 위해 특별히 하고 있는 활동이 있습니까.

 

꿈꾸는 세상이라… 착한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이라고 할까요? 활동이요? 열심히 책을 쓰고 있습니다. 다니면서 강연을 하고 있고요. 방송 출연을 하고 있고요. 뭔가 더 할 일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트위터 @wonjae_lee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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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이원재 저 | 어크로스

경제는 성장했다고 하는데 삶은 더 팍팍해지고 어려워질까? 우리가 신봉하고 있는 ‘탐욕의 질서’ 그리고 ‘성장과 번영의 패러다임’이 세계를 어떻게 지배하고 어떻게 ‘예고된 대몰락’으로 몰아가고 있을까? 왜 세계의 0.01%라고 하는 하버드 대학생들이 기존 주류 경제학 수업의 상징인 맨큐의 경제학 수업을 거부했을까? 등등의 물음에 얼마나 확신을 갖고 대답할 수 있는가. 대중들이 안철수와 스티브 잡스에 열광하는 본심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이상한 나라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총기난사로 77명 희생된 ‘순진한 나라’ 노르웨이의 비극 - 요 네스뵈 『스노우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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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추리 소설이 인기다. 아서 코난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양대 산맥이 이끄는 영미 추리소설을 약간은 기이하고, 낯설고, 으스스한 북유럽 추리 소설이 추격하고 있다. 스웨덴과 덴마크, 노르웨이, 그리고 아이슬란드의 소설을 통칭한 북유럽 추리소설은 눈이 덮인 풍경과 혹독한 추위를 배경으로 복지국가의 평화로운 모습 뒤에 숨은 범죄의 그림자를 다루는 게 특징이다. 여기에 완벽하기는 커녕 인간적인, 가끔은 초라하기까지 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북유럽 추리소설 열풍의 시작은 2011년 재출간된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시리즈다. 기자 출신 작가 라르손의 유작이기도 하며 북유럽을 시작으로 유럽과 영미를 휩쓸고 지난해 영화로 제작됐다.

북유럽의 인기 추리소설 작가를 읊어본다면 크옐 에릭손, 하칸 네세르, 애사 라르손, 오케 에르바르드손, 리자 마르클룬드, 마리 융스테드트 등이 있겠으나 가장 인기 있는 작가는 요 네스뵈. 요 네스뵈는 노르웨이의 국민작가로 불릴 만큼, 그의 작품은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른다고 한다. 이 인기는 자국 노르웨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럽 각국의 서점가에서 ‘다시 없을 최고의 소설’ ‘올해의 소설’로 거의 매년 선정이 된단다.

북유럽 소설 특유의 분위기에, 스티븐 킹을 연상시키는 스토리텔링과 레이먼드 챈들러를 연상시키는 하드보일드적 요소가 어울러져, 오직 요 네스뵈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세계를 구축해내고 있는 이 비범한 작가를 채널예스가 서면으로 만나보았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지금, 그의 추리소설로 더운 밤을 시원하게 새보는 것은 어떨까.




노르웨이

 

한국 사람들은 노르웨이를 복지정책이 아주 잘 되어 있고, 자살률이 높은 나라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데요, 작가 님께 노르웨이 소개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북유럽의 작은 나라죠. 전 그 작은 나라의 무명 작가이고요 (웃음) 노르웨이에 관한 정보라면 백과사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특별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범죄는 어디서든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이곳의 사회 안전망은 훌륭하고 문화 수준이나 삶의 질도 높지만, 정신적 공허감이나 겨울만큼 깊은 고독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제 작품에도 언급됩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노르웨이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좋은 나라, 오래된 나라, 지나치게 순진한 나라.

해리 홀레가 성장할 때의 노르웨이는 ‘순진한 나라’의 측면이 더 강했겠지요. 지금은 그보다는 덜합니다. 지난해 극단적 인종차별주의자에 의해 77명이 희생된 총기난사 사건 이후에는 완전히 달라졌고요. 2000년에 발표한 소설『The Redbreast』에서 묻지마 식의 대량살인을 다룬 적이 있었는데, 현실은 소설보다 잔혹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노르웨이는 여전히 순수합니다. 이 순수성은 소설가에게는 매우 유리한 덕목인데요, 어쩌면 이 순수성이 스칸디나비아 스릴러가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는 주요 요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에서 살해당했다고 칩시다. 그를 아는 모든 친지들에게 이 살인사건은 여전히 엄청난 쇼크일 것입니다. 전 세계 어느 곳보다 살인사건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나라가 바로 노르웨이입니다.


해리 홀레

 

아무래도 ‘해리 홀레’라는 인물에 대하여 질문을 안 드릴수가 없는데요, ‘해리 홀레’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요.

 

해리 홀레의 탄생에는 저를 포함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선, ‘홀레 아저씨’가 있겠네요. 저희 할머니가 사는 마을의 경찰관 ‘올라브 홀레’씨인데, 제가 어렸을 때 말썽을 피우면 할머니가 곧잘 “홀레 아저씨가 잡으러 온다!” 하고 겁을 주시곤 했어요. 그 외에도 헨릭 입센의 ‘브랜드’,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찰스 부코스키의 ‘헨리 치나스키’와 같은 소설 속 주인공들도 홀레의 탄생에 일조했고요.


알코올중독

 

해리 홀레가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알코올중독자에 일중독자라는 점입니다. 그를 이렇게 그리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해리 홀레 시리즈에 착수하면서 제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바로 ‘아킬레스건’입니다. 마음속에 내재된 어떤 악마성이라고나 할까요? 외모나 행동, 언어를 통한 외적 표현 외에도 내적 긴장감을 늘 팽팽하게 유지시키려 했습니다.

해리를 굳이 알코홀릭으로 만든 건 바로 그래서입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익숙한, 클리셰적 이미지를 원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미국 탐정들은 대체적으로 대단히 쿨하죠. 하지만 해리의 성격은 오히려 찌질한 편에 가깝죠. (웃음) 해리에게 있어 알코올은 ‘슈퍼맨’의 크립토나이트(외계에서 온 녹색 돌로 슈퍼맨의 유일한 약점이다) 같은 존재입니다.


『스노우맨』1

 

『스노우맨』이 전세계적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스노우맨』을 착상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아는 사람이 영화를 제작한다며 영화 제목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스노우맨』이라는 제목을 제공했고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영화였거든요. (웃음) 하지만 어째서인지 ‘눈사람’이라는 단어가 뇌리에서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여느 집의 정원에 놓인 눈사람, 바깥에서 돌아와 입김을 뿜으며 아이를 칭찬해주는 엄마, 하지만 놀라서 굳어져버리고 마는 아이, 그리고 눈사람을 만든 적 없다는 아이의 대답… 이런 것들에 대해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스노우맨』2

 

『스노우맨』은 작가님께 어떤 작품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스노우맨』을 보고 내용이 상당히 ‘세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스노우맨에 ‘피’가 나오는 장면은 사실 많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스노우맨』을 집필하면서 제가 원했던 것은 피로 물든 뜨거운 스릴이 아닌 눈의 맛, 눈의 냄새까지 전하는 서늘한 스릴이었습니다. 폭폭, 무릎까지 올라오는 눈을 밟는 느낌과 질척거리는 눈의 뒷맛까지 전해드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다양한 직업 그리고 글쓰기

 

뮤지션, 경제학자 등 다양한 일들을 하고 계시는 프로필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그리고 많은 일 중에서 ‘글쓰기’ 혹은 ‘소설 쓰기’는 작가님께 어떤 의미입니까.

 

음악을 듣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생각도 자유로워집니다. 제게 음악은 긴장을 풀어주는 특효약과도 같습니다.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아마 못 했을 겁니다. 그에 비해 글쓰기란 상상력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므로 늘 어떤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지요.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음악보다 작품 활동이 우선입니다.

꼭 뮤지션이나 경제학자로서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성격과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동기를 가지고 어떻게 일을 하는지 지켜보는 일은 작가에게 강한 영감을 선사합니다. 병원이든 출판사든 경찰서이든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서성거리며 관찰하고 또 관찰했습니다. 어쩌면 작가에게는 모든 종류의 직업이 유용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직업들을 생각하면, 제가 가장 좋아했던 일은 택시 운전사였습니다. 조그만 택시를 몰아 제가 사는 동네를 몇 시간이고 돌아다녔죠. 그 안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이 가진 이야기를 파고들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해리 홀레의 캐릭터를 구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영향 받은 작품

 

작가 님께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만한 작가나 작품이 있으십니까.

 

나보코브의 『롤리타』, 짐 톰슨의 『내 안의 살인마』, 크누트 함순의 『판』, 찰스 부코스키의 『호밀빵 위의 햄』등을 특히 좋아합니다. 같이 글을 쓰던 친구들이 속속 데뷔하는 것을 보며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계속 책을 읽으면서 글 쓰는 것을 최대한 나중으로 미뤘습니다. 도저히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만큼 글이 쓰고 싶어졌을 때, 정말 미친 사람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죠.


가치

 

작가 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사랑? 혹은 연대?

 

해리 홀레 식으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인생의 목표는 악(惡)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젊은이를 향한 메시지

 

Stephane Hessel의 『분노하라』라는 책을 아시는지요. 젊은이들에게 사회 양극화, 외국 이민자에 대한 차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 등에 저항할 것을 주문한 책으로, 한국에서도 큰 호응을 얻은 책입니다. 이런 점이 시사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시대의 삶이 팍팍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텐데요.. 행복보다는 불행이 더 당연스레 여겨지는 삶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작가 님의 메세지를 부탁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폭탄선언을 하나 했습니다. “우리 집 파산했다.”라는 내용이었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는 존경받을 만한 분이고, 빚을 모두 갚을 수 있다고 장담하셨죠. 그 후로 집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때 부모님은 빚을 컨트롤할 만한 여건이 되지 않으셨던 거죠. 이러다가 길바닥에 나앉으면 어쩌나, 어린 마음에 걱정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의 경험이 머리가 굵어진 지금까지도 제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또 이런 경험도 있습니다. 열일곱 살에 배낭 하나 메고 석 달 동안 세계 여행을 다녔습니다. 쿠데타, 암살, 기아, 학살, 쓰나미, 그리고 빈부의 격차를 두루 겪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모든 사람의 물질적 필요가 고르게 충족되는 곳이 노르웨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총기난사 사건이 나라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어버렸고, 그 점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한 사람의 개인이 사회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서로 돕고 공동체를 만들고 연대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우리 사회가 늘 행복한 사회보다는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소설 <스노우맨> 소개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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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요 네스뵈 저/노진선 역 | 비채

인기 작가 마이클 코넬리와 제임스 엘로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와 주인공’으로 서슴없이 꼽으며, 외국소설 안 읽기로 유명한 영국 서점가에서 석 달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른 글로벌 화제작, 인구 450만의 노르웨이에서 150만 명이 읽는 등 스칸디나비아는 물론, 유럽 각국과 영미권 독자들까지 단숨에 사로잡은 냉혹하고 뜨거운 소설이다. 이야기는 첫 눈이 내리는 오슬로의 풍경으로 시작된다…



‘국민 전자책’ 크레마, 30만 명 이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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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간의 예약판매 기간 동안 4,000여대의 판매고를 올리며 전자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까지 그 관심이 확대되고 있는 ‘크레마 터치’. ‘크레마 터치’ 제작 전 과정을 총괄한 김병희 선임팀장(예스24 디지털사업본부 선임팀장)에게 제작 경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병희 선임팀장은 고려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2010년 7월부터 예스24 디지털본부를 총괄하고 있다.


국민 전자책

 

크레마는 어떤 기계입니까?

 

크레마의 캐치프레이즈는 ‘국민 전자책’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전자책 예스24 크레마 터치’죠. 이 ‘국민 전자책’이라는 표현에 기획 의도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크레마와 비슷한 화면과 용도의 전자책 리더가 한국에 처음 출시된 게 2007년입니다. 그 이후에 이러저러한 기기들이 나왔죠. 거의 모두 써봤는데, 이 기기들은 모두 치우치거나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무선 통신을 이용할 수 있지만 무겁거나, 저렴하지만 복잡한 쿼티 자판이 붙어 있거나, 이것저것 기능을 갖추고 있는데 무척 비싸거나.

판매자 입장이 아니라 독자 입장에서 뭐 하나 부족한 점이 없는 물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돈 주고 사는 분께 변명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이건 싸잖아요.’나 ‘이 정도 기능을 쓰시려면 돈 좀 내셔야죠.’라고 말해야 하는 기계는 안 되죠. 그래서 목표로 삼았던 게 밸런스입니다. 기능, 디자인, 가격이 기계를 평가하는 요소들인데, 한쪽에 신경 쓰면 다른 한쪽에 문제가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이 세 가지가 비슷한 수준에서 딱 맞아떨어지는 지점, 그 지점에서 밸런스가 딱 맞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터치 스크린 입력 방식으로 깔끔하게 디자인하고 wifi 통신망을 활용할 수 있으면서 12개월 무이자 할부 구매 시 월 1만 900원, 이게 크레마입니다.



크레마1.jpg




많이 팔릴 것 같지 않은가요?

 

왜 만드신 겁니까? 비슷한 크기의 컬러 태블릿 PC들이 많이 나왔는데, 늦은 것 아닌가요?

 

안 그래도 최근에 전자책 업계에 오래 계셨던 분이 비슷한 질문을 하시더군요. ‘많이 팔 수 있을 것 같아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많이 팔릴 것 같지 않은가요?

사실 킨들이나 누크 같은 다른 나라 전자책 단말기가 부러웠던 게 출발입니다. 책 좀 읽는 분들은 딱 아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종이책 분위기가 나는 화면이 우선 매력적이죠. LCD가 주지 못하는 게 분명히 있어요. 가볍고 배터리도 오래 가죠. 구매, 다운로드, 독서까지 한 기계 안에서 끝나는 것도 편하고요.

그런데 문제는, 독자들은 ‘무엇’을 읽고 싶어 하는 거지, 그걸 무엇으로 읽든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전자책 독자로서 제게는 올해가 2006년인지 2012년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전자책이 몇 권 만들어져 있는지, 그래서 제 선택권이 얼마나 넓어져있는지가 관건이죠. 지금까지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는 한국어 단행본이 6만 권 정도인 것 같아요. 올해는 최소한 2만권 이상의 신간이 더 만들어질 것 같고요. 내심 3, 4만 권까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전자책을 검색할 때, ‘혹시 있을까?’하고 검색하는 게 아니고, ‘전자책은 종이책보다 얼마나 더 쌀까?’라고 생각하면서 책 제목을 검색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이 정도면 전자책 전용 기계를 따로 살 만한 거죠.

아, 그리고 정확하게는 제가 만든 게 아니고요. 예스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 10개 출판 관련 주주사들이 출자한 한국이퍼브에서 만든 겁니다.




김병희 예스24 디지털본부 선임팀장



어디서 사든, 크레마에서 읽을 수 있어요.

 

한국이퍼브가 만든 기계라는 게 독자에겐 무슨 의미가 있나요?

 

예스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에서 구매한 전자책은 모두 크레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서점마다 거의 비슷한 전자책을 판매하고 있지만, 갈수록 차이가 날 겁니다. 개인 출판, 연재 컨텐츠를 서점마다 상황에 맞게 전자책으로 만들겠죠. 또, 같은 책이라도 가격이 다를 수도 있고요. 그럴 때 선택권을 독자에게 드리는 겁니다. 어디서 구매하든 크레마에서 읽을 수 있으니까요.

한국이퍼브는 전자책 컨텐츠와 서비스를 만들어왔고, 이제는 전자책 전용 기계까지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자책을 서점마다 다른 방식으로 소개하고 판매하겠죠. 서점이 가장 잘 하는 게 책 소개와 판매죠. 한국이퍼브는 한국이퍼브가 가장 잘 하는 걸 하고, 서점은 또 서점이 가장 잘 하는 걸 하는 거죠.


50대의 테스트 기기를 만들다

 

본격적으로 기획하신 건 언제부터입니까?

 

2011년 8월부터 기기 업체들을 만났습니다. 페이지원을 만든 경험이 있는 넥스트 파피루스와 계약하고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2012년 1월입니다. 7월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많이 늦어졌습니다. 그 동안 말로만 듣던 멘붕 상태를 몇 차례 경험했습니다.

애초에는 테스트 기기 버전을 두 개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드웨어 업계가 대략 그 정도로 한다더군요. 게다가 운영체계가 어느 정도는 표준화 돼있는 안드로이드이고 한국 이퍼브나 예스24가 안드로이드 어플리케이션을 이미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쉽게 말하면 ‘eInk 패널을 탑재한 안드로이드 태블릿을 만들어서 예스24 어플리케이션을 싣는다’인데, 그게 할 일이 많더군요. 테스트 기기 버전이 결국 4개, 사소한 결함 수정까지 하면 5개 만들게 됐습니다. 버전이 5개지, 대수로 따지면 거의 50대가 됐죠.

wifi 감도, 터치 스크린 안정성 같은 항목은 사용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부분도 상당히 크거든요. 또, 통신망의 강도, 통신 서비스 브랜드 같은 것도 차이가 나고요. 그걸 테스트 하느라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


쓸 데 없는 건 안 한다

 

흰 색과 검은 색 두 가지를 내놓았습니다. 디자인 면에서 어떤 점을 주로 생각하신 건가요?

 

이전 다른 기기들은 ‘책의 느낌을 살린다’거나 ‘쥐기 편하게 한다’는 컨셉을 가지고 있는 걸 봤습니다. 크레마 디자인엔 ‘쓸 데 없는 건 안 한다’는 것 외엔 다른 컨셉이 없습니다. 크레마는 밤을 새워가면서 뭔가를 읽는 독자들에게 꼭 필요한 기계여야 하고, 밤 새워 읽을 땐 글자 외엔 다른 게 보이지도 않죠. 디자이너에게 죄송한 일일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이 기계 고유의 디자인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심지어 원래 크레마 로고 색상이 갈색인데, 기계에서는 회색으로 했습니다. 버튼도 그렇고요. 회색이 가장 눈에 안 띌 것 같더라고요. 굳이 컨셉이라고 하면 ‘책에 몰두할 때 가장 잘 사라지는 디자인’ 정도일 것 같습니다.

다만, 기기 케이스는 좀 튀는 색상을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오렌지 색도 있는데, 저는 그걸 쓰려고요.


‘스크린 세이버’ 화면을 가장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어떤 기능인가요?

 

좀 어이 없지만, 기계를 슬립 모드로 했을 때 나오는 ‘스크린 세이버’ 화면을 가장 좋아합니다. 민화 중에서 ‘책거리 민화’를 손 본 이미지입니다. 세밀화를 넣어보기도 하고 시 한 구절을 넣어보기도 했는데, 꽉 찬 느낌이 없고 깔끔해 보이지 않더라고요. eInk 패널 특성 상 먹으로 그린 고지도나 민화, 수묵화 이미지를 넣어봤는데 책거리 민화가 가장 좋더군요. 일단 책이 있고, 고즈넉하고, 익숙한 느낌이고요.

기계를 켰을 땐 글꼴 설정 화면이 좋아요. 글꼴을 12개나 넣어놔서 이것저것 골라서 적용해보는 맛이 있고, 뭔가 선택 사항이 많아서 마음대로 하는 맛이 있다고 할까.




김병희 선임팀장이 크레마 터치에서 가장 좋아하는 스크린세이버.
책거리 민화를 손 본 이미지다.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전자책

 

앞으로 후속 기기가 더 나올 예정인가요?

 

기계를 만드는 하드웨어 업체 분들은 기기를 시리즈로 만드는 데 관심이 크시더라고요. 어떤 기계를 만들고 나면 이걸 좀더 발전시켜보고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보는 게 당연한 일인 듯 싶더군요. 예스24는 하드웨어 업체도 아니고, 사실 크레마 터치를 판매해서 수익을 남기는 것도 아니거든요.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건 우리 서비스를 독자들이 얼마나 많이 이용하는가 하는 것이죠.

그러자면 하드웨어보다는 기계에 담긴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게 앞으로 오랫동안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기 기획 단계부터 주된 목표 중 하나가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전자책’이었습니다. 무선 통신 환경이라면 독자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업그레이드가 되는 기계라야 한다는 것이었죠.


30만 명이 목표

 

얼마나 판매될 것 같습니까?

 

저도 그게 참 궁금해요. 기기만 놓고 보면 안 팔릴 이유가 없지 않나 싶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면 얼마 안 팔릴 것 같기도 하거든요. 예스24 회원님들 중 한 해 동안 60만원 이상 책을 구입하시는 분들이 한 30만 명 정도거든요. 일단 이 분들은 전자책 기기 하나 사시면 1년 안에 본전은 뽑으시는 거죠. 이 30만 명께 드리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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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죽음’ 소재의 동화책을 쓴 이유는… - 책을 많이 쓰는 이유는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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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동화 작가 중에서 고정욱 작가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쓰는 양에서 그러한데 올해만 해도 『장애, 너는 누구니?』, 『코끼리를 만질 거야!』, 『개탐정 민철이』등 총 11권을 책을 썼다. 이렇게 다작을 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렇게 많은 책을 쓰는 건 제가 장애인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고정욱 작가를 채널예스가 서면으로 만났다.

고정욱 작가는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문학박사이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1급 지체 장애인으로, 장애인을 소재로 한 동화를 많이 발표했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가방 들어주는 아이』등의 대표작이 있으며 최근 죽음을 소재로 한 『여름 캠프에서 무슨 일이?』를 펴냈다.


성인 대상의 소설가나 저술가에로의 길도 있으셨을 거 같은데, 동화작가가 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장애인인 내가 결혼을 해서 애를 셋이나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쓰게 되었지요. 물론 아이들은 지금도 내 책의 일차독자이고요. 아이들이 재미없다고 하면 다시 씁니다. ^^


선생님의 동화를 읽다 보면, 요즘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무척 구체적으로 아시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교감을 꾸준히 하시는 것 같은데요, 실제로 어떠하신지요.

 

일년에 거의 200번 가까이 전국의 학교에 강연을 갑니다. 그러다 보니 초중고생들을 자주 접하게 되고 그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지요.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아는 것 같아요.





죽음을 소재로 한, 동화를 이번에 쓰셨습니다. 죽음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다루고 표현할까, 무척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특별히 유념하신 부분이 있으신지요.

 

죽음을 막연히 두려워하지 말고 좀 알아보자는 생각에서 쓰게 되었고요. 영혼의 존재, 삶과 죽음을 좀 더 고민하면 어린이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을 좀 더 소중히 여길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남의 삶도…. 생명의 소중함을 그리려 노력했습니다.


선생님이 이번 동화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꼭 전달하고 싶으셨던 죽음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입니까?

 

죽음 이후의 삶은 우리가 잘 모르지만 분명한 건 우리 삶이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유한한 삶을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살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죽음의 의미이고 가치입니다.





요즘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안쓰럽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예전보다 폭력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는 어린이도 있고, 공부하는 절대양이 훨씬 늘어나기도 하고, 무엇보다 옛날만큼 맘껏 놀지 못하고 크는 것 같습니다. 동화작가로서, 어린이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궁금합니다.

 

그 점 저도 안쓰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다면 뭐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대신 요즘 아이들은 좋은 혜택을 많이 누리니까요.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길 바랄 뿐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부모들에게, 선생님들에게 각각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 거 같습니다. ^^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별로 할 말 없는데요^^ 그래도 꼭 해야 할 말이 있다면 아이들 앞에서 어른들의 추하거나 나태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간혹 문제 있는 아이들을 만나보면 대개 그 문제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어른들에게 배운 것일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조심하고 삼가면서 그 아이들을 가급적 선하고 바른 방향으로 이끌었으면 합니다.


굉장히 많은 책을 내시고 계십니다. 이렇게 왕성하게 글을 쓰실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지요?(산삼이라도 드시는 것 아닌가요? ^^)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렇게 많은 책을 쓰는 건 제가 장애인이기 때문입니다. 장애의 고통과 아픔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내가 가진 재능이 더 감사하고 소중하지요. 그 재능과 열정을 죽음이 오기 전에 최대한 발휘하고 죽는 것이 저의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쓰다 보니 벌써 200권 가까이 썼네요^^


선생님이 살아오신 이야기가 많이 궁금합니다. 에세이를 내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앞으로 나이 좀 더 먹으면 자서전을 쓸 생각입니다. 아주 재미있어서 배꼽이 쏙 빠지는….그러면서 읽다 보면 눈물이 흐르는….


이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추천도서를 몇 권과 간단한 이유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톰 소여의 모험』-고아지만 절대 기죽지 않고 설치고 나대는 톰! 우리의 영웅이야!
『마당을 나온 암탉』-엄마의 모성애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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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선생님의 메시지, 들려주세요^^

 

어릴 때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아이들은 드물어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곧 나의 보물이고 나를 발전시키는 위대한 재료라는 걸 잊지 말고 노력해야 합니다. 독서 많이 하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단련해야 해요.





<고정욱 작가 대표 도서>



아주 특별한 우리 형

고정욱 글/송진헌 그림 | 대교출판

평범한 초등 3년생인 종민이가 그동안 알지도 못했던 뇌성마비 친형 종식이와 한 집에 살게 되면서 겪는 마음의 변화를 현실적이고도 감동스럽게 그리고 있다. 종민이는 장애아에 대한 기존의 편견에서 방황하다 마침내 마음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시각으로 장애인도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며, 똑같이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깨닫는다. 또한 책을 읽는 독자에게 장애인에 대한 시각, 가져야할 태도들을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장애는 단지 불편한 것일 뿐이며, 장애아를 낳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작가의 소망이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전달된다.





안내견, 탄실이

고정욱 글/김동성 그림 | 대교출판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추천도서’, ‘조선일보 선정 좋은책’으로 뽑힌 『나의 눈이 되어 준 안내견 탄실이』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웠던 장애인들을 마음속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든 책입니다. 화가의 꿈을 키워가던 한 소녀가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시력을 잃어버리게 되지만 '탄실이'라는 안내견을 만나면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길을 찾는 과정을 잔잔한 감동으로 그린 초등학생을 위한 장편동화입니다.





가방 들어주는 아이

고정욱 저/백남원 그림 | 사계절

같은 반 친구 중에 장애인 친구가 있습니까? 있다면 그 친구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나요. 혹시라도 한번도 마음을 열어본 적이 없지는 않나요? 장애인이라고 하여 나와 다른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은 한 없이 나쁜 마음을 먹게 한답니다. 지금이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로 친구가 되어 보세요. 두 팔에 목발을 짚고 다니는 영택이를 위해 같은 반 친구 석우는 매일 가방을 들어줍니다. 같은 반 아이들은 바보라고 놀리지만 석우는 영택이를 모른 척 할 수가 없습니다. 방학이 되어 영택이는 다리 수술을 하러 여수로 가고 돌아온 영택이의 모습은 목발을 두 개 아닌 하나만 짚고 있었지요. 3학년이 된 아이들 영택이는 3학년 교실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따뜻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세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천 살 넘은 신림동 굴참나무를 아시나요? -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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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앞에만 서면 가슴 셀레는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 그는 틈만 나면 오래된 자동차를 끌고 팔도를 누비며 나무를 찾아 다닌다. 나무의 안부를 묻고 또 그 나무와 더불어 사는 이들의 안부를 묻고 나무가 허락할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고, 폭풍우가 치면 나무가 무사한지 잠 못 이루며 나무에 꽃이 피었다는 소식에 단숨에 달려가는 사람이다. 고규홍은 어떠한 인연으로 나무와 사랑에 빠진 걸까.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편지』, 『절집나무』, 『옛집의 향기, 나무』, 『나무가 말하였네』, 『행복한 나무여행』등 그의 저서만 보아도 얼마나 나무를 사랑하는 지 눈치챌 수 있다.



첫 만남

나무여행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넘었습니다. 전공 분야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나무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는 자연물입니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그리고 흔히 있는 존재여서, 그의 존재감을 깊이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저 역시 늘 나무와 가까이 살아온 평범한 사람이지요. 특별히 나무를 더 가까이 하겠다는 마음은 그야말로 천둥처럼 찾아왔습니다. 매우 바쁘게 시간을 보내던 일간신문 기자 생활을 정리하던 마흔 살 즈음에 천리포수목원에서 두 달을 홀로 지낸 적이 있습니다. 1999년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였지요. 그때 수목원 숲에서 겨울에 피어난 목련 꽃을 보게 됐어요. 원래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피어나는 종류의 목련이지만 그때는 그걸 모르고, 나무가 이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운 ‘사연’이 궁금했습니다. 그걸 알아보고 싶어한 게 처음 시작이었고, 또 지금까지 나무에 얽힌 사람살이의 사연을 찾아 다니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의 존재

감나무 같은 존재가 되고 싶고 나무처럼 늙고 싶다고 하셨는데, 선생님께 나무는 어떤 존재인가요?

저는 주로 오래 된 나무, 즉 노거수(老巨樹)를 찾아 다닙니다. 제가 찾아본 나무들은 오래 살아 늙었지만, 세월의 연륜이 깊어진 만큼 더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늙어가면서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생명체는 ‘나무’밖에 없다”는 말씀을 자주 드립니다. 스스로 자리를 옮겨 다니지 않고, 말 없이 제 자리를 지키며, 마치 수도승처럼 비바람 눈보라 그리고 세월의 풍파를 묵묵히 이겨내는 고행을 이겨낸 까닭이겠지요. 나무처럼 늙고 싶다는 건 그저 바람일 뿐, 평범한 사람으로서 나무가 그 긴 세월 동안 겪어내는 고행을 말없이 겪을 수 있겠어요.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나무처럼 세월의 깊이를 품격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버리지 못합니다.


영감

한국의 많은 나무들을 만나고 관찰하면서 어떤 영감, 감동을 받았나요?

늘 나무 이야기를 하지만, 저의 나무 이야기는 그 안에 담긴 사람살이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건 제가 식물학을 전공한 과학자가 아닌 탓도 있겠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닙니다. 나무는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사람살이의 모든 것을 지켜보는 생명체입니다. 그가 사람의 언어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그는 필경 제 곁을 스쳐간 사람살이를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가만히 나무 줄기 껍질에 드러난 나뭇결을 바라보고 또 그 곁에서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면, 나무에 담긴 사람살이의 온갖 사연이 하나 둘 새어나옵니다. 나무는 말하지 않으면서 많은 말을 하는 생명체입니다. 그가 지닌 숱하게 많은 이야기들을 듣는 건 지금 그 곁에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인생

『고규홍의 한국의 나무 특강』을 통해 많은 나무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선생님께 가장 감동을 주었던 나무의 인생은 무엇인가요?

어느 한 그루를 딱 짚어서 이야기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굳이 한 그루를 꼽자면 경기도 화성시 전곡리 물푸레나무를 꼽아야 하겠습니다. 이 나무는 물푸레나무 가운데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나무입니다. 『고규홍의 한국의 나무 특강』제2장에서 이야기한 나무이지요. 마을 당산나무였던 이 나무는 사람들이 마을을 떠난 뒤로 오랫동안 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오는 몇 가지 계기를 맞으면서 두 번에 걸쳐 꽃을 피웠습니다. 나무는 분명 떠나간 사람들이 그리웠던 것이고, 사람들이 다시 찾아왔을 때,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운 겁니다. 자세히 말씀 드리고 싶지만, 사연이 복잡하면서도 신비로워 짧게 설명 드리기 어렵네요. 하여간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놀라운 신비를 보여준 훌륭한 나무로, 책에 상세히 소개했습니다.


<화성 전곡리 물푸레나무>

큰 나무

크기가 큰 나무가 아닌,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큰 나무’는 무엇일까요?

물론 시야를 압도할 만큼 규모가 큰 나무를 바라보노라면 자연스레 감동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하나의 생명체가 저리 크게 자랄 수 있는가, 또 저 높은 나뭇가지 꼭대기까지 어떻게 물을 끌어올려 생명을 유지할까 등 많은 수수께끼가 줄을 이어 떠오릅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큰 나무’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면서 온갖 세월의 풍진을 헤쳐나가면서 생명의 신비 혹은 생명의 지혜를 보여주는 나무들입니다. 이를테면 책의 제4장에서 이야기한 ‘정선 정암사 주목‘이 그렇습니다. 옛 스님의 지팡이로 알려진 나무가 죽고 썩어서 속이 텅 비게 되자, 그 안쪽에서 새로 씨앗이 싹을 틔워 새 생명을 이어가는 건 놀라운 생명력이지요. 작지만 큰 나무는 바로 그런 나무를 일컫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선 정암사 주목>

한 맺힌 나무

나무들의 한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 지금까지 본 나무 중에 가장 한이 깊다고 생각한 나무는 어떤 나무인가요.

제 책의 제13장부터 제16장까지에서 소개한 나무들이 그런 나무입니다. ‘나무의 한’이라고 제가 표현한 건, 따지고 보면 사람의 한입니다. 그러나 거듭 이야기합니다만, 나무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에서 사람보다 오래 살아가는 생명체입니다. 결국 자신의 곁에서 벌어진 사람살이가 한스러웠다면, 그 역시 말 없이 사람의 한을 품어 안았을 겁니다. 해미읍성의 회화나무는 그 대표적인 경우일 겁니다. 하필 나무가 자리잡고 자란 곳이 얄궂게도 감옥터 앞이었고, 한때 그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이 바로 자신의 가지에 매달려 신음과 비명을 내뱉으며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고, 나무는 말없이 이 모든 한 많은 사람살이를 지켜보았습니다. 세월이 지나 사람들이 나무 곁에서 겪었던 고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오로지 나무만이 살아남아 그때의 한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참 한이 깊은 나무이지요.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

도시의 나무

주로 지방에 있는 나무들을 소개했는데,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가 유일한 서울 나무입니다. 신림동 굴참나무를 꼽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른 서울 나무들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도시의 나무의 특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람 사는 곳 어디라도 나무는 있습니다. 물론 도시에도 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분주한 사람살이는 나무에 대한 관심을 앗아가 버리지요. 그래서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무들의 상황도 꼭 짚어보고 싶었습니다. 도시의 나무로는 서울의 신림동 굴참나무와 인천의 신현동 회화나무 두 그루와 전주 삼천동 곰솔을 이 책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두 그루 모두 번화한 도심 한복판에 살아있는 큰 나무입니다. 특히 신림동 굴참나무는 고려 때의 명장 강감찬 장군이 꽂은 지팡이가 자랐다는 전설을 가진 1천 년이나 된 나무입니다. 매우 귀중한 나무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어렵게 살아갑니다. 그 상황을 꼭 한번 상기하고 우리 곁의 나무의 의미를 더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

겨울

벌써 눈이 내렸고 추운 겨울입니다. 겨울의 나무는 다른 계절의 나무들과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요? 나무의 겨울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나무도 짐승들처럼 겨울에는 생명활동을 최소화합니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것과 같지요. 나무의 생명활동에 꼭 필요한 것은 물입니다. 뿌리에서부터 나무 꼭대기의 잎사귀까지 물을 끌어올려야 왕성한 생명활동을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추운 겨울에 그렇게 많은 물을 머금고 있으면, 자칫 동해(凍害)를 입을 수도 있지요. 그래서 나무는 겨울이 오기 전에 제 몸 안의 물을 덜어내고, ‘떨켜층’이라는 특수한 조직을 생성해 물이 통하는 통로의 상당 부분을 막습니다. 겨울잠 자는 짐승들처럼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명활동만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에 따라서는 벌써부터 봄을 기다리며 가지마다 솜이불을 덮은 꽃봉오리를 잔뜩 피워 올리고, 차츰차츰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준비하는 나무도 있습니다. 바로 지금 한창 꽃봉오리가 가득 솟아난 목련이 그런 나무입니다.


소통

나무와 사람은 어떻게 소통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무도 살아있는 생명체인 까닭에 다른 생명체와의 소통을 늘 욕망합니다. 모든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겠지요. ‘토마스 후버’라는 사진가가 있습니다. 그는 나무 사진을 찍을 때에 ‘나무가 촬영을 허락하는 순간’을 기다려서 셔터를 누른다고 합니다. 나무와의 소통을 수굿이 기다린다는 이야기겠지요. 나무와의 소통에 가장 필요한 것은 하염없는 기다림입니다. 수백, 혹은 수천 년을 살아가는 나무와 소통하기 위해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사진가 토마스 후버가 그랬듯이 나무는 오랫동안 공들여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진정한 소통을 허락합니다. 나무는 앎의 대상이 아닙니다. 가만히 바라볼 때, 그는 바로 우리 곁에서 우리의 삶을 더 아름답게 지켜주는 가장 고마운 생명체임을 알려줍니다. 그게 바로 나무와 이룰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통이지 싶습니다.


사람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나무 특강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비슷한 점은 무엇일까요?

나무를 찾아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나무를 곁에 두고 공들여 지키는 분들은 모두가 자신의 삶에 성실한 분들이었습니다. 시골의 젊은 농부에서부터 깊은 산골의 병든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랬지요. 또 그들은 자신 스스로도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임을 분명히 깨닫고 있는 지혜롭고 현명한 분들이었어요. 자신을 둘러싼 자연 생태 환경에 대해 늘 고맙게 받아들이는 분들이죠. 그래서 오래도록 사람의 마을을 지키며 살아온 나무의 삶을 존중합니다. 나무뿐 아니라, 그 분들은 자연의 섭리, 혹은 우주의 이치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말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이 땅, 이 시대의 참 주인입니다. 나무가 평안하게 오래 잘 자랄 수 있는 건 그런 분들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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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한국의 나무 특강
고규홍 저 | 휴머니스트
우리나라의 나무라는 나무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연구하고, 그것과 얽힌 문화와 이야기를 사랑하는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이 지난 십여 년 동안 만난 우리 강산의 크고 오래된 나무들을 정리한 현장감 넘치는 기록이자, 나무에 스며든 우리 삶과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나무를 찾고 또 찾은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 140여 컷이 함께 수록되었다. 또한 그가 전해 주는 나무 이야기와 더불어 나무의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인 이야기를 그려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민호가 맡은 '최영' 캐릭터에 가장 애착 느꼈다 - 『신의』송지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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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 감독과 송지나 작가가 만난 드라마 <신의>는 시청률 대비, 두터운 팬층을 형성한 작품이다. 김희선의 복귀작으로 화제가 됐지만, 판타지 액션 멜로를 표방하는 ‘퓨전 사극’이라는 독특한 장르가 시청자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하루는 메디컬에 초점을 맞췄다가 다음날은 코믹 로맨스에 집중하고, 그 다음 회는 액션 활극에 힘을 주고…. 그간에도 장르의 경계를 허문 작품들은 많았지만 이토록 다양한 장르를 결합한 작품은 흔치 않았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카이스트>, <태왕사신기>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송지나 작가는 “<신의>를 쓰는 건, 매회 미션 임파서블이었다”고 말했다. 대본을 쓰면서 손이 떨려서 타자를 치기 힘들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그래서일까. 극중 주인공 최영(이민호)이 손을 떨 때, 마치 자신과 동일시 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소설 『신의』로 시청자가 아닌 독자 팬들을 만나고 있는 송지나 작가를 <채널예스>가 서면으로 만났다.




소설

방송대본만 쓰다가 소설집을 처음으로 출간했습니다. 첫 장편소설을 쓴 소감은 어떤가요?

드라마 <신의>라는 작품은 제작여건상 드라마로 못 다한 이야기들이 좀 많았어요. 그 모자라는 것을 시청자들이 먼저 아셨던 것 같고요. 써보라는 시청자들의 요구가 먼저 있었고, 마음속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던 제가 그 요구에 응했다는 수순이었어요. 대학 때 소설가를 꿈 꾼 적은 없었지만, 소설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기자가 꿈이었어요.


신의

드라마 <신의>는 작가님께 어떠한 작품인가요? 다른 드라마 작품을 쓸 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원래 다른 분들이 준비하던 작품이었는데 제가 중간에 들어가게 된 거였어요. 기획단계부터 어려움이 많던 작품이었나 봐요. 그런 와중에 김감독님이 작품의 초안들을 보여주면서 아이디어를 요청하면 그냥 생각나는 대로 도움을 드리기 시작했는데. “그런 이야기 말고 이런 이야기는 어떠세요?’’ 하면서 제 머리 속에서 아이디어가 마구 저 혼자 발전해나갔어요. 사실 여러 여건을 보았을 때, 제가 상식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들어가면 안되었는데요(웃음). 사실 남들에게는 제가 의리로 참여한 것처럼 포장을 해왔는데. 실상은 제 머리 속에서 마구 이어지는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 이야기에 끌려서 스스로 기어들어가게 된 거 같아요. 지금 생각하니까 그러네요. 아. 왜 그랬을까!


애정

최영, 유은수, 기철 등 다양한 인물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누구였나요? 캐릭터를 만들 때, 작가님만의 기준이 있나요?

드라마 작가는 각 등장인물들에 각각 빙의 되어서 써야 되요. 그래야 각 상황에서 이 인물이 어떻게 반응을 할지 알 수 있거든요. 아니면 열이면 열, 다 나하고 똑 같은 반응과 말투를 쓰게 되니까. 그런 작업을 하면서 그 중에 누구에게 특히 애착을 두거나 그러진 못해요. 그런데 소설로 작업을 하다 보니까 최영의 캐릭터를 가장 많이 묘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아마 최영이 제가 들어가기가 가장 쉬운 캐릭터인가 봐요. 캐릭터를 만들 때 기준이라면, 글쎄요. 내가 알 수 있는 인물이어야겠지요. 모르는 인물을 데리고 쓰려면 매번 막혀요. 얘가 뭐라고 말할지 무슨 짓을 할지 도통 몰라서요.




지도자상

<신의> 제작발표회에서 김종학 PD가 “<신의>를 통해 현재 시점에서 대중들이 원하는 지도자상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는데, 작가님은 공민왕을 통해 어떤 지도자상을 보여주고 싶었나요?

이상적인 지도자보다는 이상적인 지도자를 만들 수 있는 백성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할까요? 대사 중에 그런 게 있어요. 최영이 하는 대사였어요.

최영: 어르신들께서 원하시는 주상은 대체 어떤 분입니까? 처음부터 제갈공명의 머리를 갖고 태어나, 백성들에겐 부처와 같이 자비롭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부와 명예와 만수무강까지 내려주는, 그런 분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익재: 다시 묻지. 자네. 최영. 어째서 이번 주상인가.
최영: 제가 처음으로 스스로 택한 주상이기 때문입니다.
익재: 무엇이 자네로 하여금 스스로 택하게 하였는가.
최영: 나약하시어 때로 겁도 내시고, 결정을 내림에 혼란스러워 하시고.
          저지른 일에 자주 후회도 하시는 분입니다만. 이 분은, 부끄러움을 아셨습니다.
익재: 부끄러움….
최영: 그래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이 분. 그 부끄러움에 둔해지기 전에 지켜드려야겠다고. 답이 되었습니까?

드라마 VS 소설

소설 『신의』는 대화 위주의 전개가 굉장히 빠르게 읽힙니다. 집필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드라마 <신의>와의 차별성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소설 『신의』를 작업하면서 가장 바랐던 것은. 독자들이 마치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화면처럼 보아주면 좋겠다, 그 등장인물의 하나하나가 되어 느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각 상황에 따라 일인칭과 삼인칭을 혼재하고 현재진행형과 과거형을 섞어서 묘사했어요.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그 중의 누군가의 시점이 돼서 바라볼 수 있게 하려고요. 그것이 속도감과 현장감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시도했는데 쓰는 입장에서는 매 상황마다 구성과 계산이 필요해서 좀 후회했어요. 쓰면서(웃음).


드라마작가 VS 소설가

드라마작가와 소설가는 모두 글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매체가 다르기 때문에 문체부터 모든 게 다릅니다. 각각의 매력을 말씀해주신다면?

드라마는 아무래도 돈을 많이 벌고요(웃음). 드라마작가로서의 저는 그저 건축 설계도를 그릴 뿐이고, 스태프와 배우 분들이 최종의 작품을 만들어 주시는 거니까 핑계 대고 비빌 언덕이 있는 셈이지요. 책은 작가로서 존중을 받는다는 느낌이 매력적이고, 그보다 더 큰 매력은 소설은 상상력을 제한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드라마는 제작여건상 쓸 수 없는 것이 쓸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으니까요.




판타지

<태왕사신기> 이후에 판타지 작품으로 다시 한 번 시청자들을 만났는데, 평소 판타지 작품을 좋아하시나요? 작가 송지나가 현실에서 꿈꾸는 판타지는 무엇인가요?

판타지 작품을 좋아해요. SF도 좋아하는데 그 분야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제가 꿈꾸는 판타지라면, 일년쯤 미래를 오가는 타임머신. 제 컴퓨터를 뒤져서 제가 써놓았을 작품을 복사해오는 것이에요.


명대사

드라마 <신의>에서 작가님 스스로 생각하는 명대사, 또는 주제가 들어있는 대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대사는 “괜찮다고. 다 잘될 거라고. 이제 시작이라고“이고요. 시청자 분들이 자주 거론하는 대사는 “잠 깨라고. 일어나라고. 살아보라고“인 것 같아요.


힐링

작가로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을 텐데, 어떻게 푸는 편이신가요? 평소 즐기는 취미나 좋아하는 책, 영화는 무엇인가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제 홈페이지에서 놀기, 게임하기, 다른 글 쓰기입니다.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는 따로 없고 잡식입니다. 다 좋아해요. 읽고 볼 시간만 주세요.


다시 꿈

드라마작가로서 정말 꼭 쓰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현재의 꿈은 무엇인가요?

현재 저의 꿈은 놀고 먹으면서 남들이 만든 재미있는 작품을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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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1
송지나 저 | 비채
드라마에서 소설로 진화한 『신의』! 고려시대의 무사 최영, 현대의 여의사 유은수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과 진정한 왕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판타지와 역사의 경계에서 피어난 사랑이야기로 스피드한 문체, 기발한 착상, 무규칙한 형식 등 결코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가 송지나만의 문학세계를 만날 수 있다. 독특하면서도 개성에 충실한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긴장과 충돌을 유발하고, 영상의 한 장면처럼 짧게 조각내어 병치한 단락들은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이끌어내면서 끊임없이 가독성을 높이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국내외 공모전 50번 넘게 탈락 한국인, 프랑스 최고 건축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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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프랑스 전통 건축가엔지니어협회 강당에서는 예상치 못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놀라지 마세요. 올해의 폴 메이몽 수상자는 한국에서 온 젊은 건축가입니다.” 강당에 모인 프랑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주인공은 타고난 재능도 화려한 스펙도 없는 평범한 한국인 건축가 백희성이었다. 건축만 바라보는 삶을 살던 어느 날,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건축 외에 다양한 분야에 도전한 백희성. 그는 10년간 자기관찰노트를 쓰며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자 노력했고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건축가, 오브젝트 디자이너, 화가, 이제는 작가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내외 공모전에서 50번 넘게 낙방한 과거를 딛고, 한국건축문화대상 계획부문 금상, 아시아인 최초 프랑스 폴 메이몽상, TIFF어워드디자인 특별상 등 약 10여 개의 상을 수상한 백희성은 한국에서 전통건축과 현대건축을 공부했고 프랑스 유학 후 다양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최근까지는 장 누벨 사무소에서 건축가로 근무했다. 그는 “이제 막 세계건축 공모전에 참여할 자격과 여유가 생겼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만 아직 내 꿈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프랑스에 거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축

건축만 바라보는 삶을 살아오다가, 오브젝트 디자이너, 화가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그래도 ‘건축’이 가장 의미가 클 것 같습니다. 작가님에게 건축이란 무엇인가요?

행운 같은 존재죠. 건축에 미쳐있었기 때문에 건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때는 건축 외에 다른 일을 도전하는 것은 안 되는 일로 생각할 정도로 푹 빠져있었죠. 그러나 건축 덕분에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여러 다양한 분야를 엿볼 기회를 많이 주었어요. 예를 들자면 건축은 예술인 동시에 기술이기도 하고 문화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지금도 건축을 가장 사랑합니다. 건축이 제게 많은 것을 일깨워줬으니까요. 이제 건축만 보는 삶이 아닌 제 삶의 일부가 된거죠. 결국 직업이 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도 건축이기 때문에 평생 함께할 겁니다.


파리

파리는 어떻게 가게 되었으며, 파리의 이미지는 어떠한가요? 파리에서 생활한 후 파리에 대한 느낌이 많이 달라졌나요?

프랑스로 떠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2006년 당시 참여 중이었던 국제설계경기에서 한국 건축사로는 국제현상설계를 참여할 수 없다는 답변 때문에 충격을 받았어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졸업과 동시에 실무를 쌓으면서 국제무대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결국 국제무대에서 싸워 볼 기회를 가지기 위해 당시에 가장 공신력이 있었던 프랑스 건축사를 따기 위해 무작정 떠나게 되었습니다.

책에도 언급했듯이 프랑스 파리에서의 삶과 한국에서의 삶은 완전히 다릅니다. 각각의 다른 문화 속에 스스로를 녹여야지만 적응할 수 있거든요. 우선 파리는 여유로운 도시죠. 어떤 조바심도 없는 편안한 도시죠.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사랑하는 도시인 이유는 바로 이 여유로움때문일 것 같네요. 반면 한국은 신비로울 정도로 다이나믹한 스피드를 자랑하죠. 제게는 파리와 서울의 두가지 다른 측면이 모두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우선 파리에 처음 오기 전에는 막연한 환상 같은 것이 있었어요. 아마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런 상상을 하실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은 파리에 거주한지 꽤 시간이 되다 보니, 환상이라기 보다는 파리가 가지는 숨은 매력을 알아가고 있죠. 여유로움과 타인에 대한 적절한 무관심이 있는 도시라고 해야 할까요? 이건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요. 적절한 무관심이 주는 것은 혼자서 사색에 즐기기 좋다는 점일 것 같아요. 사실 책을 쓰기 위해서 원고를 쓰는데, 파리에서는 정말 여유롭게 썼어요. 누구도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왔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 여유로움은 쉽게 얻기가 힘들죠. 그러나 다양한 생각들과 열정들이 느껴지는 곳은 파리가 아니라 서울입니다. 예를 들면 파리의 카페를 들어가 보면 좀 조용한 편이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꽤 많은 한적한 곳이 많아요. 반면 서울의 카페는 조용히 혼자 앉아 있으면,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섞이는 다이나믹한 생각이 장소같아요.


호기심

어떤 것에 호기심을 느끼시는 편인가요?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완성한 오브젝트는 무엇인가요?

호기심을 느끼는 것에 대한 제한은 없어요.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우연히 들은 친구의 이야기에서 느끼기도 하고, 길거리에 버려진 물건에서도 영감을 얻습니다. 가끔은 싫어하는 대상에서 큰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해요. 예를 들면, 시끄러운 빗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후, 다시 잠들 수가 없었어요. 프랑스의 발코니는 천장이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빗방울이 발코니 난간에 부딪히면서 거슬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죠. 팅!팅!팅! 그때 이 짜증나는 감정을 좋은 감정으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만들게 된 것이 빗방울 실로폰이에요.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을 실로폰의 봉으로 생각하고, 발코니에는 나무로 된 실로폰같은 오브제를 놓아두면, 하늘이 연주하는 실로폰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결국 시끄러움을 듣기 좋은 청아한 소리로 바꾸기 위해 빗방울 실로폰을 디자인했어요. 결국 세상의 모든 것들이 호기심의 재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빗방울 실로폰(Raindrops Xylophone)


자기관찰노트

10년 동안 자기관찰노트를 써오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쓰게 되었으며 어떤 도움을 받았나요?

머리가 나빠서 기억력이 안 좋았어요. 중요한 사항도 자꾸 잊어버리고, 실수투성이었죠. 그래서 처음에는 기억을 위한 단순한 저장고로 기록을 시작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다양한 생각을 적기 시작했고, 몇일이 지난 후에 그 기록을 보면 꽤 재미난 상황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건 바로 노트 속에서 저도 모르던 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거죠. 사람들은 생각은 기록해 두지 않아도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녁에 잠이 들기 전 누워서 오늘 하루 생각했던 것들을 떠올리려 하면 떠오르지 않아요. 상황만이 기억이 날뿐 생각은 기억이 나질 않아요. 다시 말해서, 생각은 순간적이고 금방 사라져요. 이걸 기록으로 남겨 놓으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까지 자세하게 알 수 있어요. 제 경우는 약 5년 정도 지났을 때, 그간 기록해 온 자기관찰노트를 보고는 소름이 돋았어요. 그 노트를 보면서 제가 어떻게 가치관이 변해가는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백희성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가 보이는 거예요. 그 순간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죠. 그래서 이때부터 이 노트의 이름을 자기관찰노트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보통 자기관찰노트를 설명해 주면, 이런 질문을 받아요. “어떤 것을 기록해야 하는가? 어떻게 쓰면 오랫동안 쓸 수 있는가?” 일단 자기관찰노트라고 해서 ‘나는 누구인가?’ 이런 철학적 질문을 적는 것은 무의미해요. 그냥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들을 적는 것이 중요해요. 글도 좋고 그림도 좋고, 제한은 없어요.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과 그 이유를 적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차이를 알게 되고 그 이유도 알 수 있게 되죠. 그 순간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작은 단서가 생기죠. 저 같은 경우는 처음 자기관찰노트에 짜증나고, 불평불만들을 많이 적었어요. 예를 들면. 누구는 이기적이다. 이번 수업은 짜증이 난다라든지요. 며칠 후에 노트를 보니 충격이었어요. 제가 항상 불만이 가득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노트 속에서 발견하게 된거죠. 그 순간 바로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적고, 틈만 나면 이유를 적어보려고 노력했어요. 결국 몇달이 지난 후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죠. 그리고 불평이나 불만이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잘 쓰고 이쁘게 정리하려는 노력은 피하는게 좋아요. 특히 일기처럼 쓰는 것은 더 무의미해요. 일기나 이쁘게 정리하려는 노력속에는 무의적으로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누군가의 대상은 자신일 수도 있어요. 이쁘게 정리하고 일기처럼 쓰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생각을 미화시키고, 왜곡시키게 되어있어요. 그냥 막 적어야 해요. 그때 감정을 실어서 미친듯이 적기도 하고, 차분하게 적기도 하고요. 자기관찰노트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자신을 관찰하려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저 같은 경우는 며칠 전에 써 놓은 글을 지금 보면 ‘이게 내가 쓴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기록했던 그때 감정에 몰입해서 막 날려서 썼거든요. 이렇게 격식없이 자유롭게 써야만 내안에 숨겨진 나를 찾을 수 있어요.


아이디어

평소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는 편이신가요? 창의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사고를 해야 할까요?

저에게 창의력의 가장 큰 원료는 저와 완전히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에요. 자신과 전혀 다른 가치관과 사고를 가진 사람과 대화는 쉽지 않아요. 자꾸 의견의 대립이 형성되기 때문이죠. 동의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그러나 한 인간이 자신의 인생만을 살면서, 간접적이지만 전혀 다른 인생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아요. 나와 다른 사고를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보는 거예요.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가슴에 품으면, 기존에 나의 생각과 대립하게 되요. 한 사람 안에 여러 다른 분야와 다른 사고를 지닌 사람들의 생각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 순간이 생각의 융합이 일어나는 과정이에요. 이때 전혀 생각치 못했던 신선한 생각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해요. 저는 이걸 창의력이라고 생각해요.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배척하기 보다는 마음을 열고 나와 다른 생각을 흡수해 본다면, 엄청난 생각의 융합이 내안에서 이뤄질 것입니다. 한 인간이 평생 살아도 미처 경험해볼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나와 다른 사람과의 대화만으로도 내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의 이야기를 알 수 있는 이 멋진 기회를 잡아야 해요.


실패

국내 외 공모전에서서 50번 이상 낙방했지만, 아시아 최초로 ‘폴메이몽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습니다. 실패 끝의 성공을 이루셨는데, 그간의 실패는 작가님께 어떤 것을 가르쳐주었나요?

실패 끝에 성공을 이룬 것이 아니라, 도전을 하면 가장 먼저 겪게 되는 것이 실패임을 인정하는 것이죠. 요즘 보면, 어떤 도전을 할 때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실패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 철저히 준비를 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실패를 겪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죠. 그래서 주변에서 조언을 구하고, 철저하게 준비해 실패를 피해가려고 하는 것이 현대의 우리 모습이죠. 그러나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물론 미리 철저히 준비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실패는 충분히 겪어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같은 실패 속에서도 우리는 각자 다른 경험을 겪기 때문이죠. 저의 경우에는 실패 속에서 더 많은 영감이나 가치를 얻게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사례를 책에 실어 놓았고요.

수상경력은 제게 그리 크게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50번 이상의 낙방이 제게는 더 소중한 경험이 되었거든요. 예를 들면 사막을 횡당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면, 당선은 우연히 만난 오아시스 같은 거에요. 오아시스에서 목을 축이면 사막횡단하기가 좀 수월하겠죠. 그러나 그 오아시스를 뜯어 갈 수 는 없어요. 결국 수상이라는 건 그냥 지나쳐 가는 해프닝같은 거라 생각해요. 반면 50번 이상의 낙방은 사막횡단을 하는 중 겪는 죽음과의 사투라고 스스로 비유하곤 해요. 결국 한 개의 사막횡단을 마치고 다른 사막으로의 횡단을 준비할 때, 제게는 50번 이상의 죽음과의 사투가 제게 용기를 줍니다.

그래서 가끔은 준비 없이 실패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준비없이 실패하는 것이 언제나 낙오나 뒤쳐짐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좋아하는 것을 더 근본적이고 구체적으로 보게 해주는 방법이 됩니다. 남이 정리해 놓은 수많은 정보나 교육을 접하기 전에 자신이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 볼것인지, 고민해 보는 편이 훨씬 더 많은 발전을 가져다 줍니다. 미리 준비하는 것은 모두가 겪은 실패를 피하게 해주지만, 그 실패가 주는 교훈과 영감은 놓치게 만듭니다. 실패는 나쁜 게 아닙니다. 그게 제 생각입니다.


성공

작가님께 성공은 어떤 의미인가요?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일까요?

진정한 성공은 결과가 아니라 도전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미래의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잖아요. 불확실한 미래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도전 할 수 있는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그게 바로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멘토 & 롤모델

멘토가 있으시나요? 건축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어떤 멘토가 되어주고 싶으신지요?

멘토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렵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멋진 멘토를 만날 기회가 많은데요. 한명만 꼽을 수가 없네요. 반면 롤모델은 없어요. 내 인생의 롤모델은 지금 완성 중인 자기 자신이어야 하지 않나요? 자신의 인생에 이미 롤모델이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 아닐까 싶네요.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대신 살 수도 미리 살 수도 없으니깐요. 제 인생의 롤모델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멘토가 되는 것은 상상해 보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멘토이기 보다는 같이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친구이자 동료이길 바랍니다. 실제 독자들의 공감가는 답변을 받으면 이렇게 답을 하곤해요. “제 글에 공감하셨다면 이미 그 생각이 독자 분 가슴에 있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일 거예요. 앞으로 작가와 독자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같이 소통하고 공감하길 바랍니다.” 저는 멘토와 멘티의 수직적 관계보다는 어떤 나이나 사회적지위도 없는 인간적인 수평관계를 지향하거든요.




버킷리스트

앞으로의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는 무엇인가요?

저에게는 앞으로의 버킷리스트가 없어요. 약간 모순되는 이야기로 비춰질 수 도 있는데요. ‘새로운 것을 만드는 도전’이 실천 중인 버킷리스트에요. 그리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도전’은 아직도 무수히 많고, 매번 다양한 도전을 즐기고 있어요. 무엇보다 이런 도전중인 상황이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버킷리스트도 어찌 보면 후회없이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지금 현재 도전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에 저에게는 버킷리스트라는 개념이 크게 와닿지 않네요.


키워드

작가님을 표현하는 키워드를 하나 뽑는다면 어떤 단어를 선택하실 건가요?

도전을 즐기는 삶입니다. 그 이유는 인생을 살면서 평생 한가지 일만 할 수 없다고 믿고 있어요. 물론 한가지만을 하면서 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적어도 그런 삶을 원하지는 않아요. 인생은 길고, 행복은 돈이나 지위로 이뤄진다고 생각치 않아요. 돈이나 지위로 얻는 것은 주변의 부러움이거든요. 아쉽게도 많은 분들이 부러움을 행복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도전 할 수 있어서 행복한 것’ 이것이 저에게 큰 행복을 주기 때문에 지금도 도전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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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 생각
백희성 저 | 한언
아시아 최초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건축상, ‘폴 메이몽상’을 수상한 건축가 백희성의 끈질긴 도전과 치열한 고민을 엮은 『환상적 생각』. 8번의 공모전 수상 뒤엔 50번의 낙방이, 한 번의 합격 뒤엔 100개의 이력서가 있었다. 죽도록 실패해도 끊임없이 도전한 이유는 단 하나, 눈앞의 결과가 아닌 특별한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남과 다른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위태로워 보이는 딴 길로 들어선 괴짜 건축가의 이야기가 꿈 대신 직업만을 바라보는 2030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어줄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그건 당신의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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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죽음을 떠올릴 때, 대부분 공포와 두려움을 갖는다. 죽음은 두려운 존재이기에 어떻게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온다. 죽음을 다룬 대부분의 책들이 ‘죽음에 도달하는 과정, 인간은 모두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에 대해 다루는 반면,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는 그런 이야기들을 찾아볼 수 없다. 셸리 케이건 교수는 죽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때 떠오르는 철학적인 질문, ‘죽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인간의 실체는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한다.

한국 독자들이 최근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보여준 뜨거운 관심은 아마 오랫동안 죽음에 대한 의문들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셸리 케이건 교수는 “죽음을 바라보면서 이를 거대한 미스터리, 너무 두려운 나머지 감히 마주할 수 없는 압도적이고 위협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결코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며, 부적절한 반응이라고 말한다. 다만 너무 빨리 죽는다는 사실에 슬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삶의 기회를 부여받은 게 얼마나 놀라운 행운인지 이해함으로 인생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죽음, 영혼, 영생, 자살 등 다양한 질문과 주장을 논하고 있지만,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정말로 중요한 건 이것이다. 우리는 죽는다.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



죽음

교수님께서는 언제부터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죽음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방법으로서의 죽음이라는 주제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철학 교수가 되고 나서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철학을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는가’였죠. 나아가 ‘철학이 삶의 나침반으로서 기능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철학을 위한 철학은 싫었습니다. 삶과 동떨어진 학문은 결국 학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합니다. 하지만 원래 철학은 늘 인간의 삶과 함께 있었어요. 경제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이면서 언제부턴가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으로 인식됐습니다. 다시 삶 속으로,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존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으로 말이죠. 흔히 삶의 반대말로 죽음을 꼽습니다. 그런데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어요. 삶과 죽음의 역설, 바로 이거였죠. 다행히 첫 학기부터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강좌가 개설될 때마다 수강 신청자 수가 늘었어요. 또한 제가 있는 예일대도 일찍이 학문의 대중화에 대한 열의를 갖고 있었습니다. ‘열린예일강좌(Open Yale Courses)’ 프로젝트는 그 일환이죠. ‘죽음(DEATH)’ 강의도 당연히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메일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강의실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넘어 대중과 소통하게 된 것입니다.


변화

예일대 강의를 비롯해 25년간 죽음에 대해 강의를 해오고 계신데, 그간의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초기 강의와 현재 강의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예일대 이후와 이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음’ 강의를 처음 시작한 것은 제가 시카고 일리노이대에서 교편을 잡았던 1985년의 일입니다. 25년이 넘었죠. 물론 ‘죽음’처럼 교양철학 강의만 하는 건 아닙니다. 제 전공 수업은 윤리학입니다. 어쨌든 처음 이 ‘죽음’ 강의를 했던 때와 지금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강좌 수가 늘어났죠. 지금은 마지막 3강에 ‘자살’이 추가돼 총26강 과정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자살’ 파트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죽을 운명에는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으므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판단했습니다. 더욱이 우리 사회에서는 자살을 끔찍하고 무서운 행위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데, 정말로 그런지 이를 철학적으로 풀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이 밖에도 ‘죽음’과 관련해 논의해볼 수 있는 주제는 더 있겠죠. 가령 ‘타인에 의한’ 죽음인 ‘살인’이나 ‘사형’ 같은 주제가 강좌에 추가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통해 삶을 고찰한다’는 기본 취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질문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시대에 따라 질문도 변했을 것 같은데요.

매우 다양한 질문이 나옵니다. 하지만 제가 답해주지 못하는, 아니 답할 수 없는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일테면 “영원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야 하는가”와 같은 물음이죠. 제가 알 리가 없잖아요. 사실 학생들은 뻔한 질문은 하지 않아요. “영혼이 있는가”, “죽음은 나쁜가” 이런 질문은 ‘죽음’ 강의의 핵심 질문이죠.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는 거니까요. 이들의 질문은 대체로 강의 중 나오는 사례에 관한 것들입니다. 제가 제시한 사례에 대한 연장선상에서의 질문들이죠. 해가 바뀌어도 대체로 비슷하지만 요즘은 SF 영화 때문인지 “텔레포트(순간이동)가 가능하다면 영혼도 나뉠 수 있는가”, “남녀가 인격은 그대로인 채 몸이 바뀌었다면 자신의 육체(사실은 이성의 육체)를 보고 성욕을 느끼는가”, “DNA를 통해 기억도 유전된다면 사실상 영생이라고 봐도 되지 않는가” 같은 기발한 질문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덕분에 물리학 책을 여러 권 읽었지요.


생각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201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살아갈 날이 1년 줄어들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삶을 변화시킬 기회도 점점 줄어가고 있어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된 삶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도 잊게 됩니다. 이 시간이 영원할 것 같다는 착각은 삶의 적절한 긴장감을 놓치게 하죠. 과장된 표현이지만 인생을 아무 생각 없이 살게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죽음을 직시하면 현재의 삶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삶의 마지막이 누구에게나 조금씩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헛되게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삶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인간에게 부여된 보편타당한 진리죠. 다시 말해 현재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유일한 진리가 바로 죽음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죽음이 과연 무엇인지, 진정 삶의 끝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뭔가가 있는 건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질문을 던져보고 해답을 찾으려고 해보는 거죠.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내 일입니다. 나는 지금 현명하게 남은 삶을 소비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게 중요합니다.


종교

교수님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영생을 믿는 종교에 대해서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나요?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가 한국에서 출간된 이후 한국 독자 분들로부터 이메일을 자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영혼은 정말 없는가”, “천국과 지옥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이 많더군요. 그리고 저를 ‘무신론자’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게도 종교가 있습니다. 저는 유대인이며 유대교 신자입니다. 어려서부터 유대교의 가르침 속에서 자랐습니다. 당연하게도 영혼이나 영생을 믿는 것을 비판할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철학적 견지에서 물리주의자 입장을 취하고 있을 뿐 종교는 제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삶에 해악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종교는 우리에게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죽음’ 강의를 하고 이 책을 쓴 게 아닙니다. 종교가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철학은 종교가 아닙니다. 세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고 설명하는 학문입니다. 인간의 사유로 영생이나 내세를 증명할 길은 없습니다. 때문에 논리적으로 죽음은 삶의 끝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존재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없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와 이성의 결론입니다. 종교적 신념과는 다른 맥락입니다.




자살

자살을 ‘합리적인 선택,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위’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셨는데, 자살은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굉장한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까? 이런 면에서 볼 때는 ‘자살’은 본인을 떠나 제2, 제3의 피해자를 만들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일대 강의와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해 ‘자살’을 다루고 있습니다. 철학적 관점에서 자살이 합리적 선택일 수 있는지,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위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죠. 요컨대 저는 경우에 따라서 이 두 가지 요소를 충족시키는, 즉 합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자살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저를 자살 옹호론자인 것처럼 치부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삶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신중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자살은 크나큰 실수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삶이 극복 불가능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바로 그 실수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고통이 치유될 수 없고 삶이 나아질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판단은 대부분 착각입니다. 거의 전부 이성이 아닌 감정에 치우쳐 내린 결론입니다. 상처가 커서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는 부도덕한 일입니다. 그 상처를 줄이는 데 시간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지 마세요.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 삶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연결돼 있습니다. 나만의 삶이 아닙니다.


조언

현재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끔찍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를 해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실 건가요?

자신의 삶이 극복 불가능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과연 ‘사실’인지 깊게 고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자살에 관하여’ 장에서 그래프까지 그려가며 자살이 합리적 선택이고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위, 즉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나은’ 지점이 어디인지 제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자살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지점이 오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큰 실수죠. 삶이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포기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결코 삶의 가치를 경솔하게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라는 판단은 착각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죽음의 본질을 이해하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삶을 의미할까요?

살아가는 이유가 명확한 삶을 말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목표를 신중히 세웠는지,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마다 삶의 이유가 각기 다르겠죠. 삶에서의 목표가 다를 것이고 추구하는 행복의 양상이 다를 것입니다. 사실 ‘가치 있는 삶’은 오늘날 ‘행복한 삶’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요. 명예를 위해 목숨을 던지거나, 신념을 지키고자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일 일은 거의 없죠. 내가 행복하고 나아가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삶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나는 분명히 내 이익을 위해 행동했는데 그것이 결국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남을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했는데 오히려 나에게 득이 되는 상황도 경험하게 됩니다. 실제로 그렇지요? 여기서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저는 “어떻게 하면 삶을 가치 있게 살 수 있는가”라는 이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스스로에게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지(후회를 덜 하게 하는지) 힌트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스스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는 경우라 해도, 이 질문은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도록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질문하고 생각하고, 이것이 올바른 삶의 태도인 것 같습니다.


정의

‘죽음’에 대해 가장 정확한 정의를 내린 철학자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저 혼자만의 생각으로 쓰여진 게 아닙니다. 말도 안 되지요.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부터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그리고 쇼펜하우어를 거쳐 토머스 네이글, 프레드 펠드먼, 데렉 파피트 등 현대 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위대한 철학자들, 거기에 제게 깊은 영감을 준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조너선 스위프트, 찰스 디킨스와 같은 훌륭한 작가들, 이 밖에도 이 책에서 사례로 등장하는 시인, 배우, 코미디언, 영화감독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죽음’은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 있는 주제가 아닙니다. 각각의 여러 관점들이 있을 뿐이죠. 이 책은 철학적 관점에서 죽음에 관한 다양한 정의와 해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론 그 중에서 물리주의 관점을 취하고 있는 거고요. 그렇다고 제 관점이 옳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답은 아직 모릅니다. 우리 중엔 죽은 사람이 없고, 죽은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까요.




철학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으며, 왜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교수님의 어린 시절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고등학교 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즐겼어요. 좀 더 정확하게는 뭔가 설명하기를 좋아했지요. 반대로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시간도 좋았어요. 생각을 많이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대부분 망상이었지만. 어린 시절 제 꿈은 목동이었어요. 드넓은 들판에 백여 마리 양을 풀어놓고 나무 그늘에 앉아 책을 읽는, 양치기는 개가 하고… 아마 게으른 목동이 됐을 거예요. 전 소박하고 털털한 사람입니다. 평소 이런 복장을 좋아하는 것도 아마 이런 성향이 반영됐을 테지요.


힐링

한국은 최근 힐링(healing)에 대한 서적이 인기를 끌고 있고, 교수님의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도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마음 한편에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이유에서 벌어진 현상일까요?

치유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물리적’ 치유가 있겠고, 감성을 보듬는 ‘심리적’ 치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 더, 이성을 견고하게 해주는 ‘철학적’ 치유도 있을 수 있겠죠. 물론 이런 식으로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가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현상을 분석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어요. 하지만 크게 무관하지는 않은 듯 보입니다. 실제로 살면서 겪게 되는 피로를 이성의 환기로 치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삶이 우울할 때 심리 치유 에세이가 아닌 실존주의나 생철학을 파고들죠. 하이데거와 니체, 샤르트르를 읽습니다.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우리의 이성을 차갑고 단단하게 해줍니다. 세파에 쉽게 휩쓸리지 않게 돕지요.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은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직 논리와 이성으로 삶과 죽음의 관계를 다루죠. 세상을 좀 더 명확하게 보게 해주려는 게 이 책의 목적입니다. 그것이 설령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해도 말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왜 그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혀 다른 차원의 위안과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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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저/박세연 역 | 엘도라도
이 책은 셸리 케이건 교수가 1995년부터 예일대에서 진행해온 교양철학 정규강좌 ‘DEATH’를 새롭게 구성한 것으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을 고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DEATH’는 하버드대 ‘정의’및 ‘행복’과 함께 ‘아이비리그 3대 명강’으로 불리는 강의이며,17년 연속 예일대 최고의 명강의로 꼽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동안 우리가 생각해왔던 심리적 믿음과 종교적 해석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논리와 이성으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고찰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대한민국, 작은 나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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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시내에서는 공공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녔다



중국에 대한 관심이 생긴 건, 지금은 일상적으로 쓰이는 G2가 통용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부임한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고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중국의 중요성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이하원 기자는 워싱턴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중국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베이징에서 나오는 뉴스에 관심을 더 기울였다. 마침 2년간 외교안보팀장을 맡게 되어 한반도에 영향을 끼치는 중국을 매일같이 들여다봐야 했다. 이하원 기자는 『시진핑과 오바마』를 펴내며 김정일 사망, 이어도, 탈북자, 김영환씨 고문, 댜오위다오(센카쿠) 분쟁, 대륙붕,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 등 모든 외교안보 현안에서 중국이 이제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등장하는 현실에 주목했다.

“기자로서 제가 이해하고 있는 시진핑과 오바마,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소개하고 한국과 관련된 외교안보전략을 고민해봤습니다. 1999년 정치부 기자가 된 후,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한국의 국가전략과 관련된 기사를 써온 경험이 『시진핑과 오바마』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미중관계와, 두 강국 사이에서 생존해야 하는 한반도의 운명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프가니스탄 종군기자로 파견 당시, 스탠리 매크리스탈 아프가니스탄 주둔 사령관과 함께


특파원

정치기자를 오랫동안 하시면서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셨습니다. 해외에서 취재를 하는 것은 국내 취재와 어떻게 다른가요? 특파원으로서의 삶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워싱턴 특파원은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부담이 큰 자리입니다. 미국이 한국의 외교,안보,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에 1면 톱기사를 쓸 때가 잦았습니다. 이는 바꿔 이야기를 하면 언제든지 1면 톱기사를 경쟁지에 낙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책임과 부담이 큰 자리를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과 호기심, 기대감을 갖고 태평양을 건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워싱턴에서 약 4년간 서울과의 14시간 시차 때문에 매일 새벽 4~5시까지 밤을 새워가며 기사를 써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잠이 많은 제가 어떻게 매일 밤을 새워가며 기사를 송고했는지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매일 오전 8시~8시 30분쯤에는 일어나 집으로 배달된 3개의 신문을 점검해서 기사화할 내용을 찾았습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을 모두 합치면 200페이지가 넘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후, 영어로 된 이 많은 신문 페이지를 넘기지 않게 된 것에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사무실과 집에서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CNN을 틀어놓고 살았습니다. 백악관, 미 국무부와 국방부와 워싱턴 시내의 씽크탱크인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브루킹스, 헤리티지, CFR(미외교협회) 등을 매일 다니며 취재망을 넓혔습니다. 1주일에 6일을 이렇게 일하고 하루를 쉬는 생활을 4년 가까이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종군기자로 파견돼 바그람기지에서 생활하며 스탠리 매크리스탈 미군 사령관을 인터뷰하고 현장 취재를 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기자 vs 기자

특파원을 하면서 다른 나라의 특파원들과의 교류도 많았을 텐데요. 미국, 중국 특파원들은 한국 기자들과 다른 모습이 있었나요? 그들은 한국을 어떤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나요?

늘 정보를 따라 움직이고, 특종을 노리는 기자의 모습은 세계 어디에서나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에 나와 있는 외국 특파원들은 대체로 취재 환경에 만족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한국 국민들이 외국 언론에 비교적 호의적인 편입니다. 한국 정부의 관리들도 안면을 트면 비교적 ‘백그라운드’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고 들었습니다. 한때 한국을 홍보하는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라는 구호가 있었는데, 외국 특파원들 사이에서는 ‘다이나마이트 코리아(Dynamite Korea)’라는 농담으로 변형돼 통용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만큼 깜짝 놀랄만한 사건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미국 민주당의 최다선 의원 ‘찰스 랭겔’ 의원과 함께


오바마

아시아 순방 시, 오바마를 단독 인터뷰했는데 오바마에 대한 인물평을 해주신다면? 어떠한 이유로 재선에 성공했다고 보시나요?

2008년 오바마 상원의원이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 나설 때부터 오바마 취재를 본격화했습니다. 아이오와주 네바다주 등 그의 중요 유세지에서 현장 취재를 가서 기사를 작성한 적도 많았습니다. 약 4년간 워싱턴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내린 결론은 오바마 대통령은 “독하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정치인이라는 겁니다. 오바마는 자신의 정적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으로 기용했습니다. 또, 정계의 거물인 존 케리 상원의원을 그의 후임으로 다시 임명했습니다. 아마 평범한 정치인이라면 생각하지 못할 용인술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나이는 많지 않지만 오랫동안 시카고의 밑바닥에서부터 ‘실전 정치’를 해 온 그의 정치력이 재임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시진핑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그간의 중국 지도자들과는 다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서민적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고요. 시진핑이 지도자로서 훌륭한 점은 무엇이며, 한국은 왜 시진핑의 행보에 집중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의 18차 당 대회에서 선출된 시진핑은 1953년생으로 앞으로 10년간 중국의 5세대 지도부를 이끌어나가게 돼 있습니다. 시진핑이 중앙 정치국의 다른 상무위원인 리커창(李克强) 장더장(張德江) 위정성(兪正聲) 류윈산(劉雲山) 왕치산(王岐山) 장가오리(張高麗)과 이끌어가게 될 중국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합니다. 시진핑은 분명 한반도의 통일 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시진핑은 문화혁명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아무런 인연도 없는 농촌으로 하방을 해야 했습니다. 청소년기에 큰 어려움을 겪은 탓에 누구보다 신중하고, 겸손한 자세가 몸에 배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농촌생활을 일찍 경험해서 다른 태자당 인사들에 비해 서민적입니다. 오랜 관료 생활을 하면서 부패에 연루된 적이 없고 인화(人和)와 단결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그는 25명의 정치국원현장시찰 때 카펫을 깔지 못하게 하고 교통통제도 최소화하라고 지시하는 등 관료주의 격식을 없애고 있습니다. 다만, 시진핑이 총서기 취임 후, 중화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부문입니다. 책 제목에서 시진핑을 오바마보다 앞에 내세운 것은 ‘뉴스’를 중시하는 저널리스틱한 관점 때문입니다. 2012년에 전면에 등장한 시진핑이 2008년 당선된 오바마보다 더 뉴스가치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오바마 vs 시진핑

저서 『시진핑과 오바마』에서 두 인물을 분석했는데, 시진핑과 오바마의 공통점을 꼽아본다면 무엇입니까?

미국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중국이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점을 들어 시진핑 총서기의의 권한이 오바마 대통령보다 크지 않다는 분석을 했습니다. 분명 시진핑은 7명의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중의 한 명으로 당 총서기를 맡고 있기에 한계는 있지만, 전임자인 후진타오보다는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는 자신의 업적을 확실히 남기기 위해 상당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관측됩니다. 오바마와 시진핑은 서로 닮은 데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역경을 겪은 탓에 비교적 조숙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진핑은 아버지가 숙청되면서 하방을 일찍 경험했고, 오바마는 아버지의 이혼과 어머니의 재혼으로 하와이-인도네시아-하와이로 옮겨 다니며 생활해야 했습니다. 공평정책을 펼친다는 점에서는 두 사람의 정책에 유사성이 있습니다. 시진핑은 빈부의 차이를 없애겠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오바마도 비슷한 입장입니다. 미국 경제가 계속 악화되고 있음에도 오바마가 재임에 성공한 것은 미국사회가 오바마에게 더욱 평등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지도자

정치기자, 외교안보팀장을 맡으면서 많은 지도자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셨는데, 국가의 지도자들이 갖고 있어야 할 덕목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더십과 비전입니다. 리더십에는 두 가지를 중시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먼저 국가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반대했던 국민들에게도 손을 내밀어 통합시켜서 이끌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최근 50%의 지지율을 간신히 넘어서 국가 정상에 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이들의 마음을 달래주면서 국가를 이끌어가는 ‘통합의 리더십’이 우리 사회에 절실합니다. 아울러 위기상황을 극복해 내는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외교안보, 경제적으로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극복하는 리더십이 중요합니다. 국가와 국민들에게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비전 역시 국가지도자의 필수 덕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전은 당장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낼 수 있는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한중

올해 한중 관계에서 최고의 변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역시 북한 문제가 될 것으로 봅니다. 핵실험을 비롯한 북한의 추가 도발에서 어떻게 한중 양국이 대응하느냐가 양국 관계의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중국이 모호한 입장을 취해서 우리 정부를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또 다시 발생한다면 한중관계가 발전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탈북자 문제를 비롯한 북한인권 문제도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한중 FTA 협상은 꾸준히 진전될 가능성을 주지하고 있습니다.



주한 미대사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함께

한미

올해 한미 관계에서 최고의 변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박근혜 당선인과 오바마 대통령 간의 관계가 이명박-오바마 대통령 관계처럼 안정적인 경지에 오르는데 한참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한ㆍ미관계는 더 어려운 환경에 둘러싸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무엇보다 새롭게 출범한 중국의 시진핑 체제는 한ㆍ미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연간 한ㆍ중간 무역액이 2000억 달러를 넘으면서 한ㆍ미간 교역액의 두 배를 넘는 상황은 한미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한ㆍ미 양국 간에는 올해 마무리 지어야 할 중요한 협상들이 있습니다. 한국의 농축우라늄 생산ㆍ재처리 허용 여부를 핵심으로 하는 원자력 협정 개정이 1순위입니다. 세계 원자력 5위 강국인 한국은 농축ㆍ재처리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40% 이상 부담하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분담 협상도 시작됩니다. 재정 적자 위기상황인 미국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고 나올지 모릅니다. 미국은 또 한국이 조속한 시일 내에 미사일방어체제(MD) 공조체제를 만들기를 바라고 있어 논란이 계속될 수 있습니다.


외교문제

지난해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씨의 전기고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건이 있을 때 기자로서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 것 같습니다. 김영환 사건 외에 정치기자로 생활하면서 안타까웠던 외교 사건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대한민국의 대처법이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탈북자를 비롯한 북한인권 문제에서 중국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독도 문제를 일본이 자꾸만 정치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국가적인 전략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한국이 오만해서는 절대 안 되지만 이제 ‘작은 나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더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 GDP의 19%를 차지하며 세계의 성장 동력이 된 동북아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한미동맹을 계속 확대하고 싶어 합니다. 중국은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AT) 체결을 재촉하고 있으며 한국을 우군(友軍)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집권하자마자 자신의 특사를 한국에 보낸 것은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중국과 일본이 경쟁적으로 한국에 ‘러브 콜’을 보내고 러시아가 남ㆍ북ㆍ러 가스관을 내세워 한국으로 달려오는 것은 지정학 전공자들이 다시 연구해야 할 ‘사건’들입니다.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을 저술한 미국 시카고대의 존 미어세이머 교수는 “전 세계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나라가 한국과 폴란드”라고 했지만, 그 말은 이제 수정돼야 합니다. 시대를 내다보는 지도자와 올바른 전략만 있으면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는 얼마든지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볼 만합니다. 시진핑과 오바마가 주도하는 동아시아 신질서를 이해하고 우리의 생존전략을 만드는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습니다.


박근혜 정부 외교

한국의 외교정책 중에 가장 시급한 것을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새 정부가 명명한 외교정책은 어떻게 보십니까?

역시 북한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박근혜 당선인은 한국 정치인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2011년 ‘신뢰 외교(trustpolitik)’와 ‘균형 정책(Alignment Policy)’을 키워드로 하는 대북(對北) 정책 구상을 미국의 외교전문지(誌)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 9ㆍ10월호에 기고했습니다. 그는 이 기고문에서 “한반도를 끊임없는 갈등 공간에서 신뢰 공간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국제적 규범에 근거, 남북한이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를 이행하게 하는 ‘신뢰 외교’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신뢰 외교’의 2대 원칙으로 “북한은 한국 및 국제사회와 맺은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하며, 평화를 파괴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확실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반도에 신뢰 외교를 실현하기 위해서 한국은 지금까지 해온 대북 정책을 새롭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그의 측근들은 박근혜의 이같은 입장이 “햇볕 정책도, 압박 정책도 아닌 제3의 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박 당선인의 이 공약이 어떻게 실현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평화지수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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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과 오바마이하원 저 | 김영사
이 책은 ‘새로운 개혁’의 중국 시진핑, ‘안정된 성장’의 미국 오바마, 이 두 정상을 가까이에서 취재한 현장 기자의 생생한 육성을 들려주는 책이다. 시진핑의 중국, 오바마의 미국, 거기에 박근혜 출범의 대한민국과 극우 정부 아베의 일본까지. 2013년 새롭게 시작될 중국과 미국의 양대 구조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한반도, 동북아의 정치ㆍ경제ㆍ외교 분야를 미리 예측하고 그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단순한 유명 정치인들을 조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협력과 경쟁, 갈등 구조를 분석하여 현 시대의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30대 여성들을 위한 공감에세이를 써보고 싶다 - 『책은 언제나 내 편이었어』 김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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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책은 언제나 내 편이었어』에서 30대를 강조했다. 저자 자신에게 30대는 어떤 의미였나?

누구나 그렇듯 20대까지의 나는 30대에 접어들면 삶의 많은 부분이 안정되고,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20대 후반부터 그건 어마어마한 착각이자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서른이라는 숫자가 가져다 주는 환상은 안정보다는 또 다른 부담과 압박이었던 것 같다. 청춘이 드디어 끝나버렸다는 허망함과 나름 고군분투했던 20대의 시간들이 만족보다는 후회로 다가오기도 하더라. 이제는 정말 어른답게 처신해야 한다는 무언의 부담도 한 몫 했다. 이렇듯 나는 숱한 30대와 마찬가지로 난감함으로 서른을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서른 살 어른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서른에도 충분히 갈팡질팡 방황하고 흔들릴 수 있다고. 대단한 통찰을 얻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해서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지 않나.


20대

20대는 어떤 시기였나.

상당히 많은 것을 경험한 시기. 보름쯤 방안에 갇혀 미친 듯 책만 읽으며 보낸 시간도 있었고, 혼자 배낭을 메고 동남아 6개국을 떠돌기도 했다.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도 취득했다. 원하던 회사에 취직도 해보고, 진한 연애도 했고. 무엇보다도 20대 시절 천 권 이상의 책을 읽고 책을 6권이나 출간했다. 그 6권 중 각기 다른 분야가 각각 3권이다. 말하자면 나의 20대는 여러 가능성을 탐색해보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정확한 이정표 없이 닥치는 대로 시도해본 시기였다. 20대 내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며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커다란 성과나 목표달성은 없었다 해도 나에게는 20대가 참 소중하다.


독서

책을 많이 읽는다. 독서가로 유명한데, 왜 그렇게 책을 많이 읽는가.

제 무식함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일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많은데 아는 건 적고, 그래서 책으로 궁금증들을 해결해나가는 식이다. 이것저것 도전해 보고픈 일들이 많은데 그럴 때면 가장 먼저 관련분야 독서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독서는 일상에 깊숙이 박힌 습관이 되었다. 책을 못 읽을 환경에 놓이거나 다른 일이 너무 바빠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정서불안에 신경예민이 되곤 한다.


소설

『책은 언제나 내 편이었어』에 소개한 책은 대부분 소설이다. 이유가 있는지.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 것 같다. 많은 분야의 책들 가운데 소설을 특히 좋아한다. 자기계발, 인문, 경제경영도 모두 각각의 철학과 교훈을 담고 있지만 한 편의 훌륭한 소설만큼 삶의 혜안을 갖게 해주지는 못한다. 내가 소설을 통해 많은 것, 특히 삶의 이면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았듯이 이 책을 읽는 독자도 소설로 그런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에서 소설을 많이 소개했다.


인생철학

책에서 1부는 저자의 인생관을 다루는 듯하다. 인생 철학이 있다면?

인생 철학을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할까? 많은 문구를 가슴에 담고 다닌다. 꼭 실천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절대 남의 가슴에 상처내지 말자, 사소한 것은 사소하게 흘려 보내자, 눈치보지 말고 내 뜻대로 살자, 모든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자. 대략 이런 것들이다. 식상한 문구지만 사실 그 안에 숨은 뜻은 엄청나다. 인생철학이 관념 속에서만 존재할 것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이 되게끔 계속해서 곱씹고 있다.


행복

행복이란 무엇일까.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많은 돈을 가져본 적도, 그만한 위치에 올라본 적도 없어서 돈이나 명예, 권력 같은 것들이 정말 행복을 가져다 주는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곧 만족과 감사다. 꼭 GDP와 행복지수의 상관관계를 들먹이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이제 돈이 꼭 행복의 조건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나는 행복한 사람이란 ‘밑천도 가망도 없는데, 바라지도 않는 사람’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사랑

2부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저자의 사적인 사랑 이야기는 많이 드러나지 않는 편인데. 실제로 사랑, 연애했던 이야기를 채널예스 독자를 위해 공개해줄 수 있는가.

한 사람을 굉장히 깊이, 오래 만나는 스타일이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현재 남자친구도 스무 살에 날 것 그대로의 순수한 모습으로 만나 십 년 이상을 지켜보고 7년 간 연애를 하다 결혼을 앞두고 있다. 불같이 사랑하다 식어버리는 스타일이라기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애틋하고 좋아지는 마음이 생긴다. 지금은 그 사람을 위해서 삶 전부를 희생할 수도 있는 마음이다. 이런 얘기는 좀 웃기지만, 사랑을 할 때의 내 모습이 가장 멋있는 것 같다. 사랑 받으려 하기보단 더 많이 사랑해주려고 노력한다. 사랑으로 돌이킬 수 없이 손해를 보고 배신을 당해도 나는 다 줬기 때문에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을 것 같다.


실패, 좌절

3부는 실패, 좌절을 다룬다. 많은 사람이 책보다는 술을 마시거나 친구를 찾는데. 어떤 게 나을까.

정해진 해답은 없지 않나? 책이 더 위안이 된다면 책을 찾으면 될 것이고, 술이나 친구가 좋다면 거기에 기대면 된다. 그때그때 다르다면 그때그때 다른 상황에 얹어가면 된다.


창작

단편 소설로 등단한 적이 있다. 요즘도 소설을 쓰고 있는지 궁금하다.

부끄럽지만 졸작을 가지고 우연찮게 등단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 이렇게 말하지만 당시에는 심장이 터져버릴 만큼 무지 기뻤다. 소설은 1년 365일 항상 머릿속에 들어있다. 뭐랄까, 내게는 영원한 그리움 같은 것이다. 완성에 대한 조급함도 없어 마흔 전에 한 편만 써보자 라는 마음이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심도 감히 없어 우리 가족만이 독자가 되어준다 해도 상관없다. 흘러가듯 내버려 두려고 한다.



미래

앞으로 어떤 책을 읽을지, 어떤 책을 쓸지 알려 달라.

이제 서른이 되었으니 30대 여성들을 위한 공감에세이를 써보고 싶다. 다들 사는 거 팍팍하고 더럽고 구차하다, 끝까지 죽지 않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우린 승리자다. 이런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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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언제나 내 편이었어김애리 저 | 퍼플카우
작가 김애리는 ‘책’을 ‘내 편’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마르케스, 카잔차키스에서 산도르 마라이……. 고전부터 근래의 베스트셀러까지 100여 권의 책들이 작가를 통해 방황의 터널을 먼저 지난 선배로, 나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로, 혹은 나보다 더 방황하고 있는 친구로 다시 태어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새로운 친구(책)를 소개받고, 잊고 지낸 친구(책)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김애리라는 청춘이 길어 올린 찬란한 ‘인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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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사랑의 질과 양을 가늠하고 싶지 않아요 - 이도우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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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파주 언저리에서 ‘조용히 나이 들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이도우 작가. 요즘은 단편소설들을 쓰고 있는데,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물 위의 책방」, 「먼저 간 자의 발자국」, 「내가 방문한 The shop around the corner」 같은 제목을 가진 이야기들이다. 다가올 겨울 즈음에 단편집으로 묶어서 세상에 내보일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도우 작가는 「물 위의 책방」이야기를 살짝 공개했다. 평소 저수지에 떠 있는 비둘기집 같은 좌대를 몹시 좋아하는 작가는 밤낚시를 핑계 삼아 낚싯대는 무늬로만 드리워놓고 물에 떠있는 흔들리는 비둘기집 안에서 어두운 밤을 보내곤 한다. 젊은 날, 그렇게 좌대를 타려는 목적으로 낚시를 다니다가 좌대 방에 책방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이도우 작가. 그 책방에 가려면 나룻배를 저어 저수지를 가로질러 가야 하는데, 그 물 위의 책방에 관한 이야기다.


이도우 작가는 좋아하는 작가로 리처드 브라우티건, 김채원, 최승자, 엘리너 파존, 토베 얀손 등을 꼽았다. 이들은 시간도 공간도 초월해 작가의 마음을 묶어버리는 마력이 있는 저자들이다. 이들의 특장이랄까 공통점을 곰곰 생각해본다면, 산문을 써도 시와 같은 리듬감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도우 작가는 “그건 본능에 가까운 산문적 보폭인데, 훈련한다고 쉬이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외경심을 품게 된다”고 말한다. 특히 최승자 작가가 90년대에 번역한 브라우티건의 『워터멜론 슈가에서』는 이도우 작가에게 바이블 같은 의미의 책이다. 이도우 작가는 “최승자 시인께선 몇 해 전부터 편찮으셔서 요양 중이신데 면회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늘 찾아가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소설집 『초록빛 모자』의 김채원, 『작은 책방』의 엘리너 파존, 『무민 시리즈』의 토베 얀손은 섣불리 가르치지 않음으로써 가르쳐 주셨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음으로써 무엇보다 강렬한 목소리를 내 내면에 남긴 문학가들”이라고 전했다. 작가는 힘든 일이 있어도 그들의 책,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다른 일은 모두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곤 한다. ‘이런 글을,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하는 마음으로.

작가는 쓰고 싶은 소설이 너무 많지만 손이 느려 괴로울 뿐이라고 스스로를 타박하는 중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 중에서도 꼭 써야 할 과제처럼 느껴지는 소설이 있는데, 그건 유성기에 관한 이야기다. 이도우 작가는 “나 역시 책이 없으면 약간 초조해지는 책 마니아라, 책을 이야기하는 책을 쓰고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동기

개정판이 나올 만큼 많은 독자들에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사랑을 받았습니다. 소설을 어떻게 쓰시게 되었고, 인물 설정 및 집필하면서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시작은 함성호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불현듯 「落花流水(낙화유수)」 라는 시가 마음에 꽂혔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네가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우리의 옛 맹세를 저버리지만 그때는 진실했으니,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거지 꽃이 피는 날엔 목련꽃 담 밑에서 서성이고, 꽃이 질 땐 붉은 꽃나무 우거진 그늘로 옮겨가지 거기에서 나는 너의 애절을 통한할 뿐 나는 새로운 사랑의 가지에서 잠시 머물 뿐이니 이 잔인에 대해서 나는 아무 죄 없으니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걸, 배고파서 먹었으니 어쩔 수 없었으니, 남아일언이라도 나는 말과 행동이 다르니 단지, 변치 말자던 약속에는 절절했으니 나는 새로운 욕망에 사로잡힌 거지 운명이라고 해도 잡놈이라고 해도 나는, 지금, 순간 속에 있네 그대의 장구한 약속도 벌써 나는 잊었다네 그러나 모든 꽃들이 시든다고 해도 모든 진리가 인생의 덧없음을 속삭인다 해도 나는 말하고 싶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절없이, 어찌할 수 없이.
-「落花流水」 함성호
‘네가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단지, 변치 말자던 약속에는 절절했으니…… 운명이라 해도 잡놈이라 해도 나는, 지금, 순간 속에 있네’. 이 시를 읽으며 저릿했던 느낌으로, 어떤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실꾸리가 딸려오듯 줄거리가 떠올랐고, 그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됐어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 저의 가까운 친구들과 지인들의 모습이 겹치기도 했고, 몇몇 에피소드는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이기도 했고요. 10년이 지나니 그때의 느낌도 희미해져가지만, 잊지는 못할 추억입니다.


라디오

작가님께서 라디오 구성작가로 일하셨고 또 소설 속 주인공 ‘공진솔’도 라디오작가입니다. 작가님께 라디오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라디오 일을 좋아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라디오에는 책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종이와 활자뿐인 흑백의 텍스트에서 독자들은 무궁무진한 이미지를 얻어내잖아요. 비주얼한 지원을 받지 않아도, 책을 통해 얼마든지 자신만의 이미지를 끌어냅니다. 라디오 역시 제공하는 건 소리뿐이지만, 듣는 이들은 그 소리의 공간에 개인의 취향대로 보이지 않는 영역을 만드는 것 같아요. 집을 짓는 것처럼. 영상이 완전한 제품을 공급하는 느낌이라면, 책이나 라디오는 제겐 DIY의 느낌입니다. 오래 전 <볼륨을 높여라>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학교에선 내성적이고 눈에 띄지 않는 남학생이, 밤이 되면 해적방송 DJ로 변신해서 인근 학생들을 열광하게 만들죠. 지금이야 인터넷방송이나 팟캐스트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 영화가 나온 1990년엔 아마추어 무선통신기를 썼죠. 라디오에 대한 애정은 그런 이미지로부터 생긴 게 아닐까 해요. 바다에 배를 띄워놓고 발칙한 음악방송을 송출하는 영화 <락앤롤 보트>도 게릴라 같았죠. 즐거운 해적 방송에 대한 로망이겠지요.


편지

작가님이 받거나 보낸 편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는 누구와 소통했던 편지인가요?

청소년 시기와 20대 때 동생들, 사촌동생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에요. ‘그럼 이만 총총’의 시절이었는데, 제 다른 소설 『잠옷을 입으렴』에 그 시절의 추억을 녹여 쓰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럼 이만 총총’이란 구절이 이상하게 좋았어요. 그걸 처음 본 건 엘리너 파존의 동화집 『보리와 임금님』에서였는데, 영어 원문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아동문학가 신지식 선생님께서 그렇게 번역을 해놓으셨어요. 등장인물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면서 항상 필통을 동봉합니다. 그러고는 ‘추신. 이번에도 필통을 동봉합니다. 그럼 이만 총총.’ 하고 편지를 끝맺지요. 그 후로 오랫동안 제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때는 ‘추신’과 ‘동봉’, ‘그럼 이만 총총’이 키워드처럼 붙어 다녔습니다. 봄날 아지랑이 같이 간질간질한 어휘들이네요(웃음).



호각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에 호각 부는 장면이 많이 나왔는데요. 호각에 남다른 의미를 두신 것 같습니다. 작가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물은 무엇인가요?

호각은 대부분 은빛이고, 은빛은 차갑지만 매혹적인 색이기도 합니다. 은빛을 생각하면 저는 초여름 햇살 아래 운동장 식수대에서 찰나처럼 반짝이던 수도꼭지 같은 게 떠오릅니다. 예전엔 호각 소리가 싫었어요. 졸음의 끝을 잘라내는 경고 혹은 명령 같아서요. 체육시간을 연상하게 하고, 민방위 훈련도 싫었고, 경찰들의 호각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겠고. 그런데 나이를 먹고 어느 날, 학교 앞 문방구에서 호각을 봤어요. 그 즈음 이시영 시인의 시집 『은빛 호각』을 읽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새삼 ‘뭐야, 호각은 생각보다 예쁜 사물이었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훅 불면 그 속에 구슬이 움직이며 호르륵 그렇게 큰 소리를 내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에게 선물로 호각을 사주었는데, 목에 걸고 불어보면서 좋아하더군요. 제게 특별한 사물은 램프와 양초예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물들 중에서 가난한 사치품처럼 갖고 싶은 게 있다면 제겐 그것들입니다. 어두운 밤에 마루에 혼자 앉아 어둑한 램프 불빛을 바라보노라면 밤새도록이라도 앉아 있을 것 같습니다. 태양 아래선 역사가 되고 달빛 아래선 전설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램프와 촛불 아래선 모든 게 스토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애

연애소설이기 때문에 작가님의 연애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작가님의 사랑법은 무엇이었나요? 사람을 사랑할 때 어떤 마음으로 사랑하고자 했나요?

사서함에 그런 구절이 있잖아요. ‘누군가를 아무리 사랑해도, 그 사람을 위해 죽을 수도 있어도, 때로는 담 밑에 핀 꽃이나 내리는 눈이나 바람이나… 그런 것들이 사랑보다 더 천국처럼 보일 때가 있다는 것’.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런 점을 이해해 주는 일 같아요. 살다보면, 사람을 더 사랑하는 이들도 만나고, 사람 아닌 것들을 더 사랑하는 이들도 만나게 되죠. 가치관, 자기 일, 자연, 이념, 예술, 특별한 사물, 그 어떤 것이라도. 그것들과 함께 비교 대상에 놓고 그 사람의 사랑의 질과 양을 가늠하고 싶지 않아요. 그는 나를 사람 가운데 가장 사랑하고, 그러나 어쩌면 나보다 바다에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더 사랑하는지도 모르지만, 그걸 비교하고 싶지는 않은 거죠. 폭풍우와 경쟁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다른 대상에 대한, 다른 방향에 대한 사랑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제가 생각하는 사랑인 것 같습니다.


화해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썼을 때는 청춘과 화해했고 『잠옷을 입으렴』을 쓰면서는 유년과 화해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화해를 했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목격자’라는 말이 있지요. 처음 사서함이 나왔을 때, 첫 번째 책 작가 후기에 ‘서로의 청춘을 목격했던 벗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목격 당한다는 말의 뉘앙스는 좋은 일보다는 궂은 일, 한심했던 일, 약점이 될만한 일들에 더 가깝지요. 숨기고 싶고 들키고 싶지 않은데, 서로가 미숙한 청춘이었기 때문에 다들 한심하고 짠했던 모습들을 보여주고 목격하고 했던 겁니다. 사서함엔 제 청춘시절이 많이 녹아있는데, 그걸 소설로 풀어내니 차라리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고, 이왕 목격당한 이야기들도 이제는 따듯하게 품어낼 만큼 세월이 흘렀구나 싶어서 그 시절과 화해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잠옷을 입으렴』도 마찬가지였고요. 유년과 성장기는 사람의 인생에서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정서적인 면에서 몹시 강력한 시기입니다. 성장기 15년이, 어른이 되어 살아내는 몇 십년 세월의 변화에 맞먹는 힘을 지녔다고 할까요. 그런 유년과 성장기를 서로 목격하고 목격당하는 일차적 존재들은 역시나 가족입니다. 그 무수한 가족 테마는 이제 그만― 이라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꼭 한번은 서로의 옛 모습과 화해하고 싶은 것이 가족을 소재로 한 성장소설이 아닐까 합니다.


결핍

결핍의 시절이 그립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세대는 결핍이 없는 세대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자신의 결핍을 알고 느끼는 게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결핍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결핍’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으로 나옵니다. 요즘 세대는 얼핏 풍요로운 듯하지만, 알고 보면 지금처럼 결핍이 많은 세대도 없었을 것 같아요. 너무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지만, 실은 그것들이 정말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요. 백 가지를 소유하고 있어도, 정작 내게 필요한 열 가지는 빠져 있는. 하지만 어떤 사람은 겨우 스무 가지를 소유하고 있어도, 정말 그에게 필요한 열 가지도 함께 있기 때문에 결핍감이 덜합니다. 문제는, 내가 많은 것을 갖고 있는데 꼭 필요한 것들도 그 속에 있는지 없는지, 그 질문 자체를 던질 여유가 없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내 진짜 결핍을 알아차리고, 많은 걸 얻고자 막연히 쏘아대는 게 아니라, 오직 한 점, 그 과녁을 찾기 위해 활을 쏘는 열망이 그립다고 한 것입니다.


결계

결말에서 진솔이 건이에게 ‘당신은 나의 결계’라고 말합니다. ‘결계’라고 표현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작가님의 결계란 무엇인가요?

진솔이 건에게 ‘결계’라고 말한 건 힘들었던 서울이라는 공간이, 그녀의 사랑을 만나면서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변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을 거예요. 분명 같은 공간인데, 어제와는 다른 장소인 것처럼 다가오는 기분. 결계는 경계선과도, 울타리와도 좀 다른 느낌이죠. 저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 인물이 움직이는 소설을 좋아하는 편인데, 밀실보다는 결계처럼 느껴지는 공간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마를렌 하우스호퍼의 소설 『벽』을 보면, 시내에 무언가 아주 위험한 (핵폭탄 같은) 것이 터졌고, 동시에 다른 공간의 생명체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보이지 않는 거대한 돔이 형성됩니다. 숲의 오두막에서 휴가 중이던 주인공 여자는 그 돔 바깥에서 혼자 살아남아 몇 안 되는 동물, 식물과 함께 몇 년을 고독하게 생존합니다. 고독하지만 안전하고, 안전하지만 덧없지요. 숲 속에서 나무들이 만든 진(陣)을 풀지 못해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시공간이 다른 차원에서 따로 움직이는 듯한 결계는 늘 매혹적인 배경입니다.


해피엔딩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해피엔딩의 삶은 무엇인가요?

언젠가 이런 단편소설을 상상해본 적이 있었어요. 모든 인간의 삶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어떤 도시에 관한 이야기요. 드물긴 하지만, 살다가 그야말로 순수한 행복의 절정을 느끼는 순간 육신이 공기방울처럼 가볍게 흩어져 깨끗하게 허공으로 소멸하는. 그래서 그 도시의 사람들은 정말로 완전한 행복은 느끼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행복감이 찾아오는 날이 있고, 그 순간 행복의 정점에서 거품으로 소멸하니까 그의 인생은 해피엔딩이 돼버리는 거죠. 사실 해피엔딩이란 소설과 영화처럼 편집된 이야기에서만 존재하지 않을까요. 실시간 인생은 그럴 수가 없죠. 결말? 인간의 결말은 태곳적부터 정해져 있잖아요. 누구에게나 평등한 죽음이 진짜 엔딩인데, 뭐가 해피엔딩이란 말입니까. (웃음) 그러니 인생을 하나의 긴 여정으로 보고 결말에 가서 해피엔딩이 되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건 어리석은 일일 거예요. 차라리 해피엔딩의 일상화를 만드는 게 낫지 싶습니다. 아, 이번 한 주는 해피엔딩으로 마감했군. 오늘 하루는 그럭저럭 해피엔딩이었어. 오전 타임은 해피엔딩인데? 이렇게요. 너무 긴 여정으로 두고 보면, 피로한 강박이 돼버리는 게 해피엔딩이란 단어가 아닐까 합니다.


독자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고 또 개정판이 출간됐습니다. 작가님에게도 의미가 특별할 것 같은데요. 독자들에 대한 마음은 표현해주신다면?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이렇게 오래 독자님들 곁을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3~4년 정도 세상에 머무르다가 자연스레 잊히려니 했었습니다. 작가 손을 떠난 책은 저 혼자 움직이는 것 같아요. 많은 독자님들이 사서함에 관한 메일을 보내주시고, 리뷰 글을 올려 주셨습니다. 저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실은 본격적인 로맨스소설 작가로 활동하겠다는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냥 제가 보고 싶었던 어떤 사랑의 모습에 관해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그게 사서함이었거든요. 그런데 책이 꾸준히 팔리면서 저는 어느새 온라인서점 등에 ‘로맨스소설 작가’로 정확히 분류되어 등재돼 있었습니다. 저절로 주어진 명찰이라 할까. 그렇다면 그건 내게 맞는 옷일까. 나는 또 사랑 이야기를 쓸 준비가 돼있는가. 생각해봤지만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제가 들려주고 싶은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는 사서함이 전부였거든요. 오래 시간이 지나고 소설 『잠옷을 입으렴』을 출간했을 때, 기존 독자님들이 좀 당황하셨어요.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두 소녀의 성장 이야기로 돌아왔으니까요. 반면, 잠옷으로 제 소설을 처음 접한 독자님들은, 나중에 사서함을 찾아 읽고는 또 예상과 달라 갸우뚱하시는 걸 느끼기도 했답니다. 앞으로도 저는 아마 여러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어느 책이든 제 소설을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정말이지 감사하는 마음뿐이죠. 읽어주지 않는 책은, 아무 것도 비치지 않는 거울 같잖아요. 그건 너무 슬픈 일이고, 그래서 제가 들려드리는 이야기를 기꺼이 허락하셨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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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도우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2004년 처음 선을 보인 이 사랑 이야기는 독자들의 조용한 지지와 입소문 속에서 롱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까지 독자들이 웹상에 기록한 블로그 감상평과 리뷰 포스팅은 수천 건에 달한다. 그 동안 두 번 표지가 바뀌었고, 잠깐 ‘구하기 힘든 걸작’ 취급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로맨틱하고도 현실적인 캐릭터’ ‘잔잔하지만 확 와 닿는’ 문장으로 읽는 이들을 사로잡았고, ‘읽고 나면 곁에 있는 사람이 사랑스러워지는 소설’이라는 호평 속에 꾸준히 독자들의 곁을 지켜왔다. 2013년 올해 출간 10주년을 맞아 전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환기 탄생 100주년, 오해를 풀고 싶었다 - 이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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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환기 화백의 삶과 예술을 총체적으로 다룬 전기다. 그동안 김환기 작품의 발전과정과 평가를 다룬 평전은 여러 권 있었지만 그의 삶을 다룬 전기는 김향안이 생전에 쓴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가 유일하다. 이충렬 작가는 김향안이 미완성으로 남긴 전기를 읽은 뒤, 정본 김환기 전기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을 느꼈고, 자료를 조사하기 위해 안좌도 김환기 생가를 방문했고 그의 친구들도 만났다. 이충렬 작가는 일본 유학 시절 친구이자 부산 피난 시절과 뉴욕 시절 상당 부분을 함께한 김병기 화백을 인터뷰했고, 부산 피난 시절 김환기와 같은 집에서 지낸 전 예술원 원장 이준 화백도 만났다.

“김환기는 추상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구상과 반추상도 즐겨 그린 화가입니다. 그의 구상과 반추상에는 한국미의 아름다움이 잘 표현되어 있어 편안함과 뿌듯함이 느껴집니다. 특히 김환기는 민족적 정서가 곧 세계적 정서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화가였는데, 그래서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늘 안고 사는 해외동포 입장에서 더 관심이 많이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추상은 한없이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관람자가 곧 화가의 상상력을 공유할 수 있다고나 할까요.”

이충렬 작가는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집필하면서 유족 및 환기재단 측과 약간의 갈등을 빚었다. 초고를 검토한 환기미술관으로부터 본문 중 네 부분을 삭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이충렬 작가와 출판사 측은 “삭제 요청은 김환기의 삶 일부에 대한 은폐일 뿐만 아니라 작가에게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요청을 거절했다. 현재 환기재단 측은 고 김향안(변동림) 여사의 저작권, 초상사용권 등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 상태다. 이에 대해 이충렬 작가는 “이번 김환기 전기에서 유족 및 환기재단 측과 약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독자들이 김환기의 삶을 시대적 상황과 결부해서 이해해주시면, 그의 예술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고 김향안을 김환기의 부인으로만이 아니라 한 인격체로 살려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며, “예술가적 기질이 농후한 소설가였음에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김환기에 대한 사랑과 열정적이고도 헌신적인 내조는 김환기 예술을 꽃피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전기 작가는 작가의 삶을 쓰는 사람일 뿐, 작가에 대해 정의하는 미술사학자가 아닙니다. 김환기의 전기를 쓰면서 그에 대해 들었던 생각은 정말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고, 쉬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찾은 대단한 열정가였다는 사실입니다. 안정된 대학교수직을 내던지고 마흔 셋의 나이에 유럽화단에 도전장을 내민 것, 쉰 살의 나이에 뉴욕에 진출한 것 등은 그의 열정과 함께 끝없는 도전정신을 말해줍니다. 이번 책 작업 중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김환기가 집안의 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왜 과부인 김향안과 결혼했을까, 라는 부분이었는데, 이 과정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김향안의 자전적 소설 『정혼』을 찾아내서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이 중요한 이유는 김환기가 이 작품에서 김향안 여사의 ‘모성애’를 발견하면서 자신의 세 딸을 잘 키워주고, 그녀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부분이 있어, 자신의 작가생활을 잘 이해하고 내조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994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충렬 작가는 『그림애호가로 가는 길』, 『간송 전형필』,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등을 집필하며 여러 신문과 잡지에 소설, 르포, 칼럼 등을 발표하고 있다. 이충렬 작가는 “그동안 문화재수집가, 문화재를 발굴하고 지킨 박물관인, 이번에 화가를 했으니 다음에는 소설가를 쓰고 싶다”며, “이번 김환기 전기를 읽은 독자들이 김환기 화백이 고난과 역경, 우여곡절을 딛고 만들어낸 그림을 보러 환기미술관에 가주신다면 작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환기

화가 김환기는 작가님께 어떤 의미의 화가인가요? 김환기 전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며, 김향안이 미완성으로 남긴 전기와 비교한다면『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어떻게 다른가요?

김환기는 구상, 반추상, 추상의 세계를 모두 그린 대화가입니다. 구상과 반추상에서는 백자와 고가구 그리고 달과 구름, 고향 섬을 통해 한국미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서정적으로 표현했고, 추상에서는 인간의 그리움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광활하고 아득한 우주를 통해 인간의 존재에 대한 철학정 성찰도 보여줬습니다. 한 작가가 이런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준 예는 흔치 않았기에,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서 그의 삶을 조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향안 여사가 쓴 미완성 전기는, 일종의 회상기였습니다. 그래서 철저한 자료조사나 고증없이 자신이 기억하는 이야기와 김환기 화백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공간> 잡지에 단편적으로 연재했습니다. 그래서 그 글은 전기가 가져야할 이야기 구조(스토리텔링)를 갖추지 못했고, 과거나 개인사와 관련한 민감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누락시킨 것이 많습니다. 가족이 쓸 때 나타나는 한계라고 할 수 있고, 그래서 김향안 여사 스스로 ‘미완성 전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전기는 광범위한 자료조사와 검증을 통해 밝혀진 객관적 사실에 기초했고, 발굴한 자료는 포장하거나 감추지 않고 모두 썼습니다. 전기는 그렇게 솔직해야 그 인물을 정확히 조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탄생 100주년

올해는 ‘김환기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로 의미가 깊습니다. 화가 김환기를 자세히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김환기 작가는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어떤 존재인지 간략하게 설명해주신다면?

김환기는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화가’로 손꼽히는 화가입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의 정서를 화폭에 옮겨 세계 화단에 당당하게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조선 백자에서 ‘평범한 위대함’을 발견했고, 그 민족적 아름다움이 곧 세계적 아름다움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화가였습니다. 그가 프랑스에 간 것은 선진미술을 배우기 위함이 아니라 유럽의 화가들과 당당하게 경쟁하러 간 것입니다. 그가 세계 미술의 새 메카 뉴욕에 간 것은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 ‘조선의 특색’으로 세계 화단과 한 판 승부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김환기 화백은 하나의 작품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추구했던 화가입니다. 만약 그가 환갑 갓 지난 나이에 사망하지 않았다면,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우뚝 섰을 것입니다.


오해

사람들이 김환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오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많은 이들은 김환기가 부유한 환경 속에서 작품활동을 했고,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상속받은 재산을 한국전쟁 전에 모두 썼고, 그 이후 경제적으로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집을 팔아 프랑스에 갔고, 정부의 지원으로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하는 길에 미국에 갔습니다. 그 후 아내 김향안과 자식들을 미국으로 데려올 때도 빚을 냈습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곤궁하게 지냈습니다.


김향안 여사

단순한 동반자가 아니라 김환기 그림의 조언자이자 조력자였던 고 김향안 여사는 작가님께 어떤 인물로 다가왔나요?

고 김향안 작가는 김환기의 영역을 존중하고 침범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나의 자료조사 결과입니다. 그녀는 김환기가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게 내조했습니다. 한국에 살 때는 친구들에게 그림을 팔았고 생활비가 부족할 때는 쌀을 꾸러 다녔습니다. 프랑스에 살 때는 김환기 담뱃값을 꾸러 다녔고, 미국에서는 김환기가 그림 사기를 당하면서 재료살 돈조차 떨어지자 백화점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한마디 불평 없이 김환기 전처 소생 세 딸을 키웠습니다. 김향안은 김환기의 예술을 위해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포기하고 헌신적으로 내조한 ‘내조의 여왕’입니다. 김향안의 헌신이 김환기 예술을 완성시켰다고 생각합니다.


환기미술관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집필하면서 ‘환기미술관’을 수차례 방문하셨는데 ‘환기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환기미술관은 고 김향안 여사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세계적 규모의 미술관입니다. 김향안 여사는 김환기 사후 20년 동안, 이미 다른 소장가의 손에 들어간 대표작들을 다른 작품과 바꿔서 환기미술관 소장품이 되게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작가의 이름이 들어간 미술관이 많지만, 환기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의 수준은 독보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술 애호가들이 더 많이 환기미술관을 방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주, 항아리와 매화, 론도

작가님께서 최고로 꼽는 김환기의 작품은 무엇입니까?

좋은 작품이 너무 많아 딱 한 점만 꼽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세 점을 꼽는다면, <우주> <항아리와 매화> <론도>입니다. <우주>에서는 근원적 슬픔이라는 존재론적 명제를 느낄 수 있고, <항아리와 매화>에서는 한국미의 아름다움이 넉넉하게 느껴지고, <론도>에서는 음악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정혼

김환기 화백에 대한 많은 책을 참고하셨는데, 가장 인상깊게 본 책은 무엇입니까?

김향안의 자전적 소설 『정혼』과, 두 사람을 중매한 일본 시인 노리다케 가츠오의 일본 자료였습니다. 노라다케 가츠오 자료는 그동안 두 사람을 중매한 사람이 노천명 시인이었다는 설을 잠재울 ‘결정적 자료’였습니다. 김환기의 생질(큰 누나의 아들, 아이돌 그룹 빅뱅의 탑 외조부)인 서근배 작가가 김환기 사망 후 여성잡지에 발표한 ‘생질이 본 김환기 부부’였습니다. 이 글을 통해 김환기의 부친이 왜 안좌도에 정착했는지, 집안에서 김향안과의 결혼을 얼마나 심하게 반대했는지 그리고 ‘씨받이’ 여인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소상하게 밝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향안의 수필 ‘결연’을 통해서는 양자 입양과정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유족

결국 유족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책이 출간되게 되었는데요. 아쉬운 마음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책 출간에 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유족과 환기재단은 작가의 민낯보다는 포장된 모습을 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포장된 모습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그분들은 그분들의 선택을 했고, 나는 일부 내용 삭제요청을 수용하지 않고 작가의 양심을 선택한 것입니다. 여기에 선악은 없습니다. 서로의 선택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유족과 환기재단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저와 출판사가 편집을 몇 번씩 다시 하는 등 고생은 많았지만, 변호사의 조언으로 유족 및 환기재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책은 완성됐습니다. 저는 작가로서 써야 할 것을 썼고, 유족과 환기재단 측은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았습니다.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잔치가 열리는 올해, 제가 쓴 전기나 환기재단 측의 여러 행사들이 김환기를 알리고 빛내는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면 만족합니다.


그림

작가님께서 이국생활의 고단함 속에 조국을 그리워하며 한국 그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셨는데, 왜 하필 그림이었습니까? 그림애호가로서의 누리는 행복감은 어떤 것인가요?

벽에 한 점 두 점 걸리는 한국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조국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볼 때마다 고향산천을 만났습니다. 희양산 봉암사 가는 오솔길을 만났고, 할머니의 다듬이 소리를 만났고, 동해 바다의 출렁임을 만났습니다. 바보같이 소나기를 맞는 호랑이 보며 아이들은 즐거워했습니다. 이것이 그림이 주는 즐거움이고 행복입니다. 이번에 나와서도 작은 소품을 구입했는데 어린 공룡이 구름 위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는 나무 조각입니다. 둘째 딸이 아마존 서점에 근무하기 때문에 선물하려고 샀습니다.


전기

이미 여러 차례 다양한 글을 발표하셨지만, 전기는 정말 어려운 작업인데요. 전기의 매력은 무엇이며 전기 작가로서 뿌듯한 점은 무엇입니까.

전기는 한 시대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의 삶을 사실에 입각해서 써야하기 때문에 자료조사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작업이 ‘보물찾기’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뭐든지 시작을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작업을 해서 책으로 나왔을 때 독자들은 그 인물의 삶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때 그동안 힘들었던 것이 눈 녹듯 녹아내리며 보람을 느낍니다. 이것이 전기의 매력이고, 지난한 자료조사를 할 수 있게 하는 힘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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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이충렬 저 | 유리창
한국 화단의 3대 블루칩 수화 김환기. 2013년은 김환기 탄생 100주년이다. 한국 추상, 반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수많은 명화를 탄생시킨 김환기의 삶과 예술을 충실하게 복원한 ‘정본’ 김환기 전기가 나왔다. 부분적으로만 알려졌던 김환기의 삶은 물론이고, 그의 예술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꼼꼼한 자료조사와 그를 알고 지낸 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소상하게 밝혔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김환기 예술은 물론이고, 어렵게 느끼던 추상미술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다들 스펙 쌓을 때 VJ 선발대회 나갔고, 남들 고시 준비할 때 창업했다” - 『청춘 고민 상담소』 한동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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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인가

 

강연 문화 콘텐츠 기업 마이크임팩트(micimpact) 대표를 맡고 있다. 어릴 때부터 선배들의 무용담이나 또래들의 이른바 ‘뻘짓’ 같은 이야기를 좋아했고, 어렴풋이 그 속에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발굴하거나 만들고 전파하는 일을 시작했다. 작은 생각과 깨달음이 다소 무모해 보이는 실행의 옷을 입으면서 마이크임팩트라는 회사로 탄생했다. 비전과 ‘똘끼’가 가득한 청년들이 매일매일 신나는 도전을 하고 있다.

 

『청춘 고민 상담소』는 어떤 책인가. 책을 쓴 계기가 있다면?

 

현재 우리의 청춘들의 실제 고민을 상담했던 동명의 강의를 엮은 책이다. 두려움, 후회, 상처, 열등감 등 ‘청춘이 버려야 할 10가지’를 테마로 하여 10명의 연사가 참여했다.


청춘을 위한 메시지가 쏟아지지만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말이 없다. ‘꿈과 열정을 가져라’ 혹은 아프니까 뻔한 ‘위로’로 ‘힐링’하려는 메시지들이 많다. 이런 말들은 청춘들에게 오히려 또 다른 죄책감에 빠지게 하거나 또 하나의 부담이 되는 등 ‘독’이 되는 측면이 있더라. 청춘들의 구체적인 고민 속으로 뛰어들어 깊게 고민하고 가슴으로 공감하고 함께 방법을 찾아보는 노력이 절실해 보였다. 그런 노력을 같은 청춘들이 해보자는 취지로 ‘청춘 고민상담소’라는 강연을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주었다. 팟캐스트에 올린 내용은 사회 문화 부문 1위도 해봤고. 더 많은 사람이 이 내용을 보고 싶다는 요청에 이번에 책으로도 출간했다.


이 책으로 대한민국 청춘들의 고민이 온전히 해결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님과의 갈등, 사랑의 아픔, 등록금 문제, 취업 걱정 등 청춘들의 마음 속 깊은 곳 진정한 고민을 양지에 꺼내놓을 수 있게 한 것만도 성과라 할 수 있겠다. 한 번도 터놓고 이야기한 적이 없던 고민을 함께 유쾌하게 이야기하며 햇빛을 쬐어준 것만으로도 해결의 실마리는 찾게 될 거다.

 

상당히 젊은 나이에 성공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내 기준과 세상의 기준은 좀 다르기에 성공이라는 말이 쑥스럽다. 성공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참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참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 예전에 직장 생활하던 때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일상이 힘들어졌는데도 행복하다. 나도 여느 30대 초반처럼 결혼이나 재테크 등의 비슷한 고민을 한다. 그러나 회사를 운영하기에 수십 명의 미래와 인생을 책임지는 그 부담감은 이전과 비할 바가 아니다. 수많은 강연을 개최하고 그 강연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서, 사회와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도 고민하기도 한다.

 

젊은 나이에 일을 하다 보니 전혀 예측도 대비도 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 앞에서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이 나에게 신나는 모험으로 느껴진다. 내 가슴을 무겁게 하는 책임과 부담,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다가오는 수많은 이슈들은 오히려 나의 모험을 더욱 즐겁게 한다. 생각만 하던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매일매일 성장해가는 이 행복감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건 황금이 아니라 황금을 좇는 모험이었어”라는 루피의 말처럼 모험 자체가 내 가슴을 뛰게 하고 즐겁게 한다. 이런 생각 저편에는 두 가지 믿음이 있다.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경험은 나를 강하게 한다’는 믿음과 ‘답이 없는 문제는 없다’라는 믿음, 이 믿음이 내일 다가올 모험을 더욱 기다리게 한다.


“나는 힘들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래서 더욱 행복하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청춘’ 하면 보통 학생 시절을 많이 떠올린다. 자신은 어떤 학생이었나.


청개구리 같은 학생이었다. 남들이 한 길만 옳다고 우르르 그 길로 가면, 왠지 그 길은 가고 싶지 않았고 다른 길로 갔다. 단순히 선호ㆍ비선호가 아니라 남들 다 가는 길은 죽어도 안 가겠다는 신념 수준이었다. 같은 길을 간다는 것은 나에게 내 존재의 가치가 아예 소멸되어 죽는 것과 다름없다는 의미였다.

 

대학교 들어갈 때는 다들 법대 가려 할 때 난 오히려 경영대를 갔고, 경영학과에서 동아리로 다들 경영학회 들어갈 때 합창부나 YLC같은 연합동아리를 했다. 다들 스펙 쌓을 때 캐나다나 홍콩으로 교환학생 갔고, VJ 선발대회나 세계쇼핑대회를 나갔다. 또 경영학과 친구들 대부분이 CPA나 고시를 준비할 때 나는 생소한 컨설팅을 준비했고, 다들 보장된 MBA를 갈 때 다들 혀를 끌끌 차던 창업을 했다. 그야말로 청개구리 인생이었다.

 

이런 청개구리 선택을 거듭하면서 진짜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모습,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조금씩 명확해지더라.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선택이 불러온 현실적인 결과도 더욱 좋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선택할 때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반대했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기에 선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건 오로지 내 몫이었다. 각 선택마다 책임을 지고 내 모든 것을 다해 진정 최선을 다하면 생각보다도 좋은 현실적인 결과들로 돌아왔다. 덧붙여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청개구리를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믿어준 부모님이 참 감사할 따름이다.

 

 

책에는 10명의 연사가 각각의 키워드와 어울려 등장한다. 이 중에서 꼭 한 장만 읽을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어떤 부분을 읽어야 할까?

 

책에 나온 열 분 모두 청춘들에게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충고를 아끼지 않으셔서 하나를 꼽기가 어려운데, 굳이 추천한다면 김홍신 선생님의 ‘열등감’ 편을 추천한다. 사실 대한민국 청춘을 특히 힘들게 하는 원인을 찾고 찾아가다 보면 그 안에는 열등감, 즉 비교의식이 있다. 전세계 청춘들이 다 힘들지만 대한민국 청춘들이 특히 힘든 이유는 바로 이 과도하게 발달된 비교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줄 세우기 대한민국 교육이 심어준 이 뿌리 깊은 비교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을 때, 진정 내가 나다워질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 이런 열등감에 대해 김홍신 선생님은 깊은 삶의 경험을 기반으로 명확한 솔루션을 주신다. 바로 ‘인정하기’다. 남이 잘하는 것, 남이 잘난 것을 인정하라고 한다. 반대로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잘난 것도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은 김연아를 보며 ‘왜 난 공중 3회전 점프를 못하지’라고 생각하며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김연아를 그 자체로 인정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기와 열등감이 아닌, 진심어린 응원과 박수를 보낼 수 있다. 인정하기, 바로 열등감에서 해방하는 비결을 알려준 김홍신 편을 읽을 것을 추천한다.

 

책은 많이 읽는 편인가. 영향 받은 사상가나 작가가 있다면?


예전에 비해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데도 책은 더 많이 읽는다. 기업을 하다 보면 리더십, 동기부여, 비즈니스 모델, 브랜드 등 수많은 이슈들이 생기고, 그 이슈들을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하거든. 그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사람과 책이다. 각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해당 이슈와 관련된 책을 찾아서 읽고 적용하고 해결하고, 또 다른 이슈가 생기면 또 관련된 책을 읽고 해결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요즘 책을 읽는 이유는 교양이나 기분 전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절박해서다.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나와 회사의 생존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생하는 이슈가 많아질수록 읽는 책이 많다.

 

요즘 노자의 『도덕경』에 영향을 받고 있다. 예전에는 컨설팅 회사에서 일을 했던 습성 때문에 시간을 잘게 쪼개서 배분하고 일일이 다 체크하고 진행해가는, 그야말로 효율을 추구하는 업무를 했다. 하지만 일이 늘어나고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런 리더십의 한계가 오더라. 그래서 리더십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조언을 구하면서 나만의 리더십관을 구축했다. ‘어떻게 하면 일을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동료들의 가슴을 어떻게 뛰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들의 위대함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실행한다. 그러다 보니 모두들 자발적으로 일을 하고, 나아가 예상치도 못했던 위대한 결과도 종종 얻게 됐다. 이렇게 리더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 한 사람의 위대함을 믿고 이끌어내는 리더십관을 갖게 한 데는 노자의 영향이 컸다.

 

이 책으로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 싶은 주제 의식은 무엇인가?

 

사람의 몸에는 누구나 암세포가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고민도 누구나 안고 살아간다. 문제는 암세포를 키워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만드느냐 아니냐인 듯하다. 어차피 평생을 같이 살아가야 하는데 그 존재를 인정해라. 건강의 적신호를 무시하고 덮었다가 커다란 암 덩어리를 만들지 말고 평소에 관리하라는 충고들 많이 하지 않나? 고민, 이것도 관리만 잘해주면 된다.

 

대한민국 청춘들이 고민을 덮어놓고 무시하거나 미워하거나 짜증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그 고민을 인정하고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한다. 고민을 한 방에 싹 해결할 답은 아쉽게도 없다. 그러나 고민을 음지에서 양지로 데려와 고민을 인정하고 즐긴다면 어느새 고민의 해결점에 닿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앞으로 활동 계획을 말해달라?

 

우선 『청춘 고민상담소』가 대한민국 청춘들이 고민을 편하게 이야기하고 서로 공감하며 해결을 향해 나아가는 역할을 하는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청춘들이 고민의 늪에서 발을 내딛어 빛나는 미래로 한 발 나아가게 하는데 작게나마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형태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처음 청춘 고민상담소를 소극장에서 시작할 때의 그 진심, 그 초심만 간직한다면 그 진심이 나비효과를 불러오리라 믿는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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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고민상담소한동헌 등저 | 엘도라도

매년 봄 한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축제 한마당 ‘청춘 페스티벌’과 KBS ‘남자의 자격’ 출연자 이경규?김국진?김태원 등이 연사로 나선 강연회 ‘청춘에게 고함’으로 유명한 마이크임팩트의 강연 콘서트 ‘청춘 고민상담소(시즌 2)’의 단행본 버전. 강연 기획자 한동헌(마이크임팩트 대표)을 비롯해 장항준(영화감독), 류재현(문화기획자), 유수연(강사), 홍지민(배우), 박신영(컨설턴트), 김혜남(교수), 김홍신(소설가), 유인경(기자), 문요한(의사), 김태원(구글러)이 ‘고민 멘토’로 참여해 청춘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풀어나간다.

 




꿈 많은 10살 한국 소녀의 영국 이야기 - 『행복한 열 살 지원이의 영어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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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독자들에게 짧게 자기소개를 해 주세요.


지원 : 안녕하세요? 저는 영국에 7년째 살고 있는 배지원이에요. 이제 영국학교에서는 6학년 졸업반이고요. 내년 9월이 되면 중학생이 된답니다. 그림 그리기랑 책 읽기를 좋아합니다. 공 갖고 하는 운동을 특히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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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열 살 지원이의 영어 동화』는 어떤 책인가요? 동화를 쓴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지원 : 제가 초등하교 4학년 때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 내주는 작문숙제가 있었어요. 4학년 전체가 해야 하는 숙제였죠. 주어진 20개의 영어 단어 중에서 5개를 골라서 그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사용해야 합니다. 밀러 선생님께서 “선택한 단어를 갖고 서로 이어진 짧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시도해 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한 번 이야기를 써보았는데 너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계속계속 이어가고 싶었어요. 


한국의 초등학생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느라 매우 바쁜데요. 심지어는 동화를 그린다는 상상조차 못할 정도죠. 지원이의 영국생활은 어때요?


엄마 : 지원이는 보통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에는 오케스트라, 목요일에는 넷볼(Netball Club) 방과후 교실에 참여합니다. 집에 돌아오면 거의 5시쯤 되고요. 돌아오면 늘 배고파 하니까 간식 먹고 저녁 먹기 전까지는 쉬어야 해요. 금요일에 내주는 학교숙제는 수요일까지 제출해야 해서 저녁식사 후에 월요일과  화요일 밤에는 주로 학교 숙제를 합니다. 늦어도 10시 전에는 자야 하거든요. 방과후 교실이 없는 날은 4시쯤 집에 돌아오는데 그런 날은 저녁 먹기 전까지는 자유롭게 책을 읽거나 동생과 놀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학교에서도 공부했으니까 지원이를 좀 쉬게 해주어야 하니까요. 저녁  먹고 나서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습을 하거나 수학 문제집을 풀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지원이가 곧 중학교 입학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1시간씩 영어 그룹레슨을 받는 게 달라진 점이라고 할 수 있고요.

 




지원 : 금요일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수영하는 날이에요. 30분 레슨 받고 나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수영장에서 더 놀다가 집에 오고요. 잠자기 전에는 한국학교 숙제를 해요. 토요일 오전에는 한국학교에 가거든요. 한국학교 끝나면 바이올린 배우고 그 후에는 자유시간이에요. 친구들 생일파티에 가거나 가까운 공원에 엄마 아빠랑 지우랑 함께 가거나 놀러 다녀요. 일요일에는 오전에는 교회에 가고, 오후에는 주로 집안 대청소랑 영화나 동물 다큐멘터리를 함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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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쓸 때 소재는 주로 어디에서 찾나요?


지원 : 주로 제가 경험했던 일들과 (학교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나 가족끼리 있었던 일들) 읽었던 책들에서  아이디어를 찾았어요. 동화를 쓰면 제가 맘대로 주인공들의 운명을 만들 수 있어서 너무 재밌어요.


동화책을 만들면서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으면 얘기해주세요.


지원 : 제가 숙제로 쓴 이야기들이라 주인공들은 혼자 그렸던 그림이 있었지만 장면장면의 그림은 그리지  않았거든요. 나중에 책을 만들게 되어서 방학 때 이야기에 맞는 10장 정도의 그림을 따로 그렸어요.  근데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나중에는 자꾸 그리다 보니까 좀 귀찮아졌어요. 마지막 캠핑장 그림은 대충  그렸더니 어른들이 다른 그림들과 틀리다고 금방 알아채셨어요. 결국 책에 실린 캠핑장 그림은 다시 그린 그림이랍니다.

 
엄마 : 부모의 눈으로 보면 늘 아이의 부족함이 먼저 보이나봐요. 아이가 생각하기에는 문제가 없는데도 어른시각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면 지원이가 금세 기분이 나빠지고 글 쓰는 것에 흥미를 잃어버리더군요. 그래서 맞춤법이 틀렸거나 내용이 어설프더라도 아이 스스로 상상한 것을 아무 제한 없이 표현할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동화에 등장하는 동물로, 토끼를 고른 이유는?

 

지원 : 호랑이나 사자 같은 것 보다는 토끼가 평화롭고 보통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과 제일 비슷한 것 같아서         토끼를 선택했어요. 근데 사실 늑대를 제일 좋아해요. 그래서 늑대 이야기를 꼭 한 번 써보고 싶어요.

 

앞으로 지원이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지원이의 꿈을 나눠주세요.

 

지원 :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과학자도 되고 싶기도 해요. 전 친할머니가  너무 좋은데 몸이 약하셔서 비행기를 오래 못 타시거든요. 그래서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어요. 할머니를 위해서 완전 빠른 비행기를 개발하고 싶어서 과학자도 되고 싶어요. 그리고 실험 같은 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어서 동물학자도 되고 싶고요. 북극곰이나 펭귄이 살고 있는 북극과 남극 탐험도 하고 싶어요.

 

동화를 그리면서 독자와 함께 나누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알려 주세요.

 

엄마 : 아이의 글 속에서 나누고 싶은 특별한 주제는 없지만 지원이의 동화를 읽으면서 저도 몰랐던 아이의 생각을 만날 수 있었거든요. 내 아이가 자기 가족을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학교생활에 대한 느낌은 어떤지 그러한 일상의 모습을 글을 통해 만나는 게 참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그 어느 것 하나 잊지 않고 세심하게 글로 옮긴 것을 볼 때는 놀랍기도 하고요.

 

아이들은 무엇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같단 생각을 했고, 엄마로서 더 긴장하고,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주로 지원이가 기억해내고 동화로 쓰는 순간들이 아이한테 참 행복한 일상이 소재가 된다는 것을 알았고, 단편적이지만 지원이가 경험했던 영국의 수업시간들도 재미있게 엿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많이 궁금했던 내용이기도 하고요. 

 

Walton_library에서.jpg


지원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지원 : 7살 생일 때 엄마, 아빠, 동생이랑 사파리 갔었을 때요. 우리 차로 다니는 사파리였는데 창문을 열어서  직접 기린 먹이를 주었더니 기린이 우리차를 쫓아왔어요. 사슴은 뿔로 아빠 차를 막 긁어 놓았어요. 사자는 게이트 문 앞에 앉아버려서 비켜줄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는데 그때 너무 신났어요. 작년 여름에는 외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영국에 오셨는데 그때 함께 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서 고등어 낚시에 갔었는데 그때도 너무 좋았어요.   
     

한국의 독자들에게, 지원이는 또래 친구, 어머님은 한국의 엄마들에게 한 마디 해 주세요.


지원 : 나는 보통 책을 읽을 때 머릿속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읽거든. 내 맘대로 상상하는 게 너무 재밌어. 친구들도 내 이야기를 읽을 때 머릿속으로 만화영화를 만들면서 읽어보면 더 재미있을 거야.

 

엄마 : 초등학생들의 엄마로서 7년을 살면서 갖게 된 영국이란 나라의 이미지는 개발과 변화보다는 보전과 전통을 고수하는 곳, 아름다운 자연환경, 문화적 유산 등등 조상들에 물려받은 환경으로부터 많은 것을 누리고 그 가치들을 교육을 통해서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는 나라였습니다. 지원이와 한국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책을 함께 만드는 과정에서 과연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이젠 우리네요.) 아이들에게 어떤 유산을, 교육은 또 어떤 가치를 아이들에게 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독자분들이 지원이가 처한 환경, 일등보다 꼴찌에 더 관심 갖고,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시험 날짜도알려주지 않는 영국 아이들의 교육현장을 부럽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미래의 한국 땅에서 자라나는어린이들도 충분히 그러한 환경을 누릴 수 있게 되리라 믿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진정한 열망과 의지가 있다면 말이죠.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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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열 살 지원이의 영어 동화배지원,최명진 저/배지원 그림 | 남해의봄날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난 한국 소녀 지원이가 영국 초등학교에 다니며 작문 숙제로 동화를 썼다. 이란성 쌍둥이 토끼 로리와 도리, 그리고 그들이 사는 세계를 만들고 1년 동안 스물일곱 편의 에피소드를 써내려 갔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영국의 아이들 앞에서 지원이의 동화를 읽어주었고, 한국에서 온 열 살 소녀에게 동화를 책으로 엮어낼 것을 권유하기에 이른다.

“외로운 부부가 세상에 왜이리 많을까요?” -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이정국, 임지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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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소개해 달라.


이정국(이하 이): 진로를 못 정해 갈팡지팡 하던 대학 졸업반 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나 곰곰히 생각했다. 남들처럼 수리에 밝은 것도 아니었고, 각종 자격증으로 무장한 짱짱한 스펙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주변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다. “내가 뭘 잘하는 거 같니?” 물었더니, “넌 글을 잘 쓴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전에 미니홈피에 끄적끄적 글 쓰는 걸 좋아하긴 했다. 그 말이 진심이었는지 위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나름대로의 적성 테스트를 거쳐 글을 쓰는 직업을 택하기로 정했다. 범위를 좁히니, 진로는 금방 결정됐다. 그렇게 해서 지금 8년 째 기자로 활동 중이다.


임지선(이하 임): 70년대도 80년대도 아닌 듯한 1980년에 태어나 90년대도 2000년대도 아닌 듯한 99학번으로 어정쩡하게 살았다. 대학에서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국어국문학을 부전공했다. 2006년 <한겨레>에 입사했고,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을 오롯이 사회부 기자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살았다. <한겨레21>에서 30주 연속으로 인권 사각지대를 조명한 ‘인권OTL’ 시리즈, 식당 노동자로 위장 취업해 여성 빈곤 노동의 현실을 알린 ‘노동OTL 시리즈’, 국내 최초로 영구임대아파트 121가구를 심층 조사한 `영구빈곤 보고서’ 등을 취재하고 집필하며 인권 보도에 눈을 떴다. <한겨레> 사회부에서는 신문기사의 틀을 벗어난 사람이야기 중심의 기사를 쓰고자 노력했다. 저서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를 비롯해 『4천원 인생』, 『현시창』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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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왼쪽), 이정국(오른쪽)


이 책은 어떤 책인고, 저술 계기는 무엇인가.


이 : 애초 <한겨레> 오피니언넷부에서 새로 시작할 기획 연재를 구상하고 있었다. 오피니언이라고 하면 보통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신문에 기고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우리 부서원이 주목했던 것은 ‘그렇다면 신문사의 글을 보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어떻게 담을 것인가?’였다. 회의 끝에 ‘직접 찾아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결론을 내렸고, 언론사 사상 최초로 ‘찾아가는 오피니언’을 만들었다. ‘낮은 목소리’라는 타이틀로 1년여 동안 사회의 밑바닥을 훑고 다니며 들었던 이야기를 책으로 묶었다.


임 :한겨레 오피니언넷부 소속인 이정국, 이경미 기자가 코너를 만들어 꾸려나가던 중 내가 합류해 쓰게 됐다. 매주 어떤 소재의 기사로 이 사회의 낮은 목소리를 전달할 것인지 고민했고 감사하게도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한국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다룬 『4천 원 인생』의 후속편 같은 느낌도 든다. 임지선 저자는 두 책에 모두 참여했다. 2010년에 비해 2012년, 한국 근로 조건은 어떻게 변했다고 판단하나.


임 : 한국 사회에 비정규직이 독버섯처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파견, 외주, 하청, 인턴까지 정규직을 비껴나간 ‘비정규’ 일자리가 도처에 넘쳐난다. 정규직이 아니(非)라는 의미인 ‘비정규직’을 관통하는 정서는 ‘불안’이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죽도록 일하면서 극심한 불안에 내몰리고 있다. 

 

쌍용 자동차 사태를 다룬 공지영의 의자놀이』비롯해 정권 말기인 탓인지,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책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독자로서, 다소 피로한 감도 없지 않다. 실제로, 이런 인문 사회 쪽 책이 문학이나 실용서에 비해 판매량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독자가 피로함을 느끼지 않으면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 : 우선, 주변을 돌아보기를 권한다. 각박한 사회다. 주변을 돌아보기엔 ‘내 앞길'더 너무나 불투명하다. 바로 옆에서 누군가 죽어나가는데도, 내 살 길이 바빠서 쳐다볼 수 없는 사회다. 하지만 이 책의 기획 의도는 ’나도 힘들지만,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리는 취지였다. 그래서 책 제목이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이다. ’내가 혼자가 되었나‘가 아니다.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 ‘나만 잘살면 되지’라는 생각은 결국 사회를 파멸로 이끈다. 최근 연이어진 아동성폭력 사건을 봐도 그렇다. 우리가 우리 이웃의 아이들을 자기 아이 돌보듯 보살피고 관심을 가졌다면 그런 흉측한 범죄가 벌어졌을까? 서로 떠넘기기에 급급한 사회다. 우리가 사회문제를 지적하는 서적에 대해 피로를 느끼는 것은,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발 물러서서 사회를 조망하기를 권한다. 분노가 생길 것이다. 이것이 이런 책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임 : 피로도로 치자면 “당신만 변하면 된다”는 식의 자기계발서, “나를 따르라”는 식의 멘토링 서적이 더 많지 않은가? 물론 암울한 현실을 직시하는 책은 쓰는 이도, 읽는 이도 힘겹긴 하다. 하지만 소설이 아니다. 현실이다. 읽고 힘들다는 것은, 이런 현실은 옳지 않다는 의미다. 많은 이들이 읽고 공감하는 것이야 말로 세상을 변하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참여하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좀 덜 피로하지 않을까?

  
기자를 꿈꾸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기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얘기해 달라.

 

이 : 기자는 피곤한 직업이다. 주5일 정착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회분위기와 다르게 휴일근무, 야근 근무를 밥 먹듯 한다. 몸만 힘든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받는다. 매일매일 눈을 뜨면 어떤 기사를 써야할지 고민해야 한다. 기사 거리를 겨우 찾아내도 취재하면서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 역시 엄청난 스트레스다. 이런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하는 것이 기자다. 한시라도 긴장감을 늦췄다간 감각이 떨어져 금방 도태되고 만다.

 

하지만 그래도 기자를 지망하는 사람이 많고, 기자 직업에 대해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컨택터스라는 용역경비 회사가 한 사업장에서 폭력을 휘둘러 말썽이 생겼다. 내가 근무하는 <한겨레> 24시팀 기자들은 2달여간을 이 한 건에 매달려서 수십 건의 보도를 쏟아 냈다. 결과 국회에서 청문회까지 열리고 관리감독 부서인 경찰청장은 사과를 했다. 재발방지를 위해 관련 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는 것은 이렇게 해서 사회가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데 한 몫을 하기 때문이다.

 

또, 기자는 다른 직업과 다른 점이 있다. 자기가 힘들게 취재하고 쓴 기사는 오로지 자기의 공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일반 회사원들의 경우 자기가 노력해도 그 성과가 조직에게 돌아간다는 점과는 다른 부분이다. 
 

임 : 이제 매체도, 기자도 넘쳐난다. ‘기록하는 사람’이란 뜻의 기자는 쓰임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상황과 마주치는 직업인만큼 힘도 들지만 보람도 많다고 생각한다. 막연히 ‘기자’를 꿈꾸기보다는 ‘어떤 기록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취재 도중 생긴 에피소드가 있나. 가급적이면 책에는 공개하지 않은 이야기면 좋겠다.

 

이 : 지하방 거주자 취재할 때였다. 서울 신림동에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이었는데 반지하방은 흙타울로 뒤덮여 처참한 상태였다. 차오르는 물을 피해 겨우 탈출한 한 어머님을 만났다. 이 어머니는 저를 보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운 것은 단지 집이 물에 잠겨서가 아니었다. 바로 딸 때문이다. 영상학과 입시 준비하던 딸의 포트폴리오가 모두 물에 잠겨 못쓰게 된 것이다. 인터뷰를 마친 뒤 나는 그 어머님께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큰 도움은 못되지만, 뭐하나 해드리고 싶습니다” 하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더니, 어머님께서는 “우리 딸이 케이크를 좋아하니 케이크 하나 사달라”라고 말했다. 나는 어머님과 함께 근처 제과점에 들러서 케이크를 손에 안겨드렸다. 그 때 방긋 웃으시던 표정이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 모녀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사드린 케이크 한 조각이 모녀에게 큰 힘이 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임 : ‘무늬만 부부’ 기사를 쓰고 나서 한 선배가 “부인이 그 기사를 스크랩해서 가져와 읽어보라고 했다”며 “기사 속 아내의 심정이 자기 심정이라고 하더라”라고 했다. 어떤 선배는 “기사 속 남편의 이야기를 읽고 누가 내 일상을 훔쳐본 줄 알았다”고 했다. 이런 피드백이 너무 많아서 난 “도대체 외로운 부부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 것인가”라고 한탄한 적이 있다. 드러나지 않는, 곪은 구석이 한국 사회 곳곳에 의외로 많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알려 달라. 그리고 채널예스 독자를 위해 한 마디 한다면?

 

이 : 현재는 경찰청에 출입하고 있다. 아무래도 그 전에 썼던 사회약자를 위한 기사보다는 범죄와 국가 기관인 경찰에 관한 기사를 많이 쓴다. 하지만 항상 낮은 곳으로 시선을 두려고 노력한다. 현장의 기자로서 가치 판단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양 쪽 얘기가 다 다름대로 타당하다고 느낄 때 말이다. 하지만 양쪽에 다 옳다고 쓴다면 다른 한쪽은 피해를 받게 돼 있다. 사회의 가치가 그만큼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름대로 기준을 잡았다. ‘양쪽의 입장이 엇갈릴 경우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기사를 쓰자’이다. 그동안 그렇게 기사를 써왔고, 원칙이 맞았다는 나름대로의 자존심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도 살면서 가치판단이 잘 안될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기를 당부한다.


앞으로도 이 기준에 맞춰서 기사를 판단하고 작성할 것이다. 여러분들도 한 번은 주변을 둘러보길 바란다. 우리보다 훨씬 열악하게 사는 이웃이 산재해 있다. 그리고 또 우리의 아주 작은 관심 하나로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임 : 앞으로 기자로서 게으르지 않게 살겠다. 책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하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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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이정국,임지선,이경미 공저 | RSG(레디셋고)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는 곳곳에서 균열과 누수가 일어나고 있는 한국 사회를 둘러보고, 문제적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 해결책을 찾는 책이다. 「한겨레」의 이정국, 임지선, 이경미 기자는 이 책에서 ‘감정 노동, 정화 노동, 직장인 임산부 차별, 직장 왕따’ 등 노동 현장의 문제들은 물론 ‘자살, 언론 보도 피해, 노인 고독사’ 등의 사회 문제, ‘각방 부부, 아동 유기’ 등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심도 있게 취재하고 그 내용을 픽션, 편지, 대담 등 다양한 형태로 풀어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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