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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당신에게 추천하는 장소 10곳 - 『혼자라서 좋은 날』 전지영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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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승무원, 편집디자이너, NGO 단체 동물보호 활동가 등 이력이 다양하다. 얼핏 보면, 별로 연관 없는 분야에서 활동한 셈이다. 순간 순간 결정을 내릴 때 어떤 계기가 있었나.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본다면?

 

사실은 나도 내 직업이 궁금하다. 나는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늘 하고 싶은 일을 택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몰랐던 듯하다. 하긴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아갈 때, 나는 무엇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지 고민하면서 먼 길을 구불구불 돌아갔다. 인생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곳을 향해 흘러가기 마련이지만 권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다.


내가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할지는 무언가를 열심히 할 때 알게 된다고 믿는다. 만약 열중할 일 자체가 사라진다면, 자연스럽게 다른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우린 누구나 일을 해야 하니까.

 

 

탄산 고양이, 라는 필명에 얽힌 사연이 궁금하다. 아울러 팔월, 광어, 링고. 웹툰에 가끔 등장하는 주변 인물 이름은 어떻게 탄생했나.

 

30대 초반에 회사를 그만둔 뒤 생겨난 긴 공백기에 잉여인간의 주된 일과, 그러니까 인터넷을 정처 없이 떠돌기 위해 사용한 아이디가 sodacat이었다. 그때 고양이카페를 많이 들락거렸는데 다들 고양이(cat)가 들어간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의 인생은, 이상하게도 내가 생각 없이 결정한 일로 큰 영향을 받는다. 작명을 포함해서.


팔월과 광어와 링고라는 이름도 큰 의미 없다. 재미있는 이름이 좋았는데 ‘엄청해’ 뭐 이런 식의 작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고, 그냥  ‘팔’, ‘광’, ‘링’ 등 활력이 넘치면서 단순한 발음이 좋았다.

 

과거에 어떤 책을 냈고, ‘혼자라서 좋은 날’에는 무슨 내용을 담았나.

 

『탄산고양이 집 나가다』 2004, 『뉴욕, 매혹당할 확률 104%』 2005, 『싱글은 스타일이다』 2006, 『나의 낭만적인 고양이 트렁크』 2008, 『별을 세는 가장 멋진 방법』 2011, 대부분 여행에세이로 이번 책까지 모두 6권.

 

규칙이 생기면 그 안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싱글에 대한 책을 만들어야지. 라고 하면 ‘싱글에 대한 책’에 얽매이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책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확실한 기획이 있었지만 yes블로그에서 카툰 연재를 하면서 완전히 없어져버렸다. 그래서 ‘싱글이란 이런 것이다.’라던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던가 특히 ‘확실하게 즐겁게 사는 방법’같은 것은 전혀 없다. (원래 내 책에 정보 따윈 없어요. 미안합니다.)


『혼자라서 좋은 날』은 일상에 관한 탄산고양이의 사유를 담고 있다. 사실은 누군가에게 보내는 인사라고 할 수도 있다.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은데 타인에게 잘 보이는 방법도 모르겠고 또 어색하고, 그래서 책을 통해 누군가를 만나고 소통하고 싶다는. 나는 이렇게 지내고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는. 카툰으로 즐겁게 다가가고 싶었고, 사진으로 감성을 공유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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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전지영


도시에 살며, 기혼이지 않은 젊은 여성을 향한 기성세대의 편견이 있다. 지금은 많이 준 듯하다. 그럼에도 가족 제도를 무너뜨리는 히스테리 많은 노처녀, 와 같은 선입견은 있는데. 당장 명절만 되어도, ‘결혼은 언제?’라는 말을 듣는다. 이런 말을 자주 듣는 편인가? 어떻게 대처하나.

 

현재는 그런 말을 듣지 않는다. 아무래도 30대 초중반에 빈번하게 들었던 것 같다. 대처하진 못한다. 난처한 질문이지만 그런 것까지 대처해야 하면서 사는 것은 싫다.

 

『혼자라서 좋은 날』에는 에세이, 사진, 웹툰 등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가 실렸다. 책으로 나올 분량을 확보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을 듯하다. 어떻게 작업했나.

 

원래는 카툰만으로 구성하려고 했는데 카툰이 모자랐다. 한 권의 책으로 만들려면 최소 100편 정도가 필요했지만 40~50편이 고작이었다. 사실 카툰 책을 내기로 한 뒤, 2년이 지나도록 카툰을 그리지 못했다. 보다 못한 담당 편집자가(위즈덤하우스의 박경아 편집장, 『파페포포』 심승현 작가의 부인이기도 하다) yes블로그 카툰 연재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아마 카툰 연재를 안했으면 1편도 못 그렸을 것이다. 아무튼 카툰 양이 적어서 글을 싣기로 했다. 편집자가 글을 더 넣자고 했다. 그래서 예전에 홈페이지 올렸던 글도 정리했고 이전 책에 이미 실렸지만 꼭 넣고 싶은 글도 포함했다.

 

도시의 순간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인상적이다. 어떤 카메라(및 렌즈)로 찍나. 자신만의 사진 철학이 있다면?

 

라이카 미니룩스. 이미 단종된 오래된 필름카메라인데 결코 미니하지 않아 ‘라지룩스’라는 애칭이 있다. 접사가 안 된다는 것과 70cm라는 어마어마한 최단거리, E02에러만 제외하면 그동안 사용했던 카메라 중에 가장 결과물이 좋은 것 같다. 화각이 좁은 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조작이 복잡하고 렌즈덩치가 큰 카메라는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사진철학까진 아니지만 ‘보이는 것보다 보는 것’을 찍고 싶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 시력은 안 좋지만.

 

 

좋아하는 공간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맛집, 카페, 도서관 등 주제별로 나누어서 추천해 주면 좋겠다.

 

추천이라기보다 탄산고양이가 좋아하는 공간.
1.경복궁과 덕수궁
2.서울시립미술관(본관) : 적당하게 널찍하면서 소박하고 오래된 외관이 편해서. 벨기에 영사관이었던 남서울 분관 건물이 더 멋지지만 나의 서식지와 너무 멀다. 예술은 머리 위에 모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해야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위압적이거나 광활하거나 너무 개념적인 외관을 가진 미술관은 좋아하지 않는다.
3.수연산방
4.나무사이로 : 오직 커피 맛 때문에.
5.아모카
6.광화문 스타벅스 : 2,3층으로 올라가면 유리창 너머 광화문이 한 눈에 들어온다.
7.더레스토랑 : 1년에 한 번 가기도 쉽지 않지만. 특히 2,3층.
8.인천 국제 공항
9.정독도서관
10.종로 1가의 대형서점 3곳,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디스
그리고 좋아하게 될 것 같은 곳은 서울도서관과 서울역 문화관

 

에세이 곳곳에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등 세계적인 작가가 여럿 등장한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이 있다면? 그 작가(혹은 작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알려 달라.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책에서도 언급한 어슐러 K 르 귄. 어슐러 K 르 귄은 그의 책에서 ‘예술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다루는 사람’이라고 했다. 소설가는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임무는 허구와 거짓말이다.


나는 자극적인 이야기보다(예를 들면 소년과 호랑이와 얼룩말과 오랑우탄과 하이에나를 작은 보트에 몰아넣은 충격적이고 끔찍한 거짓말 같은 것) 좀 더 우아하게 거짓말하는 작가를 사랑한다. 어슐러 K 르 귄의 소설은 닉 혼비나 폴 오스터처럼 멋있지도 않고, 주노 디아스처럼 강렬하지도 않고, 알랭 드 보통처럼 철학적이지도 않고, 요즘 소설에 비하면 구닥다리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그녀의 소설을 정말 좋아한다. 특히 『어둠의 왼손』은 개인적으로 내게 의미가 있는 책 중 하나.

 

PS.『혼자라서 좋은 날』본문 중에 김애란의 소설을 강추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내가 아니다. 나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 한국소설을 잘 안 읽는 무식한 사람이 바로 나. 그런데 어느 한 작가만을 줄기차게 추천하는 사람도 다독가는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책을 추천해달라는 사람이나 추천하는 사람이나 모두 책을 잘 안 읽는 사람이라는 탄산고양이의 유머인데 이런 나의 유머가 별로 유머스럽지 않아서 슬프다.(나는 쉬운 여자랍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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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전지영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혼자가 외롭게 느껴질 때, 뭘 하면 좋을까.

 

외롭다고 느낄 때가 있지만 외로움 때문에 무언가를 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할 일이 쌓여있기 때문에. 나에겐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그래서 외로움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낼 수 없다. 게다가 나는 시간을 펑펑 쓰기 때문에 늘 시간이 모자란다.

 

여성이든 남자든, ‘연애’는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책에는 연애 이야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탄산 고양이 전지영 작가에게 연애는, 그리고 결혼은 어떤 의미가 있나.

 

먼저, 나는 이미 한 번의 짧은 결혼을 경험했고 그래서 연애와 결혼관이 많이 달라졌다. 이 질문은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때가 되면 연애와 사랑에 대한 포괄적인(단지 자신의 개인사에 머무르지 않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다음에 낼 책은 어떤 책인가. 마지막으로 채널예스 독자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편안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어려운 일은 하기 싫다든가, 유유자적 산다든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이를테면 나에게 ‘편안한 옷’이란, 늘어진 트레이닝 같은 옷이 아니라 나와 조화를 잘 이루면서 나를 나답게 만드는 옷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과 잘 어울리고 그 사람을 잘 말해주는 옷은 스스로에게도 가장 편안하고 즐겁고, 그래서 자주 입는 옷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포멀한 수트가 또 어떤 사람에게는 발칙한 플래퍼걸 스타일이, 각자 자신의 체형, 자신의 태도, 자신의 방향에 따라 어울리는 옷이 다르다.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삶이란 그런 것 같다. 나와 조화롭고 나를 나답게 만드는 삶. 그런 삶을 위해 나는 몇 가지 나쁜 습관을 고치려고 하는 중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내년에 나올 어린이를 위한 동물보호책의 글을 쓰고 있는데 일종의 교육 서적이고 ‘탄산고양이’의 책이라고 하긴 힘든 것 같다(지금 원고 마감을 훨씬 넘긴 상태라서 편집자를 피해 다니고 있다). 탄산고양이의 책은 아직 모르겠다.

 

끝으로 한 마디.


“반갑습니다. 탄산고양이라고 합니다. 서로가 가진 아름다움을 하나씩 끄집어 내주는 친구 같은 책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렇게 읽어주신다면 무척 기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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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서 좋은 날전지영 저 | 예담

탄산고양이 전지영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카툰 & 에세이집이다. 그는 이제 혼자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소위 말하는 ‘싱글여성’이다. 이 책에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혼자 살면서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여자의 일상을 그린 카툰과 에세이를 담았다.


프랑스인, 한국인보다 보수적이다 - 『파리 슈브니르』 이영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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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지는 어떤 사람인가?

 

‘페르소나(Persona)’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페르소나’란 그리스어 어원으로 ‘가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외적 인격’,’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내면으로는 평범하고 싶어하고 변화를 무척이나 싫어하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며 살았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진정한 내면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 ‘페르소나(persona)’는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해야 했고, 변화를 두려워 하지만 외국 생활을 어쩔 수 없이 하며 부딪혀야 했다. 너무도 좋아하던 일과 직장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포기하고 파리를 가야 했던 내 모습을 보면 ‘가면을 쓰며 살아온 삶, 인격’이 아닌가 싶다.

 

『파리 슈브니르』는 어떤 책인가.

 

『파리 슈브니르』는 제목과 같이 파리를 향한 ‘추억’,’기념품’과 같은 책이다. 나에게는… 지난 3년 반을 파리에 머물면서 소중히 느끼고 생각했던 추억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쓴 책이다. 우리와 다른 그들의 사고, 생활방식, 각종 먹거리, 문화 등에 익숙해지며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면서 책으로 그러한 내용을 적어봤다. 여행객으로 다가갔다면 알기 어려웠던 것, 장기간 파리에 머물면서 오히려 너무 익숙해져 생소하게 느낄 수 없는 것을 적었다. 파리지엔 또는 파리지엥들의 이면을 보고 싶은 분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부제가 ‘다시 파리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이다. ‘다시’라는 말을 붙인 이유가 무엇인가.

 

박물관 혹은 미술관 투어를 예로 들고 싶다. 처음 오르세 미술관에 갔을 때는 무조건 작품을 다 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며 스쳐가듯 작품을 봤다. 주요 작품 앞에서 사진 한 장 찍는 것이 내가 작품을 감상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그곳을 두 번, 세 번 방문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한 작품을 들여다보며 오래 머물게 되더라. 한 작품을 바라보며 ‘이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은 무엇일까?’, ‘작가는 왜 이 그림을 그렸을까?’, ‘이 그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등등의 질문을 던졌다. 파리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주로 파리의 랜드마크 등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방문하는 사람은 그 랜드마크가 가지는 의미와 시대적 요구, 현재까지 사랑 받는 이유 등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다시’ 파리를 찾으며 그 의미를 찾아가는 분들을 위한 책이 『파리 슈브니르』다.

 

한국에서 ‘파리’는 예술, 패션, 문화의 아이콘이다. 실제로 3년간 머물면서 겪은 파리는 어땠나.

 

지난 3년 동안의 경험을 보더라도 파리는 예술, 패션, 문화의 아이콘이란 생각이 든다. 예술, 문화에 문외한(?) 수준이었던 나와 남편에게조차도 예술,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자극을 끊임없이 줬다. 서너살의 유아원 아이들은 물론 80, 90세 노년층도 박물관을 많이 찾는다. 예술과 문화생활은 이미 그들의 일상생활 중 하나다. 예술과 문화가 그들에게 낯설지 않다. 어려서부터 익숙해지고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니, 예술과 문화를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느끼는 그들이 부러웠다. 더구나, 그것들은 소중히 여기고 자부심을 갖는 것이 파리가 예술, 문화의 아이콘으로 계속 자리 잡을 수 있는 힘인 듯하다. 예술적인 영감을 쉽게 받을 수 있고 ‘느림의 철학’이 통하는 곳이라 예술가들이 많이 머무는 것 같다. 핸드백에 관심이 없는 내가 관심을 갖고 구매하기 시작했다면, 패션의 도시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고가의 명품은 아니지만, 그들의 머리 칼라부터 구두까지 패션의 조화를 생각하며 치장을 하는 파리지엔들을 보면 패션도시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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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을 전공했다, 마케팅 전문가로서 보기에 파리는 어떤 공간인가.

 

파리는 ‘마케팅의 천국’이다. 마케팅이란 사람들에게 로망(Roman)을 심어주는 활동인데, 파리는 많은 이들에게 이미 그렇게 작용한다. 파리에 있는 많은 명품브랜드들은 물론, 잘 알려지지 않는 장소도 그들의 스토리를 가지고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사람들의 로망을 만들어주려 한다. 스토리와 오랜 전통은 마케팅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파리’에 관한 책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그중에서도 파리 슈브니르를 먼저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단순히 스쳐가는 여행의 기록을 쓴 여행서가 아니다. 이 책은 프랑스인의 삶의 맥락(context)안에서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다. 자유분방 할 것 같은 그들이 사실은 우리 한국인들보다도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다. 대통령의 권력이 강한 나라이고, 공무원이나 학교 선생님들 또한 권위적이다.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프랑스 학교에는 많은 규율이 있고 이에 잘 순응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패션도 그렇다. 모든 부분에서 시크(chic)할 것 같은 그들의 패션은 오히려 몇 가지 포인트(스카프, 핸드백, 구두)로만 패션 감각을 표현한다. 또한, 프랑스 요리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소박한 서민 음식이 더 많다. 이러한 내용을 책에 담았다. 이 책은 어디서 무엇을 즐길 수 있는지를 제공하기에 어느 책보다도 매우 유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책들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이 있다. 순수하게 나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파리의 뒷골목 이야기에서 독자는 파리지엥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앞으로 활동계획에 대해 알려 달라.

 

현재 일을 하고 있어 당분간 출판은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요리를 가지고 책을 쓰고 싶다. 이에 대한 논의를 출판사와 협의중이다. 프랑스에서 프랑스 선생님께 가정식 요리와 레스토랑 요리를 배운 적이 있다. 이러한 다양한 요리를 쉽게 재현할 수 있는 요리책을 만들고 싶다. 생각보다 프랑스 요리가 무척이나 간단하고 쉽다. 책에도 적었듯, 프랑스 요리는 재료맛을 최대한 살려내는 방식으로 만든다. 당연히 어렵지 않다. 프랑스 요리라면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도록, 요리 방법을 제안하고 각 요리에 따른 스토리도 써보고 싶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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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슈브니르이영지 저 | 이담북스(이담Books)

어디를 가든 골목마다 하나씩 있는 스타벅스를, 파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보수적인 문화 특성으로 인해 새로운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파리 본연의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외국인들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불어로 이야기를 건네는 모습에서도 이들의 문화적 자부심이 여실히 드러난다. 어느덧 로망이 되어 버린 파리.『파리, 슈브니르』는 그 매혹적인 도시의 모든 것을 자세히 기록하고자 하였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그 이면에 숨겨진 본질을 파악함은 물론, 파리의 강렬한 숨결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토익 만점 받는 초등학생, 어떻게 봐야 하나 - 이나영 『시간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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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을 냈다. 아직 많은 독자들은 이나영 작가가 생소할 텐데,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수질연구소에서 근무할 때만해도 그 길이 내가 갈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도서관에서 접한 그림책에 반해 닥치는 대로 어린이책을 읽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내 안에 있던 ‘동심’을 발견했다고 할까? 그 세계가 궁금해졌다. 결혼과 육아의 영향도 컸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대학, 대학원에 들어가 아동문학을 공부했다. 그러니까 또 더 잘 쓰고 싶어지고……  어린이책 작가교실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계획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삶의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마음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따랐던 것 같다. 앞으로 또 어떤 길이,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지만 하루 종일 쓸 글, 쓰고 싶은 글만 생각하는 걸 보면 이젠 죽을 때까지 이 길로만 갈 것 같다. 그런 점에선 뭐랄까,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가 아닌 글을 찾는 이야기꾼으로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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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문학동네

 

『시간 가게』로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글을 쓰면서, 아, 이번에는 내가 받겠구나, 이런 확신이 있었나. 확신이 있었다면, 그 이유를 말해달라. 아니라면, 어떤 부분에서 이 작품이 미흡했다고 생각했나.

 

되겠구나 안 되겠구나, 그거야 심사위원들의 몫이라 감이 오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는 '되고 싶다.'라는 마음이 컸다. 그래도 굳이 예감을 말하자면, ‘시간’이라는 소재만으로는 좀 약하지 않나 생각했다. 이미 책과 영화로 많이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제 면에서는 이 작품이 승부를 걸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시간 가게』가 온전히 시간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막연한 미래의 행복만을 위해서가 아닌 ‘지금’을 살자는 동화니까. 특히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다, 이런 부분에선 긍정적으로 수상 가능성을 전망했다.

 

『시간 가게』는 어떤 작품인가.

 

『시간 가게』의 시작은 4년 전이었다. 시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암 판정을 받고 3개월의 시간이 주어졌다. 나을 수 없다면 하루 아니 한 시간이라도 더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 그 무렵은 어린이책 작가교실을 다닐 때이기도 한데 단편 동화 쓰기가 과제였다. 나는 글은 작가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글로 옮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때 작가의 에너지가 향하는 곳,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가 나온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자연스럽게 ‘시간’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시간 가게』는 주인공 윤아가 엄마의 바람대로 1등이 되기 위해, 매일 십 분의 시간을 사고 그 대가로 기억을 잃어버리는 이야기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자 이번에는 반대로 자신의 시간을 팔고 기억을 산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윤아는 타자의 욕망에 이끌려 사는 게 아니라 주체가 되어 지금을 살아야겠다고 깨닫는다. 

 

 

작품에는 초등학교 5학년생이 TEPS 850점을 기록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인 중에서도 저 정도 성적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텐데. 대한민국 교육열은 갈수록 심해지는데,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 입장에서 특히 실감할 듯하다. 한국의 교육열, 어떤가.

 

사실 윤아가 850점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시간을 사서 대학생 오빠의 답을 보고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사해 보니 실제 그 점수 받는 친구들이 있더라. 토익만 해도 만점 가까이 받는 아이들이 꽤 있다. 한국의 교육열이야 방과 후 학교 앞에 줄 지어 서 있는 학원 버스들, 아이들 없는 놀이터, 낮보다 밤이 더 환한 학원가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학업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진다는 것도, 무서울 정도다.

 

첫 독자가 중학생인 아이라고, 다른 인터뷰에서 밝혔다. 아이가 읽은 뒤, 어떤 평을 했나?

 

『시간 가게』가 책 한 권으로 나오기까지 4년여 시간이 걸렸다. 물론 4년 내내 이 작품에만 매달린 건 아니지만, 아이야말로 처음 30매부터의 과정을 다 알고 있는 셈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덧붙여져야 했기 때문에 아이의 도움이 필요했고, 적극적으로 도와 주었다. 학교 생활, 친구 관계, 학원 이야기 등등에 대해서 말해줬다. 하지만 수정이 될 때마다 봐 달라고 하니까 지쳤는지 정작 책으로 나왔을 때는 생각했던 것보다 덜 기뻐하더라.

 

일단 시간을 산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았다. 모두가 한번쯤은 그런 생각하지 않나. 대가로 기억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의 기억과 엉키고. 그 과정이 재미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또래 아이인 주인공 윤아의 삶에 공감하는 것 같았다. 윤아처럼 학업스트레스가 많은 건 아니지만 (사실 엄마인 내 생각이지만) 어쨌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크니까.


『시간 가게』에서 등장하는 윤아의 어머니는 교육열이 높다. 윤아가 전교 1등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있는데. 아이에게 어떤 어머니인가.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윤아 어머니처럼 그렇게 부지런하지도 않고, 멀티플레이어도 아니다.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만큼 나 자신을 사랑한다. 그래서 에너지가 아이에게만이 아닌 내게도 많이 향해 있다. 아이의 1등보다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엄마라고 할까? 너무 이기적인 엄마인가? (웃음)


나 역시 엄마니까 우리 아이가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이 앞에 서서 끌고 가기보다는 아이를 지켜봐 주며 뒤따라가고 싶다. 아이가 하고 싶은, 또는 원하는 길이 있는데 도움이나 위로가 필요할 때 가장 빨리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지만 집착하지 않으려고 한다. 집착을 하는 순간 소유하고 싶어진다. 결국 소유라는 건 ‘나’, ‘내 입장’이라는 것을 강요함으로써 상대방이 소멸되는 거다. 어디까지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고 그렇게 실천하고 있느냐 하면…… 모르겠다.

 

앞으로도 어린이를 독자로 한 글을 쓸 것 같다. 작품에 자연히 작가의 교육철학이 들어갈 텐데, 교육철학을 말해 달라.

 

교육철학이라고 하면 거창하고. 이야기에는 크고 작건 메시지라는 게 있다. 하지만 쓸 때부터 어떤 메시지를 주어야 해, 독자들에게 이런 점을 꼭 알려 주어야 해, 그렇게 마음 먹고 쓰진 않는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내 안의 무의식을 믿는다. 어쩌면 그게 나의 교육철학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믿고 기다려 주는 것.

 

밥을 먹을 때도 그렇다. 먹었으면 분명 소화와 배설의 과정이 있다. 그 이후에 성장이라는 과정이 이어진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육아 조급증에 걸려 있는 것 같다. 늘 남보다 앞서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아니라 부모가 이미 정해 놓은 것에 아이를 맞추려고 애쓰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내는 진짜 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다.

 

그림 작가인 윤정주 작가와는 어떻게 협업했나.

 

윤정주 작가를 첫 책의 그림작가로 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글을 읽고 그림을 그려 줬는데,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밝은 색채지만 아이들의 힘겨운 생활을 그리는 만큼 그림의 느낌은 어두웠으면 했다. 정확하게 표현해 줬다. 나 혼자 윤정주 작가랑 필(feel)이 통했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어 “선생님, 다음 작품도 꼭 부탁드립니다.”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시간 가게』전체 모티브가 『파우스트』를 연상시킨다.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나.

 

작품에서 그런 대작을 떠올리다니 영광이다. 좋아하는 작가랑 작품이 정말 많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편이고. 재작년에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한동안 죽음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그때 『몬스터 콜스』라는 책을 접했는데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위로받는 느낌이라고 할까. 사람의 위로는 잠깐인데 책과 음악은 그 위로가 오래 가더라. 그렇게 가슴에 와 닿는, 진정성이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 좋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동화작가로 이제 시작이니까, 부지런히 열심히 써야 한다. 현재도 쓰고 있고. 『시간 가게』와 다르게 밝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나라는 사람이 밝지 못해서 그런지 이번에도 우울한 이야기다.
그동안 해 왔던 독서지도 일을 그만둘까 했는데 사실 현장에서 보고 듣는 것이 글쓰기에 많이 도움이 된다. 그래서 3월부터는 집 가까운 곳에서 독서지도 관련 강의를 할 예정이다. 그리고 요즘 아이가 사진 찍기에 빠져 있어서 봄이 되면 같이 카메라 들고 출사 나갈 계획도 잡고 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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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가게이나영 글/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어린이

입시 광풍으로 온전한 자기를 잃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낸 창작동화. 주인공은 오로지 1등이 되기 위해 매일 십 분의 시간을 사고, 자신의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마술적 장치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금 아이들의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서사가 진행되며 아이들의 소망을 재미있게 그린 판타지인 것 같던 이 동화는 바로 이곳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하와이 산꼭대기를 천문학자들이 50년간 빌린 이유 - 이지유 『안녕, 여긴 천문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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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유는 어떤 사람인가. 채널예스에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해보고 싶은 일이 엄청나게 많고, 그 중 여러 개를 했으며, 하지 말라고 하면 더 열을 내서 하는 못 말리는 호모 사피엔스. 대학에서는 과학교육과 천문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과학영재교육학을 공부하고 있다. 어릴 때 배운 피아노는 수준급, 30살에는 바이올린, 40살에는 첼로를 배웠고,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드럼을 배울 예정. 초경량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따러 가야겠다는 나를 식구들이 말리는 중이다. 이유는 내 건강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체중이 너무 많이 나가서. 스키, 스쿼시, 복싱, 스포츠댄스, 태극권을 즐기고, 레크레이션 강사 자격증과 바리스타 자격증을 왜 땄는지 잘 모르겠는데, 분명한 사실은 이 모든 경험이 과학과 잘 어우러져 진정한 융합 논픽션을 쓰게 되었다는 점이다. 모든 일은 다 재미있는 과학책을 만들기 위해 하는 것이다.

 

 


『안녕, 여긴 천문대야!』가 첫 그림책이다. 소감이 어떤가.
 
책 중에서도 가장 만들기 어려운 게 그림책이다. 여기에 도전해서 멋진 책이 탄생했으니, 이보다 기쁜 일이 없다. 이 책에는 화가 선생님의 땀과 편집자 분의 노고가 녹아 있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책이 바로 그림책이다. 훌륭한 팀의 일원이 되어 무척 기쁘다. 조원희 선생님의 그림도 정말 마음에 든다. 내가 썼지만 참 재미있다. (웃음)

 

그림책을 좋아해 번역도 하고 그림책 읽기에 관한 책을 펴낸 적도 있다. 특별히 이번 책을 그림책으로 구상한 계기가 있나.
 
하와이에 살 때 화산과 마우나케아 산꼭대기에 있는 천문대에 관한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화산에 관한 책은 하와이에 있는 동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출판했다. 마우나케아에 관한 책은 뭔가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판타지 형식으로 그림책을 만들었다. 우리 애들 보라고 스케치북으로. 그러고는 한 8년이 지나서 비룡소에서 편집자 두 분이 찾아왔다. 하와이에 대한 오해를 깨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고. 바로 이거다 싶었다. 기획 의도가 가슴에 ‘팍’ 와 닿았다.

 

그래서 우리 식구가 등장하는 원고를 썼다. 줄거리는 마우나케아 산꼭대기에 관측하러 가는 엄마를 따라 온 가족이 천문대 견학을 가는 이야기. 하와이는 관광지, 라는 편견을 깨고 최첨단 천문 시설이 있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다 보니 줄거리가 너무 밋밋하더라. 긴장감이 팽팽한 사건을 넣으려니 분량이 많아져 포기할 수밖에 없고.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강화해야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천문학자인 엄마, 과학 기자이고 약간 덤벙대며 어린아이 같은 심성을 지닌 아빠, 애어른 같은 민지, 게임과 놀이, 먹을 것을 좋아하는 개구쟁이 민우 캐릭터를 설정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몇 가지 우스운 장면을 넣었다.


천문학자인 남편과 아이의 도움도 컸다. 남편은 과학적으로 틀린 부분이 없나 재차 확인했고, 아이들은 아이의 심리에 대해 조언을 해줬다. 물론 지금은 다 커서 대학생이지만,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것 같더라. 40쪽 남짓한 그림책에 많은 사람의 의견이 들어갔다.   

 

하와이 천문대, 생소하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매력이 있는지 알려 달라.

 

하와이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빅 아일랜드는 거대한 화산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마우나케아의 높이는 4,200미터가 조금 넘는데, 제주도 한라산이 1,950미터인 걸 생각하면 얼마나 높은 산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막상 빅 아일랜드에 가면 마우나케아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산이 완만하게 내려오는 데다 섬 자체가 워낙 크다. 그러나 산꼭대기에 올라가려면 자동차로 가파른 길을 한참 올라야 한다. 게다가 산꼭대기에는 공기가 부족해 차에서 내려서는 순간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발 아래 구름이 바다를 이루고 있는 장관을 보면 왜 천문학자들이 이곳에 천문대를 지으려고 애를 쓰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곳은 365일 중 300일이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천문학자들에게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

 

세계 각국의 천문학자들은 마우나케아에 천문대를 짓기 위해 하와이로부터 50년 동안 산꼭대기를 빌렸다. 하와이 사람들은 이 산을 신성한 곳으로 여긴다. 그래서 천문대 외관은 산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무채색을 써야 하고 산의 경관을 해치는 어떤 장식도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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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똥별 아줌마’라는 별명으로 여러 과학 분야에 관한 책을 썼다. 언제부터 책을 쓰기로 결정했나. 작가로서 일상이 궁금하다.

 

예전에 광주에서 발행하던 《굴렁쇠》라는 어린이 신문이 있었다. 그 신문을 구독해서 보고 있었는데, 거기에 과학 글이 없더라. 《굴렁쇠》에 편지를 썼다. 전공을 살려 천문학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곧바로 답이 왔다. 흥미로우니 글을 보내라고 하더라. 그게 1999년, 35세일 때다. 사람들은 신문이나 책이 일방적인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작가는 글을 쓸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구 내뱉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무엇을 알고 싶은지 생각해야 한다. 한 줄, 한 줄 쓸 때마다 작가는 가상의 독자와 대화를 해야 한다. 쓸데없는 말은 줄이고 반드시 해야 할 말만 하게 되고, 무조건 지식을 퍼붓는다고 다 좋은 글, 좋은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은 스스로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한다. 안 그러면 하루가 그냥 지나간다. 우선 아침에 작업실로 출근해서 관심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한다. 머리가 맑을 때 공부가 잘 된다. 점심을 먹고 산책한 뒤, 지금 진행 중인 교정지를 보거나 편집자들과 회의를 하거나 그림을 그린다. 해가 지면 작업실에서 나와 집으로 간다.
 
원고를 쓰는 동안은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아침, 점심, 저녁 오로지 글만 생각한다. 거의 일어나지 않고 써서 다리가 부은 적도 있다. 물론 글에 대한 구상과 자료 찾기는 그 전에 다 끝나서 머릿속에 있다. 내가 즐겁게 써야 보는 사람이 즐겁기 때문에, 글이 잘 풀리지 않으면 싸이의 음악이나 아이돌의 음악을 틀어 놓고 미친 사람처럼 흔들다 쓰기도 한다. 작업실 바로 아래층에 있는 극장에 내려가 혼자 영화를 보기도 하고. 길 건너에 있는 공원에 가서 마구 뛰다가 들어와 쓴 적도 있다. 아마 누군가 보고 있다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우주의 모든 곳을 갈 수 있다면, 가장 가 보고 싶으신 곳은 어디인가.

 

우선 태양계에 있는 행성과 위성을 알뜰하게 다녀 보고 싶다. 모래사막 화성, 간헐천이 솟아오르는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 지구의 먼 과거와 같다는 타이탄, 목성의 위성 이오를 다녀온 뒤 토성의 테를 이루는 돌들 사이. 태양계 전문 여행사, 그런 걸 차려 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수만 개의 별들이 공 모양으로 모여 있는 구상성단 안에도 가보고 싶다. 별이 막 태어나려고 하는 곳에도 가 보고 싶고. 무엇보다 태양계를 벗어나 어디인지는 몰라도 지적인 외계 생명체가 있는 곳을 방문해 보고 싶다.

 

지구과학과 천문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과학영재교육을 전공하고 있다. 이렇게 끊임없이 공부하는 이유가 있나.

 

지식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지식이 튀어나오니까. 문화의 변화도 예전보다 빨라졌다. 작가는 이런 변화에 민감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니 쉬지 않고 공부해야 한다. 과학영재교육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좋은 글을 쓰고 감성으로 다가가는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에 아이에게 휴화산과 활화산이 붙어 있는 그림을 보여 주며 이야기를 시킨 적이 있다. 어떤 아이가 꼭 엄마 같다고 하더라. 엄마가 가만히 있다가 화가 나면 순식간에 표정이 변하면서 이 그림처럼 된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 아이는 화산 공부를 하다 본의 아니게 엄마와의 갈등을 털어놓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처럼 지식을 넘어서는 논픽션 책을 만드는 것이 목표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더욱 결과가 나오리라 믿는다.
 
과학에 관심이 없는 아이에게는 어떻게 과학에 재미를 붙이게 만들어야 하나. 과학이 아니라, 다른 쪽에만 관심을 가질 어린이도 있을 듯하다.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듯 사람마다 관심 분야는 다 다르다. 우리 아이가 과학에 관심이 없다면 엄마, 아빠가 어린 시절 과학에 관심이 있었는지 먼저 생각해봐라. 만약 부모가 과학과 담을 쌓고 살았다면 그 아이들은 과학에 관심이 없을 확률이 90%이다. 이럴 때는 과학 공부를 시키려고 하지 말고 과학관, 자연사 박물관에 데려가 마음껏 놀게 해줘라. 가서 본 것, 배운 것을 확인하지도 말고. 그리고 과학을 재미있게 풀어 쓰거나 이야기로 만든 수준 높은 책을 보여줘라. 그래도 과학에는 관심이 없고 예술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면 예술을 마음껏 즐기도록 해줘라. 아이들의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다. 관심 분야가 여기 저기 나누어지면 깊이 할 수 없다.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회 문제도 많지만, 한국의 교육 문제는 해결책이 안 보인다. 아이들 중 일부는 성적 스트레스, 왕따 등으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도 한다. 어린이 책을 쓰는 작가로서, 직접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서, 교육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으로서 고민이 많을 듯하다. 한국 교육 어떻게 보나, 어떻게 아이를 가르쳐야 할까?

 

아이들의 성적 스트레스, 왕따, 자살 문제는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어른의 문제가 아이들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아이를 그렇게 만든 범인은 바로 어른이다. 어른들의 그릇된 도덕관, 엇나간 교육열, 공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얄팍한 사고 수준이 우리 아이들을 망친다. 그러니 아이를 가르칠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부모 스스로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로 확장되면 아이들에게 지나친 집착을 보이지 않을 것이고, 공부, 인성은 물론 다방면에 뛰어난 아이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른들, 정신 차리자! 그것이 아이를 잘 가르치는 방법이다.

 

앞으로 어떤 책을 쓰고 싶은지, 어린이 청소년에게 더 소개하고 싶은 장소나 이야기가 있다면 알려달라.

 

논픽션은 발로 쓰는 책이다. 현장 감각이 살아 있는 책을 더 많이 쓰고 싶다. 독자들은 내 눈과 발과 손과 머리를 통해 그랜드캐넌, 남극, 사막, 폭포 등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지식 전달이 아닌 단순히 놀이와 재미를 주는 책도 쓰고 싶다. 사실 나는 그쪽이 훨씬 재미있다. 원래는 놀고 웃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쩌다 보니 공부했고, 운 좋게 글쓰는 일에 들어서면서 작가가 되었다. 그래서 재미있는 과학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지식 전달이라는 목적을 걷어낸다면 어떤 글이 나올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물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뜯어 말리기도 한다.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목표가 있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의 글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필명을 여러 개 만들어야겠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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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여긴 천문대야!
이지유 글/조원희 그림 | 비룡소

세계에서 별이 가장 잘 보이는 곳, 하와이 천문대 여행을 통해 천체 관측 방법과 천문학자가 하는 일을 알려 주는 지식 그림책 『안녕, 여긴 천문대야!』입니다. ‘별똥별 아줌마’로 유명한 어린이 과학 베스트셀러 작가 이지유가 실제 하와이에 거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썼고, 2013년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조원희가 다양한 자료를 참고하여 강렬하고 인상적인 하와이의 풍광과 쉽게 접할 수 없는 천문대를 사실적으로 그려냈습니다.

고단한 일상에 힘이 되어준 길고양이, 그 10년간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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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소심하고 겁 많은 동물입니다. 혹시 길 가던 나를 덮치지 않을까, 발톱으로 할퀴지는 않을까 상상하는 분도 있을 수 있지만, 고양이가 이유 없이 사람을 먼저 공격하는 일은 없어요. 가끔 고양이가 한밤중에 아기 울음처럼 우는 소리가 소름끼친다고 말씀하는 분도 계신데, 이건 사람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짝짓기를 위해 내는 소리랍니다. 고양이를 무서워하게 된 이유는 각자 다를 것이고, 그 이유가 해소되지 않으면 무서움도 그대로겠지요. 하지만 고양이에 대한 오해 때문에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두려워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오해로 인해 인간과 고양이의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길고양이의 생태를 꾸준히 전하려고 합니다.”

최근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을 펴낸 저자 고경원은 올해 하반기 출간을 목표로 ‘북유럽 고양이 여행’ 편의 원고를 쓰고 있다. 고양이에 국한된 책이 될 수도 있지만, 카테고리를 좀 나눠서 평소 관심을 가졌던 북유럽의 박물관과 미술관 탐방기를 함께 다룰 예정. 고경원은 길고양이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정리하는 일뿐 아니라, 전시 기획이나 관련 문화행사를 통해 고양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기획자로서도 꾸준히 활동하고자 한다. 오는 9월 9일에 열리는 ‘제5회 고양이의 날’ 전시와 행사도 중요한 활동 중 하나다. 고경원은 “올해는 참여 작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함께할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참여 작가들의 사진과 짧은 글을 모아 독립출판물로 만들 생각도 있고, 블로그(catstory.kr)를 통해 수시로 공지를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첫 만남

길고양이와의 첫 만남(행운의 삼색 고양이)이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길고양이를 보면 좋아서 따라다니곤 했지만, 길고양이가 먼저 다가온 적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2002년 7월에 만난 어린 삼색 고양이가 제겐 특별했죠. 저와 마주보고 앉아 눈을 맞춰주고, 여유롭게 사진 찍을 수 있는 시간까지 허락해줬거든요.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행운의 삼색 고양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죠. 그 뒤로 다시 만나지 못했으면 그냥 인상 깊은 경험으로만 여겼을 텐데, 화단 근처에서 가끔 마주치다 1년 뒤에 엄마가 되어 나타난 모습을 보고 뭉클했어요. 어린 새끼들을 키우느라 몸도 축나고, 뽀송했던 콧등의 털도 빠졌더라고요. 그렇게 화단 고양이들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다른 길고양이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어떤 대상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시야를 넓혀준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죠. 길고양이 사진도 점차 늘기 시작했고요.


동지애

길고양이를 보면서 동지애를 느꼈다고 하셨는데 이유는 무엇인가요?

2001년에 웹진 기자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고용이 보장되지 않은 비정규직이었어요. 월급이 적기도 하고 제 자리가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까, 먹을 것이 눈에 띄면 일단 먹고 보는 길고양이처럼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 살았죠. 돌이켜보면 길고양이를 찍기 시작했을 때는 사회생활 초반기였고 그만큼 팍팍한 시절이었는데, 길고양이들은 그런 제게 치열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어요. 지금도 어떤 사진 속에서는 그들이 ‘봐, 나도 이렇게 살고 있잖아’ 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 같아요. 힘들 때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준 사람이 소중한 것처럼, 제겐 길고양이가 그런 존재였어요. 그래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길고양이를 단순히 연민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으려 해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자기만의 영역을 확보하고 동료를 만들거나 놀잇감을 찾아내는 모습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끼거든요. 그래서 그들이 도시 안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전하고 싶어요.


변화

길고양이를 사진으로 담으면서부터 저자의 삶도 변했다고 했는데요.

모르는 사람을 만나거나 낯선 곳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취재기자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과 인터뷰하는 상황이 굉장히 스트레스였죠. 그런데 고양이와 관련된 취재를 할 때는 낯선 장소나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는 거예요. ‘해야 하기 때문에’가 아니라 ‘하고 싶기 때문에’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인터뷰나 취재는 재미있구나 하는 걸 그때 느꼈어요. 여행도 딱히 즐겨 다니는 편은 아니었는데 다른 나라 고양이들은 어떻게 사는지, 그 나라의 반려동물 문화는 어떤지 궁금해지면 견딜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평소 가고 싶던 여행지를 정리해뒀다가 2007년 여름 처음으로 일본 고양이 여행을 떠났죠. 세 차례 일본 취재를 다녀온 결과물이 2010년 출간한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였고요. 그 뒤에도 틈틈이 스웨덴, 핀란드, 프랑스, 타이완 등을 다녀오면서 현지 반려동물 문화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혼자 돌아다니는 여행의 즐거움도 알게 됐고요.




고양이 여행

‘길고양이 통신원’이라는 별칭이 있기도 하신데요. 고양이와 친해질 수 있는 노하우는 무엇이 있나요? 고양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면?

처음 고양이 여행을 떠나려고 결심한 분이라면 ‘막상 여행지에서 길고양이를 만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강박관념을 느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길고양이가 언제나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고 만나지 못할 가능성도 있거든요.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해당 지역이나 나라의 고양이 명소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조사하고 갑니다. 길고양이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런 곳에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으니까요. 오래된 골목이 많은 마을, 공원, 묘지 등은 여행 경로에 포함시키는 편이에요. 길고양이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공간이기도 해서요. 고양이를 만나지 못한다 해도, 산책하면서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곳이 있답니다. 또 다른 나라의 서점에 들러 고양이 관련 책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고양이를 만나도, 혹은 만나지 못하더라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해서 떠난다면 고양이 여행이 더 흥미진진해집니다.


길고양이

길고양이와 사람들이 키우는 고양이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길고양이가 아닌 고양이들을 만날 때는 어떤 생각들을 하시나요?

길고양이는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어미가 새끼를 독립시켜요. 간혹 엄마와 함께 같은 영역에서 사는 경우도 있지만요. 엄마와 헤어진 어린 고양이는 동료들과 대안가족 같은 관계를 맺으며 성묘가 되고 영역에서 살아갑니다. 반면 집고양이는 성묘가 되어도 반려인과 계속해서 함께 살게 되므로, 영원한 아기고양이의 마음에 머물러 있다고 해요. 그래서 반려인을 엄마아빠처럼 여기고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죠. 하지만 저희 집 고양이는 ‘나보다 좀 덩치 크고 다르게 생긴 친구’와 함께 사는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아서, 집고양이 사이에도 차이는 있지 않나 싶네요. 길고양이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제 앞의 운명을 개척하면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 매력이 있고, 집고양이는 내게만 보여주는 은근한 애교가 또 다른 매력이지요.


동병상련

『작업실의 고양이』를 펴내기도 했는데,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세상에 존재하는 고양이의 종류와 성격이 다양한 것처럼,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향도 천차만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향은 이렇다”고 굳이 유형화하고 싶지는 않아요. 『작업실의 고양이』를 쓰면서 만난 작가 분들만 해도, 굉장히 사교적인 분이 있는가하면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분들까지 성향이 다양했거든요. 다만 고양이를 키우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길고양이에게 마음을 주는 공통적인 이유는 있을 거예요. 누군가는 길 위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생명에 대한 연민으로 길고양이를 응원하고, 누군가는 길고양이를 보면서 ‘내가 아는 고양이’를 떠올리고 마음을 줍니다. 꼭 내가 키우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그들이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이죠.




눈빛과 마주치다

길고양이 사진을 찍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요?

잘 찍으려는 생각보다, 먼저 길고양이의 눈높이에서 찍는 게 중요해요. 고양이는 제 키의 몇 배나 되는 높이로 우뚝 서 있는 사람이나, 반갑다고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사람을 경계해요. 저는 길고양이를 만나면 일단 멀리서 먼저 몇 장 찍어요. 그 시점에서 달아나면 할 수 없고요. 만약 고양이가 머뭇머뭇하면서도 달아나지 않는다면, 고양이에겐 관심 없는 척 시선을 피하면서 천천히 움직이면서 몸을 낮춥니다. 그럼 고양이도 슬쩍 엉덩이를 땅에 붙이죠. 그때부터는 고양이와 눈을 맞추면서 사진을 찍어요. 길고양이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은 어떤지 가늠하면서요. 처음 길고양이를 찍기 시작하면 고양이의 모습만 화면 가득 채워서 찍기 쉬운데, 고양이가 사는 장소의 공간감도 함께 담는 것이 좋아요. 또 길고양이가 여러 마리 있다면, 각각의 길고양이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관찰하면서 함께 찍어보는 것도 좋지요.


고양이의 날

9월 9일을 ‘고양이의 날’로 정했는데 지금까지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나요?

“고양이 목숨은 아홉 개”라는 민간속담이 있죠. 그만큼 고양이는 순발력이 뛰어나고 생명력이 강하지만, 거리에서 태어나고 죽는 고양이의 삶은 짧기만 합니다. 1년에 하루만이라도 그들의 생명을 생각하는 날이 있었으면 해서 2009년부터 ‘고양이의 날’ 기념전과 문화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9월 9일이라는 날짜는 고양이의 강한 생명력을 뜻하는 아홉 구(九), 고양이가 주어진 생명을 오래도록 누리다 갈 수 있길 비는 오랠 구(久)의 음을 따서 정한 것입니다. 저는 길고양이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일만큼, 전시나 강연 등의 문화행사를 통해 고양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전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간 유기동물 입양 캠페인전, 길고양이 TNR홍보전, 임순례 감독님의 영화 ‘고양이 키스’ 상영, 시인 황인숙 선생님의 강연 등을 전시와 함께 진행했고, 소품 판매 수익금은 동물보호시민단체에 기부해왔습니다. 올해는 ‘고양이의 날’ 5주년을 맞이해 세계 각국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 사진전을 준비 중입니다.


동물

길고양이를 제외하고 또 좋아하는 동물이 있나요? 고양이에 관한 책 외에 쓰고 싶은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딱히 싫어하는 동물이 없었어요. 마당 있는 집에 살 때는 다양한 동물을 키우기도 했고요. 특별히 좋아하던 동물을 꼽는다면, 수달이나 코알라처럼 둥글둥글한 녀석들이고요. 고양이와 비슷하면서도 야성적인 느낌의 삵도 좋아하는데 멸종위기 동물이라 안타까워요. 제가 써온 고양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어요. 길고양이 사진에세이, 세계의 고양이를 찾아가는 여행기, 고양이와 특별한 관계를 맺어온 작가들의 인터뷰 모음집이죠. 올해 2월 말까지 직장생활을 하느라 단행본 작업을 할 여력이 없어서 이미 취재가 끝난 기획들도 진행을 못했는데, 앞으로는 이 세 가지 유형 안에서 단행본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에요. 고양이, 여행, 미술과 사람 이야기가 상황에 따라 결합된 책이 될 테고요. 그밖에 한국 근현대 미술과 관련된 기획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그림책이 있는데, 길고양이와 이리오모테 산고양이의 생태를 연구하는 동물학자 이자와 마사코의 책 2권을 추천합니다. 『도둑고양이 연구』, 『집요한 과학씨 야생 고양이를 찾아가다』인데요. 고양이의 생태를 알기 쉽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고양이를 관찰하는 마음가짐도 배울 수 있어요.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고요.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께는 미츠아키 이와고(岩合光昭)의 사진집을 권해드려요. 원래 동물 사진가로 유명하지만, 그중에서도 고양이를 특별히 좋아하고 많이 찍어온 작가랍니다. 일본 전역뿐 아니라 세계를 돌며 길고양이를 찍어왔는데 자연스러운 고양이의 일상이 드러나서 좋아해요. 언젠가 한국에도 그의 고양이 사진집 시리즈가 번역되었으면 좋겠네요.




동네

동네마다 살고 있는 길고양이들이 다를 것 같습니다. 동네마다의 길고양이 특색은 무엇이며, 고양이들은 어떤 동네를 좋아하나요?

고양이가 좋아하는 동네라면 역시 숨어들기 좋은 골목이 많은 곳 아닐까요. 마을이 완벽하게 도시화된 곳보다는, 뒷산이라든지 텃밭처럼 자연의 일부가 남아 있는 곳에 길고양이도 많이 눈에 띕니다. 인공적이긴 하지만 숲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이를테면 공원이나 도심 속 화단 근처, 혹은 아파트 안에서도 나무가 우거진 화단이 많은 곳도 좋아하지요. 길고양이를 찾아 멀리 떠나는 여행도 흥미롭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를 꾸준히 찾아보는 것도 권해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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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경원 저 | 앨리스
이 책은 2002년 종로의 한 화단에서 만난 삼색 고양이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2013년 지금까지, 전국의 길고양이들과 함께한 10년간의 기록을 담았다. 1부에는 서울 도심 빌딩 숲 화단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 이야기를, 2부는 서울 재개발 예정지인 홍제동 개미마을 고양이들과 함께한 5년을, 3부는 길고양이가 있는 오래된 골목(서촌, 북촌 등)과 마을(부산 태극마을, 여수 거문도 등) 고양이들을 다채로운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살인자ㅇ난감』 꼬마비 작가, 내가 신상을 노출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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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에 실린 질문은 채널예스 독자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독자 질문 모두 보기 : http://ch.yes24.com/Event/View/End?no=68




1. 유명세에 비해 신상을 노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이유가 있나. SNS나 매체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료 작가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도 궁금하다.

유명세는 실생활 중 느끼는 부분이 없어 잘 모르겠다. 얼굴을 노출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작가에 대한 정해진 이미지로 혹여 오독되거나 난독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덜어내는 것이 독자 배려의 서비스다. SNS 등을 통해 활동하는 작가는 그것을 통해 얻어지거나 충족되는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한다. 그 ‘어떤 것’이 없어서인지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2. ‘2등신/4컷 만화’로 반전이 돋보이는 스토리의 작품을 선보였다. 앞으로도 이런 스타일을 계속 유지할 생각인가. 그리고 이런 형식을 선택하여 작품을 진행한 이유가 있나.

이런 방식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다른 시도는 항상 즐겁지만 아직은 그런 시도에 대한 갈증이 없고 현재 하고 있는 이야기에 가장 어울린다는 생각에서 고수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선택에 대한 이유는 ‘내가 지금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3.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요즘도 수영과 헬스는 하는지. 『살인자ㅇ난감』에 나온 ‘닥치고 스쿼트’라든지 직접 해본 운동은 어떤 것이 있나.

헬스는 못하지만 수영은 틈틈히 한다. 하루 중 앉아있는 시간이 가장 많기에 의자를 선택하는 것에 꽤 신중했다. 지금 쓰고 있는 의자는 ‘학교 의자’다. 쿠션도 없고 딱딱하지만 가장 오랜 시간 앉아 왔던 의자가 오히려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선택했다. 허리 통증도 사라지고 자세도 교정되는 느낌이다. 서글퍼 보이지만 이런 정도가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4. 공부를 하러 일본으로 떠났다. 가기 전의 마음가짐과 막상 일본에 도착해서는 어떤 마음이 들었나.

진정 ‘무지 상태’로 간 것이어서 적응이 아닌 생존에 급급했던 기억이 난다. 하루하루를 도시 서바이벌 같은 기분으로 보냈다. 1년 6개월 후 귀국해서야 나의 어떤 부분이 바뀌었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그 즈음, 구상만으로 존재하던 긴 이야기 (살인자ㅇ난감) 작업을 실천으로 옮기게 된 걸 보니 분명 마음가짐에 변화는 있었던 모양이다.

5. 하루 작업시간은 얼마나 되나.

오전 11시 정도부터 오후 6시 까지로 정했다. 최근엔 작업이 많아져 종종 늦은 시간까지 작업한다.

6. 클럽이나 나이트 간 적은 없나.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인지.

가본 적은 있다. 즐거웠던 기억이지만 드나들진 않을 정도였다. 마지막의 기억이 희미한 걸 보니 꽤 오래된 모양이다.

7. 감명 깊게 본 책은?

어린 시절 『파우스트』를 감명 깊게 읽었다. 물론 완역본이 아닌 ‘소년소녀 세계명작’으로 축약한 것이었지만… ^^

8. 작품 속에 실제 경험담이나 지인의 이야기가 투영된 부분도 있나? 죽음3부작 중 두 번째 이야기를 읽다 보니, 세 번째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가장 크다. 미리 공개할 수 있나.

상상으로 모든 걸 채울 수 있는 재능이 없기에 실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다. 다만 개인의 경험이나 지인의 이야기가 소재가 되는 경우 한계를 느낀다. 취재로 그런 한계점을 극복하려 한다. 죽음 삼부작 중 첫 번째 이야기 『살인자ㅇ난감』은 연단 위에 올라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느낌, 두 번째 이야기 『S라인』은 원탁에 둘러 앉아 화두를 던지고 모두와 대화한다는 느낌으로 그렸다. 마지막 이야기가 될 『미결』은 거울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느낌으로 그리게 될 것 같다.

9. 꼬마비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언제가 제일 행복한가?

‘지금 이 순간’ 행복에 대한 두 질문에 대한 같은 답이다.

10. 다양한 분야를 좋아하고 많은 예술인을 흠모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작가로서보다는 온전히 팬으로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만화가, 작가, 영화배우 등등 상관 없이.

『아기공룡 둘리』 김수정 작가의 오랜 팬이다. 만화가라는 직업을 가진 후 그 특혜인지 어느 만화가 모임에서 작가님을 뵙게 되었는데 대화를 나누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무척 기뻤다. 폴란드의 작가 ‘스와보미르 므로제크’의 국내 번역 작품을 모두 읽었다. 좋아한다. 고령인 것으로 알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뵙고 싶을 정도로 흠모한다. 일본의 개그맨 콤비, 다운타운의 ‘마츠모토 히토시’를 좋아한다. 그의 방송이나 영화를 즐겨보고 책을 탐독하지만 위의 경우와 달리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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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라인 한정판 세트꼬마비ㆍ앙마비 글,그림 | 애니북스
성적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머리 위에 어느 날 붉은 선이 이어지게 된다. 사회는 패닉에 빠진다. 서로를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암묵적으로) 여겼던 부부의 사이에 금이 가고, 청순한 매력으로 어필하던 아이돌 스타는 온갖 악플에 시달리게 된다. 아무리 포토샵으로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S라인의 존재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한 초상화 산업이 발달하고, 극장 간판은 다시 손그림으로 대체된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출세를 위해 S라인을 없애버리고 싶은 사람들이 생겨나고, 이를 이용한 틈새 업종인 ‘지우개’(살인청부업자)까지 성업하기 시작하는데….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멋진 보물을 찾기 위해 탐험을 떠나듯, 서점을 산책하는 작가 ‘미우라 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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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고, 누군가와 서로 통하기 위해서 모든 말이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을 쓰면서 쓰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배를 엮다』는 일본의 국어사전 ‘대도해’ 편찬을 둘러싼 한 출판사의 편집부 사람들 이야기다. 날카로운 언어적 감각을 가진 주인공 ‘마지메’와 평생을 사전 만들기에 시간을 쏟은 편집자 ‘아라키’와 감수자 ‘마쓰모토’, 사전편집부의 분위기 메이커 ‘니시오카’ 등은 대형 출판사에서 가장 인기 없고 존재감 없는 부서 ‘사전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지만, 저마다의 직업의식이 투철한 편집인이다. 이들의 일상을 쫓아가다 보면 문득 필름 카메라의 따뜻한 색감이 책장 한 장 한 장에 묻어나는 듯하다. 작가 미우라 시온은 『배를 엮다』를 집필하기 위해 실제로 한 출판사에 출근하며 편집부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조용하지만 성실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고, 여전히 ‘종이’ 사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이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는 데 어울리는 배를 엮자는 의미로 『배를 엮다』라는 소설 제목이 탄생했다. 누군가와 통하기 위해 말이 있듯, 미우라 시온은 신작 『배를 엮다』를 통해 독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지만, 미우라 시온은 일본의 문학상 ‘나오키상’과 ‘서점대상’을 모두 수상한 유일한 소설가로 대학 졸업 후, 편집자 지망생으로 구직 활동을 하던 중에 한 편집자에게 작가의 길을 제안 받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미우라 시온의 처녀작은 자신의 실제 취업 활동을 소재로 쓴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 그는 주인공 가나코를 통해 버블 세대의 무기력한 초상을 코믹한 문체로 그려냈다. 2006년에는 격월간지에 연재한 작품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으로 제135회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요시모토 바나나 이래 가장 참신한 작가’, ‘현재 일본에서 ‘인간’을 묘사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젊은 작가’로 평가 받고 있다. 비행기를 굉장히 싫어해 해외 방문은 좀처럼 쉽지 않은 미우라 시온을 <채널예스>에서 서면으로 만났다.




사전

『배를 엮다』는 국어사전을 만드는 출판사 편집자들의 이야기인데, 어떻게 이런 소재를 소설화할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전’은 작가에게 어떠한 의미이며 인상 깊게 본 사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글을 읽지 못하는 어릴 때는 어른 흉내를 내면서 오로지 사전 페이지만을 넘겼습니다. 얇은 종이의 촉감이 무지 기분 좋았거든요.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사전은 저의 든든한 파트너입니다. 각각의 사전마다 개성이 있어서 ‘사람과 비슷하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인상에 남은 사전은 중학교 때 받은 <다이지린>입니다. 두툼하고 큰 사전으로, 일러스트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 사전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기뻐서, 불상이나 일러스트 같은 것도 왠지 모르지만 열심히 노트에 그리곤 했습니다.


캐릭터

주인공 ‘마지메’ 캐릭터가 독특합니다. 성실하지만 엉뚱하고, 또 언어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상시 작가님이 좋아하는 성격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요. 소설 속 다양한 인물 중에 가장 애착이 가거나, 작가님과 닮은 인물이 있을까요?

주인공 마지메에게 가장 애착이 갑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 서툴지만 누군가와 서로 통하고 싶다고 바라는 마음을 잊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저와 비슷한 캐릭터는 없는 것 같습니다(웃음). 전 항상 제멋대로 빈둥빈둥 하거든요. 통통한 체형은, 고양이 도라와 닮은 것 같습니다. 도라와 같은 사랑스러움이 없다는 게 안타깝지만요.


단어

『배를 엮다』를 통해 작가님의 언어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품을 쓸 때 단어 선택에 기준이 있나요? 글을 쓸 때 적합한 단어를 선택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있나요?

비슷한 표현이나 같은 단어를, 특별한 의도 같은 것 없이 똑같은 페이지 안에서 몇 번이나 쓰는 일 같은 건 되도록 피하려고 합니다. 너무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복잡한 마음을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도전하려고 마음을 쓰고 있는데 잘 되지 않는 적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말이란, 소설이란 즐겁고 심오한 것이라고 느낍니다.


출판사

『배를 엮다』를 쓰기 위해 이와나미쇼텐 출판사에 직접 출근하며 취재를 하셨는데, 평소 가지고 있었던 출판사 및 사전편집부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나요?

성실한 사람들이 사전을 만드는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는 성실하면서도 유머가 넘치는 사람들이어서 그 분들께 여러 가지를 묻고 답을 들을 때마다 즐거웠습니다. 자료가 되는 책이나 교정지 등 상상했던 것 이상의 여러 가지 종이들이 편집부에 있어 굉장히 놀랐습니다. 사전을 만드는 작업에 지금은 컴퓨터가 도입되어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 차분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며, 지식을 얻거나 전달하기 위해서는 종이의 존재가 아직은 크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점

『배를 엮다』가 지난해 ‘서점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나오키상’과 ‘서점대상’을 받은 작가이신데, ‘서점대상’ 수상은 서점 직원들이 뽑아주는 상이라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평소 서점을 자주 가시는지, 그리고 만약에 서점 직원이 된다면 어떤 책을 고객에게 소개하고 싶나요?

책과 서점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서점 직원들은 한 명의 독자인 저에게 있어서도, 글을 쓰는 저에게 있어서도 굉장히 가깝고 친근함을 갖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런 서점 직원들에게 제가 쓴 소설이 ‘재미있다’라는 칭찬을 듣는 것은 너무나 큰 기쁨이었습니다. 서점대상은 서점 직원들이 직접 만든 상이라, 역시 기쁨도 특별하기도 했습니다. 동료, 동지에게 제가 한 일이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앞으로도 더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서점에는 거의 매일 갑니다. 구체적인 서점의 이름을 들 수는 없지만, 집 근처의 작은 서점도, 터미널 역에 있는 큰 서점도 각기 다른 매력적인 다양한 책들이 있어서 갈 때마다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탐험에 나가 멋진 보물을 찾을 때와 같은 기분으로, 두근두근 서점의 서가 사이를 걸어 다닙니다. 예전에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는데, 만약 제가 서점 직원이라면 추천 만화나 옛날 소설이지만 재미있는 작품을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싶습니다. 손님이 찾는 것을 바로 서가에서 찾아서 올 수 있도록 책이나 잡지 지식이 풍부한 서점 직원이 되고 싶습니다.




영화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을 비롯해 『배를 엮다』도 영화화되었습니다. 영화로 각색된 작품을 보면 원작자로서 어떤 느낌이 드나요?

제가 쓴 소설이 영화화 되는 것은 언제나 굉장히 기쁩니다. 완성된 영화를 보면 ‘그렇구나, 내가 쓴 것은 이런 이야기였구나’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습니다. 감독이나 스태프, 배우 등 모든 분들의 해석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나의 소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게 굉장히 자극이 되고 즐겁습니다. 저는 제 작품이 영화화가 결정되면 감독에게 모든 것을 맡깁니다. 사전에 시나리오를 읽게 해주시는데, 정말 아주 가끔, 아주 작은 제안을 하는 정도입니다.


한국

한국에 방문하여 한국 독자들을 만날 계획은 없나요? 한국 독자들로부터 받은 편지나 에피소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비행기를 굉장히 싫어해서 해외에는 잘 나가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배를 타고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한국 요리를 굉장히 좋아해서 일본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는 자주 갑니다. 또 한국 영화도 가끔 보기도 하구요. 몇 년 전 작품인데, <밀양>은 굉장한 영화라고 충격을 받아서 몇 번이나 돌려보고는 주인공의 그 이후를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사인회를 열 때 한국 유학생 분이 와주셔서, 그분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드렸습니다. 너무나 볼품 없는 글자가 되어 버렸음에도 굉장히 좋아해 주셨고, 제 소설을 열심히, 깊이 있게 읽으셨다는 말을 해주셔서 매우 기쁘고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이전에 한국에서 출판된 책에 대한 독자 분들의 감상을 번역해서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때도 똑같이 기쁘고 고마웠죠. 한국어로 번역해 주시는 번역자 분들, 소설이라는 표현 방식을 사랑해 주시는 한국의 모든 분들에게 항상 감사 드리고 있으며, 제 맘대로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계획

앞으로 어떤 소재로 소설을 집필할 계획인가요? 혹시 이번 소설처럼 직업 세계를 다룰 생각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관심 있는 직업은 많이 있는데, 지금 소설로 쓰고 싶은 것은 딱히 없습니다. 다만, 직업적인 기술이 요구되는 일에 끌리는 경향이 있어, 명화 복원이나, 절이나 신사의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목수에 관한 책을 발견하면 바로 사서 읽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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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엮다미우라 시온 저/권남희 역 | 은행나무
일본 내에서 그 어떤 문학상보다 대중들에 대한 인기를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서점 대상. 2012년에는 미우라 시온의 『배를 엮다』가 서점 대상 1위를 수상하며 소설 부문 판매 1위, 60만부 판매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배를 엮다』는 사전 「대도해」편찬을 준비하고 있는 대형 출판사 겐부쇼보의 사전편집부에 보통 사람들에게는 없는 날카로운 언어적 센스를 가진 마지메가 오면서 시작된다. '사전 편집 이야기'라니, 언뜻 지루할 것 같지만 작가는 그 과정을 소설 안에서 지금 이 사회가 잊고 지내는 다양한 아날로그적 가치의 소중함을 리얼한 에피소드와 섬세한 감정 묘사로 녹여 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외모 콤플렉스가 꼭 극복해야만 하는 대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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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랏차차 뚱보클럽』은 남들보다 ‘조금’ 통통한 몸매에 헤라클레스 같은 힘을 지닌 12살 고은찬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친구들에게 뚱뚱하다고 놀림을 받아도 절대 기죽지 않는 자신감 넘치는 은찬이는 아들만큼은 뚱보로 살지 않기 바라는 어머니의 다이어트를 하라는 잔소리가 지겨워, 역도부에 들어간다. 역도의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진 은찬이는 뚱뚱한 자신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고, 처음으로 이루고 싶은 꿈도 생긴다. 대한민국 표준 체형은 아니지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꿈을 키워가는 은찬이. 모든 사람들이 평균치에 도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은찬이는 말한다. “날씬해야만 인생이 행복해지나요?”

‘2013년 제19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으랏차차 뚱보클럽』의 저자 전현정 작가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 우연히 답사의 매력에 빠져 여행 칼럼을 기고하면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 여행과 영화 보기, 세밀화 그리기가 취미인 그는 햇살 좋은 날 도서관에서 빈둥거리는 시간을 가장 행복해 한다. 초등학생 딸과 한 책상을 쓰며 틈틈이 드라마 대본을 습작하고 있는데, 그동안 써온 대본을 동화로 개작하는 작업을 해볼 생각이다. 구체적인 소재를 정해 놓지는 않았지만 가족 구성원 간의 소통을 주제로 한 작품들에 애착이 많다. 전현정 작가는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사람 수만큼의 다른 가치관과 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고 말했다.




외모

외모를 소재로 동화를 쓰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어른들 못지 않게 아이들 세계에서도 외모에 관한 관심과 고민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 같아요. 뚱뚱한 외모는 유치원생들 사이에서도 놀림의 대상이 되죠. 보여지는 것들에 점점 더 민감해지고, 아이들의 삶의 목표 자체가 대중 매체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획일적인 기준들에 의해 휘둘리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뚱보 은찬이를 통해 외모 콤플렉스를 꼭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봐야 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습니다.


콤플렉스

요즘 아이들의 최대 콤플렉스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셨나요? 부모들이 잘 모르고 있는 콤플렉스는 무엇일까요?

외모, 학습 능력, 친구들 사이의 인기도, 운동 능력 등등. 고민의 상당 부분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들이 많았어요. ‘엄친딸’, ‘엄친아’ 등의 신조어들이 생겨나면서 심지어는 아이들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부모의 능력과 조건까지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이어트

『으랏차차 뚱보클럽』의 주인공 은찬이는 다이어트를 하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힘들어 하는데요. 식욕, 체중 다이어트가 아닌,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다이어트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이어트를 해야 할 수많은 욕심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자녀에 대한 부모의 욕심을 꼽고 싶어요. 자녀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부모들의 잘못된 생각들이 아이들에게서 지금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감을 앗아가는 것 같아요. 아이다운 감성을 가져보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아이들이 그 다음에 올 아이들에게 과연 어떤 말들을 해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조금 답답하죠.


인정하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 참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데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왜 꼭 필요할까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나의 모습과 나의 능력을 끊임없이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하죠. 식당에 가서도 맛있는 음식을 곧바로 즐기지 못하고 사진을 찍어 어딘가로 나르기 바쁘고, 아이의 예쁜 모습을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고 안아 주지 못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에 온통 시간과 마음을 빼앗겨 정작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도 주어진 순간을 만끽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 스스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면 누군가가 관심 가져 주지 않더라도 불안해 하지 않고, 어떤 자극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힘을 아이 스스로 거뜬히 키워내리라 믿습니다.



교육관

책을 쓰면서 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평소 가지고 있는 교육 철학이 있나요?

이제 겨우 엄마 9년 차인 저로서 교육관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좀 우스운데요, 논리적으로 말을 잘 하는 딸 아이와 말다툼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몰린다 싶으면, 항상 제가 잘하는 말이 있어요. 나도 엄마 아홉 살이야. 엄마로서 무책임한 말 같지만 어떤 말로 아이를 설득하려 할 때보다 제 마음이 아이에게 잘 와 닿는 것 같아요. 아이 앞에서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아이와 함께 성장해 가는 것, 그것이 딸과 제가 소통하는 방식입니다.


그 땐 그랬지

작가님의 유년시절과 요즘 아이들의 세계를 비교해보면 무엇이 가장 다르게 느껴지는지요? 안쓰러운 부분과 부러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가 어릴 때 제일 자주 한 말은 ‘심심해’ 였어요. 별다른 놀이도 없던 그 시절 심심할 때 할 수 있는 제일 간편한 놀이는 가만히 앉아 공상을 하는 거였죠. 요즘 아이들은 심심함을 느낄 틈조차 없어 보여요. 제 딸 아이도 예외는 아니지만 요즘 초등학생들의 일과는 웬만한 대기업 사장님 못지 않게 바빠요. 학교 정규 수업에 방과후수업, 예체능 학원 몇 군데를 돌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 되고, 밥 먹고 숙제까지 하고 나면 하루가 후다닥 가버리죠. 심심하고 빈둥거리기도 해야 생각이 고일 텐데 아이 개개인이 가진 고유한 감성을 가꿀 여유가 없는 점이 안쓰러워요. 하지만 마음의 여유를 되찾기만 하면 옛날의 아이들과 비교해 누릴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죠. 발품을 조금 팔면 곳곳에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볼거리들이 널려 있고, 비행기를 타고 먼 곳까지 가지 않더라도 세계 곳곳의 사람 사는 이야기들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점은 많이 부럽습니다.


동화

어릴 적 정말 좋아했던 동화, 작가는 어떤 작품 어떤 작가인가요? 요즘 동화책과 비교해본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제가 12살쯤에 읽었던 메리 노튼의 『마루 밑 바로우즈』란 작품인데, 몇 년 전에 <마루 밑 아리에띠>란 제목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책이에요. 곁에 두고 쓰던 물건들이 가끔 사라질 때가 있잖아요. 쓰던 물건이 없어지면 곧잘 혼잣말로 ‘쓰고 돌려줘’하고 중얼거리는 버릇이 있는데, 그러다 보면 신기하게도 물건이 제자리에 돌아와 있어요. 저는 지금까지도 마루 밑 요정들의 정체를 굳게 믿고 있습니다. 요즘 동화책은 예전에 비해 시각적인 자극을 주는 요소들이 훨씬 더 풍부해졌어요. 이미지도 많고, 색감도 화려하고 팝업 북에 등장하는 입체적인 장치들은 눈과 귀 모두를 즐겁게 하죠. 그에 비해 제가 읽었던 동화책들은 참 볼품 없었어요. 간간이 나오는 흑백의 그림들은 조잡했고, 인쇄 상태도 좋지 않아서 많이 읽다 보면 활자가 닳아서 없어지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 동화책을 볼 때보다 머릿속으로 더 많은 상상을 하게 했던 것 같아요. 요즘 동화책은 독자가 상상할 부분까지 너무 친절하게 대신해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업실

작가 프로필에 ‘딸과 같은 책상을 사용하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는데, 작가로 데뷔를 하셨으니 작업실을 꾸밀 계획이 있으신가요?

저는 작업실이 따로 없어요(웃음). 부엌 식탁에서도 쓰고, 손님이 없는 틈에 남편 식당에서 쓰기도 하고, 딸이 숙제 할 때 옆에서 쓰기도 하고, 동네 도서관을 이용하기도 하죠. 조용한 나만의 작업실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지만 시끄럽고 어수선한 환경에 익숙해져서 갑자기 조용해지면 어색할 것 같아요. 당분간 책상 구입은 안 할 계획입니다.




딸이 소중한 독자일 것 같습니다. 딸 또는 또래친구들의 서평을 간단히 이야기해주신다면?

딸은 제 첫 독자이자 날카로운 비평가이자 든든한 취재원이죠. 결과가 명쾌하게 떨어지는 스포츠 관련 동화책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딸은 은찬이가 우승을 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운 눈치랍니다. 한번쯤 뚱뚱하다고 놀림을 받아 본 친구들은 은찬이를 보며 약간의 통쾌함을 느꼈다고 말해줬어요.


건축과 글쓰기

건축을 전공하셨는데 작가가 되셨습니다. 두 분야의 매력은 무엇이며 건축을 소재로 한 작품을 쓸 계획은 없으신지요?

건축, 글쓰기 둘 다 제 속에 있는 무언가를 밖으로 꺼내 표현한다는 점에서 닮은 것 같아요. 참, 밤을 자주 새워야 하는 작업이란 것도 공통점이네요. 건축은 설계도를 그리고 그 설계도를 바탕으로 건물이 실제로 지어져야 비로소 완성되죠. 제가 그동안 습작해 왔던 드라마 또한 대본을 거쳐 하나의 극으로 만들어져야 완성이 되고요. 건물을 지으면서 건축주의 생각과 다르면 도면을 수정하기도 하고, 배우가 연기를 하다 대사가 어색하면 대본을 고칠 수도 있죠. 둘 다 생각을 바꿀 기회가 있지만, 동화는 한 번 책으로 만들어지고 나면 곧바로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니까 부담감이 더 큰 것 같아요. 그만큼 더 생각이 깊어지고 신중해 지는 것이 매력인 것 같기도 하고요. 현대의 건축가들에 대해선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 그 옛날 궁궐을 짓고 아름다운 한옥을 짓던 목수들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하죠. 기회가 된다면 건축가이자 장인이었던 옛날 목수들의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동화를 써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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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랏차차 뚱보 클럽전현정 글/박정섭 그림 | 비룡소
키 159센터미터, 몸무게 79킬로그램, 별명은 십인분. 남들보다 ‘조금’ 통통한 몸매에 헤라클레스 같은 힘을 지닌 열두 살 고은찬의 당차고 유쾌한 이야기로, “안정된 문장력과 분명한 서사”를 펼쳐 보이고 외모 지상주의가 만연한 지금 시대의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라는 평을 받으며 올해의 황금도깨비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무엇보다 비만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다루지 않고, 자신의 타고난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며 콤플렉스를 장점으로 만들어 나가는 주인공의 긍정적 캐릭터는 사회의 편견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동시에 짜릿함과 감동을 안겨 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신민회, 의열단… 한국의 레지스탕스는 왜 자유를 꿈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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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사학과를 전공한 조한성 저자는 사료 읽는 법과 연구사 정리하는 법 등을 훈련하며 역사학의 정수를 배웠다. 이승만 정권이 반독재운동에 나섰던 독립운동가 김창숙 선생을 탄압하기 위해 일으킨 ‘유도회사건’을 연구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2006년부터 3년여 동안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며 그들의 반대편에 섰던 지식인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일 양국의 기록을 조사하고 최근까지 발표된 연구 성과들을 검토하여 한국 근대사를 정리했고 그 결과물이 『한국의 레지스탕스』이다. 저자는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로 일제 강점기에 존재했던 비밀결사단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주목했다. 이들의 투쟁이 일제 강점기 저항운동의 각 국면을 가장 잘 대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한성은 청년 안창호의 신민회부터 만년 여운형의 조선건국동맹까지, 민족 해방과 새 조국 건설이라는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진 7개 비밀결사단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레지스탕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고, 일제에 끝까지 맞서 치열하게 싸웠던 레지스탕스의 저항의 보고서를 『한국의 레지스탕스』로 담아냈다.

“지난주 토요일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국사를 주제로 방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능에서 역사를 다룬다고 하면 우려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 방송이 반가웠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맞습니다. 역사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좀더 쉽게 다가간다면 역사도 어렵기만 한 학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살려 역사를 읽는 것, 흐름과 맥락으로 역사를 읽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역사는 나와 무관한 과거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역사를 몰라도 먹고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모르면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일본 정치인들이 왜 자꾸 망언을 해대는지 알 수 없고, 정치인들이 과거의 잘못을 미화하며 민주주의를 옥죄어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역사는 단지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나간 인물들과 사건들은 끊임없이 다시 등장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를 알고 싶다면 역사를 읽으십시오. 그 속에 답이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역사를 즐기십시오. 그리고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어느새 세상을 보는 눈이, 인간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져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조한성 저자는 앞으로도 ‘이야기가 살아있는 역사 서술’로 대중의 시선에 맞춘 역사 저술 작업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현재는 『한국의 레지스탕스』의 후속 편으로 해방 후 건국 세력들의 국가건설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 중이며, 한국 근현대를 중심으로 저술 작업을 진행하면서 점차 시대와 관심 영역을 넓히고, 식민지시대 지식인들에 관한 이야기도 본격적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시다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의 반대편에 서 있던 지식인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셨습니다. 『한국의 레지스탕스』이 탄생하기까지 가장 영향을 미쳤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조선 사상범 검거 실화집』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 공안당국이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검거한 후 그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 만든 책인데, 검거에 공을 세운 현직 일본인 경찰들과 한국인 경찰들이 직접 집필을 담당했습니다. 그들이 자랑 삼아 말하는 무용담 속에 한국의 레지스탕스들이 겪어야 했던 참혹한 현실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충격이었죠. 경찰의 고문으로 정신이상을 일으켜 결국 죽음에 이른 조선공산당 2대 책임비서 강달영, 평생 앉은뱅이로 살아야 했던 김창숙, 그 외 일제의 잔혹한 통치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일본 경찰에 쫓기거나 핍박 받으면서도 끝까지 일제와 싸우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을 그토록 치열하게 저항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투쟁을 통해 그들이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궁금증이 이 책을 저술하게 된 출발점이었습니다.


사명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서 역사를 살펴볼 때와 『한국의 레지스탕스』를 집필하며 역사를 찾아볼 때의 마음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어떠셨나요?

조사관으로 일할 때는 어깨를 짓누르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친일 청산 문제는 원래 해방 직후에 이뤄졌어야 했지만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지요. 뒤늦은 감이 있었지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제대로 해야 했습니다. 늦긴 했지만 그때 국가기관이 나서서 친일반민족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의 행위를 규명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사관일 때와 이 책의 저자로서의 차이는 부정과 긍정이 가진 효과의 차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를 규명하는 작업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부정적인 행위를 추적하는 일이라 정신적 피로도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집필하면서는 그 반대였죠. 한국 레지스탕스들의 투쟁에서 저도 모르게 힘을 얻고, 그들의 희망에서 저도 어느새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되었거든요. 레지스탕스들의 삶은 아주 힘겨운 싸움의 연속이었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쟁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긍정은 부정을 이긴다”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죠.


비밀결사

합법적인 저항운동은 소극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밀결사’라는 집단에 매료됐다고 하셨는데, 비밀결사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식민지 시대에 비밀결사를 조직해 일제에 저항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이 가진 모든 기득권을 포기해야 함은 물론 때로는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때문에 비밀결사들은 대부분 구성원들의 높은 투쟁성과 확고한 신념, 희생정신을 전제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들 중에는 비밀결사라 부르기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어설픈 모습을 띤 조직도 있었습니다. 비밀 유지에 한계를 보였던 ‘성진회’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정만큼은 충만했습니다. 그들은 일제의 유능한 경찰조직과 강고한 군대에 맞서기에는 부족하지만 민족의 독립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면 누구보다 앞장설 수 있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싸움은 흡사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았지만 그들이 품었던 독립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큼은 순수하고 확고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제시대 비밀결사 운동이 가진 진정한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상

독립,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비밀결사를 조직한 ‘한국의 레지스탕스’의 가장 큰 이상이자 통일된가치는 무엇으로 느끼셨나요?

한국 레지스탕스들의 가장 큰 이상이자 가치는 김산이 이야기한대로 ‘자유’였습니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사실이 그랬습니다. 김산뿐 아니라 당시 기록물을 살펴보면 일제의 통치에 저항했던 레지스탕스 대부분이 얼마나 자유를 갈망했는지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거든요. 이런 자료를 발견할 때마다 저도 놀랐습니다. 그만큼 일제의 통치가 억압적이고 폭력적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겠죠.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것은 독립과 민주주의였습니다.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민족의 ‘독립’이 절실했고, 그 다음으로 ‘민주주의’가 필요했습니다. 민주주의의 내용은 레지스탕스들에 따라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는 착취와 억압이 없는 사회를 꿈꾼 것에서는 모두 같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서중석 교수님이 이야기한 대로 한국의 레지스탕스들은 모두 혁명가였습니다.


비밀결사단

신민회, 대한광복회, 의열단 등 많은 조직을 다뤘는데 개인적으로 책을 집필하면서 가장 강렬하게 인상이 깊은 조직은 어떤 조직이었나요?

책을 읽은 독자 대부분이 공감하시겠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단체는 의열단이었습니다. 의열단은 1919년 창단 이래 1935년 공식 해체를 선언하기까지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뚜렷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우선 암살과 테러라는 충격적인 운동방법이 그러했고, 이에 입각한 수많은 시도와 성과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자들과 연합하기를 꺼리지 않았고, 정세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운동론의 변화를 모색하면서 민족의 독립을 꿈꾸었습니다. 그들의 시작은 민족주의였지만 때때로 아나키즘, 공산주의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주의’가 아니라 ‘독립의 성취’ 그 자체였고, 그 외 모든 것은 수단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안창호와 여운형

평소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이 있으신지, 책에 소개된 인물 중에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있나요?

『한국의 레지스탕스』에 소개된 인물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인물은 안창호와 여운형입니다. 안창호는 온건한 운동론을 지향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독립운동에 종사하면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습니다. 그는 교육자로서 명성이 높지만, 사실은 식민지시대 가장 뛰어난 정치가이자 전략가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광수처럼 가까운 측근 대부분이 친일로 전향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도 현저히 절하된 측면이 있습니다. 만약 그가 해방 후까지 살아남아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보곤 합니다. 여러 측면에서 이승만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운형은 해방 후에 더욱 부각되는 인물입니다만, 식민지시대에도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그는 3.1운동의 불꽃을 일으키는 신한청년당을 이끌었고,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여했으며, 공산주의운동에도 몸담게 됩니다. 그리고 해방 직전에는 조선건국동맹을 만들어 건국을 준비합니다. 그의 장점은 그의 활동에서 예측할 수 있듯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인간관계와 유연한 사고를 가졌다는 점입니다. 해방 후 그가 정계의 중심에 서게 된 것도 이러한 장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영웅 VS 개인

『한국의 레지스탕스』를 집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한국 레지스탕스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들의 삶을 현재화하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핍박 받으면서도 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가장 간단한 결론을 그들을 단순히 ‘영웅’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접근으로는 그들의 삶에서 현재적 의미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이때 그들은 우리와 다른 누군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도 평범한 개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마다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를 가졌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끝없이 싸우고 경쟁해야 했던 인간 말입니다. 저는 책에서 인간으로서 레지스탕스들의 삶을 그리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야만 그들의 삶이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들의 삶이 아니라 우리들 가운데 한 명의 이야기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현재의 레지스탕스

지금 현대사회 속에서도 한국의 레지스탕스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입니다. 일제 시대 한국의 레지스탕스들은 식민통치에 불응하며 민족의 독립과 신국가 수립을 꿈꿨습니다. 그 결과 해방이 연합국의 승리에 의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강대국들은 어느 누구도 한국의 독립을 부정하지 못했습니다. 레지스탕스들의 투쟁이 한국의 독립을 기정 사실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레지스탕스들은 존재합니다. 구체적인 시대적 과제는 달라졌지만, 보편적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권리의 확대를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억압과 착취의 철폐를 위해,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고 우리네 삶에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싸웠고 지금도 곳곳에서 맞서는 분들이 그렇습니다.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이 발전하는 이유는 레지스탕스들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역사 글쓰기

신진 역사학자로서 역사를 글로 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시나요?

대개 사람들은 역사를 이야기나 극으로 즐깁니다. 우리와 다른 시대의 삶을 통해 현재 자신의 삶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학계와 대중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점입니다. 학계의 연구서는 복잡하고 어려워서 일반인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출간되는 역사서들은 대개 오류가 많습니다. 다양한 사료와 최신의 연구성과들을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 책이 학계와 대중의 간극을 줄이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명감이라면 너무 거창하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역사를 서술하되 오류는 최소화하고, 합리적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최대한 이야기가 살아 있는 역사를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서가 보다 가깝게 대중과 만나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책이 그 첫 번째 시도입니다.


역사서 & 저자

좋아하는 역사서나 소설이 있다면 무엇이며, 좋아하는 저자가 있으신지요?

가장 좋아하는 역사서는 임경석의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역사적 사실의 규명에 충실하면서도 이야기체 역사서술로 대중을 배려한 역작입니다. 조재곤의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도 좋아합니다. 서술방식은 평이하지만 김옥균과 홍종우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을 일순간에 바꿀 수 있는 작품입니다. 소설로는 황석영의 『손님』과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를 좋아합니다. 『손님』은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 신천에서 있었던 대규모 학살사건을 다룬 소설입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이 사건을 미군이 저지른 학살로 선전하지만, 황석영 작가는 합리적 근거를 통해 좌우 갈등이 낳은 주민들 간의 비극임을 밝힙니다. 『밤은 노래한다』는 만주에서 벌어진 민생단사건을 다룬 소설입니다. 민생단사건은 저도 이번 책에 자세히 다루었는데, 김연수 작가는 현지 답사와 역사가 못지않은 사실 탐구로 당시 사건을 멋진 문학작품으로 재탄생 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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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레지스탕스조한성 저 | 생각정원
저자 조한성은 2006년부터 3년 반 동안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했다. 친일 반민족 행위 조사 대상자를 선정하고, 친일 반민족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국내외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근대 지식인들의 활동과 고뇌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하여 한ㆍ일 양국의 기록을 조사하고 관련자들의 회고록과 최근까지 발표된 연구 성과들을 두루 검토했다. 당시 긴박했던 현장을 누빈 레지스탕스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사투의 현장에서도 붓을 들어 긴장되고 장엄한 순간을 남긴 기록들은 오늘까지 남아 당시의 진실을 여과없이 들려 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여울이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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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은 21세기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젊은 글쟁이다. 2004년 봄 ‘문학동네’에 ‘암흑의 핵심을 포복하는 시시포스의 암소 - 방현석론’을 발표하며 평론가로 데뷔. 이후 여러 매체에 기고하며 자신의 글쓰기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오고 있다. 특히 2013년에는 『마음의 서재』,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연달아 발표하며 어느해보다 활발하게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은 정여울이 20대에게 건네는 글로, 이전에 발표한 평론적 성격의 글과는 다른 편한 에세이다.






청춘의 키워드 20개를 뽑았다. 혹시 책에는 쓰지 못했지만 20개 외에 청춘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더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이 20개의 키워드 전체를 받쳐주려면, ‘몸’이 중요하다. 사랑도, 우정도, 재능도, 방황도, 모두 ‘신체’가 없이는 불가능하니까. 단지 ‘건강하게, 웰빙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몸이 속삭이는 무언의 메시지를 잘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20대는 몸에 대해서 가장 자신감이 넘치는 시기일 것이다. 하루 이틀 정도는 밤을 새도, 그 다음날 멀쩡하게 또 다시 돌아다닐 수 있는 눈부신 체력은 20대의 전유물이니까. 하지만 그런 만큼 몸의 메시지를 읽는 데 둔감한 시기일 수도 있다. 몸은 우리에게 수많은 말을 건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의 메시지’를 듣느라 ‘몸의 메시지’를 읽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나는 20대에 몸이 좀 아플 때도 ‘그냥 괜찮겠지’, 하고 넘어가는 때가 많았다. 내 강한 체력을 너무 믿고 몸을 혹사시킨 적이 많았는데, 그렇게 자신을 학대한 여파가 이제야 나타나는 것 같다. 우리 몸은 다양한 활동을 필요로 한다. 단지 자기가 의식적으로 좋아하는 일만을 하지 말고, 우리 신체의 새로운 리듬을 개발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해보았으면 한다. 나는 20대에 너무 정적으로 살았던 것 같다.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몸을 많이 움직일 수 있는 취미를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세상에는 확 미쳐야만 알아지는 것들이 있다. 한 쪽 발만 담근 채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몸을 던져야만 알 수 있는 것들, 머리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흠뻑 빠져야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단지 ‘전문가’란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말 힘겨운 시간이 닥쳤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은 지겹지 않은 그 무엇. 인생의 아무런 흥미가 없어질 때조차도 그것만 생각하면 왠지 기적처럼 위안이 되는 그 무엇. 언제든 나의 가장 순수한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도 전혀 아깝지 않은 그 무엇. 그 순수한 탐닉의 대상을 찾는 것이야말로 20대의 행복한 미션이다. 그러려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야 하고, 다양한 공간 속에 나를 던져야 하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죽지 않는 배짱도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간판을 위한 전공’이 아니라 ‘마음의 전공’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학점을 따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전공을 넘어서, 평생 함께 할 영혼의 동반자로서 ‘마음의 전공’이 필요하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중에서
집필

최근 ‘마음의 서재’에 이어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연달아 냈다. 단기간에 2권의 책을 내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마음의 서재>는 오래 전에 이미 원고를 완성해 두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때>를 매주 연재하는 것이 아무래도 힘들었다. 특히 월요일 아침까지 원고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일요일이 가장 긴장되는 날이 되어버렸다. 가장 쉬고 싶은 일요일이 가장 늦게 취침하는 날이 된 것이다. 작년 7월부터 ‘주말’이라는 개념이 없어져버렸던 것 같다. 주말만 되면 ‘<그때>원고 써야 하는데’, 하는 긴장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힘든 것에 비하면 기쁨이 훨씬 컸던 것 같다. 아마 예전처럼 ‘공부하는 느낌’으로 글을 썼다면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냥 ‘내 이야기를 하는 느낌’으로 글을 썼기에 힘든 것도 잘 참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이야기’를 하면서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참 좋았다. 내게 소중한 추억들을 함께 불러낼 수 있어서, 내가 잃어버린 시간의 애틋함을 다시 되찾을 수 있어서. 이 책을 만들었던 시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독자

채널예스에서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이다. 연재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알려 달라.

독자들의 댓글과 편지가 많은 힘이 되었다. 누군가 내 글을 잊지 않고 매주 찾아와 읽어준다는 것은, 만나지 않았어도 그들을 직접 만난 느낌을 주었다. 독자들 개개인의 인생사는 잘 모르지만, 서로 글을 쓰고 읽는 몸짓을 통해 마음 깊은 곳에서 친밀감을 나누는 느낌을 주었다. 미국에 사시는 독자분이 일부러 이 글을 읽기 위해 매주 채널 예스를 방문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감사했다. 더 열심히 써야겠구나, 더 많이 나를 던져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하며 쓴 글이었다.


자의식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본인의 사적인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상대로 처음에는 잔뜩 경계를 하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마음을 많이 여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느낌을 의도하며 썼나.

그럴 리가 있겠나. 잔뜩 경계하며 시작한 건 아니다. 처음부터 마음의 문을 열려고 많이 노력했다. 하지만 그게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이런 글쓰기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적응이 안 된 것 같다. 내 마음 깊은 곳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감성이 빙하가 녹듯이 천천히 풀려나오는 느낌이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마음이 편해진 건 사실이다. ‘자의식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 모든 ‘자기규정’이 무거운 자의식을 만든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그동안 나를 스스로 가둬왔던 자의식의 감옥으로부터 조금씩 해방될 수 있었다.

곤돌라의 뱃사공, 곤돌리에(Gondolier)가 되기 위해서는 운전실력 뿐 아니라, 베네치아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뛰어난 노래실력까지 필수라고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작업을 거는 듯한 그들의 과장된 다정함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저 모퉁이만 돌면, 지금까지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다. 새로운 세계의 눈부심을 전달하는 아름다운 메신저, 곤돌리에들을 보며 나는 지금 그곳에 없지만 그곳에 이미 있는 듯한 멋진 착시를 선물 받는다. 뱃사공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설렘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너무도 가고 싶지만 차마 갈 수 없었던 그곳으로, 당신을 사뿐히 데려다줄 수 있는, 그런 글을. 앉은 자리에서도 당신과 함께 온 세상을 여행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중에서
여행

여행하는 걸 매우 좋아한다. 다음 여행 장소로 어디를 생각하나.

이제는 여행의 장소보다도 여행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지금까지는 마치 정해진 미션을 처리하는 것처럼 ‘꼭 가고 싶은 여행지’를 정해놓고 그곳에서 되도록 많은 볼거리,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는 느낌으로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제대로 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몸만 쉰다고 쉬는 게 아니다. 마음까지, 무의식까지 쉴 수 있어야 진짜 쉬는 것 같다. 쉬는 몸짓에도 엄청난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난 지쳐 쓰러질 줄은 알아도, 의식적으로 쉬는 행동을 잘 못했다. 일을 안 하는 순간에도 항상 일에 대한 생각에 시달렸다. 이제는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 없이, 강의에 대한 부담감도 잠시 벗어던지고, 그냥 완전한 휴식을 해보았으면 한다. 그래도 활자중독증은 고치지 못할 것 같으니,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 한 권만 들고.^^ 그래도 쿠바에는 꼭 가보고 싶다.

하루 종일 거기 있어도 ‘왠지 다른 데로 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지 않는 곳들이 있다. 예컨대 비엔나의 MQ(Museums Quatier: 박물관 광장)가 그랬다. 이곳에는 에곤 쉴레와 클림트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들의 명작이 전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진처럼 그저 아무런 목적 없이 웃고 떠들고 낮잠 자고 먼산바라기를 하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명작의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이런 곳에 있으면 공간의 배치라는 것이 얼마나 삶의 가치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이 공짜인 것은 불가능하지만, 저렇게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무료공간’을 곳곳에 배치할 수 있는 삶의 여유가 바로 건축의 철학이 아닐까.
저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음주 관람’을 했다. 맥주 한 잔만으로도 쉽게 인사불성(?)이 되는 나는 혼자 맛있는 맥주 한 잔 원샷하고, 카라얀의 특별 사진전을 관람했다. 카라얀의 음악과, 카라얀이 남긴 명언들과, 카라얀이 사랑한 사람들을 술과 함께 들이켰다. 그곳에서 술의 힘을 핑계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는데 그건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이 찬란한 세상을 냉큼 혼자만 즐기고 있는 것이 못내 안타까워서였다. 나는 두고 온 모든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들과 이런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중에서
20대

만약 다시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어떤 일을 하고 싶나.

너무 급히 ‘조로’해버린 것이 내 20대의 서글픔인 것 같다. 어려보이는 게 싫어 얼른 마음으로라도 나이 들어버리자고 결심했던 순간이 있었다. 어려보이는 건 곧 유치해 보이는 것이고, 무력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이에 맞는 삶’이란 게 어떤 건지 잘 몰랐다. 물론 어떤 나이엔 꼭 뭘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십대에 누릴 수 있는 감정들, 유치해서 더욱 애틋한 감정들, 미숙해서 더 사랑스러운 감정들을 많이 놓쳐버렸다는 것을 서른이 다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스스로의 감정에 정직해지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은 빙빙 돌리지 말고 그냥 해버리고, 가고 싶은 곳은 앞뒤 재지 않고 그냥 가버리고,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당당히 만나고. 이런 평범한 행동에도 왜 그렇게 복잡하고 서글픈 금기들이 많았는지.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닐 일을, 너무 많이 눈치 보면서 살았던 것 같다. 미래를 생각하면서 현재를 희생하는 습관도 버릴 걸 그랬다. 상처받을까봐 고백하지 못하고, 버림받을까봐 붙잡지 못하고, 나중에 힘들어질까봐 그 순간 하고 싶은 일을 못했던 기억들이 오랫동안 발목을 잡는다.
꼭 꼭 눌러왔던 욕망들, 잠재된 무의식은 정말 언젠가는 ‘사건’이 되는 것 같다. 그 억압된 기억들이 뜻하지 않은 순간에 내 뒤통수를 치기 전에, 사랑하고 싶을 땐 사랑하고, 미워하고 싶을 땐 미워하고, 그렇게 순간순간의 감정들에 솔직해지고 싶다. 그리고 20대로 돌아간다면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각오를 하고 외국으로 떠나, ‘여행’이 아니라 ‘삶’을 살아보는 것. 완전히 새로운 곳, 아무도 날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는 것. 그런데 내가 이런 이야기하면 주변의 어른들이 그러신다. 지금도 할 수 있다고. 그분들이 보기엔 난 아직 ‘어린 애’라고. 그래서 그 ‘아직 늦지 않음’에 용기를 얻는다.


재능

책에서 막심 고리키의 말을 인용했다. ‘재능이란 자기 자신의, 즉 자기의 힘을 믿는 것’이라고 했는데 정여울 평론가 스스로가 믿는 자신의 힘은 무엇인가.

20대엔 나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었다. ‘내가 뭘 잘한다’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지 못했다. 아주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자신감이 있었을지 몰라도, 내가 기억하는 내 모습은 항상 어딘가 주눅들어 있었다. 오랫동안 ‘자신감 없는 나’와 싸우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내 무의식 아주 깊은 곳에는 나를 가장 믿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이해하는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이다. 내 안에서 가장 당당하고, 멋지고, 사랑스러운 나를 꺼내어 그 모습을 좀 더 의식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길인 것 같다. 지금도 계속 찾고 있다. 자신 없는 나,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나, 슬픔에 빠지기 쉬운 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어두운 나’도 인정해야 한다. 지혜는 그 극단적인 나의 이미지들을 통합하는 데서 오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여러 겹의 나를 다독이고, 구슬리고, 보듬어주는 데 조금은 소질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무작정 믿어버리기로 했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어느 순간 자신을 믿어버렸으면 좋겠다. 자신의 능력을 ‘계산’하지 않고 ‘신뢰’하는 것이야말로 재능이 꽃피는 시발점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내가 재능이 있든 없든, 난 열심히 글을 쓸 거야’라는 것이 ‘의식’의 선택이었다면, ‘무의식’의 진심은 이런 것이었다. 정말 열심히 글을 쓴다 해도, 인정 받을 수 없으면 어떡하지? 나는 누가 뭐래도 나의 길을 갈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칭찬 받으면 금세 기분이 날아갈 듯 하고, 비판 받으면 언제라도 절망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나는, 정말 나약한 인간이 아닐까. 도대체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기는 한 걸까. 나는 그 두려움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아, 그냥 글쓰기는 취미로 삼아야지’라는 식의 비겁한 비상구로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뿌리 깊은 두려움을 인정하고 나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인정받지 못해도 좋다. 돈을 벌지 못해도 좋다. 누가 뭐라 하든, 내 마음이 가리키는 꿈의 화살표를 따라가자. 그때부터는 재능보다도 열정이 관건이었다. 어느 순간에는 재능보다 열정이 중요했고, 열정보다 성실함이 중요했다. 재능과 열정과 성실이 하나 되는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중에서
독서

다독가로 알려져 있다. 책은 주로 어떤 자세로 읽나.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많이 읽기보다는 천천히, 깊이 읽으려고 노력한다. 틈 날 때마다 읽기 때문에 정해진 자세는 없다. 누워서도 읽는데, 그러다보면 곧 잠이 들어버린다. 약간은 긴장도 하고, 펜과 메모지를 들고 읽는 것이 여러 모로 많은 도움이 된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많이 읽는데, 시력이 나빠진다는 단점은 있지만 집에서보다 오히려 집중이 잘 된다. 지금은 마크 롤랜즈의 <철학자와 늑대>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커다란 동물과 함께 살고 싶은 낭만적인 환상에 빠지곤 한다. 이 책은 너무 따뜻하고 아름다운 감성을 지닌 책, 그러면서도 최고의 지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길을 걸어다니면서 읽기도 했다. 걸어다니면서 읽다가 건물벽에 부딪힐 뻔하기도 했다.^^


엄친딸?

보잘 것 없는 스펙이나 재능에 기죽지 말라는 메시지를 많이 전해줬으나, 실제로 본인은 대한민국에서 인정받는 대학을 나왔다. 그런 점이 글쓸 때 걸림돌이 된 적은 없나.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이 있다. 그건 내가 어떤 학교를 졸업하거나, 어떤 일을 해냈기 때문이 아니라, 졸업장이나 스펙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순간들이다. 나를 아껴준 사람들의 공통점은 내가 무엇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그래도 가끔은 좀 괜찮다’고 느끼는 뿌듯한 순간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어떤 편안함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개척할 때였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할 때의 희열은 그걸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그건 공식적인 스펙이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순간의 기쁨이다.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통도 따른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기쁨은 우리를 성숙하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는 최고의 기쁨을 20대에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청춘이나 나이듦, 2013년의 대한민국 같은 시공간을 벗어나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단어나 마음가짐으로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상처받지 않기 위해 계산하지 않기. 미래를 계산하거나 예측하지 말고, 내 진심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바로 그곳으로, 자기 안의 가장 빛나는 힘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라.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요새 나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기도 하다. 요새는 ‘담대하다’라는 형용사가 마음에 비수처럼 꽂힌다. 우리를 괴롭히는 갖가지 장애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 그것은 내 스스로 용기를 가지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담대하게 나아가자. 우리를 아프게 하는 그 모든 것들과 당당하게 싸우며. 살며, 사랑하고, 싸우자.

20대의 가슴에 안겨주고 싶은 20개의 키워드를 정리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이 모든 단어들이 내게는 소중하지만, 이 스무 개의 키워드를 딱 세 개로만 요약한다면? 나는 세 가지를 꼽고 싶다. 바로 사랑, 혁명, 우정이다. 내가 소중하게 가꿔온 청춘의 키워드들은 이 세 가지와 어떤 방식으로든 아름답게 연결되어 있다. 사랑, 우정, 혁명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우리의 20대를 빛나게 하는 힘이다. 세상은 점점 각박해져 20대의 키워드가 ‘생존, 스펙, 취직’으로 변해버린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가치들은 ‘상황’이지 우리가 스스로 지켜내야 할 ‘가치’가 아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내 마음 속의 별처럼 빛나는 이 세 단어의 가치는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사랑, 혁명, 우정. 이루어지지 않아도, 끝없이 실패해도, 소유할 수 없어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가치들이다. 바보 같아 보여도, 철 지난 이상처럼 보여도, 난 그것들이 미치게 좋다. 사랑, 혁명, 우정을 향한 변함없는 짝사랑이 나를 여전히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그 따스한 낱말 3총사가 여러분의 삶도 환하게 비춰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우정은 나를 바꾸고, 사랑은 너와 나를 바꾸고, 혁명은 세상을 바꾼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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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정여울 저 | 21세기북스
어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세상에 내던져진 청춘에게 대학, 학점, 스펙, 취업 같은 단어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20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 정여울은 방황, 여행, 타인, 직업, 배움, 행복, 탐닉, 재능, 멘토, 죽음 등 20대가 가슴속에 품어야 할 20개의 키워드를 제시하고, 청춘이라는 터널을 지나면서 그 속에서 우리가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인생의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의 20대를 반추해보며 풀어놓는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이야기들은 단순한 위로와 공감을 넘어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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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귀은, 인문학은 교양이나 상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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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대기업이 TV광고에서 ‘ASK’라는 단어로 자신의 회사를 묘사했다. 이어서 광고는 질문이 혁신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광고를 보면 떠오르는 저자가 있으니 바로 한귀은 경상대 국어교육과 교수다. 그녀는 인문학의 본질을 “교양과 상식을 의심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인문학 과격주의자라 소개하는 한귀은 교수. 그녀가 최근에 낸 책, 『모든 순간의 인문학』에는 그러한 의심으로부터 나온 글이 가득하다.




한귀은은 누구

책에 실린 ‘인문학 과격주의자’라는 저자 소개가 인상적이다. ‘인문학 과격주의자’라는 말을 좀 더 설명해 달라.

‘과격’이란 말도, ‘주의’란 말도, 별로 환영 받지 못하는 단어다. ‘급진주의’나 ‘강경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상투적이고 무겁고 소외받는 말을 가볍고 재밌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삶과 동떨어져 고매할 것 같은 ‘인문학’에 그런 단어를 붙이면 훨씬 친근할 것도 같았다. 똑똑하고 영리한 방법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시대에, ‘모든 것이 인문학으로 가능하다’라는 타협 불허의 고집도 부리고 싶었다. 저자 소개의 맥락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인문학 과격주의자’는 일종의 유머다. ‘과격주의’란 말을 과장되게 써서 한 번 웃자는 의도다.

소재들도 과격하지 않던가? 스킨십, 냄새, 자위, 페티시, 단식, 콤플렉스, 성형, 복수 등, 개인들이 감추고 싶은 것, 수치스러워 하는 것들에 대해 따뜻하게 말하고 싶었다. 꼼꼼하고 섬세하게, 인문학적 품위를 잃지 않고서 말이다. 한편으로는, 게오르그 짐멜, 발터 벤야민, 롤랑 바르트 등 인문학을 삶으로 끌어내린 사람들도 인문학 과격주의자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이들은 매우 사소한 물건, 현상, 감정 등을 인문학적으로 사유한 철학자다.

우한용 전 서울대 교수가 이 책을 읽고 엽서를 보내주셨는데, “롤랑 바르트의 문체를 닮은 가볍게 정수리를 치는 사유와 도발적인 진지한 시선이 돋보인다”는 과찬을 해주었다. 덧붙여 “장례식장에서 축배를 들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쓸 수 있는 글”이라는 말도 해줬는데, 책의 내용으로 봤을 때도 역시 내가 인문학 과격주의자라는 말인 듯하다.


자기관리

제목만 보면, 『모든 순간의 인문학』이 철학, 역사책일 것 같다. 그런데 서점에 분류되어 있기로는 ‘자기관리’ 쪽이다. 이에 대한 불만은 없나.

인문학과 자기관리에 걸쳐 있는 책이다. 인문학으로 자기관리를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 책은 인문학적으로 ‘감성’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 감성 사용법’을 말한다. ‘복수’에 대해 말할 때도, 우리가 갖는 복수 의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을 생각하며 썼다. 나의 복수 의식을 철저히 점검했던 것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나야말로 인문학으로 자기관리를 한 사람이다. 2010년에 낸 『이토록 영화같은 당신』은 상처의 인문학이며, 2011년 『이별리뷰』는 그것을 극복해갔던 과정을 인문학에 기반하여 쓴 책이다. 『모든 순간의 인문학』은 행복의 인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순간의 인문학』이 진정한 의미의 자기관리 책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시대의 인문학은 자기관리, 그리고 자기를 둘러싼 타자와 세계를 이해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문학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매우 광범위하게 쓰인다. ‘교양’, ‘일반 상식’ 정도로 넓게 쓰고자 하는가 하면,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처럼 학문적 주제가 명확하고 학문적 방법론이 있는 근대적 의미의 학문으로써 사용할 때도 있다. 저자는 어떤 편을 선호하는가.

나는 인문학의 의미를 특별히 정의하는 않는다. 인문학 자체가 통섭의 학문이다. 어떤 특정 학문의 권리 행사, 배타적 영역 확보는 인문학의 본질과 오히려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인문학이 교양과 상식도 아니다. 교양과 상식을 의심하고, 삶의 진리와 정수를 통찰하고 그것을 자기 삶에 체화시키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본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그런 교양과 상식을 ‘키치’라고 했다. 그 키치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부 또한 인문학일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모든 것에 대해 논문을 쓸 수 있으니 주제는 무한대로 널려 있지요. 그렇게 해서 써낸 원고 뭉치는 자료실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그것은 무덤보다도 쓸쓸하지요.” 나에게 인문학은 쓸쓸한 무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변화를 이끄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전환기

인문학을 공부하기 전, 인문학을 공부한 후의 인생을 이야기해 달라.

가령, 이런 변화다. 예전엔 ‘마담 보바리’를 쇼퍼홀릭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녀는 ‘멜랑콜릭’이었다. 그녀는 르네 지라르가 말했듯이,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욕망하는 ‘속물’이었지만, 속물이라도 되지 않았다면 그녀는 더 깊은 우물 같은 우울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거라고, 그녀를 이해하게 됐다.

이런 통찰은 내 안의 ‘그림자’와 ‘콤플렉스’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게 만들었다. 내게 속한 보바리즘도 나는 좀 더 건강한 방향으로 틀었다. 바로, 경제관념 있는 ‘엠마 보바리’가 되자는 거다. 댄디의 취향은 갖지만 경제관념도 있어서 빚을 지지 않고(나름 재테크도 한다, 인문학적으로), 그 취향을 향유하는 삶을 추구하게 된 거다.


이 시대의 독자

『모든 순간의 인문학』은 어떤 계기로 집필했나. 이 책에서 독자가 꼭 알아줬으면 하는 게 있다면.

작년 런던 올림픽이 열렸을 때 어머니, 아들, 조카와 경주의 한 호텔에 묵고 있었다. 개막식 때 폴 매카트니가 ‘헤이 쥬드’를 부르는 것을 들으면서 그가 참 귀여운 남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좀 놀라웠다. 그래서 일상에서 내가 놀라는 일에 관해, 감성과 감각을 발휘해 계속 써보자 마음먹었다. 쓰다 보니, 그 감성이 상처에 닿아 있기도 하더라. 책에서도 미운 오리새끼도 미운 오리 새끼 하나만 더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썼다. 동화에서 미운 오리새끼는 알고 보니 백조였지만, 지금 우리 시대의 미운 오리새끼들은 백조도 아니면서 스스로 백조라고 착각하는 오리들이거나 그냥 콤플렉스가 있는 착한 오리들이다. (정신의학 쪽에서는 전자의 증상에 ‘경계선적 장애’라는 병명을 붙이던데, 아니라고 본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증상인 것이다.) 이 ‘착각 오리’와 ‘착한 오리’가 스스로를 더욱 잘 이해하고 사랑하려면 자기만의 감성과 취향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 또한 감성과 취향을 계발하면서 내 삶이 더 의미 있게 여겨졌다.


버킷리스트

책에서 소설, 영화 드라마 등 방대한 작품을 독자에게 소개했다. 이중 다섯 작품만 고른다면 어떤 작품을 선택하겠나.

영화 <여름의 조각들>: 70대가 되었을 때 닮고 싶은 모습이 영화 속에 있다.
영화 <색, 계>: 아름답고 지독하다.
영화 <아무르>: 어디까지가 견뎌야 하는 삶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영화 <미스 홍당무>: 심리학자 융이 말한 그 ‘그림자’의 재기발랄함을 만끽하면서 봤다.
드라마 <연애시대>: 웃으면서, 울면서 봤다. 한창 삶이 힘들 때였다.




대학 강단에서 강의 중이다. 점점 사람들의 독서량이 준다고 하는데, 대학생은 어떤 편인가.

사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책을 ‘읽을’ 여유가 없다. 그들이 놓인 현실이 그렇고, 매체가 너무 다양하니 에너지를 독서에 집중시킬 수가 없다. 그들의 빡빡한 삶에 비해 오히려 많이 읽는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많이 읽으려고 애쓴다. 갈수록 책은 은밀한 매체로서 그 기능을 발휘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책의 물질성을, 질감을, 형태를 사랑했으면 좋겠다. 『이별리뷰』에서 책과 애인의 공통점을 나열한 적이 있다. “때론 베개가 되기도 한다, 끝까지 읽는다고 다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외출할 때마다 데리고 다닐 수는 없다(짐이 되기 때문에), 그러나 기차 여행을 할 때에는 동반하고 싶다, 침실까지 따라올 때도 있다, 겉모양이 멋있다고 내용물이 충실한 것은 아니다, 크고 무겁다고 많은 것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때때로 쓸데없이 비싸게 구는 것도 있다, 오래 묵히면 그것에서 추억의 냄새가 난다”였는데, 나는 사람들이 책을 ‘착한 애인’ 여기듯 아꼈으면 좋겠다. 침실에 데리고 들어가면 더 좋고. 그럼 더 깊이 읽게 된다.


교육

교육 철학이 있다면?

이 질문의 뜻을 ‘어떤 사람이 좋은 선생님인가’라는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답한다면, 가령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에 나오는 ‘포레스터’ 같은 선생님이되, 좀 더 친절한 선생님이고 싶다. <일 포스티노>에 나오는 시인 ‘네루다’처럼 학생에게 내재된 잠재적 능력을 일상 속에서 이끌어내어 줄 수 있는 선생님이고도 싶다. 그리고 둘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이 교육을 할 때 ‘메타포’를 썼다는 것이다. 통찰력 있고 아름다운 메타포는 학생들로 하여금 삶과 세계의 신비를 탐색하고 해석하려는 욕망을 일깨운다. 아, 그런데 자식 교육은 그게 안 되더라. 메타포는 ‘여유’와 ‘시간’이 있어야 태어나는 건데, 자식 교육에 있어서는 그 ‘거리감’이 전혀 조성되지 않으니.


시간 활용법

강단에 서는 것만으로 바쁠 텐데, 독서나 영화 감상 등 문화생활은 어떻게 하나. 시간 관리 요령이 있을 듯하다. 바쁜 현대인을 위해 조언 부탁한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잘 해야 할 터인데, 왜냐하면 충분히 오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전혀 바쁘지 않다. 강의를 하는 시간 이외에는 언제나 ‘집’에 있다. 사실 전화 받기가 민망할 정도다. 간혹 점심을 같이 먹는 교수들이 있는데 어디냐는 질문에 언제나 답은 ‘집’이다. 학교 관리자들이 보면 뭐라 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엄연히 재택근무를 선호한다. 집에서 ‘연구’하기 때문이다. 바슐라르가 말했듯 내게 집은 안정과 몽상의 장소다. 집에서 ‘명랑한 고독’을 즐긴다. 여기서 고독이란 ‘론리니스(loneliness)’가 아니라 ‘솔리튜드(solitude)’다. 폴 틸리히는 론리니스는 혼자 있는 ‘고통’을, 솔리튜드는 혼자 있는 ‘행복함’을 뜻한다고 했다. 고독을 향유하면 혼자서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이 너무나 많다. 그렇다고 왕따가 되는 것도 아니다. 평생 고독을 즐겼던 루소도 그랬다. 고독을 진정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진정한 환대를 받는다고.


미래

앞으로 어떤 책을 쓰고 싶나. 집필 계획외, 별도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알려 달라.

한때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쓰려고도 했다. 저자 소개에서 ‘노희경처럼 쓰고 싶었던 인문학자’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2012년 봄에 드라마 대본을 써서 출품한 적이 있다. 물론 떨어졌는데, 감각적이면서도 품위 있는 에로티시즘을 내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관상을 보는 지식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그 여주인공이 남자를 ‘촉상’하는 장면이 있다. ‘눈’으로 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손의 감각으로 얼굴의 선과 각도를 가늠하는 거다. 눈과 코와 귀, 입술을 스치고, 팔의 길이와 다리의 길이를 재는 장면이 있었다(관상에서는 몸의 비율이나 균형도 중요하다).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이 비슷한 장면(눈 먼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만졌던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고 내심 신기해했다. 어쨌든 지금 내겐 어쭙잖게 관상 보는 능력만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어떤 장르의, 어떤 테마의 글을 쓰든, 나는 삶의 슬픔에 기반을 둔 유머가 있는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글을 쓰고 싶다. 연극에서 가장 하찮고 조야하게 취급되는 것이 소극(笑劇, farce)이라는 장르다. 이 소극이 삶의 한 순간을 아이러니하게 절창으로 보여준다면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 외의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면 모호해서 더 설렌다. 사실, 하고 싶은 게 없기 때문에 더 가슴이 뛸 것이다. 나에게 어떤 일이 도래할지 모르기 때문에.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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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의 인문학한귀은 저 | 한빛비즈
이 책은 지적으로 사유하는 힘, 깊이, 감성을 갖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나 드라마, 즉 ‘스토리’를 차용한다. 우리가 킬링 타임으로 쓰는 스토리를 통해 인문감성을 채움으로써 일상이 어떻게 의미를 되찾는지 보여준다. 특히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인 사랑, 이별, 관계, 상처 등 소소하고 사적이지만 중요한 삶의 순간들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여 우리가 부대꼈던 모든 순간에 인문학적 감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한다. 저자는 깜짝 놀랄 만한 솔직함과 섹시한 지성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휴먼다큐 ‘사랑’ 출연 김수림, 내 행복의 원동력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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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포기해야 할 것은 없다』를 쓴 김수림은 한국의 헬렌켈러로 불린다. 부모의 이혼, 가난 그리고 청각 장애까지 그녀의 유년은 밝지만은 않았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녀는 12살 때 어머니와 다시 만나 일본으로 건너간다. 귀가 들리지 않았던 김수림에게 외국어인 일본어로 진행된 수업은 어려웠다. 성적은 바닥이었고, 학창시절은 우울하기만 했다.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뒤 독립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한다. 독립을 위해서는 자신만의 경쟁력이 필요했다. 경쟁력으로 그녀는 ‘영어’를 생각했다. 비록 귀가 들리지 않았지만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춘다.

 

유창한 영어를 경쟁력으로 세계적인 제지회사인 오지회사에 입사할 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그녀의 삶은 탄탄해보였다. 4년 후, 돌연 우울증이 찾아왔다. 은둔형 외톨이 생활이 계속되던 중, 그녀는 세계여행을 계획한다. 3년 동안 30개 나라를 여행한 뒤 세계적인 금융회사 골드만삭스에 입사, 지금은 크레디트스위스에서 법무심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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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살면서 포기해야 할 것은 없다』를 출간한 뒤, 1년이 지났다. 어떻게 지냈는가.

 

한국어판이 출간되고 난 이후,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왔다. 한국에서 중고생이나 장애아를 대상으로 강연을 했고, 방송에도 꽤 출연했다. 가장 최근의 방송 활동이라고 하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MBC 휴먼다큐멘터리 〈사랑〉을 몇 달 간 찍은 것이다. 일본에서는 꾸준히 강연을 하고 있다.

 

2011년에 일본에서 책이 먼저 나오고, 한국에도 책이 나왔다. 두 책의 내용은 비슷한가. 차이가 있다면 어떤 내용이 다른지.

 

한국 출판사의 요청으로 몇몇 추가된 부분이 있다. 4개 국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추가했다. 제일 앞부분에 시련에 부딪혔을 때마다 힘이 되었던 3가지 신념과 3가지 습관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 독자를 위해 새로 쓴 원고다. 
 
개인적인 고백이 많이 들어간 책이다. 선뜻 공개하고 싶지 않은 내용도 있었을 텐데, 책 출간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20대 후반에 우울증으로 다시 일어서고, 재활훈련을 겸해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여행을 갔다. 거기에서 여행의 매력에 빠지고, 3년간 30개 나라를 돌아다녔다. 여행 중에 여러 나라의 각양각색의 친구가 생겼다. 그 친구에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파란만장, 엉망진창인 인생을 이야기했다. 모두들 충격을 받으면서, 용기를 얻었다며 나중에 책으로 내보라고 말하더라. 하지만 실제로 용기를 얻고 의욕이 생긴 건 나였다. 그로부터 10년 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또 아는 사람 사이에 전해지다가 출판사 편집자의 귀에 들어갔고, 출판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일본에서 책이 나오게 되었다.

 

 

『살면서 포기해야 할 것은 없다』의 주요 테마가 '가족'이다. 책에는 특히 어머니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김수림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다. 아이가 생기고부터, 그 생각은 매우 강해지고 있다. 우울증으로 마음이 가라앉고 있었을 때나, 책을 내거나 강연회를 하거나 새로운 일을 도전할 때에 언제나 상냥하게 지지해 주는 남편. 언제나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해 주는 딸. 그리고 장애를 안은 나를 여기까지, 여자의 힘 하나로 키워 준 어머니에게는 더 할 수 있는 감사의 말이 없을 정도로 감사하고 있다. 가족이 있으니까, 지금의 행복이,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차례 방송 출연으로 한국에는 ‘한국의 헬렌켈러’라고 소개되었다. 이런 별명이 마음에 드는가.

 

귀가 들리지 않는데도 4개 국어를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놀라고 흥미를 표시하는 면도 있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가면, 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메시지가, 다른 사람을 감동시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애를 안고, 공부도 정말 못하고 그래서 상처도 많고, 아무런 연줄도 없는 나이지만, 일단 부딪쳐 깨지더라고 단념하지 말고 도전해보자는 신념이, 커리어우먼으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행복을 쥘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것이 헬렌켈러로 불리게 된 것이라면 나로서는 영광이다.

 

귀가 들리지 않지만 4개 언어를 구사한다. 이미 책에는 공개했지만,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서 언어 학습 비결을 알려달라.

 

들리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발음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혀를 이에 끼는 것인지, 혀를 위턱에 붙이는 것인지, 소리를 내는 것인지, 코로 공기를 빼는 것인지, 입으로 공기를 토해 내는 것인지……. 각각의 단어를 선생님이 실제 발음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만져서 느끼고, 납득할 때까지 되풀이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대화를 할 때 통하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실천해보았다. 한 단어마다 그 방법을 되풀이했기 때문에, 대단히 끈기가 필요했다. 포스트잇에 단어를 쓰고. 방 안 벽과 천정에 붙여두었다. 그 포스트잇을 보면서 뜻이 무엇인지 기억하려고 애썼다. 나중에는 집 밖에 있어도 포스트잇의 위치와 단어 뜻까지 기억이 났다.

 

외국어 공부 외에도 관심 있는 공부가 있는가? 주로 어떤 책을 좋아하나.

 

딸이 학교를 다니고,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많이 하지 못한 공부를 이제 딸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한다. 이번 기회에 딸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 책은 여러 분야를 두루두루 읽는 편이지만, 즐겨 읽는 장르는 서스펜스 소설이다.


3년 동안 여행을 많이 다녔다.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겪으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일본에서만 오래 지내다 보니, 일본의 상식이라고 하는 것에 얽매여 있었다. 행복의 길은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다양한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나라의 사람을 만나면서 나의 상식이 세계 어디에서나 통하는 상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고, 즐겁게 인생을 보내며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게 큰 충격이었다.

 

누구보다 많은 인생의 굴곡을 거치면서 인생의 가치에 대해 고민했을 것 같다. 삶에는 건강, 명예, 부, 마음의 평온 등 다양한 가치가 있을 텐데 인생에서 가장 우위에 두는 가치가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다. 지금 이 순간을 성심껏 살아가고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이게 될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성장과 학창 시절, 사회생활과 세계 여행 등. 굉장히 스토리가 많은 인생을 살았다. 앞으로는 어떤 스토리를 쓰며 살 계획인가.

 

앞으로 계획은 나의 인생 이야기를, 책으로 읽거나, 강연회를 듣거나 해서, 사람들이 삶의 활기를 찾았다든지, 할 수 있다는 의욕이 생겼다든지,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귀가 들리지 않는 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누구라도, 훌륭한 가능성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강연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나의 작은 노력이, 누군가의 힘이 되고,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거기에 능가하는 기쁨은 없을 것이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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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포기해야 할 것은 없다김수림 저/장은주 역 | 웅진지식하우스
귀가 들리지 않는데도 한국어는 물론 일본어, 영어, 스페인어까지, 능숙한 4개 국어 실력으로 도쿄에 있는 세계적인 금융회사에서 법무심의관으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김수림. 일본에서 책이 출간된 후 화제를 몰고 온 그녀의 삶은 한국에서도 TV와 신문에 소개되었고, 그녀는 ‘한국의 헬렌 켈러’라 불리며 큰 감동을 주었다. 오른쪽 귀는 아예 듣지 못하고, 왼쪽 귀는 보청기를 끼면 시끄러운 곳과 조용한 곳을 구별할 수 있는 정도이다. 소리가 사라진 세상. 텔레비전을 틀어도 소리가 들리지 않고, 가족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 피아노 치기와 노래 부르기를 할 수 없고, 일상적인 대화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김수림에게 ‘할 수 없는 것’이 곧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안철수와 최장집 교수,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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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군주론(Il Principe)』이 쓰여진 지 500년이 되는 해다. 1513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마키아벨리가 정치 유배시절에 쓴 이 책이 2013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널리 언급되고 회자되는 풍경을, 마키아벨리는 어떻게 볼까? 실제로 2013년 정치권의 빅 이슈로 떠오른 안철수 의원(51, 무소속)은 정책 네트워크 ‘내일’을 만들고, ‘내일’ 이사장으로 최장집 교수를 임명해 언론과 국민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최장집 교수가 바로 마키아벨리를 제대로 알아야한다고 얘기해 온 정치학자. 3년 전 “우리 정치에서 카를 마르크스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최교수는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마키아벨리를 “솔직하고 대담무쌍한 정치철학자다. 도덕ㆍ종교적 담론은 인간의 권력의지를 베일에 덮어씌운다. 마키아벨리는 그 위선적 가면을 벗겨 보인 위에서 정치현상을 설명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4.27 중앙일보)

사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정치 철학을 확립한 학자로 이미지가 구축 되어 마키아벨리를 좋아한다는 것은 대단히 이기적이고 권력지향적인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마키아벨리와 『군주론』에 대한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그간 알려진 『군주론』『군주론』에서 얘기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군주론』에는 우리나라의 정치가들과 리더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진정한 리더쉽상이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군주론 담론’의 중심에는 김경희 성신여대 교수가 있다. 김경희 교수는 올 2월 출간한 『공존의 정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군주론』은 이기기 위한 처세술과 혼란을 극복하고 강한 나라를 만드는 리더십을 제시하는 저서로 인식되어왔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고전(古典)은 하나의 답만을 제시하지 않고, 읽고자 하는 사람이 보고자 하는 것을 제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군주론』은 군주 개인의 승리와 권력 강화를 위한 이기적인 저술로 읽혀왔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까지 읽혀온 것과는 다르게 『군주론』을 독해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혼자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이길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이 진정 강한 나라를 만드는 리더십이라는 것을 『군주론』이 담고 있다는 것이다. 『군주론』의 키워드는 독존(獨存)이 아니라 공존(共存)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김경희 교수와 진행한 서면인터뷰이다. 우리나라 최초 『군주론』이탈리아 원전 연구자이자 번역자인 김경희 교수와의 인터뷰가 마키아벨리를 이해하는데 좋은 발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나라 최초 『군주론』 이탈리아 원전 번역자 김경희 성신여대 교수



마키아벨리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다루는 사람

마키아벨리를 연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요. 마키아벨리의 어떤 점이 교수님을 사로잡으셨나요?

대학 다닐 때부터 정치사상을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석사를 마치고 사상은 본고장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독일에 가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고즈넉한 대학 도서관에 틀어박혀 저의 관심사를 천착하다가 마키아벨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선 마키아벨리는 근대정치사상의 시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세와 고대 그리고 근대가 혼합되어 있는 마키아벨리의 사고는 서양정치사상의 보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르네상스 시기의 인문, 사회, 그리고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이 통합되어 있는 보편적인 지식인이라는 것이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학문적인 관심 이외에도 그의 저서를 접할수록 마키아벨리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학문도 비슷하겠지만 정치학, 특히 정치사상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에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그 속에서 지혜를 찾고자 하는 마키아벨리의 자세에 굉장히 끌렸던 것 같습니다.


사변적보다는 구체적으로

시오노 나나미는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라는 책을 통해, 마키아벨리를 생생하게 살아있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냈습니다. 『군주론』을 오랫동안 연구하셨으니, 마키아벨리라는 인물에 대한 상을 교수님께서는 누구보다 구체적으로 잡으셨을 것 같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어떤 사람인가요?

마키아벨리는 격변기에 태어나 국가의 존망을 걱정하며, 고전에 대한 공부와 자신의 경험에 기반 해 시대의 문제를 풀고자 고심한 지식인이자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사태를 굉장히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사고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의 간결한 문체를 보더라도 사변적이기보다는 구체적이고 현실의 문제를 단순 명료하게 이해하려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일례로 『군주론』 1장을 보면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라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사항의 단점과 장점을 논리적으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5장에서 그가 명시한대로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대해 이득과 손실의 측면에서 명증하게 밝히고자 하였습니다. 군주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기에, 현실의 복잡한 측면을 크게 두 가지로 명료하게 설명하고 그 이득을 따져 결정해야 함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 『군주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설득은 그 특수한 예만 가지고는 불가능하기에 일반론을 펼치고 그 성공의 예를 적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철저히 공인의 자세를 유지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계산하는 이성은 철저히 국가라는 정치공동체의 유지와 보존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사적 이해관계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서 그러한 점이 잘 나타납니다. 『군주론』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귀족, 용병대장, 그리고 카톨릭 추기경 등등은 모두 사적인 이해관계의 추구로 인해 비판 받은 이들입니다.


마키아벨리 정치의 기술은 인민들의 변화를 읽고 그들과 같이 할 수 있는 능력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권모술수와 정치기술만이 정치의 전부라고 잘못 독해되고 있다고 보십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군주론』이 이렇게 이해된 것은, 내용적인 면에서 권모술수와 정치기술이 탁월하게 설명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지는데요. 『군주론』에서 얘기되고 있는 정치 기술에 대하여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군주론』에서 그려지는 권모술수와 정치기술의 대표적인 예로는 아마도 7장에서 나오는 체자레 보르지아의 행적인 것 같습니다. 그는 사이가 나빠진 용병대장들을 시니갈리아라는 도시로 불러 화해를 청하는 척하다가 마음을 놓은 그들을 죽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의 부하를 자신의 군대로 흡수합니다. 또한 로마냐 지역의 평정을 위해 잔인하고 결단력 있는 자신의 심복인 레미로 데 오르코를 파견하여 일거에 귀족들을 제어한 후 그를 토사구팽에 처합니다. 이를 통해 인민의 두려움과 더불어 지지를 획득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체자레 보르지아의 행위를 높게 평가합니다.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두 가지 점을 언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를 유지해야 하는 이가 자신의 힘이 미약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신의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가피한 폭력이나 불의한 수단의 사용은 ‘잘’ 행사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적기에 단번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목적은 자신의 사익의 추구가 아니라, 국가의 보존에 있습니다.

아울러 정치기술은 인민의 지지를 얻는 것 같은 인간의 마음을 얻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체자레 보르지아는 로마냐 지역이 오랫동안 귀족들의 발호로 인민들이 피폐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한 지역의 평정은 온건한 인물로는 수행될 수 없기에 자신의 심복 중 잔인하고 결단력 있는 레미로 데 오르코를 보냅니다. 하지만 인민은 자신들을 도와주러 온 레미로 데 오르코의 잔인한 행동에는 두려움과 더불어 미움까지 느끼게 됩니다. 이를 본 체자레 보르지아는 레미로 데 오르코를 효수하여 인민들의 지지를 획득하게 됩니다. 체자레 보르지아는 인민들이 귀족들을 제어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것에 필요한 강압적인 수단에는 곧 두려움과 미움을 느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맡겼던 것입니다. 이는 정치의 근본인 인민들의 마음의 변화를 읽어낼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며 그것을 통해 인민들의 호의와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키아벨리에게 정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관계는 관계맺음의 쌍방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쌍방에 대한 고려와 배려, 나아가 정확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마키아벨리에게 정치의 기술은 정치의 주요 구성요소인 인민들의 변화를 읽어내고 그들과 같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군주 혹은 지도자는 인민들과 같이 가야 하지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마키아벨리적 의미에서 옳은 정치기술일 것입니다.


마키아벨리즘은 권모술수를 비난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

지금까지 『군주론』이 권모술수를 정당화하는 고전으로 읽혀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질문 3번의 답변에서 말씀드렸듯이 체자레 보르지아의 방법 등을 마키아벨리가 옹호한 것이 그 주요 원인인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역사적으로 격변기에는 비슷한 사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독재자나 전제군주가 비슷한 사건을 일으킨 경우가 많았는데 이러한 사건들을 비난하는 반대파의 사람들이 그들을 비난하기 위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이용하였던 것입니다. 현실의 권력쟁탈을 위한 권모술수를 비난하기 위해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용어가 탄생한 것이고, 마키아벨리가 아니라 현실의 마키아벨리즘을 대표하는 것이 『군주론』이 된 것입니다.


공존의 정치를 위하여

교수님께서 이번에 내신 책이 『공존의 정치』입니다. 공존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공존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안내가 더 절실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군주론』에서는 공존의 정치를 실현하는 방법들로 어떤 것들을 얘기하고 있는지요.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현실의 구체적인 경우는 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들에 대해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공존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에는 충분히 동의합니다. 하지만 공존이 아니라 독존의 가치가 더 평가 받는 시기에 공존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그 출발점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 개인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책을 시작하는 헌정사에서부터 인민의 중요성을 설파합니다. 군주는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아가 군주 혹은 국가 권력의 토대는 인민에게 있고, 이는 자신을 인민들의 눈으로 채워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신념이나 의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민의 그것들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자신을 비우고 인민의 것들로 자신을 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군주의 능력과 그를 둘러싼 권력은 다릅니다. 권력은 주위의 사람들에 기반 하는데, 우리는 종종 재능은 뛰어나지만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경우와 재능은 별로지만 주위에 사람을 많이 몰고 다니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권력의 관점은 공동체의 활성화와 연결됩니다. 군주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재능을 계발하고 그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때, 자신의 권력뿐만 아니라 그 국가의 힘은 배가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동체의 힘과 권력이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군주가 본인의 역량을 과신하고 본인의 힘만을 배가시키려 할 때, 구성원들의 재능과 역량은 고사되고 나아가 공동체의 힘은 반감될 것입니다. 유아독존의 정치는 그 공동체의 힘을 반감시키고 정치의 유연성을 떨어트려 조그만 역경에도 쉽게 무너지게 합니다. 반면 활성화된 공동체는 어떠한 역경에 처하더라도 지도자와 시민들이 힘을 합쳐 그것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 공동체의 보존과 발전 그리고 활성화를 위해 공존의 정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공동체에 닥친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인물이 진정한 지도자

작년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바람직한 지도자상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군주론』에서 얘기하는 바람직한 지도자상은 무엇인지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설파하는 지도자상은 한마디로 공동체에 닥치는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인물입니다. 이 역량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됩니다. 하나는 유연성이며, 다른 하나는 권력의 활성화에 대한 이해입니다. 권력의 활성화에 대해서는 5번의 후반부 답변에서 어느 정도 언급되었기에 여기서는 유연성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유연성은 급변하는 세계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흔히 인간은 어느 한 가지 행동방식만을 고수합니다. 여기에 자수성가한 이들은 자신의 성공으로 인하여 본인의 행동방식이 입증되었다고 생각하기에 더 완고해 집니다. 이는 가변적인 세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게 만듭니다. 따라서 변화하는 세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리더가 갖추어야 할 기본 자질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지식이 늘수록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편견이 깊어지고 외골수가 되어 갑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몸이 굳어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를 위해 마키아벨리는 연구와 훈련의 결합을 제안합니다. 헌정사에서 『군주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고대사에 대한 연구와 자신의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14장에서는 군주가 군무에 충실하기 위해 연구와 훈련에 임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연구는 과거의 모범적인 사례에 대한 공부이며, 훈련은 그 모범을 현재에 끊임없이 적용해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상형을 현실에 적용해봄으로써 그 다양한 변형을 몸에 익혀 나가는 것입니다. 이상형의 단일성을 현실의 다양성으로 체화시켜내는 것이 유연성의 핵심인 것입니다.


『군주론』이 얘기하는 지도자상과 가장 가까운 인물은 누구?

지금까지 많은 지도자들(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까지 합쳐서) 중에서 『군주론』에서 얘기하고 있는 지도자상에 가장 가까운 인물은 누구이며,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아직 공부가 짧은 저는 이 질문에 대해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 지도자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에 대한 평가와 그 속에서 드러났던 그 지도자의 능력과 공과(功過) 등을 온전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직 마키아벨리에 대한 이해만으로도 벅찬 저에게는 앞으로 천착하고픈 주제중의 하나입니다. 고전은 시대에 따라 다른 의미와 암시를 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키아벨리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나라와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상황에 맞는 지도자는 서로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유지와 보존을 위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도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에 대한 정확한 통찰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문제와 해결방법을 이해하고 있는 지도자가 필요할 것입니다.


마키아벨리와의 대화

『군주론』은 어려운 책일 것 같습니다. 일반인들도 도전해 봄직한 텍스트인가요? 『군주론』을 읽어보라고 가장 권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모든 책은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모두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양고전은 특히 그 인명과 지명 등이 낯설기 때문에 읽는데 어렵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군주론』헌정사 첫줄에 나오는 “니꼴로 마키아벨리가 로렌초 데 메디치 전하께 올리는 글”에서 ‘로렌초 데 메디치’를 지우고 본인의 이름을 적어 넣으라고 합니다. 마키아벨리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생각하면 일단 첫걸음은 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명과 지명 같은 낯선 단어하나하나에 집중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보다는 마키아벨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 메시지에 집중하도록 인도합니다. 단어가 아니라 이미지에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고전과의 대면을 읽기가 아니라 대화의 상황으로 바꾸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간의 대화는 단어라는 수단을 통한 이미지의 교환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할 때 단순 지식의 함양보다는 지혜의 수양으로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군주론』을 읽는 시도를 한다면 그 어느 누구도 도전해 봄직한 텍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장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사람들은 대학에 들어와 교양을 높이고 싶은 학생, 나아가 미래의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 좋은 리더를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싶은 사람,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좀 더 ‘잘’ 살아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군주론』은 같이 살아남기 위한 그리고 다 같이 잘 살기 위한 책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때보다 『군주론』에 대한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왜 생겨나고 있다고 보십니까?

제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저의 소견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도래 이후 우리사회는 경쟁과 성공의 담론에 더 많이 노출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경쟁에서 이겨 성공할 수 있을까? 이는 학생이건 기업의 경영자건 경쟁사회에서 사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질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기는 처세술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군주론』이 좋은 지침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마키아벨리에 관한 책이 주로 서점의 ‘처세’에 관한 책들과 함께 놓여 있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약육강식의 기술을 전수해 주는 책으로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군주론』은 권모술수 등 냉혹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정치술을 옹호한 저서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에서도 주장했듯이 『군주론』은 혼자만이 살아남기 위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살아남기 위한 그리고 다 같이 잘 살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기존의 접근과는 다른 식으로 『군주론』을 읽어야 오늘날 더 유익한 책으로 재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는 스스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만들어 주는 것

꼭 정치인이나 지도자가 아닐지라도, 평범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맥락 하에서 『군주론』이 주는 메시지가 있을까요?

평범한 개인도 사회 속에서 사는 한 다수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갑니다. 잘 사는 것은 물질적 풍요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원활히 맺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군주론』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줄 수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행운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에 의존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군주의 권력은 인민의 지지와 그들의 힘에 있습니다. 인민의 지지와 그들의 힘을 계발할 수 있도록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지도자의 능력입니다. 즉, 지도자는 자신의 능력만이 아니라 타인의 능력도 볼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나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것으로 관점을 확장시킵니다. 사회 속의 평범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더 잘 살아간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배려와 공감의 관계 속에서 자기계발을 해 나가는 것일 것입니다.

지도자는 스스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만들어 주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리더는 배려와 공감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 나올 것입니다. 『군주론』이 주는 메시지는 정치인이나 지도자가 진정한 리더가 아니라, 우리가 같이 살아가는 가족, 친구, 이웃 그리고 동료 시민들에 대해 배려와 공감의 자세를 가진 이들 중에 진정한 리더가 있다는 것입니다.진정한 리더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공감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과 주변의 삶이 더욱 고양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평범한 이들 가운데서 나올 수 있습니다.아마도 이것이 『군주론』이 주는 메시지일 것 같습니다.


                                                  ※ 서평 이벤트


 

김경희 교수의 『공존의 정치』를 읽고 싶으신 분들은 댓글로 인터뷰에 대한 소감을 작성해주세요. 총 열 분을 선정하여 김경희 교수의 『공존의 정치』를 보내드립니다. 책을 받으시고  3주 안에 리뷰를 예스24에 게재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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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니콜로마키아벨리 저/강정인,김경희 공역 | 까치(까치글방)
수많은 정치지도자들, 혁명가들, 그리고 자국의 권력자의 실체를 시민들에게 폭로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로서 수세기 동안 읽힌 니콜로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마키아벨리를 전공한 전공자가 이탈리아어 원본을 가지고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은 조국 통일과 외세축출을 열망하던 이탈리아의 정치가 마키아벨리가 가지고 있던 염원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정치 행위가 종교적 규율이나 전통적인 윤리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대 현실주의 정치사상을 담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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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정치김경희 저 | 서강대학교출판부
필자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군주론을 독해하고자 하였다. 혼자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이길 수 있는, 그것이 진정 강한 나라를 만드는 리더십이라는 것을 군주론은 담고 있다는 것이다. 1,2 장은 군주론을 공존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한 논문들이며, 3,4 장은 앞의 분석에 근거해 군주론 전체를 한장한장 설명하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웹툰작가 루드비코, “작품 속 건방진 기자, 정말 매력적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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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운영하던 비디오 가게를 공부방 삼아 영화를 자습하여 그 결과를 만화에 속속 사용하고 있다”는 웹툰작가 루드비코. 작가가 되지 않았더라면 말단 평사원이 되었을 것 같고, 취미는 ‘길거리에 지나가는 아름다운 뭇 여성을 보며 감탄하는 일’이라고 한다. 꼭 쓰고 싶은 작품을 묻는 질문에는 “이걸 미리 말하면 글이 잘 안 써지는 타입”이라고 선수를 치는 루드비코. 그렇다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제 인터뷰를 보셨으니 『인터뷰』를 사주세요.” 진부한 면이라고는 요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작가 루드비코를 <채널예스>가 서면으로 만났다.

실물 사진 공개는 꺼리는 까닭에 루드비코의 캐릭터 이미지로 대체한다

루드비코 작가는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크리켓 마스크>로 데뷔했으며, <인터뷰>, <만화ㆍ영화>를 연재했으며 현재 <만화ㆍ일기>를 연재 중이다. 이번에 출간된 『인터뷰』는 연재처였던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제작한 한정판이 순식간에 완판된 후, 세미콜론에서 분량과 맥락 때문에 누락됐던 두 단편 「샘 이야기」, 「독방」을 추가해 새롭게 출간된 책이다. 『인터뷰』는 긴 무명 시절을 거쳐 단 한 권의 책으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 소설가에게 한 삼류기자가 인터뷰를 청하면서 시작된다. 작가의 필명부터 그림 스타일, 작품의 배경 설정까지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결말에 대한 독자들의 다양한 해석으로 연재 완료 후 더 많은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루드비코

작가님의 필명 ‘루드비코’에 얽힌 사연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름을 루드비코로 사용하는 이유는?

곧 출간될 예정인 『루드비코오의 만화ㆍ영화』에 자세히 나옵니다. 더불어 토끼 캐릭터의 근원까지!


부조리극

『인터뷰』의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부조리극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하셨다고 했는데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조리극의 매력이 있다면?

당시에 부조리 연극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오네스코나 베케트 등을 좋아했고,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인물이 등장하며, 작은 공간으로 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 그러면서도 꿈과 같은 생경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작가

작가 후기를 통해, “작가는 작품의 주인이 아니다”, “작가라는 직업 자체의 의문점, 불만 때문에 『인터뷰』를 그리게 됐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루드비코가 생각하는 ‘작가’란 어떤 사람입니까?

철학적이고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의 경우엔 그 기준이 간단합니다. 자신만의 색깔이 있고 그걸 표출할 줄 아는 사람! 저급하든 고급하든 악의가 있든 선의가 있든 여성적이든 남성적이든 상관없이, 자기 색깔이 뚜렷한 사람이 좋은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작품명이 ‘인터뷰’입니다. 만화 속 주인공인 작가는 인터뷰를 극도로 싫어하는데, 루드비코 작가님은 실제로 어떠신가요? 작품 속 이야기처럼 독자의 솔직한 평가를 들을 수 있다면 삼류기자의 인터뷰를 수락하실 마음이 있으신가요?

당연히 수락할 생각이 있습니다. 『인터뷰』에 나오는 건방진 기자는 제가 너무 좋아하는 인물형입니다. 그런 건방지고 도발적인 사람을 좋아합니다.


낯섦

작품은 폭력적이면서도 서정적이고 또한 다양한 소재를 넘나들고 있는데, 작가님을 낯설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일상 속 이질감을 느끼실 때는 언제인가요?

딱 집어 언제다. 무엇이다! 이건 없는데요, 그런 순간은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타이밍이냐고 물으시면 대답을 못하겠는데, 기분이나 생각이 굉장히 묘~해지는 순간은 분명 있습니다. 그런 순간이 이야기를 쓰는 좋은 재료가 됩니다.




데이비드 린치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를 좋아해서 『인터뷰』의 캐릭터에 응용했는데, 린치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린치 감독님의 영화는 흡사 외계인이 만든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 시선과 생각이 너무 이질적이라서 때로는 거부감마저 들 때가 있지만, 기분을 몽롱하게 만들어주는 꿈결 같은 영화적 리듬이 좋습니다. 초기작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특히 <블루 벨벳>과 <트윈 픽스>를 좋아합니다. 최근 <인랜드 엠파이어> 같은 영화는 완전히 안드로메다로 승천하신 듯하셔서 따라잡기가 버거운 게 사실입니다.


만화일기

현재 다음에서 연재 중인 <만화일기>는 작가님 개인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 일상 카툰은 작업하시기에 더 편하신가요? 혹은 까다로우신가요? 전작에 이어 소탈함, 섹시함, 솔직함을 가져가고 싶다고 밝혔는데 가장 어려운 부분은 어떤 점인가요?

음. 까다롭습니다. 매우 까다로워요. 웃음을 만들어내는 작업 자체가 일단 까다롭고요. 솔직한 것까진 좋은데, 자칫 잘못하면 논란의 화살이 작가 본인에게 직접 꽂힐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신경 쓸 부분이 많습니다.


영화키드

부모님께서 운영하던 비디오 가게를 공부방 삼아 영화를 자습하셨다고 했는데,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무엇인가요? 영화 시나리오를 작업할 계획은 있나요?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굳이 꼽자면 스릴러와 범죄, 누아르인데 딱히 구획을 지어 장르를 나누고 특정 장르만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로맨틱 코미디도 좋아하고 SFEH 좋아합니다. 마블 히어로들 시리즈도 좋아하고요. 고전부터 최신작, 흥행작, 블록 버스터 등등 좋은 건 최대한 챙겨보는 편입니다. 아직까진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욕심은 없고, 입지를 다질 때까진 만화에 충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독

타 인터뷰에서 다독을 통해 얻은 안목으로 작품을 쓰신다고 하셨는데, 평소 어떤 책들을 주로 읽으시나요?

이것 역시 특정 분야로 한정 짓진 않습니다. 다양하게 읽으려고 노력 중이고요. 다만 최근엔 진화론 같은 과학서적을 주로 읽고 있습니다.


웹툰

현재 출판만화보다 웹툰이 인기를 많이 얻고 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웹툰 시장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여전히 기형적인 구조 탓에 문제점이 많이 남아 있고 논란거리도 많지만, 웹툰 시장이 끼친 영향은 분명히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지금껏 한국에서 만화라는 매체에 대한 이미지가 이렇게 좋았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우선 듭니다. 그동안 만화는 많은 핍박과 손가락질을 받아온 매체였고, 조금만 나이를 먹어도 꼭꼭 숨겨서 쓸데없는 죄의식을 가지며 읽어야 하는 기괴한 사회적 분위기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30~40대가 『미생』이란 만화를 4억 번 조회하는 시대입니다. 어른들이 만화를 이렇게 많이 본다는 건 제가 어렸을 땐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죠. 그만큼 인식 전환이 됐다고 봅니다. 물론 신인 및 비인기 작가들의 처우 개선, 웹툰 유료화 같은 과제는 여전한데요, 해결을 위해 장기적으로 꾸준히 노력해야 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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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루드비코 글,그림 | 세미콜론
긴 무명 시절을 거쳐 단 한 권의 책으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 소설가가 있다. 그 후 깊은 슬럼프에 빠져 아무런 영감을 얻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는 그를 찾아온 삼류 기자. 원래 인터뷰를 싫어하지만, 차기작을 구상하던 중 독자의 솔직한 평가를 듣고 싶었던 작가는 구상 중인 소설을 듣고 감상을 말해달라는 조건으로 인터뷰를 수락한다. 『인터뷰』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 대화 장면과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 이 두 가지 틀로 이루어진 액자식 구성의 만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현실과 작가의 이야기는 서로를 반영하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버리는데….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삼국지’는 전형적인 네트워크형 인물 중심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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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우리 아이에게 삼국지를 읽히기 위해 편작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TV광고에도 『삼국지』주인공이 나올 정도로 이 콘텐츠는 누구에게나 익숙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더군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는 알아도 『삼국지』인물들은 불편해했습니다. 시중에 나온 삼국지들을 다시 읽고, 무엇이 젊은이와 여성에게 삼국지를 읽기 어렵게 하는지 문제를 파악한 뒤 편작에 들어갔습니다. 원래 독서를 할 때 중국 역사와 고전에 대한 ‘편식’이 심하고, 특히 법가와 병가를 주로 공부하던 터여서 사변적이기보다는 현실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뭐든 시작하면 폭풍처럼 몰아쳐 하는 습관이 있어서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또 『삼국지』는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어서 작업 과정은 늘 흥미진진하고 즐거웠습니다.”

『여류 삼국지』는 스토리라인과 에피소드 등은 기존 『삼국지』를 따랐지만 주제는 달라졌다. 공명을 다투는 조직 내 인간의 삶과 처세, 그것이 양선희 작가가 주목한 주제다. 그래서 권모술수는 훨씬 더 적나라하고 교활하게 묘사했지만 그 상황의 정당성을 부여해 그렸고, 계책들의 이면에 숨은 인간들의 역학관계에 대한 해석을 보태놓았다. “『삼국지』는 우리 인생에서 한 번은 거쳐 가야 할 고전입니다. 『삼국지』엔 난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치열함이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사는 세상이 난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겐 지금이 우리의 난세죠. 치열하게 살았던 선대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위안 받고 삶의 전략을 세우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양선희 작가는 현재 집필한 창작 장편 소설이 여러 편 있지만, 출간을 고심하고 있다. ‘현직 논설위원으로서 현대물 창작소설을 출판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 양선희 작가는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먼저 『여류 삼국지』출판으로 소설가 인생을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양선희 작가는 “논설위원으로 현직에 있는 동안에는 중국 고전을 중심으로 한 책들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국지

『삼국지』를 편작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류 삼국지』는 음악을 편곡하듯 고전을 내 방식대로 요즘의 시대정신에 맞게 새로운 각도로 다시 쓴 것입니다. 제 한자 실력은 원전을 번역할 정도가 못 됩니다. 여성과 내 아들 또래의 젊은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삼국지』를 써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한 여자 후배가 그러더군요. 『삼국지』는 창세기처럼 이름이 너무 많아서 읽기 힘들다고요. 사실 기존 『삼국지』는 남성적 관점에서 쓰여 여자들이 읽기 힘든 면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남자들은 사람을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알려면 출신학교, 고향, 선후배 등을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죠. 반면 여성들은 네트워크가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알려고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삼국지』는 전형적인 네트워크형 인물 중심의 소설이죠. 그런데 이런 관점은 요즘 젊은이들한테도 어렵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캐릭터를 살리고 주인공들을 개인으로 접근하는 등 요즘 사람들이 읽기 쉽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류(余流)

스스로 삶의 방식을 탐구하고 방향을 세우고 그대로 살아보고자 하는 뜻을 담아 필명을 ‘여류(余流)’로 지으셨는데, 어떤 연유가 있었나요?

20여 년 전 신문사에 들어갔을 때, 나는 10여 년 만에 수습으로 들어온 여기자였습니다. 나는 여학교를 나와 26년 간 거의 여자들하고만 생활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남자들의 세상에 던져졌습니다. 그것도 요즘 말로 상남자들의 세상이었죠. 10여 년간 정신 없이 그 세계에 묻혀 살다 문득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내겐 맞지 않는 남성들의 세계에 속하려고 애쓰면서 심지어 여성의 정체성을 버리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살고 있더군요. 그렇다고 누구도 나를 남자 기자처럼 대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로부터 내 자신을 다시 찾아가는 길로 돌아섰습니다.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필명 삼아 여류(余流)라는 이름을 지었죠. ‘나는 나’라는 자아 선언 같은 것이었고, 내 정체성의 회복을 선언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를 찾는 게 왜 중요한가? 그래야 남들과 다른 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오늘 이렇게 『여류 삼국지』를 써서 출판하게 된 것도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인 거죠.


처세

『여류 삼국지』의 키워드를 처세 콘텐츠로 표현했는데, 개인적으로 『삼국지』를 통해 어떠한 처세를 배웠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한 일은 『삼국지』인물들의 행동과 관계를 통해 처세를 분석한 것입니다. 이렇게 처세를 분석할 수 있었던 것은 20여 년간 낯선 사회에 들어와 나름의 생존방식을 깨우쳐 가는 과정에서 관찰과 분석을 통해 얻은 능력 때문이라고 봐야겠죠. 사회생활에서는 자신의 처세술만으론 성공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처세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과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을 갖추어야만 하는 것이죠. 나와 다른 사람을 아는 것, 이것이 효율을 높이고 나를 성공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인물들의 처세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데 많은 양을 할애한 것은 그들의 처세술을 배우라는 것이라기보다는 처세와 인간을 분석하는 방법을 알려주려는 것이었습니다.


77훈

처세의 지혜, 소통의 기술, 조직운영의 원리를 깨닫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을 ‘77훈’으로 정리하셨습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훈은 무엇입니까?

77훈은 제가 뽑은 게 아니라 원고를 읽은 출판사 편집자들이 뽑은 것입니다. 나도 가끔은 왜 이걸 뽑았을까 궁금한 게 있습니다. 가끔은 한 문장이 자신의 깊은 인사이트를 끌어내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독서는 한 문장이 아니라 부분을 통해 전체를 파악하고 전체를 통해 디테일을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줄 수 있습니다. 문장이 아닌 전체로서 『삼국지』를 파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인물

『여류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가장 호감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요? 혹 작가님의 성격과 닮았다고 생각되는 인물이 있다면?

모든 인물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고, 또 모두에게 냉정합니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데다 우직하기까지 한 조자룡을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에게 몰입해 있는 건 아닙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은 없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되 그 방법을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되는 것이 바로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할 정도로 비슷한 상황은 수시로 생깁니다. 그러나 상황은 비슷해도 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상황의 역동성을 좌우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나와 같을 수는 없고, 과거의 인물이 현생할 수도 없습니다.




여성

‘여성이 쓴 삼국지’는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어떻게 다를까요? 그건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라고 봅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성의 대표도 아닙니다. 더 많은 여성들이 『삼국지』를 쓴다면 카테고리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직장 여성

새내기 직장인, 여성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셨는데 이유는 무엇인가요?

『삼국지』는 치열한 이야기입니다. 이건 단지 후한 말의 난세였기에 더 치열한 건 아닙니다. 어쩌면 인간의 공적인 삶, 조직의 삶이 그런 것이죠. 별 고생 없이 학교에 다니다 사회에 나가는 젊은이들 중 사회를 ‘자아실현의 장’이라고 오해해서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걸 불평하고, 도중에 그만 두는 걸 많이 보았습니다. 사회생활이란 생존게임입니다. 좀 더 비장하게 정신을 무장할 필요가 있음을 『삼국지』를 통해 배웠으면 합니다. 또 『삼국지』는 역사를 만들고자 도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를 통해 ‘일을 도모하는 자만이 성공이든 실패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면 합니다. 또 ‘일은 사람이 꾸미지만 성사는 하늘에 달렸다’는 점도요.


중국 고전

평소 중국 고전을 탐독하셨다고 밝혔는데, 『삼국지』외에 다른 고전을 편역할 계획은 없으신가요? 중국 고전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창작할 소재와 제 방식으로 정리하고 해설하고 싶은 목록이 A4용지 한 장은 됩니다. 차근차근 시작해야죠. 저는 중국 고전 입문서로는 『동주 열국지』를 늘 추천합니다. 이 책으로 춘추시대의 주요 장면들을 익힐 수 있지요. 춘추시대를 이해하면, 제자백가로 들어가기도 쉬워집니다.


사람

현재 중앙일보에서 칼럼을 쓰고 있는데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무엇입니까?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자 중앙일보 분수대란을 쓰고 있죠. 나의 관심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고, 다양하고, 평등하고, 예의 바르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모든 주제가 관심사입니다.


전자책

『여류 삼국지』는 전자책으로 먼저 발간된 작품입니다. 앞으로도 전자책을 출간할 계획인지요?

2011년, 중앙일보 온라인 편집국장을 했습니다. 당시 ‘e-북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실험을 했습니다. 이때 실무진들과 얘기를 하면서 내 첫 책은 전자책으로 내겠다고 했었습니다. 당시에 소설로 등단했었고, 장편 출판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들은 사람은 몇 없었지만 내 자신에게 한 약속이어서 이번 첫 소설을 내면서 전자책을 먼저 낸 것입니다. 물론 나는 앞으로도 전자책을 낼 것입니다. 전자책 시장이 커져야 e북 저널리즘도 비로소 뿌리를 내릴 수 있을 테니까요. 내가 전자책을 연구하면서 알게 된 건, 전자책이 모든 장르에서 유용하지는 않지만 소설책이나 정보, 실용서 등에선 꽤 유용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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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 삼국지양선희 편저 | 메디치미디어
여성이 쓴 최초의 삼국지가. 중앙일보 논설위원인 양선희 작가가 조직 운영과 인간 심리의 관점에서 ‘삼국지’를 새로 편작했다. 종전의 삼국지가 대부분 전업 문학인들에 의해 쓰여 진 데 반해, ‘여류 삼국지’는 20년 이상 직장 생활을 경험한 사람이 쓴 삼국지라는 점이다. 그간의 삼국지는 문인들이 써서 조직의 논리와 처세에 대한 통찰이 다소 아쉬웠다면,『여류 삼국지』는 조직 생활의 처세, 소통의 기술, 리더십, 조직 내 역학 관계 등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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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 브랙 “나의 현재를 받아들여라. 당신에게 맞는 힐링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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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돌봄』의 저자 타라 브랙은 임상심리학을 전공하고 워싱턴 통찰명상 공동체를 창립해, 35년 넘게 위빠사나(마음챙김) 명상을 수행하고 가르치고 있다. 현재 스피릿록 센터, 오메가 인스티튜트 등 미국 전역의 집중수행 센터에서 워크숍을 개최하며 불교의 사회적 의미를 살리는 다양한 불교 평화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해 출간한 『받아들임』에서 행복한 삶의 원동력을 ‘받아들이는 힘’으로 정의한 저자는 후속작 『자기 돌봄』을 통해 독자들에게 불교의 위빠사나 이론을 보다 체계적으로 설명하며,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소개한다. 위빠사나 명상은 ‘주관을 개입시키지 않고 주체와 객체를 분리하여 바라보는 명상’으로, “일상에서 벌어지는 고통스러운 사건을 낯설게 분석하면 그 사건으로 인한 고통 즉, 자기비하와 비관을 막을 수 있다”고 전한다.

“불교 명상을 알기 전까지 ‘무가치함’이라는 미망 상태에 사로잡혀있었다”고 밝힌 저자는 스스로 개인적인 결함이 있다고 느낀 상황에서 깨어있기(마음챙김) 명상과 연민 수행을 통해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계가 변했다. 타라 브랙은 “나 자신과 타인에게 더 친절해졌고 더 편안해졌으며 삶의 도전에 대해 평정의 마음으로 더 잘 응답할 수 있게 됐다. 삶이 더 흥미로워졌고 더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사랑에 찬 현존(loving presence)’이라는 글귀를 좋아합니다. 이 사랑의 현존을 실현하고 그것을 신뢰하며 그 속에 머무는 것이 저의 깊은 열망입니다. 제게 부드럽고 연민에 찬 자각은 우리의 진정한 고향이자, 우리 존재의 본질로 여겨집니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어떤 순간이라도 은총으로 가득 찬 순간이 될 것입니다.”




동기

임상심리, 불교명상을 공부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저에게는 괴로움을 일으키는 정신적 패턴 형성과 그 과정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임상심리학은 매우 효과적인 중요한 발달적 관점과 치료 방법을 제게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명상과 결합할 때 우리는 우리를 진정한 건강과 온전함으로 데려다 주는 도구를 갖게 됩니다. 매우 힘든 질병의 시기를 거칠 때라도 명상의 가르침과 수행법은 그 와중에서도 안녕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명상이라는 이 길과 이 삶에 대해 매일 감사의 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동기가 되고 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다른 이들과 나누지 않을 수 있을까요?


불안

신자유주의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현대인들은 불안에 쫓기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저자는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마음가짐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스트레스 가득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성장을 위하여 움직이는 사회라고 할 수 있죠.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과 직장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더 많이, 빨리, 더 잘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한된 일자리와 자원에 대한 심화된 경쟁과 결합하여 사람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족과 공동체, 가족 간의 강력한 유대와 같은 과거의 전통적 구조들이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지지를 더 이상 우리에게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고립되며 자신이 뭔가 부족하고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에 따라 불안을 느끼는 것입니다. ‘보다 큰 무엇에 속해 있다’는 기본적인 감각이 없으면 삶은 그 의미를 잃고 매우 불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이 하는 가장 큰 후회는 ‘나 스스로에게 진실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양육자와 사회의 내면화된 메시지에 따라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만약 삶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본다면 아마 가장 소중한 순간들은 사랑으로 연결을 맺었던 순간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온전히 사랑하고 온전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우리의 가슴에 일치시키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명상은 우리 마음을 현재 순간에 더 깨어나게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명상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다 명료하고 열린 가슴의 자각으로, 그리고 현명한 자각으로 우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받아들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저자는 어떻게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나요?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면?

‘받아들임’은 지금 이 순간 경험하는 것을 단순하게 끌어안을 때 가능합니다. 그것은 심오한 치유력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부분은 엄마로서 불완전한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그 함정에서 스스로를 비판할 수도, 잘못된 평가를 내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쁜 엄마야”와 같은 확정적인 자기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순간에서 ‘나의 생각이 방황하고 있구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하고 자각하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이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민감하게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거나 후회하는 경우에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진정한 받아들임이란, 해로운 행위를 그저 용납하거나 부정적인 결론으로 치닫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것은 개인적 결함에 관한 어떠한 결론을 믿어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받아들임이란 ‘현재 순간의 상태’라는 실재-그것이 우리의 상처이든, 분노이든, 두려움, 갈망, 수치심이든-를 인정하고 그것에 마음을 여는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큰 지혜와 삶에 대한 연민의 마음으로 응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생각의 흐름

‘자기 돌봄’은 “잠시도 생각이 끊어지지 않는 내 마음이 엉뚱한 곳으로 달아가 내 마음을 괴롭히지 않도록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정의했는데, 생각의 흐름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나요?

우리는 생각의 흐름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방황하지 않도록 만들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이 방황할 때, 특히 자신에게 괴로움을 안기는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조금씩 키워가는 것뿐입니다. 깨어있는 자각의 순간에 우리는 선택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꾸준한 연습을 통해 마음이 불안해하거나 여러 가지 불편한 생각들 속에서 길을 잃을 때 그것을 더 잘 자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재 순간으로 다시 주의를 되돌리는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마음 챙김

스스로의 마음을 챙긴다는 것은 내 마음이 어떤지를 늘 자각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굉장히 피로할 수도 있는 문제인데요.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가장 필요한 습관은 무엇일까요?

마음 챙김(깨어있기)이란, 현재 순간에 일어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그것을 본능적으로 자각하는(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생각 속에서 길을 잃고 있는 상황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일어나는 현상을 의도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라고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죠. 또한 의도적으로 자신의 몸과 감각 경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깨어있기 수련을 또 하나의 스트레스 받는 괴로운 일로 전환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보다 호기심과 우정 어린 마음으로 깨어있기 수련에 임하십시오. 편안하게 이완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시도해 보십시오. 깨어있기는 우리 마음의 타고난 능력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연습을 통해, 관찰하는 것이 더 수월해질 것입니다. 다만 거듭해서 깨어나면 됩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비생산적인 생각에 빠져 있었다는 것, 판단과 비난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불안한 느낌에 걸려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깨어있기가 자연스러운 것이 되면 이 열린 현존, 깨어있는 현존이 우리의 피난처, 진정한 고향이라는 사실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힐링

한국 출판계는 현재 ‘힐링’을 주제로 한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힐링법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치유에는 여러 가지 접근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길이 자신에게 적합한지 알기 위해서는 각자 자신의 몸과 가슴, 그리고 영혼에 깊이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대인관계에서의 치유를 가장 필요로 합니다. 그들은 관계에서 상처받은 사람들로 특히 인생의 초기 돌봄 제공자들과의 관계에서 그러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치유되어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매우 신체적인 수련법이 적합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운동이나 스트레칭, 무예, 요가, 그리고 적절한 영양공급에 최우선적으로 중점을 둡니다. 그런데 제가 알게 된 것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에게 의도적인 주의력 훈련(이것은 몇몇 명상의 형태가 될 것입니다)이야말로 치유의 다른 모든 부분을 지탱해 주는 열쇠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명상에도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으며 사람의 기질에 따라 적합한 형태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는 실험을 통해 무엇이 자신의 안녕에 가장 도움이 되는지에 관하여 자신의 직감을 신뢰할 필요가 있습니다.


RAIN

‘RAIN’ 수행법(잠시 멈춤, 직시, 직관, 바라봄, 받아들임)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연습이 필요할까요?

RAIN 명상은 감정적 고통에 휩싸여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습관입니다. 이 습관의 특징은 자신이 힘들어하는 감정을 자각한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안심과 통찰, 안녕을 가져다 주는 ‘RAIN’이라는 간단한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습니다. RAIN의 R은 ‘그래, 내가 불안함을 느끼고 있군’이라며 자신이 현재 느끼는 감정을 단순하게 인정하는(Recognize) 것입니다. 다음으로 A는 불쾌한 느낌이 그저 여기에 존재하도록 허용하는(Allow)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물리치려 하거나 바로잡으려 하거나 회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RAIN의 I는 이 불편한 느낌이 자신의 몸에서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관심과 친절의 마음을 가지고 살펴보는(Investigate) 것을 말합니다. 잠시라도 이런 관심과 친절의 마음을 자신의 느낌에 가져갈 수 있다면 무언가가 자연스럽게 변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이제 ‘두려움에 떠는 자기’가 아니라 그보다 큰 관점에 머물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보다 큰 관점이란 깨어있는 현존, 연민의 마음을 가진 현존을 말합니다. 거기에는 더 큰 자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두려움에 떠는 자기’와 동일시하지 않는 것(Not identified), 그리고 우리의 타고난 자각으로 돌아가는 것이 RAIN의 N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RAIN 명상을 할 때마다 우리는 이 명상법이 주는 보상을 더 깊이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보상은 명상 수행에 대한 우리의 전념을 더 깊게 해줄 것입니다.




명상

『자기 돌봄』에서는 다양한 명상법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명상을 할 때 피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요?

우리에게 어려움을 일으키는 주된 태도는 ‘판단’이라고 하는 태도입니다. 즉,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고 간주하는 태도입니다. 명상은 우리가 명상의 과정에 편안하게 임할 때, 그리고 그것에 의해 진정으로 충만감을 느낄 때 우리 삶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명상을 또 하나의 ‘해야 하는 일’로 만들어버리면, 그래서 그것에 관하여 우리가 판단을 내리는 일로 만들어버리면, 명상은 우리에게 이로움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지나치게 애쓰거나 완벽을 지향하는 태도, 판단과 의무감의 태도는 명상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대신에 명상을 자신의 영혼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명상을 통해 실재의 본성이 드러나게 되면서 명상은 우리가 그것에 호기심으로 다가갈 수 있는 무엇이 됩니다. 명상이 우리가 처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게 도와주면서 명상은 우리가 깊은 우정의 마음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무엇이 됩니다.


종교

저자는 불교명상을 훈련하면서 ‘자기 돌봄’을 실천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불교를 포함한 현대인들의 종교생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종교를 둘러싼 수많은 역사적 혼동과 오해가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종교적(religious)’이란 말보다 ‘영적인(spiritual)’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편안하게 이완시켜 주고, 가슴을 열게 해주며 신성함에 대한 감각을 발견하게 해주는 체험적 수행법에 대해 알아가고 있습니다. 제게 있어서, 영혼의 구도에 관한 바람직한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서로 손을 잡고 함께 깨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승선을 향해 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삶을 숭배하기 위해, 그리고 모든 존재에서 빛을 발하는 신성을 발견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도록 도와주는 수련법이라면, 어떤 것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행복

‘행복’을 정의해본다면? 어떤 삶이 행복하다고 느끼나요?

‘아무 이유 없이 행복하라(happy for no reason)’는 구절을 좋아합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돈이나 성공, 재물, 건강 같은 외부적 요인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 진정한 행복이란, 우리 자신과 세상 속에서 마치 그곳이 우리의 고향인 것처럼 편안하게 지내는 데서 자연스럽게 겉으로 드러난 표현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 있는 그대로의 삶에 깨어나 그것을 자각하며 그것과 사랑에 빠지는 것일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행복한 삶이란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게 사는 삶일 것입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삶,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삶, 이 세상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삶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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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돌봄타라 브랙 저/이재석 역/김선경 편 | 생각정원
힐링의 시대, 현대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수많은 방법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것이 명상이다. 그만큼 명상법도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진정한 자기와의 만남과 용서, 사랑이 없는 한 그것은 패스트푸드 명상에 불과하다. 저자는 외부가 아닌 나의 '본성'을 깨달음으로써 지속적인 행복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 돌봄』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나, 상처와 절망 속에 울고 있는 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떠는 나, 그 모든 나를 스스로 보듬고 돌보는 능동적인 지혜를 담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아들아, 1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살아 보는 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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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 작가와 두 아들 허윤, 허준

미국, 캐나다도 아닌 아프리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아프리카’를 선택할 수 있는 용감무쌍한 엄마가 과연 대한민국에 존재했단 말인가? 『아이가 말했다 잘 왔다 아프리카』의 저자 양희는 아이들이 더 크기 전 지금이 아니면 안 될 일을 고민하다가 기린과 얼룩말이 뛰어 노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일 년쯤 지내다 오자고 다짐한다. 정해진 굴레에서 벗어나,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이 귀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마흔이 된 엄마의 인생에도 쉼표가 필요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첫째와 일곱 살이 된 둘째는 “아프리카에서 살아 볼까?”라는 엄마의 제안을 덜컥 수락한다. 집은 아빠가 지키기로 하고.

『아이가 말했다 잘 왔다 아프리카』는 어느 날 갑자기 아프리카로 떠난 한 가족의 성장일기다. 출국 준비부터 아프리카의 첫인상, 아이들의 학교 적응기, 케냐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돌아본 풍경, 케냐의 일상, 아이들과 엄마의 성장기를 촘촘하게 기록했다. 한 번쯤은 아프리카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이 책을 펴보아도 좋다.

양희 작가는 케냐에서 돌아온 지 6개월 만에 다시 EBS <명의>팀으로 복귀를 했다. 아프리카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녀는 “사실 일하는 조건이나 스트레스, 어려움 같은 건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이상하게 지치는 마음이 없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활력이 넘치고 에너지가 가득한 느낌”이라며, “아마도 아프리카에 있는 동안, 충분히 쉬었고 오래 생각했고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 방송에 쫓길 때면 마음 속으로 ‘뽈레뽈레(스와힐리어: 천천히 천천히)’ 라고 주문을 외운다는 양희 작가. 드넓은 마사이마라 대평원이나 푸르고 단단했던 하늘을 떠올리기도 하고 느릿느릿 걷던 캐냐 사람들도 생각한다. 그러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빈 공간도 생긴다고.

“어떤 분들은 꼭 아프리카에 가야 하냐고 물으신다. 나는 아니라고 답한다. 당신과 아이가 환호하며 즐거워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고 말이다. 물론 아무데도 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에 휘말리지 않고 일상이나 피곤에 찌들지 않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라고는 말하고 싶다. 어쩌면 『아이가 말했다 잘 왔다 아프리카』는 엄마와 두 아이가 쉼표를 찾아 떠난 긴 여행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대자연 속에서, 사람과 세상에 대한 따듯한 마음을 찾아가는 긴 여정,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한 깊은 생각과 지혜를 얻었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이 긴 여행을 통해 인생의 나침반 하나씩을 얻었다. 굉장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 꼭, 당신과 아이를 위해서 그런 충분한 시간을 가져 보라고 말이다.”




아프리카

많은 나라들 가운데 ‘아프리카’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아이가 5학년이 되니, 주변에서 논술이나 영어몰입 교육 같은걸 시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런데 나와 남편은 좀 다른 생각을 했다. 모두가 하는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무한경쟁 속으로 밀어 넣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가 더 크기 전에 꼭 경험하면 좋을 것, 인생에 있어서 두고두고 힘이 되는 경험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처음엔 미국이나 캐나다 생각도 했지만 한국과 다를 바 없이 편리한 현대 문명이 기다리는 곳이라면 꼭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아프리카’라는 답이 나왔다. 처음엔 “아프리카…”라고 놀라던 아이들도 인터넷과 책을 찾아보더니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아마도 기린과 얼룩말을 직접 볼 생각에 쉽게 ‘오케이’한 것 같다.


워킹맘?! 슈퍼맘?!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워킹맘이라, 1년이라는 시간을 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이렇게 큰 결심을 하게 된 동기가 있는지? 원래부터 용감(?)한 엄마였는지 궁금하다.

2007년부터 EBS의학 다큐멘터리 <명의>를 집필했다. 내게는 병원이 인생의 학교였다.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의사들을 만나면서 ‘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죽음은 삶의 지척에 있다. 그것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인생을 허비할 때가 많다. 나는 폐암이나 간암 같이 큰 수술이 있는 날엔 병원에 가서 환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물었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다시 건강해 지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으세요?‘ 놀랍게도 대부분의 환자들은 아내 혹은 남편 그리고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과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이들이, 놓쳐버린 인생의 순간은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용기가 많은 편이 아닌데, 이런 만남들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칠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놓쳐버린 인생의 한 시절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두려움

케냐로 떠나기 전, 가장 두려웠던 것은 무엇인가? 또한 케냐에서 배운 것들 중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떠나기 전엔 그곳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아빠 없이 아이들만 데리고 가려니 더 두려웠다. 막상 도착하고 나니, 그렇게 두렵진 않았다. 나이로비는 생각보다 발전한 도시였다. 그런데 집을 얻고 살기 시작하니 소문이 두려웠다. 위험하니 함부로 집 밖을 나가지도 말라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케냐 사람들을 경계했다. 오죽하면 2~3주 동안은 아파트 밖에 나가 산책도 못했다. 그러다 주변의 케냐 사람들과 조금씩 친해지며 경계가 풀렸다. 그러고 나니 모두 도둑이나 강도로 보이던 사람들이 친절한 이웃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수하고 정이 많고 유머가 있었다. 케냐는 모든 게 느렸다. 사람도 느리고 차도 느리고 하다못해 길가의 염소도 느리게 걸었다. 처음엔 너무 불편했는데 점점 적응이 되면서 그 ‘느림’이 좋아졌다. 아프리카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살수 밖에 없는 곳이다. 인간이 자연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환경에 순응하고 느리다. 하지만 늦는다고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삶의 여유가 더 생긴다. 지금도 바쁜 방송 일에 쫓길 때면 그곳의 느림을 생각하며 여유를 찾는다.


후회, 갈등

케냐 생활 초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어떤 생각으로 견딜 수 있었나? 한국이 그리웠던 때는 없었는지?

둘째가 아침마다 울면서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할 땐 ‘돌아갈까?’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대해 제대로 경험하지도 못하고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뭔가 지금의 고통을 보상해 줄 것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한 달을 보냈다. 한달 쯤 지나, 용기를 내어 아이들과 나이바샤 호수라는 곳엘 갔다. 작은 배를 얻어 타고 호수로 나가니 물 속엔 하마들이 있고 호수 반대편엔 얼룩말과 기린이 뛰놀았다. 아이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케냐가 불편하고 무섭고 답답한 곳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 놀라운 일이 생기는 곳이란 걸 알게 된 것이었다. 케냐의 생활이 어렵고 힘들지만 분명, 아이와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큰 힘이 될만한 경험이란 생각을 하니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더구나 딱 1년이었다. 돌아갈 날이 정해져 있다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소중한 선물 같았다. 분명, 한국에 돌아가면 케냐가 그리워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과 매일매일 발코니에 서서 노을을 감상했다. 우리에겐 늘 처음이자 마지막인 하루였다.




변화

‘아프리카는 아이들을 달라지게 한다’는 제목으로 두 아들의 12가지 변화를 책에 소개했다. 가장 기쁜 아이들의 변화는 무엇이었나?

몸과 마음이 폭풍성장을 했다. 큰아이 윤이는 긍정적이고 따듯한 아이지만, 승부욕이 지나치게 강한데다, 어떤 때는 에너지가 과하게 많아서 항상 엄마의 마음을 졸이게 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케냐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친구를 사귀고 영아원에 봉사를 다니면서 많이 달라졌다. 승패보다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다른 친구들을 배려해야 하는 마음이 생겼고 거대한 자연 앞에 순응하며 어울리는 방법도 배웠다. 무엇보다 자신의 에너지를 긍정적이고 따듯하게 사용할 줄 알게 된 것이 기쁘다. 둘째는 차분하고 생각이 깊지만 겁이 많고 소극적인 아이다. 하지만 케냐에서 스스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영어의 장벽을 넘으면서 대단한 자신감이 생겼다. 아마 스스로 고비를 넘기고 무엇인가를 성취했다는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 같은 게 생긴 것 같다. 한국에 와서는 예전보다 적극적이고, 여러 친구들과 잘 지내서 케냐에 참 잘 갔다 왔단 생각이 든다.


적응

다시 한국으로 돌아 왔을 때,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아이들이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싶어 하거나 후유증은 없었나? 아이들은 자신이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나?

큰아이 같은 경우 한국에 돌아와 중학생이 되었다. 공부에 대한 중압감이 커서 그런지 시험기간이면 케냐의 학교에 다시 가면 좋겠단 말을 한다. 시험에 대한 인식이나 스트레스가 달라서 그런 것 같다. 둘째는 처음엔 한국에 와서 좋기만 하다고 하더니 요즘 케냐를 너무 그리워한다. 특히 함께 놀던 친구들과 수많은 동물들을 만났던 대평원에 가고 싶어한다. 두 아이들은 어떤 일이든 적극적이고 자신 있게 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모두들 먼저 하기 싫은 일이 있거나 아무도 나서지 않으려고 하며 ‘내가 먼저 할게‘라고 말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일 때도 있고, 친구들보다 다양한 경험을 해 보았기 때문에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다.


가정

케냐에 다녀온 후, 가정 생활의 변화가 있나?

아프리카라는 커다란 폭풍우를 함께 견디고 경험했다는 것 때문에 그런지 가족간에 동지애 같은 게 있다. 아주 커다란 믿음이고 사랑이다. 함께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갈 수 있다는. 그래서 좀 어려운 곳에 도전해보기 시작했다. 지난 1월에는 가족 모두 히말라야 등반을 했다. 15일 동안 머물렀는데, 산에 오르며 서로를 격려하고 도와주고 또 하루 종일 같이 놀아서 서로에게 밀착된 것 같은 좋은 느낌을 받았다. 특히 올해 중2가 되는 큰아이와 얘기를 많이 했다. 요즘엔 약간 사춘기적 특징이 보이지만 그래도 아주 밝고 따듯한, 그 아이의 본성은 잃지 않는 것 같다. 또래들과 달리,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얘기를 많이 한다. 모험과 여행을 즐기고 어떤 일이든 가족들이 함께 의논하고 공유하려는 것이 우리 가족만의 분위기 같다.


여행자

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세 가지 조언은?

먼저 물건에 대한 미련, 편리함에 대한 미련을 한국에 두고 떠나라. 사실 아프리카는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는 여행지다. 아프리카의 실상과 마주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무력한 자신이 미워질 수도 있다. 최소한의 것만 갖고 그 가진 것도 감사하며 떠나라. 둘째, 대자연 앞에 설 수 있는 계획에 세워라. 끝없이 펼쳐진 마사이마라 보호구나 극한의 사막, 5천 미터 이상의 높은 산을 만나게 되면 자연 속에서 지극히 일부인 자신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생명의 고귀함이 느껴지고 아프리카가 소중해진다. 그 다음엔 아프리카 사람들과 가까워 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라. 재래시장에서 과일을 사고 커피 농장이나 기차 안에서 사람들을 사귀어라. 그러면 아프리카가 친구의 나라가 된다. 계속 마음에 남게 돼 결국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되고 다시 찾아가게 된다.




부모에게 하는 조언

아이와 함께 장기 여행이나, 단기간 해외 체류를 고려하는 부모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장기여행이나 해외체류는 ‘여행자’와는 조금 다른 포지션을 준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거주자’ 즉 여행이 생활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의 시선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으로서의 마음과 기억을 갖게 된다. 그래서 특히 아이들과 함께 갈 때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그곳의 어떤 면을 아이와 함께 느끼고 싶은가를 생각해 보고 장소와 기간을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고 좋아하는 빵집과 자주 가는 산책로, 색다른 놀이터를 갖게 될 것이다. 단순히 쉬기 위해 여행했던 리조트나 바닷가는 아이들이 자라서 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 머물렀던 곳은 다르다. 만일 케냐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아프리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은 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할 것 같다. 그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깊이의 차이가 될 것이다.


Again 케냐

다시 케냐를 방문할 계획이 있는지?

아이들이 케냐를 몹시 그리워한다. 아직 그곳에 대한 따듯한 마음이 남아있을 때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으니, 학교 친구들과 다시 축구를 하고 친구 집에서 놀면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15시간짜리 기차를 타고 몸바사에도 가고 라무에도 다시 여행하자고 한다. 나는 친하게 지냈던 케냐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1 년 내내 수시로 드나들던 사시니 커피 농장에 가서 커피 피커들과 웃으며 커피를 따고 싶고 6개월 동안 다큐멘터리를 가르쳤던 키베라 영화학교에 가서 제자들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딸처럼 여겼던 아기 에스더가 입양된 집에 다시 방문해 얼마나 자랐는지 한번 안아보고 싶다. 1년 안에 다시 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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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말했다 잘 왔다 아프리카양희 저 | 달
얼룩말과 기린이 뛰어노는 곳에서 아이들이 일 년만이라도 살다 오면 얼마나 좋을까? 두 아이들을 데리고 아프리카로 떠난, 조금은 용감한 한 엄마가 있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 지금이 아니면 안 될 일을 고민하다가 기린과 얼룩말이 뛰어노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일 년쯤 지내다 오자고 다짐한다. 그렇게 떠난 아이들은 그곳에서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이 그저 해맑게, 말 그대로 폭풍성장한다. 무한경쟁 속 사교육과 선행학습이라는 밀림, 그 반대편에서의 300일을 기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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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만 하던 남자가 육아에 빠진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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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부에게는 육아가 큰 부담이다. 한창 일해야 할 시기, 자녀 양육 때문에 사회 경력이 단절되면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없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심이 가장 많이 필요한 영아기에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기고라도 맞벌이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금쪽같은 내 아이를 생판 남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 여건만 된다면 보통 친정어른이나 시댁어른이 손녀, 손자를 돌본다.

 

『하찌의 육아일기』는 외할아버지가 손자를 키우며 쓴 기록이다. 저자인 이창식은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성균관대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겸임교수를 지냈다. 글과 씨름하던 그에게 어느 날, 글 대신 손자가 등장한다. 맞벌이 부부인 딸 내외의 사정을 보다 못해, 아내가 손자를 맡기로 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할아버지로 사는 즐거움’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저자는 외손자인 재영이와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그간 번역서는 많이 냈지만, 저자로 책을 낸 건 처음인 듯하다. 감회가 어떤지.


번역서가 나올 때마다 반갑고 기뻤지만, 막상 내 손으로 직접 쓴 책이 나오니 자식을 본 것처럼 희열과 행복감을 동시에 느낀다. 손자를 위한 선물로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서 흡족하다.

 

‘하찌의 육아일기’, 제목이 푸근하다. 제목은 누가 지었나, 제목이 정해지기까지 사연이 있다면 말해달라.


저자로서 ‘한국에서 외할아버지로 산다는 것’이란 제목을 고집했는데, 출판사에서 ‘하찌의 육아일기’라는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제목을 달아줬다. 아주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보다는 출판사 사장님이 그쪽으로 센스가 있다.

 

외손자인 재영이를 돌보면서 1년 동안 기록한 육아일기를 책으로 냈다. 육아일기를 쓰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원래부터 책으로 내기로 생각한 건 아니다. 아내가 너무 힘들어 보였다. 특히 손자 녀석에게 밥 먹이는 일은 전쟁이더라. 기록해두면 나름 독특한 '전쟁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손자 녀석한테 할매가 이렇게 고생했다는 증거로 내밀려고 썼다. 녀석을 키우며 재롱떠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보상은 충분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키웠는지 알려야 할 것 같았다.
 
육아책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지만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가 쓴 육아서는 생소하다. 이 책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보통 육아일기라면 아이의 성장과 발달 과정을 꼼꼼히 기록하는 것이다. 『하찌의 육아일기』는 아이와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수필처럼 썼다. 중심은 분명 손자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의 에피소드, 과거에 대한 회상 등도 가미했다. 현재 아이들 입으로 불리고 있는 동요들뿐만 아니라 이미 잊혀진 과거의 동요들까지 상황에 맞게 버무려넣은 전무후무한 육아일기가 될 것이다. 한국 할아버지들 중에서 나만큼 자장가와 동요를 잘 부르고 율동까지 할 줄 아는 할아버진 아마 드물 것이다. (웃음)

 

자식을 키우는 것과, 손주를 키우는 것은 조금 다를 것 같다. 어떤가.


조금이 아니라 많이 다르더라. 물론 딸을 키울 때도 예쁘고 귀여워서 거의 숭배하다시피 했지만 그땐 내가 아직 젊어 다른 세상 일에 호기심을 많이 빼앗겼다. 그런데 지금은 손자 녀석밖에 보이는 게 없다. 녀석이 내 친구이자 대화 상대자인 동시에 막강한 경쟁자니까 더 예쁘고 귀여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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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손주를 돌보는 세대 중에서 남자들은 보통 육아 경험이 많지 않다. 남자라서 힘들지는 않았나.


그래서 힘든 일은 아내한테 죄다 미루고 주로 쉽고 즐거운 일만 보조한다. (웃음) 손자 녀석이랑 동요 부르며 율동을 하거나, 졸린 기색을 보이면 자장가를 불러 재우거나,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 놀기 등이다. 나의 정신연령이 아직 어려선지 그런 일은 힘들지 않다. 그리고 이건 남자라서 힘든 점은 아닌데, 사회적으로 육아가 어려운 이유가 있다. 교육 여건이 너무 각박하고 살벌하다. 교육정책이 너무 꼬여 풀릴 전망이 안 보인다. 불필요한 공부까지 하느라고 아이들도 고생이고 부모들은 허리가 휜다. 
 
조부모의 육아 방식과 부모가 바라는 육아 방식이 달라, 손주를 돌보면서 정작 자식과 소원해지는 경우도 있다. 혹시 이런 문제는 없었나.


아주 없다면 거짓말이다. 심하지는 않다. 의견 충돌이 있다면, 나는 가끔 손자 녀석한테 사탕을 먹이려고 하고 아내와 딸은 반대하는 정도다. 딸 내외와 소원해지기보다는 오히려 이해가 더 깊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자신들이 낳은 자식을 부모가 대신 키우며 고생하는 걸 보면서 딸이나 사위가 모두 미안해 한다. 또 자신을 키워준 부모에 대한 고마움도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사실 부모 입장에서는 그게 더 고맙고 기특하다. 손자 키우느라 진은 좀 빠지지만 절대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외 수업비를 아무리 들여 봐라. 자식들이 그런 걸 깨달아주나.

 

재영이를 기르면서 육아 철학, 이런 게 혹시 생겼나. 재영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는지 알려 달라.


녀석이 싫다는 건 가급적 하지 말자. 밥 먹는 일까지도. 꼭 시켜야만 할 일이라면, 무슨 수를 쓰든 녀석이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 정도가 육아 철학이고, 재영이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남을 배려할 줄도 아는 너그러운 아이로 자랐으면 한다.

 

재영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어, 하찌 품을 떠났을 때 심경이 어땠나. 서운한 감정이 크면서도, 한편으로는 육아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지기도 했을 텐데.


서운하다기보다는 걱정스러웠다. 지금까진 왕으로 군림했는데,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순간 평민이 되는 거다. 결국 적응은 하겠지만 그때까지는 고생 좀 하겠다 싶었다. 나는 갑자기 실업자가 된 느낌이었고. 그래도 오후 4시 이후에는 재영이가 돌아온다.


그간 많은 책을 번역했다. 다른 일반 독자보다 책을 고르는 안목이 뛰어날 듯하다. 채널예스 독자를 위해 책 3권 정도만 추천 부탁한다.


순수문학 독자께는 카잔차키스의 『수난』을, 추리소설 애독자께는 코넬리의 『라스트 코요테』를, 애정 소설 애독자께는 약간 유치한듯 재미있는 『병 속에 담긴 편지』를 추천한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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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찌의 육아일기이창식 저 | 터치아트
20여 년간 전문 번역가로 활동해 온 저자가 외손자를 돌보며 기록한 따뜻하고 경쾌한 육아 일기. 맞벌이 부부인 딸 내외를 대신해 아내와 함께 손자를 돌보면서 1년 동안의 일상을 기록한 일기 속에는 육아를 통해 느끼는 가족의 소중함과 소소한 행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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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입사를 꿈꾸는 예비 취업인이 있다면 『출판24시』를 읽고 난 후, 면접을 보는 게 좋겠다. 대한민국 출판시장을 꽤나 현실적으로, 그리고 거침없이 그려냈다. 『출판24시』를 공동 집필한 작가는 모두 6명. 이대식 대표를 비롯해 김화영 편집장, 나은심 전자책 편집자, 윤여민 마케터, 최하나 편집팀장 그리고 실제로 새움출판사에서 소설 『트레이더』를 펴낸 장현도 작가가 펜을 들었다. 『출판24시』는 수비니겨 출판사를 배경으로 편집자와 작가의 기 싸움, 베스트셀러의 비화, 대형 서점과의 광고 전쟁 등 출판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솔직하게 그려냈다. 작가와 출판사의 미묘한 신경전, 인세 계약 이야기도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으니, 출판계 데뷔를 앞둔 신인작가들에게 도움이 될법한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출판 마케터인 윤식은 독자와 편집자, 마케터가 책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고 말한다. 독자와 편집자에게는 크게 네 분류로 나눠지는데, 첫째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하며 읽는 재미까지 선사하는 훌륭한 작품. 둘째는 재미는 있지만 크게 와 닿는 의미나 주제가 없는 책. 셋째는 의미와 주제의식은 분명하지만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책. 마지막으로 재미와 감동, 주제의식, 담고자 하는 내용이 빈약해서 굳이 책으로 나오지 않았어도 됐을 법한 책. 반면 출판 마케터에게는 딱 두 분류로 책이 나눠진다. 잘 팔릴 책과 안 팔릴 책. 각자의 포지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책의 본질이다. 하지만 『출판24시』의 집필진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스스로 백 퍼센트 만족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만드는 사람이 끝까지, 지독하게 노력한다면 대중적인 베스트셀러는 못 되더라도 좋은 책은 나올 것이다.”




『출판24시』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새움출판사 블로그에서 연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종이책 발간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것인지?

『출판24시』는 작년 11월부터 새움출판사 블로그에서 연재됐다. 어느 날 회의 시간에 사장님이 먼저 말씀을 꺼냈다. “베스트셀러 위주의 판매 구조, 관행처럼 반복되는 사재기 범죄, 대형 인터넷 서점과의 갑을 관계 등 현실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해 직접 우리 이야기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래서 책 만드는 사람들의 책 만드는 이야기인 『출판24시』를 쓰게 됐다. 출판사의 솔직하고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써보자 싶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종이책 발간을 염두에 두었고 아무래도 연재를 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하여 몇 장의 원고가 마련된 이후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불황인 데다 여러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한쪽에서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책 만드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고도 싶었다. 사재기를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좋은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집필과정이 궁금하다. 6명의 필자들이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썼는지? 의도나 방향성이 다른 글들이 나왔을 때 공동저자들이 어떻게 협의를 보았나?

이 소설의 첫 장은 수비니겨 출판사의 대표 이정서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것은 이대식 사장이 쓴 부분이다. 이어서 두 번째 장인 기획실장 강아라 이야기는 최하나 기획팀장이 쓰는 식으로 각자 자신의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릴레이로 썼다. 앞의 원고가 나와야 뒷사람도 쓸 수 있는 구조였다. 각자 하는 일을 많은 부분 그대로 쓰는 거라서 다른 캐릭터의 이야기에 대해 간섭하거나 관여하는 건 그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해당 장을 쓰는 당사자가 아니면 그 부분의 원고가 나오기 전에는 내용을 알 수 없는 식이니까, 모두들 궁금해하면서 다음 원고를 기다렸다. 다만 이야기의 큰 중심 줄기를 처음부터 정해 놓기는 했다. 날것의 원고가 한 권이 책으로 완성되어 팔리기까지의 과정, 그 과정 속에서 출판사가 하는 일을 그려보자 했었던 것이다.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집필진들이 따로 창작 수업을 받거나 어느 한 작가의 모니터링을 받았는지? 어떤 필진이 가장 뛰어난 필력을 보였다고 생각하는지?

집필진이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저자 선생님께 하듯이 편집자 입장이 되어서, 서로가 서로의 원고에 대한 애정으로 의견과 조언을 나누기는 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서툴기는 했지만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그래도 아무래도 처음으로 쓰는 소설에 부담감도 있고 어려움도 있었는데, 원고가 중반쯤 접어들었을 때 한번은 난상토론을 한 적도 있다. 그때 한 편집자가 눈물까지 쏟을 정도로 다소 신랄한(?) 이야기가 오고 가기도 했다(웃음). 이어 쓰기이다 보니 앞사람이 쓰는 방향과 내용에 따라 뒷사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한정되는 면도 있어서, 서로에게 여러 가지 요구사항을 주고받는 시간이 있었다. 이러한 의견 교환 시간을 통해 조금씩 배워나갔던 것 같다. 소설 속에서 작가 장현기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두 꼭지 써주신 장현도 작가의 경우, 원고를 써주시기로 하고 빠른 시간 내에 바로 원고를 보내오셔서, ‘아, 역시 작가는 다르구나’ 감탄하기도 했다.

다른 출판사들이 눈 여겨 볼만한 소설이다. 주변의 피드백, 반응은 어떤가? 새움출판사의 타 책들과 비교해서 특별한 반응이 있는지?

사실 블로그에 연재를 하면서 폭발적인 반응이 있을 거라고 우리끼리 ‘김칫국’을 먹었다(웃음). 그런데 댓글이 별로 안 달려서 다소 실망했었다. 그런데 책 나오고 바로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뿌렸는데, 한 기자가 이런 메일을 보내왔다. “어, 이거? 연재된다는 얘기는 들었었는데. 책으로 나오네요. 완전 기대돼요.” 그리고 발간되자마자 이쪽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트위터로 호평을 날려주시기도 했다. 우연찮게도 사재기 사건이 터진 직후라 그런지 다른 출판사 분들과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보여주신 것 같다. 덕분에 KBS 라디오에도 출연했고 나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타 책들과 다른 반응이라면, 일반 독자들보다 책과 관련한 일을 하시는 분들(출판 담당 기자, 대형 서점 직원, 동네 서점 운영자 등)의 호응이 더 큰 편이다.


출판사 직원으로서 경험담이 많이 포함되었을 텐데, 사실과 허구가 몇 % 정도인지? (김진명 작가의 소설, 장현도 작가의 투고 이야기, 예스24를 비롯한 인터넷서점과의 관계도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부분 사실 그대로라고 보면 된다. 실제 이름과 허구의 이름이 섞여 있는데 이 역시 기본적인 사건은 모두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장현도 작가의 『트레이더』는 실제로 원고가 투고되어 책장에 놓여 있던 것을 사장님이 먼저 발견해 읽고 계약을 맺게 된 것이다. 김진명 작가의 『고구려 5』의 원고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던 것과 독자들의 항의, 인터넷 서점과의 미묘한 관계 모두 소설적인 재미를 위해 조금 다르게 표현된 게 있을 수 있겠지만 거의 실제 그대로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장현도 작가와의 계약 이야기는 작가와 물론 협의가 된 것인가? 장현도 작가에게 『출판24시』집필을 의뢰했을 때 어떠한 반응이었는지?

술자리에서 장현도 작가의 원고 투고 과정 전체를 줄거리로 연재를 할 거라는 얘기는 했지만 ‘이런 부분이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하는 식으로 허락을 받지는 않았다. 그리고 선인세 액수는 원래 두 번째 파트인 강아라 부분에서 등장했었는데, 소설적 재미를 위해 나중에 뒤로 빠지게 됐다. 소설 속 계약조건은 현실과 동일한데, 장현도 작가도 이렇게 모든 걸 솔직하게 쓰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자 가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 이 소설을 출판사 사람들이 함께 쓰기로 하고 연재를 하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장현도 작가의 부분이 들어가는 건 생각하지 않았다. 장현도 작가가 블로그에서 연재되는 걸 보면서 재밌어 하기는 했지만, 연재 도중 작가에게 의뢰를 드리게 되었던 것이다. 『출판24시』가 장현기라는 작가 지망생의 원고가 한 권의 책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것인데, 장현기라는 작가의 얘기도 들어갔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출판사 사람들이 자신의 입으로 책 만드는 얘기를 하고 있는 만큼 그 속에서 작가가 작가의 입으로 작가의 이야기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작가의 입장에서의 이야기가 들어가면 그런 분들께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고구려』김진명 작가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5권이 나오지 않아서 답답해하는 출판사의 그림도 그려지고. 김진명 작가는 『출판24시』를 읽었나? 반응은 어떠했나?

실제 『고구려』 5권에 대한 독자 분들의 문의나 독촉 전화가 많았다. 있는 그대로의 출판사 모습을 보여주자 하는 생각으로 기획된 만큼 솔직하게 쓰다 보니,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 소설 속에도 녹아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같다. 사실 김진명 작가에게는 비밀로 하고 싶은 책이지만, 소설 속에 많이 등장하니 그럴 수는 없어서 책을 드렸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안 읽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웃음).



『출판24시』를 읽고 출판사에 선물을 보내온 독자의 편지


수비니겨 출판사가 섭외하고 싶었던 소설 속 미남 작가 차강수는 실제 모델이 된 작가가 있나?

있다. 그리고 실제 연희문학창작촌으로 만나러 간 것도 맞고, 대화 내용도 거의 똑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재밌는 에피소드인데 왜 작가 이름을 가명으로 했을까’라는 후회도 든다. 그 작가님과는 그 후로 연이 닿지는 않았는데, 『출판24시』가 나온 김에 또 다시 연락을 드려서 섭외 작전을 펴봐야겠다(웃음).


‘수비니겨’ 출판사라는 이름은 누가 제안을 했는지? 왜 ‘수비니겨’라고 했나?

새움출판사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가기로 하고 사장님께서 ‘수비니겨’라는 이름을 처음 썼다. ‘수비니겨’는 훈민정음 서문에 나오는 말인데. ‘쉽게 익혀’ 라는 뜻이다. 편집자의 역할을 잘 담은 이름이다. 편집자는 저자의 원고를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지 않나. 저자의 원고를 잘 살리면서 독자에게 가장 잘 와 닿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게 편집자의 역할이니.


‘직업인 24시’라는 기획물 에피소드가 나온다. 실제 추진 중인지?

실제 추진했던 거라 책에 등장한 거다. 그래서 ‘연희문학창작촌’에 그 작가님도 만나러 갔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잠시 보류 상태다. 혹시, 그 기획물 재미있어 보이나? 그런 의견이 좀 더 많아지면 다시 추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일반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출판사에 대한 편견, 오해가 있다면 무엇인가?

‘출판사 사람들은 앉아서 하루 종일 책만 읽는다?’, ‘책을 원 없이 맘껏 읽을 수 있다?’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책이 되기 전의 원고를 보는 일이 가장 주된 업무이지만, 편집자는 은근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저자들을 만나야 하는데, 만나는 모든 저자와 원고 계약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실제 출간까지 이어지는 저자의 수보다 훨씬 많은 저자(예비 저자)들을 만나야 한다. 또 출간을 진행하면서 디자이너, 인쇄소, 제본소, 서점 등과도 의견을 교환한다. 그리고 읽고 싶은 책을 근무 시간에 읽을 순 없는 것이기에 정말 원 없이 읽는다는 건 큰 오해이다(웃음). 오히려 하루 종일 원고에 치이다 보면 활자와 더 멀어지게 되는 일도 많지만, 그래도 아직도 읽고 싶은 책 리스트가 넘친다는 것을 다행스러워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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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출판 24시김화영 등저 | 새움
출판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실제 출판사에 근무하는 이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소설이다. 대표, 기획실장, 편집자, 마케터, 전자책 담당자, 그리고 작가가 릴레이로 돌아가면서 쓴 이 소설은 출판 현장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생생하게 담고 있다. 편집자와 작가의 기 싸움, 수많은 투고 원고 속에서 살아남는 법, 작가의 인세와 계약금을 둘러싼 밀당, 출판계의 계륵인 광고 전쟁. 보너스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700만 베스트셀러의 탄생 비화까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궁금할 법한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영글 “내 콤플렉스를 들여다보면 성공 창업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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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취업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어찌어찌 직장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밤낮없이 일에 매달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팍팍한 현실. 그런데 여기, 재벌 2세도 아니면서 하루 4시간만 일하고 여유롭게 사는 사람이 있다. 한 달에 열흘은 제주도에 내려가 쉬다 오고 맘 내키면 세계여행도 자유롭게 다닌다. 바로 ‘로라’ 의 박영글 대표가 그 주인공. 20대 후반에 자본금 500만원으로 1인 회사를 차린 뒤, 10여 년 동안 연매출 12억을 넘어서는 탄탄한 회사로 키워낸 여성이다.

그녀는 IMF의 직격탄을 맞은 세대로, 수십 장의 이력서를 쓰고도 다 퇴짜를 맞은 뒤 구로상가에 있는 작은 무역회사에 입사했다. 커피 타는 일부터 은행 심부름, 해외에 보낼 문서 영어 번역 업무 등을 하다, 학창시절 갈고닦은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회사의 매출 상승을 이끌었고 3년 반 동안 회사는 3~4배 성장했다.

그러다 스물여덟에 독립해 무역회사를 차렸지만 두어 달 만에 망했다. 급한 마음에 전혀 알지도 못하는 수입 주방기구 수입에 손을 댔다 그나마 있던 자본금마저 탕진하고 만다. 서른을 앞두고 빈털터리가 된 그녀가 관심을 돌린 분야는 바로 자신의 오랜 콤플렉스였던 ‘큰 가슴’ 여성을 위한 속옷. 그동안 한 번도 몸에 잘 맞는 속옷을 입어보지 못한 박영글은 자신의 니즈를 활용하여 틈새시장을 찾아냈다.

“금액으로 봤을 때 저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둔 회사도 많습니다. 다만, 사장인 저와 직원들, 그리고 고객이 모두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었다는 자부심 면에서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제목이 자극적이면서도 중의적인 느낌을 준다. 표지 그림만 보면 로맨스 소설이 아닌가 착각할 수도 있다. 제목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해 달라.

연매출 10억을 돌파했던 몇 년 전, 당시 달러 환율이 1000원대였다. 10억이면 딱 백만불이다. 만약 내가 E컵 가슴을 갖지 않았다면 고객들이 원하는 제품을 기획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연매출 10억을 돌파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거나 중도에 사업을 접었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큰 가슴이 정말 고맙더라. 친구에게 연매출 10억 돌파 얘기를 하면서 “그래서 내 가슴은 백만불짜리야.”라고 농담으로 말했고 출판사와 계약을 할 때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웃으면서 ‘백만불짜리 가슴’을 가제로 가자고 했다. 이 제목이 책 내용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아서 제목으로 확정했다.


빅 사이즈 속옷만 전문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빅사이즈 속옷시장을 틈새시장으로 본다면, 그 규모와 시장성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작년 기준 국내 속옷 시장 연간 규모가 1조 4천억 원이었다. 여성 속옷만 본다면 절반인 7천억 원이고, 빅 사이즈 여성의 비율을 2%로 잡는다면 어림잡아 140억 원 규모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로라의 작년 매출이 13억 원이었으니 아직 확보해야 할 고객이 많다고 본다.


큰 가슴이 콤플렉스라고 했는데, 불편했을 것 같다.

90년대에 20대를 보냈는데 ‘섹시하다’는 말도 함부로 쓰지 않던 시절이었다. 20대에는 목욕탕에도 안 다니고 길거리에서 이상한 아저씨들의 노골적인 성희롱도 여러 번 겪었다. 무역회사에 입사해서 거래처 사장을 데리고 점심식사를 하는 도중 화장실에 갔다가 방에 들어가려는데 거래처 사장들이 내 신체를 주제로 키득거리는 얘기를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대화가 끝나길 한참 기다렸다가 모른 척 들어다. 빅 사이즈 속옷 쇼핑몰을 하면서 고객들과 게시판으로 소통했다. 나만 이런 문제를 겪는 게 아니라는 걸 안 뒤로 치유가 되더라. 지금은 후배들이 가슴 수술한 거 아니냐고 물어보면 당당하게 자연산 백만불짜리 가슴이라고 말한다.


처음에 입사한 회사가 성장하면서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 왜 창업을 택했나.

무역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거래처 사장 중에 스카우트를 제의한 사람도 있었다. 일하던 곳보다 규모가 조금 더 큰 정도의 중소 무역회사였기 때문에 이직할 만한 매력을 못 느꼈다. 대기업이나 규모가 큰 종합무역상사는 신입으로 들어가기에는 나이가 많았고, 경력직으로 들어가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영업을 제외한 회사의 모든 업무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창업에 대한 자신감이 컸다. 그래서 스물여덟의 나이에 창업에 도전했다.


창업은 두려운 일이다. 더구나 소규모 자본으로는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다. 창업을 꿈꾸는 사람에게 조언해 준다면.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대박을 바라지 말고 ‘소박’하게 ‘평생’ 사업할 생각으로 도전하라는 것. 대박은 자신의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달인 급의 능력자이거나, 대규모 자본 투자가 가능한 사람이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대박을 꿈꾸면서 무작정 창업하는 건 무모한 도전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직장 다닐 때의 월급만큼, 또는 월급보다 조금 더 많은 수준의 돈을 벌면서 평생 정년퇴직 없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소박한 롱런’을 창업 목표로 잡는다면 현실성 있다. 매출 한 건, 손님 한 분 한 분에게 정성을 다하고 감사히 대해야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로 평생 단골을 만들 수 있다. 단골이 많아지면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
두 번째는 지금 잘 팔리는 아이템을 쫓아가지 말고 지금 없는 제품, 지금 없는 서비스인데 고객이 원하는 아이템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라. 그런 아이템을 찾기 위한 작은 팁이 바로 나처럼 본인의 콤플렉스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또는 가족의 콤플렉스나 친구의 불만 등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관찰하고, 이거다 싶으면 시장조사로 가능성을 타진해 봐라.
소박한 마음으로 작고 다르게 창업을 하면 평생 롱런하는 안정적인 사업을 할 수 있다.


하루 4시간만 일하고 한 달에 한 번은 제주도에 간다고 했는데. 더 많이 일하고 돈을 더 벌 생각은 없는가?

전혀 없다. 지금 아파트도 있고 차도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맛있는 밥을 사줄 수 있는 월급도 나오고 부족한 게 없다. 오히려 놀 시간이 부족해서 하루 4시간 일하는 것도 너무 많이 일한다고 생각한다. 명품백이나 비싼 옷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주로 여행이나 사람들 만나는 일에 돈을 쓸 뿐이라 딱히 돈을 더 벌 이유가 없다.




‘나 자신과 직원들 그리고 고객이 모두 만족하는 것이 회사의 존재 이유’가 경영관이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직원과 고객이 만족해야 사장이 마음 편하게 하루 4시간 일할 수 있다. 직원이 자주 바뀌면 새로운 직원을 구해서 트레이닝을 시켜야 하고, 숙련된 직원이 아닌 초보에게 서비스를 받는 고객은 만족도가 낮다. 친절하지 않은 직원의 응대는 쇼핑몰 게시판에 항의글로 올라와 쇼핑몰의 매출에도 악영향을 준다. 직원이 이직을 하지 않도록 좋은 근무환경을 제공하고, 직원들이 회사에서 만족도를 느끼면서 일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고객들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객들은 계속 우리의 단골이 된다. 이렇게 안정된 시스템 속에서 내가 맡은 업무를 하면서 여유롭게 삶을 즐기는 것이다.


대기업 위주로 운영되는 한국 경제에서 ‘작은 회사’의 경쟁력은 뭐라고 보나.

작은 회사는 고객과 스킨십할 수 있는 회사다. 큰 회사는 거대 자본으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다. 최대 이익과 최고 효율을 추구하느라 콜센터에 고객 상담을 외주로 주고 AS 센터도 자회사나 용역회사와 계약해서 맡긴다. 작은 회사는 고객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회사다. 동네 언니처럼 제품에 관한 이야기로 수다를 떨고 필요한 제품을 구해줄 수 있다. 고객의 의견이 제품 제작에 빠르게 반영된다. 이익과 효율을 이야기하지 않고 고객이 필요한 제품을 서비스하고 그 서비스에 대한 적정한 대가를 받는다. 고객은 왕이고 직원은 시녀가 되는 회사가 아니라, 고객과 직원이 이웃처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회사가 작은 회사다.


그럼에도 한국에는 대기업을 원하는 구직자가 많다.

작은 회사에 다니면 근로조건도 열악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할 폼도 나지 않지만, 큰 회사에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언젠가 작게라도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작은 회사에서 원가정산부터 영업까지 업무 흐름의 전반을 익혀서 내 사업을 하기 위한 체험과 학습의 장으로 잘 이용하길 바란다. 만약 사업할 생각이 없고 여유롭게 사는 삶의 질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현재의 작은 회사를 다니면서 나오는 월급으로 자신의 능력을 업그레이드시켜서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회사의 문을 끊임없이 노크해보길 권한다.


앞으로도 어떤 책을 쓰고 싶나.

하루 일과 중, 아침에 일어나 일기 쓰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매일 글을 쓰다 보니 글을 쓰는 과정 자체를 취미처럼 즐기게 됐고 책까지 출간했다. 블로그에 결혼 전 연애했던 경험과 실연을 통해서 삶이 성숙해지는 얘기를 썼는데 블로그를 방문한 사람들이 공감 덧글을 남기더라. 이때 글로 소통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알게 됐다. 블로그에 남긴 글을 다듬어서 연애와 실연에 관한 에세이를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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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불짜리 가슴박영글 저 | 북로그컴퍼니
‘로라’는 C컵 이상의 빅 사이즈 속옷만 판다. 더 구체적으로는 C컵부터 H컵까지의 브라 전문 쇼핑몰이다. 2000년대 초반은 인터넷 쇼핑몰 창업의 광풍이 불던 시기였다. 자고 나면 수십 개의 쇼핑몰이 생겨났고, 다시 자고 나면 그보다 많은 쇼핑몰이 사라졌다. 그 피 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자본금 500만원의 쇼핑몰 ‘로라’는 어떻게 살아남았고, 또 어떻게 업계 최장수 쇼핑몰로 탄탄하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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