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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과 루시드폴이 함께 나눈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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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과 루시드폴의 서간집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이 출간되었다. 『아주 사적인, 긴 만남』 이후로 5년만이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는 많은 사랑을 받았고,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두 사람의 교류는 책을 낸 뒤로도 이어졌다. 특히 2013년 봄부터 집중적으로 편지를 나누기 시작한다. 두 번째 서간집에서는 예술, 인간 관계와 가족, 자연과 여행 등 삶 전반에 관해 다양한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저자사진_마종기_루시드폴.JPG

ⓒ 백다흠 

 

두 분 근황을 말씀해주세요.


마종기 : 지난봄에 귀국해서 서울에 머물고 있어요. 반가운 지인들도 만나고, 얼마 전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된 시집의 낭독회를 서울 모처에서 열기도 했습니다. 요며칠은 ‘문학의학학회’ 회장을 맡아줄 분을 고르느라 관련된 의사와 문인들 몇몇 분을 만나면서 지내고 있어요. 연휴중에는 여주 신륵사에 가서 템플스테이를 했고, 최근에는 강화도에 가서 죽은 김영태, 오규원 시인의 수목장 자리를 방문했지요. 


루시드폴 : 작년 10월에 6번째 앨범이 나왔고요, 곧 이어 『부다페스트』 번역본이 나왔습니다. 11월에 10회의 공연을 마치고, 올해 2월 서울과 떨어진 한적한 시골마을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곡도 쓰고 농사일도 배우고 있지요.


2007년에 두 분이 처음 편지로 만나셨는데, 그때 첫인상을 기억하시나요? 기억하신다면 이후 7년간 첫인상과 비교하면 어떤 게 변했다고 느끼세요? 


마종기 : 루시드폴의 첫인상은 조용하고 이성적이고 공손한 모범생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7, 8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모습에 변화는 없습니다. 단지 내가 그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루시드폴의 내면을 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자신만의 고집과 믿음, 나이에 비해 성숙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면 역시 언제나 그의 겸손하고 이성적인 성정 안에서, 또 그 테두리 안에서 살아 있습니다.


루시드폴 : 글자 그대로 ‘홍안’의 어르신이셨습니다. 첫인상이란 게 시각적 이미지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면, 제가 기억하는 선생님의 첫인상은 약간 하이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톤입니다. 기개 있으면서도 젊고 힘 있는 음성이셨지요. 솔직히 그후 작년에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까지도 크게 선생님의 인상이 변한 것이 없습니다. 신기할 정도로요.


서간집이 나온 뒤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세대를 초월한 진정한 소통’이라는 호평도 있었는데요. 책이 나온 뒤, 독자들 중에서 편지를 지속적으로 주고받는 관계가 생기기도 했나요?


루시드폴 : 글쎄요…… 저 같은 경우엔 오래된 팬들 중에 저와 편지를 주고받는 분들이 몇  분 계십니다. 그외엔 주로 제가 편지를 받는 쪽인데요. 그분들이 서간집을 읽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분들은 멀리 여행을 가거나 공연장에서 아니면 문득문득 엽서나 손 편지 혹은 이메일을 보내주시지요. (3집에 <라오스에서 온 편지>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 역시 그런 팬 중 한 분이 라오스 여행 중 보내주신 엽서가 소재가 되었습니다.) 저도 그분들께 메일을 쓰거나 가끔은 손수 제 음반이나 책을 보내드릴 때가 있습니다. 


마종기 : 내 경우 책이 출간된 뒤에 그 책에 연관되어 편지를 주고받은 분들이 몇 분 계셨지만, 2년 이상 계속된 분은 안 계시네요. 그분들의 관심사가 별로 길게 이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었고 혹은 내가 길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목에도 있지만 편지에는 ‘사적인’ 내용이 들어갈 텐데요. 사적인 내용을 공개하는 데 대한 거부감, 두려움은 없는지요?


루시드폴 : 서간집뿐만 아니라, 책을 낸다는 것, 특히 소설이나 시와 같은 창작물이 아닌 고백적 내용을 ‘publish’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솔직해질 것인가, 솔직해진다면 ‘어떻게’ 솔직해질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거부감과 두려움이 없을 선에서’ 솔직하게 편지를 쓰지 않았나 합니다. 


마종기 : 편지의 내용이 사적이라 거부감이나 두려움 같은 것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내 대답은 ‘아닙니다’입니다. 여기서 한마디 드리고 싶은 말은 이런 사적인 서간의 필요성입니다. 서간은 어차피 사적입니다. 논문이나 시, 소설, 수필은 각자 그것을 담을 곳이 따로 있습니다. 꼭 서간의 형식을 빌릴 필요가 없지요. 서간은 또 상대방이 있습니다. 우리 사이는 과학 공부를 한 자들이 예술 방면에 과도하게 편향된 좀 이상한 자들이지만 살아온 길이라든가, 흥미로운 대상에 대한 토론이나 일상의 생활에서 오는 단순한 의견 교환이 모두 우리의 관심거리입니다. 우리나라나 동양권 문화에서는 서양에 비해 서간의 중요성이 너무할 정도로 무시되고 있어요. 서간이 예술가들의 인생을 해석하는 데 요긴하게 쓰이는 경우는 우리나라나 동양권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서양을 보세요. 베토벤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아주 사적인’ 서간은 그 해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술가의 사적인 생활이 그의 예술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비단 20세기에 들어와서 발전한 신비평의 이론을 차용하지 않아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예술이 과연 공적인 자리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나는 예술가의 사적인 의견이나 발상이 바로 그의 예술이라고 믿는 편입니다. 적어도 거기에서 추출된 에센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예술가들은 자신의 사적 의견이나 대화를 왜 무작정 숨기려고 하는 것일까요? 혹시라도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거창한 예술가라는 게 아니고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그런 전방위적 예술가가 진정한 예술가라고 믿습니다. 남 앞에서 도사연하는 예술가들을 나는 별로 존경하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나라 예술가들도 앞으로 더 서간 교환을 해서 서양의 십분의 일이라도 채워갔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적이 아닌 것’은 진정한 예술이 되기 어렵다고 나는 아직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분은 여러 분야에서 뛰어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마종기 시인은 의사이면서 시인이고, 루시드폴은 화학자이면서 뮤지션인데요. 문과적 감성과 이과적 이성을 함께 추구한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두 분이 좋아하는, 추구하는 인간상이 있을까요?


마종기 : 나의 경우는 도사연하지 않는 예술가, 예술 전반을 사랑하는 르네상스적인 인간, 편향되지 않은 평화를 추구하는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루시드폴 : 작년에 선생님의 에세이집이 나왔을 때였지요. 저도 그 행사에 조금이나마 축하를 드리고자 참석을 했더랬습니다. 사회를 보셨던 이병률 시인께서 선생님을 알게 된 사연을 선생님 시집 뒷장의 글귀를 인용해 짧게 말씀하셨어요. 그 어떤 사람보다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내용이었지요. 제가 어떤 인간상을 ‘추구’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가장 동경하고 존경하고 또 보살피고픈 사람은, ‘착한’ 사람입니다. 아직까지 저는 한 사람에게서 ‘선’ 이상 빛나는 가치를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 제가 그리 선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편지를 보면 종교, 음악, 문학 등의 소재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계신데요. 편지를 쓰면서 두 분이 일상에서 벗어나는 느낌도 있을 것 같은데, 두 분은 편지를 쓰시면서 정화라든지, 치유 등의 경험도 하시는지요. 편지 쓸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마종기 : 편지 쓸 때의 느낌은 아주 평화롭고 자유롭습니다. 내 경우 시를 쓴다고 책상머리에 앉으면 처음부터 긴장을 하고 신경이 곤두서서 금방 피곤해집니다. 수필 같은 산문을 쓸 때에도 기승전결을 미리 머리에 입력을 해야 해서 고치고 뒤집기를 계속하게 되지요. 그러나 편지를 슬 때에는 그런 불편함이 없어 편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더 자유롭고, 색다른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루시드폴 : 저는 편지란 어쩌면 대상을 두고 쓰는 독백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토로하는 거지요.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을 염두에 두지 않은 ‘넋두리’에 그칠 위험이 있지만, 받은 편지에 눈과 마음을 좀더 열고 편지를 쓰다보면, 무언가가 ‘해소’가 되기도 하지요. 편지를 쓰면서 정리되지 않았던 마음이 정리가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 혹은 나의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편지 한 통을 받았을 때 한참을 힘이 나서 살아가게 됩니다. 최근에 친구에게 받은 짧은 편지 한 통이 그랬지요. 내용은 이게 전부였습니다.


"윤석아.
남편이든 음악가이든 작가이든
농부이든 아니면 그 무엇이든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행복’이란 단어 아래엔 밑줄이 좍 그어져 있었지요.


이런 분과도 편지를 주고받고 싶다는 사람이 있을까요? 역사상 인물이든 생존한 사람이든 관계없이 말씀해 주세요.


루시드폴 : 위에 적은 그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고 싶고요(지금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또 간간히이긴 하지만, 그러고 있습니다.


마종기 : 편지를 주고받고 싶은 사람은 너무 많지요. 한국인으로는 정조대왕, 장기려 의학박사, 외국인으로는 작곡가 클라라 슈만, 과학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 소설가 생텍쥐페리나 도스토예프스키.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그렇네요. 아직도 열 분은 더 더하고 싶습니다. 헌데 이런 분들이 모두 돌아가신 분들이네요.


이번에 루시드폴의 사진도 책에 많이 실렸는데요. 루시드폴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 어떻게 느끼셨나요.  글에서 받은 인상과 비슷하나요, 아니면 또 다른 느낌이었나요.


마종기 : 루시드폴의 사진들을 나는 좋아합니다. 그의 사진을 책에 넣었으면 하는 의견도 내가 낸 것이지요. 나는 그의 사진이 최고의 수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직도 공부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는 단계일 것입니다. 풍경이나 구도 쪽에 신경을 쓰는 편인 것이 프로급에 올랐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해요. 내가 좋아하는 몇 장의 사진이 책에는 없지만 그의 성격과도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곧 인물 작품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의 지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을 독자가 어떻게 읽었으면 하나요?


마종기 :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독자들의 삶에 온기로, 소통에 대한 희망으로 읽힌다면 좋겠습니다. 우리 두 사람의 편지 교환을 두고 많은 이들이 ‘소통’이라고 얘기를 하더군요. 독자들도 문득 혼자라는 생각으로 힘들어질 때, 우리 두 사람을 떠올려주기를 바랍니다. 


루시드폴 : 가벼운 마음으로, 아무런 힘들이지 않고, 가장 편한 마음과 자세로, 한 장 한 장 읽어주셨으면.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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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마종기,루시드폴 공저 | 문학동네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간간히 소식을 이어가던 이 두 사람은 2013년 봄 다시 집중적으로 편지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 2014년 봄까지 1년간 오간 마흔 통의 편지를 모아 두번째 서간집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처음 편지로 만나 서로를 더듬더듬 알아가던 첫번째 서간집에서 한 발 나아가, 두번째 서간집에는 음악과 문학 뿐 아니라 조국과 예술, 관계와 가족, 자연과 여행 등 삶 전체를 아우르는 따뜻하고도 깊은 대화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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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여자의 약점, 너무 곰곰이 생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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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한 여성. 타인과의 관계도 좋고 업무 실적도 좋은 편이다. 다만, 그녀의 문제는 홀로 있을 때 자책을 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타인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문제를 스스로 꽁꽁 싸매며 밤마다 눈시울을 적시는 그녀. 현실에서는 당당하고 친절하며 ‘괜찮은 여자’로 평가 받는 그녀는 왜 밤이 되면 ‘또 다른 여자’가 되는 것일까. 여성에게 우울증이 더 많은 까닭은 우울해질 때마다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발표된 사례들에 따르면, 많은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본인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우울하다고 인지하고 있다.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의 저자 우르슬라 누버는 자기 자신의 마음은 제쳐두고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얻으려 애쓰는 평범한 여성들을 위해 책을 집필했다. 낮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밤만 되면 남몰래 아파하고, 혼자가 되면 유독 가라앉는 여성들의 특징과 원인을 살폈다. 심리치료사로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실제 경험담을 재구성해, 우울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르슬라-누버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저자 우르술라 누버

 

“이 책은 배우자나 옆에 있는 남성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성을 위해 썼습니다. 이런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좀더 앞에 내세우고 자신을 더욱 믿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싶어요.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남성 역시 책의 독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더 큰 이해심으로 상대방을 대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다 보면 여성에게서만 관찰되는 특이한 태도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까요?”

 

우르슬라 누버는 심리상담사 겸 부부치료 전문가로 뮌헨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후, 바이에른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했고, 1983년부터 <현대심리학> 에디터를 거쳐 1996년부터는 편집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베스트셀러 『우울증』 『잘못 알고 있는 병 또는 강한 여성을 위한 10계명』을 비롯해 다수의 심리학 전문서가 있다.

 

똑똑하면서 독립적인 여자, 그런데 왜?


책을 보면 여자들이 자기보다 남을 더 의식하는 경향이 짙다고 분석하고 있는데요. 가장 큰 이유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여성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따라서 자기와 연관된 다른 사람과 조화를 유지하려고 매우 노력합니다. 이 조화로운 관계를 깨지 않기 위해 실망하거나 화가 나더라도 본인의 감정을 그대로 내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자신의 느낌 그대로를 밖으로 드러내면 배우자나 삶에서 중요한 사람이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환경과 교육 및 유전자가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쓰여 있습니다. 독일 남성과 비교해 독일 여성의 뚜렷한 성격의 차이가 있나요?


독일 사회에서 남자아이는 독립적, 독자적인 존재가 되도록 길러집니다. 이런 성향의 행동을 보였을 때는 칭찬 받고 고무 받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여자아이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사회적으로 조화롭게 자라도록 교육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자아이는 사회가 자신에게서 ‘남성적 성향’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빨리 깨닫습니다. 유치원에서도 이미 이런 태도의 차이를 관찰할 수 있는데 이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연장됩니다. 성인이 되었을 때 가령 남성은 지배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를 취하는 지도자가 되는 반면에 여성은 협력적인 자세로 다른 사람을 대합니다.

 

심리상담을 하다 보면, 환자들의 주요한 고민들을 접할 텐데요. 최근 많이 발견되는 현대 젊은 여성들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으로 보십니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최근 들어 직장에서 능력을 펼치고 성공을 거두는 여성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똑똑하며 독립적입니다. 하지만 애인이나 배우자와의 관계가 삐거덕 거리면 전혀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연약한 모습을 보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지요. 상대방이 감정적으로 너무 냉랭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둘의 관계에 대해조차 대화를 나누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합니다. 둘 사이에 존재하던 친밀감과 상대방의 배려를 그리워하면서 말이지요.

 

의존적인 여성들이 많습니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나의 감정에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존적인 여성이 많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여성이 독립적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가정과 직장생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조화롭게 이루고 삶을 계획적으로 잘 꾸려갑니다. 단, 한 가지 이들에게 결여된 것이 있다면 바로 자신감입니다. 많은 여성이 자기회의에 빠지고 자신이 충분히 잘하지 못한다고 두려워합니다. 이런 여성은 완벽주의자가 되기 쉽고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법도 알지 못합니다. 이런 까닭에 여성은 자신을 더욱 친절히 대하고 자신을 믿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더욱 독립적인 주체가 되기 위해 여성은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여성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은 너무 곰곰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옳은지 아닌지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합니다. 자기와 친한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데도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따라서 이런 고민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는 이런 여성에게 좀더 자신감을 키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처럼 많은 동정과 이해심을 가지고 자신을 대하는 방법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나는내가제일어렵다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일부

 

우울증은 심각한 경고신호


성격은 자라온 환경과 주변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라,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만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의 성격을 바꾸는 일이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성격은 어떤 연령대에서도 변화 가능하다고 심리학 연구에서 밝혀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 갑자기 파티의 왕이 되거나 양심적이고 단정하게 살던 사람이 정신 없이 혼란스러운 것을 참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배워서 익힌 배운 태도와 사고방식은 변할 수 있습니다. 행동 연구를 보면 장시간에 걸친 치료가 행동방식뿐 아니라 뇌의 구조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책을 보면, 우울증이 결국엔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울증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는데요. 한 번쯤 내 심리를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정신질환은 삶에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잠시 멈춰서 내면을 들여다보아야만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일 때문에 아픈 것일까? 애인과 헤어져야 할까? 부당한 기대에 대응해야 할까? 우울증뿐 아니라 다른 정신적 질병은 우리가 가야 하는 올바른 길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병에 귀를 기울여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상담을 받을 때, 환자의 태도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알고 인정해야 하는데요.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무엇일까요?


어느 심리치료사가 자신에게 꼭 맞는지를 선별할 때 중요한 점은 이 사람을 정말 믿고 따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환자는 치료사가 자신을 진지하게 다룬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에야 비로소 마음을 진정으로 열 수 있습니다. 환자가 마음을 여는 것은 성공적인 치료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치료를 받을 때 마음을 꼭 닫은 채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이야기든지 부끄러워하지 말고 털어놓아야 합니다.

 

심리학 서적이 많이 출간되고 있습니다. 여성 독자들이 심리분석에 관심이 많은데, 작은 행동도 심리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분석하려는 경향도 부정적인 측면이 있을 것 같은데요. 심리학 서적이나 심리분석이 갖는 장점과 단점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심리학 책은 생각할 기회를 주고 정보를 전달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치료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책을 바탕으로 자신을 스스로 치료하려고 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심리분석은 자기에게 있는 문제의 근원을 찾으려 하고 문제의 발단이 유년 시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갈 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심리분석적 치료가 갖는 단점이라면 긴 시간을 요한다는 점입니다. 인내와 시간을 갖고 치료에 임해야 합니다.

 

저자님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 편이신가요?


자연에 둘러싸여 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자주 숲 속을 거닐며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습니다. 가끔은 멧돼지나 사슴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산책을 하다 보면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스르르 사그라듭니다. 

 

한국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우울증은 심각한 경고신호입니다. 결코 부끄러워하거나 억지로 밀쳐내려고 하지 마세요. 우울증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전달하려고 생깁니다. 따라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고 우울증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 이 기사는 저자와의 이메일 인터뷰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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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우르술라 누버 저/손희주 역 | 문학동네
이 책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면서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평범한 여성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왜 낮에는 일상생활을 잘 꾸려가는 것처럼 보이던 여성들이 밤만 되면 남몰래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며 베갯잇을 적시는지, 그 원인을 찾아보고 ‘약물’을 투여하지 않은 채로 그녀들의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마음의 작용을 이야기하고, 해독제를 찾아보려 한다.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싶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질 않아 힘들어하는 여성들에게,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마음의 퍼즐을 풀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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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핀란드에 관한 환상 그리고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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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서유럽보다는 덜 주목받던 북유럽이 화두다. 북유럽 인테리어, 북유럽식 복지, 북유럽식 교육 등의 우수함이 드러나면서 북유럽은 우리 사회가 본받아야 할 곳이 되었다. 북유럽에 비하면 한국사회는 초라하다. 경제성장은 갈수록 더뎌지고, 복지수준도 낮으며, 청년실업률과 자살률은 높은 사회가 바로 한국사회가 아닌가.

 

한국사회의 구조적 취약함이 많아질수록 북유럽을 향한 동경은 커간다. 그 중심에 핀란드가 있다. 인구는 많지 않지만 강한 나라, 핀란드.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무결점 없는 유토피아는 없는 법. 핀란드도 마냥 사람이 살기 좋은 곳만은 아니다. 비싼 물가, 높은 세금 부담이 대표적이다.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는 핀란드에서 수년간 살았던 나유리 미셸 렘블린 부부가 쓴 책이다. 나유리 저자는 핀란드에서 공예를 통한 행복한 삶과 지속 가능한 사회를 연구했고, 미셸 램블린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 현재 헬싱키 대학에서 사회ㆍ도덕철학과에서 박사 과정에 있다. 남편은 철학으로, 아내는 예술로 각자 학문을 연구하지만 ‘행복한 삶’이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하며 공동 연구를 지속하는 중이다. 그들의 털어놓는 핀란드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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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리(왼쪽), 미셸 램브린(오른쪽)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를 냈습니다. 근황을 말씀해 주세요.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원고를 마무리 하던 중, 8년 차에 접어드는 핀란드의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고, 한국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핀란드에서의 ‘마지막 기록’으로 이 책을 쓰고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하튼 이 책이 저희 부부에게 행복했던 시간을 한국 독자에게 공유할 기회가 되어 기쁩니다. 책이 출간되고, 한 학기 강의가 끝났습니다. 귀국 후 지난 4개월 동안 또 다른 환경 속에서 주어진 삶과 일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며, 새로움이 주는 약간의 긴장과 흥분을 즐기고 있어요.

 

이 책이 핀란드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서문에서 밝혔는데요. 대한민국이 북유럽 사회에 품는 환상, 어떤 게 있을까요?


북유럽 디자인 혹은 북유럽 인테리어라며 나온 서적들과 블로그 기사들을 보니, 한국에서는 ‘원목 가구와 기하하적 패턴의 천 제품은 북유럽 스타일’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더군요. ‘한국의 대표 음식은 불고기이다’식의 논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불고기보다 더 한국적인 음식, 한국인들이 더 자주 먹는 음식이 있고, ‘불고기’만으로 한국의 대표 음식을 소개하기에는 훨씬 다양한 한식 문화가 있잖아요. 비슷한 맥락으로, 핀란드에서 경험한 저희의 일상과 생각을 글로 전하며 핀란드의 다양한 ‘진짜’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것이 현재 무수하게 넘쳐나는 핀란드에 대한 편협한 일면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확대해석하며 독자나 대중에게 마냥 부러움만 느끼게 하는 글로 남는 것과 저희 부부의 책이 차별되는 면이라고 생각해요.

 

‘허망’이 아닌 ‘희망’이 저희 부부가 원했던 메시지입니다. 행복을 위한 작은 실천과 함께하는 핀란드 사람들의 모습에서 한국의 독자들도 새로운 일상의 가치를 발견하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요. 어떤 독자분이 저희 책을 다 읽고 후기를 남기셨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결국에는 꼭 핀란드가 아니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나라에 살든 핀란드 사람들처럼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도 천천히, 조금씩, 다 같이 행복을 찾아보면 어떨까?”라고 하셨어요. 저희 부부가 꽤 흐뭇한 감동을 느꼈던 후기였습니다.  
 
저희 부부가 의미한 ‘환상’이라 함은 명확한 근거 없이 덮어 높고 좋게만 보는 것을 말합니다. 핀란드에 대한 무수한 거품 중에, 교육과 복지에 대한 환상은 마치 국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좋은 복지와 교육 제도가 생겼을 거라는 것이지요. 무상 급식, 무상 교육, 각종 복지 혜택을 듣고만 있으면, 누구나 ‘뭐 이런 파라다이스가 있나’ 싶어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달콤한 혜택은 공짜가 아닌, 많이 번 사람들은 많이 내고, 적게 번 사람들은 적게 내는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무임승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이지요.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제도일 뿐이라는 겁니다.

 

환상이 있다면, 그 환상에 반하는 현실도 있을 텐데요. 핀란드의 현실은 어땠나요.


핀란드의 훌륭한 제도들은 결국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이는 핀란드 깊숙이 자리 잡은 인본주의 사고 때문이고, 이로 인해 핀란드는 평등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한 예로 ‘임신을 축하합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임산부들에게 주어지는 출산 패키지인 ‘엄마 상자’의 경우 임산부에게 출산 전 육아 필수품 모두가 들어 있어요. 핀란드 복지의 섬세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사례이지요. 빈곤층만 받는 물품이 아니라, 핀란드의 엄마라면 누구나 받는 선물입니다. 상식적으로 주위의 도움이 없다면 만삭의 몸을 이끌고 혹은 출산 직후, 이 모든 물품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렵지요. 엄마의 출산 휴가를 비롯해 엄마와 아빠가 적절히 나누어 사용할 수 있는 부모 휴가(육아 휴가) 등도 상식 밖의 파격적인 제도가 아니라, 갓난아이를 둔 일하는 부모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지요.
 
핀란드 교육의 가치 핵심은 무상교육과 무상급식 등이 아니라 협동과 공동체 의식에 있습니다. 경쟁을 통한 해법이 아닌, 성공을 위하여 ‘모두가 필요하다’는 자세는 ‘한 명도 포기하지 말자’라는 핀란드 사회의 공감대를 만들었지요. 핀란드 사람들이 고집스럽게 강조하는 평등과 협력의 가치는 단지 교육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생태를 만들며 척박한 환경 속에서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산업까지 이어졌습니다. 인재를 키우는 것이 산업을 활성화하는 중요 열쇠임을 깊이 인지하고 ‘사람이 희망’임을 강조하는 곳이 핀란드입니다.

 

한편, 긴 겨울 동안의 어둠과 매서운 추위, 서로 다소 서먹한 핀란드인들, 높은 세금은 ‘살기 좋은 나라, 핀란드’에 대한 환상을 깨는 일면입니다. 또한 어느 사회나 그렇듯, 완벽해 보이는 핀란드 사회에도 교실 안 왕따 문제나 거리 알코올 중독자들 같은 어두운 면이 존재합니다. 낮은 범죄율과 보편적 복지, 국가의 안정적 경제 상황 속에서도 핀란드는 20세기 내내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을 보듬는 자세와 포용의 방식은 성숙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아름답고 놀랍습니다. 꽤 오랫동안 핀란드 사회가 고민하고 풀어온 과제였고, 현재도 건강한 다수가 아픈 소수를 도와가며, 인간 대 인간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오고 있습니다.  
   
핀란드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알토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어떤 사연으로 가게 되었나요?


대학원 때 은사님이 70년대 스웨덴에서 공부하셨던 분이셨어요. 선생님께서는 수업 시간 종종 유학 시절 이야기를 해주셨고,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의 공예, 디자인 책자를 보여주셨었어요. 10년 전, 한국에서 지금처럼 북유럽 열풍이 일지는 않을 때였는데,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작품집들과, 들려주신 북유럽의 이야기들은 저에게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당시만 해도 제 전공과 연계된 박사 과정이 국내에서는 흔하지 않을 시기였고, 조금 더 넓은 시각과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려고 유학을 결정했어요.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비교해서 핀란드는 우수한 외국 유학생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보였고, 이를 위한 영문 서비스도 잘 되어 있었어요. 특히 헬싱키 예술 디자인 대학교(현 알토 대학교) 박사 과정에서 전체 정규 학생 중 자국 학생과 외국 학생의 비율을 비슷하게 맞추려는 점도 다른 북유럽 학교들보다 훨씬 오픈 마인드를 갖은 학교라고 느껴졌어요. 제가 학교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했던 요소는 첫째로 세계적으로 우수한 디자인 교육 기관인지, 둘째로 영어로 수업이 가능한지, 그리고 셋째로 장학금과 학술 지원 등이 풍부한지에 관한 사항이었고, 헬싱키 예술 디자인 대학교는 이 모든 것을 충족하고, 무상교육과 정부의 정책적 디자인 진흥이라는 ‘보너스’까지 갖고 있었어요. 


유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타 국가의 학교에서도 합격 허가서를 받았지만, 감당하기 힘든 학비가 문제였어요. 또한 유학이라는 것이 학비만 있다고 다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에, 생활비를 어떻게 충족할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을 때, 핀란드 정부 초청 장학생 시험에 응시하고 합격하여, 매달 1,000유로(당시 한화로 170만원 가량)로 생활비를 받으며 유학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 핀란드 사람들은 ‘자연’에 관한 개념이 다르다고 썼습니다. 어떻게 다를까요?


‘숲의 나라’라는 표현에 걸맞게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는 걸어서 10여 분 거리 안에 어디에나 공원과 숲이 있어요. 핀란드에서는 ‘잔디에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경고문도 볼 수 없고, 도시에서의 채집도 불법이 아닌 ‘만인의 권리’에 속해요. 저희 부부는 라즈베리나 블루베리를 집 근처 숲에서 채집해서, 여름마다 파이를 만들고, 얼려 놓고 겨울까지 먹고는 했었어요. 헬싱키 시에는 배, 도토리, 사과, 앵두나무 등 다양한 유실수가 있는데, 이 유실수의 위치는 스마트폰 앱이나 블로그 등을 통해 쉽게 공유되어요. 빠른 템포로 도시의 삶을 살다 보면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는데, 의미 없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길목에서 자연이 주는 뜻밖의 선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헬싱키랍니다.

 

학교 가는 길목에서 토끼와 다람쥐를 만난다는 것이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에게는 무척이나 놀랍고 신기했고, 책에서만 보던 야생 고슴도치도 헬싱키에서 처음 보았어요. 빽빽한 빌딩 숲이 아닌 나무숲과 자연과 어우러진 쉼터들이 공존하는 도시인 헬싱키는 종종 ‘내가 도시에 살고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었어요. 그러나 서울을 방문한 적이 없는 핀란드 친구들은 제가 갖고 있는 이러한 상대적 느낌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도시의 생활이 갑갑해서 주말 동안 머리를 비우기 위해 코티지(cottage 숲속의 산장)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워크숍은 자연 속에서 해야 한다며 외딴 섬으로 가는 이들을 볼 때마다, ‘아! 그들이 말하는 자연과 내가 생각하는 자연이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핀란드인들이 말하는 자연이란, 전기와 상하수도조차 없는, 말 그대로 원초적인 자연의 품속을 뜻하더군요. 숲과 호수에 둘러싸인 태초의 자연 속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편리함을 배제한 공간을 의미하는 거죠. 핀란드 사람들은 훼손되지 않은 본래 그대로의 핀란드 자연환경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사랑하는 자연을 휴식의 공간이자 일과 노동에 대한 보상의 공간으로 여겨요. 핀란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연에서 나를 치유하고 재충전하는 것’이 중요한 휴식 방법이라고 믿고 있어요. 
 
‘자연’과 함께 ‘반려동물’에 관해서도 핀란드와 한국이 다른데요. 이 점도 설명을 부탁합니다.


우리 부부가 ‘돼지 박사’라고 부르는 한 친구는 헬싱키 대학에서 돼지의 복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돼지 복지?’ 처음에 들었을 때는 ‘참 복지국가다운 발상이다’ 싶었어요. 주로 연구하는 내용을 들으니, 돼지가 어떤 환경에서 가장 행복한지, 어떤 재료의 잠자리에서 짝짓기를 더 잘하는지 등 처음에는 들으면 들을수록 신기하고 흥미로웠어요. 상품 이전에 ‘생명’으로 보는 사고로, 돼지를 연구하는 학문을 지원하는 나라이니 다른 동물 복지는 어떨지 상상이 되지요?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일례로, 헬싱키의 아파트 대문에 개가 그려진 빨간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개 조심’이 아니라 ‘이 집에 반려동물이 있어요’라는 뜻으로 혹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말 못하는 동물이 있으니 구출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눈이 오나, 날씨가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나, 반려견과 산책하는 핀란드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주변에서 분양을 받는 경우가 아닌 이상, 핀란드에서 반려견을 맞이하고 싶으면, 펫숍이 아닌 유기견 입양 기관에서 입양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핀란드에는 이렇게 버려진 유기견이 없지요. 그래서 이웃 나라인 에스토니아나 라트비아에서 버려진 유기견을 핀란드의 기관을 통해 입양을 해요. 이 기관이 생긴 지 10년이 넘었는데 현재는 루마니아로 활동 지역을 옮겨 유기 동물 구조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각각 분야는 다르지만 ‘행복한 삶’을 고민하는 부부인데요. 지금까지 발견하기에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부부가 학문적 공통의 분모를 공유하는 부분이 ‘행복’에 관한 것인데요, 행복은 늘 ‘진행 중’인 것으로 생각해요. 우리가 항상 행복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공식은 없지요. 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은 분명 존재하고, 그 과정들은 항상 실험과 조정이 요구된다고 생각해요. 행복한 삶에서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조화’인데, 여기서 조화란 ‘몸과 마음’, ‘일과 휴식’, ‘가정과 사회’,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를 의미합니다.

 

현대인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그 물질적 풍요와 행복감은 늘 비례하지 않지요. 그렇다면 인간이 도대체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에 대한 대답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가 말한 ‘몰입(flow)’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요. 인간의 삶에서 행복의 근원이 무엇인지 연구한 그는 그것이 특정 활동에 집중하게 되면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의식까지도 잊게 되는 심리적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쉽게 말해, 무언가에 ‘빠져 있는’ 상태로, 위에서 언급한 조화로운 삶과 함께 행복한 삶에 필요한 하나의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미셸 램블린 저자는 한국에 품었던 환상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 환상과 다른 현실은 어떤지도 알려 주세요.


미셸은 한국에 대한 특별한 환상을 갖고 있지 않지만, 뉴욕과 토론토 한인타운에서 한국 음식점을 갔다가 한국 음식에 매료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한국에 오기 전의 환상과 그 환상이 현실로 만난 부분이 한국의 다양하고 독특한 음식이라네요.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다양한 음식 재료에 늘 감탄해요.

 

대한민국과 핀란드 못지않게 서울과 대구 사이에도 다른 점이 많을 듯합니다.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지금은 대구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한국에 들어와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핀란드 좋지요? 핀란드에서 계속 살지 왜 한국에 오셨어요?”라는 질문입니다. 유학이라는 것이 타향/타국에 머물며 새로운 문물을 공부하고 고국으로 귀국해서 그러한 배움을 실행한다는 점에서 저는 핀란드와 예정된 이별을 하였어요. 많은 현대인이 더 많은 직업의 기회를 위해 혹은 자식의 교육을 위해 대도시에 살고자 하는 경향이 있지요. 물론 도시 생활의 편리함도 매력적이고요. 도시 생활에 익숙하고, 직업을 위해 도시 생활을 해야 하지만, 저의 결론은 ‘꼭 서울일 필요는 없다’였어요. 서울은 너무 거대해졌고,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지만, 포화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다른 지역과 불균형을 이루며 성장했어요. 많은 유럽 국가처럼 꼭 수도가 아니어도 도시가 고르게 성장하고 인구가 분포하듯이, 한국도 수도 외의 도시들이 그만의 매력을 갖고 균형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필요하고, 앞으로 그렇게 되어 갈 것으로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저는 대구는 도시 브랜딩이 잘된 덕분인지, 아름답고 예술적인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동안 제가 배운 지식을 공유할 할 수 있는 우수한 미술 교육 기관이 있다는 점도 중요했어요. 대구는 섬유 산업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하였기에 한국에 귀국할 때 대구를 모르는 핀란드 친구들에게 “한국의 ‘밀라노’ 같은 도시”라고 설명했는데, 제가 좀 앞서 갔나요?

 

저희 부부에게 ‘어디에 사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더욱 중요하고, ‘누구와 사는가’가 중요하기에 사실 사는 장소는 저희 부부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에 중요한 요소가 아니에요. 핀란드에서 저희 부부가 행복했던 것도 꼭 핀란드여서 행복했던 것이 아니었듯 말이죠. 핀란드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을 포함하여, 책에 기술한 내용 중 행복한 소소한 일상들은 ‘사람’에 의한 것이었고,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문제였어요. 또한 행복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저희 부부의 생각은 변함없어요. 물론 불합리하거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의 환경을 마주하면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지요. 그런 점에서 저를 위해 핀란드로 와서 함께 공부하고, 또 저의 꿈과 도전을 위해 한국으로 귀국할 때 함께 와 준 남편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끼네요.

 

대구는 전혀 연고가 없는 곳은 아니에요. 이모님 두 분이 사시고, 저희 친정 부모님이 처음 만나 사랑을 하신 도시여서 저에게 개인적으로 애틋하고 관심이 있었던 도시였어요. 학교 앞 도보 10여 분 거리에 20년 된 오래된 아파트를 수리하여, 저희 부부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였어요. 집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가족의 공간이고 일의 효율성을 도와줄 거리에 위치한 장소여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걸어서 출퇴근을 하다 보니, 차 막힘으로 길에서 시간을 허비할 일도 없고, 또 매일 일정량을 걷게 되니 좋아요. 핀란드에서도 그랬지만, 대구에서도 저희 부부는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해요. 저희 부부는 대구 서민들의 따뜻한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작은 골목길들, 모퉁이마다 느껴지는 근대의 흔적들을 따라 길을 걸으며 토요일을 보냅니다. 특히 청라 언덕을 시작으로 이상화 시인 고택까지의 근대 골목길은 예술적 감수성과 철학적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저희 부부가 사랑하는 산책길이랍니다.

 

핀란드가 더 궁금해진 독자가 있다면, 핀란드에 관한 책 추천 부탁합니다.


북유럽의 역사와 경제 등을 폭넓게 다룬 『50개의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이야기』(미래의 창/김민주 지음)와  핀란드 사회 혁신 100가지 내용을 담은 『핀란드 경쟁력 100』(비아북/ 일까 따이팔레), 영국인의 시선으로 본 핀란드의 역사와 국민성에 관한 이야기, 『미래는 핀란드에 있다』(살림/ 리차드 D. 루이스)는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에서 다루지 않은 핀란드 국가의 기원과 역사, 지리 등에 관한 부분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추천합니다. 『핀란드 경쟁력 100』『미래는 핀란드에 있다』는 핀란드에 있는 동안 영어로 된 서적을 읽었어요. 헬싱키 대학의 교수인 핀란드인 따이팔레가 말하는 핀란드 사회 혁신의 내용은 역사적 배경과 과도기적 모습 또한 잘 나와 있고, 키워드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돼요. ‘핀란드, 문화적 외로운 늑대’라는 원제를 갖은 『미래는 핀란드에 있다』의 경우,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 처음 핀란드를 방문한 이후 핀란드와 인연을 맺게 되어 50년 넘게 핀란드 전문가로 활동한 영국인 루이스의 글로, 핀란드의 기원과 지리, 언어 등에 대한 내용이 다양하게 담겨 있어요.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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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슬로우 라이프 나유리,미셸 램블린 공저 | 미래의창
저자들은 높은 세금과 환경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핀란드인들이 행복하다는 사실에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저자들은 서서히 핀란드식 삶에 동화되어가며 소소함과 여유,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7년을 보낸 저자들이 핀란드가 담고 있는 행복에 관한 답을 찾아 나선 이야기이자,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동시대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진솔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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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파랑새』는 진짜와 가짜 꿈을 구분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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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읽은 기억으로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는 동화가 있다. 그런데 막상 그 동화가 어떤 이야기였는지를 떠올리면 막연해진다. 『파랑새』 역시 마찬가지다. 남매가 파랑새를 찾으러 떠나는 이야기라는 건 기억이 나지만, 파랑새를 찾았는지 안 찾았는지는 확신이 안 선다. 중간 과정에 관한 이야기도 모르겠다. 그런 독자를 위해 『파랑새 놓아주기』는 원전과 함께 해석을 제시한다. 문학소녀이며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인 김지완 저자가 글을 썼다. 김지완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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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의 원형 시리즈’ 2번째 권으로 『파랑새 놓아주기』가 나왔는데요. 많은 동화 중에서 『파랑새』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는?


파랑새는 다른 동화들과는 좀 달랐어요. 아직도 어릴 때 파랑새 이야기를 듣고 나서 느꼈던 야릇하고 찜찜한 느낌을 잊을 수 없어요. 다른 동화들은 주인공들이 역경을 겪고 비참한 일을 당해도 결국엔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나면서 아이들을 안심시켜주잖아요. 그래서 듣고 나면 개운하고 잠도 잘 오는데, 파랑새는 결국 파랑새를 찾았는데도 뭔가 허무하고 개운치 않은 것이 어린 나이에도 이상한 동화를 다 썼네, 라는 생각을 하게 했어요. 그런데 그게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생각났어요. ‘참 이상한 동화였어, 어린이용은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사람들이 완전히 밝혀내지 못한 뭔가가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수업을 하면서(대안학교라서 다양한 수업을 시도해요) 동화를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하는데 그럴 때도 파랑새는 전형적인 동화로 분류해서 다룰 수 없었어요. 알고 보니 원작은 희곡이었고 아동 연극을 위해 쓰여진 꽤 긴 작품이었어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파랑새 이야기는 그걸 간추려 요약한 아주 짧은 이야기인데, 결말도 원작과는 다르더라고요. 분명히 뭔가 더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원작을 꼼꼼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파랑새』 이야기는 꿈과 그 꿈을 찾는 과정에 관한 동화라고 알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파랑새는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예요.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파랑새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것이죠. 꿈과 이상도 파랑새의 하나로 등장합니다. 결국 파랑새 이야기는 진짜 꿈과 가짜 꿈의 차이를 알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요. 맨 마지막 장에 이르면 진짜 꿈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를 알 수 있어요. 파랑새 이야기는 꿈을 찾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지만 꿈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에요. 행복, 사랑, 꿈과 이상, 그리고 죽음에 관한 것까지 삶의 의미를 큰 그림을 그려 보여주고 있어요.


이 책에서는 『파랑새』 이야기와 함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가 병렬적으로 이야기되는데요. 두 이야기는 어떤 점에서 함께 엮어질 수 있을까요?
 

틸틸과 미틸, 제제 모두 어린아이예요. 그리고 이 아이들은 모두 결핍을 느끼고 있어요. 제제는 이야기의 끝까지 그 불행 속에 남겨져 있어요. 틸틸과 미틸은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모험을 떠났고 행복의 중요한 비밀을 발견하게 돼요.


저는 제제에게 이 비밀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제제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과 상처를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어린아이예요. 소설이 끝날 때까지 슬프고 아픈 어린아이로 남아있었던 그 아이가 늘 마음에 걸렸어요. 아마 제 마음속에도 꼭 그런 아이가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사람들은 마음속에 일생 제제 같은 어린아이를 품고 살아요. 어른이라서 어른답게 보이려고 노력 중일 뿐 누구나 마음속에는 여전히 연약하고 세상을 겁내고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며 구원자를 기다리는 어린아이가 있어요.


고전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게 현대적인 의미일 텐데요.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에서 『파랑새』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해서 인간이 제일 큰 자원이 되어야 하죠. 인간 자체가 가장 큰 생존의 수단이에요. 우리는 잘 살기 위해서 자신의 이용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압박을 늘 받고 있어요.

 

보다 이용가치가 높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보다 지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현재의 욕구를 억누르고 미래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방식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경향과는 전혀 다른 생각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일을 통해 성공하라는 메시지들이에요. 현실이 어떻든 상관하지 말고 큰 꿈을 꾸라는 메시지와 성공사례들이 쏟아져 나오며 새로운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죠.
 
하지만 제 주위를 살펴보면 정작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들, 그저 쉬고 싶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큰 꿈을 향해 무모하게 도전했다가 직장을 잃고 생존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도 있죠. 그래서 요새는 꿈은 소박하게 갖고 현실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들이 다시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파랑새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도, 현재의 욕망에 충실해서 미래의 꿈을 이루는 것도, 꿈의 크기를 소박하게 줄여서 현재에 만족하라는 것도 아니에요. 파랑새는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질문하고 가짜 행복을 놓아주고 진짜 행복을 찾으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저는 우리나라가 놓여있는 척박한 현실이 진짜 행복을 발견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황이 좋고 환경이 좋아서 행복한 것은 상황이 변하고 환경이 변하면 사라지는 가짜 행복일 수 있어요. 상황과 환경이 모두 좋지 않을 때도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변하지 않는 진짜 행복이겠죠. 우리는 척박한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에 가짜 행복으로는 그것을 덮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진짜를 찾으려고 하는 결심을 빨리 할 수 있어요. 『파랑새』는 진짜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거예요.


『파랑새』 이야기도 그렇고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도 결국 성장소설, 성장동화로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요. ‘성장’이란 무엇일까요?


성장이란 좀더 부드러워지는 것, 내가 나라고 오해하고 있던 것을 놓아버리는 것, 세상에 대한 나의 오해를 푸는 것, 단단한 생각과 묵은 감정으로부터 놓여나 점차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하고 싶다면, 행복하려는 노력을 놓으라고 하셨는데요. 경험담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 추구했던 파랑새, 행복이라는 게 있었을까요?


잔인하게 들리지만 이미 행복한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이 세상의 원칙이에요. 행복하려고 노력한다는 건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을 경험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동안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지금을 살아가게 되는 거죠. 행복해지려는 노력이 지금 이 순간 도착해있는 행복을 보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장애물입니다. 이 비밀을 발견하기까지 많은 실패의 경험이 필요했어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살면서 늘 행복을 찾아왔어요. 돈, 사랑, 명예, 건강 등등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엇비슷하죠. 전 그중에서도 사랑을 제일 열심히 찾았던 것 같아요. 보통의 연애감정도 아니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사랑을요. 종교에서 찾고 이야기 속에서 문학 속에서 세상에서 사랑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사람에게서 찾으려고 했죠. 한때 그걸 찾은 것 같았어요. 삶이 잠깐 천국이 되었어요. 하지만 곧 잃어버렸죠. 삶이 나에게 줬다 뺏은 것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되찾을 방법이 없었어요. 이런 실패의 경험이 파랑새 이야기를 새롭게 읽어낼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주었어요.


저자 소개에 ‘자신을 놀라게 할 만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글일까요?

 

실은 ‘한 번 울고 영원히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제 꿈이었어요. 세상을 감동시키는 글을 쓰고 싶었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한 글자도 쓸 수 없었어요. 세상이 감동할지 안 할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일이고 세상이란 건 또 너무 크니까요. 그래서 저를 위한 글을 쓰기로 했어요. 나에게 들려줄 글, 내가 읽고 또 읽어도 좋아할 수 있을만한 글을 쓰기로요. 그렇게 하면 나와 비슷한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감동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죠. 그렇게 생각하니 글을 쓰는 일이 조금은 가벼워졌어요. 좀 더 욕심을 낸다면 누군가의 머리맡에 놓이는 책을 쓰고 싶어요. 전 잠들기 전에 제일 좋아하는 글을 읽는데, 제가 쓴 책이 누군가에게 그런 책이 된다면 좋겠어요. 


구체적으로 쓰고 싶은 내용은, 살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들을 글로 쓰고 싶어요. 어떤 날 생각하면 삶이라는 게 썩은 사과보다 맛없고 빈속에 들이붓는 소주보다 지독한 것이지만 그런 날이 지나가면 삶이라는 신비 속에서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진실들이 있어요. 그런 것을 글로 쓰는 것이 좋아요.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종이와 펜을 들고 앉아 폭풍 속에서 본 것을 쓰는 것. 삶이 내게 보여준 속살을 글로 적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글을 쓰는 제 마음이에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문학 수업할 때가 가장 생기 넘친다고 하셨습니다. 고등학교 때 어떤 학생이었나요?


항상 딴생각을 했고요, 거의 늘 딴생각을 했어요. 좀 공부를 많이 안 하는 학교여서, 애들이 약간 수학여행 온 느낌으로 학교에 드나들었어요. 노래를 못하는데 중창단에 잘못 들어갔어요. 선배들이 무서워서 탈퇴를 못 하고 아침저녁으로 모여서 울면서 노래 연습을 했어요. 내가 학생인지 가수인지 모를 판으로 노래 부르러 다니는 일에 매진했어요. 방학 때도 매일 모였으니까요.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매일 편지 주고받는 게 하루에 제일 중요한 일이었고, 틈만 나면 마주 앉아서 나중에 우린 어떻게 될까 그런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죠. 늘 미래의 남편에 대해 생각했어요. 고3 때는 열심히 공부했어요.


지금 학생들은 저자님이 학생일 때 비해 어떤가요?


비슷해요. 거의 똑같다는 느낌이에요. 물론 다른 점을 찾으라면 서른 가지쯤 찾아서 이야기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같아요. 별거 아닌 거에 자지러지게 웃고 별거 아닌 거에 토라지고 울고 미래를 걱정하고 꿈에 부풀고 이성에 미친 듯이 관심 많고 어른들을 욕하고 탈출을 꿈꾸고 세상을 뒤집고 싶어 하고 뭘 하고 싶은지 몰라서 고민하고 부모님을 미워하고 태생을 의심하며 친구관계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등등. 진짜 재밌는 시절이에요. 이런 애들하고 장난하고 잡담하고 갑자기 심각하게 토론하고 그런 게 정말 즐거워요. 그리고 어떤 면에선 청소년시기가 일생을 통틀어 가장 어른스럽다고 해야 하나, 가장 순수하게 이상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시기잖아요. 현실을 잘 모르니까 한도 끝도 없이 훌륭해질 수도 있는 때예요. 같이 있으면 나보다도 얘들이 훌륭하다고 느낄 때가 많죠. 물론 사회 나가면 만신창이가 되어서 작은 어른이 되는 시절을 겪겠지만.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생존에 대한 압박 때문에 굉장히 현실적이고 걱정이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그러고 보니 요즘 좀 더 많아진 것 같네요. 닥치기도 전에 미리 작아져 있는 모습은 좀 안타까워요. 안 그래도 사회에 나가면 훌륭했던 이상과 꿈이 두들겨 맞아서 작아질 텐데, 나가기도 전에 작아져 있으면 몇 대 맞은 뒤에는 사라지고 없어질 테니까요. 물론 너무 작으면 맞을 일도 없겠지만.      

 

이 시기는 꿈과 이상을 맘껏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제가 쓴 책의 주제와는 많이 다르죠. 인간에게는 실패할 이상이 필요한 시기가 있어요. 실패를 통해 배우려면 실패할 큰 꿈도 필요해요. 꿈과 이상은 언젠가 반드시 실패하거나, 이뤄진다면 그 이뤄짐 후의 허무함이 따라올 운명에 놓여있죠. 우리에게 필요한 건 꿈과 이상이 이뤄지는 경험이 아니라, 실패와 허무함이에요. 꿈이 커야 실망도 크고 실망이 커야 제대로 배울 수 있어요.  


문학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좋아하는 작가나 문학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합니다.
 

어려운 질문인데요, 뭔가를 고르면 다른 작품들한테 미안해져서요. 좋아하는 건 너무 많으니 많이 반복해서 읽은 단편 소설만 얘기할게요. 
 

가와바타 야쓰나리의 「서정시」, 레이몬드 카버의 「거리」,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 「서정시」는 야릇한 소설이에요. 처음 읽으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뒤돌아서면 생각이 나는 이상한 소설이라 여러 번 읽었어요. 사랑 이야기지만 삶에 대한 굉장히 큰 물음표를 품고 있는 이야기예요. 「거리」는 가슴의 바닥까지 쓸쓸한 이야기인데도 그 쓸쓸함이 아름다워서 20대 때 늘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시간이 나면 꺼내 읽었어요. 「독 짓는 늙은이」는 ‘봐라, 벌써 눈에서 썩은 물이 나온다’라는 대목을 읽으려고 계속 또 보게 되는 작품이에요. 그 대목에서 썩은 물은 아니지만 꼭 눈물이 나요. 살면서 겪는 모진 시련과 고통 속에서 어떻게 인간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대단한 이야기예요.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파랑새 놓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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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놓아주기김지완 저/송민선 그림/박민지 캘리그래피 | 이야기나무
『파랑새』 이야기의 결말은 누구나 알고 있다. 행복이라는 이름의 파랑새를 찾아 떠난 주인공이 힘든 모험에도 불구하고 파랑새 찾기에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토록 찾던 파랑새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결말을 말이다. ‘행복은 먼 곳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교훈을 『파랑새』 이야기를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배웠고 또 읽었다. 하지만 『파랑새』 이야기의 원작은 동화가 아닌 희곡이고 모리스 마테를링크라는 원작자의 이름처럼 낯선 결말이 이어진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발견한 파랑새는 잠시 손에 넣었지만 이내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파랑새를 잃어버린 주인공의 절규로 끝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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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송현 “게임에 대한 편견을 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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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게임은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 콘텐츠 둥 58%를 차지해 영화, 음악보다 10배 이상 높았다. 날이 갈수록 한류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게임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은 여전하다. 아이들의 장난, 중독성 있는 놀이로만 치부되는 게임의 진면목은 발견하기 어려운 걸까?

 

어린이책 전문출판사 비룡소에서 출간한 교양동화 『열두 살 백용기의 게임 회사 정복기』는 세계 최초의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비롯해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카트라이더’ 등을 발표한 게임회사 넥슨과 비룡소가 함께 기획한 책이다. 동화는 주인공인 초등학생 백용기가 유명한 게임 기획자 이기용과 함께 게임 개발에 도전하면서 시작된다. 게임의 중독성, 악영향만을 부각시킨 그간의 어린이책들과 달리 게임 제작 과정을 중심으로 게임의 여러 가지 측면을 알려줌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게임을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10문10답-이송현

이송현 작가

 

『열두 살 백용기의 게임 회사 정복기』를 집필한 이송현 작가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 제5회 마해송 문학상, 제9회 사계절 문학상 대상을 받았고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동시)에 당선됐다. 지은 책으로 장편동화 『슈퍼 아이돌 오두리』, 『아빠가 나타났다!』,『지구 최강 꽃미남이 되고 싶어』, 『천둥 치던 날(공저)』, 동시집 『호주머니 속 알사탕』, 청소년 소설 『내 청춘, 시속 370km』등이 있다.

 

게임 동화 쓰면서 편견을 버리게 됐다

 

『열두 살 백용기의 게임 회사 정복기』는 게임회사 넥슨과 어린이책 출판사 비룡소가 함께 기획한 동화입니다. 어떻게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되었나요?


그야말로 우연한 기회였어요. 논픽션은 늘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선뜻 하기에 머뭇거려지거든요. 그런데 게임 이야기라는 거예요. 참고로 저는 게임을 정말, 엄청나게 못하는 아이였는데 (물론, 여전히 게임을 못하는 어른이기도 합니다) 게임하면 이상하게 부정적인 이미지만 떠오르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게임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들에는 장점과 단점이 다 있잖아요. 이상하게 유독 게임만 나쁜 것, 중독되면 큰일이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조금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게임도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점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일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라는 것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넥슨을 여러 번 방문하여 게임 기획자, 프로그래머, 그래픽 디자이너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게임 제작 과정을 관찰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취재 과정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게임회사라고 해도 처음에는 그냥 일반 회사 분위기를 떠올렸어요. 그런데 방문해보니, 당황했어요(웃음). 뭐랄까, 회사는 회사인데 너무나 자유로운 분위기였지요. 책상 앞에 앉아서 뭔가 하는 분도 있고,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분, 간이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분, 회의하는 데에도 일어서서 하는 사람도 있고. 무엇보다 책상 위에 프라모델 같은 장난감을 모은 것을 보고 웃었지요. 저도 작가 그만 두고 게임 회사 취직하고 싶은 기분이었어요. 점심시간이 아닌데도 배고프면 회사 안의 카페테리아에 가서 간식도 먹고 거기에 앉아서 자유롭게 일하는 모습이 신선했어요.

 

주인공 용기와 함께 게임 시나리오를 쓴 빡꾸는 「천국 만들기」를 만드는 동안 독서왕이 되었어요. 실제로 좋은 게임을 만드는 데 책이 도움이 되나요?


책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가장 기본이 된다고 봅니다. 게임 회사에서도 기획자, 프로그래머 등등 모든 분들이 책을 많이 읽으세요. 책상에도 다양한 책들이 있더라고요. 게임의 모든 아이디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게임 캐릭터를 만드는 데에도 그 캐릭터만이 갖고 있는 이야기가 있어야겠죠. 그러기 위해 상상력을 키우는 데에는 책 읽는 것만큼 도움이 되는 것도 없다고 봐요. 게임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다양한 종류의 책을 통해 습득한 지식이 기본이 되는 것은 물론이죠.

 

10문10답-이송현

 

게임 만드는 것이 꿈인 용기와, 게임이라면 질색하던 용기의 엄마가 함께 문방구 앞 오락기 앞에 앉아 게임을 하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혹시 작가님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용기와 엄마가 함께 오락을 하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읽는 친구들도 같은 마음이면 좋겠어요.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이 반대하는 일을 할 때면 다른 것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보여드렸어요. 제일 좋은 방법은 성적을 올리는 일이긴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잖아요? 그럴 때는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아주 긴 편지를 쓰고 이 일을 했을 때 좋은 점에 대해 온갖 자료까지 곁들여서 보여드렸지요. 그러면 “한 번 해 봐.” 라고 허락하시더라고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잠시 잠깐 흥미가 아니라, 내가 그 일에 얼마나 진지한지 보여드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초등학생인 용기와 빡구, 중학생인 아령이뿐 아니라 게임 회사에서 만난 이기용 씨, 왕만두 씨, 황금손 씨 모두가 「천국 만들기」를 만드는 동안 저마다 훌쩍 성장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세상에 나쁜 꿈은 없어요! 세상에서 가장 나쁜 꿈은 벽에 기대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거라고요.” 하던 용기의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장, 단점이 있어요. 우리가 꾸는 꿈에도 분명히 100% 좋은 면만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자신이 꾸는 꿈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나의 의지와 행동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의 용기는 모두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임이, 만들려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서 얼마든지 좋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지요. 게임 중독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게임을 즐기는 친구들의 의지에 달린 것이지요. 물론 책 안에서는 그런 단점을 어떻게든 줄이고자 용기와 친구들은 ‘게임일기 쓰기’ 같은 방법을 고안하지요.

 

『열두 살 백용기의 게임 회사 정복기』를 읽은 독자들의 리뷰 중에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나요?


“‘게임이라면 무조건 나빠!’ 라던 편견을 조금은 버릴 수 있었다.”라는 리뷰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저 역시, 게임은 그다지 좋은 것은 아냐! 라고 생각했던 일인이었어요. 실제로 저는 게임에 관심도 없었고 어린 시절에는 게임을 엄청나게 못했던 아이였지요. 『열두 살 백용기의 게임 회사 정복기』이야기를 쓰면서 이것 하나만은 꼭 전달하자, 라고 생각했던 게 바로 사람들의 ‘편견’에 대한 것이었어요. 대개 사람들이 게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게임 중독' 때문이지요. 그런데 세상 모든 일을 가만히 보면 다 장단점이 있거든요. 그런데 왜 게임만 단점이 부각되는 것일까? 게임이 살아 있는 존재라면 엄청나게 억울하겠다, 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편견이란 참 무섭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그런 생각을 조금씩 바꿔 나간다면 기쁠 것 같아요.

 

최근에는 게임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한동안 ‘게임 중독법’ 등이 논란이 됐을 정도로 게임에 대해 걱정하는 학부모들이 많습니다. 이 책을 쓰면서 게임에 대한 생각이 바뀐 부분이 있나요?


전 게임을 너무 못하는 어린이였어요. 그래서 게임에 큰 흥미가 없었죠. 하지만 제 남동생은 게임에 열광을 하는 친구였죠. 엄마는 매번 동생에게 “너, 그만 못해? 게임하는 것만큼 공부를 해라, 전교 1등을 하겠다.”라고 했죠. 저 역시 게임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동생이 게임을 안 하더라고요. 왜 안 하냐니까 할 만큼 했고 다른 재미난 것을 발견했다고 하더라고요.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어요. 동생은 게임을 할 때, 중독자인 것처럼 보였지만 게임 때문에 영어 공부를 하고 지금은 호주에서 온종일 영어로만 떠들면서 일하고 있지요. 결국 중독은 게임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도 적용된다고 봐요. 하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좋은 영향을 받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아닐까요.

 

 

10문10답-이송현

 

동화 작가에게 가장 무서운 무기는 ‘상상력’


어릴 적 작가님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미취학 아동일 때는 개구리였어요. 수영을 잘하고 싶었거든요. 물론 영장류인 제가 양서류로 갑자기 돌변하기는 무리였죠. 수영 선수가 되겠다고 했으면 좋았겠지만, 어린 마음에도 선수는 공짜로 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훈련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나 봐요. 개구리로 변신하면 훈련 같은 것을 하지 않고 바로 훌륭한 수영 실력을 갖게 되니, 제법 괜찮은 꿈이라고 확신했죠. 저는 욕심이 많았던 탓에 항상 두 가지 꿈을 동시다발적으로 꾸었어요. 예를 들면 전투기 조종사 작가, 화가 작가??? 이런 식이지요. 재밌는 것은 앞부분에 생각했던 것을 메인 꿈(?)이라고 다짐했다는 거예요. 뒤에 늘 변치 않고 '작가'라고 적었던 꿈은 별책 부록 같은 것이었는데, 사춘기 이후의 전 늘 뭔가를 끄적거리면서 혼자 흐뭇해하고 있더라고요. 별책부록이 제 인생의 본문이었던 셈이지요.

 

그간 장편 동화, 청소년 소설을 펴내셨는데요. 주로 관심을 갖게 되는 주제, 소재는 무엇인가요?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되는 주제라고 하니까 너무 거창하고요, 저는 건강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좋아요. 오늘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결국은 그 안에서 일어서고 웃을 수 있는 그런 건강한 삶을 꾸릴 수 있는 용기가 묻어나는 이야기요. 그래도 꼭 꼽아야만 한다면, 청소년 소설의 주제(소재)로 관심 있는 것은 폭력이에요. 젊은 친구들이 오늘을 살아가면서 맞부딪힐 수밖에 없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요. 육체적인 것일 수도, 정신적인 것일 수도, 실체가 도통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해결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는, 예측 불가능한 형태의 폭력을 견디며 이겨 내는 젊은 친구들의 건강한 모습을 그리고 싶네요.

 

동화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나의 상상에 울타리를 치지 맙시다!
나의 디스크는 안녕하신가?
나는 내 이야기의 CEO이자 직원이다!

 

동화 작가에게 가장 무서운 무기는 상상력이라고 생각해요. 오늘밤, 나의 엉뚱한 상상은 내일 아침, 기막힌 이야기의 시작이 될 수도 있지요. 그런 나의 상상에 '혹시 이런 아이디어가 글이 될 수 있을까?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다른 사람이 읽어 보고 재미없다고 하지나 않을까?' 등등의 의구심으로 상상력에 울타리를 치는 순간, 기발한 이야기 하나가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길 바랍니다.

 

글 쓰는 사람에게 건강한 디스크는 오래 앉아서 쓸 수 있는 힘입니다. 건강한 체력은 건강한 글을 쓸 수 있는 기본 조건이 아닐까요? 작가라는 직업은 어떻게 보면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신 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스스로가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한없이 빈둥댈 수 있는, 다소 위태로운 일인 것 같아요. 직장인들이 각자 소속된 회사에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듯 나의 글, 나의 이야기라는 회사에서 '나'란 존재는 CEO이자 직원이라는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세 가지를 머리, 가슴, 옆구리, 엉덩이, 손끝, 발끝에 붙여 놓고 저 역시 하루하루 끙끙거리며 살고 있지요.

 

다음 작품 계획이 궁금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재미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내 청춘, 시속 370km』처럼 전통을 소재로 한 청소년 이야기, 하지만 그보다 좀 더 위태롭고 움직임이 많은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또 한편으로는 『헝거 게임』 같은 판타지 작품을 잘 꾸려 보고 싶어요. 그러나 주제, 소재가 어떠하든 읽고 나면 “으랏차차!” 용기 낼 수 있고 보다 기대되는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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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두 살 백용기의 게임 회사 정복기이송현 글/조경규 그림/넥슨 도움및감수 | 비룡소
게임 기업 넥슨과 비룡소가 함께 기획한 동화 『열두 살 백용기의 게임 회사 정복기』가 출간되었다. 초등학생 백용기는 같은 건물에 사는 유명한 게임 기획자 이기용과 함께 오랫동안 꿈꿔 왔던 게임 개발에 도전한다. 하나의 게임을 완성하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가는지, 또 게임을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까다로운지 알아가는 동안 용기는 점점 게임을 하는 것 이상으로 만드는 것도 즐기게 된다. 그리고 그런 용기의 성장과 변화로 인해 용기의 엄마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 또한 게임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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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길지혜 “한 곳을 꼽으라면 국립진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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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없는 삶을, 휴식 없는 삶을 상상해보라. 숨이 막힐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쉼표가 필요하다. 여름, 직장인에게는 휴가가 그리고 학생에게는 방학이 주어진 고마운 계절. 많은 사람이 여행을 꿈꿀 것이다. 그런데 여행지 정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가고 싶은 곳이 있더라도 비용, 시간 등을 고려하다 보면 막상 갈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

 

한국에 있는 박물관은 어떨까? 무더위를 피할 수도 있고, 볼거리도 많다. 가족으로 가든, 연인 단위로 가든, 혼자 가든 상관없는 곳이기도 하다. 『아이와 함께 꼭 가봐야 할 박물관 여행 101(이하 박물관 여행 101』은 박물관을 11개 테마로 나눠서 소개했다. ‘아이와 함께’라는 표현이 있지만, 혼자 가도 여럿이 가도 상관 없다. 책을 쓴 길지혜 저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길지혜


근황을 말씀해 주세요.


2년 전, ‘독자의 가슴을 울리고, 제 마음 안을 걷는’ 전업 여행 작가를 목표로 회사를 그만두고 쉼없이 길 위를 누빈 것 같습니다. 2012년 300일간의 아메리카 대륙여행과 작년과 올해에는 대한민국 곳곳을 여행했죠. 요즘엔 다시금 내 나라의 깊은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청아하면서 사계절의 특색이 짙은 대한민국의 멋스러움이 시간이 지날수록 와닿더라고요. 더불어 최근엔 결혼준비로 새로운 삶의 여행을 기대하고 있고요.  

 

다양한 여행 가이드 책이 있는데요. 『박물관 여행 101』은 ‘박물관’이 주 테마입니다. 이 책을 만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혹시 간송 미술관을 들어보셨습니까? 박물관을 자주 다니시는 분들은 아실테지만 대부분 낯선이름일 수도 있는데요. 지난 3월 오픈한 DDP(동대문 디지털 플라자)에서 상설기획전이 열려 많은 분들이 좀 더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간송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 사립 미술관으로 1년에 2주씩 5월 과 10월에만 오픈하는 박물관입니다. 그래서 손꼽아 관람할 수 있는 그날만 기다리시는 분들도 많았었습니다. 그곳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세운 우리나라 문화재의 보고기도 합니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풍경과 바람에 취하기도 하지만,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 사는 이야기에 취할 때도 많습니다. 박물관은 ‘사람 사는 이야기들의 총집합’이죠. 국립중앙박물관과 같이 세계 6위에 꼽히는 대형 박물관도 물론이거니와,  우리나라엔 작고도 알찬, 박물관이 상당히 많다는 걸 여행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박물관은 흔히 재미없고, 지루한 곳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결코 그렇지가 않아요. 우리 아이들이 이 좋은 학습의 장에서 오감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마음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밀양에서 자라고 크다보니 소위 문화생활을 제대로 즐기진 못했죠. 아이 땐 오히려 자연과 함께 지냈던 것 같아요. 도랑에서 송사리와 고동 잡고 놀았죠. 그런데 서울에 오니 정말 모든 곳이 '문화'로 연결되어 있더라고요. 그 문화의 결정체가 바로 박물관이며, 이것을 전국의 모든 학부모와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101곳의 박물관을 취재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취재하면서 생긴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실제론 약 250여 곳을 다녔어요. 일일이 셀 수가 없죠. 갔던 곳을 여러 번 간 곳도 많으니까요. 우리나라에 어림잡아 1,000군데 정도의 크고 작은 박물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미술관까지 합쳐서요. 겨울에는 대부분 5시까지가 폐장이라 취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죠. 춥고 황량한 바람을 뚫고, 박물관에 가면 지방 박물관은 아무도 없이 적막만 흐르고 있는 곳도 많아요.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천정을 타고 실내를 울리는 경우도 있죠.

박물관은 사전에 모두 공부를 하고 가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그것을 알기에 자료 준비시간도 많이 걸리긴 했어요. 고등학교 때 암기만 했던 것들을 실제로 만나는 순간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기도 했지요.

허준 박물관에 갔을 때였어요. 자원봉사하시는 도슨트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72세라고 본인을 소개하면서 이 일을 10년간 해오고 계시다며, 모든 유물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는데 그 열정을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모두 녹아있었죠. 1시간 30분쯤 지났으려나요? 부득이하게 제가 다른 취재 일정이 잡혀있어서 조금 더 요약을 해달라고 요청드리니, 그런 말 하면 할 기운이 안 나신다면서 약간 토라진 척 하시더라고요. 정말 대단한 열정이시죠. 그리고 3시간 정도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그로부터 3~4개월 후 덕수궁에서 우연히 할아버님을 다시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멀리서도 그 분인 줄 한눈에 알 수 있었죠. 역시나 열성적으로 고궁 설명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아, 이것이 우리나라를 지키는 힘이구나, 란걸 다시 느꼈습니다.   


한국에 이렇게 다양한 박물관이 있는지를 책을 통해 안 독자가 많을 것 같습니다. 101곳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요.


처음엔 여행지를 돌아다니면서 박물관을 무작정 다녔어요. 다니다보니 자연스레 분류도 되고 나중에는 입장하자마자 어떤 전시가 펼쳐질지 예상도 되더라고요. 사실 책에는 실제 102곳의 박물관이 소개되어 있어요. 물론 박물관 성격이 테마별로 잘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과 가족모두가 가도 좋을만한 곳 위주로 선정을 했어요. 정말 이곳만 다 둘러봐도 박물관은 좀 다녔다 싶으실 거예요. 하지만 책에 소개된 박물관 이외에도 가볼 곳은 아직 넘쳐납니다. 


길지혜


넣고 싶었지만, 분량 관계상 못 들어간 박물관도 있나요? ‘101’이라는 숫자에 담긴 의미는?


넣지 못해 아쉬운 박물관이 훨씬 많았죠. 그래서 미술관 과학관 식물원 편을 따로 준비하고 있어요. 원래는 모두 한 책에 넣으려고 했으나 쓰다 보니 박물관만 해도 이렇게 두꺼운 책이 되더라고요. 의논 끝에 분권을 하기로 했습니다.  제목을 101로 정한 이유는, 한 곳은 꼭 자기만의 박물관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도 그중 하나였어요. 히든 트랙이라고 할까요? 


101곳 중에서 특별히 사랑하는 공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여행에서도 그런 질문을 항상 받습니다. 30개국 110여개 도시를 여행했다는 사실을 아는 독자나 지인들은 항상 묻곤 합니다. “어디가 제일 좋았어?” 가장 여행지, 관광지다운 곳을 소개하고 싶지만 실제로 대답은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소박한 어떤 소도시의 후미진 골목에서 만난 특별한 인연이 기억나는 곳, 아스라했던 공기의 감촉, 그런 순간순간이 여행을 행복하게 만들었거든요. 그렇지만, 한곳을 꼽자면 진주성안에 있던 국립진주박물관이 그랬죠. 임진왜란 격전지가 있었던 그곳은 역사의 테두리가 고스란히 남아져 있어서 그야말로 박물관 여행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었죠. 소개는 안 되었지만 환기미술관에서 홀로 멍하니 작품을 바라보는 시간은 마치 우주의 진공상태와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천정에서 들어오는 햇살과 작품, 그리고 작품을 통해 투영되는 제 자신을 바라보면서 이것이야 말로 박물관 여행의 즐거움이 아닌가 싶었어요.

 

 ‘아이와 함께 꼭 가봐야 할’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어린 시절에 저자님께서는 박물관에 자주 가셨는지요? 길지혜 저자님께 박물관이란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나요.


어렸을 때는 오히려 박물관 여행은 못했었습니다. 스무살 때부터 본격적인 세계여행을 하면서 전 세계 박물관을 다녔어요. 다행인 것은 이번 여행에서 아버지와 함께 많은 박물관 투어를 다녔습니다. 밀양에 계셔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경남 쪽으로 취재를 갈 때면 늘 함께하려고 노력하셨죠. 곳곳에 찾아보면 아버지가 등장하는 사진도 있어요. 또 장생포고래박물관에 갔을 때였어요. 정말 우연히 작은아버지 가족을 만나게 됐어요. 그러면서 사촌동생가족은 동생이 아주 어릴 때부터 박물관 여행을 시작했다고 했어요. 가까운 사이인데도 몰랐던거죠. 그분들은 박물관 여행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실감하고 있었어요. 작은 돈으로 체험학습과 여행을 할 수 있는 정말 좋은 방법이라고. 책을 쓰는 도중이었는데 더 큰 확신을 가지게 되었죠. 박물관은 ‘시간여행’입니다. 그 공간에 들어서면 수천 년 전의 과거와 조우하고 공간에 서 있는 현재의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미래를 점치게 되는 그런 곳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탐하다』에 이어 여행책을 연거푸 내셨는데요. 이제는 ‘여행작가’라는 타이틀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여행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제 성이 길씨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 합니다. 그래서 운명처럼 길 위의 여행자란 생각이 들었죠. 그렇지만 아직도 작가란 말은 어색해요. 언제쯤 여행 작가라는 말에 딱 맞는 인생을 살아갈지는 모르지만, 책을 내는 시기나, 책을 얼마나 많이 내느냐는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첫 책을 작업했을 땐 정말 모든 순간이 행복했었고요. 독자에게 울림이 있는 책을 낸다면 일생 한권의 책을 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면의 울림이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요.

 

여행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합니다. 다른 곳에서 우리사회와 얼마나 다른지를 보는 게 한 가지고. 나머지 한 가지는 다른 곳에서 우리사회와 얼마나 닮았는지를 보는 것인데요. 어떤 여행을 선호하는지, 여행 철학이 있다면.


아메리카 대륙을 탐하다 책에서 ‘여행자에게 허락되지 않는 한가지’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도시는, 뜨내기손님을 상대하는 역 앞 국밥집처럼 좀체 여행자를 따듯하게 보듬지 않는다. 마음을 주고 정을 주어봤자 내일이면 떠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도시는, 유명 관광지가 전부라고 알고 있는 여행자에게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보여주려고 해봤자 그들이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갓 볶은 신선한 커피를 매일 아침 내놓던 동네 카페가, 대형 커피전문점에 밀려 허물어진 사실을 여행자는 모른다. 바리게이트를 쳐놓고 공사 중인 그 건물에 마음 깊이 간직할 추억 따위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자의 아이러니가 있다. ‘자기의 일상’을 떠나서 만나게 되는 것은 여행지의 ‘타인의 일상’이니까. 그 타인의 일상을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 그건 나의 일상이 되기도 한다.”

결국 여행은 두 발로 내 안을 걷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멋있고 화려한 절경을 보고 느낀다고 해도 결국은 본인의 삶, 본인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이 여행인 것 같습니다.


결혼한 뒤, 앞으로 여행하는 데 어떤 점이 변할까요?


여행은 꼭 어딜 가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또 새로운 여행을 맞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박물관 여행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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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꼭 가봐야 할 박물관 여행 101길지혜 저 | 어바웃어북
『아이와 함께 꼭 가봐야 할 박물관 여행 101』은 아이에게 쉼표와 느낌표를 함께 안겨줄 수 있는 여행을 고민하는 엄마, 휴일만 되면 ‘주말에 가볼 만한 곳’이라고 검색하는 게 일상이 된 아빠에게 보내는 101개의 초대장이다. 초대장의 발신인은 전국에 있는 101개의 박물관이다. 그리고 이 여행의 중심에는 아이가 있다. 이 책은 아이가 재미있게 놀며 배울 수 있는 박물관을 11개의 테마로 나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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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전선명, 동유럽 빈티지 프라하를 소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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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수도, 프라하. 서유럽에 파리가 있다면, 동유럽에는 프라하가 있다. 프라하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에도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이 도시에 끌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프라하, 소풍』은 프라하에 관한 책이다.

 

제목에는 ‘소풍’이라는 말을 붙였지만 책을 쓴 저자는 체코에서 1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애니메이션 감독인 남편과 함께 공부를 하기 위해 떠난 그곳에서 전선명 저자는 프라하의 곳곳을 누볐다. 일러스트 작가답게 그녀의 시선으로 본 프라하는 예술의 도시, 문화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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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느라 바빴을 텐데요. 이런 와중에 기록을 남기기가 쉽지만은 않은데요. 기록을 남겼고, 책으로도 나왔습니다. 체코 체류 경험을 글로 남긴 이유가 특별히 있을까요? 책이 나온 뒤 감회가 있다면?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이야기하고 ‘프라하’ 하면 떠올리는 것들 너머에 있는 프라하의 모습이 궁금했고 알고 싶었습니다. 상주여행자로 프라하에 머물면서 조금 더 일상적이고 소소한 면을 직접 맛보고 관찰하는 것에 흥미를 가졌다고나 할까요? 그런 작은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잘 알려진 서유럽이나 북유럽이 아닌 동유럽에 어떤 감성과 운치가 있는지 제 나름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도와 동유럽 정서가 잘 반영된 수수한 모습의 책이 나온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책 제목에 ‘소풍’이 붙었습니다. 체코에서 견뎌야 했을 긴 겨울을 생각한다면 ‘소풍’이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듯도 한데요. ‘소풍’을 제목으로 정한 의미는?


‘여행’과 ‘생활’은 확연히 서로 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 경우는 ‘생활’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경제적, 언어적인 부분에서부터 날씨에까지 영향을 받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외롭고 우울한 날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제가 느꼈던 감정은 아쉬움과 그리움이었습니다. 지나고 나니 그곳에서의 시간은 천상병 시인이 읊었던 ‘소풍’이라는 단어처럼, 슬그머니 미소 지을 수 있는 그저 한 때의 추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매일매일 부담 없이 집을 떠나 프라하를 일상적인 관점으로 살피고 돌아다녔다는 의미에서 ‘소풍’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수많은 나라가 있는데 ‘체코’로 떠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애니메이터였던 남편은 인형이나 오브제를 이용하여 스톱모션기법으로 촬영하는 애니메이션 작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또 아날로그 촬영 방식이나 작업환경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체코는 더할 나위 없이 경험하고 배우기에 적합한 곳이었고, 저 또한 같은 맥락으로 체코 특유의 수수함과 빈티지가 느껴지는 일상과 예술을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책에 실은 사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동유럽 빈티지’라고 할까요, 소박하면서도 옛 정취가 남아있지만 낡지는 않은, 느낌이었는데요. 저자님께서 가장 감명 깊었던 체코의 풍경이라면 무엇일까요. 


제가 프라하에서 매력을 느끼고 발견하고 싶었던 부분은, 중세시대의 클래식한 ‘낭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시절의 잔상이 남아 있는 ‘고독함’ 같은 것이었습니다. 말씀하신 ‘동유럽 빈티지’의 기운이기도 합니다. 굳이 특별한 것을 찾지 않더라도 골목에 세워진 구형 ‘슈코다’, 홀로 걷는 노인, 낡은 창문틀 등 많은 것에서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밤의 길이가 무척 길어진 어느 겨울날, 신호대기 중인 트람바이를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각기 사색에 잠긴 듯한 체코인들의 모습이 뿌옇게 김이 서린 창문 너머로 넘어왔고, 그 장면이 제 마음 한편에 애잔한 여운으로 남아 있습니다.


경주에서 자랐는데, 프라하와 ‘역사성’이라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경주와 프라하의 비슷한 면, 차이점 등을 알려주신다면.


개인적으로 경주는 고향이다 보니 언제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애틋한 곳입니다. 그런데 프라하에서도 거리 곳곳에서 그만의 아릿한 노스탤지어를 느낄 수 있어 친근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두 곳 모두 과거와 현재, 그리고 역사와 일상의 어우러짐이 참 자연스러워 오히려 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빈티지에 관심이 많고 일상에서의 소박한 재미를 좋아하는 제 성향도 그런 분위기의 경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영향이 크지 않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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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노마드


공간은 곧 사람으로 기억되기도 하는데요. 프라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이방인으로서 바라본 체코 사람들은 대체로 무뚝뚝했습니다. 동화같이 아름다운 프라하이지만, 그 이면에는 왠지 모를 쓸쓸함이 있었습니다. 그 쓸쓸함은 거리를 오가는 체코 사람들 표정에서도 어렴풋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사회주의 시절을 겪은 듯한 노인들에게서 그런 느낌이 더 강렬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과하게 친절하지 않은 솔직함에서 정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헌책방, 도서관, 박물관 등이 비중 있게 다뤄지는데요. 프라하가 문화의 도시라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작가님의 취향이 반영된 선택인지요.


프라하는 시내 중심가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어 있고, 체코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각종 오페라 및 공연이 연중 끊이질 않는 명실상부 최고의 문화 도시인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저 개인적으로 어디를 가든 잘 알려진 명소보다는 동네 어귀의 작은 골목이나 가게 등에 더 솔깃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상생활과 가까운 부분에 대한 호기심이랄까요? 그런 관점에서 헌책방, 잡화점을 주로 찾으러 다니곤 했습니다.


체코어도 배우셨는데, 체코어는 어떤 언어인가요.

체코로 유학을 가고자 하는 이들이 대부분 체코어 때문에 힘들어할 만큼, 체코어는 외국어 중에서도 무척 어려운 편이라고 합니다. 저는 6개월 동안 초급문법 코스를 밟은 정도였지만, 어려운 만큼 매력적인 언어임을 느꼈습니다. 함께 어학교를 다닌 친구 중에는 단순히 체코어 자체에 흥미를 느껴 공부하러 온 일본인도 있었습니다. 언뜻 들으면 독일어나 러시아어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체코어는 그 언어들과 확연히 다른, 특색 있는 발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체코어의 어감이 체코 사람들의 표정만큼이나 무뚝뚝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가까운 슬로바키아와 폴란드의 언어와 비슷한 계열이라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국적인 풍경 중에서는 ‘요리’도 빼놓을 수 없을 텐데요. 세계화 속에서 각 나라의 전통 음식이 사라진다는 비판도 있는데, 프라하는 어떤가요. 프라하만의 전통 음식문화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다소 상업화되어있는 듯하지만, 프라하 시내의 다양한 식당에서 체코 전통 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맥주와 함께 먹는 ‘베프조베 콜레뇨’라는 돼지 무릎 뼈 바비큐 요리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 아쉽게도 최종적으로 빠지게 되었지만, 원래 이 책에는 ‘한국에 있는 재료로 즐겨보는 소박한 체코요리’ 코너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실으려 했던 음식 중에 ‘스마줴니 끄비에딱’이라는 양배추 튀김과 ‘브람보라끼’라는 감자전이 있습니다. 두 가지 음식 모두 체코 일반가정에서 손쉽게 즐기는 요리입니다.
 

체코를 찾을 여행자에게 팁을 공개한다면?


때로는 프라하성보다 바람이나 햇빛 같은 것들이 프라하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언제 어떤 장소를 가든 프라하의 다양한 정취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장소를 추천하자면, 블타바 강과 프라하 시내를 고즈넉하게 감상할 수 있는 비셰흐라드 언덕에 오르는 것을 추천합니다. 가스등이 하나씩 켜지는 해질 무렵이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는 매시간 스메타나의 「Vltava」가 애잔한 종소리로 울려 퍼져, 이방인의 마음을 한없이 흔들어놓곤 합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박물관 여행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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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소풍전선명 저 | 북노마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인 전선명의 프라하 ‘생활 여행’ 에세이. 애니메이션 감독인 남편과 함께 공부하기 위해 체코 프라하로 떠나, 1년 넘게 머물며 프라하 곳곳을 누빈 기록들을 담았다. 일러스트 작가와 애니메이션 감독 부부의 생활 여행답게 벼룩시장, 잡화점, 헌책방, 인형극장, 문방구 등 체코 특유의 문화 공간에 대한 탐미가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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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한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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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교황 방한으로 한국에서도 가톨릭, 교황청을 향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교황청은 지구에서 오랜 역사를 버텨낸 조직 중 대표적인 곳이다. 교황청은 복잡한 조직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에서도 당연히 사법부가 있는데, 한국인 최초이자 동아시아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가 된 사람이 있다. 바로 한동일 교수가 그다.

 

그냥 변호사가 되기도 쉽지 않은데,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더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 한다. 수많은 법률과 판례를 알아야 하지만, 우선은 라틴어로 그것을 읽어내야 하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한동일 교수가 이 과정을 견뎌낼 수 있었던 데에는 공부를 향한 열정과 꿈이 있었던 까닭이다.

 

한동일


한국과 로마를 오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어떻게 지내셨나요?


서강대에서 라틴어 교양강좌를 맡고부터는 교단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2010년도 2학기부터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교양수업이라서 학점을 채우기 위해 수업을 들으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죠. 그러나 큰 오산이었습니다. 스펀지 같은 놀라운 흡수력을 가진 친구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이며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그들의 열정은 저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오히려 제가 학생들로부터 에너지를 얻곤 합니다. 학기 중에는 강의준비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고, 방학이 되면 바티칸으로 돌아가 변호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게 지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래도 꿈꿀 권리』를 출간한 이후 방송과 언론 인터뷰 요청이 많아져서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일정이 조금 늦춰졌습니다. 다행히도 로타 로마나 관계자 분들께서 “당신이 행복한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충분히 기다릴 수 있으니 당신이 해야 할 일들을 마치고 돌아오라.”며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래도 꿈꿀 권리』는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 같습니다. 특히 청소년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은데요. 제목에 ‘그래도’라는 표현을 굳이 붙인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이러저러한 자기계발서나 “공부는 이렇게 하라”는 식의 책들이 난무합니다. 사실 저 또한 그러한 류의 책을 세상에 더하지나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럼에도 책의 출간을 결심하고, 책 제목에 ‘그래도’라는 말을 덧붙인 이유는 어떤 가르침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 요즘의 현실입니다. 특히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이 많아지는 것 역시 모두를 허탈하게 합니다. 그러나 ‘나의 작은 노력이 있고, 우리의 노력이 모이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그런 작은 희망의 불씨들이 모여 큰 불씨가 되는 법이니까요. 다음 세대가 맞이할 세상은 그런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그래도 ‘꿈꾸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판사에서 제안한 여러 제목 중 이 제목을 추천하였습니다.

 

사제 서품을 받은 뒤, 공부를 그치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공부를 멈추고 신부로 신앙 활동을 계속할 수도 있었는데요. 어려운 대법원 변호사 시험에 도전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공부를 멈추고 일반적인 사제의 모습으로 살았다면 더 편하고 좋은 부분도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안에 있었던 뭔가 모를 강렬한 열정이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시험에 도전하도록 했습니다. 거기에는 한국인이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동양인들에 대한 처우가 좀 나아졌지만, 10년 전만 해도 동양인들을 멸시하는 발언이나 행동이 다반사였습니다. 더욱이, “동양인들은 유럽인들을 넘어설 수 없다”는 편견을 이겨내고 싶었고,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의 마음은 ‘오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그에 대해 시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제 인생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변호사 시험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인데요. 일반인들은 바티칸 대법원이라는 존재가 생소할 것 같습니다. 설명 부탁드립니다.


통상 우리나라에서는 ‘교회법’이라고 하면 종교단체의 내부 규율 정도겠거니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양법제사 안에서 교회법은 오늘날의 입법사상 형성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칩니다. 가령 원상회복, 무죄추정의 원칙, 기득권 보호, 다수결의 원칙, 고리대금업의 금지, 소송대리인 제도, 불법행위 금지, 긴급피난 제도 등 수없이 많은 제도들이 교회법의 결정에서 영향을 받은 것들이지요. 그런 항목들만 봐도 교회법의 모체가 되는 ‘바티칸 대법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바티칸 대법원인 로타 로마나는 교황이 상소를 받기 위해 설치한 상설법원입니다. 바티칸 대법원이 있는 로타 로마나 건물 정면에는 ‘Corte Imperiale’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황제의 재판소’라는 뜻입니다. 현재 로타 로마나가 위치한 장소는 역사적으로 로마의 황제가 재판하던 곳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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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도 썼듯,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시험은 문제만 200쪽, 시험시간이 무려 열두 시간인데요. 선생님께서는 이때 시험이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 번 시험을 치르셨는데, 그때 상황을 묘사한다면.


최종 변호인 자격시험은 장장 12시간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최종 시험에까지 갈 수 있는 후보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커다란 시험장에는 몇 명의 후보자만이 각자 배정된 자리에서 시험을 보게 됩니다. 점심도 각 후보자의 책상으로 배달되고요. 그런데 사실 ‘밥 생각’이 전혀 들지가 않습니다. 마치 커다란 진공관에 빠져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정적만이 흐르는 그곳에서 200쪽이 넘는 재판 기록을 읽고 라틴어로 판결문을 쓰는 시험은 지금 생각해봐도 끔찍합니다.


변호사 자격시험은 일생에 딱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데요. 두 번까지는 시험에 응시할 수 있지만 세 번째 시험을 치르려면 교황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지요. 저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첫 시험에서는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시험을 보던 순간에도 양손이 너무 떨려서 시험을 치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약한 마음과 두려움 때문에 마지막 기회를 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번쩍 들어, 펜을 쥔 오른손을 왼손으로 붙잡고 한참이나 기도를 했지요. 열두 시간 내내 혼신의 힘을 다해 시험을 치르고 나니 몸과 영혼이 분리된 듯, 걸을 수조차 없는 상태였어요.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로마에서 공부를 해왔지만, 그날에야 처음으로 로마의 아름다운 노을을 제대로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로, 참여했던 재판 중 인상적인 게 있었다면?


참여한 재판보다 저의 첫 의뢰인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변호사가 된 뒤 첫 사건 의뢰인을 만났습니다. 제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저를 보더니 그대로 나가더군요. 아마도 이탈리아 사람의 입장에서 동양인 변호사의 모습이 낯설었나 봅니다. 그 일이 있었던 뒤로 저는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세계 곳곳에서 저마다 역량을 떨치는 모습을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한국인’이라는 단어가 세계인들에게 낯선 단어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제가 라틴어 강의를 하게 된 것도 우리 청년들이 시야를 넓혀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세계무대로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거의 한평생을 공부에 매진해오셨습니다. 선생님께 ‘공부’란 어떤 의미일까요?
 

‘공부’란 단순히 지식을 머릿속에 넣고 아는 것이 많아지는 게 아닙니다. 공부는 자신을 절제하고, 가치 있는 일의 우선순위를 구분할 줄 알고, 시간을 관리하는 등, 공부를 통해 자기 자신을 연마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군가 나에게 불어넣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움을 찾아 나서야 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취한 공부는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해서 남 주는” 그런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제 인생의 ‘진짜 공부’가 이제부터 시작되는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쓰면서, 선생님의 인생을 쭉 돌아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인생에서 혹시 후회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왜 없겠습니까. 뒤돌아보면 참 많은 순간들이 아쉽고 후회되는 순간들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아쉬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공부를 다시 하러 가기 위해 제가 했던 행동들입니다. 제 신념도 중요하지만 주변도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너무나 미성숙하게 행동했던 과거의 제 모습이 후회됩니다. 그때 조금 더 성숙하고 또 유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책에서 대한민국의 학생들을 위한 애정 어린 비판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어떤 점에서 예전보다 낫고, 어떤 점에서는 좀 약한가요?


요즘 학생들은 외국어 능력이나 국제적인 감각 면에서 저희 때보다 훨씬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꿈을 계획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데는 상당히 취약합니다. 마치 ‘선택장애’에 빠진 사람들처럼요.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 자신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문제와 직결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획일화된 교육 방식의 결과물인 ‘일류대학 입학’과 ‘대기업 취업’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무엇을 가장 잘할 수 있는지를 찾아나가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래야만 ‘진짜 행복한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자아를 찾아야겠지요. 공부도 중요하지만 ‘나만의 목표설정’과 ‘동기 부여’가 먼저여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세계무대를 향한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2030세대 청년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다.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그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는 파울로 코엘료의 말을 기억합니다. 저는 천주교인이기 때문에 ‘온 우주의 도움’을 결국 신의 도움으로 생각하지만, 우주의 힘이든 신의 힘이든 사람이 무엇을 간절히 원하고 바라고 노력할 때 그것이 꼭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손길이 분명 있다고 느낍니다. 제가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성취 역시 하느님의 도움과 주변의 많은 분들의 배려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일 기회는 다른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끊임없이 꿈을 그리고 끊임없이 방법을 찾는 순간에 보이는 법입니다. 지금은 캄캄한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한 치 앞이 보이지 않고 불안하겠지만, “해낼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당신이 맞은 오늘을 지혜롭게 헤쳐나가길 바랍니다. 물론 힘든 순간도 있겠지요. 그럴 때에는 내 자신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며 주저앉지 말고, 우리가 간혹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듯 고통을 잠시 뒤로 미루는 법도 터득하길 바랍니다. 그렇게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졌을 때 다시 한번 도약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바를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다 보면 머릿속에 그리던 그 무대가 비로소 눈앞에 펼쳐질 거라 믿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놀라운 기적이 당신에게도 꼭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래도 꿈꿀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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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꿈꿀 권리한동일 저 | 비채
한국인 최초, 최우등 수료, 5개 국어 구사’와 같은 수식어를 가진 그이지만 이 책은 성공담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담에 가깝다. ‘꿈꿀 수 없는 사회’라는 딜레마에 갇힌 청년들을 위한 헌사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 이야기 속에는 현실과의 타협을 종용하던 가난과 끝이 보이지 않는 언어장벽을 넘어서야 했던 청년 한동일의 꿈과 인생, 끝나지 않은 도전과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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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외로움 때문에 강아지를 입양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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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혼자 있기 외로워서, 예쁘고 귀엽기 때문에,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좋을 것 같아서 개를 키운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해 버려지는 개는 평균 5만여 마리. 보호센터에 등록되지 않은 숫자까지 더하면 수치는 높아진다. 그토록 예쁘게 키우던 반려견은 왜 갑자기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려진 걸까. 문제는 반려견이 아니라 반려견을 기르는 사람이다. 반려견의 이상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그들의 목소리에 조금만 귀를 기울여도 반려견과 사람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의 저자 강형욱은 어릴 적부터 애견농장을 하는 아버지와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반려견과 어울릴 수 있었다. 그저 반려견들과 있는 게 좋아서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반려견행동 전문가가 됐고, 반려견 보호자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 반려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고치기 위해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를 집필하게 됐다. 이 책에는 건강한 강아지를 입양하는 것에서부터 시기별 배변교육, 서열훈련의 진실, 분리불안, 산책하기 등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개에 대한 상식과 교육 방법 등이 실 사례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강형욱-저자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 강형욱 저자

 

서열훈련, 복종훈련은 잘못된 상식


사람들이 반려견을 구할 때, 가장 흔하게 하는 실수는 무엇인가요?


질문에서부터 실수가 있습니다. 반려견을 구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가족을 맞이해야 하는 마음으로 입양해야 합니다. 이렇게 그냥 물건이나 새로운 패션같이 반려견을 구하려고 하는 게 문제고 실수 입니다. 가족을 카드 할부로 사지는 않습니다. 혹시나 아이를 입양을 해야 하는 가정에서 보면 입양을 하는 아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상처가 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알아보고 입양을 결정합니다. 반려견 역시 가족을 입양한다는 생각으로 했으면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반려견 인구가 1천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얼마나 많은 반려견들이 버려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반려견을 키우고자 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유의해야 하나요?


첫째, 강아지를 지금 꼭 키울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키우려고만 합니다. 그 뒤에 벌어질 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려견은 상품이 아닙니다. 나중에 키울 수 없다고 반품해도 되는 그런 게 아닙니다. 반려견에게 보호자는 부모와 같습니다. 신앙과 같습니다. 그들은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습니다. 그렇게 버림 받은 아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나의 외로움 때문에 강아지를 입양해서는 안됩니다. 환경이 안 되어 있는데 단지 본인의 외로움 때문에 입양하는 일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셋째, 앞으로 20년 동안 누군가를 책임지고 부양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책에서 ‘올바른 반려견 입양법’을 소개했는데, 반려견을 선택할 때 어떤 점을 유의 있게 봐야 하나요?


좋은 브리더를 만나야 합니다. 브리더는 반려견을 번식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좋은 브리더들은 이 일을 업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강아지를 미리 태어나게 해두고, 제고같이 강아지를 쌓아둔 뒤 강아지를 살 사람들을 찾거나 홍보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좋은 브리더는 좋은 부모견들 사이에서 좋은 강아지를 태어나게 해서 좋은 사람에게 입양시키고 그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그들의 목적으로 생각합니다. 좋은 브리더한테 강아지를 입양하기 위해서는 많이 까다롭고 힘들겠지만, 그런 과정이 없다면 강아지를 키우면 안되는 사람들이 패션같이 강아지를 입양할 것이고 흥이 떨어지면 강아지를 버릴 겁니다. 좋은 브리더를 만났다면, 당신이 선택할 것은 없습니다. 그 브리더한테 선택 받기를 기도하며 기다리면 됩니다.

 

서열, 복종훈련을 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질문 자체가 주의해야 할 점입니다. 서열훈련과 복종훈련은 잘못된 상식입니다. 서열훈련은 이미 잘못된 이론이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이미 10년도 전에 말입니다. 반려견에게 서열이라는 개념을 넣은 것은 늑대 무리에서 서열이 있는 것을 보고 발전시킨 것이지요. 그런데 야생늑대들은 서열이 없습니다. 동물원에 가둬 놓은 늑대 무리를 보고 인간이 유추한 것입니다. 인터넷을 보면 모두 서열과 관련해서 설명합니다. 어렸을 때 명확히 해줘야 한다. 서열을 몰라서 그렇다. 등등 말입니다. 모두 틀렸습니다. 전제가 틀린 이론을 아직도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강연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서열이라는 개념은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리시라고요. 복종훈련은 더더욱 필요 없습니다. 왜 복종시키려고 하는지요? 말 잘 듣는 인형을 만들고 싶은 겁니까? 반려견은 주인을 돋보이려고 사는 잇 아이템이 아닙니다. 생명입니다. 더 없이 인간을 사랑하고 따르는 그런, 생명입니다.

 

당신은개를키우면안된다

 

반려견이 사람으로부터 안정감을 느낄 때는 어떠한 행동을 해줄 때인가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옆에 앉아있을 때 입니다. 우리 사람은 그냥 뭔가를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게 제일 힘들지요? 필요 없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것이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들에게는 옆에 보호자가 있다는 것으로도 안정감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뭔가를 해준다고 생각하지만 반려견들 입장에서는 꼭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강아지들이 배를 보인다고 해서 모두 애교를 부리는 것은 아닙니다. 살려주세요. 하는 의미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애교를 부리는 것으로 생각해서 배를 만져줍니다. 불에 기름을 붓는 셈입니다. 뭔가 해주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독이 될 때가 많습니다.

 

최근 반려견행동클리닉을 운영하며, 눈에 띄게 행동이 좋아진 반려견의 예가 있다면.


주인을 공격했던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보호자에게 강아지를 억지로 만지지 말라고 했고 더 이상 강아지를 주인을 물지 않았습니다. 간단하죠? 사람들은 강아지 깨문다고만 생각하지 내가 얼마나 강아지를 못살게 했는지 모르고 있답니다. 강아지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문제를 표현합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냥 지나치다 보니 더욱 큰 문제가 됩니다. 사실 문제 행동이라는 건 거의 없습니다. 보호자의 행동이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의외로 쉽게 해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 클리닉에 데려와야 하나요?


사실, 모든 반려견이 상담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나][내가] 힘들고 괴로워야지 강아지의 행동을 상담 받으려고 합니다. 대부분 반려견을 교육하거나 상담 받으려는 초기 동기는 [내가]힘들어서 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은 [내가]하기 쉬운 교육방법만을 원하고, 교육을 중도에 하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과 상담을 하려고 했던 것도 내 마음이고 그 교육을 포기하는 것도 내 마음대로 입니다. 모든 반려견들은 교육과 상담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사람이 항상 무언가를 깨닫고 느끼고 살며 서로 위로해야 하는 것 같이 반려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현재 다올이, 첼시 두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반려견과 함께 사는 삶이 왜 행복한가요?


이 친구들은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줍니다. 항상 삶에 대한 용기를 주고, 웃게 하고 일어나게 해주죠. 이거면 충분히 행복합니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는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독설하고 있지만, 사실 반려견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반려견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그리고 책에서는 ‘반려견만 행복하게 키워야 한다’가 아니라 ‘반려견과 함께 사는 당신도 행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들이 주는 용기와 위로는 어떤 무엇과도 비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고 한결같은 그들의 영원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지를 묻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반려견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계신가요?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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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강형욱 저 | 동아일보사
저자가 무책임하게 개를 키우라마라 소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저자는 누구보다 더 많은 사람이 개와 함께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 저자는 15년 동안 국내는 물론, 호주, 일본 등에서 훈련사로 활동하고 유럽 등에서 연수를 받은 반려견행동 전문가다. 건강한 강아지를 입양하는 것에서부터 시기별 배변교육, 서열훈련의 진실, 분리불안, 산책하기 등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개에 대한 상식과 교육 방법 등이 실 사례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당장 오늘부터 반려견에게 바로 쓸 수 있는 저자의 15년 노하우가 담긴 이 책이 당신과 당신의 반려견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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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지향 “청춘, 나이보다 마음에 관련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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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가죽소파 표류기』의 주인공은 ‘수많은 쓸모 없는 주제의 동아리 중에서도 가장 쓸모 없는 걸 하는 동아리’에 가입한 ‘나’와 선배 ‘요조’, 그리고 18살에 여행을 시작해 4년째 세계를 떠돌고 있는 ‘카우치 서퍼’ 민영이다. 이들은 마치 ‘고아의 도시’와도 같은 공간, 학생들이 떠나 텅 비어버린 지방 대학가의 자취촌에서 함께 산다. 사회로의 진입을 꿈꾸며, 또 동시에 회피하며 청춘을 지나고 있는 세 사람. 현실에 표류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가도 결코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실제 청춘인 작가가 그린 풍경이기에 세 사람의 고민과 갈등, 혼란은 낯설지 않다. 하나의 정답, 하나의 방향이 존재할 수 없는 ‘청춘의 성장통’. 정지향 작가는 자신의 고민 속에서『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를 탄생시켰다.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이 정지향의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로 결정 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심사위원 전원의 마음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김미월 소설가는 “지금 이 시대 대학생이 쓸 수 있는 성장소설의 모범답안 같은 작품”이라고『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를 평했다.

 

“당선 통보 전화를 받은 것은 올 1월이었는데요, 돌이켜보면 그날부터 오늘까지 매일매일 새로 이 상을 받는 기분으로 지냈던 것 같습니다. 외출 준비를 하다가도, 친구들과 마주앉아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문득 놀라고는 했습니다. 제가 쓴 이야기를 많은 분들께서 읽게 되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이 감격스럽고 행복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좀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행복함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들은 조금씩 내려놓고 오랫동안 굳건히, 묵묵히 써나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백일장 키드였던 정지향 작가는 이제 전업작가를 꿈꾼다. 생활을 견디면서 오랫동안 소설을 쓰고 발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거창한 계획보다는, 당시에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나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나갈 계획이다.

 

그날의 문장은 그날에만 쓸 수 있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의 주인공은 작가님과 많이 다르지 않은 예술대 학생입니다. 작품의 출발이 궁금합니다.

 

스무 살 이후로 제가 느껴왔던 감정과 주변의 친구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을 소설로 잘 그려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20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고, 한편에서는 청춘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것들을 마주할 때마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와 닿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했어요. 어떤 세대를 누군가 단번에 아우르는 일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공감과 교류, 나아가 치료를 가능케 할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그 세대 속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청춘은 어떤 시기인가요?


나이보다는 마음에 관련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일반적으로 청춘이라 불리는 시기에 있다 하더라도 너무 일찍 무뎌진 누군가에게는 거추장스러운 말일 수 있으니까요. 알아왔던 것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무엇을 새로 깨닫는 일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없고, 깨닫기 위해서 원래 있던 자리를 벗어나 길을 떠나고,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용기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카우치 서핑을 한 경험이 있나요? 카우치 서핑을 소재로 다루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스무 살 이후로는 매해 한두 번 배낭을 멨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영국인 카우치 서퍼에게서 처음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카우치 서핑은 단순히 현지인들에게서 잠자리만을 얻는 것이 아니고,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누군가의 생활을 체험하는 일이므로 가장 적극적인 여행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여행지에서의 피로를 편안한 숙소에서 푸는 자유를 포기하고 낯선 이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몸을 사리지 않고 새로운 장소와 타인의 생활을 만나는 매력적인 그 여행법은 누군가의 젊은 시절에도 비유할 수 있을 듯했습니다. 저도 조만간 용기를 내볼 생각입니다.

 

“상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괴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매일 열심히 사랑해야 하는 것이었다.”고 말하셨는데요. 글도 마찬가지겠지요?


네. 중의적으로 읽히기를 바라며 쓴 문장입니다. 같은 글에 “그날의 문장은 그날에만 쓸 수 있다”고 덧붙였는데요. 시간이 흐른 뒤에 더욱 명확하고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날의 불투명한 시선이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요. 매일 열심히 사랑하는 것이든, 매일 열심히 쓰는 것이든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지내겠다는 다짐입니다.

 

99쪽을 보면, 학생들이 경쟁하듯 습작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혹시 작가님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까요? 문창과 학생들의 생활이 궁금합니다.


혼자 시간을 견뎌야 하는 글쓰기 작업의 특징 때문인지, 문예창작과에 다니는 학생들은 다소간 개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 전체에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긴장감은 없지만, 열심히 글을 쓰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경쟁이 붙곤 합니다. 하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열심히 작업을 하는 학우들이 점점 적어집니다. 대학사회에 만연한 위기의식 속에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계속 좇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소설의 화자 '나'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지요. 그런 시기를 오래 앓았던 제 경험을 토대로 썼습니다.

 

소설가 김미월은 “이 작가는 좋은 소설이 이야기의 집인 동시에 언어의 집이기도 하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그만큼 한 문장 한 문장 공을 들였다는 점에도 신뢰가 갔다.”라고 문장에 대한 칭찬을 하셨는데요. 이번 작품을 집필하면서, 어떤 문장들을 쓰고자 노력하셨나요?


읽어나가기에 부담 없이 편하면서도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라고 생각했는데, 먼저 읽어준 친구들이나, 책이 나온 뒤 독자들께서 우울이나 슬픔이 많이 느껴진다는 얘기를 해줬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스스로의 상처를 덤덤한 듯 포장해왔던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도리어 이해를 받은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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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일기를 쓰고, 창 밖을 보다 보면


고등학생 때부터 습작을 시작했고, 청소년 잡지 <풋,>에 단편소설을 싣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문학소녀였나요? 글을 좋아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과, 일기나 편지를 쓰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유별난 독서광도, 교내 백일장마다 상을 받는 문학소녀도 아니었어요. 중학교 시절, 제가 겪은 몇 가지 충격적인 일들을 일기장에 쓰는 대신 꾸며낸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써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때 그간 읽어왔던 소설의 형식을 조금씩 이용해본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 이후로 조금씩 습작을 했고, 예술고등학교의 문창과에 진학한 뒤로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가 명확해졌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은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작가는 자주 바뀌어왔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을 어릴 때부터 좋아하기는 했지만, 소설이라는 장르로 글을 쓰고 싶다는 확신이 든 것은 신경숙 선생님의 『외딴방』을 읽은 뒤였어요. 김연수 선생님의 산문은 습작을 해오는 내내 작가로서의 태도뿐 아니라 삶과 사람을 마주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데 좋은 지침이 됐고, 소설 역시도 아주 좋아합니다. 유디트 헤르만과 다니엘 켈만과 같은 현대 독일작가들의 젊고 감각적인 소설에 관심이 있습니다.

 

평소 주로 쓰게 되는 소재가 있나요?


최근 쓴 소설의 소재나 주제는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의 인물들이 사회로 진입하지 못하고 맴도는 장소들과, 여행, 성정체성에 대한 혼란이나 연애 같은 것입니다.

 

작가님에게 책, 소설, 문학은 어떤 존재인가요?


삶이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생활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집과 거리를 오가고, 크고 작은 생각을 하는 일상과 그것을 통해 쓰고 읽는 일이며 삶을 이해해나가는 일이 나눠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대학생이신데요. 요즘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다른 대학생들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데, 저에게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글을 계속 쓰고 싶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고,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할 수 있을까, 그 지난함을 이겨갈 힘이 나에게 있을까, 하는 질문을 자주 합니다.

 

앞으로의 버킷리스트가 있나요?


몇 해 전부터 혼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 철도의 길이가 지구 둘레의 사 분의 일이라고 합니다. 매일 아침 새로 시계를 맞추고, 일기를 쓰고, 창 밖을 보다 보면 지구의 크기를 조금은 체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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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가죽소파 표류기정지향 저 | 문학동네
잔잔한 감성 속에 숨어 있는 젊은 세대의 뼈저린 현실인식이 돋보이는 이 소설은 사랑과 우정, 가족 간의 갈등, 사회로의 진입 실패와 재능에 대한 회의, 정체성의 혼란 등, 이 시대 젊은이들의 고민을 정교한 플롯과 다양한 에피소드로 설득력 있게 전개해나간다. 예리하면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는 세심한 시선으로 동 세대 젊은이들의 성장통을 성공적으로 소설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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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 “동의보감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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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관련 서적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원문을 그대로 해석해놓은 이른바 한의학 전공 서적과 《동의보감》의 내용을 군데군데 인용해서 건강에 관련된 내용을 풀어주는 한의학 서적, 그리고 《동의보감》과 아무 상관없이 그냥 ‘동의보감’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인 책이다. 『동의보감으로 말하다』의 저자 오철은 《동의보감》의 이론적 핵심인 ‘내경편’의 내용을 세세하게 다루고 싶어 『동의보감으로 말하다』를 집필했다.

 

오철 저자가『동의보감으로 말하다』를 쓰면서 지킨 원칙은 하나. ‘단순하게 쓰기’였다. 어차피 전문가가 아닌 이상 접해볼 일 없는 맥법과 침구법, 즉 맥을 통한 진단과 침과 뜸을 통한 치료법은 모두 빼 버렸고, 일반인이 보편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핵심을 소개했다. 《동의보감》의 원문을 읽다 보면 다소 어려울 수 있으나. 저자 특유의 개성 있는 문체가 책의 흥미를 더한다.

 

“사실 책의 분류를 ‘건강’이 아니라 ‘고전,인문’에 속하게 하려는 생각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건강’ 관련 서적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런데 그냥 《동의보감》은 어쩔 수 없이 ‘건강’에 속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아직까지 저에게 존재하는 이 책의 핵심은 고전 《동의보감》에 대한 일개 한의사의 풀이입니다. 『동의보감으로 말하다』를 처음 읽을 때는 원문을 모두 생략하고 있는 것이 훨씬 재미있을 겁니다. 원문까지 꼼꼼히 읽다 보면 화병이 날지도 모르거든요. 하지만 자신의 건강을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도움이 되는 필독서가 될 겁니다.”

 

10문10답-오철

 

손바닥으로 얼굴만 비벼도 피부가 달라진다


한의학은 어렵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우리가 《동의보감》을 알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문에서도 다뤘지만 의학은 자연과학의 하나이며 자연과학은 그 시대에 인정되는 모든 현상에 대한 이치를 해석하는 도구입니다. 어려운 걸 알면서도 이 책을 내게 된 이유는 조선 중기 당시의 자연과학을 풀어내는 키워드가 바로 《동의보감》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현대 한국인에게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 혈, 오장육부, 음양오행이 어려운 이유는 근대화 과정에서 그 당시의 자연과학이 서양의 자연과학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고, 우리는 그 당시의 자연과학이 설명 불가한 것 또는 미개한 것이라고 믿고 무시해버렸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멍청하지 않았어요.

 

지금 우리가 전기의 - 극을 이해하면서 음양을 어렵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같은 극은 밀어내고 다른 극은 끌리잖아요. 그리고 그 중에서 더 힘이 센 쪽으로 중심이 이동되죠. 그게 바로 음양의 편차가 만들어내는 자연과학입니다. 쉬워요. 그런 단순함을 시작으로 몸과 마음의 흐름과 변화를 읽어내고 치료법을 제시하는 게 바로 동양의학입니다. 그 절정에 《동의보감》이 있고요. 저는 우리가 모두 《동의보감》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몽상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음양의 변화와 그 도구를 이용한 현상의 설명, 인체 생리 병리의 변화에 따른 설명이 한의학적으로 얼마나 재미있을 수 있는지를 현대인들이 알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습니다. 단, 그 풀이가 쉬워야겠죠(웃음). 일단 한자부터 나오면 갑갑해지니까요.

 

《동의보감》은 저자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로컬에 개원하고 환자를 보면서 다시 원전을 펼쳐보는 것은 참 재미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임상에서 환자를 보는 경험이 축적될수록 원래 한의학이 갖고 있던 핵심을 점점 잊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그 느낌이 강해졌죠. 그러다 보니 본질을 다시 찾고 싶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 멀리 돌아가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려는 회귀본능과 같습니다. 그 중심에 《동의보감》이 있죠. 참고로 학부 시절에 가장 싫어했던 과목이 바로 원전이었습니다(웃음). 너무 재미가 없잖아요.

 

여름철입니다. 책에서 소개한 건강관리 실천법 중에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실천법을 추천한다면.


여름철을 떠나서, 책에서 다룬 내용 중 ‘고치연진법’이란 것을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치아를 맞쪼고 침을 고이게 해서 삼키는 건데요. 이거 의외로 건강에 좋습니다. 그리고 손바닥을 따뜻하게 해서 얼굴을 비비는 방법은 하루 10분씩 딱 한 달만 해도 피부에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물론 트러블이 있는 피부는 안 됩니다. 

 

속을 다스려야 피부가 좋아진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무얼 먹어도 피부가 좋습니다. 피부에 가장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은 무엇인가요? 여성들의 최대 고민인 피부를 《동의보감》에서는 어떻게 관리하는 게 좋다고 말하고 있나요?


위에 설명을 드린 방법이 안티 에이징에 가장 효과적입니다. 안면부는 아주 자잘한 근육들이 많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람은 자기가 쓰던 근육만 반복적으로 쓰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그’만의 표정을 만들어내는 이유죠. 손바닥을 따뜻하게 해서 비비세요. 단 막 비비지는 말고 천천히 부드럽게 비비세요. 그리고 피부에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이미 세상 모든 사람들이 먹고 있겠죠. 그나마 짜지 않게 먹는 게 염증성 병변이나 부종에는 가장 기초적인 해결책입니다.

 

요즘 이명환자가 많이 늘고 있는데, 이비인후과에서는 별다른 원인이 없다고 합니다. 《동의보감》 에서 보고 있는 ‘이명’의 원인과 해결방법이 있나요?


이명은 《동의보감》 <외형편> ‘이문(耳門)’에서 다룹니다. 물론 거기에만 나오는 건 아니고 모든 이명이 발생하는 다른 질환에서도 언급되죠. 그만큼 아주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인데요. 가장 보편적인 예로는 신정(腎精)이 부족하고 음(陰)이 허해져서 화(火)가 동했기 때문입니다. 말이 어렵지만 풀어서 보자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만성적인 체력과 정신적 소모가 누적된 경우 우리 몸에서는 신장이 주관하는 정이 허하게 되는데 그 정이 허해지면 불이 위로 떠서 불규칙한 열을 발생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눈이 건조해지고 충혈이 되거나 두통이 생기기도 합니다. 또 귀에서 소리가 나거나 입이 건조하게 될 수 있죠. 해결법은 그 원인에 따라 다양하게 접근해야 하며 바로 위의 경우와 같다면 첫 번째 치료가 ‘안정’이고 한약 처방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에 따른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동의보감에서 발견한 건강비결 중에서 저자님이 실천하시고 있는 것이 있나요?


위에서 설명해 드린 ‘고치연진법’과 맨손 마사지인데요. 저도 가끔 합니다(웃음).

 

 

동양과학에 관심이 있다면 흥미로울 책


<동의보감 읽어주는 남자>를 3년째 진행하고 계신데요. 어떻게 기획된 프로그램인가요?


2011년 겨울, 당시 한방건강TV의 신입 PD가 《동의보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프로젝트를 구상했어요. 동영상으로 《동의보감》을 남겨보자는 의도였죠. 참고로 그 PD는 2개월 정도만 촬영하고 퇴사했습니다. 원래는 저보다 훨씬 학식이 높으신 선배님께서 하셔야 하는 프로그램인데 이거 한의사들은 알거든요. 몇 년 걸릴지 모른다는 거요. 그래서 다들 섭외를 마다하셨는데 그냥 제가 한다고 했어요. 이참에 《동의보감》이나 다시 읽자는 객기였죠. 근데 끝나질 않아요(웃음). 어제 촬영한 내용이 669회였습니다. 아마 1,000회 넘어갈 것 같아요. 앞으로 2년 이내에는 끝내야죠. 청취자의 반응은 모르겠습니다. 한방건강TV가 케이블TV라서요. 지상파 같은 빠른 반응은 아니죠. 어떻게 보면 다행이죠.

 

한의사이면서 화접몽밴드의 보컬, 대중음악작곡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음악과 한의학의 매력을 비교해본다면?


음악도, 한의학도 너무 큰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저는 음악도 재즈나 국악쪽이라서 주류 음악 뮤지션이 아니고, 의학에서도 서양의학이 아닌 한의학이에요. 아마도 저는 비주류만 전공하는 팔자인가 봅니다(웃음).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별다른 게 없어요. 그냥 어릴 적부터 꿈이 작곡가가 되는 거였기 때문에 그냥 자연스럽게 꾸준히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중요한 점은 어떻게 시작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 인 것 같습니다. 한의사도 뮤지션도.

 

『동의보감으로 말하다』를 특히 어떤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농담 삼아서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불면증에 좋은 처방이야.” 또는 “책이 꽤 두툼하니 냄비 받침으로 추천한다.” 그러죠. 저는 동양과학에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딱히 한의학 서적이라고 하기보다는 그 당시의 자연과학 중 일부인 의학을 풀어낸 책이니까요. 현대과학이 상당히 치밀하고 엄청나 보이지만 실제 삶에서 보면 내 마음 하나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게 가능한가요? 그런데 당시의 의학은 그것을 중요하게 보고 건드렸습니다. 그런 게 재미있어요.

 

다음 책은 피부에 관련된 내용을 쓸 예정이시라고요.


피부 질환에 관련된 한의학 전문 서적은 이미 집필이 많이 진행된 상황입니다. 수년 전부터 쓴 거라서요. 근데 저 혼자 책을 내는 게 별로인 것 같아서 다른 원장님들과 함께 공동 작업 중입니다. 그 책은 워낙 전문 서적이라서 아마 한의대생이나 한의사들이 대상이 될 것이고요. 그 책을 기반으로 쉬운 책을 새로 쓸 계획입니다. 제목은 ‘19금 여드름’이라고 미리 정했어요(웃음).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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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으로 말하다오철 저 | 도어즈
이 책은 한민족의 대표적인 건강 고전 《동의보감》〈내경편〉202개 주요 원문 다시 읽기를 통해 지금 우리가 잊고 있는, 진실로 소중한 양생의 원칙들은 과연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더불어《동의보감》의 핵심인 독특한 인체 건강 유지의 원리부터 건강 관리 실천법, 각종 뛰어난 한의학 처방들까지 섭렵한다. 특히 한의사이며 대중음악 작곡가이기도 한 저자 특유의 젊고 감각적인 해설은《동의보감》읽기에도 새로운 세대의 도전이 시작되었음을 당당하게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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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 “『데미안』을 읽고 「데미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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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문학을 만나면 어떻게 달라질까? 평소 고전문학 마니아를 자처하는 가수 루시아(심규선)는 올해 5월 발매된 앨범 <Light & shade chapter1>의 타이틀곡 「데미안」을 헤르만 헤세의『데미안』을 읽고 영감을 받아 작업했다. 정규 1집<자기만의 방>을 버지니아 울프의 동명 소설에서 이름을 따오는 등 문학과 함께하는 작업을 즐겨 했던 루시아. 꿈결출판사는 올 컬러 일러스트로 만나는 우리 시대의 고전 시리즈 ‘꿈결 클래식’ 1권 『데미안』을 펴내며, 루시아에게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했다.

 

콜라보레이션 앨범 타이틀은 ‘Lucia : 꿈결 속의 멜로디’다. 첫 번째 타이틀 곡은 ‘꿈결 클래식’ 시리즈첫 번째 도서와 같은 제목의 「데미안」.<Light & shade chapter1>의 타이틀 곡 「데미안」이 파스텔뮤직의 또 다른 아티스트 ‘센티멘털 시너리 리믹스 버전’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정식 명칭은 「데미안(Sentimental Scenery Remix Ver)」이다. 루시아는 꿈결 클래식에서 새로운 문학 작품을 출간하는 대로 그 작품에 어울리는, 혹은 영향을 받은 곡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꿈결 클래식에서 펴낸『데미안』은 수십 권의 문학서와 철학 인문서를 번역한 독일어권 최고의 번역가이자 독문학자 박민수 교수의 섬세한 번역과 상세한 해제가 돋보인다. 꿈결 클래식은 기존 번역본들과 비교하여 독일어 번역에 충실한 동시에 우리말의 맛을 살리고자 했다.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번역과 해제를 맡은 ‘꿈결 클래식’은 근간에 『햄릿』, 『도련님』등을 펴낼 예정이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진실하게 하는 것


꿈결 클래식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꿈결출판사 마케터 님께 장문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은 것이 가장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올해 5월에 발매된 <Light & shade chapter1>의 타이틀곡이었던 「데미안」을 들으시고, 마침 꿈결출판사에서도 새로운 번역의 『데미안』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알려주시면서 콜라보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셨어요. 저 또한 자칭 ‘고전 마니아’라, 가독성을 높인 새로운 번역에 대한 기대감이 컸어요. 또 음악으로써 제가 동경하는 문학작품들에 오마주 작업을 해 볼 수 있는 멋진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웃음).

 

정규 1집<자기만의 방>을 버지니아 울프의 동명 소설에서 이름을 따오는 등 문학과 함께하는 작업을 많이 하셨는데요. 평소 좋아하는 작품이었나요?


20대 중반의 나이에 나름대로 늦깎이 데뷔를 했는데, 당시 머릿속에 물음만이 넘쳐나고 대답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옳은지 혼란만 가중되고 있던 시절에 우연히『자기만의 방』을 다시 읽게 되었고, 그때 그 책이 여류작가의 길을 시작하던 저에게 너무나 많은 해답이 되어주었기에 저 또한 누군가에게 그러한 음악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문체는 다정하고 따뜻하며, 마치 강물 같고, 어머니나 혹은 손 위 자매가 다독이는 것처럼 저에게 차분한 안정을 전해줬어요. 제가 가려는 길을 먼저 걸어 간 선배 격으로 그녀의 작품을 받아들이게 되었고요.

 

2집 타이틀곡을 「데미안」으로 정한 이유를 “자기 자신이라는 알을 깨고 더 넓은 세계로 날아가고픈 바람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밝히셨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처음부터 설정을 갖고 작업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성인이 되면 여러 가지 책임이나 갖가지 사회적 규약에 얽매이게 되는데, 필요를 쫓을수록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게 되잖아요. 제가 작업을 하면서 염두에 두는 것, 또한 단지 그것 하나라고 생각해요. 유행하는 것을 쫓지 않고, 특정한 누구를 모방하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억지로 짜내지 않는 대신에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진실하게 하는 것. 그런 부분에 노력을 기울였더니 자연스럽게 이러한 가사와 멜로디가 나왔어요. 그러면 저도 그 때 생각하는 거지요. ‘아,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구나. 내 마음속에 이러한 열망이 존재하는 구나’하고요.

 

언제『데미안』을 처음 읽으셨나요?


중학생 때였어요. 필독도서 중 한 권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했는데 단지 '제목과 작가 이름이 멋있어' 라는 생각으로 골랐다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큰일났다' 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곡 작업을 위해『데미안』을 다시 읽었을 때는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정말로 좋은 책은 작가의 삶과 그 삶에서 얻은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작가 그 자신의 생명보다도 오래 살아남아서 계속 향기를 낸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삶의 어떤 시기에 읽어도 그때마다 매번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아직도 『데미안』을 1/3 정도만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고,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도 다시 읽을 때마다 서서히 깨닫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외에 좋아하는 고전문학은 무엇인가요?


셰익스피어를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각종 인터뷰에서 꽤 자주 이야기 했고, 헤세를 포함해 독일문학 자체에도 늘 특별한 매력을 느껴왔습니다. 대표되는 토마스 만이나 헤르타 뮐러도 계속해서 천천히 되새김질 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작가를 꼽자면 바로 슈테판 츠바이크에요. 츠바이크의 책은 이것 저것 마구잡이로 꽂아놓지 않고 책장 한 켠에 그의 코너를 따로 만들어 둘 정도로 열렬히 동경합니다. 작품으로써 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존재에요. 짝사랑 하듯이 정말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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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외에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강물이나 바다처럼 그 자체로 살아있는 자연적 경관 앞에서 가장 유연한 상태가 된다고 느껴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 또한 번화한 곳보다 고요한 산 길을 좋아하고, 밤하늘에 별이 잔뜩 보이는 그런 곳에 머물 때 가장 많은 영감을 전달받는 것 같아요. 그럴 수 없을 때 문학이나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찾고요.

 

음악과 문학은 각각 어떤 존재인가요?


사실 그것들은 저에게 하나입니다.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지요. 한 쪽이 없다면 한 쪽이 불행해질 것 같고, 시와 노래는 같은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좋은 책은 멋진 교향곡 같고, 좋은 음악은 마치 책처럼 읽히니까요. 취미로 서로 잘 어울리는 문학작가와 음악가를 짝 짓는 것도 좋아합니다. 헤세는 드뷔시와 잘 어울리고, 프랑수아즈 사강은 카를라 브루니와 잘 어울린다는 식으로요. 

 

직접 곡을 쓰고 프로듀싱을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요. 어떤 작업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요?


마스터링 할 때요? 이제 다 끝났으니까. 사실은 녹음실에서 녹음할 때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부스 안에서 종종 그래, 난 이 일로써 가장 나답고 계속 해서 이 일을 해야 해. 하는 생각이 치밀어 오를 때가 있거든요.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고은 시인의 시선집과 릴케를 같이 읽고 있어요. 어떤 면에서 완전히 다르지만 신기하게도 아주 잘 어울려요. 릴케는 아무래도 두이노의 비가 위주로 많이 읽었었는데 최근에는 '완성시, 프랑스어로 쓴 시' 모음을 더 자주 읽고 있어요. 고은 시인의 시는 고은 시인 당신처럼 너무 멋져요. 전에 그 분의 낭독회에서 노래를 할 기회가 생겨 책에 사인을 받았는데 곁에 있는 내내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나요?


다른 이슈나 외양이 아닌 자신의 작품으로써 존재, 증명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음악적으로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저의 면면이 많이 남아있는데, 늘 새로운 음악으로 다가가고 싶고, 그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적어놓고 보니 욕심이 많네요(웃음).

 

책을 출간할 계획은 없나요?


지난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두 달여간 다녀왔는데 부끄럽지만 그때의 경험을 책으로 출간하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어요. 아무래도 음반작업에 우선순위를 두다 보니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고 있지만, 음악이 아니라 글을 통해서 좋은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도 한 가득 있으니까 천천히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보니 해야 할 일이 엄청 많이 있네요.

 

음악 팬들과 문학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피아노 앞에 앉고 있습니다. 팬 분들 덕분에 루시아와 루시아의 음악이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날이 갈수록 더 많이 통감하고 있고요. 저 역시 팬 분들을 통해 항상 많은 위로를 얻는다는 말씀 전해드리고 싶어요.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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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헤르만 헤세 저/박민수 역/김정진 그림 | 꿈결
이 작품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가 열 살부터 스무 살 무렵까지 걸어간 삶의 행로를 묘사하고 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과의 만남을 통해 ‘내면으로의 길’을 걸어가고, 마침내 자신의 ‘자기 발견’이라는 인생의 목표에 도달한다. 꿈결 출판사는 청소년과 성인을 아우르며 전 세대에게 사랑받는 명작을 선별하여 꿈결 클래식을 출간한다. 그 첫 번째 책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성장소설의 고전 《데미안》을 펴낸다. 고뇌와 깨달음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싱클레어의 이야기는 100년을 뛰어넘어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현재형이다. 그것이 우리가 《데미안》, 그리고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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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서 코끼리 만날 때, 이렇게 해주세요 - 최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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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만나기 전과 후의 삶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최종욱 수의사. 『달려라 코끼리』는 동물원에서 코끼리들을 일본으로 보내며 아쉬운 마음에 쓰기 시작한 책이다. 코끼리를 보내기 싫었던 마음이 책에도 묻어 있어서 일까. 초고는 부리나케 썼지만, 책을 완성하기까지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최종욱 수의사는 “코끼리들이 우리에게 왔었다는 걸 많은 이들이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달려라 코끼리』를 썼다”고 말했다.

 

“코끼리는 늘 제가 동경해오던 동물이었어요. 동물원에서 돌보게 된 뒤부터는 저의 친구이자 동료이기도 했지요. 저는 코끼리와 함께 있는 동안은 언제나 행복했어요. 해야 할 일도 많았지만, 그런 일이 지루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지요. 코끼리들의 그렁그렁한 눈초리와 커다란 몸집을 대하는 것이 곧 하루의 즐거운 시작이자 마무리였지요.”

 

최종욱 수의사는 광주 우치동물원의 다양한 동물들의 사연을 소개하며 SBS <TV 동물농장>에 단골로 출연했고, 다양한 매체에 동물 관련 칼럼을 써서 대중들에게도 친숙하다. 2012년에는 우치동물원에서 돌본 다종다양한 동물 이야기를 모아 『동물원에서 프렌치 키스하기』를 출간했다. 어린이책 작가로도 활약하여 『동화 속 동물들의 진실 게임』,『우리 동물원에 놀러 오세요』 등 여러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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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와 보낸 즐거운 한때. 매일 아침 회진을 돌며 낯을 익힌 덕분에,

코끼리들은 내가 다가가면 알아보고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코끼리,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존재


큰 동물이 좋아서 야생 동물 수의사가 되셨다고요. 


어렸을 적부터 크고 묵직한 것을 좋아했어요(웃음). 개구리보단 두꺼비를 좋아하는 식이었지요. 친구들도 대체로 저보다 덩치가 큰 친구들을 사귀었던 것 같아요. 제게 형이 없어서인지 형처럼 의지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동물 역시 하마나 코끼리처럼 크고 무게감 있는 동물들이 더욱 마음에 들어옵니다.

 

코끼리와 함께한 시간 중에 가장 뜻 깊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수의사로서 가장 보람찬 순간은 코끼리 두 마리가 무사히 출산을 하던 순간입니다. 사육 환경에서 낮은 확률을 뚫고 새끼 코끼리가 탄생하고, 또 그 광경을 제 눈으로 관찰하면서 제 손으로 직접 새끼를 받았던 경험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사실 코끼리들은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그저 좋은 존재였어요. 아침에 동물원으로 출근해서 코끼리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늘 마음이 충만해졌어요. 코끼리가 거기 있고, 내가 일상으로 볼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언제나 좋았지요. 

 

코끼리와 생활하면서 많은 소통을 하셨는데요. 사람과 닮은 점이 있을까요?


코끼리와 사람은 사회성이나 감정, 모성애가 풍부하다는 점이 많이 닮았어요. 코끼리는 덩치는 크지만 초식동물 특유의 예민함이 있고 감정이 아주 섬세해요. 또 암컷 중심의 무리 생활을 하기 때문에 모성애도 강하고 사회성도 높지요. 하지만 저는 코끼리와 사람의 닮지 않은 면이 더 좋아요. 코끼리는 늘 한결같고 누구든 차별하지 않고 자기를 좋아해주는 만큼 다가오지요. 사람은 늘 변화해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는데, 동물들은 대체로 마음이 한결같지요. 아마 그런 점들이 제가 동물들과 함께하고 있는 이유일 겁니다. 

 

우리가 코끼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은 대부분 동물원일 텐데요. 어떻게 코끼리와 인사하는 것이 좋은가요?


동물원에 오는 사람들은 늘 액션을 원해요. 오랜만에 오는 동물원이니, 동물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요. 하지만 동물원의 코끼리는 크게 움직이는 것이 하루에 몇 번밖에 되지 않아요. 대부분의 시간은 조용히 명상을 하지요. 그러니 동물원에 오시면 코끼리처럼 차분히 앉아서 한참 동안 그저 바라봐만 주세요. 그러고 돌아간다면 마음속에 잔상으로 남을 거에요.

 

동물 복지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오해와 편견, 그리고 알아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한 동물을 보호하고 위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이 동물 복지의 전부는 아니겠지요. 더욱 신경 써야 할 것은 범지구적인 동물 학대와 동물 멸종을 부추기는 일들을 나의 중요한 일로 인식하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범세계적인 차원의 협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컨대 호랑이나 곰이 멸종해서 우린 편리하게 산에 갈 수 있게 되었지만 이건 오직 인간만을 위한 일이니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지요. 한 번 동물과 인간의 공생이 무너진 자연에 다시 공생이 들어서기는 정말 힘들어요. 어떻게 다시 더 많은 동물들과 공생할 수 있을지 방법을 모색해야 해요. 그러자면 각 동물들의 생태에 대한 공부도 좀 더 많이 해야겠지요.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예쁜 동물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동물들과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지 더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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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야생동물학 강의를 해오셨는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제가 느끼는 만큼 청중들에게 잘 전달하지 못해서인지, 강의를 나가도 청중들이 질문을 많이 던지지는 않더군요(웃음).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던 때라면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각장애 학생들과 ‘장님코끼리 만지기’ 프로그램을 할 때만큼은 달랐거든요. 코끼리를 만져본 아이들은 한 시간 동안 정말 수많은 질문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더군요. 코끼리는 왜 코에서 바람이 나와요?, 코끼리 피부엔 왜 털이 없어요?, 코끼리는 왜 주위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요? 등등 정말 많은 질문을 받았지요. 특히 동물도 장애가 있나요? 라고 물었던 학생은 정말 잊히지 않아요. 코끼리에 대한 아이들의 궁금증은 그 자체로 제게 커다란 감동이었습니다.

 

시각장애 아동들을 대상으로 ‘장님코끼리 만지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가장 인상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나요? 코끼리와 함께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면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으신가요?


장님코끼리 만지기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할 때는 사실 큰 의미를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코끼리를 만져볼 수 있었으면 한다기에, 우리 코끼리들은 잘 조련된 코끼리들이니 내가 조금만 거들어주면 충분히 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부담 없이 초대했지요. 장애가 있다고 해서 동물원에 못 올 이유도 없고요. 그렇게 시작한 것이 큰 이벤트가 된 것이지요. 그래서 정말 기뻤습니다. 제 작은 배려가 여러 사람의 인생에 보탬이 되었다는 것이 정말 뿌듯했어요. 나중에 아이들이 만든 코끼리 작품을 보면서 정말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내가 눈으로도 보지 못한 코끼리를 더 정확히 보았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었지요.

 

딱히 다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싶지는 않고 이 프로그램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나중에 코끼리 말고 다른 동물들과도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어요.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들에게도 동물과 교감하고 동물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치동물원에 남은 코끼리와 떠난 코끼리들의 근황을 전해주셨는데요. 앞으로는 어떤 소식들을 들려오기를 바라시나요?


사실 코끼리들이 우치동물원을 떠난 이후로, 안팎에서 우울한 소식들이 계속 들려와서 저도 많이 슬픕니다. 우치동물원에 남은 두 마리 코끼리도 그다지 즐겁게 지내고 있지 못하고, 일본으로 간 코끼리들도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본으로 함께 간 조련사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럴수록 사람들이 더 정성스레 돌보아주어야 하는데, 제가 직접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지요. 어디에서든 코끼리들이 제 수명대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제 소망이지만, 우치동물원에 남은 코끼리들을 위해 현지인 출신의 전문 사육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지켜본 바로는, 어릴 때부터 코끼리와 함께 자란 전문 사육사, 조련사 들은 코끼리들의 복지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 전문가들이 올 수 있다면, 그들을 후원해주고 싶어요.

 

수의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보통 수의사라고 하면 흰 가운을 입고 동물병원이나 동물원에서 일하는 수의사를 떠올리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에요. 수의사는 살처분, 도축장 같은 용어들이 쓰이는 곳에서도 많이 근무합니다. 동물을 만날 기회가 없거나 죽은 동물만 만나야 하는 연구소에서 근무하기도 하지요. 저는 동물원에 오기 전에 대관령 목장에서 일한 적도 있는데, 그때 제 모습을 보고 저희 어머니가 울면서 돌아가시기도 했어요. 온통 오물을 뒤집어쓴 채 일하고 있었거든요. 저는 그런 생활도 좋았지만 남이 보기에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지요. 그러니 막연히 동물을 좋아한다고 해서 수의학과에 진학하면 실망할 수도 있을 거예요. 사실 저 역시 그런 이유로 수의학과에 진학한 뒤로, 많이 헤매기도 했지요(웃음). 수의사가 되고 싶다면, 수의사가 되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동물원을 떠난 지금의 삶이 나그네 인생처럼 여겨진다고 하셨는데요.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동물원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일하는 동안 동물원이 제게 꼭 맞는 옷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동물원으로 환영 받으며 돌아가고 싶어요. 동물원 수의사도 공무원 신분이라 발령을 제 마음대로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시 돌아간다면, 좀 더 재미있고 깨끗한, 그리고 동물도, 사람도 즐거운 동물원을 만들고 싶어요.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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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코끼리최종욱,김서윤 공저 | 반비
이 책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코끼리에 대한 수의사의 무한한 애정이다. ‘코끼리를 만나기 전과 만난 이후의 나는 다른 사람인 것 같다’고 고백하는 수의사는 코끼리에 대한 애정을 곳곳에 쏟아낸다. 그 애정은 저자가 직접 코끼리를 돌보기 이전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조선 시대의 코끼리 관련 기록과 비극적 최후를 맞은 창경원 코끼리의 사연 등 역사 속 코끼리의 발자취를 추적하고, 코끼리 탈출 사건 때의 언론 보도를 찾아 분석해 코끼리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푸는 등 코끼리를 올바로 설명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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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유화열, 멕시코에서 보낸 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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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는 지리적으로도 멀지만, 정서적으로도 멀다. 세계적인 휴양지 칸쿤, 월드컵 단골 출전국, 정도가 생각나지만 아직까지는 멕시코의 역사나 문화에 친숙하지는 않다. 이런 멕시코로 한 여성 도예가가 공부를 위해 떠났다. 여전히 유학이라 하면 유럽이나 미국을 떠올리는 한국에서 그녀의 선택이 예사롭지는 않은데, 좀 더 생각하면 납득할 만한 선택이다.

 

멕시코는 유명 화가 프라다 칼로를 배출한 곳이다. 원주민과 백인 정복자의 역사가 뒤엉키고 초강대국 미국과 복잡한 관계 속에 발전한 멕시코는 문화적으로도 독특하면서도 풍성한 나라다. 『색의 나라 멕시코』는 멕시코에서 머문 7년 간의 경험을 소개한 책이다. 저자인 유화열 도예가는 멕시코 역사를 공부허러 간 남편을 만날 생각으로 멕시코로 건너갔다.

 

대책 없이 시작된 이국땅에서 신혼생활을 겪고 두 아이를 낳으면서 여러 고비도 맞았지만 멕시코의 자연과 문화, 예술에서 위안을 얻고 도취됐다. 도예가가 겪은 멕시코는 책 제목처럼 색이 강한 곳이었다.

 

유화열

 

어떻게 지내셨나요.


요즘에는 브라질 현대미술가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올 가을까지 마무리를 하려고 생각 중인데, 걱정은 잔뜩인데 진행이 더디네요. 『색의 나라 멕시코』때도 그랬지만 늘 마감을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추기 위해 허우적대며 살았던 것 같아요.

 

멕시코로 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멕시코에 가게 된 건 제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였어요. 책의 서두에도 썼지만, 결혼 때문이었어요. 대학 때 한 남자를 알게 됐는데, 그 사람은 스페인어과를 전공했고 그 쪽에선 스페인어권 나라로 유학이나 해외파견이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책의 전반부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셨고, 나머지 절반은 멕시코의 예술 쪽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서술하셨는데요. 독자들이 어떻게 이 책을 읽어줬으면 하나요.

 

독자에게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지입니다. 멕시코 미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편견 없이 봐 주었으면 해요. 흔히 뉴스 사회면에서 나오는 사건사고를 통해 멕시코에 편견을 가지게 되는데, 그런 편견에 가려지지 않고 그들의 미술을 봐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출산을 전후로 작품 세계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만 해도 갓난아이를 키우는 것은, 한가로이 유모차를 밀고 다니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군요. 하고 싶은 걸 포기해야 하는 거였어요. 특히나 외국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인터넷도 없었던 그땐 더더욱 그랬죠. 그렇다보니 나에게서 물러서서 주변을 돌아보게 됐고, 그것이 멕시코의 길거리, 시장, 공원, 미술관이 됐던 것 같네요. 

 

책에 실은 사진을 보면 책 제목을 왜 이렇게 지으셨는지 이해가 가는데요. 멕시코가 색의 나라가 되었던 역사 문화적인 배경이 궁금합니다.

 

아마 멕시코 여행을 계획한다든가, 아니면 멕시코 여행에 대한 책을 몇 장만 봐도 멕시코의 선명한 색을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색이 뇌리에 강하게 남게 되죠. 보통 어떤 대상을 색으로 떠올리면 대개는 한두 가지 색으로 범위가 한정되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멕시코는 예외였어요. 마치 잔칫상에 가득 올린 음식처럼, 꽉꽉 차 있는 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나라거든요. 어느 색 하나가 주인공이 되지 않고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왁자지껄 소란스럽게 자기 얘기를 하고 있지요.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초점을 맞추자면 직물과 염색의 발전으로 접근을 해야겠네요. 16세기 스페인 정복자가 아즈텍에 왔을 때 가장 놀랬던 것이 당시 유럽에선 한 번도 못 봤던 인디고(청바지)와 같은 색이었다고 해요. 또 하나는 ‘아술 마야’라는 광물인데, 터키 블루보다 조금은 밝은 파란색을 냅니다. 이 색은 도자기나 건물 벽면 등에서 널리 볼 수 있는 색으로 유적지 어디를 가나 흔적이 남아 있지요.
 
멕시코 예술을 논하려면 원주민을 빼놓을 수 없을 텐데요. 서구 현대 예술과는 다소 다른 느낌인 게 대륙에 원래 있었던 원주민 문명 덕택이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네, 그렇습니다. 원주민 예술이 있었기에 오늘날 멕시코의 현대 미술가들이 지금처럼 활동할 수 있는 거예요. 프리다 칼로의 옷도 오하카 원주민 전통의상이고, 그녀가 부엌에 모은 살림들도 모두 원주민 도자기였어요. 그녀의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가 벽화를 그려서 번 돈으로 사들인 것도 원주민 미술이었지요. 현대 멕시코 미술가들의 뿌리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원주민 미술에 닿아 있어요. 멕시코 원주민 미술은 그렇다고 북미의 인디언처럼 보호 구역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거리로 나와서 멕시코 사람들의 일상에 섞여 들어가 있어요. 멕시코 사람들의 일상에는 여전히 원주민 미술이 있어요. 잘 사는 사람 집을 가도, 가난한 사람 집을 가도, 어디든 원주민 미술이 숨 쉬고 있어요. 멕시코 원주민 미술은 전통미술이면서 현대미술인 셈이지요. 
 
멕시코에서 좋았던 기억도 많았겠지만,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책에서는 집 렌트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는데요.

 

낯선 땅에서 살게 되면, 의식주 모든 게 문제가 되죠.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이 더 이상 통용 되지 않으니까요. 일단 집 문제가 가장 큰 것 같아요. 집 문제가 해결된다면 한시름 놓은 거겠죠. 제가 멕시코에서 살았던 때가 1991년부터였으니까, 오래전이라 힘들었던 것도 좋았던 것도 멕시코 이미지에 다 희석되어 버렸네요. 
 
멕시코 예술가들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는? 제가 읽기에는 얼핏, 마리아 이스키에르도 같이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예, 맞아요. 저에게 가장 감명 깊게 다가왔던 예술가는 마리아 이스키에르도였어요. 한국에서 멕시코 미술을 흠모하면서 산다는 것은, 스스로 왕따가 되어 사는 것 같았어요. 처음엔 멕시코 미술에 대한 특강도 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했는데, 요구와 필요가 제한적이다 보니 지레 지쳐갔어요. 그 무렵 마리아 이스키에르도가 많은 위안이 됐던 것 같아요. 제 생각엔 프리다 칼로보다 더 많은 노력과 부침을 겼었는데도, 세상에선 프리다 만큼의 인정은 못 받았으니까요.

 

7년간 멕시코에서의 경험을 세 단어로 요약하실 수 있을까요?

 

소칼로 광장(멕시코시티의 광장, 아즈텍 신전이 있었던 곳, 산 카를로스 미술학교에서 가까웠던 곳, 멕시코 서민들의 집합소, 독립기념일에 “비바 메히꼬”를 외치는 곳, 역사 문화 예술의 현장)올라, 꼬모 에스따스(멕시코 사람들을 만나면 하는 첫 인사. 따뜻하고 푸근한, 인정이 넘치는 인사말)산본스 레스토랑(혼자서 책 읽기 좋고, 친구와 만나서 수다 떨기도 좋고, 누군가 멕시코 간다면 한 번 들러 보라고 추천하는 레스토랑 겸 미니 백화점)

 

이 책 외에도 멕시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소개해 주신다면.

 

이성형 교수님의 책을 추천하고 싶네요.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대홍수: 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 20년의 경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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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나라 멕시코유화열 저 | 미술문화
『색의 나라 멕시코』는 한 여성 도예가의 멕시코 생활 에세이면서 멕시코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안내서다. 저자는 멕시코에서 ‘유학했다’기 보다는 ‘살았다’라고 말하는데, 살았다는 것은 공부했다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눈에 닿는 일상의 모든 곳에 미술이 녹아들어 있는 놀라운 땅이었으며, 지금까지 알고 있던 미술에 대한 개념이 뒤바뀌는 충격적인 곳이었다.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색이 같이 쓰이고, 글보다 그림이 정보를 전달하며, 고대의 미적 전통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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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소년에게, 오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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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바다는 삶의 터전이었다. 우선, 바다는 인간이 노동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얻었다. 고된 노동으로 힘들 때는 광활한 바다를 보면서 위안을 얻기도 했고, 변화무쌍한 바다의 모습으로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기도 했다. 바다는 인간에게 실로 많은 걸 줬다.

 

세월이 흐르면서 바다의 의미도 많이 달라진 듯하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면서, 바다는 여행지라는 의미가 강해진 것 같다. 바다에 위치한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도 바다는 일상의 공간이라기보다는 비일상의 공간일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바다에서 일하고 바다를 벗 삼아 살아가는 사람은 존재한다.

 

『바다소년의 포구 이야기』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 관한 책이다. 채널예스에서 연재한 동명의 에세이가 책으로 나왔다. 스스로 문학도라 칭하는 오성은은 우연히 함께하게 된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 수십 곳의 포구를 돌아다녔다. 포구는 바다와 사람, 희로애락, 물고기들이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10문10답-오성은

 

첫 책인데요. 문학도로서 소설이나 시집이 아니라 에세이집이 첫 책인데요. 어떤 느낌인가요.

 

장기간 여행 중이기에 타국에서 어렵게 책을 구했어요. 책을 구해준 서점 주인과 가격을 두고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항공료와 관세로 거의 두 배나 가까운 돈을 주고 책을 구입했습니다. 질감이나 무게가 다른 사람이 쓴 책처럼 낯설었어요. 표지를 본 이후, 무의식적으로 가격표를 보게 되더군요. 아무래도 책은 상품이니까요.

 

책은, 바다에 던져놓은 그물을 비로소 끌어올리는 일인 것만 같아 마음이 벅차올랐어요. 촘촘하지 못한 그물이라 할지라도 깊은 바다를 헤맨 흔적이 있는 책을 건져 올리고 싶었는데요. 책이라는 콘텐츠만 놓고 본다면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는 없는 것 같습니다. 책을 떠나서, 여전히 저는 소설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더 애쓰고 아파야 할 무언가가 남아 있는 셈이죠.


포구에 매료된 계기는.

 

포구에 매료되어 포구 이야기를 쓴 게 아니라, 쓰다 보니 매료되었다는 편이 정확한 표현이겠죠. 무언가를 쓰기 위해선 그 대상을 읽어내야 합니다. 읽는다는 건 이해의 척도에 가깝죠. 제대로 이해하려면 대상의 흑과 백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상과 만나야 합니다. 포구를 읽고 이해하려 애쓰다 보니, 그곳에서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친구를, 스승을, 기어이 나를, 만나게 되더군요. 포구를 여행하며, 이유 없이 아프고, 기뻤어요. 그 감정을 글로 써내는 순간, 저는 포구에 매료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 책의 핵심 단어를 노동, 포구, 먹거리 등으로 읽었습니다만, 저자가 직접 책의 키워드를 몇 가지 꼽아준다면?

  
스무 살 신입생 때였어요. 동기 여럿이 둘러앉아 마피아 게임을 했는데요. 눈을 감고, 마피아로 지목된 사람들끼리 고개를 들고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어요. 고개를 들고 내리는, 그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거리에 비례하여 들리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단번에 마피아를 지목해낸 유능한 시민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러한 일이 있었던 이후에 저 스스로 청각이 예민한가 물음을 던지자, 정말로 청각이 예민해졌다는 사실이에요. 에피소드(이야기)는 때론 과장된 채 만들어지지만, 어쨌든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줍니다. 저는 포구의 '소리'에 예민해지고 싶었습니다. 뱃고동과 하모니카, 몽돌이 구르는 소리와 목탁소리, 그물이 건져지는 소리와 노선장의 한숨 소리. 그 속에 생명이 있고, 삶이 있다고 믿습니다.

 

책에서 소개한 포구가 남해 쪽이 많은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KBS(부산)에서 '바다에세이 포구'라는 프로그램을 1년 동안 진행했습니다. 매주 새로운 포구로 떠나야 하는 방송 시스템상, 아무래도 부산과 가까운 곳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죠. 지역마다 물때가 다르고 파도의 세기, 잡히는 어종이 다릅니다. 어민들의 사투리조차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니 매주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물론 충청도의 포구와 동해, 서해의 포구들도 다녀왔죠. 하지만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했고, 그래서 쓰지 않았어요. 그곳들을 다시 찾아야 할 이유를 남겨둔 셈이죠. 남해를 특히 예찬한 이유는, 그곳의 공기 때문일 거예요. 햇살과 바다와 흙과 사람. 단 한 번도 섭섭하게 돌아온 적이 없습니다.

 

바다는 본인에게 어떤 공간인가요.

 

산의 정상은 오르막 끝에 솟아있고, 바다는 내리막 끝에 펼쳐져 있습니다. 정상은 한 점이지만 바다는 무수한 점이죠. 정상은 유일하지만 바다는 무한합니다. 그래서 바다가 좋아요.
 
불어의 엄마(m?re)와 바다(mer)는 발음이 같습니다. 인류의 태초, 문명의 기원, 즉 어머니의 양수라 할 수 있는 바다는 어쩌면 태어나기 이전에 놔두고 온 것, 그리하여 되찾고자 갈망하는 순수, 닿을 수 없는, 죽어서야 다시 찾게 되는 미지의 세계인지도 모르겠어요.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이 허망한 진리가 일상에 스며들 때, 소중한 것들이 생겨나죠. 포구에 대해 나름의 술수를 부려놓았어도, 아직 바다에 대해 말할 깜냥은 되지 않는 것 같네요.

 

10문10답-오성은2

 

글을 보면 생선에 관한 지식이 해박한 듯한데요. 요즘 청년답지 않아요. 비결이?

 

실제로는 해박하지 않습니다. 포구에 가면 저절로 얻게 되는 잡지식을 그럴싸하게 표현했을 뿐이죠. 어린 시절, 자갈치와 가까이 산 덕을 제법 보았을 겁니다. 아직도 조타기를 놓지 못하는 아버지의 덕을, 전라도의 섬마을에 살고 계신 할머니의 덕을, 삼면이 바다로 이뤄진 이 나라의 덕을, 70%가 바다로 이뤄진 지구의 덕을 본 셈이죠. 책으로는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큰 도움이 되었고, 손택수의『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도 여러 번 들추었어요.

 

채널예스 연재 제목이 ‘바다 소년의 포구 이야기’였는데, 솔직히 ‘소년’은 아니지 않나요.

 

부끄럽게 만드는 질문이네요. 비겁한 변명을 하자면, 이성복, 정홍수, 함민복, 김창완, 이문세 등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로 모두 소년이에요. 세월의 풍파로 주름은 늘었을지언정, 눈빛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욱 맑아져요. 바다 사내들에게서 유독 시인의 눈빛을 느낄 때가 많았어요. 전공을 발휘해 변명하자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소년이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소년이 어른이 되는 이야기는 뻔하죠. 어른이 소년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습니다.

 

어느 포구라고 소중하지 않은 곳이 있겠느냐만. 가장 인상적인 포구는 어디인가요?

 

하나만 고르라면 할머니가 계신 여수 낭도의 작은 포구를 택하겠습니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이리(승냥이) 같다고 해서 낭(狼)도라 불리는 섬이지만 물결 낭(浪)을 붙여도 좋을 것 같아요. 낭도라 소리 내 부르기만 해도 쏟아지는 햇살 아래, 대나무를 휘어 만든 활대를 든 소년들이 의기양양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여요. 보이스카웃 양말을 무릎까지 올려 신고 모험을 떠났던 그 곳. 절벽 아래로 파도가 넘실대고, 먼바다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을 날리고, 내 앞에는 9년 전 돌아가신 사촌 형이 앞장서고 있습니다. 형과 함께 자갈밭을 뛰어 놀기도 하고, 뗏목을 만들어 먼 바다로 나가기도 했죠. 미끼 없이 낚시를 던져도 넓적다리만한 생선이 바늘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왔죠. 어쩌면 낭도의 포구는 평생 쓸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포구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죠. 그래야, 계속해서 찾을 테고.  
 
책에 담긴 포구를 꼽으라면, 이청준 선생님의 생가가 있는 진목 포구입니다. 지금은 사라져서 가까운 삭금 포구가 그 역할을 해내고 있지만 아직도 진목 마을에는 파도의 소리와 모래의 질감이 남아 바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요. 선생의 소설을 들고 찾는 여행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외국 포구도 몇 군데 다뤘는데, 한국 포구와는 분위기가 달랐을 것 같은데요.

 

우리네 포구에서는 젊은이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삶의 형태가 수도권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가업을 잇거나 바다를 지키려는 가치는 점차 빛을 잃어가는 추세죠. 하지만 이국의 포구에서는 부자(父子)가 함께 조업을 나가는 풍경을 마주할 때가 있어요. 물론 그러한 풍경만으로 옮고 그름을 속단할 수는 없지만 포구를 생동감 있고, 활기차게 만드는 요소임은 분명합니다. 다른 나라의 포구는 관광수준에 그쳤기 때문에 글로 쓰기 쉽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짧은 일정으로는 그들의 생활 방식을 깊숙이 들여다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죠. 개인적인 경험을 이끌어와서 제법 난잡스러운 술수를 부려놓은 것 같아요. 그럼에도 바다란, 다른 언어를 쓰지 않는 그 바다란, 놀랍게도 마음의 위안을 준 것만은 사실이에요. 짠내 가득한 바람에 몸을 맡기다 보면, 파도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자연의 소리만한 만국공통어가 또 있을까요.

 

소설은 항상 갈망하고 있다고 했는데,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나요.

 

언젠가부터 나만의 문체를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문학청년에게 권태가 온 것이겠죠. 권태는 자기비하로, 한탄으로 이어졌어요. 글에서 독보적인 개성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는 것인가...... 하지만 어디까지나 권태일 뿐, 저는 여행을 통해 비참의 늪에서 빠져나와 용기를 내려고 합니다. 여행은 제가 선택한 삶을 누구도 카피할 수 없다는 확신을 주거든요. 자신의 삶을 녹여내는 글이라면, 세상 누구라도 가치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광활한 망망대해를 면면히 살피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과장된 망상이고요. 양손으로 바닷물을 들어 올렸을 때, 그곳에 하늘이 비치고, 손가락의 마디가 조금 흐트러져 보이고, 나의 얼굴이 작은 물결에도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눈앞에 있는 것부터 정확히 묘사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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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소년의 포구 이야기오성은 저 | 봄아필
마도로스의 아들로 부산에서 태어나 아직 청춘의 바다를 건너고 있는 젊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행은 그곳에 서서 잠시 읽어보는 것, 그려보는 것, 그리고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누구나 지금 당장 푸른 바다를 품은 포구를 향해 떠날 수 있다. 이들 포구로 향하는 길은 분명, 언제나 청춘 같은 삶의 힘찬 생명력을 발견하는 기쁨이며, 다시 삶의 소중함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바다를 통해 더 넓고 깊은 마음을 품게 된 자신을 발견하는 만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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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관 디자이너 “이번 분데스리가 재밌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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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 축구. 월드컵은 끝났지만 유럽 프로축구가 하나 둘씩 개막하면서 축구를 향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시즌은 전통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EPL과 프리메라리그뿐만 아니라 분데스리가에도 시선이 쏟아질 거로 예상한다. 독일의 월드컵 우승, 손흥민의 활약 등이 그 이유다.

 

『곡괭이 싸커홀릭 2』는 독일 분데스리가를 주제로 한 여행 에세이다. 첫 번째 책은 2010년에 EPL을 다뤘고, 두 번째 책은 4년 만에 나왔다. 디자이너이자 축구광인 저자 김선관은 카메라와 함께 독일 곳곳을 누볐다. 디자이너가 쓴 책답게 축구 이야기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관한 내용도 책에 담겼다. 일반적으로 독일 디자인이라 함은 실용적이면서 간결하다고 알려졌는데, 과연 그럴지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선관

 

축구에 매료된 계기가 궁금하다.


아마도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축구를 더욱 좋아하게 된 듯하다. 전 직장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담당하면서 자연스럽게 축구를 접하게 됐다. 마침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니타이티드에 입단하면서 공식 홈페이지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정보가 쌓이고 관계가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커졌다.

 

유럽의 프로축구리그 하면 스페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태리 정도가 떠오른다. 1편은 EPL을 2편은 분데스리가를 썼는데, 이 순서에 얽힌 사연이 혹시 있나.

 

1편을 쓸 때는 EPL에서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이청용, 조원희 선수 등 한국 프리미어리거들이 많이 할동하고 있었다. 인기도 대단했다. TV중계를 보면서 한번쯤 EPL경기를 가까이 관람하고 싶었고,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 1편 『곡괭이 싸커홀릭-잉글랜드편』을 만들었다. 단지 축구가 좋아 여행에 나서서 만든 첫번째 책이었다. 이후로 어느덧 4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또 한번 책을 만들게 되었다. 여행지는 독일이다. 2편 때도 분데스리가에서 할약하고 있는 한국 선수들이 많았다. 나에게는 좋은 기회였고, 또 한번 재미있는 책을 만들 수 있었다.

 

분데스리가에 관련한 공간을 여행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


나는 디자이너이다. 축구 전문가는 아니다. 단지 축구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다. 여행 테마를 축구로 하였고, 축구를 통해 디자인적으로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단지 책이 아닌 작품의 개념으로. 분데스리가를 돌아다니면서 내가 느꼈던 인상 깊은 점은 독일의 디자인이 축구에서도 느껴진다는 점이다. 독일의 대부분 디자인은 간결하면서 심플하다. 이런 느낌을 나만의 스타일로 멋스럽지 않는 한국적이면서 독일스러움으로 표현했다."


책을 쓰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이번 책에는 애착이 많이 간다. 출판부터 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진행하여 만든 책이다. 장인정신의 손이 하나하나 담았다고 해야 할까? (웃음) 내가 원하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책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었지만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경험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디자이너는 사용자들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독자들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페이지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았다. 이번 책의 컨셉을 이야기하자면, 한글폰트를 이용한 독일. 한글타입으로 “싸커 독일 여행”의 앞 초성만 따서 “ㅆㄷㅇ”로 로고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로고에 독일국기의 색상을 추출하여 메인컬러로 사용했고, 심플하면서도 즐거움이 있는 한글타입의 느낌으로 디자인했다. 속지 디자인은 각 구단의 로고 컬러에서 색상을 추출하여 지도 및 본문 타이틀, 페이지 등을 그룹핑 되게끔 색상을 통일했다. 사진 및 글은 잡지를 보듯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큼직하게 배열했다. 이 책의 가장 큰 목적은 누구나 편하게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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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을 썼을 때와 2편을 썼을 때 달라진 점은.


2편에는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추가했다. 독일에서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의 경험을 이번 책에 같이 넣고 싶었다. 축구, 디자인, 여행 이렇게 세가지 큰 주제를 가지고 지루함이 없는 여행책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분데스리가 총체적인 전망을 한다면.


분데스리가가 지난주 개막했다. 여느 때와 달리 이번 분데스리가에는 더욱 많은 한국 선수들이 뛰고 있다. 레버쿠젼의 손흥민, 마인츠의 구자철, 박주호, 도르트문트의 지동원, 호펜하임의 김진수 선수, 아우스부르크의 홍종호 등. 정말 재미있는 경기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승팀을 예측하는건 어렵다. 바이에른 뮌헨이 분데스리가에서는 워낙 강팀이라서 또 한번 우승할 거 같지만 개인적인 바람은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레버쿠젼이 우승하여 과거의 차범근 선수의 업적을 이뤘으면 한다.


분데스리가에서 좋아하는 선수가 있다면?


바이에른 뮌헨의 토마스 뮐러. 메시나 호날두처럼 뛰어난 개인기가 있는 선수는 아니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 때도 독일팀에서 많은 득점력을 기록했는데, 이 선수가 공간을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무엇보다 팀과 하나가 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개인 기량이 뛰어난 선수도 좋지만 팀과 조화가 잘되는 선수가 더욱 좋다.


책이 나온 게 월드컵 전이었다. 그 뒤로 월드컵이 있었고. 2014 브라질 월드컵은 어떤 기분으로 봤나.


이 책은 출판을 하면서 나와 개인적인 약속을 했다. 4년에 한번 월드컵이 열리는 시점. 책을 내겠다는 개인적인 약속이었다. 1편은 남아공 월드컵 전에 출판이 되었고, 2편은 브라질 월드컵 시점에 출판했다. 그리고 이번 브라질 월드컵은 독일이 우승을 하여 여느 때와 다르게 재미있게 월드컵을 봤던 거 같다. 


축구광이면서 디자이너다. 축구 경기를 많이 보면, 디자인에도 영감을 주나.


스포츠와 디자인은 재미있는 조합이다. 항상 이 조합에 관한 디자인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 결과물이 지금까지 두 권의 축구 여행기로 나왔다.


3편은 어떤 나라가 될까?


4년뒤 러시아 월드컵 때 또 한번 낼 것이다. 다음은 스페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4년쯤 후면 이승우, 백승호 같은 선수가 프리메라리가에서 뛰고 있지 않을까? 상상만 해도 벌써 흥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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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괭이 싸커홀릭 2김선관 저 | 위누
열혈 축구광이자 디자이너인 김선관의 두 번째 축구여행기이다.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 편을 낸 지 오래지 않아 또다시 떠난 축구여행지는 바로 독일! 독일 분데스리가 18개 구단을 직접 발로 뛰며 느낀 감흥을 글과 사진과 디자인을 버무려 담백하게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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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박 “을질 연애에서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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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펜끝을 누르는 소리가 아닌 손가락 검지 타법으로 다라라라락 눌러 한 두 마디 써놓았던 문장이 반 페이지 혹은 한두장의 분량으로 늘고, 그것을 페이스북에 붙여 넣는다. 글에는 외롭고 쓸쓸한 인간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한 줄, 혹은 한 장짜리 짧은 글에 피식피식 웃는 사람이 늘어갔다. 서글퍼진 독자도 있었다. 글에서 과거의 씁쓸했던 내 모습을 발견한 독자는 자기도 모르게 ‘좋아요’를 누르고 만다. 아쉬웠던 연애 시절과 비루한 일상을 웃음으로 승화한 지니박의 글에 페친들은 열광했다.

 

그녀가 “이 따위 글”이라 표현한 문장이 모여 책으로 나왔다. 제목은 『빡쳐! 연애』. 예스24 블로그에도 조금씩 공개했던 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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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박

 

지니박, 이라는 이름에서 왠지 교포 느낌이 나기도 하는데요.

 

유진박 따라해 봤습니다. 박씨 성을 가진 지구상 모두의 고민. 박박사는 좀 그렇고, 뭐하지 하다가 그냥 지니박 혹은 지니파그(공원)이라고 불리웁니다. 헤헤.


글에 딱 어울리는 삽화도 재밌습니다. 차승민 저자와는 어떤 계기로 함께 책을 만들었나요.


책으로 나올 줄 몰랐지만 출간 제의가 오기 시작하면서 걱정되더라고요. 제 글은 웹툰을 글로 쓴 느낌이 강해서 그림이 없으면 망할 것 같은 조짐이 보였어요. 그래서 자비를 들여서라도 어울리는 선생님을 염가에 모셔보려고, 여기저기 허드렛 일도 해드리고 용쓰던 중 편집장 박은정 선생님의 도움으로 과분한 선생님을 만난 듯합니다.


책의 장르가 프리스타일 같습니다. 마치 만화 『멋지다 마사루』나 『삐리리 불어봐 재규어』를 연상시킨다고 할까요. 저자 본인이 정의하는 이 책은 어떤 장르인가요?
 
글로 읽는 웹툰 같아요. 제가 만화책을 좋아해요. 쓰다 보니 소설인지, 만화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코믹함. 딱 그 정도로 잘 나온 것 같아요. 그리고 그야말로 차승민 선생님이 살린 책이죠. 어서 인세를 받아서 선생님께 달려가 치킨에 맥주 무한 제공 쿠폰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제가 ‘인생과 연애에서 갑질하는 쌍년되는 법’인데, 갑질하기가 쉽진 않잖아요. 책에도 갑질하는 법을 다뤘다기보다는 나에게 을질을 강요한 사람과 사회에 대한 사자후가 주를 이루는데요. 갑질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냥 여러가지 사례를 코믹하게 기술해 보았는데요. 그 과정에서 내가 갑인 줄 알았는데 실제는 을이었다, 이 정도를 알려 주고 싶었어요. 저 또한 갑질 연애인 줄 알고 했다가 끝나고 보면, 어느 여자에게나 그렇게 해 주는 몸에 벤 습관 같은 을(배려) 짓이 많았어요. 알아서 잘하는 남자는 누구에게나 잘하거나 혹은 경험이 많거나 여성을 잘 요리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라고 말하는 남자는 “말하지 않아도 미숙이 영숙이 숙자 미자를 다 알아!” 이것이 정답이라고 봅니다. 조금 미숙한 미숙이 같은 남자가 좋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는 중입니다.


책에 욕이 자주 나오던데, 이렇게 욕 쓰는 사람이 실제 만나 보면 점잖던데요. 본인은 어떤 사람인지. 


저는 태어나서 욕이라고 한마디도… 는 아니고, 실제는 아주 친해지기 전까지 매우 조용한 타입이에요. 직장에서도 제가 책 쓴지도 몰라요. 아주 친한 친구에게는 좀 시원한 입담을 하는 편이지만요. 화를 해소하기 위한 욕은 그 기운이 전이되서 저에게도 안 좋죠. 재미로는 좀 합니다. 아, 욕 매니아 분께서 책에 사인으로 썅욕을 써달라고 하셔서 비밀리에 써서 보내드린 적은 있어요 어찌나 재밌던지. 크크크 허허허. 그리고, 낯선 사람 만나기를 아직 매우 두려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보면 왜 이렇게 정중하냐 하시는데 그럼 만나자마자 막 소랑 개 찾아 드려요? (농담)


모 대기업맨과의 연애, 국 좋아하는 남자와 연애 등 다양한 유형의 빡치는 연애를 썼습니다. 이 중 최악의 연애는?
 
대부분 막말이 심한 빡치는 연애는 허구가 많았고, 재미로 지어낸 것들이 많으니 이 자리를 통해 오해 없길 빕니다. (최근 하도 악플을 받아서.) 가장 최악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이 그렇게 착하지는 않구나를 깨닫는 연애, 내가 못할 때 너무 잘 해주던 그, 그리고 내가 잘하자 점점 등을 보이던 그 등…… 여성들이 빡치는 순간은 이렇게 소소합니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썅년되는 법인 것 같네요. 제가 존경하는 고영성 작가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어떤 이가 다른 이에게 하는 보상적 행동(흔이 을질)이 일정하고 변동이 없을 경우보다는 그것이 변화했을 때 그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다시 말해 항상 똑같이, 한결같이 좋아해주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변화될 때 뇌가 더 크게 반응한다.” 무릎을 탁 치게 되죠?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타고 책까지 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페친들이 몇 부 정도 살 거라 예상하는지.


다행스럽게도 이번 주에 2쇄 인쇄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으로 페친들, 그리고 그의 지인들까지 모든 구매가 완료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제 망하는 것인가… 엉엉. 감사하다는 말이 모자랄 정도로 그 동안 글 읽어 주시고, 책도 구매해 주셔서 정말 벅찬 감동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이거 꼭 은퇴하는 것 같네요.


인기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제 글 속의 주인공인 ‘호구형 인간 지니박’의 일상이라고 믿고 읽기 때문이며, 그녀가 보통의 내 직장동료, 혹은 아는 언니, ‘보통’ 민간인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민간인이 페친들의 요구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들어 드렸어요. 무료로 대본을 써주거나, 회사이름을 지어 드리거나, 아주 소소하지만 신경 써서 연애 상담도 해 드리기도 했고요. 창업가의 고충을 알기에 특별히 그런 분들은 더 홍보해 드리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인기라기 보다는 많은 추억이 쌓인 결과 같아요. 제가 낮선 사람 만나는걸 잘 못하는 대신 하나라도 잘 하는 게 생겨서 기쁩니다.


실패 총량의 법칙(102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실패를 자주 겪은 듯한데, 자주 하다 보면 앞으로 다가올 실패도 어느 정도 예측되지 않나요. 가까운 미래 닥칠 실패를 예상해 본다면? 책은 성공할까요? 


실패라고 볼 수도, 과정으로 볼 수도 있을 텐데요. 이미 악플과 이상한 쪽지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이미 예상은 한 일이고, 저같이 평범한 잉여인간이 책을 마구 갈겨 썼으니 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허허허 그래도 스크래치가 좀(새가슴). 쪽지로 욕하신 분들 빨간 글씨로 이름 쓰겠음. 데스노트!! 이번 책은 냈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의외의 장년층의 공감이 많고, 그리고 빡친 분들이 공감 한다는 부분에서 만족합니다.


연애와 결혼을 고민하는 모든 30대 여성에게 한 마디 한다면.


내가 한 살만 어렸어도 이런 남자를 만나지 않았을 거야, 라는 심정으로 결혼을 위한 연애를 이어가거나, 빡치는 그놈에게 계속 질질 끌려 다니는 연애를 하시는 분들께 나에게 편지를 써 보는 거 한번 해 보세요. 정말 처음엔 손가락 발가락이 파마를 하고, 오글오글 하지만 정말 나 자신을 많이 사랑하게 돼요. 질질끌려 다니는 연애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호구남 잡아서 빨대 꼽아 평생 빨아먹고 살자, 이런 주의가 아닌 이상은 효과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여자친구가 아닌 그냥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약할 때 더욱 끌려 다니는 연애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책에도 썼지만, 이세상에 왕경태는 없습니다. 내가 어리고 예쁠 때만 당연히 받게 되었던 (왕경태 같은) 호의를 사랑이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아니면 내가 김성령이 되든가, 계속 예쁘든가. 그게 아니면 당연히 사랑에도, 만남에도 노력이 필요하겠죠. 30대가 되어도, 아마 40대가 되어도 물론 20대처럼 파리는 끊이지 않습니다. 당연히 파리의 질은 떨어졌겠지만요. 파리와 진국을 가려내는 눈을 키워야 해요.


이건 책에 안 들어간 부분인데요


[금요일밤 , 주말 밤 , 새벽 여자들이 받는 흔한 카톡 메시지 ]
아는오빠 - 뭐해? 자니? 어디니? 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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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파리 천국 인생 !! 여기서 진국은 누구 일까요??
여러분 파리의 사탕발림을 조심하세요 !!!!!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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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쳐! 연애지니박 저/차승민 그림 | 라온북
페이스북 인기 페친 지니 박에게 배우는 망할 놈의 연애로 배우는 갑질 인생 이야기. 연애에도 갑을 관계가 있다는 걸 연애가 몇 번 망해본 후에야 알았다. 언제까지 을로만 살 수 없어서 연애에서 당한 일을 페이스북에 글로 쏟아냈다. 저자의 격한 실연 감정에 공감한 페친들은 대리 배설의 통쾌함을 경험했고, 덕분에 자신들의 연애를 돌아보고 연애 관계에서 갑이 되는 마인드를 갖게 되었다. 대한민국 미혼이라면 공감하고도 남을 연애, 사람, 일상, 일에 관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겼다.




 

[추천 기사]

- 섬이 된 사내, 김영갑
- 광안리 밤바다와 청춘의 까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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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여기태 “아빠가 필요한 순간? 언제나 어디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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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문10답-여기태

 

엄부자모라고 해서, 아빠는 그저 집에서 근엄하게 각 잡고만 있어도 되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얼마 전이다. 지금 그랬다간 아내에게도 혼나고 자식들에게도 외면 받아 가정에서 따돌림 당하기 십상이다. 변화는 너무 빨리 왔다. 이 시대 아빠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잘하면 될 텐데, 그 ‘잘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아빠가 필요한 순간들』 저자 여기태 인천대 교수는 이런 아빠를 위한 책을 썼다. 저자 자신도 처음에는 다른 아빠와 비슷했다. 자녀는 뒷전이고 가정 밖에서 일을 묵묵히 해나가던 남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때부터 아이와 적극적으로 교감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교수 특유의 꼼꼼함으로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다양한 화제를 다룬다. 대화, 공부, 시간 관리 등은 물론이고 성교육, 담배, 음주 등 세세한 것까지 소개했다.


첫 책입니다.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자녀교육서를 첫 책으로 낸 게 다소 의아했습니다. 어떤 계기로 자녀 교육서를 내게 되었는지요.

 

첫째 아이가 초등 5학년이 될 때까지 아빠로서 한참 평균 이하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어요. 물론 이때까지는 사회적인 성공이 절실했던 까닭에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함께 있던 가족과 아이들은 성공을 위한 “열심” 앞에 늘 뒷전이었지요. 우연한 기회에 아빠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절박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쳐다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과욕으로 아이들과 부딪치기도 했고, 아이들의 바람과 나의 방향이 정반대일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헤매기도 했어요. 시간이 지나고, 이런저런 실패와 깨달음이 쌓이면서 점점 아이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일이 있을 때마다 기록해두었고, 만들어진 자료도 보관해두었어요. 아이들이 커서 자신의 흔적을 찾을 때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첫째가 대학 2학년이 되었으니 꼭 10년 되었네요. 지나온 시간별로 좀 더 정리하여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그때 아빠의 고민도 들려주고 싶었고요. 이 책은 이런 소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저와 같이 어려움을 겪는 아빠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빠가 아이와 오랜 시간 함께하고 싶어도 회사와 같은 일 때문에 현실적으로 힘이 듭니다. 연구하느라 학생 가르치느라 많이 바쁘셨을 텐데, 아이와 계속해서 가깝게 지낼 수 있었던 방법이 궁금합니다.           

 

“가장의 어깨는 군장의 무게보다 무겁다.”라는 말처럼 삶의 무게는 아빠들을 잠시도 쉬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어디 무게뿐입니까? 바쁜 것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서커스에 접시돌리기 있잖아요. 수없이 많은 접시를 막대 위에 올려두고 돌리는!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려는 접시에 힘을 가해 살려내고, 이쪽에 위기가 지나가면 저쪽 접시가 떨어지려 하고……. 아빠들의 삶이 꼭 이런 것 같습니다. 아빠들은 회사 업무를 포함해 수없이 많은 일을 이렇게 묘기 가까운 기술을 발휘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아이 곁을 지키는 것이 아빠들에게는 어렵고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마음은 늘 아이 곁에 두는 전략입니다. 바쁜 일정 때문에 늘 아이 곁에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하지만 아빠가 너희를 늘 보고 있고, 늘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메시지는 아이가 알아차리게 해야 합니다. 아이가 잠든 후라도 방에 꼭 들리셔서 이불도 덮어주고 다정한 음성으로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주세요. 이런 가슴으로 다가서는 자세는 물리적인 시간보다 훨씬 양질의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전략은 중요 포인트 즉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빠의 모든 지략을 다해 인생 방향에 대해 조언을 해야 합니다. 아이의 적성, 전공, 대학입학, 취업 등 아빠의 큰 조언이 필요한 대목이 꼭 있습니다. 양적인 측면에서는 작더라도 이런 전략이면 아이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지 않을까요.


책을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입학과 그 이후까지 꼼꼼하게 아이들에게 멘토링한 사례가 나옵니다. 아이에게 시기별로 꼭 필요한 부분과 좋은 습관을 길러주려고 노력한 듯한데요. 아이들의 반항은 없었나요?

 

시기적으로 보면 초등학교와 중학교 전반부까지는 아이들이 어려서인지 크게 반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물론 소소한 갈등은 있었지요. 중학교 후반 그리고 고등학교, 특히 진로를 정하면서부터 아이들의 저항을 느꼈습니다. 특히 대학전공과 진로를 생각하면서 아이와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서로 의견이 다르고 갈등이 생기면, 사회적으로 유망한 길로 인도하고 싶은 것이 부모님들의 마음이잖아요. 아이가 고민을 거듭하고, 결정하지 못할 때 제 욕심을 몇 번 들어낸 적이 있었지요(웃음). 거센 저항을 느낀 것도 이때였고요. 결국은 “아이들이 가장 즐겁고 행복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만 생각하면서 문제를 해결했어요. 물론 여러 번 전공선택이 바뀌는 어려운 과정이었지만요.

 

아이의 삶에 관해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부와 시간관리 몰입의 기술 정도는 이해가 되는데, 필적교정, 수첩관리, 담배, 음주, 성교육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아이들의 반응이 궁금하네요.

 

사람의 기호에 관련된 부분만큼 한번 굳어지면 바꾸기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좋은 습관은 붙이기가 어렵지 한 번 붙으면 공기처럼 편안하게 평생 같이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인간의 기호와 습관에 관련된 부분들인데요. 수첩관리는 참 쉽지 않았습니다. 그 유용성과 필요함만으로 아이들을 설득하기는 어려웠지요. 하지만 수첩에 가족의 중요행사를 같이 공유하고, 학습일정을 메모하고, 가까운 미래가 설계되는 모습을 아이들은 느낄 수 있었을 거예요. 필적교정은 키보드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참 어려운 과제였고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멋진 필체를 만나면 지금도 슬쩍슬쩍 보여주곤 합니다(웃음).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담배 근처에 못 가게 한 것이고, 제 멘토링 결과 중에서도 상위에 해당합니다. 평생 건강하게 살고, 담배 냄새에서 자유롭기를 기대합니다. 음주는 젊음의 패기로 한계선을 넘지 않기를 지금도 조언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이들은 담배 문제에서는 아빠에게 후한 점수를 음주와 성교육은 보통, 수첩관리, 필적교정은 잔소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10문10답-여기태


대부분이 아빠들이 아이가 어렸을 때는 바빠서 못 놀아주고, 아이가 좀 커서는 함께 하려고 하면 아이가 거부한다고 쓸쓸해합니다. 아이가 벌써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이제 영영 기회가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아빠들에게 좋은 조언이 있을까요?

 

아빠의 역할은 긴 호흡으로 아이 인생 전반에 멘토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이가 초등학교인 경우는 아쉽기는 하지만 절대로 늦은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시작점은 초등 5학년이었습니다. 오히려 어렸을 때 몇 번의 여행과 단순한 놀이참여로 아빠의 역할을 갈음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시면 처음에 너무 욕심부리지 않으시기를 권합니다. 그동안 해주지 못했던 것을 한 번에 해결하려 하면 아이들과 더욱더 소원해집니다. 그저 아이들을 쳐다보고, 이해하고, 무엇에 관심을 큰지를 살펴보셔야 합니다. 살펴보다 보면 이해가 생기고, 이해가 생기면 드디어 같이 해답을 찾아볼 여지가 생깁니다. 찾아본 후에 결정의 순간이 오면 아빠의 경험으로 조언할 기회가 옵니다. 이런 과정은 아이와 아빠에게 강한 신뢰를 쌓을 수 있게 해줍니다.

 

책에는 엄마의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데요. 실제로는 부부 사이에 먼저 자녀교육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이런 멘토링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렇게 키우자 그런 식으로 공유한 내용이 있나요.

 

엄마와 아빠의 호흡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씨실과 날실’ 있지요? 씨실과 날실이 만나서 천이 되고, 아름다운 색깔을 물들여서 천을 만들고, 용도 맞게 잘 잘라야 드디어 황홀한 옷이 되지 않습니까? 엄마 아빠는 훌륭한 아이를 만드는 기본재료인 ‘실’입니다. 저의 경우, 신혼 시절에 나누었던 이야기는 좀 관념적이었던 같아요. 이런저런 훌륭한 아이로 키우자 정도였지요. 이후에 책에서도 고백했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 저는 안타깝게도 일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사실 책의 모든 바탕과 전략은 엄마의 역할이 없으면 이루기 힘듭니다. 시간상으로 짧지만, 심리적으로 가까워지는 아빠 전략은 반대로 보면, 긴 시간 엄마의 아이와의 공감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인생의 뼈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아빠의 멘토링이 빛을 발하지요. 엄마 아빠 간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정보공유가 가장 중요한 기초입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아빠는 노심초사 불안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아이들입니다. 사춘기에 아빠와 아이의 간극이 더욱더 벌어지기도 하는데요. 이때 아빠를 위한 유용한 팁이 있을까요?

 

기본이 가장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좋아하는 것이 있거든요. 아이 눈이 반짝이는 곳으로 데려가야지, 아빠가 생각하는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가는 전략은 갈등의 단초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본은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곳”입니다. 그리고 참 쉽지는 않은데요, 하심(下心)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쳐다볼 때 마음을 좀 내려두셔야 합니다. 부모의 욕심이 앞설 때 조언은 때로 힐난이나 큰 목소리로 변질됩니다.

 

이런 측면에서는 “아니다.”라는 말을 하기 전에 같이 찾아보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제 경험상 아이들의 짧은 흥미나 관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아빠와 같이 흥미가 있는 곳의 정보를 찾기만 해도 금방 아닌 곳은 서로 공감을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고민해볼 만한 관심분야는 대학정보, 취업방향 등을 종합적으로 같이 모색해 보면 좋습니다. 이때 아빠의 오랜 사회경험과 객관적인 조언이 필요합니다. 이런 몇 번의 신뢰과정이 쌓이면, 아이는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어려움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할 일도 많고 배울 것도 많은 우리 아이들이지만, 맛있는 달걀찜이나 스파게티를 만드는 실력 정도는 갖추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가끔 요리 시간에 간편식이 나오면 어떤 종류의 음식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고민하게 된다. 소탈한 음식 준비에서 인생의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부모의 안내가 필요하다.” 이렇게 아빠들이 놓치기 쉬운 곳곳에서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오는데요. 평소에 아이들과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아이들에게 하는 조언 대부분은 내가 부족했고, 불편했고, 그때는 잘못 생각했던 것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먼저 이야기합니다. 아빠는 이런 부분이 어려웠었고, 잘못했었다고……. 그리고 이런 부분을 이렇게 하면 훨씬 좋지 않을까 하고 조언합니다. 이렇게 진실고백을 해도, 때로는 받아주고, 때로는 거부당합니다(웃음). 그리고 때론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마음에 상처도 받지요. 하지만 아빠의 진심을 알아서인지, 지금은 같이 여행 가자고 하면 흔쾌히 나서주고, 목욕탕도 같이 가서 이야기하고……. 또 남학생인데도 만들어 먹을 음식을 엄마에게 물어보기도 합니다. 소소한 행복은 이렇게 생활에서 느껴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학교수로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또한, 이제 아빠들의 고민상담도 많이 하실 것 같은데, 아빠들이 많이 하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대학에 재직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은 진로상담입니다. 특히 대학전공을 잘못 선택했거나, 유망학과, 유명대학만을 쳐다본 경우, 빠르게는 대학입학에서부터 문제점이나 불협화음이 생깁니다. 이런 경우 본인의 적성에 맞는 미래직업까지 연계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됩니다. 그리고는 아빠들의 일반적인 고민인데요. 좀 더 같이 하지 못하는 데 대한 소외감, 미안함 그리고 해결방안 등입니다. 제 경험이 필요한 분들에게 책에서 기술한 내용을 중심으로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가장 어려워하시는 부분은 “어느 순간에, 어디까지 그리고 어떤 것은 꼭”이라는 전체적인 아빠 역할 로드맵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책은 다소나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마음은 늘 아이 곁에, 아이가 알 수 있도록 자주 사랑 표현을,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는 가슴에서 나오는 멘토링을” 이것이 제가 아빠들께 꼭 해드리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책 마지막에 나오는 모든 아빠가 “아들에게는 첫 번째 영웅, 딸에게는 첫 번째 사랑”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책을 낼 계획은?

 

아이들 이야기만 했는데요. 부모님들은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힘든 부모를 위한 여행을 통한 힐링서적을 준비 중입니다. 대학 학생들을 접하며 그들의 어려움에 때로 가슴 아린 적이 많습니다. 젊은 학생들을 위한 인생선배로서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위안의 서적도 구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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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필요한 순간들여기태 저 | 카시오페아
이 책은 지난 10년간 저자가 경험한 초등학교 입학부터 대학졸업까지 아빠만이 할 수 있는 인생 멘토링이 풍부한 사례와 더불어 실려있다. 여교수는 아이가 힘든 순간에 아빠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 그것이 아빠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 조언한다. 또한 아이가 인생을 살면서 넘을 굽이길을 현명하게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좋은 습관을 몸에 붙일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표현할 방법도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아빠들과, 아빠가 제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엄마들에게 적절한 길을 제시해주는 책이 될 것이다.

 

 

 

[관련 기사]

- 성교육, 아빠의 섬세한 관심 그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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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필요한 순간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캄보디아에 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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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출생. 서울대를 졸업하고 경제기자로 활약, 국민참여 정부에서는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일했다. 예순을 앞둔 이백만 저자는 인생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근본적인 성찰이 불가능했다. 딱 1년만 한국을 떠나보자. 그가 도착한 곳은 캄보디아. 한국보다 경제 수준은 훨씬 떨어지고 정치도 불안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저자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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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두 번째 방황이 가르쳐준 것들’인데요. 첫 번째 방황은 무엇이었나요.
  

정치활동을 할 때의 고민이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억울하게 서거한 후, 한국정치를 개혁하겠다는 거창한 뜻을 갖고 정치판에 뛰어 들었지만 그게 어디 쉽습니까. 기존의 낡은 정당에는 몸담기 싫어서 개혁적인 신당을 만들었지만, 냉정한 현실 정치판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현재의 선거제도 아래서는 기존의 거대 정당과 합당한 경쟁을 할 수가 없어요. 마치 마피아와 보이스카우트의 대결 같았습니다. 그 끝은 좌절이었습니다. 값진 방황이었지요.

 

두 번째 방황지로 택한 곳이 캄보디아였는데, 캄보디아를 선택한 이유는?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과거 생활과의 단절이 필요했습니다. 정서적 단절은 물론이고 물리적 단절까지. 평소 알고 지내던 정제천 신부에게 특별히 부탁했습니다. 정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통역을 맡아 갑자기 ‘유명세’를 탔습니다만, 영성신학을 전공한 분답게 조용하게 수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정 신부에게 저의 사정을 소상히 말씀드린 다음 선진국이 아닌 후진국, 그것도 이 세상에서 가장 못사는 최빈국으로 보내달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아프리카에 갈 계획이었습니다. 한국과 가급적 멀리 떨어져서 살고 싶었지요. 정 신부께서 아프리카는 너무 멀고 보안문제도 심각하다면서 캄보디아에 가면 마음먹었던 바를 충분히 실천할 수 있을 거라고 합디다. 그래서 캄보디아로 가게 되었지요.

 

책은 캄보디아에 관한 내용도 있지만, 과거(홍보수석 시절과 국민참여당 시절)에 관한 성찰도 있는데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독자는 그 부분을 주의 깊게 읽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캄보디아에서 깨달은 게 있을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순교자의 DNA’가 있었다는 사실을 캄보디아에서 발견했습니다. 공동선을 위해서라면 생명도 바치는, 그런 순정 말입니다. 잘 나가던 조세전문변호사를 저버리고 인권변호사로 변신하여 아스팔트 위에서 풍찬노숙한 사실, 대의명분을 위해서는 국회의원 뱃지도 초개처럼 버리려했다는 사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통령 후보직이나 대통령 직도 내려놓으려 했다는 사실, 한국 민주주의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하자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목숨을 던져 버린 사실, 바로 이런 것들은 순교의 논리가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정치생명이 아닌 생물학적 생명까지도 공동선을 위해 바친 분이지요. 저는 캄보디아 인생피정을 통해 노무현의 서거를 ‘정치적 순교’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캄보디아는 불교 국가인데, 가톨릭 신자로서 활동하기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불교와 가톨릭은 서로 통하는 데가 많더군요. 세속적인 차원에서 보면, 불교의 수행자나 가톨릭의 수도자나 비슷하지 않나요?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불교나 가톨릭이나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캄보디아는 기본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일부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운운하면서 무리한 선교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지요.

 

캄보디아 민주화 문제에도 관심을 표했는데요. 현재 캄보디아는 어떤 상황인가요.
  

캄보디아는 입헌군주국이어서 왕은 실권이 전혀 없어요. 훈센 총리가 실권을 쥐고 있습니다. 그는 올해로 29년째 최고권좌에 앉아 있어요. 지난해 7월 총선 때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예상을 뒤엎고 야당이 대승을 거두었어요. 자칫 과반 의석을 확보할 수도 있었을 정도로 대약진을 한 것입니다. 노동자들과 젊은 승려들이 야당을 대거 지지한 덕분이었지요. 과거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민주화 세력이 만만치 않음이 선거를 통해 입증된 것이지요. 2018년 총선은 정말 예측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평화적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어느 때 보다도 커졌다고 봐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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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생활하시면서 한국사회와 비슷하다고 느낀 점, 다르다고 느낀 점 중 인상 깊은 게 있다면 알려 주세요.
   

캄보디아에 7개월 있는 동안 나는 어릴 적 한국을 자주 떠올렸어요. 지금의 캄보디아와 1960년대의 한국이 너무 흡사해요. 반찬을 만들 때 인공조미료를 듬북 듬북 넣고, 시골 사람들 머리에 머릿니가 득실거리고, 남정네는 동네 주점에서 밤새 술 마시면서 도박하고…. 정치적으로는 거대 권력에 대한 공포증이 비슷합니다. 독재자의 철권통치를 이미 경험한 한국에는 그런 공포증이 많이 없어졌지만, 사회 저변에는 그 잔재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훈센 체제의 캄보디아에서는 그런 공포증이 심각한 상황이지요. 
   

다른 점은 절에서 봤습니다. 신부님을 모시고 스님을 만나러 사찰을 방문했을 때 쇠고기 돼지고기 등의 음식을 많이 실컷 먹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절에서 육식을 한다는 게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문화의 차이를 실감했지요.

 

프란치스코 교황에 관해서도 썼는데요. 선생님의 신앙관이 드러나는 대목 같습니다. 이 시대 참된 신앙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양극화 현상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20 대 80’의 사회가 가고 있어요. 잘 사는 20과 못 사는 80, 성공한 20과 좌절한 80 말입니다. 종교는 이 80의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70년대 운동권에서는 기독교 찬송가를 데모하면서 많이 불렀습니다. 그 가운데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앞 소절을 소개하면 “착한 자 힘 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 추한 자 정케 함이 주님의 뜻이라.”입니다. 이 시대 참된 신앙은 이 노래처럼 착한 사람에게는 힘을 주는 대신 강한 사람은 바르게 하고, 추한 권력은 깨끗하게 정화하는 데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요. 요즘 재미는 주로 어디서 찾나요.
  

신학 공부하는데서 재미를 찾습니다. 텃밭에서 채소 가꾸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재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적인 기반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할 듯합니다. 저널리스트로, 정치인으로 오랫동안 활동하시면서 현재 한국의 정치 경제적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한국 자본주의가 큰 위기로 치닫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많습니다. 저 개인의 판단이 아니고 많은 경제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산업구조의 문제, 사회적 갈등의 문제, 이거 심각한 수준이거든요. 정치적 리더십이 없이는 해결이 어려운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정치권마저 위기로 치닫고 있으니…. 우리는 독일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나 경제, 모든 면에서 말입니다. 동독출신 여성 총리인 메르켈의 리더십이 부럽습니다.

 

경제전문기자로,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정당인으로 그리고 신앙인으로 살아 오셨는데요. 앞으로 계획은?


내년에는 신학원에 입학하려고 합니다. 사전 준비 작업으로 여러 수도원에서 개최하는 강좌도 듣고 관련 서적도 읽고 있습니다. 2년 과정의 신학원을 졸업하면 하느님께서 좋은 일거리를 주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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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방황이 가르쳐준 것들 이백만 저 | 메디치미디어
엉클 죠의 캄보디아 인생 피정 『두 번째 방황이 가르쳐 준 것들』 이다. 왜 노무현 홍보수석이 '엉클 죠'가 되었을까? 노무현 홍보수석이 캄보디아에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한 사연에서 부터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인생의 두 번째 방황을 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형제들과 함께 생활하다. 다시, 노무현의 정신을 잇는 삶을 살고 싶으며 인생의 진정한 재미를 찾은 그의 이야기다.

 

 

 

[관련 기사]

- 성교육, 아빠의 섬세한 관심 그물망
- 몰입, 연습의 행복한 감정
-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vs 엄마는 날 몰라
- 수첩, 작은 곳에서 완성되는 행복
- 아빠가 필요한 순간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정아 “미인대회가 후진국 행사라는 인식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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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에서 미인대회 위상은 그리 높지 않다. 미인대회, 하면 대표적인 게 미스코리아 대회인데 예전에는 인기리에 진행되었다. 특히 미스코리아 대회를 공중파에서 생중계할 정도였는데 당시 미스코리아 대회는 여배우 등용문으로 통하던 때였다. 권민중, 고현정, 성현아, 오현경, 이승연, 이보영 등이 대표적이다.

 

세월이 흘러 미인대회의 이미지가 안 좋아졌다. 외모지상주의와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공중파 중계로부터도 멀어졌다. 세계미인대회에서 아프리카나 중남미 국가가 선전하자 미인대회는 후진국에서나 통하는 콘텐츠라는 인식도 퍼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에서 미인대회를 향한 애착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로 미스월드코리아 박정아 대표다. 그녀는 현재 미인대회의 위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미스월드 사업을 한다는 그녀에게 주변 사람은 말리기도 하고 철 지난 미인대회를 왜 하느냐고 묻기도 했단다. 이런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준비한 게 바로 책이었다. 『여왕을 찾아서』는 그렇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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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월드코리아 대회 준비로도 많이 바쁘실 텐데, 책을 썼다는 건 그만큼 써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서일 듯합니다.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제가 미스월드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니 많은 분들이 미인대회의 현 상황, 이미지등의 문제로 말리기도 하고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래서 왜 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설득 작업의 한 방법으로 책을 썼습니다. 우리나라의 젊은 여성들 모두에게 세계 무대로 진출 할 수 있는 기회와 공정하고 깨끗한 미인대회, 스토리가 있고 감동이 있는 대회를  개최 하고 싶었던 저의 생각을 말하고 싶었어요. 같은 여성으로서 딸 같은 젊은 여성들이 슈퍼 갑의 횡포에 휘둘리는 지금의 미인대회를 개혁하기 위해 싸웠다는 나름대로의 자부심으로 힘들게 여기까지 왔던 자신에 대한 위로, 칭찬의 한 방법이기도 했고요.  

 

한 언론사와 싸움으로 경찰서, 검찰청도 가셨잖아요. 지긋지긋하기도 할 텐데, 포기하고 싶었을 때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때 스스로를 버티게 해 준 힘은 어디서 나왔나요.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새로운 대회에 대한 열망으로 들뜬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의 눈에 고여있던 아름다운 눈물과 그들이 저에게 보여준 절대적 지지와 응원, 그리고 진실에 대한 확신, 그리고 포기하면 바닥으로 떨어진 미인대회가 다시는 일어 설 수 없을 것 이라는 확신,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만 하는데 그것이 바로 "나" 라는 조금의 건방진 자부심, 절박함으로 버티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슈퍼스타 K>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대세인데요. 그에 비해서 미인대회는 유행이 지났다는 평가가 많고, 실제로도 방송이나 신문에서 다루는 비율이 예전보다 줄었잖아요. 그럼에도 미인대회 유치에 매진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현재 국내 미인대회가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감동과 스토리가 없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이제 외모만의 아름다움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 실력, 끼, 자신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감동과 스토리가 있는 젊은이들을 발굴 하여 보여주고 키워주는 대회가 되어야만 미인대회는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DMZ에서 북한 여성과과 남한 여성이 나란히 등장 한다면, 그래서 전세계인들에게 한반도의 평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어느 세계 대회보다도 한국을 홍보하기에 최고의 대회가 미인대회입니다.

 

우리의 상품을 수출하여야 할 나라들은 선진국이 아닌 인구 밀집 개발 도상국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들 나라에서는 가장 높은 관심일 보이는 게 미인대회거든요. 시청률에서도 드러나요. 미인대회를 잘 활용 한다면 2018년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 올림픽 홍보와 뷰티 상품 수출, 관광객 유치의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어요. 미인대회를 외면하지만 말고 유치 하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미인대회가 각종 뷰티 산업을 홍보할 수 있는 장이라고 했잖아요. 미인대회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대표님에게 미인대회란 어떤 행사인가요?

 

미인대회가 후진국 대회라는 인식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여성의 성상품화라는 인식도 버려야 합니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국에서는 몇천 개의 미인대회를 개최하고 있고 미인대회 인재들이 배우, 아나운서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시했던 개발 도상국이 이제는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빠른 방법으로 한국의 뷰티 산업을 홍보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미인대회에요.
 
미인대회가 여성의 외모를 상품화한다는 비판도 있었고, 공중파에서도 하차했는데요.

 

미인대회의 부정적인 요소도 있지만 긍정적인 효과도 많아요. 인식을 좀 바꾸고 이왕 세계 대회에 KOREA 의 이름을 걸고 대한민국 대표를 보내야 한다면 제대로, 공정하게 운영되는 대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제대로 한국 대표를 선발해야겠죠. 우리 젊은이들에게 세계 무대에 진출할 기회와 감동과 공감을 주는 대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무조건  반대 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이 되지 않을까요.

 

미인대회가 후진국 행사라는 인식도 존재하는 듯한데요. 세계적으로 미인대회의 위상은 어떤가요.

 

유럽 선진국에서는 이미 미인대회가 흥행은커녕 잊혀진 행사 중의 하나가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의 시장은 선진국이 아닙니다. 선진국에서는, 특히 여성들이 뷰티 상품 소비가 아시아나 개발 도상국의 10%도 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의 거대한 마켓은 중국, 인도, 남미등 인구 밀집 개발 도상국, 즉 우리가 후진국이라고 무시하던 나라들입니다. 세계 경제축이 이제는 이러한 개발 도상국으로 옮겨 왔습니다. 그래서 영국이나 미국의 미인대회 개최자들은 오히려 이러한 사실을 역이용하여 자기들 나라에서는 외면 당하는 미인대회를 개최하여 양대 최고 미인 대회 주축국이 되어 엄청난 돈을 벌어 들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미인대회 참가국이 아닌 개최국이 되어 이들 나라들의 뷰티 소비자들을 끌어 들여야 합니다. 세계적인 비지니스맨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스 유니버스를 소유하고 개최자인 사실에 관해 잘 생각 해보아야 할 대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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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세계미인대회에 후보를 내보내긴 해도 수상자를 배출하지는 못했잖아요. 이유가 뭘까요.

 

세계적으로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 대한민국이 미스 유니버스 50년, 미스 월드 50년 , 지난 100년간 미인대회를 출전하고도 1등을 한 번도 배출하지 못한 이유를 잘 생각 해보아야 합니다. 정말 제대로 된 미인을 선발했을까요? 선발했더라도 대한민국 대표에 걸맞게 후원을 해줬을까요? 준비를 도와줬나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공감을 받지 못하는 미인을 뽑아서 보내놓고 세계의 심사 위원에게 인정 받기는 힘듭니다. 국민이 참여하고 국민이 공감하는 대한민국 대표를 선발하여서 제대로 된 교육과 후원을 한다면 2-3년 내로 반드시 1등이 배출 도리라 믿습니다. 

 

세계 미인대회에서 수상 기준에는 어떤 항목이 있나요? 외모, 영어실력 등등 외에도 다양한 기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미스월드 세계 대회는 철저하게 5개 부문의 경쟁을 통해 우승자를 결정 합니다. 인터뷰, 봉사, 탈렌트, 스포츠. 패선모델 부문 등 모든 면에서 골고루 우수한 성적을 거둬야지만 1등을 할 수 있습니다. 외모는 일단 전세계 각나라에서 뽑힌 대표 미인들이 오기 때문에 외모만으로 판단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1달 동안의 합숙과 경쟁을 통해 우승자를 결정 합니다.

 

대표님 꿈이 DMZ에서 미인대회를 개최한다, 인데요. 만약에 성공한다면, 그 이후의 꿈은 무엇이 될까요.

 

저는 전세계 사람들이 미인대회를 계기로 DMZ가 무엇을 의미하며 그것이 단지 한국 사람들에게만이 아닌 세계 평회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알게 될 거라 믿어요. 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도 있고요. 그후의 꿈은 미인대회가 어른들이 개최하고 휘둘르는 대회가 아닌 청소년 자신들이 만들어 가고 자신들을 위하고 자신들의 끼를 맘껏 펼칠 수 있는, 그래서 "내가 젤 잘나가!"를 외치는 발칙하지만 멋진 청소년들의 대회가 되면 좋겠어요. 감동을 주고 스토리가 있는 대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죠. 기성세대들, 즉 어른들은 멍석만 깔아주고 청소년들이 맘껏 그멍석 위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그런 대회를 만들고 싶네요. 

 

일의 특성상 결국 ‘미’란 무엇인가를 끊임 없이 질문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미는?


미의 어원 "아름답다"는 놀랍게도 "앓다" "아프다" 등 아픔이라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아름다움은 아픔을 통해 탄생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아픔은 내면의 아픔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아름다움은 여러가지 노력을 통해 나오죠. 아름다움은  단지 외모만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제 모두가 공감하는 아름다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의 스토리가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아름다움은 조화처럼 향기는 없는, 생명이 없는 죽은 아름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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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을 찾아서박정아 저 | 트러스트북스
미스월드코리아 박정아 대표는 [여왕을 찾아서]를 통해 미인대회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바로잡고, 미스월드코리아를 유치하기 위해 흘렸던 지난날의 땀과 열정의 의미를 담아냈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어린 여성들의 꿈과 희망을 외면할 수 없었던 박정아 대표는 막대한 재정적인 손실과 소송에 휘말리는 풍랑을 이겨내고 미스월드코리아를 유치하였으며, 2016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남북의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달하고자 ‘DMZ 미스&미스터 월드 세계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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