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채널예스 : 10문10답
Viewing all 154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맛집 조련사 김유진이 말하는 ‘대박집’ 비밀

$
0
0

고단한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창업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손맛 좋은 가족을 두고 있다면 두말 할 것도 없다. 그러나, 맛이 없어서만 망하는 게 식당이 아니다. 손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디테일이 없다면, 좋은 식재료를 구할 능력이 없다면 대박집은 꿈꾸지 않는 게 현명하다. 대박집의 비밀을 알려주는 책들은 많다. 그러나, 개인의 경험을 넘어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분석한 책은 많지 않았다. 김유진 푸드 컨설턴트는 13년 동안 컨설팅을 통해 성공시킨 레스토랑과 전국을 돌아다니며 만난 맛집의 비결을 『한국형 장사의 신』에 자세히 소개했다. 


저자 김유진이 방송 PD에서 푸드 컨설턴트로 직업을 바꾼 건, 외식시장은 소득수준과 비례해서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식탐왕’이었던 그는 맛있는 요리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100시간 내로 맛을 보고 만다. 이런 근성은 <찾아라! 맛있는 TV>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생생정보통>의 검증단, 자문위원으로 발휘됐다. 그동안 컨설팅을 통해 성공시킨 레스토랑만 200곳. 김유진 저자는 대한민국 전국의 내로라하는 ‘장사의 신’ 100여 명과 호형호제를 하며 ‘대박집’ 비밀을 알게 됐고, 첫 책 『한국형 장사의 신』를 펴냈다. 최고의 맛집, 대박집을 꿈꾸며 창업을 생각하고 있는 독자라면, 김유진의 이야기를 결코 건성으로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1.jpg


1천만 원 이상 매출 식당, 90%가 단일 메뉴 취급


김유진이 선택한 곳은 소위 대박집이 된다고 합니다. 맛집의 절대 기준이 있나요?


많이들 ‘맛은 주관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정확히 표현하자면 맛은 상대적인 겁니다. 본인이 지금까지 먹어 본 음식들을 상대 평가해서 ‘맛이 있다. 없다’ 를 구분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 아는 만큼 보이고 먹어 본 만큼 평가가 가능해집니다. 김유진에게 맛집은 같은 메뉴를 내는 식당들 중 원재료의 풍미를 가장 충실하게 살리면서 양은 푸짐하고, 가격이 착한 식당입니다. 첨언을 좀 하자면 푸드 마일리지 (식품이 생산된 곳에서 일반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거리) 는 짧을수록 좋고, 유아에게 먹일 수 있을 정도로 위생적이면 금상첨화겠지요. 



『한국형 장사의 신』에서 “장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디테일”이라고 했습니다. 음식의 맛도 중요하지만 인테리어나 소품, 작은 배려도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요사이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파인다이닝을 추구하는 값비싼 럭셔리 레스토랑들은 다르지만) 주류 회사가 협찬한 플라스틱 물병에 정수를 담아 손님상에 올립니다. 그런데 디테일이 강한 장사의 신들은 물병 하나도 대충 쓰는 일이 없습니다. ‘고래불’의 물병은 주인 몰래 가방에 넣어 가져 오고 싶을 정도로 예쁩니다. 세균이 득시글대는 물수건 대신 일회용 물티슈 사이에 레몬 조각을 넣은 센스도 돋보이고요. 문경약돌을 물병에 담고 효능까지 적어 놓은 광주의 알찜 전문점 ‘해담’에 이르러서는 무릎을 치게 됩니다. 1인분을 더 주문하라고 은근한 압박(?)을 가하기에 애매한 어린 손님이 동행하면, ‘애기국’이라고 불리는 아담한 사이즈의 공짜 국물을 서빙하는 무교동 북어국집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큰 감동은 금전적인 친절일 텐데요 담양 숯불돼지갈비의 전설, ‘승일식당’ 에서는 천원 단위의 뒷자리는 내림을 해버립니다. 7만2천 원이 나오면 2천 원은 자르고 7만 원만 받는 거죠. 손님들 기분 좋으라고요(웃음). 디테일이 강한 집들은 손님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진심 어린 배려를 합니다. 과잉친절로 손님을 피곤하게 하는 법이 없지요.


식당에 들어가면, 이 집이 맛집인지 아닌지를 바로 파악할 수 있나요? 어떤 기준으로 식당의 첫인상을 파악하는지 궁금합니다. 


1, 2개의 단일메뉴만 내는 집들을 주로 찾습니다. 메뉴가 적을수록 음식에 전력투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맛이 좋아서 수십 가지의 반찬을 차려낼 수 있는 것과는 차원이 좀 다른데요. 메인 메뉴가 많아지면 아무래도 식재료 관리가 그만큼 까다로워집니다. 육개장이 전문인 집은 소고기와 숙주 그리고 대파, 고사리 정도의 재료만 관리를 하면 되니까 재고 부담도 적고 회전율이 아주 빠르지요. 반면에 육개장, 닭볶음탕, 뚝배기 불고기에 삼겹살까지 내는 식당은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그것도 냉장과 냉동 따로 구분해서), 신김치, 감자, 대파 등. 이 모든 재료가 최고의 맛을 유지한 상태에서 요리를 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당연히 전자가 힘이 덜 들겠죠. 하루에 1천만 원 가까이 매출을 올리는 한국형 장사의 신들은 90%가 단일 메뉴를 취급합니다. 


그리고 주방을 ‘휙’ 둘러보면 주인장의 손맛을 70-80%는 가늠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요리를 만드는 분들의 마음가짐은 주방에도 투영되기 마련이니까요. 지저분하고 너절한 주방에서 혀를 놀라게 하는 감동의 요리가 만들어지겠습니까? 사전 정보도 굉장히 중요한데.. 저는 주로 그 지역의 강력반 형사 분들께 자주 묻습니다.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분들이거든요. 밤샘과 야근이 많다 보니 아주 조금 먹더라도 혀에 착착 감기는 음식들을 많이 알고 있으세요. 그 다음으로 맛집을 많이 알고 계신 분들이 은행장들입니다. 아무래도 접대가 많은 직업이니 고급스러우면서도 가격이 ‘흉하지 않고’ 맛깔스러운 음식을 즐기는 노하우를 누구보다 많이 가지고 있어 제가 자주 괴롭히는 대상입니다(웃음). 


여의도-창고-43.jpg

여의도 창고43_ 고기장사는 불과 불판, 그리고 고기의 가격에서 결판이 난다



재료가 좋으면 음식이 맛있을 수밖에 없다는 진리에 대해 동의하나요?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제철에 나는, 싱싱한 최고의 식재료는 가공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맛이 있습니다. 정말 실력 없는 요리사가 아닌 이상 당연히 맛있는 요리가 만들어지겠죠. 산지에서 직접 재료를 구매해 가져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정말 좋은 식재료를 구하고 싶다면 새벽 경매시장에 직접 나가보세요. 전문가들에게 따뜻한 커피라도 대접한다면 따라다닐 수 있는 특권을 거머쥘 수도 있습니다. 많이 먹고, 많이 보고, 많이 조리해보세요. 그래야 좋은 식재료가 보입니다. 


맛집을 찾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맛집 블로거의 포스팅에 속았다는 이야기도 많은 데요. 블로그 맛집 포스팅을 볼 때, 무엇을 유의해야 할까요? 


직접 경험한 글과 간접적으로 경험한 글은 많이 다릅니다. 시중에도 많은 관련 서적이 나와 있어서 본인의 블로그를 상위에 노출시킬 수 있는 노하우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요령만 있지 내공이 깊지 않다 보니, 주로 1세대 블로거들의 글을 보고 식당을 방문한 후, 본인의 의견을 반영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본인만의 색을 드러내려고 하다 보니 검증되지 않은, 말도 안 되는 첨언을 덧붙입니다. 콘텐츠의 확대재생산이 역효과를 가져오는 아주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심지어 유명 블로거의 이미지를 크롭(부분만 잘라내기)하거나 좌우를 뒤집어서 자신이 직접 촬영한 이미지인양 뻔뻔한 사기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걸 카피하는 한심한 기자들도 있고요. (물론 바빠서 그러시겠지만 베끼고 베낀 블로거의 글을 다시 카피하는 건 정말 언론인으로서 창피한 일입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홍보대행사에 소속이 되어 일당을 받으면서 순전히 특정 식당의 홍보를 위해 블로깅을 하는 블로거들도 아주 많이 늘어났습니다. 


올해 창업한다면, 스몰비어 전문점, 사골칼국수, 저가형 한정식 


창업을 할 때, 망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1. “맛은 이 정도면 됐어”라고 본인 요리에 대해 과신

2. 성공한 사례만 연구

3. 본인의 식당을 궤도에 올리기도 전에 프랜차이즈를 먼저 염두

4. 잘 되면 내 덕, 안되면 손님 탓, 직원 탓

5. 손님과 직원을 평가절하하면서 무시

6. 휴일이 많아서 매출이 줄어든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


창업이 성공하려면 최소 몇 년은 투자해야 할까요?


6개월은 남길 생각하지 말고, 1년 안에 300명의 단골 확보, 3년 안에 장사 근육 완벽히 키우고, 5년이 지나면 평생 이 업종을 끌고 갈 것인지 냉정히 분석해야 합니다. 


칼국수집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2014년 3월, 현재 추천하고 싶은 창업 메뉴는 무엇인가요?


올해도 불경기의 한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출까지 받으면서 무리하게 창업을 추진한다면 백전백패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적은 비용으로 가능한 1,000원 노가리, 스몰비어 전문점, 8도(道) 막걸리, 매운 주꾸미(불경기일수록 매운맛이 인기가 있기 때문)를 추천하고 싶고 연세가 좀 있으다면 사골칼국수(소 부산물은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저가형 한정식 등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연령대별 추천 아이템은 『한국형 장사의 신』에 자세히 설명해놓았습니다. 


푸드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절대 먹지 않는 음식이 있나요? 


냉동했던 재료를 해동한 뒤, 팔리지 않아 다시 냉동 시킨 모든 음식은 먹기 싫습니다. 돈까지 내면서. 이런 과정을 거친 육고기와 해산물에서는 지린내가 납니다. 그리고 인테리어 비용 뽑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 파스타, 한우 등심 등도 꺼리는 음식들입니다. 


이 음식이라면, 어디를 가도 꼭 먹고 만다는 메뉴가 있다면?


냉면입니다. 제 몸 속에 아직 피난민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인지 자다가도 냉면 소리만 들으면 벌떡 일어납니다. 금강산도 순전히 냉면이 먹어보고 싶어서 갔습니다. 만약 유명한 평양냉면 집이 없는 고장이라면, 그 지역을 대표하는 찬 물 국수(밀면, 진주냉면, 막국수)는 반드시 먹고 돌아옵니다.


홍대찰스김밥.jpg

홍대 찰스 숯불김밥_ 흔해 빠진 김밥도 안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펄떡이는 아이템이 된다


전주반야돌솥밥.jpg

 전주 반야돌솥밥_ 돌솥밥의 성공비결은 따끈함과 토핑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너무 포화상태라서, 더 이상 창업하기에는 좋지 않은 메뉴가 있나요?


없습니다. 다들 레드오션이라고 무시했던 아이템을 가지고 성공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후라이드 치킨 시장이 과포화 상태라고 했지만 굽는 치킨이 나오고 파닭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한 집 건너 한 집이 김밥집’이라고 더 이상 새로운 김밥은 없을 것이라고 점 쳤지만 꼬마김밥으로 전국을 평정하고, 숯불고기를 넣어 대박 신화를 만든 장사의 신들이 아직도 얼마든지 있답니다. 유행은 돌고 돕니다. 그 중심에 서서 시장을 이끌어 갈 것이냐 아니면 방관자처럼 팔짱만 끼고 엉뚱한 변명을 늘어놓을 것이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봄입니다. 입맛을 돋굴 상큼한 메뉴를 소개하는 맛집을 3개 정도 소개한다면. 


살이 통통하게 오른 생선과 조개류로 스시를 만드는 강남 일식의 역사, ‘김수사’. 육해공 재료를 싸고 푸짐하게 즐길 수 있는 착한 한정식, ‘더함’. 참치 알로 만든 알찜과 알탕 그리고 메로를 매콤한 찜으로 즐길 수 있는 ‘해담’을 추천합니다. 


컨설팅을 넘어서 음식점 창업 계획은 없나요?


전 코치입니다. 코트나 마운드에서 뛸 천재들은 어쩌면 이미 결정이 되어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열심히 한다고 김연아 선수가 될 수 없듯이… 저는 코치라는 직업이 좋습니다. 정확히 진단하고, 분석한 뒤 결과를 가지고 식당 주인들과 상의하면서 그들의 매출이 느는 것을 보고 있으면 희열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장사의 신들을 발굴하고, 마음 놓고 외식업계를 누빌 수 있도록 지원사격을 할 생각입니다. 창업은 예순에 시작할 계획입니다. 손주 녀석들 학원비 대주면서 지인들과 소주잔 기울이며 재미있게 늙어가는 데 식당만한 게 있을까요? 아이템은요… 쉿! 비밀인데요. 사골칼국수집 할 겁니다. 그나저나 권리금에 보증금 그리고 인테리어에 운영자금까지 마련하려면 책 많이 팔아야겠는데요. 강연도 열심히 하고…


『한국형 장사의 신』을 읽고 창업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카운터에 이렇게 적어 놓으세요!


1. 장사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근육으로 하는 것이다.

2. 좋은 코치를 만나자.

3. 지치면 끝장이다.

4. 맛있는 집이 잘 되는 게 아니고, 잘 되는 집이 맛있는 거다.

5.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살까만 고민하자.

6. 아내를(남편을) 사랑하자 


 

[관련 기사]

- 따비, 음식인문학으로 삶과 세상을 조명하다

- 2014년, 창업은 솔직히 말리고 싶다.

- 미술관 산책하며 맛집도 즐겨 볼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송양민 우재룡 “은퇴 후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
0
0

젊을 때야 일해서 살 수 있지만, 은퇴 뒤에는 막막하다. 오죽하면 청년의 성공, 중년의 방황, 노년의 가난을 피해야 할 3가지로 꼽았을까. 게다가 주변 여건도 안 좋아, 정부의 세원이 줄어들고 국민연금이 가까운 미래에 고갈된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려온다. 앞으로 100세까지 산다고 하는데, 은퇴 뒤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100세 시대 은퇴 대사전』은 은퇴 설계 전문가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낸 책이다. 단순히 재무 설계에 그치지 않고 건강, 취미 등 생활 전반에 관한 조언을 책에서 제시했다.

 

01.jpg

우재룡(좌) 송양민(우)

 


두 저자분이 어떻게 『100세 시대 은퇴 대사전』을 함께 쓰게 되었나요?

 

송양민 교수는 과거 조선일보 경제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은퇴준비서인 『30부터 준비하는 당당한 내인생』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송 교수는 이후 대학으로 옮겨 고령사회 대책과 은퇴준비 분야에서 많은 연구를 해왔습니다. 우재룡 이사장은 국민연금, 퇴직연금, 연기금의 자산운용 등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실무를 하면서 선진국의 은퇴설계를 국내에 도입하여 보급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또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 등을 지내며 신문과 잡지 등에 은퇴준비에 관한 글을 많이 써왔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오랫동안 친하게 왕래하다보니, 그동안 연구하고 쌓아온 지식들을 총정리한 책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1년간의 공동작업 끝에 만들어진 게 바로 은퇴대사전입니다.

 

지금 시대를 진단해 주신다면?

 

우리는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노년을 대비하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습니다. 직장에 성실하게 다니고 자녀를 잘 키우기만 하면 노후준비는 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였지요. 하지만 현재 중장년들은 부모를 모신 마지막 세대이며, 고령화-저출산으로 인해 자녀들에게 노후를 의지할 수 없는 첫 번째 세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30년간 수천 명을 상담하며 얻은 노하우를 공개했습니다. 상담하면서 노년을 대비하는 데 한국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느꼈나요?

 

중장년들의 노후문제를 상담해보면 노후자금과 같은 재무적인 대비책은 매우 취약하며, 취미여가, 공동체, 자기계발, 자원봉사와 같은 비재무적인 대비책은 더욱더 허술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총체적으로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은퇴설계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직은 은퇴를 생각하지 않는 20~30대들, 은퇴를 앞둔 40~50대들 중에 이 책은 어떤 독자가 읽었으면 좋을까요?

 

모두가 읽어야 하죠. 우리나라도 이제 연금제도를 완비했기 때문에 직장에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국민연금, 퇴직연금이 강제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하며, 개인연금도 선택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실 선진국들은 이런 3가지 연금제도로 노후자금의  상당부분을 자연스럽게 마련합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연령층의 우리국민들이 노후대비를 자신에 맞게 해야 하는 시대이므로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기성세대들은 자녀를 다 키우고 나서 노후자금을 마련하려고 했는데, 이런 자세로는 저금리-고령화시대를 헤쳐 나가기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효과를 소개해 주셨는데요.

 

매일 커피 한 잔 값을 아껴서 저축하는 습관을 말하는 ‘카페라떼 효과’, 적어도 10년 이상의 장기간 투자로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복리효과’와 ‘72 규칙’ 등을 잘 이해하면 효과적으로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젊을 때부터 취미여가나 봉사활동을 잘 실천하면 은퇴 후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좋은 대비책이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준비가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부터 계획하고 실천한다면 우리사회도 선진국 못지않게 훌륭한 노후대비책을 갖추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은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은퇴전략을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현명하게 은퇴전략을 짜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이나 사회 변화에도 잘 대처해야 할 텐데요. 한국은 고령화 속도는 빠른 데 비해 사회보장제도가 선진국에 비해서 미비합니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2050년쯤엔 노인 인구비중이 세계최고 수준으로 높아집니다. 이미 여성들의 출산율은 세계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앞으로 경제-사회 환경이 매우 어렵게 될 것입니다.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로 정부의 세금수입이 줄어들고, 노동력 감소로 잠재경제성장률이 1%대로 하락하게 될 것입니다. 즉 경기침체와 저성장이 겹쳐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나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처해나가려면 복지정책의 확대가 불가피합니다만, 우리나라의 재정여건이 아주 좋은 편이 아니어서 사회보장제도를 계속 강화해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정책을 펴나가야 할까요?

 

따라서 복지대책에서 효율성을 높이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인빈곤을 해소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보완하고, 국민연금제도과 건강보험제도의 보장성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개인연금이나 퇴직연금과 같은 사적연금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특히 인구고령화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저출산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여 즉각적으로 실행해야 합니다. 또 교육의 질을 크게 개선함으로써,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에서 젊은이들의 구직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복지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국민연금이 2060년에 고갈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국민연금을 계속 부어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국민연금에 관한 허와 실을 설명해주세요.

 

현재 우리 국민들은 대다수가 국민연금만으로 노후를 준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민연금 재정이 2060년경에 고갈되는 것이 확실시 되니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민연금은 정부가 만들어서 강제로 가입하는 제도이므로, 그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국가가 지급을 보장해야 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명확하게 국민연금 지급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법 규정을 없습니다. 기금이 건전하게 운영되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선언적인 규정만을 담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도개선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을 것입니다.
 
현재 직장인은 국민연금에 강제적으로 가입해야 하므로 별 고민이 되지 않지만, 자영업자나 소득이 없는 국민들은, 스스로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관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국민연금의 지급이 보장된다면 국민연금은 적게 내고도 노후에 연금을 탈 수 있는 좋은 제도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적게 내고 많이 탈 수 있도록 계속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노후자금을 보장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우면서도 효과적인 제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국민연금에 가입하여 잘 유지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앞으로 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어 나갈 지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창업이냐, 재취업이냐를 고민하는 은퇴자들이 많습니다.

 

책에서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만 은퇴자의 창업은 쉽지 않습니다. 극심한 경쟁과 경기침체로 자영업 종사들의 매출이 날로 하락하고 있으며, 은퇴자들이 급증하고 있어서 좋은 재취업 기회를 발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장점과 재능을 살려서 퇴직 후 경제활동을 힘차게 하기 위해서는 조금 다른 전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여가활동을 바탕으로 사업을 일으키는 경우, 사회봉사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비영리단체를 설립하는 경우 등과 같이 새롭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생각이 필요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래서 은퇴자들과 상담할 때 막연한 창업이나 재취업보다는 자신의 장점과 특기를 살리기 위한 자기계발을 신중하게 할 것으로 권하고 있습니다. 방송통신대학이나 한국폴리텍대학과 같은 재교육기관에서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고 좋은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합니다. 그런 다음 창업을 하더라도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을 뜻을 같이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힘을 합쳐 만들어야 합니다. 혼자서 모든 위험을 지고 하는 시대는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아파트 전셋값으로 단독주택을 짓다?! - 『두 남자의 집 짓기』
-재테크가 아닌 내 집을 갖기를 원한다면… 『집짓기 바이블』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만 원 오른다고?” - 공사비와의 전쟁
-집 선택할 때 단열보다 중요한 것은 외벽
-단독 주택 관리비가 아파트보다 싸다고?



img_book_bot.jpg

100세 시대 은퇴대사전송양민, 우재룡 공저 | 21세기북스
나에게 맞는 은퇴 후 삶을 설계하기 위해 필요한 108가지 주제를 담은 은퇴생활의 지침서. 저자들은 은퇴 분야 및 노후 설계의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서, 30년간 수천 명의 은퇴자를 직접 컨설팅한 노하우를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특히 우리나라에 특화된 은퇴 준비와 방법을 분석하여,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이 책 한 권으로 은퇴설계의 모든 것을 체득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안철수 문재인 조국 표창원, 삼국지의 어떤 인물?

$
0
0

좀체 안녕하지 못한 한국 사회를 지켜보던 저자 김재욱은 문득, 휴대폰을 꺼내 마구잡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평소 삼국지 게임을 좋아해서 언젠간 써보고 싶던 글. 다만 페이스북 친구들이 보는 글이니, 적어도 말이 되게 쓰려고 노력했다.

“안철수는 원소다. 원소는 머리가 좋고, 주변에 괜찮은 모사꾼도 많았다. 하지만 결정적일 때 머뭇거리거나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해서 망했다. 안철수는 여전히 인기가 있는 편이지만, 어정쩡하게 있다가 여러 사람 속만 태우고 대업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조국 교수는 상산 조자룡이다. 조자룡은 전투력도 강하고 머리가 좋다. 아직 자신을 써줄 유비만 한 인물이 나타나지 않아서 연구실에 앉아서 공부를 하거나 가끔씩 트위터를 하지만, 물을 만나면 생각보다 강한 힘을 발휘할 사람이다. 조용히 공부만 하는 사람 같지만, 싸우는 버릇이 들면 본색이 드러날 것으로 본다.”

 

 

저자김재욱

『삼국지 인물전』 저자 김재욱

김한길, 안철수, 문재인, 조국, 표창원 교수 등으로 시작한 삼국지 인물평은 페이스북을 통해 순식간에 공유되었고, 김재욱 저자에게는 연일 친구 신청이 쏟아졌다. 저자가 답답해서 쓰게 된 글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준 것이었다. 연재가 10회가 될 즈음, 김재욱 저자는 조국 교수로부터 “왼편에 원 인물, 오른편에는 현대 한국 인물로 배치해 책을 내면 어떨까요?”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조국 교수는 출판사 연결까지 소개해줬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삼국지 인물전』. 김재욱 저자는 『삼국지』인물의 특징과 유명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거기에 현대 인물을 맞춰가는 방식으로 서른두 편의 글을 완성했다.


자칭 전업 글쟁이 김재욱 저자는 현재 고려대 한문학과 강사로, ‘맹자’를 주제로 한 원고를 집필하고 있다. 또한
『삼국지 인물전』에 아쉽게도 빠진 인물들을 보태 후속작을 출간할 계획도 있다.



대한민국 정치권, 조조 같은 인물 필요

 

『삼국지 인물전』을 펴내기 전에, 페이스북에 ‘즉흥적 인물평’을 올려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인물평을 올리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습니다. 친구 신청이 폭주하고 댓글 반응도 좋았습니다. 아마 삼국지 인물이 가진 독특한 개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좋은 질문에 어리석은 답을 드려서 죄송한데요. 특별한 계기는 없고요. 저는 힘없는 개인일 뿐이지만, 어떻게든 현재 우리나라의 시국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데는 주관적인 시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인물평을 하려고 노력하셨을 것 같습니다.


최대한 저와 독자 간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등장인물의 이력과 실제로 남긴 말을 우선 보여드리고 저의 해석을 더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이 ‘해석’이 저의 평가가 될 것인데요. 이 때 ‘해석’의 기준은 ‘정의’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문재인, 김한길, 박원순, 안철수 등 32명의 인물평이 책 속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32명을 선택한 기준은 무엇입니까?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을 쓰는 것이니까 등장인물은 정치인이 많고요.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인물, 또는 정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인물을 뽑았습니다. 야권 인사들에게 제 생각을 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으므로 야권 인물을 주로 등장시켰고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중에게 자주 거론되는 인물을 중심으로 선택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주인공은 누구인가요?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였습니다. 32편의 글 모두 많은 분들이 공유하셨는데요. 대부분 두 자릿수에 그치거나 많아도 100여 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김어준 총수 편은 200건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자님이 가장 좋아하는 『삼국지』속 인물은 무엇입니까?

유비의 휘하에 잠깐 머물다가 조조에게 가 버린 ‘서서’를 가장 좋아합니다. 잠깐 동안 등장하지만, 사실 상 유비의 첫 번째 참모잖아요. 조조의 장수 조인의 ‘팔문금쇄진’을 깼고, 소수의 병력으로 여유 있게 대군을 상대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유비에게 오기 전 협객 노릇을 했던 점에도 끌리고요. 제갈량을 추천하고 유비를 떠나는 장면에선 감동을 느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가지고 있어야 할, 『삼국지』인물의 덕목을 말한다면.

조조는 인재를 등용할 때 출신을 따지지 않았다고 하죠. 능력 위주로 인재를 선발했고, 부하가 실수를 해도 용서해 주었습니다. 유비는 아시다시피 인정 많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었죠. 손권은 ‘지키기’에 일가견이 있었고요. 이것이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나라 정치권에는 어떤 인물(의 소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나요?

여야를 막론하고 조조의 장점을 지닌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문제 중 하나가 특정 계층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것일 텐데요. 신분의 높낮이와 빈부의 차이에 상관없이 ‘능력’ 위주로 인재를 쓰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봅니다. 이래서 제 책에는 ‘조조’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


 

삼국지-인물전-캐리커쳐

『삼국지 인물전』캐리커쳐 (왼쪽부터 문재인,안철수,조국)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인간형은 어떤 성격의 소유자입니까?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 기품 있게 할 말은 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스스로의 인물평을 자평해 보신다면?

가장 대답하기 어렵고, 곤란한 질문이네요. 아무래도 글쓰기와 공부를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글을 쓸 땐 정말 예민해 지고요. 남들이 다 옳다고 해도 자꾸 다른 생각을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의 말만 듣고, 싫어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그 말이 옳아도 듣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요.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지만, 대중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보니 자기소개가 되어버렸는데요.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는 저한테 ‘나니까 당신이랑 산다’고 해요.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웃음).

책 마지막에 페이스북 친구들의 댓글 모음이 실려 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댓글, 가장 의외의 반응이었던 댓글은 무엇이었나요?

“메시아는 없습니다. 다만 시민이 만들어 내는 리더가 있을 뿐이지요. 리더의 선의에 대한 기대는 실망만 있을 뿐입니다.”고 한 남홍일 님의 댓글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가장 의외의 반응이었던 댓글은 책에는 쓰지 않았는데, 안철수 편 아래에 달린 댓글에 조금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저는 안철수 편을 쓰면서 문재인이나 이른바 ‘친노’와의 라이벌 구도는 전혀 생각지 않았는데 ‘문재인한테 오히려 문제가 많은데 왜 안철수를 비판하느냐’는 식으로 말씀을 하시더군요. 물론 그 분과 오해는 풀었습니다.

저자님께서는 그동안 『맹자 제멋대로 읽기』, 『자녀교육을 위한 고전 강의』, 『한문학 강의노트』등고전, 한문학 강의에 대한 책을 주로 펴내셨는데, 『삼국지 인물전』은 색다른 책입니다. 이 책은 저자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삼국지 인물전』은 여섯 번째 책입니다. 한 권을 제외하면 모두 제 나름 ‘대중적’이라 생각하고 썼던 것인데요. 모두 주목 받지 못했습니다. 이 책을 쓰면서 ‘과연 대중적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정말 대중적인 글쓰기를 했는가?’’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삼국지 인물전』이 얼마큼의 호응을 이끌어 낼지는 알 수 없지만, 대중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저의 전공분야를 갖고 글을 쓸 때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해준 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작가 김재욱이 알려지는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하겠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한문을 잘 모릅니다. 우선 배우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한문학자로서, 한문을 아는 것이 이로운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 질문을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는 한글로 글을 쓰고 의사소통을 합니다. 그러나 한글이 생기기 전에는 모든 걸 한문으로 기록했습니다. 주옥 같은 문학작품들은 ‘한문’으로 지어졌습니다. 사대부들이 한문으로 글을 지었다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그 안에는 현재 우리에게 있는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걸 우리만 모르고 있습니다. 한문 독해력을 길러서 모든 걸 다 알 필요는 없지만 되도록 알아두면 좋겠고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의 문학, 사학, 철학을 공부할 때 한문을 모르면 깊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저자님의 주요한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후속작의 틀과 서술 패턴을 짜는 데 온 마음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독자들께 선을 보인 『삼국지 인물전』의 반응 여부도 궁금하고요.



어떤 독자들이 『삼국지 인물전』을 읽으면 좋을까요?

생각보다 삼국지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람 이름과 지명이 많기 때문인데요. 이 책은 삼국지를 모르는 분들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미 페이스북에서 이건 증명이 되었습니다. 『삼국지』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읽으셔도 좋겠습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볼 수 있을 것이니까요. 정치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서술된 글을 읽고 싶어 하시는 분. 우리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염려하시는 분. 무엇보다 정의를 추구하는 분들이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img_book_bot.jpg

삼국지 인물전김재욱 저 | 휴먼큐브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현실에 답답함을 느낀 저자는 본인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다. 삼국지 주요 인물과 대한민국 주요 인물을 매치한 글이었다. 삼국지 인물의 특징과 우리 현대 인물의 개성을 절묘하게 매칭 시키고 덧붙여 촌철살인으로 써내려간 인물평에 대중들은 환호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글을 공유하고 댓글을 달았다. 급기야 글에서 언급된 이외수, 조국, 표창원 및 정치인들의 뜨거운 관심까지 이끌어냈다. 2014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한민국의 정치지도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책, 우리에게 친근한 삼국지 인물들과 절묘하게 비교하여 이해가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 바로 『삼국지 인물전』이다.


 

[추천 기사]

- 표창원 "정의의 적들과의 싸움, 모두가 참여해야…"
- 납득할 만한 ‘썰’을 푸는 남자, 이철희 소장의 한 방!
- 김종광 “이우 왕자가 살았다면 분단으로 갔을까”
- 임지윤 “꿈이 없는 게 야단맞을 일인가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리파티를 읽으면 인문학이 보인다

$
0
0

다른 사람이 사용했던 언어를 읽으면 좋은 다른 이유는 바로 인용을 하기 위해서다. 글이나 말에 힘을 싣기 위해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 인용이다. 현존한 인물이든 역사에 존재했던 과거 사람이든, 분야에서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 자신의 글에 힘이 붙는다.

 

99.gif

 

이런 이유에서 ‘세계의 명언’ 부류의 책은 오랫동안 꾸준히 나왔다. 이윤재, 이종준 저자가 쓴 『말 콘서트』도 기본적으로는 그런 책이다. 동서고금을 수놓은 다양한 말을 각 인물의 유형별로 나눠서 소개한다. 명언을 수록한 일부 책은 말이 나온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자세히 다루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단순히 말만 소개하지는 않는다. 그 말이 나온 맥락과 함께 저자 자신의 이야기도 담았다.


영어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주로 영어와 관련한 책을 썼다. 이번에는 성격이 다소 다른 책을 냈다. 계기가 있다면?

 

1978년도에 『히틀러 스탈린 헤르츨의 정신분석』(원제: The Psychoanalytic Interpretation of History)이라는 역서를 낸 바 있다. 국제정치와 세계역사와 정신분석의 영역을 아우르는 학술 서적이다. 획기적인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제간의 교류가 없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여러 학문 분야를 융합하는 학제적 연구(interdisciplinary studies)가 학문의 필수로 대두했기 때문이다. 이 책 『말 콘서트』 저술 역시 외도가 아니라 저술 영역의 확대일 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적인 인물의 말로 채웠다. 자료를 조사하고 취합하고 배치하는 게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저술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방면의 영어원문을 접하면서 리파티(repartee 재치즉답)에 관한 자료를 꾸준히 수집해왔다. 반(半)학술적(semi-academic) 성격의 대중 친화적인 내용도 많았다. 초급ㆍ중급ㆍ고급 독자들을 모두 만족하게 할 수 있는 가독성 있는 인문학 서적을 써 보겠다는 욕심이 싹텄다. 따라서 이 책은 내가 10년 동안 채집한 자료의 산물이다. 

 

리파티? 생소한 단어다.

 

말의 장르는 인간의 감정만큼이나 다양하다. ‘먹히는 말’ ‘솔깃한 말’ ‘필이 꽂히는 말’ ‘심금을 울리는 말’ ‘반박할 여지가 없는 말’ ‘상대를 납작하게 하는 말’ 등등 수없이 많다. 어디 그뿐인가! ‘반박(tit-for-tat)’ ‘재치즉답’ ‘응구첩대’도 있다. 응구첩대(應口輒對 응할 응 ㆍ 입 구ㆍ문득 첩ㆍ대할 대)란 ‘묻는 대로 거침없이 대답함’이란 의미다.

 

이 중에 리파티(repartee 재치즉답)는 하나의 장르를 이루고 있다. 리파티는 ‘단박에 한 방의 말 펀치로 받아쳐 상대를 압도하는 말대꾸’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리파티’라는 용어조차도 생소하다. 2006년 나는 <신동아>에서 ‘리파티’를 ‘재치즉답’으로 번역했다.

 

마크 트웨인, 오스카 와일드, 링컨, 처칠, 레이건 등이 리파티를 능란하게 구사했다. 준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상대의 발언에 따라 즉시 대응해야 하는 즉시성(instantaneity) 때문에 리파티는 값이 많이 나간다. 말 중에서 단연코 가장 화력(話力)이 센 장르를 꼽으라면 리파티이다. 말의 정원에서 가장 돋보이는 꽃은 골계(滑稽 풍자ㆍ해학ㆍ기지ㆍ반어 등 웃음을 자아내는 요소) 넘치는 리파티이다. 각종 나물을 양념으로 비비듯 이 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서고금의 문필가ㆍ사상가ㆍ철학가ㆍ종교인ㆍ정치인ㆍ배우 등이 쏟아내는 리파티와 어록을 싣는다. 리파티와 어록 사이사이에는 그들의 철학ㆍ심리ㆍ가치관과 당시 상황과 역사적 배경을 함께 소개한다.

 

분량이 방대한데, 어떤 부분을 앞으로 배치할지, 어떤 부분을 뒤로 배치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구성할 때 중요하게 고려한 점이 있다면?

 

사실 그랬다. 영국 역사가 토인비(1889~1975)는 『Civilization on Trial 문명의 시련』(1948)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예술가와 문필가의 작품은 경영인, 군인, 정치가의 공적보다 생명이 길다. 시인과 철학자는 역사학자보다 더 멀리 내다본다. 반면에 예언자와 성인은 이들 모두를 능가하며 이들 모두보다 오래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말이 은연중 구성과 배치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이 책을 독자들이 어떻게 읽었으면, 혹은 이용했으면 하나?

 

처음부터 읽는 것도 좋겠지만, 독립된 짧은 각각의 이야기를 모은 옴니버스 형식을 빌려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목차를 보고 흥미롭다고 생각하거나 관심이 가면 먼저 읽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펼쳐지는 대로 읽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다가 이 책에 매력을 느끼게 되면 처음부터 정독하면 될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문구가 있다면?

 

과거와 현재를 갖고 싸우면, 이미 미래를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처칠
비관론자는 모든 기회에서 어려움을 본다. 낙관론자는 어려움에서도 기회를 본다. - 처칠
성공했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다. 실패했다고 해서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하려는 용기다. - 처칠

백악관은 세계에서 시설이 가장 좋은 감옥이다. - 트루먼    
대통령은 끝없이 사건을 처리한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사건이 곧 대통령을 처리한다. - 트루먼
결코 두려워서 협상을 해서도 안 되며, 결코 협상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 케네디
사람들은 항상 나를 쳐다본다. 내가 마치 사람이 아니라 거울인 것처럼. 그들은 나를 보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음란한 생각을 본다. 그리고는 나더러 음란하다고 비난함으로써 자신들은 순결한 척한다. - 먼로

 

수사학과 인문학은 어떤 관계인가? 
 
한 젊은이가 소피스트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자신이 첫 번째 소송에서 이기도록 가르쳐주면 엄청난 수업료를 내겠다고 했다. 마침내 젊은이는 재판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수업료를 내려 하지 않았다. 소피스트는 제자를 고소했다. 스승과 제자가 법정에 나란히 섰다. 스승이 주장했다. “내가 이긴다면 당연히 수업료를 받아야 한다. 젊은이가 이겨도 수업료를 내야 한다. 젊은이는 첫 번째 소송에서 이기게 해주면 수업료를 내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젊은이가 주장했다. “나는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다. 재판에서 이긴다면 당연히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다. 재판에서 져도 낼 필요가 없다. 첫 재판에서 이겼을 때만 수업료를 내기로 했다. 첫 재판에서 졌는데, 왜 수업료를 내야 한단 말인가.”

 

위의 이야기는 성품과 감정은 없고 궤변과 아집만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384 BC ~ 322 BC)에 따르면 ‘수사학은 남을 설득하는 기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성품, 감정, 논리를 설득의 기본으로 삼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품이다. 말이 어눌하면 어떤가! 사람 됨됨이가 못되면 유창한 말에도 의심이 간다. 그 후 수사학은 고대 로마의 웅변가요 철학자인 키케로(106 BC ~ 43 BC)를 거쳐 전인교육의 기초로써 중세에 크게 발달하였다.

 

서양에서 인문학은 휴머니티(humanity), 정확히 말해서 the humanities라 한다. 이 말은 라틴어 후마니타스(humanitas)에서 유래했는데, 인간다움이라는 뜻이다. ‘후마니타스’라는 말은 키케로가 기원전 55년에 저술한 <데 오라토레 De Oratore>, 즉 <웅변가론 On the Orator>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에서 문법ㆍ수사학ㆍ문학ㆍ역사ㆍ철학 등이 인문학 범주에 속했다. 한국인은 서양의 인문학을 접하기 전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유교적 인문의 전통 속에 자연스럽게 살아왔다. 오늘날 대학 교육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문학ㆍ사학ㆍ철학 등 인문학 교육과 의학ㆍ법학ㆍ공학 등의 전문직업인 교육이다.

 

책의 무제가 ‘지루할 틈 없이 즐기는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뭐라고 생각하나?

 

‘후마니타스(인간다움)’란 말처럼 원래 인문학은 현실적 효용성과는 무관하다. 인간과 세상에 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을 바탕으로 인간성을 고양하여 ‘온전한 인간’으로 성숙하게 하는 것이 인문학의 목적이다. 인문학은 인격 함양, 정서 함양, 의식 함양 - 구체적으로 말하면, 관용과 상생의 정신, 균형 잡힌 역사의식, 사회를 보는 시각, 문화적인 풍요를 키워나가는 방법 등을 함양 - 하는 데 필수적인 학문이다. 이러한 인간에게서 은은한 인문의 향기가 난다. 선진문화는 인문정신에서 나온다.

 

4월 23일은 책의 날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관해 말해 달라.

 

세계 각처를 직접 돌아다니지 못하더라도 여행기를 통하여 간접 체험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간 과거나 돌아올 미래는 책만이 대변할 수 있다. 따라서 책은 이류의 가장 으뜸가는 문화자산이다. 따라서 ‘책의 날’은 곧 ‘문화의 날’이다.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이 있다면?

 

자극적인 제목으로 독자의 관심을 끌고 있는 책들의 리스트는 끝이 없다. 금방 영어를 숙달할 수 있을 것 같고, 삽시간에 점수가 팍팍 올라갈 것 같다. 쉬운 이론은 장황하게 설명하지만 어려운 부분은 무조건 외우라고 한다. 이런 ‘꽝’ 아니면 ‘맹탕’인 책을 손에 쥐면 금전과 시간만 허비한다. 이런 책이 아니라 영어 학습 영역의 유기적 관계를 중시한 문법을 기반으로 독해, 작문, 회화를 동시에 제압하는 방법을 확실히 제시하는 책을 쓰고 싶다. 학원 한번 안 다니고 혼자서 영어를 내 손안에 쥘 수 있는 책. 수천 년이 지나도 한반도 사방팔방에서 그 생명력이 유지되는 그런 책이면 좋겠다. 변변한 학습서가 나오면 사교육도 고개를 숙일 것이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img_book_bot.jpg

말 콘서트이윤재,이종준 공저 | 페르소나
동서고금 내로라하는 인문들이 쏟아내는 말의 향연을 담아낸 책이다. 대문호 예술가 철학자 성직자 등의 리파티ㆍ어록, 영웅들의 말들이 전율과 울림, 대통령 총리 주석 등, 촌철살인의 리파티를 등의 말들을 들여다본다. 총 7부로 구성했다.

 



[관련 기사]

-척 하면 삼천리, 역사 하면 삼천리
-도서출판 b, 인문학은 b급이다
-최재천, 통섭의 관점에서 향후 10여 년의 사회문화적 경향을 말하다
-“과학은 낭만과 상상을 결코 죽이지 않아요” - 최재천
-여자를 웃긴 남자가 더 매력적인 이유 -이윤석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성희 “그때가 좋았지? NO! 지금이 최고”

$
0
0

두 아이의 뒷바라지를 끝내고 50세라는 나이에 다시 영어영문학 공부를 시작한 김성희 저자. 영국과 서울을 오가며 일을 하고 있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엄친 할머니’라 부른다. 이화여대 교육학과 졸업, 서강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은 김성희 저자는 EBS에서 고교영어를 시작으로 BBC 영어, 옥스퍼드 영어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까지 있으니, 뒤늦게 유학을 떠난 것이 그리 놀랍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1979년 옥스퍼드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게 된 남편을 따라간 영국에서 김성희 저자는 큰 시련을 맛보았다. 남편이 결핵으로 쓰러진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결핵은 무서운 질병이었다.

 

김성희

 

남편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돌아와 여러 강단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김성희 저자. “언젠가 나도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할 거야”라고 다짐했던 약속을 20년 후, 이루게 되었다. 4년 6개월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왜 공부를 다시 시작했을까’ 후회할 정도로 유학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10년 넘게 한국에서 공부한 영어가 영국에서는 잘 통하지 않았다. 어차피 결정한 유학, 김성희 저자는 ‘독하게’ 마음먹기보다는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중에 더 후회할 것보다 ‘덜’ 후회할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깨의 힘을 빼고, 50세에 시작한 공부. ‘덜’ 독하게 하자고 마음먹은 덕분에 그는 옥스퍼드대학 석,박사를 무사히 마치고 2009년부터는 옥스퍼드대학의 지식 공유 프로그램인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의 대표를 맡아,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글로벌 석학과 리더들의 생생한 지혜를 전하고 있다. 『인생은 뜻대로 되는 게 아니란다』는 김성희 저자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한 과정과 그 안에서 깨달은 지혜를 기록한 책이다.

 

“『인생은 뜻대로 되는 게 아니란다』를 출간된 후, 많은 새로운 분들을 만나고 있어요. 저를 모르는 분들이 페이스북에 리뷰를 올려 주시거나 입소문을 내주시는 걸 보면서 뉴미디어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됐어요. 일적인 면에서는, 그동안 오래 생각해왔던 옥스퍼드 TED 프로그램을 곧 시작할 계획이에요. TED가 북미 앵글로 색슨 위주의 가치를 전파해왔다면, 옥스퍼드 TED는 유럽과 아시아의 가치를 내걸 생각입니다.”

 

김성희 저자는 “『인생은 뜻대로 되는 게 아니란다』를 젊은 친구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며, “막연한 불안감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책을 읽는 데 투자하면, 언젠가 꿈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깨지면 깨질수록 발전했다

인생은뜻대로되는게아니란다


현재 옥스퍼드 대학교의 지식 공유 프로그램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 대표를 맡고 계신데요. 최근의 활동이 궁금합니다.


서울대학교 글로벌 공학센터로부터 ‘옥스퍼드 화상강의 프로젝트’ 제의를 받아서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옥스퍼드와 서울대 교수들 모두 데드라인에 맞출 수 있을지 하는 우려가 컸습니다. 그런데 지금껏 한 번도 마감을 어기지 않고, 예정보다 먼저 프로그램을 제작해 제공했고 올해로 4년째 잘 진행되고 있어 항상 마음이 뿌듯합니다. 한편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 초창기에는 인터뷰이를 섭외하기 위해 많은 설득과 설명을 해야 했는데, 최근에는 거꾸로 세계 석학들로부터 우리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저희가 진행하는 다큐 스타일의 편집이 점차 많은 인터뷰이들에게 알려지고 좋은 반응을 얻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옥스퍼드대 교수들뿐 아니라 옥스퍼드를 찾는 세계적인 석학이나 정관계, 재계 인사들을 인터뷰하는데, 직접 이메일을 보내와서 감사의 뜻을 전할 때도 보람을 느낍니다. 

 

늦은 나이에 영국 유학을 떠나,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공부할 때와는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요.


옥스퍼드의 튜토리얼 시스템(Oxford Tutorial system), 즉 지도 시스템입니다. 정말 많은 책을 읽고 에세이를 써 갔는데, 1대 1로 지도교수와 토론한 후에 엄청 깨지는 일이 아주 흔하게 일어납니다. 처음엔 상처도 많이 받았습니다. 나중엔 깨지면 깨질수록 발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요. 또한 한국 학생들이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 비해, 영국 학생들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열심히 노는 편입니다. “Work hard play hard.”이지요.

 

유학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도 많은 부모들처럼 아이들 교육에 올인하는 엄마였습니다. 아이들 뒷바라지가 끝나고 제 나름대로는 명분이 생겼어요.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에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죠. 그런데 아이들은 제 갈 길을 가고, 남편은 남편대로 바쁘니까 ‘그럼 난 뭐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좀 더 저를 적극적으로 챙기기 시작했고, 그 시작이 공부였습니다. 그런데 학위를 땄다는 자체보다 인생 공부를 더 많이 한 게 큰 소득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젊은 학생들과 어울리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금세 친구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 거라는 것은 하나의 추측일 뿐입니다. 한 순간의 결심과 행동과 선택으로, 많은 친구들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저는 댄싱을 통해 젊은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대학원 학생회장에 출마하는 친구를 화끈하게 도와주어 젊은 친구들과 우정을 쌓았습니다. 동서양,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려울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따라서 누가 마음을 열고 도움을 청해오면 성의를 보여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지요.

 

한국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친 이력이 있지만 늦은 나이에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를 시작하기란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싶은 분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영어에 "Go for it"란 표현이 있어요. ‘해보세요’라는 뜻입니다. 무조건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누구든 늦은 나이가 되어 무언가 하고 싶다고 입 밖에 냈을 때는, 말하기 전에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고 있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결정은 본인이 내리는 거지만,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결정은 쉽지 않습니다. 가족과 지인들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김성희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를 만들어가며,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셨는데요.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나요?


성공은 자기 마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닥친 난관에 당황하지 않고 인생을 토닥거리며 사는 그들이 참 대단해 보였습니다. 세상에 어려움이나 문제 없이 사는 사람들이 없잖아요. 그들은 문제를 인생을 더 잘살기 위한 자극으로 받아들이고 잘 해결하는 것 같아요. 요즘 한국 사회에 어른이 없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대접받고 싶으면 대접받고 싶은 만큼, 상대방에게 먼저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나는 어른이라는 자세를 버리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선택과 집중’의 연속입니다. 모든 걸 선택할 순 없기에 포기도 해야 하는데요. 선택의 순간에 놓였을 때, 저자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있나요?


남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 편입니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내 마음은 내가 잘 알거든요.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한다면,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득이 가는 일을 먼저 택하는 편입니다.

 

힘들 때마다, 되새기는 글귀나 신조,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시련을 만나 엎어질 때, 제 자신한테 하는 말은 “아 더 잘되려고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입니다. 되새겨보면 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이 제가 더 열심히 살도록 자극을 준 것 같습니다. 결국엔 일도 사람도, 베푼 만큼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20대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을까요?


연애를 하고 싶어요, 하하. 앞 뒤 안 따지고 정말 화끈하게요. 따지고 보면 어떤 계산 없이,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연애 아닐까요? (웃음).

 

저자님 또래의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전업주부라는 자리를 정말 존경합니다. 본인이 주부라는 직업에 만족한다면,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는, 매우 중요한 역할입니다. 따라서 특별한 사회활동을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면, 오늘 바로 이 순간 한번 시작해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내일이 되면 또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만일 공부하고 싶으면 지금 당장 책을 꺼내 읽어보고 줄도 치고 온라인 강의도 들어보고 하시라는 거죠.

 

자녀교육 문제로 힘들어 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두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교육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너는 할 수 있다(Can do spirit)’였습니다. 이것만큼 대단한 진리는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자녀교육에 정답은 없습니다(웃음).

 

‘오늘’을 버킷리스트로 사용하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앞으로의 버킷리스트가 있나요?


정말, 버킷리스트는 따로 없고요. 지금이 저의 최고의 전성기이므로 언제나 ‘크게 웃자’입니다. 나를 발전시키는 하루하루의 작은 다짐을 버킷리스트로 삼아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인생은 뜻대로 되는 게 아니란다』를 읽을,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인생은 뜻대로 되는 게 아니지만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는 여러분의 뜻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때가 좋았지”보다 “지금이 최고야”라고 말할 수 있으면 더더욱 좋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 오늘을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img_book_bot.jpg

인생은 뜻대로 되는 게 아니란다김성희 저 | 쌤앤파커스
나이 오십에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갔고, 현재 옥스퍼드 대학의 지식 공유 프로그램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의 대표로 일하는 열혈 할머니 써니의 유쾌하면서도 애정 어린 조언을 담은 책. 저자는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거나 삶에 지쳐 힘들어하는 손자손녀 같은 후배들에게,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며 꿋꿋하게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건넨다.


 


[추천 기사]

- “욕망? 억누르지 말고 친구하세요” -『욕망해도 괜찮아』 김두식
- 김성윤 “청소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 40대 두 아저씨, 흐드러진 욕망의 수다를 펼치다! - ‘내밀한 욕망의 인문학’ 김두식-하지현 토크콘서트
- 도정일, 우리는 언제 영혼이 병들지 않는가!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봉현 “힙합, 윤리가 아니라 예술로 봐야”

$
0
0

어느 순간부터 힙합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왔다. 댄스 노래 중에 랩 안 들어가는 곡이 드물고, 심지어는 발라드에도 랩 부분이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과연 우리는 힙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현재 미국 빌보드를 점령하는 주류 음악이지만, 한국에서는 힙합에 대한 이해도가 그리 높지 않은 듯하다.

 

김봉현 음악평론가가 쓴 『힙합 : 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는 제목처럼 힙합에 관한 책이다. 총 15개 키워드로 힙합을 소개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르다 보면 왜 랩퍼들이 서로 싸우는지, NBA 스타와 랩퍼가 친한지, 힙합 가사에 남성성이 두드러지는지 알 수 있다.

 

힙합

『힙합』저자 김봉현

 

원래 기획한 책이지만, 집필에 가속도를 붙인 게 작년에 있었던 한국 래퍼 사이의 디스 사태였는데요. 그때 상황을 말씀해 주세요.

 

일명 '컨트롤 대란' 사건이었죠. 요즘 미국에서 제일 실력 있고 잘 나가는 젊은 래퍼인 켄드릭 라마가 동료 래퍼 빅션의 '컨트롤'이라는 노래에 피쳐링한 가사가 발단이었어요. 자기처럼 잘 나가는 동료 래퍼들을 실명으로 다 거론하면서 "나는 너희를 사랑하지만, 지금 랩으로 너희를 죽여버릴 거야"라는 식으로 가사를 쓴 거죠. 그런데 사실 이게 특정 래퍼를 향한 '디스'가 아니라 힙합계에서는 자연스러운 '경쟁'과 '배틀' 문화이거든요. 음악적으로 자웅을 가리는 과정에서 상대방보다 더 잘하기 위해 더 좋은 가사, 더 좋은 랩이 나오게 되는 거고, 결국 모두의 수준이 향상되는 긍정적 효과가 나와요. 리스너 입장에서도 래퍼들의 음악적 경쟁을 통해 더 훌륭한 예술을 접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반응이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웠어요.

 

 물론 미국의 컨트롤 사건과 조금 다른 면이 있기는 했지만 매체와 대중의 반응을 보면서 '힙합이 대세다', '힙합이 음원차트를 점령했다', '힙합의 대중화가 완성되었다'는 말들이 모두 허울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죠. 저는 '랩 배틀'을 윤리와 도덕으로써가 아닌, 문화와 예술로써 사람들이 받아들이길 기대했어요. "왜 싸우냐? 싸움은 나쁜 건데.", "싸울 거면 고소해서 법정에서 싸워라."가 아니라 "래퍼들은 랩을 하는 예술가들이니까 역시 싸움도 랩으로 하는구나."라거나 실제 주먹다짐이 아니라 음악으로 서로 경쟁하는 모습을 음악적으로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그게 저의 욕심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국에서 힙합이 대세이고 힙합이 진짜로 대중화되었다면 힙합 고유의 속성이자 멋 중 하나인 랩 배틀에 대해서 이렇게 반응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원래 올해 3월까지 원고를 마감하려고 했었는데 속도를 좀 내서 작년 12월에 다 써버렸습니다. 이 책이 힙합이라는 음악, 문화, 삶의 방식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힙합

 

아프로 아메리칸, 게토, NBA 등을 서술하는 대목과 달리 여성혐오나 동성애혐오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저자님도 힙합을 일방적으로 옹호하지는 않는 논조인데요. 물론 힙합 문제이기 이전에 미국사회의 문제라고 말씀은 하셨지만, 어쨌든 힙합 팬으로서 앞으로 힙합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하나요.

 

기본적으로 윤리와 예술은 별개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옳은 것과 매력적인 것은 늘 같지는 않으며 오히려 다를 때가 더 많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늘 완벽하게 올바른 행동을 해왔다면 지금 이 세상이 이 모양이지는 않겠죠. 다만 음악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궁극적으로 사람 사이의 작용이라고 본다면 힙합음악에 어느 정도의 윤리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이긴 해요. 윤리적 잣대만을 절대적으로 들이미는 것에는 반대하지만요. 예를 들어 힙합의 '남성성'에 대해서 성평등이나 페미니즘의 측면에서 누군가는 비판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음악의 중요한 효용이 공감과 감정이입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연인과 헤어졌거나 슬픈 정서를 느끼고 싶을 때 윤종신의 발라드를 듣는 것처럼, 무언가 역동적인 에너지를 얻고 '내가 짱'이라는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힙합을 많이 듣거든요. 그리고 그러한 힙합의 효용은 바로 힙합의 적절한 남성성에서 나오고요. 다양한 분야와 층위의 여러 관점이 복합적으로 동시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봐요. 이리도 보고 저리도 봐야 하는 거죠. 저 개인의 경우를 말하자면, 전 힙합의 적절한 남성성을 즐기지만 동성애 폄하 경향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편이에요. 사랑은 다 같은 사랑이거든요. 물론 책에도 나와있듯 힙합의 동성애 폄하 경향에 근거와 맥락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앞으로의 힙합은 동성애도 포용하는 쪽으로 흘러갔으면 합니다.

 

힙합 스타들의 노랫말에 ‘자수성가’가 주요한 테마라고 지적했습니다. 김봉현 저자가 바라는 ‘자수성가’라는 게 있을까요? 직접 뮤지션이 되고 싶다든지 하는.

 

예술가적 소질이 별로 없는 건 스무 살이 되자마자 바로 깨달았기 때문에 직접 뮤지션이 되고픈 맘은 딱히 없어요. 대신에 지금의 제가 자수성가의 과정에 있다고 스스로 생각해요. 부모님에게 물려받을 큰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름 좋은 대학 나와서 안정된 직장을 안 다녀본 것도 아니지만, 결국 지금은 혼자 이름을 걸고 좋아하는 것과 관련한 일을 하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행히 아직까지는 크게 잘못 가지는 않는 것 같은데요. 앞으로도 열심히, 또 잘 해서 제가 속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싶습니다. 영화<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처럼 훗날 사람들의 '리스펙트'를 받을 수 있다면 멋진 일이겠죠. 그러기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했듯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동시에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문학을 전공했잖아요. 어떤 계기로 음악 평론가가 되었나요?

 

어떤 낭만적인 계기나 드라마틱한 동기까지는 없어요. 그런 걸 거짓말로 지어낼 수도 있지만 그건 힙합이 아니니까요. 다만 중학교, 고등학교 때 교내 글짓기 대회나 백일장이 열리면 늘 상을 받았고 저 스스로로 이과보다는 전형적인 문과 체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또 어릴 때부터 가요 LP나 테이프를 모으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이렇게 생각했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결합해보자고. 마침 한 음악웹진에서 필자 모집을 하길래 지원을 했고 다행히 합격을 했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죠.

 

 

힙합

『힙합』저자 김봉현

 

 

음악 평론도 평론가마다 글 쓰는 취향이 다양한데요. 음악을 기술적으로 분석할 수도 있고, 역사 사회적 맥락에서 다루기도 하는데요. 평론을 쓸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시나요?

 

대상에 따라 달라져요. 여러 관점을 늘 손에 쥐고 있다가 당시의 상황에 따라, 혹은 대상의 특성에 따라 어떤 것을 먼저 꺼내고 어떤 것을 가장 중요하게 적용할지를 그때그때마다 결정하는 거죠. 예를 들어 사회비판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가득 담은 힙합 앨범이 있다면 아무래도 선율이나 사운드 자체에 대한 관점보다는 가사 내용과 동시대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겠죠. 기본적으로는 '감상'과 구분되는 '비평'을, '취향'과 구분되는 '안목'을 제시하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문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한국어로 라임을 짜는 건 영어에 비하면 어떤가요?


아무래도 조금 더 어렵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겠죠. 그래서 옛날에는 한국 래퍼들이 끝말 맞추기 하느라 바빴어요. 이상, 현상, 망상, 공상, 하면서 내용도 억지스럽게 흘러가고. 하지만 버벌진트나 피타입, 엠씨메타 같은 래퍼들이 한국어의 특성을 활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운율감도 생기는 한국말 라임 방법론을 연구하고 발전시켜온 덕택에 이제는 어느 정도 한국말 라임이라는 것이 정립된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앞으로도 고민은 계속 되어야겠지만.

 

힙합은 미국을 점령하긴 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아이돌 댄스 그룹에 비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는 못한데요. 한국에서 힙합이 아직은 대중화되지 못한 이유를 어떻게 보시나요.

 

여느 외국의 것과 마찬가지로 이식된 음악이자 문화라는 태생적 한계도 있는 것 같고요. 애초에 힙합이 한국에 처음 들어올 때 문화나 삶의 방식으로써가 아닌, 음악적 도구로써의 랩이 먼저 들어왔다거나 혹은 힙합 고유의 멋과 매력을 좋아했다기보다는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팝'으로서의 힙합을 그냥 흉내내고 소비했다거나, 힙합의 남성성과 공격성, 경쟁과 배틀 속성이 한국인에게 맞지 않는 면도 있는 것 같고요. 힙합으로 포장되어 인기를 끄는 음악을 들여다보면 정작 다른 장르와 구별되는 힙합의 멋과 매력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아서 사람들이 무늬만 힙합인 음악에 길들여져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뭐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거예요. 더 자세한 건 아메리카노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해드릴게요.

 

힙합을 들어보고 싶은데, 어떤 앨범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초심자에게 추천할 만한 음반이나 사이트를 소개해 주세요.

 

 

1) Nas [Illmatic](1994)

Illmatic

 

이 앨범은 그냥 힙합 자체라고 할 수 있어요. 비트와 랩. 그냥 날 것의 힙합 그 자체죠. 스무 살의 나스가 자기가 겪어온 거리의 삶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는데요. 그 방식과 표현이 다분히 시적이고 아름다워요. 말하자면 아름답지 않은 것에 대해 아름답게 이야기하는 '거리의 시인'인 거죠. 20주년 앨범이 얼마 전에 나와서 요즘 저도 한창 다시 듣고 있는데 시대를 초월하는 클래식으로 남을 것 같아요. 20주년 앨범의 해설지를 제가 썼다는 건 굳이 말 안 할게요.

 

 

 


 

2) Kendrick Lamar [Good Kid, M.A.A.D City](2012)

Good Kid, M.A.A.D City

 

'컨트롤 대란'을 일으켰던 바로 그 주인공, 켄드릭 라마의 메이저 데뷔 앨범이에요. 이 앨범은 한마디로 '이 시대의 [Illmatic]'이라고 보시면 돼요. 스무 살의 나스가 1994년에 데뷔하면서 [Illmatic]이라는 클래식을 내놓았다면, 켄드릭 라마는 2012년에 데뷔하면서 [Good Kid, M.A.A.D City]라는 클래식을 내놓은 거죠.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유기적인 스토리텔링은 물론이고 최고 수준의 랩 테크닉이 주는 카타르시스, 서부힙합의 지역 색채를 훌륭하게 계승한 사운드 등 여러 모로 완벽에 가까운 데뷔 앨범이에요.

 


1) 힙합플레이야 (http://hiphopplaya.com/)


15년 정도 된 사이트예요. 힙합과 관련한 다양한 뉴스가 올라오고, 자체 스토어도 운영하고 있어요. 쉽게 말해 힙합계의 네이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 힙합엘이 (http://hiphople.com/)


요즘 새롭게 인기를 얻고 있는 사이트예요. 외국힙합 초심자에게 특히 좋은 곳이죠. 자막 뮤직비디오도 많구요.

 

3) 김봉현맨 (http://kbhman.com/)


제 홈페이지입니다...

 

좋아하는 여자연예인이 있다면?

 

일단 카라 강지영의 영원한 팬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어요. 2년 전인가 올림픽 공원에서 하는 카라 콘서트에 갔었는데 약 10미터 거리 정도에서 저랑 눈이 마주친 적이 있어요. 그 상황에서 저한테 손을 흔드는 걸 제 폰으로 찍어놓은 영상도 있고요. 카라 팬클럽에서 게시판을 통해 저를 언급한 적도 있어요. 그리고 지영이는 제 대학교 후배이기도 해요. 학번 차이는 좀 나지만. 아무튼 스타라고 자만하지 않고 인성도 올바르게 잘 자랐으면 좋겠어요. 건방진 건 싫거든요. 자신감은 좋지만요. 개인적으로 음색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컬도 좋아하는 편이에요.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이 있다면?


이번 책에 사인을 할 때 정해놓은 문구가 있어요. '힙합: 음악, 문화, 삶의 방식'이라는 문구인데요, 그저 유행이나 음악만으로써가 아닌, 문화이자 삶의 방식으로서의 힙합이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이번 제 책이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된다면 기쁜 일이겠고요. 또 대상이 어떤 것이든 무엇을 판단할 때에는 언제나 그 복합적인 맥락과 이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래퍼들의 자기자랑이나 여성폄하 경향 등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던 분이 있다면 제 책에 있는 여러 관점의 서술을 통해 의문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이해와 별개로 그 후의 판단은 각자의 자유입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img_book_bot.jpg

힙합: 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김봉현 저 | 글항아리
힙합에 씌어진 온갖 오해와 편견을 벗겨내고 힙합의 본래 얼굴을 보여주는 본격적인 힙합 소개서 『힙합』. 힙합에 대해 가지는 의문에 저자 나름의 정리와 대답, 더 나아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힙합의 예술적 면모와 긍정적 에너지, 그리고 우리네 삶으로의 실질적인 확장 가능성까지 정리하여 담았다. 힙합이라는 음악이자 문화, 삶의 양식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추천 기사]

- “욕망? 억누르지 말고 친구하세요” -『욕망해도 괜찮아』 김두식
- 김성윤 “청소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대한민국 대표 록 밴드 넬(Nell)의 위대한 여정
-전세계를 열광시킨 싱어송라이터 러시안 레드(Russian Red), 본드걸로 변신하다
-몽니, 이 노래 내 이야기잖아?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초등학교 학부모가 꼭 알아야 할 것

$
0
0

2013학년도부터 초등 1,2학년군에 새 교육과정이 적용됐다. 스토리텔링, 주제별 교과서 등을 테마로 하는 변화가 일어나면서 학부모들의 걱정도 많아졌다. 『내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의 저자 이현은 교육부 교과서기획과에서 근무하면서 2009개정 초등 1~4학년 국정도서 편찬 기획을 비롯해, 2012년 12월부터 2013년 2월까지 학부모 안내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운영했다. 학부모들의 끊임없는 질문을 받으며, 공교육과 학부모가 소통할 수 있는 정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내아이는초등학교1학년

 

 

서점에 가면 학부모용 교육 지침서가 수없이 많지만, 어떻게 하라는 제시만 있을 뿐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알맹이가 없다. 『내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시리즈는 교과서를 실제 집필한 현장 경험이 풍부한 초등학교 교사들이 집필한 책이다. 학교 교육에서 교과별로 공부해야 할 맥락, 학년별로 배워야 할 내용, 지필 평가 100점이 아닌 발달 단계에 맞게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는 방법 등을 수록했다. 국어, 수학, 통합교과 등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발달 시기에 맞는 교육법’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이현저자

『내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의 저자 이현

 

 

아이는 인정을 해줘야 자신감을 갖는다


초등학교를 보내기 전, 아이가 한글을 제대로 깨치지 못해서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1학년에 입학하기 전에 그래도 이것만큼은 꼭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부모님과 자녀와의 끊임없는 소통이지요. 아이가 텔레비전이나 만화책, 스마트폰과 소통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책과 소통하고 부모, 가족과 소통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죠. 아이가 집에서 볼 수 있는 문자의 경우, 부모님이 자연스럽게 그 문자를 읽는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신문을 보면서 의도적으로 아이가 관심을 갖게 하는 일, 동화책을 재미있다고 부모님이 읽으면 아이는 글자에 관심을 갖게 되죠. 그 때, 기본 음절표를 만들어 거실 유리창에 붙여 놓고 같이 읽다 보면 아이가 글자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연필이나 지우개를 종이와 함께 자연스럽게 제시하면 아이가 글쓰기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아이는-초등학교-1학년.jpg

책 속에는 ‘독서의 중요성’이 거듭 강조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책을 읽는 걸 너무 싫어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의 책 읽기는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하죠. 아이들은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처음에는 말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을 갖는 게 좋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님은 무엇인가 다른 매체를 이용해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죠. 그것보다 부모님이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부모님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며서 들려주는 것이 좋아요. 특히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도 좋지요. 즉, 이야기 들려주기로 관심을 갖도록 하라는 것이죠. 부모님이 먼저 읽어주면 아이는 책 읽기에 관심을 가져요. 주의할 점은 만화책을 먼저 보여주는 것은 좋지 않다는 점이에요. 그림책을 먼저 주는 것은 좋지만 만화는 곤란하죠. 만화책을 먼저 보여주면 만화책에 길들여져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그림에 의존하게 되니까요. 아이와 함께 서점을 한 번씩 가세요. 그리고 도서관에 가 보는 것도 잊지 마세요. 밖으로 나가면 아이도 좋아한답니다.

 

발표력이 부족하고 숫기가 없어서 걱정하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집에서는 어떻게 교육하면 좋을까요?

 

발표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발표력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인데요.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합니다. 교실에서도 어떤 아이는 교사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을 들지만, 교사의 질문에 공책에 답을 적는 아이도 있어요. 질문을 듣고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속으로 답을 하는 아이도 있어요. 모든 아이들이 손을 들고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잘하지도 않습니다. 내 아이의 표현 방법이 어떠한지를 살펴보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것이 시작입니다. 꼭 겉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도 해서 아이의 표현방법이 나쁘다거나 고쳐야 한다는 말을 하면 안 돼요. 먼저 인정을 해줘야 아이가 자신감을 가집니다. 그 후에 속으로 생각한 것을 간단히 글로 써서 읽어 보라고 하고, 다음으로 글을 쓰지 않고 혼자서 말해보고, 다음으로 가족들 앞에서 말해 보게 하고, 점점 발표를 듣는 대상의 친밀도가 높은 사람들부터 낮은 사람들도 옮겨 갈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내아이는초등학교1학년2.jpg

 

어릴 적부터 숫자놀이를 싫어해 학교의 수학 시간을 잘 따라가지 못합니다. 수학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최근 학교에서의 수학교육 진행방향이 옛날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학습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과 흥미를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교과서에서도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에서처럼 숫자놀이를 원래부터 싫어하는 아이들의 경우, 숫자에서 시작하지 않고 수 개념 향상을 위한 다양한 놀이와 교구를 활용한 활동으로 시작함으로써 수학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가려고 의도하고 있습니다. 각 가정에서 수학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아이들에게 수나 숫자에 대해 기억하도록 강요하고 아이들이 숫자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나 원리를 발견하여 깨닫기 전에 싫증을 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봅니다(아이들의 발달 수준보다 높은 단계의 내용을 강제로 학습시킨다거나 하는 경우).

 

따라서 이러한 아이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학교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수업과정에서 많은 내용을 깨닫게 하고 즐겁고 의미 있는 경험의 기회를 가능한 많이 주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이러한 방향으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체계적인 교육과정에 따라 아이들의 수준을 고려한 학습지도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가정에서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일기를 쓰는 걸 무척 싫어하는 경우, 글쓰기에 대한 흥미는 어떻게 키울 수 있나요?

 

1학년 아이의 경우, 그림일기를 통해 흥미를 갖게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다만, 궁극에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을 지속적으로 쓸 수 있도록 ‘에세이’ 쓰기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1학년 아이가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관찰’입니다. 세상일을 주의 깊게 지켜보는 거죠. 관찰은 글쓰기의 기본 중의 기본 능력입니다. 관찰 능력을 키워 주기 위해서는 아이가 옆에 있을 때, 맥락과 상황에 맞는 ‘질문’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관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반응’을 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입니다.

 

 

모르는 건 인정하세요.


통합교과에 대한 정보가 아직 부족합니다. 간단히 통합교과를 쉽게 설명해주신다면?

 

통합교과는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들이 배우는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세 교과를 통틀어서 이르는 말입니다. 이들 세 통합교과는 생활 속에서 아이가 만나고 경험하는 관심사, 즉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학습 내용들을 관련 지어 다룹니다. 통합교과는 아이가 알고 싶어 하는 생활 속의 주제를 중심으로 학습 내용을 통합함으로써 보다 쉽게, 보다 재미있게 학습 활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과별로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첫째, 바른 생활은 기본생활습관과 기본학습습관 및 이와 관련된 다양한 실천 기능을 다룸으로써 바르게 생활하는 어린이를 기르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합니다. 둘째, 슬기로운 생활은 과학과는 달리 학생들이 호기심을 갖고 일상생활 주변의 모습, 변화,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주변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데 주요 목적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즐거운 생활은 주변에 대해 보고, 느끼고, 경험한 감각, 아름다움, 즐거움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면서 건강하게 생활하는 사람을 기르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합니다.

 

2013년부터 전국에 적용된 1,2학년 통합교과의 교과서는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이라는 교과 이름 대신에 학교, 나, 봄, 가족, 여름, 이웃, 가을, 우리나라, 겨울이라는 교육과정 주제가 교과서 제목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세 통합교과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세 통합교과는 각 주제 교과서 속에 잘 통합되어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세 통합교과를 통합해서 공부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입니다. 이렇게 한 주제를 중심으로 하나 이상의 교과를 통합해서 배우는 것을 주제중심 통합학습이라고 합니다. 통합교과에서는 학생들이 통합 교과서를 활용한 ‘주제중심 통합학습’을 통해 교과를 공부한다기보다는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를 탐구하여 알아가는 과정으로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내아이는초등학교1학년3.jpg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아이가 부모에게 물어봤는데, 부모도 잘 모르는 내용일 때는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현명한가요?
 

솔직히 말씀하셔야 할 것 같아요(고학년이라면 더욱). 그리고 함께 풀어보는 거죠. 풀리지 않는 부분에서는 엄마가 공부해서 알려주겠다고 하거나 선생님께 여쭤보는 게 어떠냐고 하세요. 아이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적어서 선생님께 보여드리게 하면(선생님께 미리 문자를 드리는 것도 좋아요) 교사에 대한 아이의 신뢰가 높아져요. 그리고 엄마가 공부해 보겠다고 하는 것도 ‘우리 엄마도 나처럼 공부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해요. 모르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여 부모의 권위가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아이가 공부에 욕심이 많아 선행학습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학교 수업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선행학습을 그만 두자니, 아이 스스로도 뒤쳐질 까봐 두려워하는데요. 
 

학습 내용을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아는 것보다 학습에 대한 흥미를 가지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흥미가 있으면 알고 싶어하고, 알고 싶으면 복습도 하게 되지요.

 

저학년 때는 공부를 곧잘 했는데, 4학년에 올라가면서 학습에 흥미를 잃어버린 아이는 어떻게 교육해야 좋을까요?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도 너무나 분명해서, 싫어하는 과목은 아예 공부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4학년부터는 저학년과 달리 대부분의 교과에서 정답이 정확하게 나오는 것보다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학습에 기초를 잘 잡으면 고학년과 중학교에 들어서더라도 공부를 잘하게 됩니다. 학습에 흥미를 가지려면 예습과 복습을 하는 습관과 함께 꾸준히 사고력을 요하는 질문들을 부모님과 함께 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영어를 좋아하지 않아,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가르치다 말았습니다. 3학년이 되어서 영어수업을 하는데, 친구들이 모두 유창해서 창피하다고 합니다. 영어교육은 어떻게 부모가 지원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초등학교 단계에서 영어교육은 ‘영어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기초적인 영어를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수준입니다. 따라서,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친구들과 비교하기보다는 영어에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 학부모가 되면, 교사와의 소통이 잘 될지에 대해 걱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담임 교사와 잘 소통하기 위해서 부모가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요?

 

아이들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학부모와 교사는 서로 편하게 의논하고 상담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따라서, 직접 찾아갈 수 없는 상황이 많더라도 교사에게 편하게 문자나 전화로 연락하면서 대화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스마트폰이 다 있다고, 사달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로서 현명한가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학교 생활을 보면 스마트폰이 주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장점은 쉽게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SNS에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단점은 시간이 있을 때마다 게임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부모님과 연락을 주고 받을 필요성이 있을 경우에는 피처폰으로 구입하여 주거나, 학교생활에서는 스마트폰을 끄게끔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학교생활을 위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아이는-초등학교-1학년.jpg 

img_book_bot.jpg

내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현 등저 | 지학사(단행)

초등학교 국정교과서를 집필한 현직 선생님이 내 아이 학교생활 전략이 궁금한 초보 학부모를 위해 입학 준비의 해답을 담은 지침서. 사랑하는 아이가 학교라는 출발점에 서 있는 지금, 모든 것이 새롭고 막막한 학부모를 위한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다.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학부모의 불안함이 말끔하게 사라질 것이다.

 

 

[추천 기사]



- 인재진 감독 “내일이 예상되는 삶은 재미없다”

- 남다른 질문, 빛나는 대답

- 엄마의 노래가 행복한 아이를 키운다

- 학교에만 가면 마네킹이 되는 아이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치은 소설가 “언어를 통한 소통? 가능한가?”

$
0
0

이치은 작가의 작품은 심오하다. 모든 심오한 작품이 매력적인 건 아니나, 매력적인 작품 중 심오한 이야기가 많다. 『노예 틈임자 파괴자』는 어떤 소설일까. 두툼한 분량에, 형식적인 파괴도 눈데 띈다. 본문에 캡쳐 화면이나 회화를 넣었는가 하면, 본문 뒤에는 후주를 달았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차인형의 후손인 ‘나’의 기록에서 출발한다. ‘나’는 인간의 언어가 없어져, 인간이 만들어온 모든 세계가 파괴된 후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나’는 차인형의 일기장과 아직 말을 할 줄 아는 할머니에게서 들은 말, 그리고 도서관에서 찾아낸 책으로 차인형의 이야기에 다가간다.

 

차인형의 이야기는 복잡하게 전개된다. 꿈 속의 인물이 단서를 주고, 꿈 속에 다른 사람이 꿈으로 침입한다. 차인형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개인 차원에 머무는 이야기갔지만 소설이 전개될수록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소설의 결말을 공개하는 건 독서의 즐거움을 빼앗는 것이니, 이 자리에서는 밝힐 수 없는 노릇.

 

이치은


오랜만에 장편소설을 냈습니다 그동안 근황이 궁금합니다.


2009년에 『비밀 경기자』를 발표하고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면…… 우선,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을 했고요, 틈틈이 가족들하고 놀았고, 짬짬이 친구들과 만나 술을 먹었고, 로베르토 볼라뇨의 작품을 일곱 권쯤 읽었고, 감기에 걸렸고, 한 편의 장편을 마쳤고, 한 편의 장편을 중간 정도 썼고, 몇 개의 핸드폰을 바꿨고, 그리고 새로 두 편의 장편을 구상했네요.


그동안 약간 신비주의를 고수했습니다. 필명으로 쓰는 “치은”이란 이름도, 부끄러워 숨는다는 뜻인데요. 이렇게 인터뷰에 응한 걸 보면,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인데요.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그때는 유명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것 같고요. 지금은 유명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고요. 그게 차이점입니다.


『노예 틈입자 파괴자』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직접 작가의 입으로 들으면 좋겠습니다.


저한테만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소설이라는 게 원래 말하고자 하는 것, 의도하는 것이 늘 작가의 뜻대로 적용되는 공간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은 아주 자주, 제 의도라는 것이 소설을 써가면서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래서, 의도를 말하기보다는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것이 나아 보이네요. 이 소설을 쓴 계기나 문제의식은 크게 두 가지인데요. 제 큰 애가 매우 어렸을 때인데, 어느 날 잠을 자기 전에 저한테, 무서운 꿈을 자주 꾼다며 자신의 꿈으로 좀 와달라고 하더군요. 그때 남의 꿈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라는 매혹적인 모티브를 가지게 되었고요. 그걸로 소설을 써 보아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는데, 한편으론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싶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날 그전에 갖고 있던 또 하나의 문제의식, ‘현대에서의 언어를 통한 소통 (Communication)’을 ‘남의 꿈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라는 모티브에 결합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품이 다소 심오합니다. 독자가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후기에 쓴 내용이긴 한데요. 작가가 완벽한 독자가 되길 바라는 건 이상일 것입니다. 물론 제가 썼던 글을 완벽하게 망각할 수만 있다면, 이론상으로는 완벽한 독자가 될 겁니다. 하지만 그런 꿈은 허망하죠. 안타깝게도 작가는 자기가 쓴 글을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나’를 제외한 독자라는, 내겐 전혀 보이지 않는 유령이 이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매우 궁금하긴 하지만, 그 유령들에게 제가 ‘하고 싶은’ 혹은 ‘할 수 있는’ 말이 따로 있을 것 같진 없네요. ‘가이사의 몫은 가이사에게’인 셈이죠.


“남의 꿈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라는 모티브”에다, “언어를 통한 소통”이란 주제의식을 더했는데요. 작품에서는 이런 소통 방식을 부정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소통에서 내용보다는 형식, 즉 무엇을 가지고 소통하는가(예를 들면 인터넷, 스마트폰, SNS 등등)가 훨씬 중요해지더라고요. 소통의 수단과 기술이 점점 더 발달하면서, 소통의 양은 점점 늘어났지만, 정작 소통의 핵심인 내용은 점점 더 부차적인 것으로 변해가요. 상업적인 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는 소통의 형식만이 남고 그 내용은 완전히 사라져, 결국 껍데기뿐인 소통의 공해 속에 인간들이 둘러싸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리하자면, ‘남의 꿈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와 ‘언어를 통한 소통이 이제 거의 불가능해진 게 아닌가? 혹은 언어를 통한 소통이 꼭 필요한가?’라는 두 가지 계기 혹은 문제의식이 이 소설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작품의 주요 골격이 틈입자와 파괴자입니다. 왜 파괴자는 인간의 언어와 인간의 소통을 파괴하려고 했을까요?


작가가 그렇게 썼으니 그랬겠죠(웃음). 앞서 말했듯, 현대에서 언어를 통한 소통이 정상적인가라는 질문이, 언어를 통한 소통이 과연 꼭 필요한가로, 더 나아가서는 차라리 이럴 바에는 소통이 깡그리 없어지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해 가면서, 급기야는 언어를 파괴하는 파괴자라는 인물이 제 머릿속에서 태어난 게 아닌가 싶어요. 이 파괴자는 언어를 파괴하고 대신 꿈을 통해 소통하려 하죠.


“서기 1900년부터 2000년 사이 지구 위에 서식하고 있던 사람들의 80퍼센트 이상이 말을 할 수 있었고, 5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글을 쓰거나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존재하고 있는 지금 여기엔, 말도 글도 그리고 소통도 더는 없다. 사라져 버렸다, 거의 완전하게.”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런 극단적인 파국이나 재앙은 현대의 여러 장르에서 자주 모습을 보이는데요. 국가-가족 이데올로기라는 관습-상업영화의 규칙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할리우드 영화를 젖혀두고 생각해 보면, 재앙 영화나 재앙 문학, 그리고 재앙 만화의 근원이란 대부분 현실에 대한 전복 의지가 어떤 실천적인 방식으로 모색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돌파구나 도피처 같은 게 아닐까요? 즉, 언어가 언어로서 기능을 못하는 현대 사회의 소통이 맘에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단단하고 명쾌한 실천적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제 머리와 몸이 만들어낸 괴물이 바로 파괴자가 아닐까 싶네요.


이 작품을 쓸 때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있나요?


소설을 쓸 때 염두에 두는 작품이 더러 있기도 한데요. 예를 들어 전작인 『비밀경기자』를 쓸 때에는, 짧은 글들을 처음 써보는 터라, 보르헤스같이 짧고 압축적인 얘기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소설은 그다지 그렇게 염두에 둔 작가나 작품 없이 써나간 축에 속하는데요. 다만 형식적인 부분에서, 로브 그리예의 『되풀이』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 작품에서는 매우 많은 ‘주’가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소설에서 ‘주’라는 건, 꼭 필수적인 요건이 아닌 데다가 단다고 해도 번역자가 다는 것이지 작가가 다는 건 아니잖아요? 보르헤스라는 예가 있지만요. 하지만 로브 그리예의 소설에서는 이 작가가 단 ‘주’들이 점점 잦아지고, 길어지고 하다가, 나중에는 ‘주’가 원문을 넘어 이야기를 형식적으로 전복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소설 속에서 가장 멋지게 ‘주’를 소화한 예라고 생각했고요, 그 후로 언젠가 나도 ‘주’가 많은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소설에서 ‘주’는 그런 형식적인 전복을 노렸다기보다는 화자와, 아마도 화자의 입-손을 빌려 쓰였을 내용을 일부러 떼어놓은 효과를 주기 위해 사용한 듯합니다. 아, 그리고 이 소설을 마친 후에 비로소 코맥 맥카시의 『The road』를 읽었는데요, 멋진 디스토피아 소설이지요. 세 번째 부분인 <파괴자>를 쓰기 전에 이 소설을 읽었었더라면 더 멋지게 <파괴자>를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짧게나마 했습니다.


 “이건 아주 먼 옛날이야기이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2003년을 시간적 무대로, 한국의 서울을 공간적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2014년을 사는 현재의 우리에게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죠. 그런데, 소설의 화자인 ‘나’는 적어도 21세기의 인물은 아닌 것으로 나옵니다. 게다가 시간도 언어도 의식도 모두 파괴된 세계에 속하는 자이죠. 시간도 언어도 의식도 모두 파괴된 사람이 어떻게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요?


설명이 좀 부족했나요. 일단 화자는 파괴된 이후에도 언어를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예외적인 존재로 설정됩니다. 파괴자와 틈입자의 유전자를 받아서인지, 언어가 파괴된 이후에도 여전히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거죠. 언어가 없어진 세상에서 홀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화자가 자신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을 그리고 다른 기록들을 그리고 할머니를 통해 들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예전에 있었다고 스스로 생각, 상상한 이야기를 만든 거죠.


소설 속에는 언어 추리, 수학 등식을 이용한 추리 등이 등장하고, 각주나 그림 등이 등장하고 각주 속에는 화학 분자 구조도 등장합니다. 혹시 공대를 졸업했다는 소설가의 이력과 관계가 있겟죠?


아무래도 이런 기다란 글을 쓰다 보면, 밑천이 드러나기 마련이 아닐까요? (웃음) 밑천이라는 게 늘 좋아하는 것만으로 빚어지는 건 아닌 법이라……. 그림은 많이 좋아해요. 화집을 넘기면서 그림 속에 잠겨서 시간을 보내는 건, 책 속의 활자들을 해부해 내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거든요. 화학구조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 조금 더 아는 수준인 거지, 좋아하거나 특별히 흥미가 있는 건 아니고요. 추리소설은 제 아주 오래된 도락 같은 건데요. 중 2때, 제가 태어나 처음으로 가졌던 진지한 ‘장래희망’이 추리소설 작가였거든요.


지금은 어떤 작품을 쓰고 있는지, 향후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기억’과 ‘기억 잃어버리기’에 대한 글을 하나 마쳤습니다. 인간이나 꿈이 아니라 장소가 주인공이 되는 소설을 하나 손에 댔다가 반 정도 썼고 잠시 쉬고 있어요. 그리고 그림에 대한 짧은 글들, 집착-질투에 대한 글도 생각해 둔 게 있는데, 게으르기도 하고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아직 확신이 안 서서인지 아직 시작을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는데 올 하반기 정도에나 뭐 하나 잡고 쓰기 시작해 보려고요.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img_book_bot.jpg

노예 틈입자 파괴자이치은 저 | 알렙
이치은의 신작 장편이 출간되었다. 『노예 틈입자 파괴자』라는 파격적인 제목의 이 소설은, 꿈과 언어 그리고 소통에 관한 묵시록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 보여준다. 이치은은, 2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과 이어 발표한 일련의 장편을 통해, 독특한 실험 정신과 심도 깊은 주제 의식을 선보인 바 있다.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 또한 거대한 (의식) 세계의 파괴 음모를 실험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꿈, 언어, 그리고 소통이란 무엇일까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관련 기사]



- 김용태 "생각의 야성을 일깨워 주는 책이 좋다"

- 강제로 폭파된 최고급 아파트

- 한국인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 모멸감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방성혜 “다이어트, 소화 장애? 해답은 디톡스”

$
0
0

의학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건강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 나빠지고 있다. 독소의 바다에 빠진 현대인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온갖 질병으로부터 우리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해독’이다. 『동의보감 디톡스』 저자 방성혜는 “독이 빠지면 다이어트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독이 빠지면 내 몸을 괴롭히는 질병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동의보감 디톡스』는 동의보감을 기반으로 사람을 질병에 걸리게 하고, 미병(未病)의 상태에 놓이게 만드는 독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독소를 제거하는 ‘해독’의 구체적인 과정을 알 수 있다. 디톡스를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은 물론, 몸에 맞는 건강차나 해로운 음식의 즉석 해독법도 안내하고 있어 ‘생활 속 소소한 해독법’이 궁금한 사람에게도 친절한 정보가 가득하다. 질병을 미병으로 개선시키고, 미병을 건강으로 개선하고 싶은 독자라면, 방성혜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10문-방성혜

 

통증의 원인, 습관에 있다


최근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 중에서 가장 흔한 질병은 무엇인가요?

 

동의보감디톡스

한의원이 빌딩 숲 속에 있기 때문에, 환자 분들은 주로 직장인들이에요. 그 분들이 제일 많이 호소하는 질병은 통증입니다. 두통, 견비통, 요통, 복통, 생리통 등등이요. 이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다친 것도 아닌데 왜 아픈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참 이상하죠? 다치지도 않았는데, 왜 아플까요? 이는 통증의 원인이 외상이 아니라, 습관에 있다는 뜻입니다. 나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나쁜 습관 때문에 통증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해도 그냥 한 귀로 흘려 듣는 분들이 많아요. 습관은 나중에 고치고 지금은 아픈 것이 더 급하니까 통증만 빨리 나으면 된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환자의 증상을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면 통증에 더하여 늘 피곤하다, 잠을 깊이 못 잔다, 짜증이 잘 난다, 소화가 안 된다, 몸이 잘 붓는다, 피부가 나빠졌다 등등 몸의 불편한 증상들을 한두 가지씩 가지고 있다는 거에요. 결국 통증이라는 건, 밭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길다란 감자 넝쿨 중에서 밭 위로 올라와 그 존재를 드러난 한 알의 감자일 뿐이죠. 그래서 몸이 안 좋아지면 통증도 더 자주 생긴다고들 하십니다. 그래서 환자 분들께 이런 말씀을 드리죠. 습관을 고치면 몸이 좋아지고 몸이 좋아지면 통증도 사라진다고요. 통증은 한의원에서 치료받으시더라도 습관은 본인이 고쳐야 한다고요. 이 습관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먹는 습관, 생활하는 습관, 그리고 생각하는 습관 등등이요. 한의원을 찾는 환자 분들의 통증을 치료해 주면서 그 아래 숨어 있는 감자 넝쿨의 상한 감자알을 찾아주는 것이 제가 하는 일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독소를 빼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막힌 하수구를 뚫어주는 것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동의보감에서는 우리 몸에서 제거해야 할 병의 원인으로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담음, 어혈 그리고 식적이란 것인데요. 이런 것이 바로 우리 몸을 병들게 하는 독소에요. 하수구에 찌꺼기가 쌓여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파이프 라인의 흐름을 막아버리고 아래로 빠져야 할 더러운 물이 위로 역류하겠죠? 마찬가지로 우리 몸에도 독소가 쌓여 있다면 경락의 흐름을 막아 버리고 노폐물이 배출되지 못하여 역류하는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화에 문제가 생기자 피부가 나빠졌다는 거죠. 이런 독소는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쌓여가기에 당장 느끼지는 못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하고 피로를 쉽게 느끼며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나고 짜증도 잘 나기 시작한다면, 몸에 독소가 많이 쌓인 건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담음으로 인해, 질병을 갖게 된 경우가 많은데요.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담음이란, 내 몸을 병들게 만드는 끈끈한 물을 말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우리 몸에는 몸을 채우고 있는 체액이 있습니다. 원래는 이 체액이 깨끗했는데 어떤 이유로 인해 순조롭게 흐르지 못하고 한 곳에서 정체되면 탁하고 끈끈한 체액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것을 동의보감에서는 담음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담음이 늘어나게 되면 이런저런 질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담음 두통, 담음 견비통, 담음 복통, 담음 요통과 같은 것들이죠. 몸에 담음이 쌓이게 되면 나타나는 신호가 있습니다. 머리가 자주 아프거나 어지럽고 신물이 잘 올라오거나 속이 메스거리고 가래가 늘어나고 여기저기 몸이 돌아가면서 잘 아프고 손발이 차거나 저리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잘 나거나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기는 등의 증세가 나타납니다. 만약 나에게 이런 증세가 보인다면 혹시 담음이 많이 쌓인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0문-방성혜

 

최근, 동의보감 디톡스를 통해 건강을 회복한 환자의 케이스가 궁금합니다.

 

30대 여성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심한 변비가 있었고 동시에 안면홍조도 함께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얼음장처럼 손발이 차가운 수족냉증이 있었죠. 머리는 서늘하고 손발은 따뜻해야 하는데 이 분은 정반대로 얼굴은 화끈거리고 손발은 차가웠어요. 그래서 해독을 시작했죠. 물론 이 분은 건강을 개선하는 것 외에도 뱃살을 빼고 싶어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진찰 결과, 어혈의 문제를 가지고 있더군요. 동의보감 처방 중에서 대변을 소통시켜주면서 어혈을 풀어주는 약을 해독 기간 동안 처방했습니다. 대변으로 어혈을 풀어주면서, 얼굴은 뜨겁고 손발은 차가운 불균형을 풀어주는 약을 처방했죠. 그 결과 뱃살도 빠지면서 안면홍조도 좋아졌어요. 동의보감 맞춤 처방과 해독법이 합쳐지자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성 고혈압인 환자들에게 좋은 음식과 생활 관리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고혈압약을 드시고 계신 부모님들이 정말 많죠. 그런데 요즘에는 고혈압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는 연령대가 더 젊어지고 있습니다. 사십 대에 벌써 고혈압약을 먹는 분들도 주위에서 볼 수 있어요. 한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받는 약이 바로 고혈압약이죠. 그렇다면 고혈압의 상태에 있는 분들은 어떻게 생활 관리를 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선 체중을 빼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일부 유전적인 소인으로 고혈압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과체중이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디톡스를 해보시기를 강력히 추천 드립니다. 또한 살을 빼는 것 외에도 뒷목과 어깨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뒷목과 어깨의 근육이 단단하게 뭉칠수록 심장은 더욱 세게 펌프질을 해서 머리로 혈액을 올려줘야 하므로 혈압이 올라가게 됩니다. 평소 이 부위에 마사지와 스트레칭을 해주는 것 외에도 꾸준히 침 치료를 받아도 정말 좋습니다. 또한 메밀차를 늘 옆에 두고 드시기를 추천합니다. 메밀차의 루틴 성분이 혈압을 내리는데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책에 ‘동의보감식 자연해독을 반드시 해야 하는 사람들’ 리스트가 소개 되어 있는데요. 그 중에서 반드시 디톡스를 실천해야 할 사람들은 어떤 경우인가요?

 

만성 소화 장애가 있는 분들은 해독을 꼭 해보는 게 좋아요. 달리기를 하다가 발목을 다치면 발목을 쉬게 해주고 무거운 것을 들다가 허리를 삐끗했다면 허리를 쉬게 해주잖아요. 마찬가지로 적절하지 못한 음식을 계속 소화시키느라 그만 만성 소화 장애에 놓여있는 분이라면, 소화기를 푹 쉬게 해주는 디톡스를 꼭 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또 한 가지는 만성 두드러기가 있는 분들에게도 디톡스를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대부분의 두드러기는 음식을 잘못 먹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만성이 되면 어느 음식이 두드러기를 일으키는지 원인을 찾아내기도 힘들어지죠. 이럴 때 인스턴트 음식을 차단하고 자연식과 절식을 하는 디톡스를 해보시면 체중을 빼는 것 외에도 두드러기를 고치는 효과도 함께 얻을 수 있습니다.

 

임산부도 디톡스를 할 수 있나요? 임산부가 특히 피해야 할 음식과 많이 먹을수록 좋은 음식은 무엇이 있나요?

 

임신한 상태에서는 디톡스를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갓 출산한 산모 역시 디톡스를 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디톡스를 하고 싶다면 모유 수유가 완전히 끝난 후에 하시면 되겠습니다. 혹은 아이를 임신하기 전에 디톡스를 해도 좋습니다. 디톡스를 통해 예비 엄마의 몸을 더욱 건강하게 만든 후에 임신을 한다면 좋겠죠.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는 임부와 갓 출산하여 모유 수유를 하고 있는 산모는 각각 탯줄과 모유로 엄마의 기운을 아이와 공유합니다. 만약 엄마가 좋은 음식을 먹으면 아이도 좋은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이고요, 엄마가 나쁜 음식을 먹는다면 아이도 나쁜 음식을 함께 먹는 것입니다. 엄마가 기뻐하면 아이도 기뻐하는 것이고 엄마가 슬퍼하면 아이도 슬퍼하는 것입니다.

 

임산부가 꼭 먹어야 할 음식은 아이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해주는 생기(生氣)가 가득 찬 음식이 되겠습니다. 갓 채취한 신선한 음식, 천연 재료로 만든 음식, 제철에 난 재료로 만든 음식에는 사람을 살려주는 생기(生氣)가 가득합니다. 반대로 음식의 생기(生氣)가 사라져버린 음식은 임산부가 특히 피해야 할 음식이에요. 채취한 지 오래된 음식, 깡통에 넣어서 이미 생기(生氣)가 사라져 버린 음식, 온갖 첨가물로 범벅이 된 음식에는 생기(生氣)가 아닌 살기(殺氣)가 담겨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런 음식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임산부가 당연히 피해야 하지 않을까요?

 

10문-방성혜

 

나에게 맞는 건강식품인지, 먼저 따져볼 것

 

현대인들이 잘못된 정보로 섭취하는 건강식품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몸에 좋다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서 보양식 문화가 발달하기도 했고요, 또 뭐에 뭐가 좋다는 식의 건강식품이 최근 유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비만에는 뭐가 좋다, 여드름에는 뭐가 좋다, 갱년기에는 뭐가 좋다, 관절에는 뭐가 좋다는 식이죠. 그냥 몸에 좋다는 이야기만 듣고 너무 쉽게 섭취를 결정했다가 아무 효과가 없거나 혹은 부작용을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건강식품을 섭취할 때에는 두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첫째는 이 제품이 나와 잘 맞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유명한 홍삼만 하더라도 제대로 쓰면 좋은 건강식품이 되지만 잘못 섭취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제는 잘 알려진 사실이죠. 둘째는 이 제품이 제대로 만들어졌나 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수오입니다. 요즘 갱년기에 좋다고 대대적인 광고를 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적하수오의 효능을 따서 광고하지만 실제 사용한 것은 적하수오가 아니라 이엽우피소라는 엉뚱한 것이죠.

 

재료 자체를 효능과 무관한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광고에 속는 것이죠. 따라서 저는 건강식품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어요. 나에게 맞는 건강식품인지를 잘 따져 보라는 것, 그리고 정직하게 만들어진 제품인지 잘 따져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얘기도 꼭 전해 드리고 싶네요. ‘몸에 좋다는 것’으로 채우려고만 하지 말고 ‘내 몸에 쌓여 있는 나쁜 것’을 비우는 작업을 먼저 해보라고요. 현대인들은 이미 너무 많이 먹고 있거든요. 먹을 거리가 넘치는 시대이다 보니 이미 현대인의 몸은 먹을 거리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니 또 다른 무엇으로 채우려고만 하지 말고요, 내 몸에 쌓여 있는 나쁜 것을 비우는 것을 먼저 해보기를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지난해 ‘간헐적 단식법’이 화제였습니다. 한의학적으로도 올바른 다이어트 방법이 될 수 있나요?

 

간헐적 단식법은 일주일에 2번 시행하는 24시간 단식법과 일주일에 3~5번 시행하는 16시간 단식법이 있습니다. 이러한 간헐적 단식법은 주로 다이어트의 목적으로 소개되고 있는데요. 동의보감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몸이 건강하지 않을 때에는 먹는 음식의 양을 줄이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크고 작은 병에 걸렸다가 회복될 때에는 고열량식을 먹기 보다는 오히려 죽을 아주 약간만 먹어서 배가 고픈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였습니다. 식사의 양을 극도로 줄여서 질병에서 온전히 회복되어 더 건강해질 수 있도록 한 거죠. 간헐적 단식법은 여기서 조금 더 나간 방법으로 생각됩니다. 비만이라는 것이 딱히 질병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건강한 상태도 아닌 미병(未病)의 단계로 볼 수 있죠. 이럴 때 단식을 통해서 소화기에 휴식을 준다면 면역계와 해독계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얻어서 몸이 더욱 깨끗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다만 24시간 단식법과 16시간 단식법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데이터가 쌓여서 더욱 검증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거꾸로 식사법’도 많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과일과 채소를 먼저 먹고, 밥과 반찬을 나중에 먹어서 포만감을 일찍 갖게 하여 식사량을 줄이는 방법인데요. 동의보감에 기초를 본다면, 좋은 식사법이 될 수 있나요?

 

식욕이 워낙 왕성해서 쉽게 식사량 줄이기가 잘 안 되는 분들에게 추천되는 식사법인데요. 요즘 음식으로 인해 생기는 질병이 정말 많죠. 이를 조금 더 구분해 보자면 음식의 질 자체가 떨어지는 경우와 음식의 양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경우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거꾸로 식사법은 음식의 양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이 되겠습니다. 동의보감에서는 지나치게 음식을 많이 먹어서 몸이 상한 경우에는 마땅히 음식의 양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식상즉의손기곡(食傷則宜損其穀)’이라고 했죠. 음식에 몸이 상하였으면 곡식의 양을 줄이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식탐이 많은 분들은 식사량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실천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거꾸로 식사법이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흔히들 밥과 반찬을 실컷 먹은 후에 과일을 나중에 먹게 되면 배가 부른데도 불구하고 또 과일을 먹게 되죠. 이 순서를 바꾸어서 과일과 채소를 먼저 충분히 먹은 후에 밥과 반찬을 먹게 되면 힘들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식사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되겠습니다. 이 거꾸로 식사법을 디톡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에 준비기나 회복기에 응용해도 좋습니다. 식탐이 많은 분들이 식사량을 줄일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되겠습니다.

 

저자님께서 건강을 위해, 반드시 실천하는 생활습관은 무엇인가요?

 

너무 거창한 습관을 목표로 세우면 자칫 지키지 못할 염려가 생기죠. 저는 지킬 수 있는 가장 소박한 것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백세 무병 장수를 위해 꼭 지켜야 할, 그리고 그럭저럭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의 세 가지 생활 습관이 있어요. 실은 동의보감에서 끄집어낸 것이기도 합니다.

 

첫째는 생활의 규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동의보감에서는 기거유상(起居有常)이라고 했습니다. 활동하고(起) 휴식함(居)에 항상됨(常)을 지키라는 뜻이죠. 잘 때 자고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면 백세 무병하리라고 동의보감에 적혀 있습니다. 둘째는 음식을 담백하게 먹는 것입니다. 이를 일러 오미담박(五味淡薄)이라고 했습니다. 여러 음식(五味)을 담백하게(淡薄) 먹으라는 거죠. 기름진 음식, 자극적인 음식, 첨가물이 뒤섞인 음식, 화려한 음식보다는 소박한 음식, 시골 음식, 천연 음식을 먹으면 몸과 마음을 밝게 해줄 수 있습니다.

 

셋째는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기뻐하는 마음을 가지면 몸이 이완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희즉기완(喜則氣緩)이라고 하였습니다. 살다 보면 속상하고 화나는 일도 생깁니다. 또한 환자들에게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 보면 저런 상황이면 정말 병이 날 만 하겠구나 싶은 경우도 접하게 됩니다.

 

직접 혹은 간접 경험을 얻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오늘 밤 평화로운 잠자리에 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가!’ 하는 것이죠. ‘오늘 아침 평화롭게 출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상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감사한 마음을 많이 가지게 됩니다. 조금 속상한 일이 있더라도 화내지 말고 오히려 거기서도 유익한 점을 찾아내어서 인생의 지혜를 얻었다고 생각하자고 마음을 다스립니다. 실은 앞의 두 가지는 그럭저럭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요. 마지막 세 번째가 정말 지키기 힘든 것 같아요.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더라도 늘 기쁜 마음으로 생활한다는 것, 이것이 성인의 경지가 아닐까 싶네요.



동의보감디톡스

img_book_bot.jpg

동의보감 디톡스방성혜 저 | 리더스북
웰빙, 힐링 등의 트렌드의 영향으로 해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이 책은 ‘비우고 없애는’ 동의보감의 해독의 원리를 현대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일체의 화학적 약물 없이 오로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내 몸 안의 독을 없애는, 이른바 ‘동의보감식 자연 해독’이다. 이러한 동의보감식 자연 해독법으로 비만을 비롯한 온갖 고질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수백 명이 가볍고 건강한 몸을 되찾았다. 책에 소개된 해독 여행에 동참하는 동안,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추천 기사]

- 책에 대한 책, 재미없다고요?
- 얼굴, 관상 그리고 왕이 되다
- 한강에 복어가 살았다고?
- 서재걸 “건강해지려면 의사와 약을 끊어라”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동섭 “고흐의 자살은 완성하는 죽음”

$
0
0

영화, 드라마, 소설에서 우리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가장 사실적인 이야기는 실제로 살았던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가 아닐까. ‘평전’에는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적이고 공간적인 이야기와 함께 한 개인이 살다간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반 고흐 인생수업』은 새로운 형식의 평전이다. 평전이라는 다소 무거운 이름이 부담스럽다면 에세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오랫동안 파리에서 예술을 공부했고 지금은 문화 전반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는 이동섭 박사가 쓴 책이다. 책 제목에서처럼 반 고흐라는 미술가를 다루되, 고흐의 인생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짚었다.

 

이동섭 오베르쉬르우아즈 고흐 집 앞.JPG

 

반 고흐의 발자취를 주로 시간순으로 서술하되, 핵심 주제를 장마다 배치해서 그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저자가 꼽은 주제는 연애, 결혼, 콤플렉스, 아버지, 가난, 행복, 도시, 친구 등이다. 이들 면모를 본다면 고흐가 맞닥뜨린 문제가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와 비슷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와 동시대인인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읽힌다.

 

고흐의 인생에서 인생 문제의 답을 구하다

 

근황을 말씀해 주세요.

 

파리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성신여대, 청강대, 한예종 등에서 문화와 융합, 뮤지컬에 관해 강의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에 칼럼을 쓰고, SBS 컬처클럽에 출연 중이며 지난 3월부터 ‘스튜디오 뮤지컬’ 이라는 뮤지컬 전문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반 고흐를 다룬 책은 많았는데요. 이 책은 기존에 나온 반 고흐 관련 책과 어떤 점이 다를까요?

 

빈센트 반 고흐는 『햄릿』처럼 명작 소설 같아요. 모든 고전이 그러하듯이, 저도 제 나름의 시각으로 그의 삶과 그림을 읽어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익히 아는 고흐의 이미지는 귓불을 자르고 가난하고 자살한 불행한 화가잖아요? 그런데, 4~5년 정도 그에 대해 공부하고 생의 행적지들을 다녀본 결과, 저는 고흐가 행복했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그는 자신의 전 생애를 거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탐색했고, 그림이라는 결론에 도달해요. 그 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림에 전력질주 했거든요. 어떻게 이런 사람을 불행하다고 하겠어요? 물론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불행한 순간이 있었죠. 하지만 그는 불행에 굴복하지 않고 그가 이루려던 ‘가난한 사람을 위로하는 그림’을 마침내 그려냈거든요. 그 지점에서 반 고흐는 제게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를 물었어요. 그러니까, 반 고흐의 인생에 제 청춘의 고민들을 투사하여 제 나름의 답을 찾아봤어요. 아마 이 부분이 반 고흐를 다루는 다른 책들과의 차별점이 아닐까 싶어요. 

        

책이 반 고흐의 삶을 다루면서, 인생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풀고 있습니다. 동시에, 저자님의 인생까지 되돌아보잖아요. 이런 특별한 형식의 책을 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원래 반 고흐를 크게 좋아하지 않았어요. 워낙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고 그의 그림에 어떤 감흥도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번 책의 프롤로그에서도 밝혔다시피 몇 년 전 제게는 특별한 사건이 있었고, 그로 인해 그의 그림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어요. 반 고흐의 삶과 그림은 분리되지 않아요. 신기하게도, 관람객들은 그의 그림을 그의 자화상인양 감상해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전 과정을 다룬 전기들을 읽으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렇게 하게 만들었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등을 질문했어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애, 결혼, 콤플렉스, 부모와의 관계, 직업, 행복, 우정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중요한 문제들을 반 고흐의 삶을 거울삼아 보게 되었어요.

 

쇼펜하워나 칸트든 책 곳곳에서 인용했던 다른 역사적 인물을 다룰 수도 있었을 텐데요. 왜 반 고흐였을까요.

 

위의 질문에 대한 답과도 연결되는데, 반 고흐의 삶이 제게 던진 핵심 질문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면 행복할까?’였어요. 그는 그리고 싶은 그림만을 그렸지만 평생 가난했죠. 가난해서 고생했지만, 원하던 바를 성취했어요. 요즘은 우리 모두가 삶에 지치고 힘들잖아요? 열심히 일하는데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가장 불행해 보이는 삶을 살았던 반 고흐도 알고 보면 행복했어요. 좋아하는 것을 할 때 느끼는 행복은 잘하는 것을 할 때의 만족감과 비교되지 않아요. 그러니 잘하는 것을 좋아하면 인생이 편하겠지만, 좋아하는 것을 잘하면 행복해요. 그리고 제겐 빈센트 반 고흐가 이걸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사례였어요.  

 

고흐의 자살은 완성하는 죽음일 수도

 
이택광 교수가 쓴 『반 고흐와 고갱의 유토피아』는 고흐가 자살한 주요한 이유로 고갱과 꿈꾸던 아를에서의 공동체가 파탄 난 것으로 지목하는데요. 그보다는 선생님께서는 테오와 관계를 중심에 두는 듯합니다. 사람마다 고흐의 자살을 두고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는데요. 그만큼 고흐의 자살은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소재입니다. 고흐의 자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자살, 이란 단어는 참 무거워요. 특히 요즘 한국 사회에서 카뮈의 말처럼, 어쩌면 철학이 대답해야할 유일한 질문이 ‘인간은 왜 자살하는가’일지도 모르겠어요. 통상적으로 자살의 원인을 크게 연애, 치욕, 명예, 희생적 자살, 명령, 충성심과 신념, 재산 문제, 부당한 대우, 정신병, 미신과 주술 등으로 크게 나눠볼 수 있어요. 반 고흐는 이 가운데에서 뭘까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그가 입원했던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갔을 때, 복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풍경을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삶을 완성하는 죽음도 있겠구나.’ 이것은 제가 책에도 썼지만, “나는 너희들에게 완성하는 죽음을 보여줄 것이다. 산 자들에게 가시이자 서약이 될 죽음을”이라고 말한 니체의 ‘완성하는 죽음’이자, 하이데거가 말하는 ‘죽음을 향한 자유’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_MG_9886.jpg

 

좋아하는 일, 연애, 결혼, 우정, 여행 등 인생을 수놓는 다양한 주제를 다뤘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주제는 무엇일까요?

 

연애겠죠. 연애는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거든요. 저는 인문학을 나를 알아가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연애와 인문학은 접점이 있어요.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행복을 향해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어요. 그런데 연애를 하면 원치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상대와의 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다른 사회적인 관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을 자신의 불합리, 모순, 욕망 등과 직면하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아,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되죠. 그래야 결혼, 콤플렉스, 자립, 직업, 행복 등의 주제도 더 쉽게 해결될 것 같아요. 

 

파리에서 삶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서울에서의 이동섭, 파리에서의 이동섭,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제 인생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도시가 파리예요. 그러니까 처음 서울에 돌아왔을 때는 파리에 살 듯이 살고 싶었어요. 하지만 서울은 더는 방학 때 잠깐 나와 쉬던 곳이 아니라, 돈을 벌고 살아야 하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귀국 초반엔 파리와 서울 사이에 제가 끼여 있는 듯했어요. 어디에도 마음이 확 가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 각 도시가 갖고 있는 좋은 점을 받아들여서 편하게 지내요. 굳이 차이가 있다면, 서울에서는 많이 먹고 파리에서는 많이 걷는 것 같아요. (웃음) 

 

성장은 공짜가 아니다

 

책 곳곳에 아직 진로를 정하지 않은 청춘을 향한 조언을 담았는데요. 실제로 강의도 하잖아요. 요즘 청춘은 어떤 것 같나요. 그리고 그들에게 주로 어떤 조언을 해주시나요?

 

요즘 20, 30대들은 예전에 비해 스펙이 대단히 좋은데, 그걸로 뭘 할지 모르는 것 같아요. 처음엔 그게 참 이상했어요. 알고 보니, 본인이 원해서 쌓은 스펙이 아닌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성장은 공짜가 아니에요. 저의 경험에 비춰보면, 대가를 치러야만 그만큼 성장해요.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려면,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봐야 해요. 낯선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며 인간은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사진, 무용, 비디오아트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습니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미학 공부를 해보니 제가 왜 그렇게 다양한 분야를 탐구했는지 알겠더라고요. 아름다움이 다른 아름다움 속에서만 제 얼굴을 드러내듯이, 그것은 다양한 장르로 나뉜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었어요. 그러면서 같은 말도 다르게 하는 것의 차이를 즐기게 된 것 같아요. 마치 밀가루를 좋아하면, 라면이든 빵이든 짜장면이든 맛있게 먹는 거죠. 앞으로는 예술이 지친 우리의 일상에 친구가 되는 일에 집중하려고 해요. 그래서 ‘예술인문학자’라는 다소 낯선 타이틀을 붙이기도 했어요. 예술작품을 통해서 인문학을 배우면 더 좋지 않을까요?   

 

앞으로 나올 책은 어떤 책인가요?

 

우선 반 고흐를 소재삼아 다른 주제로 원고를 좀 써둔 게 있는데, 그걸 마무리해야 하고요. 고양이를 그린 명화에 얽힌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에 대한 책이 올여름이 지날 무렵에 출간될 것 같아요.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관련 기사]

-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미술 감상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 동구리 화가 권기수, 예스24와 만나다

- 나만의 드로잉,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는

- 손보미 “뉴욕은 세계의 꿈이 모여드는 곳”

- 진중권, 한국의 미를 논하다

 

 

img_book_bot.jpg

반 고흐 인생수업이동섭 저 | 아트북스
연애, 결혼, 아버지와의 관계, 우정, 경제적?정신적 자립, 콤플렉스 등 19세기 유럽에 살던 반 고흐를 괴롭혔던 문제들과 그가 그런 문제들에 대처했던 방식들이 21세기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는 사실이 신선하다. 반 고흐는 시공간을 초월해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조용히 질문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방향타 역할을 해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억배, 티베트에 가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
0
0

평소 고은의 시를 좋아했던 이억배 화백. 2012년 연초 두 달 동안 안성도서관에서 고은 시인의 전집을 읽었다. 숨겨진 보물창고를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이 화백. 수십 편의 작품 가운데, 「5대 가족」을 그림으로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5대 가족」은 티베트 유목민 가족의 일상을 담은 시. 이억배 화백은 티베트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기 위해, 실제 티베트를 방문했다.

 

“취재차 방문한 티베트의 대자연은 새벽처럼 서서히 다가온 것이 아니라, 마치 몇만 년 동안 대지 속에 파묻혀 있던 거인이 쿵 하고 벌떡 일어나듯 어느새 내 눈앞에 닥쳐왔다. 나무 한 포기 없이 메마르고 건조한 산은 만지면 부스러질 듯하고 거대한 공룡의 늙은 껍질처럼 드러난 알몸의 산등성이에는 야크와 양 떼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그 근방에 텐진과 5대 가족이 유목의 삶을 살고 있으리라.” (작가의 말 中)

 

아이들에게 ‘야생의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는 이억배 화백은 여섯살 배기 텐진의 눈에 비친 새끼양의 탄생, 밤하늘의 별, 다른 풀밭을 찾아가는 유목의 풍경을 『5대 가족』에 담아냈다.

 

이억배

『5대 가족』 저자 이억배

 

“미지의 많은 독자들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림책을 처음 접하게 된 독자라면 더욱 좋을 것 같고요. 그림책에 놀라운 세계가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곤 그 감동을 주체하지 못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름도 모르는 어떤 아이가 소중한 친구를 따뜻하게 안아주듯이, 좋아하는 그림책으로 이 책을 선택 한다면 나는 얼마나 좋을까요?”

 

이억배 작가는 후속작을 구상하고 있었지만, 최근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모든 계획을 중단했다. 이 작가는 “슬픔과 분노, 애도의 감정이 뒤섞여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그림책 작가로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대자연은 경이롭고 인간사는 슬프다


고은 선생님의 시집을 읽고, 숨겨진 보물창고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5대가족


고은 선생님은 많이 알려진 분이라서, 숨겨졌다는 표현은 저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20대부터 고은 시인의 시를 좋아했고, 특히 1980년대에는 고은 선생님의 시가 노래로 불리우기도 해서 그분의 시에 친숙하고 분위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처음 산 시집이 김수영, 고은 시집이었고 1980년대 말에는 선생의 투쟁시를 모티브로 목판화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고 있었던 것은 아주 일부분의 피상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안성도서관에서 만난 고은 선생의 시 세계는 너무나 방대했습니다. 두 달여에 걸쳐 전집을 읽었지만, 음미하면서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을 정도로 우선 방대한 양이었습니다. 안성장터 발 밑의 현실에서 출발하여 광대무변의 우주 별나라로 향하는가 하면 억겁의 시공간을 넘나들다가, 길옆에 핀 꽃 한 송이에 외마디소리로 인생을 함축하는 시인의 절창에 감동하고, 신산고초의 역사와 국토에 대한 사랑 앞에 비장 경건해지다가, 끝없이 자신을 버려 새롭게 태어나라는 고은 선생의 시를 읽으며, 저의 죽은 생각을 잘라내고 켜켜이 쌓인 정신의 찌꺼기를 털어내는 대청소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보물창고의 발견 이상의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5대 가족』을 위해, 실제로 티베트를 방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본 티베트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대자연은 경이롭고 인간사는 슬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티베트에 가면 누구나 시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함께 간 일행 중 누구는 “지구의 껍질을 보는 것 같다”하고 누구는 “밤하늘이 마치 우주의 내장 같다”고 하면서 감탄을 쏟아냅니다. 한반도에서 그것도 반쪽의 좁은 땅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온 저에게 티베트의 대자연은 충격적인 풍경이었습니다.

 

해발고도 평균 3,000~ 4,000 이상인 곳에서 느끼는 호흡곤란뿐 아니라 나무 한 그루 없이 펼쳐지는 대평원과 산맥의 도열, 설산, 칼바람, 명암이 뚜렷한 강렬한 햇살, 정신을 쏙 빠지게 하는 맑고 푸르른 하늘빛, 에메랄드 빛 강물, 바람에 날리는 오색의 룽다, 산 위의 사원, 끊어질 듯 이어지는 오체투지의 행렬 등 티베트의 얼굴은 마치 거대한 생명체가 땅 속 깊이 자신의 몸을 숨기고는 살짝 드러난 등허리며 부드러운 각질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서로 절하며 살아가는 신들의 나라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비해 직선으로 뻗어가는 고속철도, 포크레인 먼지를 풀풀 날리는 고속도로 공사현장, 송전 철탑, 삼엄한 공안의 검문검색, 통제되는 분신기사는 오늘날 물질 문명화된 우울한 티베트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얄룽창포 강을 따라 좌우의 거대한 산맥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인가를 느끼고 티베트 땅에 와서야 티베트인들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 내부에 깃든 우주의 마음을 지녔다고 할까요? 거대한 대자연에 머리 숙이고 세상사의 작은 것들에 집착하거나 욕망하지 않고 주어진 것들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억배

 

티베트에서 『5대 가족』의 자료 조사는 어떻게 하셨나요?


보름의 기간 동안, 사진을 2,000장 넘게 찍고 그림도 그리고 현지 박물관이나 전통시장, 민가 방문, 서점에 들러 자료수집을 했습니다. 돌아와서는 중국서점, 인터넷 등을 활용해 추가로 자료조사를 계속했습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스케치를 하면 진동으로 제대로 된 스케치가 불가능할 정도였지만, 티베트의 산하를 내 몸의 감각과 기억으로 받아 들인다는 생각으로 강행했습니다. 현장 스케치에서 대상을 묘사하는 것은 일부분의 목표일뿐, 보다 본질적인 것은 자신과 대상을 일치시키려 하는 소통의 몸짓과 태도이며, 그러한 행위 속에서 얻게 되는 예술적 영감과 직관력을 발견하는 과정에 진정한 목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엉망진창인 선으로 이루어진 스케치였지만, 나의 감각이 티베트의 자연과 사람을 온 몸으로 받아 들이는 희열을 느꼈습니다. 이번 취재여행의 목표였던 난짜빠와산(7,786m) 에서는 한국에서 가져간 팩 소주로 산신제도 지냈습니다. 워낙 고산지대라 바람이 거칠게 불었는데, 그림을 그리려고 앉은 산기슭은 바람 한 점 없이 포근해서 다소 경건하고 신령스런 분위기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아주 놀랍고 감동적인 체험이었습니다.

 

가장 그리기 힘들었던 장면은 어떤 그림인가요?


아무래도 제가 잘 알고 있지 못하는 외국문화, 그것도 쉽게 접근할 수도 없는 오지의 유목문화를 배경으로 그것도 추상적인 화법이 아닌 사실적, 세부묘사를 충실히 한 화법으로 표현한 것이 어려웠습니다. 특별히 한 장면이 어려웠다기보다 바탕에 깔려있는 문화를 이해하고 유목민 아이 ‘텐진’의 입장에 서서 바라보는 세계는 어떤 것일까? 하는 점은 근본적으로는 나에게 이해 불가한 영역이겠지만 '맨땅에 헤딩' 한다는 기분으로 작업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다 어렵고 힘들었습니다(웃음). 그러나 모르는 길을 찾아 가면서도 곳곳에서 발견하는 작은 것들에 용기를 얻었고 커다란 기쁨을 느꼈으며 2년이 넘는 적지 않은 작업 기간이었지만 티베트의 대자연과 유목민의 삶을 그리면서 저 자신이 치유되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핵가족 시대, 형제가 없는 외동들이 많습니다. 5대 가족은 정말 찾기 힘든데요. 점점 개인주의가 되어가고 있는 사회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제가 텐진 나이만 할 때는 시골의 초가집에서 살았는데 텐진네처럼 5대 가족은 아니지만 다섯 식구가 한 방에서 밥 먹고 자고 생활했습니다. 그러다 가끔씩 친척들이 오면 좁은 방에서 함께 잤는데 아이들은 너무나 좋아서 웃고 떠들고 이불 위에서 까불거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말이죠. 시골에서 형과 동네 친구들과 온 산과 들을 밤 낮 없이 날다람쥐처럼 쏘다니던 추억, 좀 더 커서는 도시의 골목에서 친구들과 수도 없이 많은 놀이를 하면서 놀던 경험과 느낌은 오늘날 저에게 예술적 에너지, 아니 삶의 근본적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단군이래 가장 풍요롭다는 물질문명을 누리며 살고 있지만 마음은 외롭고 병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가정 내에서뿐 아니라 친구들과도 놀 기회를 차단당한 채 오로지 공부만을 강요 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한경쟁 시대에 자신의 성공만을 목표로 살아가는 삶에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상상해보면 끔찍해집니다. 아니 그런 지옥의 세계를 우리는 이미 겪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공동체는 나 몰라라 자기만 알고 물질만능만을 추구하는 극도의 개인주의가 어떤 괴물을 낳고 어떤 고통을 주는지 우리는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처절하게 경험하고 있지 않나요? 우리 아이들이 미래의 괴물이 되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고은 선생님의 시 중에 그림책으로 담고 싶은 작품이 또 있나요?


아직은 비밀인데, 보물창고에서 발견한 몇 편의 시가 있습니다(웃음).

 

이억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책이 아니라 앞에 앉아 있는 아이


1995년작 『솔이의 추석 이야기』를 시작으로 다수의 그림책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림책 작업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아래 인용한 글은 1990년대 초반에 그림책을 시작할 무렵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은 심경을 담은 글입니다. 20여년 전 서해 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던 당시의 상황이 현재까지 하나도 달라진 것 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니, 더 나빠진 형태로 말이죠.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무너져 내려야 하나요? 당시, 네 다섯 살 된 딸아이에게 자신이 만든 그림책을 보여 주고 싶었던 가난한 30대 초반의 젊은 아빠는 원하던 그림책 작가가 되었지만 이 땅의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부끄러운 어른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담하고 참담할 뿐입니다.

 

"나는 나름대로 부끄럽지 않은 아빠, 부끄럽지 않은 화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기로 한 의식의 저변에는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마저 집단과 사회 전체에 떠넘겨버리는 사회풍토, 기억하기도 괴로운 수 많은 참사 사건을 불러일으킨 얼렁뚱땅, 대충대충 만들어지는 부실공사에 대한 분노와 반발심이 있었고, 혹시 내가 그린 그림들이 그런 불량 구조물의 한 부분을 이룰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실한 공사는 참사를 불러 귀중한 목숨을 빼앗았고, 부실한 정치와 경제는 IMF를 불러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하는데 부실한 문화 예술, 부실한 그림책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 나의 강박 관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아갔다." (꿀밤나무, 2000)

 

그림책은 독자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가져다 줍니다. 작가로서 발견하는 그림책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여섯 살 텐진이 티베트 고원에서 새끼 양의 출산을 보며 느끼는 생명의 파동을 지구 반대편에 사는 어떤 아이가 그림책을 보며 좋아하고 공감하는 것. 저 산속에 저 고목나무에 도깨비가 살고 있다고 믿게 하는 것. 그림책을 사이에 두고 아이와 어른이 잠깐 동안의 행복을 느끼는 것. 그림책의 세계는 글과 그림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여 마음속에 세우는 또 하나의 세계입니다. 아이의 마음속에 채워지는 수 많은 그림책 세계의 에너지는 어른이 되어서까지 마음속에 빛나는 작은 별빛으로 반짝일 것입니다. 저 하늘의 별과 함께.

 

그림의 소재는 어떻게 얻고 계신가요?


다양한 방법으로 그림 소재를 구합니다. 여행, 취재를 통한 현장 스케치에서 얻기도 하고, 책이나 신문 ,방송, 영화를 보면서 얻기도 하고, 때로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화장실에서, 잠 결에, 밥 먹다가, 운전할 때 등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그 놈의 영감이 스쳐 지날 때 얻기도 하고 전화통화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끄적거린 낙서에서 기가 막힌 소재를 얻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기록하려 하지만 대부분 놓치는 경우가 많아서 분통을 터뜨리긴 하지만요.

 

이억배

 

어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한가요?


사실, 그림 안 그리고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릴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웃음). 두 번째는 어렵사리 그림을 완성하고 홀로 감상자가 되어 자기만족에 빠져 있을 때, 세 번째는 그림에 담긴 때론 나 자신도 잘 몰랐던 내 마음을 읽어 낸 예리한 감상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 보람과 행복이 밀려옵니다. 넷째, 그 그림을 누군가 사고 싶다고 할 때입니다. 다섯째는 글쎄요(웃음).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그림책을 많이 읽어줍니다. 그림책은 어떻게 읽으면 더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요?


좀 뜨끔한 질문입니다. 남들은 제가 그림책 작가라서 아이들에게 그림책도 잘 읽어 주고 잘 놀아 줬을 거라 생각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그다지 좋은 아빠는 못 되었던 것 같습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때인가 아빠에게 놀아 달라고 졸라대니 이번 작업만 끝나면 실컷 놀아 준다 하면서 아빠가 얼마나 바쁜지 이번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 지 따위의 변명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이는 "아빠는 이번 작업 끝나면 또 다음 작업 할거잖아 "하면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지금은 20대 중반을 넘어가는 큰 아이가 기억하는 아빠는 자신과는 놀아 주지 않고 늘 일에 쫓겨 사는 그런 무심한 존재였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시작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미안한 장면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진심으로 함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그림책 읽어 주기든 숨바꼭질이든 작고 하찮아 보이는 일이라도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놀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는 어른이 자기를 건성으로 대하는지 아닌지 본능적으로 압니다. 그림책 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책이 아니라 앞에 앉아 있는 아이 입니다. 아이에게 집중하면 무궁무진한 독창적인 방법이 나올 것 입니다.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우선 독자로서 그림책을 좋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림책을 좋아한다고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그림책을 정말 좋아하는지? 왜 좋은지? 그림책 작가가 되어 살게 된다면 행복할까? 그림책 작가가 된다면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 등에 관한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자기 성찰의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이 그림책 작가로서의 삶이라면 이미 반은 이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머지의 과정은 끊임 없는 도전과 노력으로 채워야 합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러하듯이 그림책 작가 또한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거나 대박을 터뜨리는 멋진 한방의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작업과 내일의 작업으로 이어지는 작업의 긴 여정 속에서 나날이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입니다. 필생의 뜻을 품고 도전 한다면 당신은 이미 그림책 작가로서의 자질을 갖춘 것입니다.


 


5대가족 

img_book_bot.jpg

5대 가족고은 글/이억배 그림 | 바우솔
우리 삶의 이유이자,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가족. 그러나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가는 가족의 참모습을 어린이들에게 전달하고자 ≪5대 가족≫을 기획,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고조할아버지와 여섯 살배기 손자 텐진이 함께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정다움을 자아냅니다. 그저께 양 한 마리가 죽고, 오늘 한 마리가 태어나는 것처럼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고은 시인은 평범하지만 지극한 그 진리를 쉬운 언어로 풀어냈습니다. 여기에 이억배 화가의 탁월한 해석이 더해져 생생한 그림책이 탄생했습니다.


 

[추천 기사]

 

- 속 깊은 비밀 친구, <이웃집 토토로>의 토토로

- 고독의 시

- 도시에서 무단 경작을 권하는 이유

- 강신주 “내일, 당신의 옆 사람이 죽는다면???”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수돌 교수 “농촌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

$
0
0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세계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부가 늘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양차 세계대전을 비롯해 전쟁은 끊이지 않았고 빈국과 부국의 격차 또한 확대되었다.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 20세기의 모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사회 역시 극단의 시대 속에 있다. 식민지로 전락하기도 했고, 전 국토가 전쟁으로 초토화되었지만 빠르게 회복했다. 경제 규모로 10위 권,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30위 권으로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는 사회로 탈바꿈했다. 동시에 노동시간이 가장 긴 사회, 자살률이 가장 높은 사회 등의 불명예스러운 타이틀도 함께 얻었다.

 

빠르게 근대화와 도시화,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한국사회가 잃어버린 건 무엇일까. 강수돌 교수는 이를 치열하게 고민해온 학자다. 경제학자인 그는 문제를 이론적으로만 고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실천했다. 돈의 경영이 아닌 삶의 경영을, 화폐 경제가 아니라 살림 경제를 주장해온 강수돌 교수는 신안1리 마을 이장으로 고층 아파트 반대 운동과 마을 공동체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지금도 시골에서 귀틀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면서 살고 있다.

 

20140306_131233.jpg

 

이장으로서 마을 공동체 지키기 운동한 게 기억에 남아


『잘 산다는 것』아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책입니다. 책을 쓰면서 특별히 염두에 둔 점이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 점을 염두에 두었죠. 하나는 우리가 ‘경제’를 생각할 때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경제를 쉽게 이해하도록 써야겠다는 것이고요. 또 다른 하나는 ‘경제’라 하면 부자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는데, 제대로 잘 사는 것, 즉 행복한 살림살이라는 시각에서 경제를 보는 눈을 길러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이장님으로도 유명하잖아요. 5년간 이장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나요?

 

책에도 자세히 써 놓았지만, 시골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마을 공동체를 지키고자 희로애락을 함께 나눴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죠. 대개 시골 어르신들은 농사만 짓거나 개발 비리 같은 것을 잘 모르시잖아요? 혹시 그런 걸 알더라도 ‘내가 나서서 무슨 소용이 있나? 그냥 참고 말지.’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쉽거든요. 그런데 제가 나서서 ‘우리 마을에 1,000 가구 가까운 아파트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주민들이 아무도 모르게, 그것도 가짜 서류를 만들어 토지 용도까지 바꿔서 아파트를 지으려 한다. 우리가 나서서 막아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비롯해 마을 공동체가 제대로 유지된다.’는 취지의 말씀을 드리니 마을 분들이 ‘그렇다면 당신이 이장이 되어 같이 싸워 보자.’고 하셨거든요. 그렇게 나서서 군청과 도청을 오가며 시위도 하고 도지사 면담도 하고 시가행진도 하는 등 온갖 집단행동을 다 했죠. 우리가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건설사와 당국의 온갖 탄압을 받아가면서도 시골 어르신들이 저를 믿고 따르며 함께 마을 공동체 지키기 운동을 한 것 자체가 제 인생에 아주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지금은 농촌에서 살고 있습니다. 도시에서의 삶, 농촌에서의 삶은 어떤 점이 다를까요?

 

대개 농촌이 발전하면 도시가 되는 걸로 알고 있죠. 실제로 그렇게 진행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면,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잃어버리는 게 너무나 많아요. 예컨대, ‘이웃사촌’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모두가 한강 변 모래알처럼 낱낱이 개인화되어버려요. 상부상조의 전통이나 마을 공동체 문화가 사라지죠. 그리고 봄이면 개나리, 진달래, 복숭아꽃, 살구꽃이 피던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하나씩 사라지고 말아요. 도시화가 되면 자동차, 백화점, 높은 건물, 아파트 단지 등 온갖 편리한 것들, 화려한 것들은 많이 생기지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이죠.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농촌 공동체와 인간 삶에 필요한 각종 편의 시설 등 도시적 공간이 조화롭게 결합한 ‘전원도시 공동체’ 같은 것이 많이 만들어지는 것이라 봅니다.


농촌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


많은 사람이 농촌을 동경하면서도, 가장 망설이는 게 교육 문제일 텐데요. 교수님의 아이들은 농촌에서의 삶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결혼 뒤 처음엔 서울과 과천에서 살다가 다음엔 청주를 거쳐 마지막으로 조치원이라는 시골 마을로 영구히 옮겼죠. 3명의 아이가 모두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졸업했어요. 지금은 큰 아이는 대학에서 재즈 피아노 공부를 하고 있고, 둘째는 빵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전문학교에 다니고, 막내는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유기농 농사일을 즐겁게 배우고 있어요. 모두 다 자신의 선택이었고 엄마나 아빠는 그 선택을 존중하고 힘껏 지원해주지요. 어릴 적에 시골의 작은 학교, 또, 학교를 오가는 가운데 논밭을 지나다니며 생활을 했던 우리 아이들이 모두 건강하고 활발하게 잘 큰 것을 보면,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시골로 가라.’고 권하고 싶어요. 농촌이나 시골이 갖는 장점은 여러 가지죠. 


첫째, 자연은 최고의 교과서이죠. 개구리 소리, 새 소리, 지렁이, 나비, 벌, 꽃, 나무, 심지어 흙냄새까지도 모두 살아 있는 것이고 이것이 아이들에게 호기심도 자극하고 뭔가 다양한 체험을 하게 도와주죠. 둘째, 도시처럼 인공적인 것이 적다 보니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놀이를 만들어서 놀아요. 학원 다니는 친구들도 별로 없으니 서로 놀기에도 더욱 좋고요. 같이 어울려 서로 재미있게 놀다 보면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서서히 협동심도 생기고 사회성도 커지죠. 물론, 요즘은 시골도 많이 변했지만요. 셋째, 여러 학자도 얘기하지만,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에만 시달리면 자신의 꿈도 키울 수 없고 나중엔 꿈이 뭔지도 모른 채 부모나 사회가 가라는 곳에만 가기 쉬워요.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말이죠. 그런데 아이들이 실컷 놀다 보면 나중엔 자연스럽게 스스로 하고 싶은 것도 찾게 되고 일단 목표나 꿈이 정해지면 누가 말려도 스스로 열심히 해요. 삶의 주도성이나 자율성이 생기는 것이죠. 삶의 자율성은 협동심과 더불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꼭 필요한 두 요소이죠. 이런 점들만 보아도 아이들이 시골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면서 잘 크는 것이 교육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아요.

 

DSC01799.JPG

 

오래전부터 돈이 아니라 살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돈의 경제학과 살림의 경제학은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을까요?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이 돈의 경제학이죠. 경제는 곧 돈벌이라는 시각입니다. 예컨대, 기업이 수익을 높이고 나라가 수출을 많이 해 외화를 많이 벌고 개인도 월급을 많이 받으면 경제가 잘 돌아간다고 말하죠. 주식시장이 활발하고 주가가 올라가면 경제가 호황이라 하죠. 나라 전체적으로는 GNP나 GDP가 올라가면 경제가 성장한다며 좋아하지요. 그런데 이런 돈벌이 경제가 놓치고 있는 게 있어요. 그것은 돈벌이 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정리해고가 많이 일어나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며 살아남은 자들의 노동시간이나 노동 강도가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죠. 실제로, 어느 기업에서 비용절감과 수익증대를 위해 정리해고를 한다고 발표하면 그 기업의 주가가 폭등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돈벌이 경제와 살림살이 경제는 완전 딴판이죠. 뿐만 아니라 돈벌이 때문에 가정과 직장의 균형도 무너지고 산재 사고나 일중독과 같은 것도 확산되며, 갈수록 (학생이나 직장인이나) 사람들끼리의 경쟁도 치열해지죠. 더 장기적으로는 산과 강물, 바다와 땅, 공기 등 모든 삶의 토대인 자연 생태계마저 파괴되기 일쑤입니다. 바로 이런 부분이 살림살이 경제인데, 돈벌이 경제로 말미암아 이것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어요.


원래 경제라는 말도 경세제민, 즉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을 구제한다, 백성이 잘 먹고 살도록 돕는다, 이런 뜻이 있지 않습니까? 서양말의 이코노미(economy) 역시 마찬가지죠. 이코노미란 말 자체가 원래 오이코스(가정, 살림)와 노모스(경영, 관리)에서 온 말이거든요. 동양의 경세제민이나 서양말 이코노미가 모두 ‘살림살이’란 뜻이 있는 셈이죠. 이런 뜻에서 저는 살림살이 경제가 원래의 모습인데,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면서 오로지 돈벌이 경제만 강조되다 보니, 우리가 오늘날 아주 왜곡되고 잘못된 경제관념을 갖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제가 돈벌이를 아주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사실, 돈벌이라는 것도 살림살이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있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주객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림살이 또는 삶이 목적이고, 돈이란 그것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죠.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돈이 목적이고 그 목적을 위해 삶을 수단시, 도구시하는 그런 세상에 살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개인이나 사회 전체가 ‘사람 사는 맛’이 잘 나지 않고 구석구석에 ‘돈 냄새’만 풍기는 게 아니겠어요? 지난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조차 알고 보니, (청해진해운과 언딘 회사, 해경 사이의 관계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은 ‘돈벌이 경제’ 때문에 애꿎은 302명의 소중한 생명이 우리의 눈앞에서 희생당한 것 아니겠습니까? 죽은 학생들이나 어른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워 말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만, 이번 세월호 사건은 돈벌이 경제 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배 자체가 거의 파산 직전임을 온몸으로 고발한 사건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책에서 IMF 구제금융,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본질을 꿰뚫었습니다. 성인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한 부분을 명쾌하게 짚었는데요. 그렇지만, 너무나 커다란 이야기라 개인은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개인이 살림 경제라는 면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살림살이 경제의 본질은 모든 ‘생명’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남들도 살아야 하고, 또 인간 전체가 잘살기 위해서라도 자연 생태계가 건강해야 한다는 기본 원리를 깔고 있지요. 그러니 다른 말로, ‘더불어 살자’라고 하는 공존공생의 경제가 곧 살림살이 경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원리에 기초할 때,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은 물론, 직접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죠. IMF 구제금융은 전쟁과 성격은 다릅니다만, 이것도 결국은 세계적 차원의 돈벌이 경제를 관리하는 조직에 불과하죠. 돈 많은 선진국이 어려운 나라에 돈을 빌려주면서 이른바 ‘구조조정’이란 것을 강요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개방화, 탈규제화, 민영화, 유연화 같은 것을 통해 세계적 차원의 돈벌이, 특히 초국적 기업이나 세계금융자본의 돈벌이를 더욱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변화들이죠. 예컨대, 세월호라는 배도 일본에서 수입된 낡은 배였는데(이미 18년 된 것), 원래 사용 연한이 20년밖에 안 되는데도 이명박 정부 시절에 친기업 정책의 일환으로 ‘탈규제화’를 한답시고 30년으로 사용기한을 늘리는 바람에 이미 사고가 나게 되어 있었던 거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일은, 첫째로, 돈벌이 경제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올바른 경제인 살림살이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신념을 갖는 것, 즉, 살림살이 경제에 관한 공부를 착실히 하는 것, 둘째로, 연필 한 자루, 종이 한 장, 물 한 방울, 전구 하나라도 절약하는 실천이 필요하고요, 셋째로, 친구나 주변 사람과 상부상조하고 좋은 것을 서로 나누며 살아야겠죠. 넷째로, ‘아나바다’ 장터 같은 것이나 생협(생활협동조합), 농민 직거래 장터, 공정무역, 착한 소비,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과 같은 사회적 실천 운동에 관심을 갖고 직접 참여하는 것도 좋아요. 요컨대, 돈벌이 경제보다 살림살이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에 동참하는 것, 이것은 나를 살리고 이웃도 살리며 지구를 살리는 길이랍니다.


한국사회가 잃어버린, 되찾아야 하는 가치


농촌, 먹거리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는데요. 그럼에도 여전히 대한민국은 농촌, 먹거리 문제에 둔감한 것 같습니다. 여러 복잡한 문제가 있을 텐데요.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어떤 주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우리가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선진국이 된다 해도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거든요. 농촌, 농민, 농사, 농업을 경시한다면 결국은 우리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 아닐까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5%도 안 된다고 하지요. 엣 말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는데, 나라 전체의 곳간이 든든해야 사람들의 삶의 질이나 행복도도 높아지지 않겠어요? 그런데 오늘날 돈벌이 경제는 자동차, 컴퓨터, 휴대폰 같은 것만 많이 만들어 돈을 많이 벌면 그것으로 식량 같은 건 모두 사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세계 곡물 시장의 가격은 부단히 올라가게 되어 있죠. 게다가 수입 농산물은 결코 건강하지 않아요. 농약(살충제), 제초제, 방부제, 환경호르몬 덩어리가 많아요. 또, 해외에서 수입하는 과정에 에너지를 많이 낭비하죠. 나아가, 설사 비싸고 해로운 것이라도 좋으니 굶어 죽지 않도록 우리에게 농산물 팔라고 해도 미국이나 중국이 ‘너희들, 우리말 잘 안 들었으니 안 팔겠다.’고 버티면 우리는 돈을 들고도 굶주릴 수가 있어요. 이게 ‘식량안보’라는 거죠. 이 모든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돈벌이 경제에 눈이 멀어 진짜 살림살이의 근본을 잊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농촌을 살리려면 가장 먼저 정부가 국정과제의 1번으로 ‘식량자급률 80% 운동’ 같은 걸 해야 한다고 봅니다. 남미의 쿠바가 가장 좋은 사례죠. 1990년대 초에 소련과 관계가 끊기면서 쿠바는 굶주림의 위기에 처했어요. 이에, 대통령부터 시골 농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땅이라고 생긴 곳이 있으면 모두 일구어 유기농으로 곡식, 과일, 채소를 생산하기 시작했어요. 약 20년이 지난 지금은 쿠바의 식량자급률이 95%라고 하잖아요. 놀라운 일이죠. 우리도 못할 것은 없어요. 의지와 지혜를 모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가정, 학교, 회사 같은 데서 보다 조직적으로 우리 농산물 생산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직거래 운동을 벌이는 것이죠. 중간에 농협 같은 조직이 다리 역할을 하면 더욱 좋죠. 게다가 학생들이나 군인들이 봄이나 가을의 농번기에 대대적으로 농촌 일손 돕기 운동 같은 것을 해도 좋을 것 같아요. 한 가정의 밥상을 엄마나 아빠가 차린다면, 온 사회의 밥상은 농민이 차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니 모두가 협동하여 온 사회의 밥상을 건강하게 차리는 데 힘을 모아야겠지요?
 

끝으로, 그간 돈벌이 경제 때문에 무너져버린 농어촌 공동체를 새롭게 세우기 위해 특히 젊은 사람들의 귀농, 귀촌을 권장, 장려하는 운동을 벌일 필요도 있어요. 농어촌이 살기 좋은 곳이 되도록 각종 교육, 문화 인프라 같은 것도 많이 구축하면 더욱 도움이 되겠죠. 앞에서 말한 ‘전원도시 공동체’ 같은 것들이 많이 생겨나야죠. 물론, 난개발이나 부동산 투기, 자연 파괴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하면서 말이죠.

 

책을 보니 현대인들이 놓치고 있는 게 많다고 느꼈습니다. 현대 한국인들이 바쁘게 살면서 놓치고 있는 가장 큰 것은 무엇일까요?

 

가장 큰 것이라고 물으시니, 딱 하나만 말씀 드리죠. 그것은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놓치고 산다는 것이죠. 삶의 목적이 뭘까요? 단연코 그것은 ‘행복’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아이나 어른이나 날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도 모두 행복하고자 그런 것이죠. 그런데 일상에 파묻히다 보면, 열심히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고 행복한 삶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기 일쑤입니다. 주객이 전도되는 거죠. 그렇게 한참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다가 40대 정도 중년이 되면 갑자기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며 삶의 회의를 느끼게 되죠. 그러고도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면 ‘에이, 그냥 살던 대로 살자.’며 나머지 인생도 그저 그렇게 살아나가기 바쁘죠. 그렇게 해서 죽음의 시기가 오면 사람들은 대개 3가지를 후회한다고 해요. 첫째,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잘해줄걸, 둘째,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았지? 좀 여유롭게 살 걸, 셋째,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걸... 이런 후회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인생을 준비하는 청소년 시기부터 이런 삶의 가치를 잘 정립하면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현재 교수님은 경제/경영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학문은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하게 해줍니다. 그런 면에서 교수님께서 지금까지 봐 왔던 한국경제와, 가까운 미래에 한국경제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을 쉽게 해주셨네요, 하하. 지금까지의 한국 경제는 대기업 중심, 수출 중심, 부자 중심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죠. 1997년의 이른바 ‘IMF 경제 위기’는 그런 경제 구조가 한계에 왔으니 제대로 좀 고쳐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었다고 봅니다.
 

그러면 어떻게 고치는 게 옳은가? 이 부분에서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겠지만, 살림살이 경제를 강조하는 저의 입장에서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같이 살고, 수출 분야와 내수 분야가 같이 살며, 부자와 빈자 사이의 불평등이 줄어들고 좀 골고루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했다고 봅니다. 물론, 삼천리 금수강산이 삼천리 오염강산으로 변해버린 전 국토의 자연 생태계도 새롭게 복원하는 운동도 같이 일어나야죠.
 

그런데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면 좀 마음이 아파요. 왜냐하면 지금의 나라 살림을 맡은 사람들이나 심지어 야당 세력조차 이런 근본적인 성찰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바로 그 IMF 사태 이후에 변화했던 우리 경제도 결국은 대기업이나 재벌을 위한 구조조정으로 끝나고 말았죠.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요. 학자들은 이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라 하지요.
 

게다가 최근 뉴스에서도 나왔지만 우리나라 가계 부채가 1000조원이 넘었고 공공부채도 1000조 원이 넘었다고 해요. 반면에 ‘뉴스타파’에도 나왔지만, 극소수의 부자들이 해외에 숨겨 놓은 재산만 해도 약 1000조 원이어요. 한 마디로, 나라 살림살이가 엉망이라는 거죠. 대부분 돈을 번답시고 지난 50년 이상 열심히 살았지만 소수를 제외하고는 죄다 빚더미에 앉아 있는 셈이네요. 물론 그 와중에도 일부 부자들은 흥청망청 살고도 돈이 남아돈다고 해요.
 

이런 점에서 이제부터라도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배를 새롭게 이끌 정직하고 지혜로운 선장과 선원들을 잘 뽑아야 해요. 다가오는 지방 선거만이 아니라 모든 선거에서 이런 철학과 문제의식을 지닌 분들을 뽑는 게 중요하겠죠.그러나 선거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아요. 일례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방송을 엉터리로 하는 바람에 상처를 몇 곱절 더 받은 유가족들이 KBS에 직접 항의하러 갔더니 사장은 꼼짝도 않았죠. 그런데 그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으로 몰려가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자 KBS 사장이 직접 달려왔고 보도국장도 사퇴했죠. 사람들이 뭉쳐서 움직이면 세상은 조금씩이라도 변한다는 것이죠. 나라 살림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국민이 돈벌이 경제보다 살림살이 경제를 향해 작은 실천부터 큰 사회 변화까지 이뤄내고자 노력한다면 10년 뒤 한국 사회는 상당히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 쓰고 있는 책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지금 작업 중인 책은 11년 전에 나온 『나부터 교육혁명』의 2탄입니다. 그 사이에 긴 세월이 흘렀으나 교육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개인적, 사회적 실천이 많이 달라져야 해요. 물론, 대안학교나 혁신학교 같은 새로운 노력들, 진보 교육감, 학생 인권 조례 같은 변화도 제법 있었죠. 하지만 학생들이 경험하는 현실은 여전히 입시 중심, 경쟁 중심으로 흐르고 참된 삶의 주체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것들은 학습하지 못하고 있어요. 특히 집집마다 부모님들은 자녀 교육 걱정에 잠을 편히 주무시지 못할 정도죠. 불안과 공포, 두려움에 동요하는 부모님, 이론과 현실의 괴리에 자괴감을 느끼며 좌절하기 직전인 선생님, 그리고 삶의 좌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을 위해 『나부터 교육혁명』 2탄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느끼며 작업을 하고 있답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관련 기사]

-오형규 한국경제 논설위원이 말하는 인문학, 경제학
-독해력 떨어지는 학생들, 어려운 고전과 친해지려면?
-이은애 “아이들이 뭘 모른다는 생각, 가장 큰 편견”
-행복한 노예는 없다, 행복한 주인만 가능하다
-조승연 “인문학은 교과목이 아니다”



img_book_bot.jpg

잘 산다는 것강수돌 저 | 너머학교
『잘 산다는 것』은 강수돌 선생님이 들려주는 새로운 경제 이야기이다. 경영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면서 조치원 신안리 마을 이장으로 고층 아파트 반대 운동에 앞장섰던 사연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강수돌 선생님이 주창해 온 살림살이 경제의 원리와 그 실현의 모습들을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왕상한 “아내와 다툰 후, 반성문 쓰는 기분으로˝

$
0
0

왕상한 서강대 법대 교수는 왜 『여자도 아내가 필요하다』를 쓰게 됐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사회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그의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딸들이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왕 교수는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또 동료로서 남자가 여자를 위해 가능한 모든 응원과 위로를 책에 담고자 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다소 비관적이었던 왕상한 교수. 그는 논리나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늘 긍정적인 아내 덕분에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아내의 고군분투로 언제나 따뜻했던 가정. 그러나 남편으로서 진정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한 적이 없었다. 왕상한 교수는 『여자도 아내가 필요하다』를 마무리 지으며, 아내에게 짧은 편지를 남기며 약속을 했다. “위로할 일이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고, 위로할 일을 빼먹지 않도록 노력하고, 위로할 일이 생기면 제대로 위로하겠다”고. 

 

남자들이 읽으면 더없이 좋을 책이지만, 여자들이 읽어도 퍽 위로가 될 여자도 아내가 필요하다』. 제목만으로도 격려를 받을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아직도 여자, 남자 편 가르냐며 남자도 힘들다고 핀잔을 늘여놓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딸을 떠올려보자. 딸이 아내처럼 살아도 좋은가? 

 

 

10문10답-왕상한

『아내도 여자가 필요하다』왕상한 저자

 

 

“제가 이른바 돌 맞을 각오를 하고 여자들에게 바치는 응원가를 쓰는 이유는 ‘왕상한’이라는 사람이 보통 남자들보다 깨어 있기 때문도 아니요, 남달리 어머니와 아내, 딸들을 생각해서도 아닙니다. 앞으로 이 책에서 계속 고백하겠지만, 저는 대한민국 평균 남자보다 더 나을 것도, 더 못할 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지금껏 여느 남자들과 다를 바 없는 보통 수준의 응원과 위로를 여자들에게 전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함께 배워가자는 것입니다.” (『여자도 아내가 필요하다』 6쪽)

 

 

아내에게 자주 하면 좋을 말, ‘당신 말이 맞아’

여자도아내가필요하다


그간 독서 에세이『결정적인 책들』, 『 딸에게 쓰는 편지』 등을 썼지만, 여성을 주제로 한 책은 처음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집필하셨나요?


반성문을 쓰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니, 실제 반성문입니다. 부부가 살면서 부부싸움 안하고 사는 사람은 없지요. 그런데 싸움을 하고 기분이 좋은 사람도 없을 겁니다. 저는 틈만 나면 글을 쓰는 버릇이 있는데요. 아내와 다투고 나서도 글을 썼습니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싸웠나 후회가 되는 경우가 많았죠. 이 책은 그렇게 쓴 글들을 수정해서 펴낸 것들입니다.

 

남자들에게 돌 맞을 각오를 하고 글을 썼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책을 본 지인들의 평가는 어떠했나요?


뭐, 실제 돌을 던진 사람들은 없었고요(웃음). 별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만, 책 잘 봤다고 말하는 남자 분들 중에는, 제가 그렇게 느낀 건지 몰라도, 좀 떨떠름한 표정인 분들이 있었습니다.

 

대화가 부쩍 줄어든 중년 부부, 자식 이야기밖에 할 이야기가 없다는 부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화가 끊어지면, 관계도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부부 사이에 할 얘기가 왜 없겠어요. 마음을 닫으니까 할 얘기가 없는 거지. 다만, 대화와 구별할 것이 있는데, 통고가 그래요.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건네는 말이 통고지요. 통고에 익숙하면 대화는 단절될 거에요. 통고를 받았을 때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잘 이해가 되는 말일 겁니다.

 

여자한테 ‘이 말만은 많이 하자’, ‘이 말만은 하지 말자’가 있다면?


이 말만은 많이 하자: 네. 당신 말이 맞아.
이 말만은 하지 말자: 딴 여자는~

 

저자님도 때로 가정에서 아내를 위해, 아내 역할을 해주실 것 같은데요. 특별히 노력을 하고 있는 부분이 있나요?


갈등이 생겼을 때, 내 잘못은 없는지부터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내와 단 둘이 보낼 수 있는 1주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아내가 해달라는 거 해주고, 아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주고 싶어요.

 

 

10문10답-왕상한

 

 

중년 여성들은 갱년기가 지나면, 소녀가 된다고 말합니다. 남편들이 어떻게 대하는 것이 현명할까요?


소녀는 소녀로 대해야지요. 그렇지 않을까요? 소녀를 노인으로 대하면 소녀가 화나지 않겠어요?

 

아내들 못지않게, 남편들도 중년을 지나면 고독해지고 감성적인 성격이 됩니다. 아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책 내용입니다. 머지 않아 나올 책이니 일종의 영업비밀이라, 책이 나오면 한 번 읽어 보심이 어떨지요? (웃음)

 

『여자도 아내가 필요하다』를 어떤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결혼을 앞둔 여성, 결혼을 한 여성, 결혼을 앞둔 남성, 결혼을 한 남성이 읽으면 좋지 않을까요?

 

과거 『딸에게 쓰는 편지』를 출간하시기도 하셨는데요. 딸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시나요?

 

첫째는 만으로 8살. 둘째는 만으로 6살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뭐 하고 싶어?” “어떻게 해줄까?”입니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교육은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라면서 잘 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었죠. 두 딸이 거짓 없는 세상, 약속을 잘 지키는 세상,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세상, 그리고.. ‘다르다’와 ‘틀렸다’를 혼동하지 않는 세상, 치열한 경쟁 속에 아무리 갈 길이 바쁘더라도,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우는 아이의 눈물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닦아주는 세상에 살았으면 합니다.

 

현재 <생방송 심야토론>을 진행하고 계신데요. 토론문화의 변화나 성장을 느끼시나요?


토론문화 똑같아요. 토론이 아니라 통고죠. 토론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고, 설득을 하려면 스스로가 상대한테 설득될 자세가 돼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우리나라에 토론 문화는 없습니다. 오직 통고문화만 있을 뿐입니다. 많이 아쉽습니다.

 

예비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 땅에 남자로 태어났다는 건 그 자체로 기득권층이 된 겁니다. 뭐든 기득권을 내려놓는 게 갈등을 예방하는 길입니다. 고마워해야 할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겸허한 반성도 필요합니다. 가정의 평화를 원하는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여자도아내가필요하다 

img_book_bot.jpg

여자도 아내가 필요하다왕상한 저 | 은행나무
곁에서 아내를 지켜보고 함께 겪어온 결혼 13년차 남편으로서 임신과 출산, 육아, 집안 살림, 고부관계, 직장생활, 나이 듦을 통해 여자들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상처와 고민, 스트레스 등을 꼼꼼히 짚어가며 여성 스스로 혹은 가족의 도움과 관심을 통해 치유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들을 제시한다.

 

 

 

[추천 기사]



- 운명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

- 혼자서 '밥 잘 챙겨먹고' 살기

- 설득, 두 얼굴의 심리학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 『강아지똥』

- 우리 시대 지식인들의 릴레이 강연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류미 “야구를 좋아하면 재밌을 거예요”

$
0
0

서울동대문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는 특별한 야구단이 있다. 중학생 선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결성된 ‘푸르미르야구단’. 동대문 지역의 중학교를 대상으로 학생들의 추천과 지원을 받아 푸르미르야구단을 조직했다. 참여 자격 조건은 ‘관내 재학 청소년, 선도가 필요한 청소년,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청소년.’ 학교도 다르고, 학년도 다르고, 저마다의 사연도 다른 외인구단이 탄생했다.

 

오합지졸 푸르미르야구단의 중심을 지켜준 감독은 박승민 현 넥센 불펜코치. 그리고 ‘멘탈 코치’로는 『동대문 외인구단』의 저자인 류미 신경정신과의사가 발탁됐다. 2013년 5월부터 푸르미르야구단의 성장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류미 저자는 약 6개월의 기록을 『동대문 외인구단』에 담았다. 경상남도 창녕의 국립부곡병원 의사로, 한 달에 두 번씩 서울과 부곡을 오가는 수고를 감당해야 했지만,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 ‘곧 죽어도 풀스윙, 힘 없어도 돌직구’로 승부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야구 팬들에게도 솔깃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10문10답-류미

 

“『동대문 외인구단』은 야구를 좋아하면 재미있을 거예요. 야구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청소년이 있는 사람들은 또 재미가 있을 거예요. 아이들 이야기가 많으니까요. 야구를 좋아하지 않고, 청소년이 없더라고 사는 게 팍팍한 사람들도 재미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이 책에는 수많은 ‘루저’들이 나오거든요. 몸이 아프든, 공부를 못하든, 뜻대로 안 되고 매일 싸우든 간에 모두 사회에서 일단은 ‘루저’로 낙인 찍힌 사람들이죠. 그런데 이 책에는 ‘루저’들끼리 뒤엉켜서 야구하면서 점점 숨어 있던 밝은 기운이 하나 둘 나와요. 자연스러운 회복력을 볼 수 있어요. 그러면서 ‘아, 지금은 어둡기만 한 내 모습 한구석에는 밝은 생명력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강요하지 않고, 먼저 듣겠다

동대문외인구단


푸르미르야구단의 멘탈 코치로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고 들었는데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알고 하는 제안이지요. 목이 너무 마른 사람에게 “물 한잔 마실래?”라고 하면 이게 제안은 아니잖아요. 저는 당시 만성 조현병 환자들이 대부분인 병원 생활에 따분함을 느끼고 있었어요. 만성 조현병 환자들은 대부분 무의욕, 무쾌감 상태로 살거든요. 그런 환자들을 매일 만나다 보니 저도 무의욕, 무쾌감이 되어가는 것 같더라고요. 가장 신나 하던 시간이 일과를 마치고 프로야구 중계방송을 보는 시간이었죠. 정신 없이 시끄러운 함성이 터지다가도 또, 공 하나하나에 팽팽한 긴장감이 넘치는 그라운드. 그곳은 항상 제가 동경하던 곳이죠. 그런 저에게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해보시겠어요?”라고 물어왔으니 이건 목마른 저에게 주는 시원한 물과 같은 것이었죠. 즉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어요.

 

푸르미르야구단 아이들을 처음 대면했을 때는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면접장에서 단체로 봤을 때에는 저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쑥스러워했죠. 학교에서 말을 좀 안 듣는다는 아이들은 생각했던 것처럼 반항적이거나 하지 않았고요. 오히려 무관심하달까, 시큰둥하달까 그랬어요. 어른들을 믿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었어요. 사실 반항보다 무관심이 더 심각하지요.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거니까요. 자기들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여자이고, 또 게다가 몸까지 불편한 저에게 살갑게 아이들이 와서 인사하고 말을 건다는 것을 기대했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저의 오만이었죠. 제가 아이들이라고 해도 먼저 그렇게 안 했을 거예요. 저 역시 천성이 좀 낯을 가리는 편이어서 “안녕, 얘들아” 하고 먼저 인사를 하지는 못했어요. 다행히 푸르미르야구단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있어서 쾌활하고 밝은 아이들과 먼저 친해질 수 있었죠. 그러면서 그 친구의 친구들과 서서히 친해지고. 그렇게 진행이 되었어요. 물론 가장 큰 요인은 ‘야구’였죠. 야구라는 매개체가 생기니까 자연스럽게 말할 거리가 생기더라고요. 

 

10문10답-류미

 

의사로서 환자를 마주할 때와 멘탈 코치로서 아이들을 만날 때는 각기 다른 감정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코치로서 제가 어떻게 아이들을 대해야겠다, 이렇게 거창하게 마음먹은 건 없고요. 저는 딱 하나의 원칙만 있었어요. ‘강요하지 않고, 먼저 듣겠다’고 생각했지요. 한 아이는 돈을 훔쳤다고 고백을 해왔는데, 저는 순간 “왜 그랬니?”라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어요. 그렇게 묻는 순간 아이가 또 입을 다물 수 있으니까요. 자신에게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을 먼저 인식시켜주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다 이야기해요. 강요하는 순간 입은 닫히지요.

 

사실 정신과라는 과가 속성상 다른 과와는 ‘환자’의 정의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물론 정신과에 오는 분 중에 정말 현실검증력이 떨어지는 환자도 있지요. 망상이나 환청이 지배하는. 그러나 가벼운 불안, 우울, 아니면 학교생활 부적응, 가정 내 불화 등으로 정신과에 오는 아이들을 환자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정신과에 오는 사람을 ‘환자’라고 정의하는 순간, 문제는 더 어려워진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지요, 정신과는. 살다가 힘들 때 가장 먼저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정신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생각이 이렇다 보니 저는 진료현장에서 만나는 사람을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저 사는 게 조금 힘든 또 하나의 인생이라고 생각하지요. 푸르미르야구단의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의사로서 환자를, 코치로서 아이들을 대할 때 차이는 그래서 없어요.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이 환자라는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니까요. 

 

실제 프로선수들이 푸르미르야구단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아이들도 좋아했겠지만, 평소 야구광인 저자님께는 더욱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특별히 더 좋았어요. 정말 잘생기고 키도 크고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웃음) 그분들을 보면서 제가 배운 게 있어요. 특히 이후에 넥센 히어로즈에 불펜코치로 가신 박승민 푸르미르야구단 감독님에게는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첫날 아이들이 지각을 많이 하자 저는 좀 초조했어요. 감독님은 아이들에게 시간 엄수하라고 말을 하지 않더라고요. 감독님은 아무 말 없이 항상 30분 먼저 나와서 몸 푸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줬어요. 그렇게 몇 달을 계속하니까 나중엔 정말 한 명도 지각하는 아이가 없더라고요. 사실 놀랐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은 똑같이 배우죠. 늦지 마라, 고 말할 필요가 없어요. 어른이 먼저 계속 일찍 오면 되는 거예요. 자신은 늦게 오면서 늦지 마라고 말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최악이죠. 그런데 돌아보면 그런 어른이 적지 않죠. 속된 말로 ‘말빨’이 서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바뀌길 바란다면 그러니까 욕심이겠죠.

 

야구단 아이들 중에 특별히 마음에 갔던 학생이 있었나요?


그건 계속 바뀐 건 같아요. 처음에는 공부는 못하고 밝은 아이들이 끌렸어요. 말하기도 편했고요. 나중에는 우등생인데 야구장에 매일 오던 아이에게 시선이 가더라고요. 말해보니 사실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던 아이 중의 하나였거든요. 사람은 자기를 닮은 사람에게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사실 저도 학창시절에 매일 듣던 소리가 “네가 무슨 고민이 있냐. 공부 잘하지. 집 잘살지”였어요. 가장 싫어하는 소리였죠. 저도 고민도 있고, 스트레스도 많았어요. 성적이 떨어져도 표를 내지 않아야 하는 우등생 스트레스도 있었고요. 푸르미르야구단의 우등생 아이도 저와 비슷하더라고요. 그 아이가 자기 고민을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어요? 항상 자신을 우등생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 자기보다 공부를 못하는 친구들? 아니잖아요. 어른들한테 말하면 실망했다고 하겠지요. 공부를 자기보다 못하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저는 그 아이가 왜 그렇게 야구를 열심히 하는지 너무 이해가 됐어요. 그래서 가장 마음에 갔지요.

 

10문10답-류미

 

조건 없이 들어주는 마음을 선물하다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만나는 일은 처음이었는데, 힘든 일은 없었나요?


최근 삼성 마무리를 하고 있는 임창용 선수가 그런 말을 했어요. “일류 투수는 볼 카운트와 싸우고, 이류 투수는 타자와 싸운다”고요.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는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어렵다는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 같아요. 저 역시 저와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지요. 그러니까 그라운드에서 신나게 뛰는 아이들과 감독님을 보면 제 불편한 몸이 너무 싫었어요. 저도 뛰고 싶었고요. 자괴감에 빠지고, 우울해졌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야구장에서 점점 더 신나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신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말하자면 아이들의 에너지를 제가 받은 거지요. 그 점에서 아이들과 저는 서로 주고 받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저에게 에너지를 줬고요. 저는 아이들에게 글쎄, 무엇을 줬을까요? ‘조건 없이 들어주는 마음’을 선물하지 않았을 까요.

 

언제 가장 보람을 느꼈나요? 아이들에게 감동을 받은 순간은 언젠가요?


저는 승부를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다른 팀과 이겨서 환호성을 지를 때 가장 좋았어요. 주눅들어 있던 아이들이 푸르미르야구단에는 많았지요. 공부 때문에 집안 환경 때문에, 새터민 아이들처럼 특수상황 때문에요. 그러다가 자신의 포지션을 맡고, 경기를 하고, 안타를 치면서 아이들은 숨어있던 밝은 기운이 나오더라고요. 야구의 힘이겠지요. 대면대면 하던 아이들이라도 안타를 치면 제가 있던 관중석을 향해 손을 번쩍 들고 세레모니를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는 거예요. 한번은 경기를 마치고 제가 가려고 하니까 한 아이가 제 휠체어 쪽으로 왔어요. 강요하지 않고, 같은 편이고 내가 너를 응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자 아이들도 저를 응원하기 시작한 거겠지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가오는 그 모습이 저는 더 좋았어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이구동성 다 하는 말이 있어요. 자신들을 정상인과 똑같이 대해주는 것을 가장 바란다고요. 제가 아는 어른들은 이런 경우 다 “도와줄까요?” 하면서 다가와요. 의도는 고맙지만 자존심이 상하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어요. 편견이 없고, 그러니까 그것을 도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에게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다가왔어요. 그 점이 고맙고 감동적이었어요.

 

아이들은 편견이 없고, 유연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저자님도 코치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에 대한 편견이나 스스로에 대한 편견도 많이 발견하고 변화했을 것 같습니다. 


글쎄요. 마음이 편해져서 살이 찐 것 같은데요. (웃음) 몸이 불편하다 보니 저는 오랫동안 위축된 인생을 살았어요. 특히 휠체어를 타고 병원 인턴을 하고 그럴 때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과 항상 마주해야 했죠. 푸르미르야구단은 그러니까 제가 세상으로 나오게 한 계기가 되었지요. 집에서 조용히 야구중계를 보면서 지내고 있던 저에게 숨겨진 승부욕을 자극한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자, 나가보자. 세상으로. 뭐 이런 식으로요. 공이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왔지요. 오랫동안 위축되어 있던 저는 처음에는 포볼로 출루할 생각만 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저도 안타도 치고 싶고, 또 홈런도 쳐보고 싶고 그래요. 책이 좀 팔리면 첫 안타가 되려나요.? (웃음)

 

10문10답-류미

 

장애를 가졌지만 장애가 나를 가진 건 아니다


열렬한 야구팬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팀을 응원하시나요?


대한민국여성 중에서 야구 구단을 정해서 들어오는 것은 크게 세가지인 것 같아요. 1 연고지. 2 주변사람의 영향(어릴 때 아버지가 팬이라든가, 남자친구가 팬이라든가. 등등). 3 선수가 잘생겨서.저는 말하자면 2번과 3번입니다. 물론 야구를 보다 보니까 다른 요소도 생기더라고요. 예컨대 요즘 넥센 같은 팀은 팀 컬러가 매력적이잖아요. 선수 시절 빛을 보지 못하던 감독이 조련하는 팀. 다른 팀 유망주가 그 팀에 가서는 리그 MVP가 되는 팀. 거포 유격수가 있는 팀. 반면 7, 8회까지 비슷하게 가다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팀은 매력이 없는 것 같아요.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면 야구팬으로 맥이 빠지죠. 우리가 사랑을 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잖아요? 처음에는 얼굴, 주변의 소개 같은 것으로 만나지만 점점 그 사람의 인간적 매력이 더 중요해지지요. 그런 점에서 요즘 LG가 새로운 감독님으로 시작하고 있으니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웃음).

 

의생활학, 불문학, 의학 등 많은 공부를 하셨는데요. 전공을 바꾸는 걸 두려워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의대를 가려고 생각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마흔 이전에만 전문의가 된다면 괜찮겠다, 라고요. 요즘 평균수명이 여든 살이에요. 마흔에 따도 의사 일을 40년이나 하더라고요. 상당히 길지요? 누군가 그런 말을 했어요. “나는 장애를 가졌지만 장애가 나를 가진 건 아니다”라고요. 전공에 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전공은 나의 수많은 면 중의 하나죠. 그렇게 생각하면 “전공이 나를 고르는 게 아니에요. 내가 전공을 고르는 거지요.” 게다가 아까도 말했다시피 평균수명 때문에 시간도 우리 편이잖아요(웃음).

 

신경정신과 의사로서의 일상은 어떠신가요?


회진, 외래, 레지던트와 책 리뷰, 재활병동 환자들 작업 순찰. 그리고 가끔씩 직원들과 회식. 하드웨어는 그렇고요. 소프트웨어는 ‘내가 이래서 힘들다’는 말 듣는 거지요. 물론 과대망상이나 색정망상으로 본인은 너무 행복한 분들의 이야기도 듣지요. “조인성이 나를 좋아해서 텔레비전으로 계속 신호를 보낸다”고 말하는 환자는 사실 너무 행복해 보여요. 주변 분들이 힘들어서 그렇지요. 보람은요. 정신과 일이라는 게 수술처럼 확 낫는 게 아니라서 사실 극적인 면은 떨어지지요. 그래서 보람도 어떻게 보면 좀 마일드 하달까 그런 면이 있어요. 망상으로 정상생활도 안 되던 분이 이제 많이 좋아져서 바리스타 공부를 한다고 하면 기쁘지요. 말은 간단해 보여도 사실 쉽지 않거든요, 그렇게 되기가. 이번에 푸르미르야구단 일을 하면서 정신과의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더 생기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봤어요. 앞으로 보람 있는 일이 더 생기길 희망합니다.

 

다리가 불편하지 않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그라운드에 서보는 일이라고 하셨는데요. 두 번째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건 일단 그라운드에 서고 나서 생각하고 싶은데요? 구속을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끌어올리고 나서 생각하겠습니다. (웃음)


 



동대문외인구단 

img_book_bot.jpg

동대문 외인구단류미 저 | 생각학교
대학 진학보다 기계 기술을 배워 성공하고 싶지만 남모르게 공부 스트레스를 앓는 포수, 새아버지를 집에서는 ‘삼촌’ 학교에서는 ‘아빠’라고 부르는 변호사가 되고 싶은 중견수… 류미는 ‘어른 친구’로서, 묵묵히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하고 지지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닌 바로 이 순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이기는 경쟁 시스템에 굴하지 않고 즐겁게 지는 일의 기쁨을 소중하게 여기며, 서툴고 상처받은 아이라 하더라도 믿고 기다려주면 머잖아 건강함을 회복한다는 심리학의 이론을 몸소 확인해준 푸르미르야구단. 《동대문 외인구단》은 청소년들과 어른친구들이 함께한 야구 성장 보고서다.

 


 

[추천 기사]

- 부모가 귀를 열지 않으면, 아이는 입을 열지 않는다

- 상실의 바다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구명정

-노선영 “도전하는 열정에 장애는 없다”

-작가 정유정의 여행과 글쓰기

-유시민 정여울 노경실, 그가 그립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부동산 침체기 서민의 부동산 대처법

$
0
0

책의 저자인 이종민은 전작 『마흔에 살고 싶은 마당 있는 집』에서 도심 속 단독주택 가꾸기에 관해 쓴 바 있다. 이번 책에서도 그의 관심은 아파트가 아니라 단독주택이다. 이번 책에서는 홈스테이징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는데, 홈스테이징이란 경매 등으로 집을 값싸게 사서 리모델링한 뒤 파는 방식이다. 재테크에 굳이 관심이 덜한 독자에게도 저자가 소개한 인테리어 상식이나 경매할 때 유의할 점 등은 유익한 정보일 것이다.

 

이종민_경매리모델링.jpg

 

어떻게 지내셨나요.


책 출간 후 경매와 리모델링 관련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경매와 리모델링이 만났을 때 시너지는 단순히 경매만 한다거나, 리모델링만 했을 때와는 다르거든요. 경매 학원 수강생들도 두 가지를 함께 설명했을 때 훨씬 재미있어 하고, 관심을 많이 보입니다. 현재 서울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부동산개발 관련 논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과 공부 모두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5년 경매하고 리모델링하라』는 어떤 계기로 썼나요?


2011년 일인데요. 단독주택을 저렴하게 구하는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화재난 빌라가 경매에 나온 걸 보게 되었어요. 부산 서대신동의 17평 작은 빌라였는데, 2차 유찰될 때까지 아무도 나서질 않는 거예요. 화재난 빌라 공사비 부담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인테리어를 전업으로 하는 제게는 그 빌라 공사는 큰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감정가 4200만원짜리 빌라를 2700만원에 낙찰받았지요. 그 후 700만원을 들여 직접 공사를 진행한 후 저희 어머니께서 2년간 그 집에서 사셨어요. 그리고 5000만원에 매매했습니다. 공사비, 취득세, 중개수수료 등을 모두 빼고 나니 세전 1400만원 수익이 생기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저도 경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지만 지금은 서민들이 내 집 마련하기에 아주 좋은 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경기가 호황일 때는 경매로 낙찰받아 되파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요즘 같은 부동산 침체기에는 다른 부동산과 차별되는 경쟁력을 갖춰야만 팔릴 수 있거든요. 경매하시는 분들에게 제 경험이 도움이 되실 듯하여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재테크가 한국경제가 더는 고도성장이 어려우니, 돈을 불리기보다는 지키는 데 초점을 맞추는 흐름입니다. 부동산은 어떨까요?


‘주택 컨설턴트’ 라는 저의 직업상 주택 시세 조사를 자주 하게 되는데요, 최근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은 점점 떨어지고 단독주택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모습입니다. 이미 평당 가격으로 단독주택이 아파트를 추월한 곳이 많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땅에 대한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게 되었나 봅니다. 아마 지방에도 이런 추월 현상을 조만간 목격하게 될 것 같습니다. 부동산 재테크에 관심이 있다면 단독주택 가격 상승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홈스테이징이라는 개념이 한국에서는 생소합니다.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시장에 내어 놓아도 오랫동안 잘 팔리지 않는 부동산을 더 빨리, 더 좋은 가격에 판매하는 부동산 전략입니다. 핵심 작업은 잡동사니 정리, 내ㆍ외부 청소, 컬러 바꾸기입니다. 부동산과 인테리어가 결합된 개념이라 보시면 되는데, 결국은 건물을 잘 팔리기 위한 작업이니 부동산 마케팅 전략이라 보시면 됩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이런 일을 하는 분들을 ‘홈스테이저’ 라는 직업명으로 부르고 있고, 많은 분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왜 홈스테이징이 필요한가요?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가면 그곳에 놓인 가구도 예쁘고, 그릇도 아기자기하고 그림도 멋이 있어 그 집 전체가 좋아 보입니다. 그래서 기분 좋게 분양 계약을 합니다. 하지만 실제 입주를 하게 되면 모델하우스에서 보았던 가구, 그릇, 그림 등은 없습니다. 모델하우스를 만든 분양업체들이 우리를 속인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분양업체들은 그 집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위한 전략을 취한 것뿐입니다. 홈스테이징은 내 집을 부동산 시장에 내어놓았을 때 더 빨리 더 합리적 가격을 받기 위한 노력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홈스테징은 ‘home’ 집을 ‘staging’ 무대 위로 올린다는 의미입니다. 연예인이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화장을 하고 멋진 옷을 입는 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아파트 홈스테이징보다는 주택 홈스테이징을 책에서 주로 다뤘습니다.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파트는 굳이 홈스테이징 하지 않아도 적절한 가격만 맞추어 주면 잘 팔립니다. 그리고 아파트에 비싼 비용을 투자해서 공사를 한다고 해도 매매할 때 공사비만큼 제 가격을 받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주택은 합리적인 가격에 빨리 매도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홈스테이징입니다. 홈스테이징 한 단독주택은 나중에 공사비 이상으로 가격을 더 높여서 매매할 수 있습니다. 홈스테이징을 주로 주택에 관해서만 이야기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반인이 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높은 방법인 듯합니다. 


앞서 홈스테이징에 대해 설명했듯이 홈스테이징은 경매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홈스테이징은 잘 팔리지 않는 부동산을 더 빨리 더 좋은 가격에 판매하기 위한 부동산 전략일 뿐입니다. 책을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홈스테이징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경매로 집을 사서 리모델링을 한 후 다시 더 좋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은 저의  전략이고 서민들을 위한 내 집 마련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소개한 것이 바로 『앞으로 5년 경매하고 리모델링하라』입니다.

 

집을 좀 더 싸게 구하기 위해 경매에 관심을 보이는 일반인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반면, 경매에는 위험도 존재하는데요. 경매를 생각하는 초보자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흔히 경매에서 어려운 점은 권리분석과 명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권리분석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초보자들은 복잡한 특수물건을 피하고, 명도하기 쉬운 물건만 접근하면 됩니다. ‘명도’라는 것은 경매에 나온 집에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주인이나 세입자를 내보내는 일을 말합니다. 현재 경매 물건 중의 80% 이상은 명도하기 쉬운 것들입니다. 제 책에도 한눈에 쉽게 배우는 경매 권리분석 다이어그램을 소개했는데요(47쪽), 쉬운 물건만 접근하시는 게 좋습니다. 저도 복잡하고 어려운 물건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1차 권리분석을 해놓은 유료사이트도 많이 있습니다. 그곳을 참고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저렴한 경매학원도 있고, 경매 저자들의 무료 강연회도 많이 열립니다. 1차로 책을 보고, 2차로 저자 또는 학원 강사에게 직접 설명을 들으면 권리분석하는 방법이 명쾌하게 해결될 겁니다.

명도도 시간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는 일이긴 하지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일반인이 정작 어려운 것은 집을 보는 안목이 없다는 점입니다. 내 집 마련을 위해 경매를 했다면 안목이 없어서 ‘조금 안 좋은 집을 선택했구나’ 생각하고 살면 되지만, 재테크로 경매를 했다면 손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경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부동산을 싸게 취득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2013년 『마흔에 살고 싶은 마당 있는 집』도 집필했는데요. 특별히 단독주택에 관심이 많은 듯합니다. 대표님께서 생각하는 ‘집’의 이상형은 어떻습니까?


추억할 수 있는 집을 늘 생각합니다. 아파트에 살면서 추억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요? 단독주택은 추억을 부르고 추억을 만드는 마법공간입니다. 지금 집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려 보세요. 아파트를 그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파트는 빠른 경제 성장과 인구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도구일 뿐 입니다. 아파트와는 달리 단독주택은 단순히 건물이 아닌 추억을 담을 수 있는 집이라 생각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인테리어를 소개해 주셨는데요. 대표님께서 선호하는 인테리어 스타일이 있을까요.


저는 화려한 클래식스타일을 굉장히 단순화시킨 세미클래식스타일을 아주 좋아 합니다. 저의 디자인 작업들을 보면 많은 경우가 세미클래식스타일 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단순한 것을 좋아하지만 완전히 그렇지는 않은가 봅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관련 기사]

-오형규 한국경제 논설위원이 말하는 인문학, 경제학
-독해력 떨어지는 학생들, 어려운 고전과 친해지려면?
-이은애 “아이들이 뭘 모른다는 생각, 가장 큰 편견”
-행복한 노예는 없다, 행복한 주인만 가능하다
-조승연 “인문학은 교과목이 아니다”



img_book_bot.jpg

앞으로 5년 경매하고 리모델링하라 이종민 저 | 인사이트북스
이 책은 집을 싸게 사서 저렴한 비용으로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재테크를 위해 시세보다 비싸게 파는 방법, 즉 ‘홈스테이징(homestaging)’을 설명하고 있다. 홈스테이징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개념이지만 다른 나라의 부동산 시장에서는 이미 정착되어 있는 리모델링 방식 중 하나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100세 시대, 치매도 이길 수 있다

$
0
0

『장모님의 예쁜 치매』는 <프리미엄조선> ‘100세 시대’ 코너의 인기 칼럼 ‘장모님의 예쁜 치매’를 묶은 책이다. 현재 ‘김철수의 예쁜 치매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 김철수(의사, 한의사)는 실제 치매 환자인 장모님을 돌보고 있는 이야기를 비롯해 저자가 25년간 환자들을 치료하며 연구한 치매의학 정보를 책에 담았다. ‘불치의 병’이라고 잘못 알려진 치매의 정의와 함께 무엇보다 중요한 치매 예방, 치매 자가 점검 요령, 혈관 건강을 지키는 생활습관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치매 환자를 돌보고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생활수칙도 눈여겨볼 만하다.

 

“중증 치매는 치료 노력에 비해 얻는 효과가 미미합니다. 치매 초기 단계이거나 아직 치매가 아니더라도 기억력 등의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을 때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치매 예방을 위한 생활습관의 개선과 예방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조기 예방이 중요합니다.”

 

김철수저자

김철수 저자

 

생활습관만 고쳐도 치매 예방할 수 있다


‘치매는 불치의 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치매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은 무엇인가요?


무조건 불치의 병이라고 생각하고 어떠한 치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치매는 발병 원인과 병의 진행 정도에 따라 증상이 다양합니다. 치매의 종류와 병의 정도에 따라서 치료의 여지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치매라고 하면 말기 치매나 나쁜 치매를 떠올리는 데서 편견이 옵니다. 초기의 경우 병의 진행을 늦추는 노력은 경증의 기간을 늘리고 삶의 질을 호전시킵니다.

 

말기가 아닌 초기나 경증 치매 기간의 예쁜 치매는 가족들을 힘들게 하지 않으므로 돌보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사는 데 힘이 적게 들지만, 말기나 전두엽 손상으로 오는 미운 치매는 가족을 매우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전두엽 손상으로 오는 정신과적 질환은 신경정신치료를 통해 잘 조절되므로 환자를 위해서나 가족을 위해서 반드시 치료가 필요합니다. 치매 치료는 완치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영원히 살려고 병을 치료하는 게 아닌 것처럼 치매도 완치를 위해서만 치료하지는 않습니다. 

 

치매는 일찍 발견하면 좋은 병인데, 사사롭게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매를 일찍 발견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초기 증상에 대한 지식이 중요합니다. 의심이 되면 검사를 받게 해야 합니다. 치매를 일찍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치매 증상이 뚜렷하지 않을 때 뇌가 치매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미리 객관적으로 알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결국 증상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초기 증상에 대한 지식이 중요합니다. 발병 원인에 따라 초기 치매 증상도 다릅니다.

 

 퇴행성 치매의 대표인 ‘알츠하이머 치매’는 기억장애와 언어장애로부터 시작합니다. 반면에 ‘혈관성 치매’의 초기 증상은 큰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 발병한 위치에 따라 특이한 중풍 증상이 갑자기 생기고 어느 정도 회복되지만 후유증으로 부서진 뇌세포가 담당하던 뇌의 기능장애가 생깁니다. 반복될 때마다 뇌기능장애 증상이 누적됩니다. 반면 ‘피질하경색 치매’는 소혈관이 막히는 경우가 여러 번 누적되면서 발생합니다. 소혈관이 막히면 두통, 어지러움 등이 짧은 기간 나타나거나 무증상인 경우가 많지만 누적되어 커지면 주로 전두엽 장애 증상이 나타납니다. 의욕이 떨어지거나 충동을 참지 못하거나 성격이 바뀌거나 융통성이 떨어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언어장애로 적당한 단어를 못 떠올리는 경우가 잦아지거나 성격이나 행동의 변화가 갑자기 심해지면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치매에 걸리는 환자들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공통적 특징은 변화와 절제의 불편함을 싫어하여 게으르거나 무절제하게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열심히 살거나 지나치게 꼼꼼한 완벽주의자도 있습니다. 물론 타고난 유전적인 영향이 큽니다만, 후천적으로 살아가는 생활습관에 따라 치매 발병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반면 지나치게 열심히 살면 어느 정도까지는 뇌가 좋아지지만 한계를 벗어나면 뇌가 견디지 못하고 오히려 빨리 나빠지기도 합니다.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는 의학적인 것뿐만 아니라 생활환경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환경이 필요한가요?


나쁜 생활환경은 어릴 적에 교육을 받지 못해 뇌 발달이 덜 되었거나, 영양부족 상태나 과도한 다이어트 조절로 뇌에 부담이 많았거나, 가족문화가 뇌 발달과 거리가 먼 게으른 집안에서 자란 경우 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생활환경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생활습관이 더 문제입니다. 치매 예방에 좋은 생활습관은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살고, 술 담배 멀리하고, 불편을 피하거나 순응하지 않고, 항상 자기 내면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잘 먹는다는 것은 뇌 건강에 좋게 바른 식생활을 한다는 의미이고, 잘 잔다는 의미는 적당한 휴식으로 뇌의 과부하나 활성산소의 피해를 줄이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면 뇌 혈류 순환이 증가되고 신경성장인자의 생성도 많아지고 뇌도 많이 사용하므로 뇌가 좋아집니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열심히 사회활동을 하고 도전적이고 창의적 삶을 사는 것으로 이로 인해 뇌를 많이 사용하게 되므로 좋습니다. 술 담배는 뇌를 해치는 독이 됩니다. 익숙한 타성에 젖어 살면 뇌가 자극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을 피하지 말고 극복하면서 사는 것이 좋습니다. 화가 날 때 화를 내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내 잘못이 없는 경우가 없습니다. 나를 바꾸는 노력은 머리를 젊게 만듭니다.

 

책을 보면 “밥만 잘 먹어도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치매 환자가 먹으면 좋을 음식 또는 운동법은 무엇일까요?


잘 먹어야 된다는 말은 산해진미를 잘 먹어야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좋은 음식도 중요하고 바른 식사습관도 중요합니다. 좋은 음식은 뇌에 필요한 영양소가 잘 조화를 이룬 음식과 적당한 양의 항산화제가 들어있는 음식입니다. 바른 식사습관의 핵심은 뇌는 주로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므로 폭식, 금식 등으로 뇌에 포도당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좋지 않습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만 운동법도 중요합니다. 운동은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이므로 의지력이 커지고 활력이 커집니다. 코로 숨 쉴 수 있는 강도의 운동을 30분 이상 가능하면 매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운동도 중요하지만 자주 자주 움직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장모님의예쁜치매

 

믿음과 사랑을 표현해주는 것이 절실


최근 저자님이 치료한 환자 중에 인상적이었던 회복 케이스를 소개해주신다면?


최근에 70대 중반 여자 환자가 모 대학병원에서 수두증(머리에 물이 많이 차는 병)에 의한 치매로 진단받고 허리에서 뇌척수액을 뽑고 오셨어요.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다시 물이 차면 수술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중간에 한약 치료를 받고 다시 검사하러 가셨는데 물이 더 이상 차지 않아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물론 약을 안 드셨어도 물이 다시 차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환자분은 약이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크셨고 열심히 따라주셨습니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성격을 가진 치매 환자들이 회복이 빠른가요?


의사를 잘 믿는 사람, 치료에 긍정적인 사람, 꾸준히 치료를 받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극한 상황에서는 악한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대체로 선합니다. 의사를 믿으면 의사는 지식 보따리를 풀며 정성을 다하고 환자와 함께합니다.

 

약 처방과 수술을 하는 경우는 치매 환자의 몇 %에 해당되나요?


약 처방과 수술에 대한 통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통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치매 환자 중에 수두증, 뇌종양, 뇌전증, 경막하출혈과 뇌혈관이 막힌 경우 중 일부는 수술로 치료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약물 치료로는 인지기능을 돕는 약과 문제 행동에 대한 정신신경치료가 있습니다. 인지기능을 돕는 약은 진행을 조금 늦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제가 한약 처방으로 임상을 하고 있지만 한의학적 약물 치료는 개념이 복잡하지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치매 환자에게 이 말만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은 금해야 하며, 또한 불안하게 하는 말도 좋지 않습니다. 바보 취급하거나 버린다는 말은 절대 피해야 합니다. 치매 환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아닙니다. 뇌신경세포와 신경망이 많이 부셔져 기억이나 여러 가지 사고기능이 떨어지긴 했어도 자존심이나 감정조차 다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신경망이 단순해져 감정의 상처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또한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이 큽니다. 무엇보다 믿음을 주어야 하고 가족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거듭 확인시켜주는 것이 약만큼이나 중요합니다.

 

현재 장모님의 건강은 어떠한 상황인가요?


장모님께서 이번 지방선거에 투표를 하셨습니다. 딸도 못 알아보시던 분께는 장하시고 기적적인 일이지요. 비가 오지 않는 한 거의 매일 도우미 아줌마와 집 밖으로 운동 삼아 외출을 하십니다. 제가 퇴근해서 “낮에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하고 여쭤 보면, 아줌마를 쳐다보시면서 “우리 아무 데도 안 갔지?” 하십니다. 제가 아줌마를 쳐다보면 아줌마는 “아니? 할머니! 아파트 사무실과 노인정 쪽에 갔다 오셨잖아요?” 합니다. 장모님께서 “그랬나?” 하십니다. “할머니 다 알고 계세요! 아파트 사무실 앞에 가셨을 때, ‘여기서 투표했어!’ 하셨어요.“ 제게 농담도 하십니다. 기억장애가 심하신 것 말고는 정상인과 크게 다를 것이 없으십니다. 예쁘게 나이 드시는 거지요.

 

치매 환자를 가족으로 두고 있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치매 가족이 있으신 분들은 포기하지 마시고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힘들지만 밝고 긍정적인 환경과 사랑으로 이겨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겪었기 때문에 얼마나 힘들고 두려운지도 잘 압니다. 그럴수록 가족이 협력하여 방법을 찾고 연구해야 합니다. 저희 환자분들 중에는 가족회의를 해서 돌아가면서 환자를 돌보고 사랑과 약으로 노력하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위안하면서 오히려 가족애를 확인하고 화목해지는 가정도 봤습니다. 치매 환자도 중요하지만 돌보는 분들의 정신적, 육체적 휴식과 건강관리도 매우 중요합니다. 돌보는 가족이 건강해야 치매 환자를 밝게 돌볼 수 있고, 치매 치료는 장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치매는 유전병인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경우 약 20%는 유전적 경향이 큽니다. 가족 중 치매 환자가 있다면, 특히 조발성 치매가 있는 경우 유전병일 가능성이 더욱 크므로 가족들의 철저한 조기 예방이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의 치료에만 신경 쓰고 자신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유전병이 없더라도 나이가 많아지면 치매 발병은 증가합니다. 백세시대에 접어들어 이제 누구나 치매에 걸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정말 힘듭니다. 치매를 두려워하지만 말고 지금부터라도 치매에 대한 예방적인 노력을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치매는 이길 수 있는 병입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img_book_bot.jpg

장모님의 예쁜 치매김철수 저| 공감
『장모님의 예쁜 치매』는 치매 환자인 장모님을 모시며 저자가 직접 느끼고 겪은 이야기와 25년간 환자들을 치료하며 연구한 치매의학 정보를 ‘프리미엄조선 100세 시대’에 인기리에 연재 집필하여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받아 출간한 책이다.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는 의학적인 것뿐만 아니라 생활환경도 중요한 요소이다. 저자는 의사 한의사로서 유용한 의학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있어 생생한 치매 정보와 가슴 따뜻한 감동을 전한다.


 

[추천 기사]

 

- 김희재, 뽀글이 파마와 배불뚝이 아저씨에 대한 변명

- 이종임 “카레가 만병통치 요리는 아니지만…”

- 번아웃증후군에 시달리는 당신을 위한 심리적 긴장 완화제

- 정혜윤, 라디오 PD로 일하며 만난 사람들 이야기

- 고기 굽기의 달인, 스테이크는 어떻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고전, 읽어야 하는데∙∙∙ 고민하고 있다면!

$
0
0

2015년부터는 새로운 교육 과정에 따라 고등학교 국어 교과에 ‘고전’ 과목이 신설된다. 철학, 역사, 사회, 과학, 예술, 문학 등 다양한 고전에 담긴 지혜와 통찰을 재해석하기 위해 별도의 과목을 만든 것이다. 이에 고전을 읽는 독해력과 사고력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창비에서 출간한『고전은 나의 힘』시리즈는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할 인문 고전 81편을 학교 현장의 선생님들이 엄선해 만든 책이다. 사회 교사, 역사 교사, 철학 교사와 국어 교사가 만나 청소년들이 읽기에 적합한 고전들을 엄선하여 주제별로 엮었다. 『사회 읽기』, 『역사 읽기』, 『철학 읽기』편이 출간됐고, 이후 『과학 읽기』와 『예술 읽기』를 추가로 출간할 예정이다.

 

『고전은 나의 힘』 집필진은 신설되는 고전 과목에 대비해, 주제별로 철학, 역사, 사회 분야의 고전들을 엄선해 철학 28편, 역사 24편, 사회 29편의 고전을 실었다. 단지 ‘고전’ 한 과목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수능 언어영역의 비문학 지문, 논술과 구술 면접까지 대비할 수 있도록 집필했다. 『고전은 나의 힘』‘사회 읽기’ 편을 집필한 박현희 서울 독산고등학교 사회 교사는 “고전 과목 시설로 혼란을 느끼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 읽고 고민하고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생각하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며, “『고전은 나의 힘』이 더욱 깊은 고전의 세계로 안내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0문10답-박현희저자

『고전은 나의 힘』  박현희 저자

 

어려운 고전 읽기, 그러나 쾌감이 있다


2015년부터 고등학교에 ‘고전’ 과목이 신설됩니다.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는 굉장히 낯설 텐데요. 사회교사로서는 반가운 일일 것 같습니다.


학교의 교과목은 여러 가지 요구를 반영하면서 변화합니다. 새로이 출현하는 과목이 있는가 하면 사라지는 과목도 있지요. ‘고전’ 과목의 등장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사회적으로 고전 읽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고요. 국어 교과에서 ‘고전 문학’은 이전부터 주요하게 다루어지던 영역입니다.

 

하지만 ‘고전’ 과목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것으로, 비문학 고전들을 포함하면서 다른 과목을 심화 통합하는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저로서는 학생들이 『사회 계약론』『군주론』『논어』 『맹자』같은 철학, 역사, 사회 분야의 고전을 두루 만나 볼 수 있다는 게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는 낯설 수 있지요.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간 주로 사교육 시장에서 담당해 왔던 논술 대비라든지 시대가 요구하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소양 쌓기를 공교육 안에서 제도화된 과목으로 배울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고전 읽기의 필요성을 체감하셨을 것 같은데요. 최근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아이들에게도 영향이 있었나요?


대개는 ‘나도 읽어야 하는데.’라는 걱정이나 강박관념 등의 형태로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읽기는 읽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고 읽을 수도 없어 괴로운 상태라고나 할까요? 학생들의 걱정거리가 더 많아졌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고전은 나의 힘: 사회 읽기』 편에 소개된 고전 29편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셨나요?


시리즈 중 ‘사회 읽기’ 편은 현대적 의미의 고전들도 많이 포함하고 있어요. 그건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요. 한 시대가 던진 질문에 답하는 고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있기까지 길을 닦아 온 고전을 중심으로 엄선했습니다. 이 고전들은 결국 ‘지금 우리’의 질문에도 답을 줄 것이라 믿습니다.

 

29편 중에 저자님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아보신다면 무엇인가요?


어려운 일이네요. 좋아하는 것 중 더 좋아하는 것을 꼽아야 한다니! 그래도 골라 보자면 『학교와 계급 재생산』『나 홀로 볼링』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말하고 싶습니다. 『학교와 계급 재생산』은 노동자 계급의 자녀들이 학교에 저항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담은 책입니다. 교사인 제게 학교, 교육, 학생을 이해하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청소년들 혹은 청소년기를 지나온 20대들이 읽어도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나 홀로 볼링』은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을 제기해 주고 있는데요, 점점 더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나름대로 문화생활이나 여가를 즐기며 산다고 생각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읽는다면 내가 즐겼던 문화생활이 사회적,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생산해 낼 수 있는지를 새롭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어 줄 겁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과 감동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책입니다. 슈마허가 제기한 문제를 내내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전이 어렵다는 편견은 어떻게 버릴 수 있나요?


편견 아니고요, 정말 어려운 것 맞습니다(웃음). 하지만 그러한 어려운 텍스트를 읽고 이해할 때 찾아오는 기쁨, 독서의 또 다른 단계로 도약할 때의 쾌감을 맛보기를 권합니다. 하나의 고전이라도 찬찬히 읽어 나가다 보면 길이 보일 것입니다. 아, 그런데 길을 찾았다고 그 길이 수월하거나 평탄한 건 아닙니다. 더 높은 수준의 문제의식이 계속 생겨날 테니까요.

 

10문10답-고전은나의힘

 

풍부한 교양과 상식이 글쓰기를 좌우한다


논술,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나요?

 

고전 읽기가 만능 해법은 아닙니다. 글을 잘 쓰려면 무엇보다 글을 직접 써 보아야 할 테니 고전을 읽는다고 글쓰기의 문제가 단박에 해결되지는 않아요. 다만 고전에서 배우는 문제의식, 논리 전개, 사례 제시, 사고의 틀, 이 모든 것이 글 쓰는 힘을 키워 줄 겁니다. 즉 ‘글의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잘된 글쓰기의 전형이나 틀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한편 글은 형식뿐 아니라 내용도 중요하잖아요.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치기 위해 어떤 근거를 제시할 것이냐, 이는 결국 풍부한 교양과 상식이 관건입니다. 인류 지식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고전을 통해 그러한 교양을 쌓을 수 있지요.

 

입시와 사교육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 세대입니다. 어떠한 해결책이 필요하나요?


시간, 부족하지요. 아이들이 과도한 입시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저마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배분해야 하지 않을까요? 책 읽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읽을 시간을 만들어야죠. 덜 중요한 일들을 줄이고요.

 

저자님의 학창 시절과 비교했을 때,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부족한 시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혼자 뒹굴뒹굴할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 그래서 무지하게 심심한 시간. 그게 부족해요. 심심해야 생각도 하고 책도 더 많이 읽거든요.

 

 10문10답-고전은나의힘

 

책을 읽은 아이들과 읽지 않은 아이들의 차이는 어디에서 나타날까요?


책을 읽은 아이들은 생각을 할 줄 압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전체적인 틀에서 생각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을 갖추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지닌 아이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 즉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속이 꽉 찬 사람이 되는 거죠.

 

『고전은 나의 힘』 시리즈는 어떻게 읽으면 더 영양가 있는 독서가 될까요?


책을 읽는 방식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대로 읽으세요. 듬성듬성 건너뛰면서 원하는 고전만 읽어도 되고, 한 장(章)만 집중해서 읽어도 되고, 순서를 거꾸로 읽어도 됩니다. 사실 ‘고전은 나의 힘’ 시리즈를 엮으면서 독자들이 더 쉽고 재미있게 고전을 만날 수 있도록 공을 많이 기울였어요. 그래서 독자들이 누릴 만한 내용도 꽤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도입 글에서 고전을 설명하고, 각 고전 앞에 사상가의 생애를 설명하며 다시 한 번 텍스트의 의미를 조명하고, 읽으면서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이나 읽고 나서 풀어 볼 문제도 담았거든요.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쏙쏙 흡수하시길 바랍니다. 영양가는 그렇게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 볼 문제랍니다.

 

학생들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좋은 고전 길잡이가 될 것 같은데요. 특별히 어떤 독자들이 이 책에 주목하면 좋을까요?


‘고전, 읽어야 하는데…….’ 하는 걱정을 안고 있으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모든 이에게 권합니다. ‘고전은 나의 힘’은 고전 원문의 일부를 발췌해 실은 것이기 때문에 통으로 책 한 권을 읽는 것보다 접근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이 책에서 골라 엮은 고전의 원문들을 맛보고, 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책부터 한 권씩 전문을 찾아 읽기 시작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죠.

 

독자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지, 책을 읽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들에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백 사람이 책을 읽으면 백 가지 방법, 백 가지 생각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 부디 믿으시기를. 지금 당신이 읽는 방법이 좋은 방법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떠오른 생각이 가치 있는 생각이어요. 그에게는 그의 길이, 나에게는 나의 길이!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img_book_bot.jpg

고전은 나의 힘박현희,류대성,이철진,문우일 편저 | 창비
사회, 역사, 철학 분야의 엄선된 고전을 청소년이 직접 읽는다! 개정된 교육과정에 따라 2015년부터 고등학교에 ‘고전’ 과목이 신설된다. ‘고전’ 과목은 향가나 판소리 같은 고전 문학이 아니라 동서양의 사상과 철학을 주로 다루고 있어 이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교사와 학부모들의 혼란이 예상된다. 청소년이 읽어야 할 고전 작품을 효과적으로 선별하여 제시한 창비의 ‘고전은 나의 힘’ 시리즈는 늘 생각은 해 왔으나 엄두가 나지 않던 책들에 한 발짝 다가가게 해 줄 것이다.


 

[추천 기사]

 

-서민 교수 “나처럼 못생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 이민영 “되어선 안 될 팀장, 신입사원”

- 100세 시대, 치매도 이길 수 있다

- 정혜윤, 라디오 PD로 일하며 만난 사람들 이야기

- 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자폐 아이를 둔 아빠로 살아가기

$
0
0

지금 내 앞에 있는 네가 료마구나.
만나서 반가워.
드디어 이 세상에 와줬구나.
보고 싶었어.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하얀 천에 싸인 너를 처음 안았을 때
손에서 흘러내릴 정도로 무척 가벼웠지.
내 양손 안에서 작은 숨을 고르며 잠들어 있던
너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나려 했어.
너의 모습을 몇 시간을 바라봐도 질리지가 않아.
회사에서 일할 때도
점심을 먹을 때도
네가 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즐거워서
아빠는 힘을 내 기운차게 일했지.
회사에서 돌아와 자그마한 너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기뻤거든.
조그마한 네 손이 내 검지를 꽉 쥐었지.
그 작은 손의 힘을 느꼈을 때,
나는 아빠가 됐다는 것을 실감했단다.
너를 지킬 거야.
네가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날까지
늘 함께 걸어갈 거야.
아빠의 마음을 처음으로 실감했던 순간
그곳에는 어느새 아빠가 된 내가 있었지. (8-9쪽)

 

료마는 태어날 때부터 생긋 잘 웃었다. 엄마나 아빠 모두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서 행복했다. 료마가 3세가 되었을 때, 아이에게 자폐 진단이 내려졌다. 충격이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는 자폐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애정을 쏟고 관심을 둬야 한다. 힘들 수밖에 없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던 두 사람은 마침내 료마가 6세 때 헤어지기로 결정한다. 료마를 맡은 건 아빠 쪽이었다. 『문어별 아이 료마의 시간』은 이런 힘든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료마를 키우면서 겪은 일을 틈틈이 써내려간 기록이다.

 

료마4.jpg

 

 『문어별 아이 료마의 시간』이 한국에도 출간되었는데요. 일본에서 반응과, 한국에도 출간된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일본에서 책이 나온 이후, 많은 독자들께서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지난 12년 동안 홈페이지에 아들과의 일상을 기록했습니다. 여기에도 여러 분들이 성원을 보내주셨는데, 세상에는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분들도 많이 계시더군요. 책이 나온 뒤 저희 이야기를 읽어 주시는 독자 분들의 범위가 훨씬 폭넓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처음 제 문장을 읽으신 분들은 “무척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와 같은 편지도 보내주셨습니다. 한국판을 받았을 때는 바다 건너 한국 독자들께도 제 마음이 전해졌다는 생각에 감개무량했습니다.

 

책을 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제목 정하기가 힘들 텐데요. 원래 일본 제목은 ‘산들바람 편지’입니다. 홈페이지 이름이기도 한데요. ‘산들바람’에 담긴 뜻은?


책을 읽은 독자 분들의 마음이 괴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속에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홈페이지의 제목을 그대로 책 제목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동안 썼던 편지 중에서 책에 미처 싣지 못한 글도 있을 것 같습니다. 책에는 빠졌지만, 료마에게 썼던 글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2004년 1월 25일, 홈페이지의 원기일기(元?日記)에 올린 시를 소개합니다.

 

너를 위해서라면(제134호)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거야
나는 너의 아빠니까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거야
네가 정말 소중하니까
너를 위해서라면 어디라도 갈 거야
너의 미래를 만들어줄 사람은 아빠밖에 없으니까

너에게는 긴 미래가 있어
힘겹고 버거운 길은
혼자서는 걸어갈 수 없어
그러니 함께 걸어가자
한 발자국씩이라도 느리더라도 아무 상관없어
 
가끔 다른 길로 새더라도
가끔 뒷걸음치더라도
천천히 천천히 걸어가자
바람이 되어 걸어가자

만약 지구의 마지막 날이 와도
너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아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아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너를 지켜줄 테니
반드시 지켜줄 테니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거야
 
편지도 감동적이지만, 시도 뭉클합니다. 아버지의 문장력, 감수성이 료마가 크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인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아빠일 뿐입니다. 제 감수성이 료마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에 나오는 것처럼 제 마음의 중심에는 항상 료마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마음이 료마에게 전해져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네요.

 

료마1.jpg


책 곳곳에 있는 사진을 보면 료마를 향한 아버님의 애정이 느껴집니다. 료마는 사진 찍는 걸 어떻게 생각했나요? 

 

글쎄요, 료마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건 저도 물어본 적이 없네요. 료마와의 일상은 항상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매 순간 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늘 료마와 보내는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사진을 찍으면서 느끼는 것은 료마의 표정이 무척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그 표정을 보면 료마는 분명 ‘아빠, 잘 찍어줘!’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덧붙이자면, 30장쯤은 찍어야 한 장 정도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더군요.

 

작년에 홈페이지 업로드를 끝냈다고 들었습니다. 홈페이지 업로드를 더는 안 하는 이유가 있는지요?


어떤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도 찾아오는 법이지요. 저와 료마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9년 동안 평일에는 떨어져 지냈습니다. 료마와 만나지 못하는 시간 동안 저는 홈페이지 <산들바람 편지>를 중심으로, 팟캐스트 <주간 자폐증 뉴스>나 자폐증 아이들이 편히 놀 수 있는 장소를 취재하는 <외출 레포트>를 진행하거나 아버지 모임에 참가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료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온 가족이 다시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생활 패턴을 바꾸었지요. 이 시기를 계기로 홈페이지 업로드도 끝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지내지 못할 때는 그 에너지를 여러 활동에 쏟았지만, 지금은 료마와 보내는 시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산들바람 편지>의 취지와 정신은 이후 세운 사단법인 <산들바람 편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료마와 아버지는 어떻게 지내나요? 두 사람이 즐겨서 함께 하는 활동이 있나요?


료마는 지금 아버지인 나와 휠체어 생활을 하는 할머니, 치매 증상이 있는 할아버지와 함께 아주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부터는 마음도 무척 평안해졌는지 온화한 표정을 자주 보입니다. 가족들에게도 료마는 없어서는 안 될 등불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평일에 료마는 집 근처에 있는 시설에 다니고, 저는 료마를 시설로 데려다 준 뒤에 일을 하러 갑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평범한 19살 청년과 그 아버지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시간을 보냅니다. 료마에게 장애가 있다고 해서 항상 옆에 착 달라붙어서 지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평범한 부자 관계처럼 말이지요. 또한, 저의 일방통행일는지 모르겠지만, 료마에게 제 기분을 이야기합니다. 지난 19년 동안 료마를 키우면서 료마가 제 이야기를 모두 이해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료마에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인풋은 확실히 되는 것 같고, 다만 아웃풋이 어려울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보통 19살 아들을 대하는 것처럼 료마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둘이서 같이 하는 활동이라고 하면 주말에 드라이브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함께 드라이브를 하면서 보내는 주말은 우리 부자에게는 아주 귀중한 시간입니다.

 

료마가 태어나고 20여 년이 흘렀는데요. 아버님께서 느끼기에 20년 전과 지금, 자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어떻게 변했나요?


변해가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05년 일본에서는 발달장애자지원법이라는 법률이 시행되었습니다. 20년 전에 비하면 TV, 신문, 영화 등의 미디어에서도 자폐증이나 발달장애를 다루는 빈도가 늘었습니다. 자폐증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20년 전보다는 전반적으로 이해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자폐증이나 발달장애에 대해 오해하는 분들도 여전히 많아 아직은 과도기인 것 같습니다.

 

정상ㆍ비정상이라는 구분이 한국 사회에는 꽤 공고합니다. 실제로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살기에 한국 사회는 굉장히 불편한데요. 일본은 어떤가요?


일본에도 여전히 일부 비슷한 인식이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물론 아직 완벽한 노멀라이제이션(normalization)에 도달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착실히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길거리에서 장애가 있는 분들도 자주 볼 수 있고요.

 

책에도 썼지만, 장애를 공동체 차원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대처해야 할까요?


노멀라이제이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용어도, 장애인이니 아니니 하는 인식도 사라지고, 모두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사회야말로 제대로 성숙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발달ㆍ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아주 평범하게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관련 기사]

-강수돌 교수 “농촌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
-독해력 떨어지는 학생들, 어려운 고전과 친해지려면?
-이은애 “아이들이 뭘 모른다는 생각, 가장 큰 편견”
-행복한 노예는 없다, 행복한 주인만 가능하다
-조승연 “인문학은 교과목이 아니다”



img_book_bot.jpg

문어별 아이 료마의 시간신보 히로시 저 | 지식너머
일본의 많은 이들에게 격려를 받고 있는 료마와 히로시 씨는 지난 해 6월, 홈페이지에 기록했던 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그들의 소중한 기록을 『문어별아이 료마의 시간』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히로시는 한국 독자들에게 몇 가지를 당부했다. 이 책을 단순히 장애가 있는 아이와 그 가족의 이야기로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이 책을 통해 정신없는 나날로 잊어가기 쉬운 ‘가족의 사랑’을 다시 떠올리길 바란다고.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들개이빨 “우리 모두 ‘먹는 존재’니까요”

$
0
0

“적당한 때, 서울 변두리에서 태어난 개와 낙서와 밥을 좋아하는 게으른 존재.” 작가 들개이빨의 프로필이다. 『먹는 존재』를 읽으며, 주인공이 작가와 겹쳐진다고 물으니, 작가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다.“낯가림 심하고 혼자 있는 거 좋아하고, 그냥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일은 글이든 그림이든, 들어오는 거 뭐든 닥치는 대로 하고 있고, 그렇게 번 돈으로 어디 가서 뭘 사먹을까를 항상 고민하지요.”

 

속 시원한 입담, 거침없는 돌직구가 들어있는 어른만화 『먹는 존재』는 백수 생활을 하는 주인공 ‘유양’의 일상적 먹부림에 관한 만화다. 독립문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작가는 대학 졸업 후, 고시생활을 하다가 인터넷 세계에 빠져 만화가가 됐다. 물론, 어릴 적부터 작가의 꿈은 ‘만화가’였다. 수많은 먹방 만화가 등장하는 지금, 『먹는 존재』는 왜 남달라 보일까? 들개이빨 작가는 “그림이 허술하고 주인공이 밥보다 욕설을 더 자주 입에 올리기 때문”이라고 자평했다.

 

출판사 애니북스는『먹는 존재』는 출간을 기념해, ‘먹는존재라면’ (궁금한 맛)을 증정하고 있다. 실제로는 ‘오징어짬뽕’ 라면을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단행본을 받았을 때보다 ‘먹는존재라면’을 받았을 때 더 크게 기뻐했다는 후문이다.

 

 

 10문10답-먹는존재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정말 좋아해요


고시생활을 하다가 인터넷 폐인이 되면서 만화를 그리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2010년에 2년간 한겨레 HOOK에서 <들개의 지하철방랑기>를 연재했고, 현재는 레진코믹스에서 『먹는 존재』를 연재하고 있는데요. 첫 단행본을 받아 든 소감이 궁금합니다.


사실 단행본 제의를 받은 직후에는 오랜 꿈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행복했는데, 막상 제작이 구체화되면서부터는 마냥 행복했던 마음에 조금씩 조금씩 근심, 걱정이 스며들더군요. 책 한 권을 만들어내는데 투입되는 인력과 시간과 노동량이 제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라, '과연 내 만화가 그분들의 수고를 보상해줄 만큼 잘 팔릴 것인가!' '아, 안 팔리면 어떡하지?!' 이렇게 매일매일 안절부절 못했죠.

 

출간이 임박할 무렵, 인쇄소에 방문했을 때는 근심이 아예 공포로 변했습니다. 제 만화가 인쇄된 질 좋은 종이가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광경이 그렇게 무섭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 쥐며 으아아 나무야 미안해 으아아아악.......! 하고 소리 없이 절규했고, 심지어 그날 밤 아마존 나무들에게 두들겨 맞는 꿈까지 꿨어요. 이러저러한 우여곡절 끝에 단행본을 받아 들었을 때의 기분은 정말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네요. 예전에 막연히 상상했던 것처럼 마냥 기쁜 마음보다는 뭐라고 할까, 좀 이상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시험을 보러 가는 자식새끼 얼굴 만지는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싶어요. 뿌듯하고 애틋하면서도 한편으론 한없이 불안하고 걱정되고, 그런데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어쨌거나 그저 잘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먹는 존재』작품 구상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원래 먹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엄청나고, 눈앞의 끼니를 먹으며 다음 끼니에 대한 기대감에 막 흐뭇해 하고! 여하튼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정말 좋아해요. 거기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좋아했던 또 하나의 행위가 만화 그리기였으니, 언젠가 꼭 음식만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 같아요. 캐릭터, 관계도, 음식 등 구체적인 사항은 연재 시작 6개월 전쯤부터 다듬어나갔고요. 처음에는 가난한 자취생 주인공의 가계부 같은 형식으로 진행해보려고 했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중간 조그맣게 주인공의 통장 잔고, 이를테면 네모 칸 안에다(175만 원) 이렇게 표시를 하고 주인공이 밥을 사먹을 때마다 그 액수가 줄어드는데 액수가 0원에 가까워지면 주인공이 패닉에 빠져 막 기행을 하는? 그런데 하다 보니 생각보다 재밌지 않았고,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제한되는 것 같아서 결국 지금과 같은 형식으로 굳어지게 됐습니다.

 

캐릭터 설정은 어떻게 구상하셨나요? 특히 주인공 ‘유양’ 탄생기가 궁금합니다.


창작물에 자주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흥행 속성'을 잘 표현해낼 자신이 없었어요. 연예인처럼 티없이 예쁜 얼굴, 육감적 몸매, 상냥함, 현명함, 귀여움, 사랑스러움, 새침함, 시크, 도도 등. 와! 난 이런 거 못 하겠다. 잘하는 분들도 너무너무 많고. 그럼 한번 다 빼고 가보자. 안 예쁘고 안 섹시하고 안 상냥하고 안 현명하고 안 귀여운 여자. 그런데 이런 식의 소위 '상업적 여성 캐릭터'에서 비껴난 여성 캐릭터들에게는, 대체로 악역, 콤플렉스 덩어리, 희화화의 대상 같은 부정적인 역할이 부여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건 좀 마음 아프다. 그것도 피하자. 그럼 대체 이 여자의 매력은 뭐냐? 허세다! 내가 왕년에 일삼았으나 남들 앞에선 차마 못 다 펼친 허세스런 생각들을 주인공에게 한번 다 때려 부어보자.' 대략 이런 과정을 거쳐 '유양'이 만들어졌습니다(웃음). 이름은 짓기 귀찮아서 그냥 제 본명을 대충 변형해 붙였는데, 그래서인지 본능적으로 캐릭터를 덜 미워 보이게 묘사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효과가 있더군요. 허허허! 또 이렇게 성깔 있는 인간 곁에 오래 남을 사람은 착하고 순해야겠지, 싶어 만들어낸 인물들이 '조예리'와 '박병'이고요. 그 밖의 캐릭터들(엄마, 아빠, 직장상사, 동네할머니 등)은 이제까지 보아온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적당히 반영하여 만들었습니다.

 

10문10답-먹는존재

 

유양을 처음에는 남자로 착각했다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의도하셨나요?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딱히 여자다! 라고 생각하며 그리지도 않았어요. 아무래도 일반적인 의미의 '여성성'이 드러나지 않으니 남자로 착각하실 만하죠. 아마 주인공 유양이 이 얘기를 들었다면 '내가 여자이니 내 행동은 전부 여성스럽다'며 버럭 하지 않을까 합니다만(웃음).

 

단행본 특집으로 ‘들개 인터뷰’가 나와있습니다. 주인공 유양과 작가님의 학창시절 중에 공통점이 있을까요? 작가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유양이 울면서 억지로 공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가 실제로 그랬어요. 공부가 진짜 너무 너무너무 하기 싫은데 너무 너무 너무 잘하고는 싶고, 그래서 억지로 책상에 붙어있다 저도 모르게 엎어져 자고 또 일어나서 1시간이나 잤어!! 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고. 유양과 다른 점은, 제 말투나 말의 내용이 다소 호전적이라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몇 번의 쓰린 경험을 통해 깨닫고, 교우관계를 좋게 유지하려고 엄청 애를 썼다는 것이죠. 늘 말조심하고, 욱하지 말고, 한번 더 생각하고, 적당한 유머감각을 기르자. 그래서 라디오에서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외워서 거울 앞에서 필사적으로 연습한 뒤 다음날 반 친구들한테 해주고, 반응이 생각보다 신통치 않으면 막 실의에 빠지고…. 꽤 고된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다 고 3 때, 마치 사약 먹은 선비처럼 바닥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어요. 스트레스로 인한 십이지장궤양이라더군요. 으허허허~ 그 뒤로 모든 일에 좀 관조적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들개이빨』은 허영만 선생님의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들개이빨’을 필명으로 사용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사실 필명으로 쓸 생각으로 지은 이름이 아닙니다. 무슨 사이트 가입할 때 닉네임 입력해야 되잖아요. 그 때 대충 생각한 이름인데요.  제가 개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뭔가 개와 관련된 적당한 이름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아 뭐 그냥 동네를 어슬렁거리길 좋아하니까 '들개', 이걸론 심심하니 세 보이게 '이빨'을 갖다 붙이자. 끝! 생각 없이 지어서 생각 없이 쓰던 이름이 어쩌다가 창작활동에 사용하는 필명이 된 셈인데,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일반명사에 가까운 단어라 검색이 잘 안 되고, '들깨이빨'로 헷갈리시는 분들도 정말 많고(심지어 '늑대치아'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봤습니다) 또 말씀하신 대로 허영만 선생님의 작품명이기도 해서 뒤늦게 당황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몇 번을 바꿀까 말까 망설였는데 정이 많이 든 이름이라 앞으로도 계속 쓰지 않을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림체도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그림은 따로 배우셨나요?


그림을 따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론 돈 주고 배웠는데, 저 같은 그림이 나온다면 크게 당황스러울 것 같네요?!

 

10문10답-먹는존재

 

『이말년 서유기』 ,『송곳』 재밌게 읽고 있어, 롤 모델은 허영만 작가


인생에 있어서 ‘먹는 것’ 참 중요한데요. 너무 식탐이 있거나, 먹방에 탐닉하는 사람을 볼 때면, 다른 것에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쓰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유양이 그런 인물이란 생각은 아닙니다)  의식주 중 ‘식’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내 밥상에 올라와 앉은 모든 음식은 한때 살아 있었던 것들이라는 생각을, 물론 늘 하지는 못하지만 완전히 잊고 살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저도 맛있는 것에 아주 환장하고 달려드는 타입이지만 맛없는 것을 먹을 때 지나치게 낙담한다거나 음식에 대한 예의를 잃지는 말자. 어!!  이거 진심인데 써놓고 보니 왜 이리 거창한지...! 제가 중국집에서 눈이 뒤집혀서 양고기를 뜯어먹고 있을 때 누가 이 글을 읽어주면 정말 쪽 팔릴 것 같네요. 껄껄.

 

‘메밀꽃필무렵’이라는 효자동 식당을 알고 있는데요. 만화 속 식당은 거기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만화 속에 등장한 실제 식당이 있나요?


담당 편집자님이 효자동의 그 '메밀꽃필무렵' 사진을 보내면서 혹시 여기가 거기냐고 묻던데 아닙니다 으하하! 그래도 조만간 꼭 가보고 싶네요. 만화 속 식당들은 거의 대부분 제가 이제까지 방문했던 식당들에 대한 기억을 조합하고 약간의 상상을 덧입혀 만든 가상의 장소예요. 단, 국내의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OO나들이' 편에서는 그 지역의 실제 식당이 등장합니다. 리필 피자집도 그 중 하나고요. 대전에 있습니다.

 

일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밥이 맛있을 때, 자다 일어났는데 더 자도 될 때, 볕 좋은 날 공원에 누워있을 때, 이어폰에서 좋아하는 음악이 나올 때, 길고양이나 개가 다가와 호의를 보일 때. 아, 쓰기만 해도 행복해지네요!

 

지금 꿈꾸고 있는 세 가지 소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 평생 창작하기, 세계평화.

 

최근 재밌게 보고 있는 웹툰 또는 롤모델이 되는 만화가가 있나요?


최근엔 지금 연재하고 있는 레진코믹스의 작품들을 즐겨 봅니다. 네온비 작가님의 <나쁜 상사>, Bambi 작가님의 <3737>, 다드래기 작가님의 <달댕이는 10년차>, 수사반장 작가님의 <김철수씨 이야기>, 돌콩 작가님의 <나에게 온 달>, 미미 작가님의 <헬로 좀비>, 의외의 사실 작가님의 [마루의 사실], 골드키위새 작가님의 <메지나> 등. .진짜 다 재밌고 매력이 넘쳐서 어떻게 뭐 하나를 꼽기가 어렵네요. 아 그리고 네이버 웹툰의 『이말년 서유기』와 『송곳』도 정말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특히 최규석 작가님의 『송곳』은 재미를 넘어 거의 전율이 일더군요. 롤 모델도 연재 시작하면서부터는 기존의 모든 만화가들을 존경하게 돼서 딱히 한 분만 꼽기가 어려운데요. 허영만 선생님! 탄탄하고 매력적인 작화, 왕성한 창작력, 생활습관 모두 본받고 싶습니다.

 

『먹는 존재』처럼, 작가님을 <   > 존재로 표현한다면. 어떤 타이틀을 붙이고 싶나요?


우와 어렵네요! 음. ..... 헤매는 존재? 일도 헤매고 인간관계도 헤매고 길도 헤매기 일쑤라서요.

 

어떤 독자에게 『먹는 존재』를 추천, 또는 선물하고 싶나요?


유양과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에게 가장 먼저 선물하고 싶어요. 세상과 불화하느라 고생 많고, 그래도 너무 화내지 말고 밥 잘 먹고 힘내라고.

 

후속작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집필 계획을 말씀해주신다면?


하고 싶은 건 정말 많아요. 농사만화, 쿵후만화, 과외만화, 경제만화, 검과 마법의 정통판타지만화, 요즘은 또 갑자기 모텔과 관련된 만화를 그리면 어떨까 고민 중이고요. 가장 큰 문제는 과연 저에게 이 좋은 소재들을 소화해낼 능력이 있느냐인데요.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은『먹는 존재』 연재가 끝나는 대로 예전에 블로그에 올리다 중단했던 고양이 만화라든가, 나이트클럽 체험기를 완결 지으려 합니다.

 

 

10문10답-먹는존재

 

 

먹는존재 

img_book_bot.jpg

먹는 존재 1들개이빨 글,그림 | 애니북스
『먹는 존재』는 꼬박꼬박 찾아오는 삼시세끼와, 그것의 당연함을 외면하지 못하는 욕망과, 그것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남은 거라곤 성깔밖에 없는 여자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을 좇아 먹이피라미드를 빠져나오고, 나아가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진짜 삶의 방향을 찾아 맨땅에 헤딩한다. 도무지 목소리를 낼 용기를 얻기 힘든 요즘, 내 삶을 살기 위해 온힘을 다해 세상에 부딪히는 이야기를, 이 현실적 판타지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추천 기사]

- 우리, 끈끈한 유대속에 각자의 삶을 살아요
- 수상하지만 솔깃한 어둠 속 인생상담!
- 오래도록 가까운 친구로 지내고 싶은 남자
- '왼손은 거들 뿐'을 아시나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안희경 “예술이란 예술가의 작업, 삶”

$
0
0

전문 인터뷰어 안희경이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를 냈다. 작년에 쓴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대를 조망했다면, 이번에는 현대 예술계의 거장 8명을 만나 현대 예술을 다뤘다. 그녀가 만난 예술가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아네트 메사제, 윌리엄 켄트리지, 키키 스미스, 강익중, 제프 월, 무라카미 다카시 등이다.

 

L1004170.jpg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5월 18일에 한국 들어와서 오늘 출국하는 공항이에요. 『경향신문』에 1월 1일부터 ‘문명, 그 길을 묻다-세계 지성과의 대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 선생님을 시작으로 제레미 리프킨, 노엄 촘스키, 지그문트 바우만, 장 지글러, 웬델 베리 등의 어른들을 만났습니다. 이번에 한국에는 그중 10번째 인물인 원톄쥔 런민대 교수와 마지막 회인 스리랑카의 민중 지도자 아리야라트네 박사를 인터뷰 하고자 겸사겸사 온 것입니다. 한 달 가량의 체류 중에 베이징과 스리랑카 콜롬보를 다녀왔어요.


물론, 새 책 출간 역시 주요한 방문 이유이고요. 작년에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를 쓰면서 그 글이 마무리될 즈음 제 마음으로 차오른 생각이 ‘문명’과 관련한 이야기를 풀어보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경향신문』을 통해 연재하는 프로젝트와 이번에 출간된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는 한 기둥에서 뻗어 나온 셈이죠. 아티스트들의 세상에 대한 질문과 그 답을 찾는 여정이 석학들의 학문의 길과 다르지 않고요. 또 모두 동시대의 생활인으로서 우리 삶을 성찰하는 것이니까요.

 

PD로 일하다, 최근에는 전문 인터뷰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PD와 인터뷰어, 비슷하면서도 다른 게 있을 듯합니다. 두 가지 역할을 하면서 느낀 점을 비교하신다면?


제가 라디오 PD를 8년 넘게 했어요. 그 이전에도 2년 정도 방송 리포터를 했고요. 인터뷰는 연구자들이나 주민센터의 사회복지사 분들이나 기자나 PD나 다들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다만 제가 다른 분들과 조금은 다른 방식이 있다면, 방송하듯 한다는 거 아닐까 싶어요. 저는 방송할 때도 녹음보다는 생방송을 좋아했습니다. 순간의 집중력으로 만들어내는 파장 같은 것이 있거든요. 녹음 때와는 다른 파바박 부딪치는 에너지가 있어요. 물론 한 번 꼬이면… 옴짝달싹 못하면서 펑 하니 사라져버리고 싶기도 하지만요. 아무래도 아티스트 인터뷰는 그 무엇보다 오리지널리티를 매우 중시들 하시니까 제가 했던 라디오 작업과 좀 맞았어요. 아티스트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단어도 바꾸지 않고 말을 최대한 원래대로 옮길 겁니다”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생방송하듯 인터뷰해서 오디오 편집하듯이 대화의 맛을 최대한 살리려고 합니다. 물론 그래도 조작은 들어갈 수밖에 없긴 하지만요. 이번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는 대화가 아닌 에세이처럼 풀었기 때문에 인터뷰어인 제가 많이 개입되어 있지만, 그래도 인용은 최대한 그분들 각자의 맛을 살리려고 했어요. 그러니까 답은 PD와 인터뷰어는 다르지 않다… 겠죠.

 

현대 예술 거장 8인을 인터뷰집으로 엮었는데요. 섭외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어떤 기준으로 만날 예술가를 정하셨는지.


섭외가 참 저도 의문이에요… 특히 이 책은 2010년의 작업인데, 그때는 다시 취재를 시작한지 1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물론 한국에서 방송하면서 참 많은 섭외를 했고, 만나기 힘든 분들도 많이 스튜디오로 모시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미국으로 이주하고서는 영어라는 거대한 장막이 있기에, 전화로 음성을 들으며 상대와 호흡하여 전달하는 섭외는 불가능해졌죠. 한 1년 동안, 왜 이 분들이 저를 만나줄까 궁금했어요. 섭외 편지 쓰면서 막 텔레파시 보내며 에너지를 쏘는 그 기도발인가 싶기도 했고요. 물론 반은 농담입니다. 뭐 세상에 한 생각을 던지는 그것도 우주를 울리는 힘은 있다고는 하지만… (웃음) 제가 인간 송출탑도 아니고.


그저 최선을 다해 편지를 썼어요. 당신의 작업에 대한 제 느낌, 듣고 싶은 말, 우리 문화와 교감되거나 교차되어 지나가는 그 지점들에 대해 제 깜냥대로 전달하면서 그들이 자기 예술을 할 수 있는 그 바탕의 힘을 우리 젊은 예술가들이 나눌 수 있는 팁을 얻고자 했죠.


만남의 기준은 ‘거장’을 만나자는 것이었는데, 그 범주에 드는 이들을 선별하는 기준은 제 개인적 호불호에 따라서는 아니었고요.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 두루 인정한 작가들에 한해서 만나고자 했어요. 사실,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작품들은 꼭 거장이 만드는 건 아니잖아요. 명작도 많고, 반짝이는 아티스트도 많은데, 그 가운데, 수십 년 꾸준히 자기 세계로 천착해 들어가는 분들을 만나고자 했습니다.

 

IMG_6009.JPG


인터뷰하는 데 섭외도 어렵지만, 질문 짜는 게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예술가를 인터뷰하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인생과 작품을 이해해야 할 것 같은데요. 질문 짜는 데 역점을 둔 부분이 있을까요.


질문은 정말이지, 상대를 만나기 5분 전까지도 바뀌어요. 쉽지 않은 기회일 수도 있는데, 그 만남에서 단편적인 면보다는 뭔가 그들 정신의 고갱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잖아요. 하지만 실제 인터뷰에 들어가면, 첫 질문이 나중 모든 질문을 바꿔 놓을 때가 많습니다. 앞서 이야기하듯 생방송처럼 인터뷰를 하려 하니까… 그들 집 또는 스튜디오에, 아니면 공원에 나오는 발걸음 등등에서 말문을 틔울 뭔가를 관찰해요. 그런 이야기를 던질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그러다 편안해진 계기가 있었습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만나고 나서였어요. 그때, 뭔가가 내 안에서 올라왔는데, 그건… ‘아! 인터뷰란 결국 한 사람이 살아온 삶과 상대의 삶이 만나는 거구나’라는 것이었어요. 그건 다급히 뭔가를 준비해서 더 나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거죠. 상대의 삶을 내가 살아온 그 만큼의 용적량으로 담아낼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있었어요. 물론 상대가 거인이라 철철 넘치게 부어주죠. 무얼 묻더라도요. 그 다음부터는 좀 편안해졌어요.


읽으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과감하게 밝히는 키키 스미스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터뷰한 모든 예술가가 뜻 깊었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강렬한 인상을 받은 예술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한 분을 꼽기는 참 어려운데요. 강익중 선생님과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선생님이십니다. 강익중 선생님에 대한 챕터를 보면 이해하실 텐데… 그분이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저한테도 매우 크게 제 안을 휘저었습니다. 저도 제게 질문하게 됐어요. 이후 1년도 넘도록 말이에요. 그리고 마리나의 경우는 올해 초에도 한 번 더 인터뷰를 했는데… 마리나 선생님이 제 인터뷰를 참 좋아했습니다. 올봄에 찾아가니 그분 스태프 중 한 명이, 제게 마리나 선생님이 제 인터뷰 영역본을 흔들며, “내 인터뷰는 이래야 해”라고 했다 하더라고요. 물론 제게도 저의 접근이 참 좋았다 여러 번 이야기하셨는데요…. 그녀는 정말이지 제가 2층에 사는 사람이라면, 저 위 3층 혹은 4층에 사는 분 같아요. 그만큼 구도의 열정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혔다고 할까요. 그녀와의 만남이 제게 전달한 에너지는 엄청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책에서 소개한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제프 월의 <죽은 병사들의 대화>였습니다. 선생님께서 특별히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나요.


책 표지로도 쓰인 제프 월의 「돌풍」입니다. 그 돌풍이 떠올라서 밴쿠버 가는 길에 제프 월을 만나야겠다 마음먹게 됐고, 그 바람처럼, 제 주위 공기들이 흔들리듯 삶의 변화도 왔고요.

 

책 마지막에, ‘나를 발견하라’는 메시지를 던지셨는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선생님 자신은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열심히 배우는 사람이죠. 전에는 하고 싶은 일들도 많고 했는데… 지금은 그저 열심히 하려고 해요. 잘하지 못하면 만 가지를 해도 한 것이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지금 하는 그것을 잘하자라고 마음을 모으려는 사람이에요. 지금 이 답에 집중하듯이 설거지할 때도 집중해요.

 

질문지에 ‘예술이란 무엇인가?’는 어떻게 보면, 공통 질문이었을 것도 같은데요. 안희경 선생님에게 예술이란?


그 작업을 하는 이의 생활, 삶.

 

이 시대, 이곳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어때야 할까요.


예술가는 자유를 보여주는 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그 경계를 넓혀가는 이들요.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에 이어 ‘여기 아트스트가 있다’로 여러 사람을 만나 오셨는데요. 앞으로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만나고자 연락했다가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못 만난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요. 아마 내년 즈음 들어갈 프로젝트가 될 텐데요. 지금 하는 ‘문명, 그 길을 묻다’가 세계화된 권력을 들여다 보게 하고, 개인의 깨달음과 사회의 깨달음이 결국은 하나가 될 때, 세상의 변화가 생긴다는… 그 어쩔 수 없는 느리고 느린 문명이 걸어온 길을 본 것이었다면, 앞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건… 바로 그 개인이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조금은 쉬운 길을 조명하고 싶어요.


 

 

예테보리 

img_book_bot.jpg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안희경 저 | 아트북스
그녀는 2010년부터 국제 미술계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현대미술의 거장들을 만나왔다. 그리고 이들 8명의 현대미술 거장들을 만나 상상력의 근원을 탐구한 인터뷰를 묶어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그녀가 만난 이들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아네트 메사제, 윌리엄 켄트리지, 키키 스미스, 강익중, 제프 월, 무라카미 다카시.

 


 

[추천 기사]

- 전(前) 세계챔피언 복서와 문학 청년이 만들어가는 이야기

- 박범신 “노작가가 쓸 수 없는 파격 소설? 글쎄…”

- 고병권 “앎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 박범신의 새 소설 『소소한 풍경』외

- 소설가 박범신, 왜 고향 논산으로 다시 내려갔을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Viewing all 154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script src="https://jsc.adskeeper.com/r/s/rssing.com.1596347.js" async> </script>